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보다 과정, ‘무도’와 ‘코빅’의 콜라보가 보여준 것

MBC 예능 <무한도전>은 말이 씨가 되는 프로그램. 뗏목 타고 한강 종주 미션을 하던 도중, 박명수에게 양세형이 “코빅 막내부터 다시 하셔야 되겠다”고 한 말이 씨가 되어, 박명수와 정준하는 tvN <코미디 빅리그> 콩트 도전을 하게 됐다. 하&수로 콤비를 맞춰온 두 사람이 새로운 콩트 코너를 짜서 무대에 올리는 것. 관객들의 투표가 50%를 넘으면 <코미디 빅리그>에서 방영하며, 만일 넘지 못하면 <무한도전>에서 방영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물론 과거 박명수는 데뷔시절 콩트 코미디를 했었고 정준하 역시 <노브레인 서바이버>를 통해 바보 캐릭터로 사랑받은 바 있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은 같은 콩트라도 상황이 다르다. 공개 코미디이기 때문에 관객과 호흡을 맞춰야 하고, 또 무엇보다 트렌드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두 사람이 올린 코너는 관객 투표 50%를 넘겨 <코미디 빅리그>에서 방영되게 됐다. 

<무한도전>이 <코미디 빅리그>와 콜라보를 하는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최근 개그맨들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개 코미디가 갈수록 힘이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KBS <개그콘서트>는 과거만큼 대중들의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고, SBS <웃찾사>는 아예 프로그램이 사라져버렸다. MBC는 과거 <개그야>를 통해 개그맨들이 설 자리가 있었지만 일찌감치 프로그램은 사라졌다. 그나마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공개 코미디가 <코미디 빅리그>다. 그 곳은 지상파 개그맨들이 다시 모여드는 공간이 되고 있다. 

결국 박명수가 ‘코빅 막내’가 된다는 그 한 마디로 시작된 도전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무한도전>의 개그맨들에 대한 배려가 그 안에는 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이들이 <코미디 빅리그>의 개그맨들이 모여 있는 사무실을 찾아가면서 슬쩍 사라진 MBC의 개그프로그램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는 대목은 <무한도전>이 이번 도전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의 정서를 읽어낼 수 있다. 

그래서 옛날 개그를 여전히 툭툭 던지는 박명수나 자신감이 별로 없어 잔뜩 긴장한 정준하가 현재의 콩트 트렌드 앞에서 당황해하는 모습은 <무한도전>의 웃음 포인트가 되었다. 개그맨 후배들이 그 곳에서는 고참이 되어 박명수와 정준하에게 한 마디씩 조언이나 지적을 하는 대목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 어려운 초보 시절로 그들을 되돌려 초심을 다시 찾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저 웃어넘기던 그 콩트 코미디를 만드는 과정이 만만찮다는 걸 박명수와 정준하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었다.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더하는 그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은 <무한도전>을 통해 집중 조명되었다.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드러내준 것.

그런데 그런 기획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과정 속에서는 콩트 코미디가 왜 어려워졌는가가 부지불식간에 드러나는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박명수가 콩트를 할 때는 하나도 웃기지 않다가 콩트 바깥으로 나와 후배 개그맨들과 대화하며 툭탁대는 그 애드립성의 실제 이야기에서는 빵빵 터졌다는 점이다. 즉 박명수는 콩트 코미디의 어려움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지금의 리얼리티 예능의 코드와는 사뭇 다르다는 걸 그 과정에서 보여줬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짜서 하는 콩트 코미디의 시대가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는 건 현실이다. 그것은 시청자들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의도적이고 기획적인 웃음보다 우리는 어쩌면 더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을 원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박명수가 왜 콩트를 하면 냉랭했던 반응들이 콩트 바깥으로 나오면 빵빵 터졌는지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물론 콜라보의 의미는 콩트 코미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콩트 그 자체보다는 그 과정을 담은 리얼리티 카메라가 더 흥미로웠다고 보인다. 

이것은 그래서 10여 년 간 지속되어온 콩트 코미디 역시 어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걸 보여준다. 무대만이 아니라 좀 더 일상 속으로 들어와 그 과정까지 리얼하게 보여주는 ‘리얼리티 콩트 코미디’가 어쩌면 대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유튜브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지만.(사진:MBC)

‘강철비’의 핵보다 뜨거운 남북 철우의 브로맨스

역시 <변호인>의 양우석 감독이다. 그의 신작 영화 <강철비>는 사실 전작과는 너무나 다른 소재를 들고 왔다. 그것은 가상 핵전쟁 시나리오다. 북한 내에 쿠테타가 벌어지고 암살 위협을 피해 남한으로 북한1호와 함께 내려온 엄철우(정우성)가 남한의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를 만나 핵전쟁을 막기 위해 뛰고 또 뛰는 첩보 액션 블록버스터. 그러니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그 가슴 뜨거워지는 인권변호사의 외침이 지금도 생생한 <변호인>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직접 영화롤 보게 되면 <변호인>과 <강철비>는 닮은 구석이 많고 또 그 느낌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변호인>이 인혁당 사건 같은 국가적인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 접근방식으로서 인권변호사의 따뜻한 인간적인 행보에 집중했다면, <강철비>는 핵전쟁 시나리오라는 지금도 실제 상존하는 위협과 불안을 소재로 다루면서도 그 접근방식으로는 북의 엄철우와 남의 곽철우가 동행하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끈끈한 인간적인 감정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강철비>는 2006년 개봉했던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와는 사뭇 다른 접근방식을 보여주는 영화다. <한반도>가 점점 커지는 북핵의 위협이라는 불안감을 스펙터클로 잡아내는 블록버스터에 가깝다면, <강철비>는 그 안에서도 사람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강철비>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식은 전쟁 스펙터클이 주는 자극적인 면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는 데서 오는 감동 같은 것이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강철비’ 같은 살상무기에 의해 순식간에 지옥도가 되어버리는 장면이 주는 끔찍함은, 그것이 분단 상황에서 적국의 위협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그 분단을 이용해 권력을 쥐려는 이들의 욕망에 의해 발생한 일이라는 점에서 단지 끔찍함에 머물지 않는다. 그 장면이 상기시키는 건 이 분단 상황이라는 체제가 권력자들에 의하여 얼마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이 공감대 아래 공교롭게도 이름이 같은 북의 엄철우와 남의 곽철우가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어 핵전쟁을 막으려 공조하게 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들은 자신들이 싸워야 할 대상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적국이 된 상대방이 아니라 그 분단을 이용하려는 권력자들이라는 걸 확인하다. 그리고 그 공감대 밑바탕에 깔려 있는 건 두 사람 모두 각각 지켜내야 할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강철비>는 그래서 마치 핵전쟁이라는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 권력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벌어지는 비극에 남북의 두 인물이 핵보다 뜨거운 휴머니즘으로 맞서는 듯한 대결구도를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이 두 사람의 이름이 모두 공교롭게도 ‘철우’인 건 이유 있는 작명이라 생각된다. 인명 살상을 위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그 끔찍한 ‘강철비’에 맞서는 두 철우(강철비)의 이야기이니 말이다. 이런 가상 전쟁 블록버스터에서도 뜨거운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건 역시 양우석 감독이기 때문일 게다.(사진:영화<강철비>)

종묘보다 넘치는 사직, '알쓸신잡2' 서울에 채워야할 것들


tvN <알쓸신잡2>가 본 서울의 모습은 어땠을까. 이야기는 조선에 한양을 수도로 세운 정도전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북방 외세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천혜의 요새(?) 같은 한양에 수도를 세운 정도전. 당시만 해도 텅 비어있던 한양은 이제 몇 백년 만에 인구 천 만이 모여 사는 곳이 되었다. 유시민 작가는 숙정문과 남산에 올라 아마도 당시 정도전이 내려 봤을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며 만일 이 달라진 모습을 정도전이 봤다면 “인생 최대의 희열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구 천 만이 모여 살게 된 그 변화된 서울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건 뿌듯함보다는 안타까움이 더 컸다. 황교익이 지적한 대로 서울은 과거 정도전이 꿈꿨던 모습과는 달리 ‘이주민의 도시’가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외지인들이 들어와 사는 곳이 되었고, 그렇게 인구가 집중되면서 효율은 떨어지는 도시가 되었다. 유현준 교수는 이런 근대화를 가능하게 한 건 ‘보일러’였다는 흥미로운 관점을 말했다. 과거 온돌 생활에서는 2층 이상의 집이 불가능했는데 보일러가 들어와 고층 아파트가 가능해졌다는 것.

유시민 작가 역시 서울이 ‘화석에너지와 대량생산시스템’으로 만들어진 도시라는 걸 지적했다. 고층 아파트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인구를 수용하고, 그들이 모두 같은 패턴으로 일하고 쉬고 움직이기 위한 교통시설이 만들어진 것이 모두 화석에너지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고, 그 시스템은 대량생산을 지향했다는 것. 이 이야기는 유현준 교수가 지적하는 서울의 도시계획 실패 이야기와 맞닿는 것이었다. 이렇게 주거와 일터를 나누고 일제히 동시에 같은 시간에 일하고 같은 시간에 쉬는 시스템 속에서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이러한 서울의 시스템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이었다. 피맛골을 예로 들어 사라져가는 골목길들은 그저 길만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공간이 갖던 많은 추억들이나 인간의 흔적들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미국의 경우 건물은 고치거나 바꿀 수 있어도 도로는 함부로 바꿀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유현준 교수의 지적은 그래서 그저 자본화되어가고 있는 서울이 보존해야할 것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하는가를 생각하게 했다.

장동선 박사가 다녀온 세운상가의 재탄생은 이런 과거와 현재의 공존 그리고 지향할 미래를 모두 품어낸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변화의 한 예처럼 보였다. 한때는 부의 상징이었던 곳이었으나 강남이 개발되고 용산전자상가가 생기며 점점 낙후되어가던 그 곳이 지금은 ‘청년 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과거의 장인들과 현재의 청년들이 콜라보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변화란 단지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관점에서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변용할 건 변용해야 한다는 걸 이 사례는 보여줬다.

유시민 작가는 이러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가치’의 관점에서 새롭게 풀어냈다. 정도전이 처음 한양을 수도로 세웠을 때 만들었던 종묘와 사직이 각각 당대의 ‘도덕적 가치’와 ‘세속적 욕망’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는 걸 먼저 지적한 유시민 작가는 그렇다면 21세기의 우리에게 종묘와 사직은 무엇인가 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유시민 작가는 민주주의의 가치가 21세기의 종묘일 것이라며 민주화를 상징하는 한국기독교회관, 명동성당 등을 언급했다. 그리고 황교익은 광화문 광장이 그런 가치를 하나로 모으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한편 21세기 사직에 대해서 유시민 작가는 ‘마천루’라고 말했고, 유현준 교수는 ‘아파트’라고 했으며 황교익은 식당이라고 해서 저마다 현재적 욕망을 상징하는 것들을 각각의 입장에서 거론했다. 유시민 작가는 우리가 저마다의 사직단을 품고 살아가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돈’이라는 걸 짚어냈다.

<알쓸신잡2>가 들여다 본 서울은 21세기 종묘와 사직단으로 표징되듯, 민주화의 흔적들이 중요한 가치로 남은 공간이면서 동시에 돈과 물질에 대한 욕망이 꿈틀대는 곳이었다. 아쉬운 건 21세기 종묘의 가치들을 압도하는 사직단들에 의해 사라져가는 것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직단들이 과거를 밀어내고 전면에 포진하면서 이제 차가 들어올 수 없는 좁은 골목길로 자그마한 온기를 찾아 모여드는 도시인들의 모습이 못내 쓸쓸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물론 그 곳 역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벌어지는 또 다른 모습의 사직단이 되어가고 있지만.(사진:tvN)

‘흑기사’, 장미희와 서지혜가 바로 숨은 흑기사

사실 판타지 장르에서 그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의 ‘도깨비’나 ‘저승사자’ 캐릭터는 실제적이지 않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다. 결국 두 역할을 소화해낸 공유와 이동욱이 그 캐릭터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면 그 작품은 애초 성립 자체가 되지 않았을 거라는 것. 

그런 점에서 보면 KBS 수목드라마 <흑기사>라는 판타지 드라마를 성립시키는 건, 다름 아닌 샤론과 백희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서지혜와 장미희가 아닐 수 없다. 이 드라마가 가진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 200년 넘게 불멸하는 존재가 갖는 남다른 시간관념, 그래서 전생과 후생을 동시에 들여다보는 관점 등이 모두 가능해진 건 다름 아닌 샤론과 백희라는 두 신비한 존재가 납득되고 있어서다.

장미희는 사실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변함없는 미모와 스타일을 보여줌으로써 <흑기사>가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을 그 이미지 자체만으로도 이해시키는 면이 있다. 시대가 지나도 변함없는 외모는 이 작품이 가진 ‘불멸의 존재’라는 캐릭터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게다가 장미희라는 배우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 역시 현실감을 뛰어넘어 이야기에 신비한 느낌을 부여한다. 

그가 연기하는 백희는 사실상 문수호(김래원)와 정해라(신세경)의 흑기사 같은 인물이다. 어린 시절 수호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그에게 다가와 앞으로 모든 일들이 다 잘될 것이고 행운이 따를 것이라고 말해줌으로써 실제로 수호가 큰 성공을 갖게 된다는 설정은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과도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만큼의 힘을 발휘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한 누군가의 성공이나 실패가 어쩌면 “운이 좋거나 나빠서 생긴 일”일 뿐이니 거기에 교만하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백희는 문수호와 정해라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덕담과 기도를 반복함으로써 진짜로 그들이 행복해지는 삶의 신비함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러면서 그런 덕담과 기도가 늙지 않는 천형으로부터 자신을 변화시켜 나이 먹기 시작한 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훨씬 원숙해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장미희가 아니라면 이만큼 잘 소화해내기가 어려운 캐릭터다. 

하지만 <흑기사>에서 진짜로 더 칭찬을 해주고 싶은 배우는 바로 서지혜다. 물론 과거 자신의 잘못 때문에 불멸의 존재로 살아가는 벌을 받고 있는 인물이지만, 샤론은 이 드라마가 가진 독특한 판타지적 느낌을 가장 잘 만들어내는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서지혜는 이 캐릭터가 가진 차가움과 쓸쓸함 그러면서도 어딘지 아이 같은 천진함 같은 것들을 실제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신비롭게 소화해내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샤론양장점은 그래서 이 캐릭터 자체처럼 느껴진다. 전생의 악업을 끊어내기 위해 옷을 만드는 샤론이란 인물은 마치 동화 속에서 나온 듯한 느낌을 주고, 마치 그의 시종처럼 일하는 양승구 역할을 소화해내는 김설진은 현대무용의 대가답게 일상과 춤동작들을 엮어 비현실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하지만 이 모든 판타지적 느낌을 하나로 묶어내고 있는 건 역시 서지혜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해야 할 것을 대신 해주는 인물로서 ‘흑기사’를 지칭하곤 한다. 그런 뜻에서 보면 장미희와 서지혜는 이 드라마의 확실한 흑기사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보인다. 주인공들은 아니지만 주인공이 겪는 판타지적인 사랑과 운명의 이야기에 신비로운 분위기의 밑그림을 그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이 이 드라마의 숨은 흑기사들이라고 느껴질 만큼.(사진:KBS)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