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브람스'·'18어게인', 대체 현실은 얼마나 망가져 있는 걸까
도대체 우리가 접하고 있는 현실은 어느 정도까지 망가져 있는 걸까. 현재 월화에 방영되는 멜로드라마를 보다보면 달달함보다는 끔찍함이 느껴진다. tvN <청춘기록>이 보여주는 수저계급론의 현실이 그렇고,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클래식 음악을 둘러싸고 있는 적폐 어른들의 면면이 그러하며, JTBC <18 어게인>의 이혼한 여성의 취업현실과 체육계의 비리가 그러하다.
<청춘기록>에는 흙수저라는 이유로 모델에서 배우로 성장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혜준(박보검)이라는 청춘이 등장한다. 같은 한남동에 살지만 부유한 친구 원해효(변우석)는 부모 찬스로 사혜준보다 쉽게 모델에서 배우로 전향해 활동한다. 물론 이 드라마는 사혜준이 이런 흙수저의 한계를 뛰어넘어 원해효를 능가하는 톱배우가 되는 과정을 판타지로 그리고 있지만, 우리네 현실에 드리워진 '수저계급론'을 그 밑그림으로 삼고 있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자식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그 불편하지만 현실이 되어버린 밑그림을.
힘겹게 성공한 후에도 각박한 현실은 사혜준을 가만 놔두질 않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실이 아닌 걸 사실처럼 꾸며 보도하는 기자나, 어려울 때는 가차 없이 버렸다가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하자 날로 사혜준을 끌어오려는 이태수(이창훈) 같은 매니저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그저 열심히 노력하며 사람과 선한 영향력을 믿고 버텨내려 하는 사혜준이지만 현실은 이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삼은 청춘 멜로지만 여기 등장하는 청춘들은 짠하기가 이를 데 없다. 멜로인 줄 알았는데 음대의 비리를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 같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음대교수들은 그들이 가진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청춘들을 착취한다. 꿈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현실에 순응하던 청춘들은 결국 그 추악한 현실 앞에 꺾여버리고, 모든 걸 성적순으로 스펙으로 또 서열로 나누는 무례한 시스템 앞에서 꿈을 꾸는 일이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 스펙사회의 그늘은 드라마 속 채송아(박은빈)와 박준영(김민재)의 사랑조차 노력만으로 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박준영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이정경(박지현)은 점점 흑화해 자신이 가진 것들로 채송아를 괴롭게 만들고 결국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다. 우리네 현실에서 가난한 이들은 꿈도 사랑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JTBC <18 어게인>에는 일찍이 아이를 가져 아나운서의 꿈을 나이 들어서야 겨우 얻게 된 정다정(김하늘)앞에 놓인 차별적인 현실이 등장한다. 실력은 충분하지만 나이 들었고 유부녀라는 이유로 번번이 밀려난 취업전선에서 블라인드 채용으로 간신히 아나운서가 되지만 그의 스펙을 알게 된 상사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게다가 이혼까지 하게 되자 그것이 아나운서로서는 엄청난 흠이라도 되는 양 몰아붙여 그에게 불이익을 준다. 이 드라마에는 정다정이 처한 취업현실만큼 더 추악한 체육계의 비리도 등장한다. 정다정의 아들 시우(려운)가 농구부에 들어가려 하자 코치는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한다. 그렇게 해야 자식이 경기에도 나갈 수 있다며.
흔히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말하곤 한다. 실제로 드라마는 현실 그 자체를 그리지는 않는다. <청춘기록>에서 흙수저 사혜준이 작품 몇 개에서 맡은 조연에서 주목을 받아 단박에 스타덤에 오르고 1년 만에 연기대상 최우수상을 받는 일은 현실에서는 결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드라마는 판타지를 그리지만 거기에는 만만찮은 현실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다른 말로 하면 현실의 결핍을 판타지로서 채워주는 게 드라마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가 그려내고 있는 밑그림을 보면 지금 우리의 현실이 어떤가를 실감할 수 있다. 과연 어떠한가. 월화드라마 몇 편에 투영된 현실들이. 달달한 멜로로 포장되어 있지만, 거기 깔려진 현실의 씁쓸한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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