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완벽한 비서’의 이준혁이 자극하는 판타지

나의 완벽한 비서

‘살림’이나 ‘비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우리는 저도 모르게 여성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가부장적 시대를 거치며 오래도록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우리도 모르게 갖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성 역할 고정관념은 깨지고 있다. 드라마만 봐도 그렇다. ‘소년심판’ 같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 판사가 그렇고, ‘낭만닥터 김사부’에 등장하는 남성 간호사처럼 한때 판사하면 남성을 간호사 하면 여성을 떠올리던 고정관념을 깨는 인물들이 최근에는 일상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의 완벽한 비서’는 이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마다. 제목에 등장하는 ‘비서’는 다름 아닌 이준혁이 역할을 맡은 유은호라는 남성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유은호가 강지윤(한지민)이라는 피플즈라는 헤드헌터 회사 대표의 비서로 스카웃되는 이유가 흥미롭다. 그건 싱글대디로 딸을 홀로 키우며 너무나 깔끔하게 육아와 가사를 하고 있는 그가 눈에 띠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정리정돈되어 있는 집안 구석구석과 꼼꼼하게 그 날 해야할 일들이 적혀 붙여져 있는 스케줄표를 본 강지윤의 친구이자 피플즈의 이사인 서미애(이상희)가 유은호가 비서로서 적임자라 판단하는 것. ‘살림’이라는 집안일을 잘하는 그 능력이 ‘비서’라는 직장 내의 능력이 되는 판타지를 이 작품은 건드린다. 아마도 육아 때문에 경력단절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여성들이라면 유은호의 재취업(?)을 보며 어떤 통쾌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 인물이 일과 가정을 모두 쟁취하고픈 여성들에게 판타지를 주는 이유다. 

 

그런데 이준혁을 보면 일에 있어서도 또 살림에 있어서도 뭐든 척척 잘 해내는 유은호를 닮았다. 어떤 역할도 잘 살려내는 배우라는 점에서다. ‘나의 완벽한 비서’에서만 봐도 그렇다. 유은호는 회사에서 잘 나가는 능력있는 직장인이었지만 홀로지내며 마음에 빈 자리가 늘어가는 딸을 위해 육아휴직을 선택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가사일도 척척해내는 살림꾼이 된다. 능력있는 직장인과 살림 잘하는 살림꾼의 역할이 마치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해온 고정관념의 틀에서는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게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준혁은 자상함과 배려심이 일터의 능력으로도 발휘될 수 있다는 걸 이 두 역할을 하나로 묶어냄으로써 보여준다. 게다가 이 인물은 이제 강지윤이라는 회사 대표와의 사적 멜로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회사에서 대표와 비서라는 위계 관계로 구분되지만, 그걸 뛰어넘는 사적 관계 또한 그려낼 거라는 것이다. ‘나의 완벽한 비서’에서 그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것처럼 이준혁이라는 배우는 어떤 위치에 어떤 역할로 던져 놓아도 마치 그것이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인 것처럼 연기해내는 인물이다. 이른바 ‘연기 살림꾼’이라고나 할까. 

 

이준혁의 이러한 다재다능한 면이 도드라졌던 작품은 다름 아닌 ‘비밀의 숲’이었다. 여기서 그가 맡은 서동재라는 검사는 돈 밝히는 ‘스폰 검사’로서 사실상 악역이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욕망에 이끌리며 왔다 갔다 하는 이 서동재라는 인물에 점점 애정을 갖게 됐다. 선과 악으로 단순히 나뉠 수 없는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처럼 악역조차 애정을 갖게 만든 것이 가능해진 건 역시 이 복합적인 인물을 설득력 있게 연기해낸 이준혁의 공이 컸다. 그래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서동재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스핀오프 ‘좋거나 나쁜 동재’라는 작품이 제작된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인물은 선과 악을 오가는 매력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리지만,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그 모습 또한 끝까지 유지해 나간다. 어찌 쉬운 역할이라 할 수 있을까. 

 

이준혁의 다재다능함과 선과 악을 넘나드는 입체적인 이미지는 그가 걸어온 필모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를 본격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알린 건 가족드라마를 통해서였다. 문영남 작가의 ‘조강지처클럽’에서 한선수 역할을 연기했고, 또 ‘수상한 삼형제’에서는 김이상이라는 인물을 연기했다. 두 작품 모두 당대의 드라마 트렌드였던 가족드라마였다. 하지만 이준혁은 이러한 가족드라마 속 평범한 인물 연기에 머무르지 않고 ‘적도의 남자’의 이장일 같은 강렬한 악역에 도전하기도 했다. 또 ‘맨몸의 소방관’ 같은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인물을 연기하기도 했고, ‘60일, 지정생존자’ 같은 작품에서는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위치에 서 있는 인물을 특유의 선악을 넘나드는 이미지로 소화해내기도 했다. 가족드라마 같은 생활연기로 시작했지만 ‘비밀의 숲’을 넘어 ‘비질란테’, ‘다크홀’ 같은 장르물의 다소 판타지를 자극하는 연기까지 자신의 영역을 넓혀왔다. 또 ‘범죄도시3’에서는 메인 빌런인 주성철 역할을 맡아 20킬로에 가까운 벌크업으로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그려낸 바 있다.  

 

대중들은 이준혁을 진중함과 비열함 그리고 다정함을 오가는 배우라고 일컫는다.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는 특유의 그 진중함이 묻어나지만, 때론 경박하게까지 보이는 수다쟁이가 되기도 하고 때론 그 표정 뒤에 숨겨진 모습으로 비열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눈빛을 부드럽게 만들면 금세 한없이 다정한 연인의 얼굴로 변신한다. ‘나의 완벽한 비서’는 바로 그 다정함을 무기로 보는 이들을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그의 얼굴을 드러낸다. 

 

‘살림’은 본래 불교용어에서 나온 말이지만 ‘집안의 경제나 생활 등을 맡아 운영, 관리하는 일’이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살린다’는 의미 또한 부가되어 있다. 사실 우리의 일상은 내버려두면 망가지거나 어지럽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너무 일상적이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의 살림이야말로 우리의 일상을 살리는 일이 된다. 이건 연기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주 슬쩍 지나가는 역할이라도 이를 살려내기 위한 노력들이 뭉쳐질 때, 연기의 하모니가 힘을 발휘하고 이건 작품의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살림’은 이제 고정된 성 역할의 의미에서 벗어나 누구나 추구해야할 가치가 아닐까 싶다. 어떤 역할이든 살려내는 연기 살림꾼 이준혁처럼. (글:국방일보,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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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빛나는 별은 없죠.

종영한 '선재 업고 튀어'에서 김헤윤의 연기는

상대를 빛나게 해줌으로써 자신도 빛나는 연기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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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흘러가는 곳, 천변을 걸으며

 

다리 밑에 서니 다리 위가 보였다. 그 위에서 사람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걸어간다. 출근 시간이라 대부분이 정장차림이다. 다리 밑에도 사람들이 천변을 따라 걸어간다. 그들은 다리 밑을 가로질러 천을 따라 오르거나 혹은 내려간다. 다리 위를 지나면 전철역이 나온다. 아침이면 사람들은 거기서 전철을 타고 서울로 출근한다. 다리 밑을 지나 천을 따라 오르면 저 앞에 북한산이 보인다. 사람들은 그 천변을 따라 구불구불 나 있는 산책로를 뛰거나 걷는다.

 

딱 구분되는 건 아니지만 다리 위를 지나는 사람보다 다리 밑을 가로질러 가는 사람들의 나이가 많은 편이다. 아마 그들도 조금 젊어서는 그 다리 위를 매일 같이 지나갔을 게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어느 날 '어 몸이 좀 예전 같지 않네' 하며 다리 밑으로 운동을 하러 나왔을 게다. 내가 그렇다. 출퇴근하는 일이 아니라 저들처럼 자주 다리 위를 지나다니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다리 밑을 매일 같이 걷고 뛰는 사람들의 대열에 들어갈 줄은 몰랐다. 다리 위를 지나갈 때 내려다보며 '참 한가롭다'라고 여기곤 했으니까. 

창릉천

하지만 다리 밑을 걷게 되면서 그곳으로 오게 된 사람들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매일 같이 천변에 마련된 운동기구에 올라 열심히 손발을 놀려보는 어르신 부부가 있었고, 그 부부가 운동할 때면 어김없이 혼자 나타나 반갑게 손을 흔드는 할머니가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아저씨는 매일 같이 반바지 차림으로 천변 산책로를 달렸고, 함께 거의 걷는 속도로 나란히 달려가곤 하는 부부들도 있었다. 걷기보다는 수다에 여념이 없는 할머니들이 있었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애써 걷는 어르신도 있었다. 간간이 그 길을 이용해 아빠 손 잡고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들이나, 아마도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들 등교시키고 이제는 댕댕이 산책시키러 나온 엄마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어떻게든 운동을 하려는 나이 든 분들이었다. 

 

그곳에서 하는 운동은 공짜다. 헬스클럽을 찾아가면 매달 적잖은 돈을 지불해야 하지만 이 천변의 운동기구들은 누구든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물론 뛰거나 걷는 것도 마찬가지다. 간혹 저녁에 걷다 보면 2,30대의 젊은 친구들이 저마다 뽐내듯 예쁘고 멋진 운동복을 차려입고 모여 단체로 뛰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는데, 요즘은 그렇게 온라인으로 모여 운동을 하는 게 하나의 유행이 된 모양이었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고 싶지만 일단 몸이 그들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걸을 뿐이다. 하여간 아파트 옆으로 창릉천이 흐르고 그 천변을 따라 운동을 할 수 있는 나는 행운아다. 북한산뷰의 운동시설을 공짜로 이용하는 셈이니 말이다. 

창릉천

소설가 김훈은 '밥벌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며 글로 먹고 살아온 삶을 이야기했지만, 그런 고상한 표현에 이를 만큼 좋은 글들을 써오지 못한 내게는 '밥벌이'보다 '돈벌이'가 더 어울린다. 밥벌이란 '먹고 산다'는 그 생활과 행위에 더 맞닿은 표현이고, 김훈처럼 자기 세계의 일가를 이룬 소설가라면 밥벌이 이외의 예술이 그의 본업이라 말할 수 있을 게다. 지나치게 겸손해 그 예술적인 경지의 작품들도 밥벌이라 표현하는지 몰라도, 그다지 예술적이지 못한 일을 해온 내가 보기에는 어쩔 수 없이 밥벌이를 위해 쓰는 글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예술을 위한 글도 있다는 말로 들린다. 그래서 난 얄팍한 재주로 돈벌이를 해온 느낌이다. 

 

어쩌다 글을 쓰는 일로 25년 가까이 먹고살다 보니 몸이 많이 망가졌다. 서른 살에 첫 직장으로 진로 홍보팀에서 일할 때도 주로 글을 썼다. 사보를 만들고 때론 회장의 연설문을 손보곤 했다. 그때 중년의 팀장님은 내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씀하시곤 했다. "글로 벌어먹고 사는 건 빌어먹고 사는 거야. 글은 글러먹었어." 나 보도 꽤 오래도록 글을 써서 돈벌이를 해온 팀장의 그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들어간 지 1년 만에 회사가 화의신청에 들어가고 IMF가 터져 어려운 경제상황에 공공근로를 따내서 했던 일도 영화 시나리오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거였다. 그리고 그 후로 잡지사 편집장을 몇 년 했고, 프리랜서가 되어 대중문화 관련 글을 쓰다가 '평론가'라는 얼토당토않은 명함을 갖게 됐다. 아이들이 커가고, 들어갈 돈도 점점 커지면서,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드라마, 영화, 방송, 음악, 게임, 연극 등등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글을 썼고 포털은 물론이고 갖가지 사보, 잡지, 신문에도 정기적으로 글을 썼다. 글값이 워낙 싸서 그건 마치 몸 쓰는 노동자에 가까웠다. 일당 벌듯이 하루에도 적게는 3편, 많게는 5편씩 글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 손끝에서 팔꿈치를 타고 어깨와 목이 찌릿찌릿해지더니 돌덩이처럼 딱딱해졌다. 매일 하루 종일 앉아서 글을 쓰다 보니 엉덩이도 아파오기 시작했고 다리 힘은 점점 빠졌다. 아 이러다 큰일 나겠네. 나는 다리 밑 천변을 걷기 시작했다. 

창릉천

다리 밑에 서니 다리 위가 보였고, 또 다리 밑도 다시 보였다. 다리 위를 매일 같이 지나가던 이들도 언젠가는 다리 밑으로 올 것이고, 어느 날 다리 밑을 걷다가 문득 다리 위가 보일 것이다. 돈벌이 혹은 밥벌이는 누구에게나 숭고한 일이다. 그래서 그걸 위해 제 몸 하나 망가지는 걸 마다하지 않고 다리 위를 무단히 지나가는 이들이 어느 순간 다리 밑을 다니게 되는 건 어딘지 뭉클한 느낌을 준다. 

 

나는 이제 다리 밑을 걷는다. 돈 들이지 않고 마음껏 운동하며 망가진 몸을 추스를 수 있다는 사실을 행운이라 생각하며.

2024.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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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바보상자에서 똑똑한 TV까지

상자 속의 바보상자, 그저 물건의 하나였던 TV

엉뚱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TV에 대한 가장 강렬한 첫 기억으로 무엇이 떠오르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물쇠'라고 말할 것이다. 70년대 내가 아이였을 때, 큰맘 먹고 아버지가 모셔온(?) TV는 방 한가운데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도무지 접근 불가의 물건이었다.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양 가구 속에 꼭꼭 숨겨져 있는 TV라니! 지금으로서는 아마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당시 그 TV는 가구와 일체형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TV를 보려면 먼저 가구에 달린 커다란 자물쇠를 풀고 문을 양옆으로 연 후에야 비로소 그 속에 놓인 TV를 볼 수 있었다. 이른바 'TV는 바보상자'라는 말이 공공연했던 시절, 교육열이 유난히도 뜨거웠던 당시 어른들은 아이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바보상자에 상자를 또 하나 덧씌웠던 것이다. 지금은 우스워 보이는 이 풍경은 그러나 당시엔 당연해 보이는 어떤 것이었다.

 

흑백 TV의 화질은 마치 심한 스크래치를 입은 것처럼 조악했고, 그것마저도 TV 안테나의 상태에 좌우되었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거나, 비라도 올라치면 화면은 끊임없이 눈꺼풀을 깜박거렸고, 때론 일그러진 얼굴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면 아버지가 옥상 지붕에 올라가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이제 잘 나오니!"하고 묻는 모습이 연출되곤 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도 결국은 아버지가 그 자물쇠를 풀어주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내밀한 공간 속에 들어있어서였을까. TV는 어린 내게 어떤 신비한 물건으로 보였던 것 같다. 마치 보물창고 속에 숨겨진 만화경 같은.

 

이때의 TV는 아직까지는 우리의 생활과는 유리된 어떤 물건이었다. 그것은 늘 저편에 있었고,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늘 우리의 손길이 일일이 닿아야 하는 구체적인 물건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드드득 소리를 내는 다이얼을 손으로 잡고 돌려야 화면이 바뀌었고, 채널 중간을 차지하는 모래알 같은 지직대는 영상은 TV 저편 세계의 이물감을 확실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세계였다. "거 신기하네. 요 조그만 상자에 난쟁이들이 저렇게 많이 있다니." 할머니의 말은 아직 TV가 인간의 시각의 확장이라는(텔레비전 Tele-vision은 멀리 있는 것을 가까운 곳으로 끌어들여 본다는 '원격현전'의 의미가 담긴 용어였다) 인식이 생겨나기 전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그러니까 어른들은 당시 TV가 지금처럼 스마트폰 속으로 쏙 들어와 우리 생활의 일부, 아니 몸의 일부(감각을 확장시켰다는 의미에서)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때 TV는 그저 우리 몸의 감각과는 유리된 재미난 바보상자일 뿐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바보로 만들지 않으려면 서랍장 속에 숨겨야 할 어떤 존재일 뿐이었다.

흑백TV 시청하는 가족(출처:국가기록원)

새로운 감각에 눈뜨다, TV가 해방시킨 감각

하지만 못 보게 한다고 안 볼 우리들(나뿐만 아니라 동네 아이들 전부가 그랬으니)이 아니었다. 저녁 시간마다 TV를 볼 수 있는 친구 집으로 달려간 우리들은 탁 소리와 함께 브라운관의 작은 점이 한참이 지나야 영상으로 바뀌는 그 시간을 못 기다려 발을 종종 대곤 했다. 그렇게 켜진 TV 화면 속에 등장한 '황금박쥐'나 '요괴인간', '달려라 번개호' 같은 일본에서 들어온 만화들은 지금과 비교해 보면 꽤 조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TV 앞으로 끌어들였다. 결국 집 서랍장 속에 고이 모셔둔 TV 때문에 밖을 전전하는 내게 백기를 든 아버지는 저녁 한 시간 동안 감금된 TV를 해방시켜 주셨다.

 

그 순간,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저 바깥세상과 유리된 채 살아가던 우리들의 눈과 귀도 해방되었다. 그것은 바보상자이기는커녕 온갖 진기한 세상 일들을 바로 눈앞에 가져다주는 놀라운 알라딘의 마술램프였다. 프로레슬러 김 일 선수가 일본선수에게 연실 박치기를 해댈 때마다 온 마을이 들썩거렸고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 선수가 메달을 땄을 때는 집집마다 동시에 터져 나온 그 환호성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바보 영구를 흉내 내던 우리들을 조용하라고 하시며 슬그머니 눈가를 훔치게 만들었던 드라마 '여로', 그리고 '짜자자잔짜잔 -'하는 특유의 시그널송이 울리면 당연히 그 앞에 앉아 봐야만 했던 '수사반장'에 대한 국민적인 열광은 이 작은 TV의 위력을 어린 나이에도 실감하게 만들었다.

 

서랍장 속에서 TV가 밖으로 나오고, 그 TV를 자주 접하면서 우리 몸은 TV가 전해주는 매개된 감각에 점점 익숙해졌다. TV가 제공하는 시각과 청각에의 몰입은 여러 다른 감각들을 매개하기 시작했고, 때론 현실적인 감각을 지워버리기도 했다. 어떤 사건에 공분하고 어떤 국가적인 쾌거(주로 스포츠에 이런 표현들이 많았다)는 TV를 통해 지금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집단적인 도취감을 맛보게 했다. 개발시대의 한복판, 애국, 민족, 국가라는 단어는 TV가 애용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단지 머릿속에만 빙빙 도는 그런 단어가 아니라 TV를 통해 우리네 감각과 인식까지도 바꿔놓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반공이 국시가 되면서 TV는 여전히 흑백이었지만 '배달의 기수'에 등장하는 이른바 빨갱이라 이름 붙여진 자들을 빨간색으로 만들었다. 우리의 감각은 TV에 상당 부분 포섭되어 있었다.

컬러 TV와 리모컨, 안방극장 시대

80년대 서울로 전학 왔을 때, 나는 그 서울이 주는 속도감을 좀체 적응할 수가 없었다. 차만 타면 멀미를 하던 나는 늘 비닐봉지를 준비해 갖고 다녔고, 차들이 쌩쌩 달리고 인파가 물결처럼 파도치는 거리를 다닐 때면, 땅바닥만 쳐다보고 다니기 일쑤였다. 그 속도감의 어지러움은 아마도 처음 내가 TV를 보았을 때 느꼈던 피로감과 비슷한 어떤 것이었다. 여러 개의 프레임들에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영상의 속도감은, 도시에서는 이미 생활이었다. 그것도 총천연색의 생활.

 

80년대 컬러 TV시대가 열리자 그때까지 TV 속으로 무채색으로만 존재하던 세상은 색을 입기 시작했다. TV를 처음 대했을 때부터 줄곧 가지고 있던 그 신비감이 깨져버린 것은 아마도 그때였을 것이다. 명암 속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흑백 TV만의 독특한 아우라는 컬러영상 속에서 적나라한 속살을 드러냄으로써 조금씩 휘발되었다. 컬러시대와 함께 광고들은 더 현란해졌고, 영상은 점점 대중화되었다. 우리의 눈은 점점 피곤해졌지만, 그것은 또한 속도의 시대로 진입하는 우리의 몸을 훈련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더 이상 멀미로 울렁증을 앓는 시골소년이 더 이상 아니었다.

 

때마침 등장한 리모컨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광고들로부터의 탈출을 가능하게 했다. 프로그램 전에 방영되던 수십 개에 달하는 광고를 피하기 위해 더 이상 TV 앞으로 가서 드륵드륵 채널을 돌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리모컨의 등장과 함께 TV와의 직접적인 접촉은 그만큼 줄어들었고, 그것은 TV라는 물건에 대한 인식보다는 그 물건 속의 영상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TV는 꺼져있을 때는 마치 투명인간처럼 거기 존재하지 않는 물건처럼 있다가, 비로소 켜짐으로써 존재하는 (물건이 아닌) 그런 영상이 되어갔다. 컬러 영상은 TV의 영상으로서의 존재감을 더 생생하게 만들어주었다.

6백만불의 사나이

그저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채널을 바꿔주는 리모컨은 멀찌감치 놓인 소파와 한 세트를 이루면서, TV 시청을 새로운 여가문화의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육백만 불의 사나이'나 '소머즈'에서부터 '게리슨 유격대', '맥가이버'에 이르는 미국드라마 시리즈를 보는 것은 그 한참 후에 벌어졌던 미드 열풍처럼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고, 영화는 꼭 영화관에 가거나 비디오를 빌려야 볼 수 있었던 당대에 '주말의 명화'는 안방극장이란 말을 탄생케 했다.가족들은 이제 대부분의 여가생활을 집에서 TV를 통해 하기 시작했다. 리모컨을 누가 쥐는가는 그 가족의 헤게모니를 누가 잡고 있느냐를 대변했고, 그것에 따라 가족들은 멜로드라마를 보며 울거나, 스포츠를 보며 열광하거나, 오락프로그램을 보며 웃곤 했다. 오랜 시간 가족의 중심에 서있던 TV는 이제 더 이상 타인이 아니었고, 심지어 핵가족화되고 개인화된 공간으로 사라진 가족을 대리해 주는 존재가 되었다. 이른바 '또 하나의 가족'이 된 것이다.

 

디지털과의 결합, 똑똑하고 움직이는 TV의 시대

80년대 후반부터 점점 보급되면서 거의 1년 주기로 업그레이드된 컴퓨터는 디지털 시대를 예고하면서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컴퓨터 모니터는 점점 TV를 향해 진화했고 결국 이 두 지점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IPTV가 등장했다. TV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 즉 TV 하면 입을 반쯤 벌리고 머리는 텅 비운 채 수동적으로 앉아서 거기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영상을 보고 있는 바보를 떠올리는, 그런 생각은 수정되어야 했다. 이제 자신이 보고 싶은 영상을 스스로 선택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기본적으로 몰입하게 하기 위해 투명한 창처럼 구성되던 화면은 이제 선택해야 할 아이콘들이 둥둥 떠다니는 마치 모니터 창과 같은 불투명한 창으로 바뀌었다. 이 '정신분산'의 메커니즘이 그래픽으로 구현된 창에서는 TV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뉴스를 확인할 수 있었고, 보다가 무언가 해야 할 다른 일이 생기면 화면을 멈춰놓을 수도 있었다. 물론 지나간 장면을 되돌려보면서 좀 더 분석적으로 TV를 바라볼 수도 있었다. 이 시대에 TV 방송이 드디어 비평의 대상이 된 데는 그 막강한 영향력에 대한 어떤 균형이 요구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디지털과의 결합에서 비롯된 바가 더 크다. 분석적인 시선들은 또다시 인터넷을 통해 나누어지고 그 힘이 여론으로 모아져 TV가 독주하는 것을 견제했다. 디지털 시대의 TV란 이제 늘 대상으로서 시청자를 세워놓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시청자의 참여를 통해 집중되는 존재로 변모했다. 이른바 똑똑한 TV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태블릿PC로 OTT 즐기기

그리고 드디어 로컬과 글로벌의 경계를 지워버린 OTT라는 TV의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전 세계가 동시에 콘텐츠를 바라보는 지구촌 개념이 실현되는 이 공간은 우리에게 '글로벌 감각'을 훈련시킨다. 북미와 남미, 유럽,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콘텐츠들이 이 공간에는 한 자리에 위계 없이 채워져 있다. 물론 그 화면에도 우선순위는 존재하지만 그건 국가나 언어, 민족 같은 아날로그 시대의 구분에 따른 순위가 아니라, 그 콘텐츠를 소비하는 수용자의 취향에 따른 순위다. 언제든 국적 불문 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내 앞으로 끌어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는 이 공간을 통해 우리는 지난 20세기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21세기 개인적 취향의 시대를 감각적으로 벼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이러한 문화의 공유지대는 아직은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전 세계의 정세들을 바꿔놓을 만큼의 물리적 힘을 갖지 못하고 있지만, 이 문화 공유의 경험들이 축적되면 언젠가 저 바깥세상의 풍경들도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을 갖지 않을까.

 

동네에 한 대 있는 TV를 보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그 어린 시절과 비교해 보면 지금은 실로 수없이 많은 TV들(화면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다. 거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벽걸이 TV와 작업을 하다가도 TV로 변신하는(?) 모니터, 언제 어디든 들고 다니며 간편하게 TV가 되는 태블릿 PC,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언제든 꺼내 TV를 볼 수 있는 스마트폰까지, 이제 생활한다는 것은 바로 이 영상과 마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이 똑똑한 TV의 시대에 이제 바보상자는 저 과거의 서랍 속에 넣고 자물쇠를 채워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영상을 선택하고 읽어내고 의미를 분석하는 일은 앞으로 생활이 될 테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TV의 진화는 좀 더 그것을 효과적으로 해줄 것이 분명하다. 그 진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TV의 눈을 우리의 눈으로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어린 시절 채워진 자물쇠를 풀어 갇혀있던 TV와 눈을 해방시켰던 그 행위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 TV를 좀 더 스마트하게 보고 그 의미를 읽어내고 그 안에 담긴 모종의 의도들을 찾아내는 눈이 필요해졌다.

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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