주간 정덕현

'사랑비'가 진부한가, 우리가 자극적인가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사랑비'가 진부한가, 우리가 자극적인가

D.H.Jung 2012. 3. 2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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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비', 행복과 슬픔의 변주곡

'사랑비'는 초록의 담쟁이 잎사귀들에 떨어지는 빛에서 시작한다. '청춘(靑春)'이다. 그 길에서 윤희(윤아)를 마주친 인하(장근석)는 단 3초 만에 사랑에 빠진다. 청춘의 첫사랑이다. 70년대의 대학 교정, 윤형주의 '언제라도 난 안 잊을 테요-'하는 그 감미로운 목소리가 매력적인 '우리들의 이야기'가 울려퍼지고, '러브스토리', '어린 왕자', 일기장 같은 70년대를 살았던 세대들의 아련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저마다의 첫사랑을 툭툭 건드리는 것으로 '사랑비'의 모티브는 시작한다.

우리네 모든 첫사랑의 기억(이것은 아름답게 채색되기 쉬운 것이다)이란 것이 그렇지만, 그 이야기는 전형적일 수밖에 없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고, 전하지 못하는 마음에 열병을 앓는 그런 기억, 엇갈림,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의 갈등, 안타까움 같은 것이 우리가 첫사랑으로 저마다 채색해놓은 한 때의 기억일 것이다. 윤희를 사랑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친구 때문에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는 인하의 열병은 그래서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강하게 다가온다. 이 드라마는 누구나 갖고 있는 그 첫 기억을 꺼내놓고 그 3초 만에 빠져버린 사랑이 어떻게 온 삶을 뒤흔드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 '러브스토리'의 그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전형적인 대사는 윤희의 일기장에서 인하의 독백에서 또 엇갈리게 되는 동욱(김시후)의 작업 멘트에서 계속 반복된다. 왜 첫 사랑에 "미안하다"는 말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등장하는 걸까. 윤석호 PD의 '겨울연가'가 그러했듯이 이 청춘의 첫사랑은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그래서 서로에게 슬픔과 상처를 주지만 그렇다고 "미안하다" 말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인하의 해석처럼 "사랑은 진심이니까, 서로의 진심을 아니까"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랑비'라는 제목은 이 첫사랑이 주는 슬픔과 행복을 잘 표현해주는 조어다. 도서관 앞에서 만난 인하와 윤희가 고장 난 노란 우산을 함께 쓰고 첫 장면에 3초 만의 사랑을 예감케 했던 그 초록 담장 앞을 걸어가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전체 정조를 감각적인 영상으로 잡아낸다. "비 좋아하세요?"라는 윤희의 질문에 "좋아해요. 슬프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라고 인하가 답하고, 윤희는 '어린왕자'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은 행복과 슬픔이라는 두 얼굴을 하고 있다'는. 그렇게 사랑과 비는 닮아있다. 그녀에게 우산을 받쳐주느라 온몸이 젖어버린 인하의 행복한 얼굴처럼.

'사랑비'는 이 첫사랑의 기억이 다시 현재 시점으로 되돌려지는 드라마다. 나이든 인하와 윤희가 다시 만나고, 그들의 자식들인 서준(장근석)과 하나(윤아)가 만난다. 몇 십 년이 흘렀지만 어찌 보면 이미 나이 들어버린 그들이 청춘의 시간과 함께 공존하는 신비로운 장면이 그 속에는 들어 있다. 청춘과 첫사랑에 대한 현재적 관점으로의 추억.

자극적인 스토리와 팽팽 돌아가는 속도에 익숙해진 시청자라면 '사랑비'는 어딘지 너무 느리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뭐든 마음에 있는 것을 드러내고 직접적으로 얘기하는데 익숙한 시청자들이라면 인하와 윤희의 말 못하는 열병이 못내 갑갑하게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사랑비'는 바로 그 느리고 아날로그적인 사랑을 원석처럼 꺼내놓는 드라마다. 따라서 빠른 속도의 자극적인 영상을 즐기기보다는 그 느리게 돌아가는 그림 같은 영상이 주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촉촉함을 느끼는 것이 감상 포인트다.

윤석호PD는 역시 색채의 마술사답게 이 첫사랑의 만남과 열병을 완벽한 색의 대비로 보여주었다. 청춘을 상징하는 초록 잎들의 배경 위로 촉촉한 비가 내리고 가녀린 노란 우산을 들고 운명이 어떻게 굴러갈 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슬픔과 행복을 느끼며 남녀가 걸어간다. "사랑은 진심이니까." 같은 진부하고 상투적인 대사마저 떨림으로 바꿀 수 있기를 이 드라마는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만 같다. 과연 '사랑비'가 진부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너무 자극에 익숙해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