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라는 단어는 어떻게 ‘애기씨’와 만났을까

이 드라마 제목이 수상하다. 영어지만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헬로’라는 단어에 우리말이지만 잘 쓰지 않는 ‘애기씨’란 제목을 붙였다. 혹자는 이걸 가지고 비판한다. 왜 좋은 우리말 놔두고 어울리지 않는 영어를 조합해 쓰느냐고. 즉 ‘안녕 애기씨’라 하면 안 되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드라마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건 안될 말이다. 이 드라마의 재미는 바로 ‘헬로 애기씨’라는 제목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질적인 요소의 절묘한 결합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자전거와 고급승용차가 만날 때
종가집 애기씨 이수하(이다해)가 갈치송(?)을 부르며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린다. 한편 교차로에서 부딪치게될 고급승용차에는 TOP그룹의 손자인 황동규(이지훈)가 타고 있다. 부딪치는 순간 이수하는 자전거와 함께 논둑길로 넘어져 갈치들의 세례를 받고, 갈치 한 마리는 황동규가 탄 승용차 뒤 트렁크에 달라붙는다. 이 단순해 보이는 첫 신 속에는 이 드라마가 앞으로 진행될 방향과 스타일, 캐릭터, 이야기까지 대부분의 복선이 숨어있다.

즉 앞으로 이 드라마는 자전거와 고급승용차처럼 시골스러움과 도회적인 것이 부딪칠 것이고, 그것은 자전거를 타고 있는 이다해와 승용차를 타고 있는 황동규라는 캐릭터로 구체화될 것이다. 부딪치면서 순간적으로 공중 부양하는 이다해와 자전거, 그리고 반짝이는 갈치들이 날아가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정극이 아닌 코미디를 지향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것이 ‘헬로 애기씨’가 앞으로 그려갈 사항들이다.

몰락한 양반과 성공한 머슴이 만날 때
애기씨는 현대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몰락한 양반을 대변한다. 반면 이 종가집에서 머슴 살던 황만복(박인환)은 소를 도둑질해 이를 밑천 삼아 TOP그룹을 일으킨다. 성공한 머슴인 셈이다. 성공한 그룹 회장이지만 ‘본바탕’은 머슴인 그의 숙원은 자기가 머슴살던 종가집, 화안당 사랑채에서 말년을 보내는 것. 손자 황동규를 시켜 화안당을 사들이는 것이 어렵게되자 황만복은 손자를 애기씨와 결혼시키려 한다. 집은 물론이고 종가집이란 뿌리까지 얻기 위함이다.

이것은 박지원이 쓴 ‘양반전’의 변용이다. 다른 점은 ‘양반전’이 양반이 된 지체 낮은 부자를 통해 양반의 위선을 꼬집었다면, ‘헬로 애기씨’는 돈이면 뭐든지 된다는 식의 천박한 자본주의를 꼬집는다. 이것은 고풍스러운 옛것이 살아있는 시골을 구닥다리라 여기며, 장삿속으로 현대화시키는 작금의 자본주의와도 맞닿는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복잡한 구석이 생긴다. 애기씨라는 캐릭터가 그저 고전적 가치만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애기씨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도시로 오면 좌충우돌 씩씩한 현대여성이 된다. 즉 애기씨는 과거에만 가치를 두고 변화를 무시하는 사람들 역시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가난한 여성과 부자인 남성이 만났을 때
트렌디 드라마의 전형적인 구조는 바로 가난하지만 당찬 여성이 재벌집 아들과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 어찌해 결혼에 골인 혹은 실패했더라가 이야기의 골자가 된다. ‘헬로 애기씨’에서도 그 틀은 같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 더 들어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가난하지만 ‘지체 있는 집안의’ 여성이라는 점과 부자지만 ‘위신 없는’ 남성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좀더 확장되는 의미는 가치 중심적인 여성성과 돈이면 다 된다는 단순논리의 남성성의 대결구도이다. 전자가 지금 변화되고 있는 사회(여성성이 강조되는)라면 후자는 과거 ‘개발과 성장’으로 대변되는 남성 중심적 사회를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남성성, 자본주의적 가치로 대변되는 남자와, 여성성(때론 현대적 의미의), 고전적 가치로 대변되는 여자가 서로 만나 티격태격 싸우는 이야기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로 봤을 때 해피엔딩을 예측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된다면 이 둘은 결국 결합에 어떤 식으로든 성공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가치는 고전주의적인 균형감각이 된다. 어느 한 쪽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양쪽이 조금씩 양보하여 소위 시너지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결합은 단순히 남녀의 결합을 넘어서 남자로 대변되는 가치와 여자로 대변되는 가치의 결합을 의미하게 된다.

수많은 작품들의 변용, 진화일까
이 드라마는 재미있다. 그 이유는 로맨틱 코미디의 수많은 요소들을 거의 다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 속에서 수많은 고전들과 성공한 로맨틱 코미디 작품들의 냄새가 풍겨난다. 종가집 애기씨가 재벌집 아들과 만나는 그 구조 자체는 신데렐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지체 없고 무식하기만 한 남성이 지체 있는 애기씨를 만난다는 설정은 온달 콤플렉스를 연상케 한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몰락한 양반과 성공한 머슴의 만남은 양반전의 변용으로 보이며, 애기씨는 새엄마와 결혼한 아버지의 서울집으로 가게 되는 순간, 콩쥐가 된다. 이 좌충우돌 대략난감의 애기씨가 앞으로 변화하게 될 모습은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코드를 예감하게 만든다. 애기씨 옆에 따라다니는 오정숙(장영란)은 향단이의 현대적 변용이고, 황동규 옆에 따라다니는 장대리(문천식)는 방자의 변용이다.

또한 이 작품에는 ‘환상의 커플’, ‘넌 어느 별에서 왔니’, ‘궁’ 같은 성공한 로맨틱 코미디 작품들의 영향이 엿보인다. 무능한 상사 밑에서 할말 다하는 약방의 감초, 공실장은 이 드라마에 와서 거의 똑같은 캐릭터로 곽부장(김광규)이 된다. 시골여자와 서울남자의 만남에서 야기되는 에피소드들은 ‘넌 어느 별에서 왔니’의 정려원과 김래원을 떠올리게 한다. 애기씨의 화안당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게서는 ‘궁’의 재미요소들이 눈에 띈다. 로맨틱 코미디가 수많은 전작들과 그 전작들의 현대적 변용을 통해 진화의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면 ‘헬로 애기씨’는 바로 거기에 딱 맞는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헬로’와 ‘애기씨’의 만남은 현대와 과거의 만남이자 과거 트렌디한 로맨틱 코미디와 그 현대적 변용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이 단순한 조합이 아닌 진화가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드라마, 연예의 중심에 서다

실로 ‘골드 러쉬’에 비견해 ‘드라마 러쉬’라 할만하다. 5분 짜리 뮤직비디오면 충분했을 내용을 가지고 굳이 두 시간 짜리 뮤직드라마를 만든 이효리부터,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어느 쪽에서도 호평을 얻고 있는 비, 정지훈, 게다가 최근 연기자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만들어버린 윤계상까지 가수들의 드라마 러쉬는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여기에 최근 들어 본격화된 영화배우들의 드라마 U턴이 본격화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드라마에 거는 우리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드라마 앞에 줄서게 했을까.

드라마 앞에 줄서는 가수들
가수들의 드라마 출연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명랑소녀성공기’로 스타덤에 올라 중국에서 한류스타로 활동하고 있는 장나라, ‘어느 멋진 날’, ‘눈의 여왕’에 출연한 성유리, 드라마 ‘궁’으로 화제를 만든 ‘윤은혜’, ‘풀하우스’로 드라마에서부터 최근에는 박찬욱 감독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로 연기로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비, 때론 터프하게 때론 코믹하게 연기변신을 보여주는 에릭,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목받기 시작해,‘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에서 확실한 연기를 보여준 정려원, ‘사랑에 미치다’로 가수 연기자들의 문제가 되곤 하던 연기력 논란을 잠재우고 있는 윤계상 등등.

이들의 드라마 진출은 음반 시장의 위축과 함께 예고되었던 일이다. 드라마가 가수들에게 매력적인 요인은 고정적인 TV 노출을 통해 자연스러운 홍보 효과와 이미지 제고를 할 수 있는 데다, 드라마 자체의 성공을 통한 수익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수 영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게 되는 드라마 PD들의 상황도 한 몫을 차지한다. 드라마로 시작했지만 영화판으로 넘어가 돌아오지 않는 연기자들이 많아지자 마땅한 탤런트를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 또한 참신한 인물을 쓰는데 있어서도 이미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는 가수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 가수들의 드라마 진출이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복병으로 자리하는 것이 연기력 논란. 일단 이 논란에 휘말리게 되면 자칫 그 가수 연기자 한 명 때문에 작품 전체가 매도당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하지만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그 가수 연기자의 성공적 데뷔는 드라마 성공에도 시너지 효과를 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 가수들의 성공한 드라마를 분석해보면 정극보다는 가벼운 로맨틱 코메디류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것은 만화 같은 과장된 캐릭터의 연기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연기력에 대한 안전장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소위 리얼한 연기보다는 캐릭터가 재미있기 때문에 드라마는 성공하고 가수는 안전하게 드라마라는 새로운 처녀지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된다.

영화판에서 드라마로 U턴하는 영화배우들
하지만 앞으로 연기자 기근 같은 드라마 PD들의 고민은 상당수 줄어들 전망이다. 최근 충무로의 불황이 도래하면서 잇따라 영화판을 고집하던 연기자들이 속속 드라마로 귀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KBS 2TV 월화드라마 ‘꽃 찾으러 왔단다’로 9년 만에 드라마로 돌아오는 강혜정은 ‘올드보이’, ‘웰컴 투 동막골’ 등으로 영화배우로서의 입지를 넓혀왔으나, 최근 ‘도마뱀’, ‘허브’ 등의 잇따른 부진으로 드라마 복귀가 예상되었던 연기자이다.

이런 상황은 SBS 드라마 ‘푸른 물고기’로 역시 9년 만에 복귀 예정인 고소영도 마찬가지. 최근 개봉했던 ‘아파트’, ‘언니가 간다’가 흥행 참패를 하면서 고배를 마셨다. 또한 이정재가 MBC 특별기획 드라마 ‘에어시티’로 9년 만에 드라마 복귀를 준비하고 있고, ‘그 해 여름’으로 확실한 연기자로서의 이미지를 만든 수애 역시 2년 만에 ‘9회말 2아웃’을 통해 TV로 돌아올 예정이다. ‘청연’으로 역시 아픈 부진의 기억을 갖고 있는 장진영 역시 블록버스터 드라마 ‘엔젤’로 6년만의 드라마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물론 충무로의 불황이 가져온 여파가 크다. 투자 분위기가 위축되면서 제작편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어 출연할 작품 찾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무엇보다 영화배우들에게 더 어려운 상황은, 작년 굵직한 연기자들을 내세워 쉽게 투자 받아 방만하게 만들어진 작품들의 잇따른 흥행실패이다. 그것은 실패를 맛본 영화배우 당사자에게도 치명타가 되지만 영화계 전체의 영화배우를 보는 시각을 돌려놓았을 거라는 예측이다.

드라마, 침체된 문화 살릴까
이처럼 가수와 영화배우들이 드라마 앞으로 정렬하는 것은 자체적인 불황을 넘어서기 위한 자구책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더 궁금한 것이 있다. 도대체 드라마라는 장르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모든 불황의 돌파구로서 자리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 이유에는 드라마 자체의 특성이 갖는 경쟁력과, 최근 드라마가 겪고 있는 변화의 조짐, 두 측면이 있을 것이다.

드라마는 우리 대중문화에 있어 늘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해왔다. 그것은 TV가 영화와 달리 돈을 내지 않고 누구나 손쉽게 틀어 볼 수 있는 대중성을 확보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든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력이 넓고 가능성을 찾기도 쉬운 매체인 TV에서 그 꽃은 단연 드라마이다. 두 시간 남짓하고 끝나는 영화와 달리, 작게는 서너 달에서부터 길게는 1년에 걸쳐 연속적으로 방영되는 드라마는 중독성에서 영화를 압도한다. 최근에는 인터넷 환경과 만나면서 이 중독성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그 중독성의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주인공 캐릭터. 장기간에 걸쳐 노출된 캐릭터를 통해 연기자는 그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영화나 음반보다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된다.

이러한 드라마 자체가 갖고 있는 매력과 함께 최근 변화되는 우리네 드라마의 양상도 연예인들의 드라마 러쉬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해외의 드라마들과 비교되면서 좀더 높은 완성도와 스케일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 우리는 거의 영화와 같은 수준의 드라마를 꿈꾸는 단계에 와 있다. 전문직 드라마들과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이 기획되어지고 있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영화적인 노하우를 이제는 드라마에서도 써먹어야 할 상황이 도래했다는 걸 말해준다.

드라마 한 편에는 실로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문화적 자산들이 들어있다. 거기에는 영상이 있고 스토리가 있으며 연기자들이 있고 노래가 있다. 괜찮은 드라마 한 편의 성공이 갖는 의미는 이제 드라마에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문화계 전반의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연예의 중심에 선 드라마. 모두 드라마 앞으로 정렬하기 시작한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건 이 풍부한 자원들을 제대로 활용해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미드 vs 우리 식의 범죄수사물

MBC의 새 월화 드라마, ‘히트’에 대한 호평과 혹평이 극단적으로 나뉘고 있다. 한편은 ‘기대이상’이라 하고 한편은 ‘수준이하’라고 한다. 시청자게시판을 보면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고 캐릭터들도 공감이 간다는 의견과 함께, 이제는 더 이상 보기 싫고 심지어는 종영했으면 한다는 극단적인 의견까지 올라온다. 또한 주인공인 차수경 역을 맡은 고현정씨의 연기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한편에선 털털한 연기 변신이 참신하다고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실제 경찰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다는 의견도 보인다.

물론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얘기겠지만 똑같은 드라마를 가지고 이렇게 극명하게 의견이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요인은 ‘히트’가 갖고 있는 과도기적인 특성들 때문일 것이다. 올 들어 우리 드라마에서는 이른바 전문직 드라마가 실험되고 있는 중이다. ‘하얀거탑’과 ‘외과의사 봉달희’를 통해 선보인 전문직 드라마는 새로운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들도 처음에 반드시 넘어서야 했던 산이 있었다. 그것은 전문직 드라마의 수요가 탄생한 미드(미국드라마), 일드(일본드라마)와의 한판 대결이었다.

미드 vs 우리 식의 범죄수사물
‘하얀거탑’이 처음 맞닥뜨린 상대는 저 거탑처럼 높아 보였다. 이미 일본에서만도 여러 번 리메이크 될 정도로 검증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이미 일드로 보았던 시청자들은 원작과 리메이크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김명민이라는 명배우가 있어 양쪽으로 갈린 시선을 우리의 ‘하얀거탑’으로 집중시키게 했던 점이다.

반면 ‘외과의사 봉달희’는 더 거센 상대를 만난다. 그것은 처음 ‘멜로가 섞인 전문직 드라마’라는 점에서부터 불거졌다. 으레 이 드라마도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가 아닐거냐는 추측들이 난무했던 것이다. 그 산을 넘어서자 이제 그 적이 분명하게 눈에 나타난다. 바로 ‘그레이 아나토미’다. 그리고 지금 그 바톤을 이어받은 ‘히트’가 맞닥뜨린 적은 ‘CSI’나 ‘24’같은 미드의 범죄수사물이다.

미드의 시시각각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설정들과 실제 현장을 방불케 하는 리얼리티에 익숙한 시청자들이라면 ‘히트’가 보여주는 스토리가 어딘지 약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미드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히트’는 지금까지 보여줬던 여타의 드라마들과는 전혀 다른 참신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호평과 혹평이 나뉘는 갈림길이 다. 이것은 지금 ‘히트’가 처한 상황이며, 동시에 우리나라 전문직 드라마가 처한 상황이기도 하다.

감성적 드라마 vs 아드레날린 드라마
우리네 드라마가 지금껏 만들어왔던 것들은 대부분이 멜로드라마로 대변되는 감성적인 드라마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감성적인 드라마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류 바람이 거세지면서 우리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과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고개를 든 것이 일드였다. 일드는 똑같은 감성을 다루고 있었지만 그 표현은 달랐다. 눈물을 터뜨리는 우리네 정서와 달리, 일드에는 감추고 침묵하는 일본적 감수성이 있었다. 그것이 더 나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드라마들이 너무 자주 울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드는 세련되게 보였다.

우는 드라마들(멜로드라마)이 퇴진하면서 TV에 겨우 남게된 드라마는 논란만 잔뜩 있는 가족드라마(‘하늘이시여’나 ‘소문난 칠공주’ 같은)와 울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발칙한 여자들’이나 ‘환상의 커플’같은) 그리고 사극이었다. 그 어느 것도 눈물과는 그다지 거리가 멀었다(물론 억지로 짜낸 가족드라마의 가짜 눈물은 있었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은 사극의 성장을 통해 예견된 ‘아드레날린 드라마’의 가능성이다. 사극은 기본적으로 감성적인 드라마라기보다는 머리를 뜨겁게 만드는 ‘아드레날린 드라마’에 가깝다. 주인공의 성장이나 미션의 완수, 복잡한 문제의 해결 등이 보는 이들을 흥분시키는 드라마다.

여기에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하얀거탑’은 본격 ‘아드레날린 드라마’의 새장을 열었다. ‘히트’는 그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뭔가 다른 것이 끼여든다.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 때문인지, 지금까지 해오던 버릇이 있어서 그런 건지, 혹은 전문직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에 맞는 작가군이 없어서 그런 건지, 멜로 같은 감성적 코드들이 뒤섞이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아직까지는 보편화되지 않은 장르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너무 전문적으로 가다보면 매니아들에게는 엄청난 호평을 받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피곤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수사 vs 탐문수사
호평과 혹평 사이에는 비교가 있다. 우리네 전문직 드라마와 미드를 비교하면 당연히 답은 나온다. 볼 것도 없이 미드의 승리다. 그것은 이미 미드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시즌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제작에 있어서 노하우가 산적한 상태이며, 투자규모에 있어서도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전문직 드라마가 월등히 떨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제 첫걸음을 떼고 있으며 그 첫걸음이 있어 더 나은 드라마들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걸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또 ‘히트’를 ‘하얀거탑’과 같은 이미 종영한 전문직 드라마와 비교하는 것 또한 그다지 의미 있는 일이 아니다. 요컨대 이 드라마들은 둘다 전문직 드라마이긴 하지만 그 ‘전문분야’가 다르다. ‘히트’가 좀더 어려운 것은 ‘의학’이라는 전문분야보다 스케일이 더 클 수밖에 없고 더 많은 투자가 소요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이미 영화 등을 통해 헐리우드 액션에 더 익숙한 우리들에게 상대적으로 ‘히트’가 불리하다는 점도 포함된다.

또 한가지 드는 의문은 우리네 전문직 드라마를 만드는데 있어서 꼭 미드를 따라갈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한류로 그 재주를 인정받은 멜로의 기법들을 제대로만 접목시킨다면 그것은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히트’는 미드보다는 일본의 ‘춤추는 대수사선’을 더 따라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것이 일부 어설픈 장면들과 매끄럽지 못한 이야기 전개가 거슬리면서도, 미드에서 보았던 과학수사와 함께, 우리 식의 탐문수사가 공존하는 ‘히트’에 기대를 걸게 되는 이유다.

최양일 감독의 신작, ‘수’는 대사는 적고 액션이 대부분인 영화. 말로 상황을 설명하기보다는 행동으로 상황을 얘기한다. 영화는 난데없는 자동차 액션(사실 액션이라기보다는 있는 대로 부순다는 의미가 크다)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 생각하기보다는 그 끝간데 없이 부서지고 부딪치는 자동차와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피를 보며 진저리를 치게 된다.

이 영화를 보통의 액션영화로 본다면 정말 지독히도 재미없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액션영화의 틀을 벗어나 있기 때문. 액션의 통쾌함을 목적으로 연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가 튀기는 장면들은 끔찍하다는 느낌을 줄뿐이다. 주인공에 대한 정서적인 공감대도 극도로 얇게 구성되어 있다. ‘동생을 찾는 청부살인자→찾은 동생이 암살된다→복수를 한다’는 단순한 설정에는 몰입을 위한 어떠한 장치도 들어있지 않다. 그것은 말 그대로 설정일 뿐이지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은 아니다.

최양일 감독은 영화 제목 ‘수’에 극중 주인공 태수의 수, 복수할 수, 목숨 수의 뜻이 있다고 했는데 여기에 한 가지를 포함시킨다면 바로 수컷의 수이다. ‘하드보일드 클래식’이란 기치를 걸고 나선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동물적인 복수를 향해 달리는 수컷, 수를 이해해야 한다. 영화가 2시간 동안 보여주려는 것은 바로 ‘상처 입은 짐승의 처절한 복수극’이다.

그를 키워낸 송인(조경환)의 말대로 ‘수’는 ‘누군가를 상처 주고 물어뜯고 죽음을 주는 존재’. 자신 때문에 대신 붙잡힌 쌍둥이 동생과 헤어져 19년 간을 살아온 태수는 짐승의 삶을 살아온다. 그 삶의 흔적은 그의 아지트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허름한 외부의 문을 통해 들어가면 외부와는 전혀 다른 내부공간. 차갑고 음울하며 장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공간 한 편에 놓여진 동생과의 사진 한 장이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죽은 동생의 애인 미나(강성연)가 끓여준 커피보다는 자학하듯 무미건조한 생수만을 고집하는 상처 입은 짐승이 태수이다.

그의 복수는 인간적인 판단이 배제되고 오로지 본능만 꿈틀거린다. 뻔히 죽을 걸 알면서도 뛰어드는 무모함. 그러니 액션 역시 물리고 물어뜯는 질척함이 묻어난다. 칼과 도끼로 찍히고 몽둥이로 맞아가면서도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태수의 복수에서 깔끔하고 통쾌한 해결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건 속시원한 복수극이 아니다. 그것은 피 튀기는 대결과 죽이지 않으면 죽는 비정한 현실 혹은 우리네 삶에 대한 이야기다.

핏물이 빗물처럼 쏟아져 나중에는 스크린에 묻어날 것 같고 죽을 듯 죽을 듯 살아 꿈틀대는 태수를 보면서 그게 마치 내 자신인 양 관객이 피곤을 느끼게 될 즈음, 태수의 복수극은 끝난다. 그리고 피칠갑을 한 몸이 떨어지는 물줄기 아래 누여지고 씻겨진다. 이 카타르시스의 장면조차 최양일 감독은 무미건조하게 처리해낸다. 커다란 대야에 가득 찬 물을 그저 화면에 담는 것이다.

‘수’는 대중적으로 지지받을 만한 영화는 아니다. 그것은 영화가 관객들을 동화시키기보다는 이화시켜 자꾸만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액션을 보러갔던 관객들은 태수에 동화되기 위한 어떤 장치(설정)를 기대했겠지만, 이 영화는 철저히 그 요구를 외면한다. 대신 영화는 이성을 배제하고 동물적 본능처럼 움직이는 태수의 몸짓으로만 흘러간다. 그 굵직한 고집은 그래서 기존 틀에 박힌 액션 복수극의 뒤통수를 때리는 구석이 있다. 이 어려운 영화를 정말 실감나게 해준 것은 지진희는 물론이고 문성근, 이기영 등의 몸서리쳐지는 연기를 보여준 연기자들의 몫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 태수와 태진이 쌍둥이라는 설정 정도는 좀더 영화의 뼈대로 만들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똑같이 생겼다’는 그 영화적 장치는 ‘자신(태진)이 죽는 장면을 자신(태수)이 목격하고’, ‘그 죽은 자신(태진)을 대신하며’, ‘그 죽은 자신(태진)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하는’ 의미로 활용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재일교포로 살아온 최양일이란 감독이 가진 두 개의 정체성, 즉 한국인으로서의 최양일과 일본에서 살아온 최양일을 보여주는 독특한 그만의 영화 스타일로 귀결시켰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수컷의 향기가 가득한 영화, ‘수’가 남긴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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