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독’, 서현진 통해 끄집어낸 경쟁 사회의 민낯과 그 대안

 

“내가 그동안 도대체 뭘 놓치고 있었던 걸까.” 명문대에 합격한 아이에 환호하고 대학 간 아이들에만 관심을 쏟았던 자신을 뒤늦게 발견한 고하늘(서현진)은 자괴감에 빠져버렸다. 그 반에서 그토록 환하게 웃던 많은 아이들이 있었지만 이른바 상위그룹 아이들이 잘 되는 것에 취해 그렇지 못한 아이들을 자신도 모르게 소외시키고 있었던 것. 책상 위에 붙여 놓은 사진들도 다시 들여다보니 빠져있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tvN 월화드라마 <블랙독>에서 고하늘이 이처럼 각성하게 된 건 황보통(정택현)이라는 아이 때문이었다. 불우한 환경 때문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황보통은 당장 먹고 살 일이 더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 담임인 고하늘은 학교가 재촉하는 대로 문과인지 이과인지를 묻고 있었다. 고하늘은 뒤늦게 깨달았다. 그 전에 대학은 갈 것인지, 하고 싶은 건 뭔지를 먼저 물어봤어야 했다는 것을. 고하늘은 그렇게 소외되고 차별받던 황보통이 자퇴서를 내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놓치고 있던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기간제로 들어와 1년 차에 어떻게든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성적 상위에 있는 아이들만 모은 특별반 이카로스를 맡았던 고하늘이었다. 그래서 특별반에서 대치고등학교 처음으로 한국대 의대에 아이를 합격시켰고 상위그룹 아이들의 명문대 대학 진학률도 높였다. 고하늘은 그 아이들을 ‘내 새끼’라며 한없이 예뻐했지만 그런 빛에는 더 크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있었다.

 

이카로스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이 소외되고 차별받고 있었던 것. 그 아이들은 이카로스 모집 공고안을 계속 찢어버렸고 특별반을 위한 독서실에 들어가 우유통을 던져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황보통은 억울하게 그런 짓을 한 아이로 오해를 받았고, 결국 붙잡힌 아이들은 차별받는 자신들의 처지를 토로했다. “차별하잖아요. 진짜 너무하잖아요. 우리 존재가 없다고 신경도 안 써주고 이카로스는 다 퍼주면서 거기 못 들어간 우리 같은 애들은 쳐다도 안보시잖아요.”

 

그 토로에 선생님들도 공감하는 눈치였다. 이카로스에 들어가게 된 아이들이 선생님들을 찾아와 자신들이 원하는 과목과 선생님을 선택하게 해달라고 했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평가받게 된 선생님들도 그들과 똑같은 차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인기 있는 선생님에만 아이들이 몰리고 그렇지 못한 선생님들은 외면 받고 있었던 것이다.

 

<블랙독>이 끄집어낸 건 입시경쟁은 물론이고 사회에 나와서도 여전히 겪게 되는 경쟁과 그로 인해 경험하는 소외와 차별의 문제였다. 잘 하는 애들은 더 많은 지원이 가지만 못 하는 애들은 외면 받는 현실.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갖고 못 가진 이들은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사회의 구조가 학교든 일터든 마찬가지로 벌어지고 있었다.

 

고하늘은 박성순(라미란) 선생님과 함께 이카로스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방과후 수업을 마련하기로 한다. 물론 이런 일들은 현실에서는 벌어지기 어려운 일이지만, <블랙독>의 이 이야기는 그 현실을 꼬집는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무한경쟁 속에 내둘려진 학생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고스란히 우리네 사회가 가진 시스템 전체의 문제로 그려진다.

 

<블랙독>이 학교를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독특한 건 지금껏 잘 다루지 않았던 교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지만, 그것보다 더 주목할 건 학생들과 교사들을 똑같은 처지를 겪는 존재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학생들도 우열반이 나뉘어져 차별받고 있지만, 교사도 정교사와 기간제로 나뉘어 차별받는다는 것.

 

경쟁 구조는 그래서 기간제가 정교사가 되기 위해 학생들 또한 차별하는 그 시스템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하지만, 그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이 겪는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생들을 희생시키는 구조. 이것이 경쟁사회가 가진 냉혹한 차별과 배제이고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하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내가 차별받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차별해야 한다니.

 

<블랙독>은 그래서 판타지로나마 그 해결점으로써 차별받는 기간제 교사 고하늘이 똑같이 차별받고 있는 보통의 아이들을 위해 나서는 ‘연대적’ 대안을 내놓는다. 학교의 이야기가 우리네 사회의 이야기로 확장되고, 그 엇나간 경쟁 시스템에 맞서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가를 깨닫고 연대해야 한다는 걸 이 드라마는 은연 중에 그려내고 있다.(사진:tvN)

‘검사내전’, 일선 검사들의 노력에도 여전히 부조리한 검찰이라는 건

 

윗선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건 일선 검사들이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하면 정의가 살아날까. JTBC 월화드라마 <검사내전>에서 오래도록 자기 일에 충실해왔던 김인주(정재성) 진양지청장이 검사장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쓸쓸히 물러나는 대목은 한 마디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김인주가 시쳇말로 ‘물을 먹은’ 건 진양시 국회의원 아들이 저지른 사건을 무마하라는 검사장의 청탁을 받아들이지 않고 끝내 그 범법자를 검거했기 때문이다.

 

결국 김인주에게 은근히 전주지청 자리를 이야기했던 검사장은 그를 천거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 자신보다도 한참 밑엣 기수인 인물이 오른다. 그는 퇴직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검사직을 포기하고 로펌에 들어갈 궁리를 한다.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진양지청 사람들은 김인주 퇴임식에 맞춰 마음을 담은 영상을 만들어 틀어준다. 하지만 김인주는 퇴직하지 않고 수원지청으로 출근할 거라고 선언한다. 후배 밑에서 지내야 하지만 그래도 감수하겠다는 것. 그 이유는 아직 자신이 제대로 된 검사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윗선에서 청탁이 들어와도 그걸 어기고 권력에 기대려는 범법자를 검거해내는 에피소드가 담으려한 메시지는 검찰의 진짜 힘이 바로 이런 일선에서 불이익을 감내하면서도 소신을 지키는 검사들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또 퇴직할 거라 여겼던 김인주 지청장이 검사로 남겠다 선언하는 것도 그 메시지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자신 같은 사람들이 끝까지 버티고 있어야 그나마 정의는 살아날 수 있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 이야기는 과연 현실적일까 싶은 면이 많다. 그런 식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검찰의 시스템 문제를 해결해주긴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검찰 시스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아무리 낮은 곳에서 열심히 해도 그 결과가 나타나기 어렵다. 드라마에서조차 그렇게 김인주에게 청탁했던 검사장이나, 시키는 대로 말 잘 들었던 이들이 제 자리를 보전하고 영전하는 권력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만일 제대로 된 검찰 시스템이라면 김인주와 진양지청이 청탁까지 내려온 그 사건을 해결할 때 검찰 내부의 사정 또한 이뤄졌어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 김인주가 더 낮은 자리로 물러나게 되지 않았나. 그는 자신이 자리에 연연해 청탁을 받지 않게 한 차명주(정려원)에게 “명예”를 지켜줘 특히 감사하다 말하지만, 소신 있게 일하는 것으로 자신들조차 지키지 못하는 검사들을 국민들이 신뢰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검사내전>은 지금껏 검사를 다루던 여타의 콘텐츠들과 달리 지극히 일상적인 검사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검사도 사람’이라는 걸 짚어낸 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중요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한 사람으로서의 검사들이 열심히 일한 죄로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는 데 박수를 치면서도 씁쓸함이 남는 건, 그런 묵묵한 노력만으로 제대로 정의가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검사내전>은 이런 검찰의 부조리를 뒤틀어 비판하고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블랙코미디일까. 그런 면이 없잖아 있다. 깔깔 웃으면서도 남는 페이소스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이 작품의 원작을 쓴 김웅 검사가 갑자기 현실에 등장해 검찰 개혁에 대해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한 말은 이 드라마를 블랙코미디로 보기 어렵게 만드는 면이 있다. 물론 드라마적 변용이 있어 김웅 검사의 이야기와는 논조가 다를 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의구심은 남는다. 과연 시스템의 개혁 없이 일선 검사들의 노력만으로 정의는 살아날 수 있을까.(사진:JTBC)

‘낭만닥터 김사부2’, 한석규가 왜곡된 세상에 맞서는 방식

 

‘왜곡의 시대. 정당한 신념조차 색깔 프레임에 가두고 보편적 가치조차 이해타산에 맞춰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이상한 세상. 권력을 권리라 착각하고 이권을 정의라 주장하는 사람들.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뒤로한 채 상대를 뭉개버려야 나의 옳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 그런 사람들의 세상이 되었으니...’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에서 서우진(안효섭)의 목소리로 전하는 메시지는 이 드라마가 돌담병원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의학드라마 그 이상을 담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여운영(김홍파) 원장을 밀어내고 새로 돌담병원 원장으로 부임한 박민국(김주헌)은 도윤완(최진호) 이사장에게 어떻게 김사부(한석규)를 몰아낼 것인가에 대해 “진실을 보여주겠다”는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진실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현실일 뿐이다. 김사부의 신념이 “얼마나 독선적이고 위험한 헛짓인지 그 사람이 옳다고 믿는 그 가치가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비경제적인지” 보여주겠다는 것.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진실은 언제나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내가 맞고 그 사람이 틀리다는 걸 꼭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박민국이 도윤완에게 하는 그 말들은 서우진의 메시지와 교차되며 이제 이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를 다룰 것인가를 예고한다. 그건 일종의 화두인 셈이다. 사실을 왜곡하고 권력으로 상대방을 찍어 눌러 이권만을 추구하는 세상에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화두. 이 화두에 맞춰 등장한 사건은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당하던 다문화가정의 아내가 견디다 못해 커터칼을 남편에게 휘두르고 그걸 막기 위해 나섰다가 오히려 목에 상처를 입은 차은재(이성경)의 에피소드다.

 

그 남편이 아내에 대해 상습적인 폭력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없는 가운데 CCTV 영상에 포착된 차은재가 그 남편을 닦달하는 영상은 병원을 곤경에 빠뜨린다. 박민국은 경찰을 불러 조사하기보다는 차은재에게 사과하고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라고 전한다. 물론 그건 그가 이 사건을 통해 차은재를 쫓아내려는 간계가 숨어있다. 차은재는 김사부에게 병원 사람 모두가 불편을 겪게 하느니 차라리 자신이 사과를 하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김사부는 일갈한다.

 

“그런 식으로 니 맘 편하자고 했던 수많은 선택들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그런 생각 그런 생각 안해봤어?” 차은재가 불편한 마음을 토로하자 “차라리 불편하고 말어”라고 김사부는 말한다. “불편하다고 무릎 꿇고 문제 생길까봐 숙여주고 치사해서 모른 척해주고 더러워서 져주고.. 야 이런 저런 핑계로 그 모든 게 쉬워지고 당연해지면 너는 결국 어떤 취급을 당해도 싼 그런 싸구려 인생 살게 되는 거야. 알아들어?”

 

결국 차은재는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왜곡에 무릎 꿇는다. 그 다문화 가정 부부를 찾아가 고개를 숙인다. 그런 차은재에게 남편은 “어디서 재수 없는 게 싸가지 없이...”라고 말하고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외면한다. 하지만 이런 차은재의 대처는 옳았을까. 과연 그건 모두를 편하게 만드는 자기희생이었을까. 결국 이런 왜곡을 받아들이는 미완적 대처는 더 큰 사건을 만들어낸다. 아내가 결국 참다못해 남편의 목을 그어버린 것.

 

‘난 그냥 잘 하고 싶었어 나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게 싫었고 나 혼자 자존심 굽혀서 해결될 수만 있다면 백번 그러는 게 맞다고 믿었어. 그렇게 조용히 덥고 넘기는 게 멋진 거라고 그게 쿨한 거라고... 그런데 내 기분은 왜 이런 거지? 분명히 잘했다고 칭찬을 듣고 있는데, 성숙한 사회 일원으로 인정도 받고 있는 것 같은데 근데... 왜 이렇게 계속 마음이 불편한 거지? 그제야 깨달았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그런 취급을 당해도 싼 인생이 돼버렸던 거다.’

 

차은재의 내레이션은 김사부의 일갈이 옳았다는 걸 말해준다. “불편하다고 무릎 꿇고 문제 생길까봐 숙여주고 치사해서 모른 척해주고 더러워서 져주고..” 하는 행동들이 바로 그 당사자를 그런 취급을 해도 되는 존재로 만들어버린다는 것. 결국 그런 불의와 왜곡에 굴복하지 않아야 진정한 문제 해결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낭만닥터 김사부2>는 이처럼 의학드라마를 빌어 우리네 사회의 문제들을 짚어낸다. 그래서 ‘닥터’ 앞에 ‘낭만’이 붙어 있는 것이고 부용주라는 이름대신 ‘김사부’로 불리는 것이다. 부정하고 왜곡이 만연한 낭만 없는 사회에서 닥터라는 직업을 통해 다소 낭만적이지만 그 이상을 추구하고 그러면서도 제대로 살아갈 길을 알려주는 진정한 사부라는 존재의 등장. <낭만닥터 김사부2>가 여타의 의학드라마와 확연히 차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사진:SBS)

질문은 무척 독했지만 법륜스님의 답은 의외로 쉬웠다는 건

 

“이 세상에 귀신이 있는 지 없는 지 궁금해요.” tvN 설특집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의 첫 질문자인 6살 아이의 질문은 엉뚱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법륜스님의 답변은 너무나 쉽고 명쾌했다.

 

“귀신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게 귀신이야. 왜냐하면 어두운 데 가면 귀신이 보이는 것 같아. 그런데 밝은 데 가면 없는 것 같아. 어릴 때는 있는 것 같아. 어른이 되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두려울 때는 있는 것 같은데 마음이 편안하면 없는 겉 같아.... 귀신 만나고 싶어요? 안 만나고 싶어요? 안 만나고 싶어요? 귀신을 안 만나려면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항상 마음을 밝게 가지면 귀신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어요. 내가 안 만나기 때문에.”

 

귀신이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만날 것인가 안 만날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 아이의 엉뚱한 질문이었지만 그 답변에는 우리네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었다. 무언가 두려운 어떤 것이 있을 때 우리가 무얼 들여다봐야 하는가가 그 답변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내 자신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성과주의로 살다 보니 지치고 우울증도 있었고 각성제와 수면제로 버티는 삶을 토로하는 한 질문자. 그는 운명적으로 정해진 일, 즉 소명이란 존재하는가라는 결코 쉽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법륜스님의 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소명이란 없다는 것.

 

“소명이란 없습니다. 자기가 만드는 거예요. 인생에서 어떻게 살아야 된다고 정해진 길은 없고 어떤 사명 소명이란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거죠.... 본래 주어진 의미는 없습니다. 자기가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에 따라 살아가는 것뿐이지.. 그것이 힘들면 그만 두면 되요. 원래는 없는 거니까. 근데 지쳤다는 건 거기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오히려 내려놓고 편안하게 지내보는 것이 좋아요. 욕심이 많은 것 같아요. 어떤 일을 했기 때문에 지친 게 아니라 지나치게 욕심을 내고 집착을 하기 때문에 자기가 피곤한 거지 외국인들과의 경쟁이나 미국이란 사회하고도 관계가 없어요.” 결국 나를 괴롭히는 건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법륜스님은 말하고 있었다.

 

백종원 씨가 내 남편이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질문에도 스님의 답변은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제가 볼 때는 쥐가 계속 쓰레기장만 뒤지면서 음식을 찾다가 어느 날 접시에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고구마가 딱 얹혀 있어. 햐 나한테도 이럴 때가 있구나 그 안에 뭐 들었을까. 예 쥐약입니다. 다 돌보시는 분들이 있어서 쥐약이 자기한테 안 나타나는 거고 나타나면 쥐약인 줄 알아요.”

 

남편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대화가 안된다는 이야기에도 법륜스님은 말이 대화지 “네가 바꿔라”라는 말이라고 했다. 그런데 안 바뀌니까 남편하고 말하기 싫어진 거라는 것. 스님은 “진정한 대화는 들어주는 것”이라며 관점을 바꿔보라 했다. 그리고 남편만한 남자 찾기 어렵다며 “가능하면 있는 거 다듬어서 쓰는 게 나아요”라고 유머를 담아 답했다.

 

딸이 가정을 버리다시피 하며 봉사를 많이 해 가슴이 아프고 사위 보기 민망하다는 어머니에게도 스님은 거침이 없었다.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 이미 독립된 가정을 이루고 있는 딸은 남이라고 선을 그었다. 자신은 가정에 충실했다며 딸이 왜 그러는지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어머니에게 스님은 “엄마는 가정에 충실하지 딸은 봉사에 충실한 것”이라며 다를 게 없다고 했다. 그리고 부부지간에 부인이 열심히 봉사하고 남편이 밥을 해준다고 잘못된 건 아니하고 했다. 그러면서 “내 딸인데 잘 살지 않겠냐” 하는 신뢰를 가지라고 했다.

 

공부를 하려 하는데 계속 핸드폰을 보게 되고 공부를 안하는 게 고민이라는 중학교 2학년된 학생에 대해 스님은 오히려 질문을 던짐으로써 스스로 깨닫게 해주었다. 뜬금없이 아침에 일어날 때 몇 시에 일어나느냐고 물어본 스님은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를 열 번 외치는 건” 잃어나기 싫다는 뜻이라고 했다. 몸이 말은 안듣는다는 학생의 말에 스님은 일어나기 싫어서 안 일어나는 거지 몸하고는 아무 관계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비유를 공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갔다. “자기는 누워서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하고 내 누워 있듯이 공부해야지 공부해야지 공부해야지 하고 안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공부하기 싫으면 안해도 괜찮고 대학을 안가도 괜찮다고 했다. 자신처럼. 하지만 대학을 가겠다면 마음을 내서 공부를 하라 했다.

 

알코올 중독 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있다는 심각한 질문도 던져졌다. 스님은 술 자체는 음식이어서 괜찮지만 술을 먹고 취기에 이르는 건 나쁜 건 아니어도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어리석은 일이 남에게 해를 끼치면 나쁜 일이 된다는 것. 질문자는 병이기 때문에 술을 먹으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독을 자꾸 먹는 습관이 있다면 먹고 죽던지 아니면 더 센 강한 자극을 줘서 자기를 보호하든지 그런 길 밖에 없어요.” 다소 센 답변이었지만 그런 결심이 아니라면 스스로의 인생을 괴롭게 살 수밖에 없을 터였다.

 

죽음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한 요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질문자는 죽음이 낯설다며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에 대한 자세”를 물었다. 하지만 스님은 “아름다운 죽음이란 없다”고 먼저 답을 던진 후 다만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만이 다를 뿐이라고 했다. 즉 늙는 과정을 삶으로 받아들이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고 늙는 걸 거부하거나 하면 자꾸 마음이 괴로워진다는 것. 스님은 봄에 꽃피고 가을에 낙엽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괴로워야 할 일이 있는 게 아니라 그걸 거스르면 괴로운 일이 생긴다”고 했다.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었다.

 

설 특집으로 마련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1회는 굉장히 독하고 때론 엉뚱한 질문이 나왔지만 의외로 스님의 답변은 너무나 간단하고 쉬웠다. 그건 무얼 말해주는 걸까. 어쩌면 우리가 삶에서 겪는 많은 이들이 자연스러운 것들이지만 우리 스스로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해서 많은 고민과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마음을 조금 내려놓거나 관점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도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일들에 우리가 너무 집착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스님의 ‘즉설’은 그 간단함만으로도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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