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가 말하는 정치, 법치, 이치

 

SBS 월화드라마 <해치>가 그리고 있는 영조의 청년시절 연잉군(정일우)은 우리가 사극에서 흔히 보던 그런 왕자(혹은 왕)나 신하와는 사뭇 다르다. 김이영 작가가 예전에 썼던 <이산>이나 <동이>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산>에서 정조는 끊임없는 암살 위협 속에서 생존해나가는 왕이었고, <동이>에서 숙종은 희빈 장씨로 인해 불어 닥치는 피바람 속에서 동이와 그 아들을 지켜내는 인물이었다. 그들은 모두 선악 구도에서 선의 역할을 자처했고, 반대세력들은 이들이 이겨내거나 제거해야할 절대 악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해치>는 다르다. 일단 연잉군이라는 인물이 그렇다. 훗날 영조가 되는 이 인물은 물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전형 리더이긴 하다. 그의 주변에 박문수(권율)나 여지(고아라), 달문(박훈) 같은 인재들이 모여드는 이유다. 하지만 연잉군 또한 어좌에 대한 욕망을 부정하지 않는다. 무수리 출신 최숙빈의 아들로 태어나, 결코 어좌를 엿볼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그는 방탕하게 시간을 보낸 인물이다. 그 누구보다 왕재를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태생으로 길이 막혀버린 그의 좌절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인 숙종(김갑수)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며 질책한다. 그 다른 선택이란 어좌에 대한 욕망을 말한다. 숙종 역시 연잉군을 왕재로 여겼다는 뜻이다. 

 

이 천출로서 소외됐던 왕자라는 위치는 <해치>가 연잉군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포착해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 누구보다 어좌에 대한 욕망을 가진 인물이면서도 저잣거리에서 핍박받는 민초들의 사정을 잘 아는 인물. 그토록 힘겹게 살아가지만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갖은 수탈을 당하고, 심지어 죽게 되도 항변조차 하지 못하는 민초들의 심정은 어쩌면 연잉군의 ‘천출’로서 겪는 심정과 맞닿아 있었을 거라는 심증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가 양반들 앞에 나아가 “누가 누구 덕에 사는가”하는 질문을 던지는 건 민초들의 고충을 말하는 것이지만, 또한 거기에는 자신의 처지에서 우러나는 진심이 담겨있을 수 있었다. 

 

이처럼 <해치>가 그리는 연잉군은 이미 역사의 승자이기 때문에 모든 게 선인 그런 단순한 인물이 아니다. 어쩌면 왕 같은 인물은 그 자신의 노력 또한 당연히 필요하지만 시대의 공조가 만들어낸 선택의 결과라고 <해치>는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천출이었다는 그 신분이 오히려 당대의 어지러운 당파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폐되어가던 민초들의 민심을 얻게 되는 기폭제로 작용하고, 소외됐던 만큼 커진 어좌에 대한 욕망은 그를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얘기다. 

 

<해치>는 연잉군의 이런 출신의 문제가 가진 이중적인 속성을 밑거름으로 삼아, 그 욕망이 실현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사헌부 같은 감찰기관의 개혁을 중심에 세운다. 즉 노론 같은 가진 자들이 수탈하고 핍박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자행했던 그 많은 비리들이 가능했던 건 독립을 유지해야할 사헌부가 이들과 결탁했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첫 회 연잉군이 과거시험장에서의 비리를 드러내는 장면으로 등장하고, 그로 인해 박문수 같은 실력은 있지만 연줄이 없어 연거푸 낙방하게 된 인물을 알게 되는 에피소드로 시작하는 건 향후 사헌부 개혁의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한 밑그림인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 밀풍군(정문성)이나 위병주(한상진) 같은 인물들과의 대결이 시작된다. 이들은 물론 전형적인 악역으로 그려지지만 그들 역시 그런 악당이 된 것이 저마다의 사정에 의한 것임을 드라마는 외면하지 않는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소현세자의 후손으로서 밀풍군은 어좌가 본래 자신의 것이었으나 빼앗겼다 여기는 인물이고, 위병주는 몰락한 남인의 혈통으로 당시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있던 당파 속에서 완전히 소외되었던 인물이다. 

 

연잉군이 결국 행하는 정치는 그래서 사헌부 개혁이라는 법치를 먼저 세우는 일로 시작한다. 정치권력이 너무나 강해져 위법이 자행되는 시대에 이로써 죽어나가는 민초들을 위해(또 이들의 위법으로 인해 소외된 인물들을 위해) 법치를 세운다는 건 아무 것도 없던 연잉군이 새로운 지지 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사회 정의에 대한 요구가 그를 왕재로 만드는 중요한 기회요소가 된다는 것. 

 

게다가 이러한 정치와 법치를 뛰어넘어 민초들의 지지까지 얻게 되는 건 연잉군이라는 인물이 가진 신분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이다. 노론의 실질적인 우두머리인 민진헌(이경영)은 신분질서가 ‘세상의 이치’라고 말하지만, 연잉군이 생각하는 이치는 다르다. “누가 누구 덕에 사는가”라는 질문에 그 생각이 담겨있다. 

 

<해치>가 보기 드문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는 건, 이 작품이 연잉군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바라보는 현재적 시선의 날카로움 때문이다. 거기에는 지금 현재 우리에게도 갈급한 정치 이전에 법치, 아니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대로 굴러가는 법 정의에 대한 현실인식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그 밑바탕에는 결국 권력은 민심으로부터 나온다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세상의 이치’가 그려져 있다.(사진:SBS)

‘자백’, 이준호가 파고들어갈 진실 어디까지 닿아있을까

 

진실을 마주한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 tvN 토일드라마 <자백>은 그 감당하기 힘든 진실을 찾아가는 최도현(이준호) 변호사와 전직 형사 기춘호(유재명)의 추적기를 그리고 있다. 이들이 맞이하는 일련의 살인사건들은 맥락 없이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이거나 혹은 모방범죄처럼 보였지만 차츰 그 뒤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사건의 실마리가 된다. 그리고 이 거대한 사건의 끝에는 결국 최도현이 변호사가 되어서까지 알아내려 했던 아버지를 사형수로 만든 사건으로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 

 

<자백>은 장르물이 갖는 문법을 너무나 잘 활용하는 드라마다. 초반 이 드라마가 세 개의 살인사건을 활용하는 방식에는 일종의 트릭이 들어가 있다. 10년 전 있었던 ‘창현동 살인사건’ 그리고 5년 전 벌어진 ‘양애란 살인사건’과 현재 벌어진 ‘김선희 살인사건’은 모두 둔기로 머리를 때려 쓰러뜨린 후, 병을 깨 잔인하게 여러 차례 찌르고 옷을 벗겨 모두 불태웠다는 공통점 때문에 한 범인의 연쇄살인이라는 심증을 갖게 만들었다. 

 

그래서 5년 전 검거된 인물이 한종구(류경수)지만 그는 최도현의 변호를 통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는다. 이때 시청자들은 한종구가 억울한 누명을 썼던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5년 후 비슷한 방식으로 ‘김선희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그 용의자로 한종구가 체포되면서 그가 사실상 연쇄살인범이라는 심증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또 한 번 시청자의 뒤통수를 친다. 한종구는 ‘김선희 살인사건’의 범인이 자신이 아니며 대신 5년 전 ‘양애란 살인사건’은 자신이 저질렀다 말한다. 실제로 5년 전 양애란 살인사건에서 붉은 색에 대해 범인이 더 과도한 집착을 보였다는 사실은 두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이 아니라는 정황증거가 된다. 동일한 연쇄살인범의 행동이라면 뒤에 벌어진 김선희 살인사건에 더 과도한 집착이 나타나야 했지만 정반대 양상이었기 때문이다. 

 

한종구는 결국 법정에서 5년 전 양애란을 죽인 건 자신이라고 증언함으로써 ‘김선희 살인사건’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고, 5년 전 사건 역시 ‘일사부재리의 원칙’으로 처벌받지 않게 된다. 하지만 최도현은 한종구의 어머니가 실종되었다는 걸 알고 그 집을 조사하던 중 벽면 가득 채워진 “죽어!”라는 낙서와 방바닥에서 찾은 붉은 색 손톱을 통해 붉은 색에 집착증을 가진 한종구가 어머니를 살해했을 거라는 걸 확신한다. 그는 슬쩍 한종구에게 그 집이 철거될 거라는 걸 흘리고, 벽 뒤편에 숨겨두었던 사체를 꺼내려던 한종구를 검거한다. 

 

세 개의 살인사건을 통해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이야기를 전개했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기춘호는 5년 전 양애란 살인사건이 한종구의 범행이라면, 10년 전 창현동 살인사건과 현재 벌어진 김선희 살인사건은 어쩌면 동일한 연쇄살인범의 범행일 수 있다는 심증을 갖는다. 게다가 한종구 역시 어쩐지 이 연쇄살인범의 살인과 무관한 인물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심지어 한종구는 최도현이 그토록 궁금해 하는 아버지를 살인범으로 만든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과 연루되어 있고 그 내막 또한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차승후 중령의 운전병이었던 것. 

 

<자백>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진실에 대한 갈증이 커지는 건 밝혀졌다 싶은 진실이 사실은 더 큰 진실의 작은 연결고리였다는 게 계속 드러나기 때문이다. 최도현의 아버지를 사형수로 만든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은 또한 대통령의 조카 박시강(김영훈) 밝은 정치당 비대위원장과 연루된 거대한 무기도입 로비와도 연결되어 있을 거라는 심증을 갖게 만든다.

 

도현이 과거 심장병으로 이식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도 이 거대한 사건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사형수가 되면서까지 침묵해온 아버지의 선택이 도현의 심장이식수술과 연관이 있어 보여서다. 따라서 갑자기 튀어나온 듯 보이는 간호사 조경선(송유현)의 과실치사 사건도 당장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것이 과거 학창시절부터 있어온 교장 김성조(김귀선)의 상습적인 성범죄로 고통 받았던 친구 유현이(박수연)를 위해 조경선이 계획한 살인이었다는 것. 조경선이 특히 예뻐했다는 유현이의 아들 유준환(최민영)이 당시 김성조의 성폭행으로 낳은 아이일 수 있다는 사실은 그의 계획살인의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를 파면 또 다른 진실이 나오고, 그 진실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그것이 감당해내야 하는 무게는 점점 커진다. 유현이의 아들은 과연 이 사건의 진실을 어떻게 감당해낼 수 있을까. 아버지가 사실은 성폭행범이었고, 자신이 그 범죄로부터 태어났으며 결국 그런 아버지는 살해당했다는 진실. 이걸 과연 감당해낼 수 있을까.

 

최도현의 앞에 놓인 진실 또한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가 사형수가 된 일이 만일 자신과 연관된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또한 그의 심장이식을 위해 아버지가 모종의 거래를 했고 심장의 공여자가 이를 위해 희생됐다면 어떨까. 꿈속에 계속 등장하는 트럭에 받쳐 사고를 당하는 장면 또한 예사롭지 않은 후반의 반전을 예고하는 것만 같다. 

 

물론 무엇 하나 명확히 밝혀진 게 없고 향후에도 끝을 보기 전까지는 진실로 드러난 것조차 또 다시 뒤집어지거나 거대한 사건의 작은 부분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계속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마치 최도현에 빙의된 듯 빠져드는 이 미칠 듯한 궁금증은, <자백>이 갖고 있는 촘촘하게 연결된 사건들과 그걸 끊임없는 궁금증으로 만들어내는 솜씨 좋은 이야기전개를 통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 구조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떠한 진실을 마주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지난하며 또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가 하는.(사진:tvN)

'어스', 이 미국 이야기에 우리네 관객들이 열광하는 까닭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조던 필 감독의 영화 <어스>에 대한 국내 관객들의 반응이 심상찮다. 개봉 후 3일 만에 70만 관객을 넘어섰고,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미 <겟아웃>으로 한국 팬들까지 갖고 있어 ‘조동필’이라고도 불리는 조던 필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 때문에 이미 개봉 전부터 기대가 몰렸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어스 Us>는 제목에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즉 ‘우리’라는 뜻이지만 다른 식으로 들여다보면 ‘미국 United States’의 약자로 보인다. 이런 중의적 의미처럼 <어스>는 미국 사회가 가진 흑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그 이야기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겟아웃>에서부터 조던 필 감독이 공포라는 장르를 통해 일관되게 갖고 온 세상에 대한 인식이다. 

 

<어스>가 그저 B급 공포영화 그 이상의 성취를 보여주게 된 건,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상징들이 담겨져 있어서다. 영화 시작과 함께 카메라가 아주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보여주는 작은 케이지 안에 갇혀 있는 여러 종류의 토끼들은 <어스>라는 제목과 어우러지며 이 영화가 그리려고 하는 미국사회가 이 풍경을 닮았다는 걸 암시한다. 영화 곳곳에 풍자적 코미디가 가득 찬 <어스>는 그래서 이 첫 장면에 으스스한 긴장감과 동시에 피식 피어나는 웃음을 담아낸다. <어스>는 소름 돋는 공포영화지만 풍자적 코미디가 강해 중간 중간 빵빵 웃음이 터지는 이색적인 경험을 하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어스>가 주는 공포는 ‘도플갱어’의 존재라는 이 영화의 세계관에 의해 만들어진다. 어느 날 휴가를 떠난 애들레이드(루피타 뇽) 가족은 자신들과 똑같이 생긴 이들의 공격을 받는다. 무단침입해 들어온 이들 중 애들레이드와 똑같이 생긴(하지만 목소리나 하는 행동은 완전히 다른) 여자는 숨겨진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겉으로 드러난 빛이 있지만 이면에 그림자처럼 사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그들은 토끼 생고기를 먹어야 했고, 누군가는 부드럽고 편안한 인형을 선물 받을 때 그들은 날카로워 피가 나기도 하는 인형을 받았다는 것. 

 

도플갱어들의 공격은 그 차별적으로 살아왔던 것에 대한 분노이면서 동시에 항변이다. 지하에서 그림자처럼 살아왔던 이들은 지상으로 나와 정반대로 빛으로서 살아온 이들을 공격한다. 그리고 손에 손을 잡고 빈곤층을 돕기 위해 1986년 미국에서 벌어졌던 ‘Handa Across America’ 캠페인을 그대로 본 딴 그들의 거대한 인간 띠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연대하며 함께 살아가자는 운동이었지만, 실제로는 지하 세계에 소외된 그림자 같은 존재들을 밑바탕으로 삼는 사회. 그것이 미국이고 ‘우리’라는 걸 조던 필 감독은 공포 장르를 가져와 통렬히 비판한다. 

 

진짜와 가짜, 빛과 그림자, 지상과 지하, 백인과 흑인 등등. 영화는 이런 대비되는 것들을 가져와 그 부딪침이 만들어내는 갈등을 통해 공포를 유발한다. 하지만 이 공포는 단지 표피적인 두려움에서 나오는 공포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이중적 차별이 가진 공포이고, 또 겉으로는 연대를 이야기하지만 이면에는 여전히 남겨진 차별들이 존재하고 있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충돌하고 폭발할지 알 수 없는 그 상황이 만들어내는 공포다. 따라서 영화를 한참 보고 있으면 미국사회가 가진 허위성 같은 면들을 새삼 발견하면서 그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 공포라는 걸 알게 된다.

 

대책 없는 낙관과,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힘을 기반으로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 그래서 ‘지구의 연대’를 이야기하는 것에 조던 필 감독은 공포의 실체를 포착해낸다. 어두운 면들이 존재하지만 그것들을 저 지하 밑바닥으로 숨겨두고 없는 것처럼 억누르며, 그들의 희생을 통해 유지되는 사회가 주는 공포. 누군가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때 누군가는 그만큼의 희생을 치러야한다는 걸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대책 없는 낙관의 공포가 그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이 위기에 처한 애들레이드 가족은 놀랍게도 공포의 희생자가 아니라 마치 롤러코스터의 스릴러를 즐기는 이들이나, 액션영화의 주인공이나 된 것처럼 이 상황을 심지어 즐기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영화는 마치 그런 상황들을 B급영화의 코드처럼 착각하게 만들지만, 영화 말미에 이르러 보여주는 반전은 그것이 착각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실체라는 걸 드러낸다. 낄낄 대고 웃으며 보다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한 충격을 느끼게 되는 건 그래서다.

 

흥미로운 건 미국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영화에 우리네 관객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건 아마도 조던 필 감독이 기막힌 공포영화의 새로운 장을 보여주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그의 공포의 기반이 되는 흑인사회가 가진 차별과 소외의 정서가 우리네 서민들의 정서와도 맞닿아 있는 면이 있어서일 게다. 항상 겉으로는 밝은 사회를 이야기하지만 매일 같이 터지는 사건들을 통해 들여다보면 그 밑에 숨겨진 어두움과 소외된 존재들이 발견되는 우리 사회. 그래서 <어스>가 ‘미국’과 함께 중의적으로 담고 있는 ‘우리’라는 의미에 우리네 관객들도 동조하는 마음이 생기는 게 아닐까.(사진:영화'어스')

어떻게든 웃겨주겠다는 '열혈사제' 제작진의 절절한 진심

 

뭐든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 갑갑한 현실에 유쾌하고 통쾌한 한 방을 주기 위해서라면 뭐든 다 끌어오겠다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 안에는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버닝썬 게이트’가 통째로 녹아들어 있다. 일찍이 이런 사태를 예상했던 거라면 놀라운 현실 인식이고, 재빨리 이 소재를 드라마 소재로 끌어왔다면 역시 남다른 순발력이다.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가 갈수록 시청자들을 빨아들이는 이유다.

 

<열혈사제>에서는 친절하게 캐릭터를 이용한 도표를 보여주며 이른바 ‘라이징 문’ 게이트의 전모를 설명해준다. 마약까지 유통하는 클럽 라이징 문이 있고 그 마약을 하기 위해 구담시까지 찾아오는 연예인과 재벌2세들이 있다. 그 클럽은 구담경찰서 남석구 서장(정인기)이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고 그래서 경찰의 비호를 받는다. 하지만 그 선은 강석태(김형묵) 같은 부장검사와도 맞닿아 있고 정동자(정영주) 구청장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황철범(고준)이 움직이는 조폭과도 결탁해 불법적인 일로 돈을 끌어 모으는 거대한 게이트를 만든다. 재벌2세와 검찰 같은 권력의 비호는 물론이고 그 윗선 어디까지 닿아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드라마 속 라이징 문 클럽과 경찰, 조폭과의 유착 문제는 버닝썬 게이트에서도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심지어 의원과 검사까지 제거하려는 러시아 조폭들이 검거되어도 범죄인 인도조약 운운하며 자세한 사건경위도 조사하지 않고 넘겨버리는 경찰 윗선의 조치에 서승아(금새록) 같은 정의를 꿈꾸는 신출내기 형사는 “이래서 경찰을 믿을 수 있겠냐”고 항변한다. 드라마 속 이야기지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갑한 상황을 두고 일침을 날리는 듯한 뉘앙스가 그 대사에는 들어 있다.

 

<열혈사제>는 재빠르게 라이징 문이라는 클럽 이야기를 끌어와 현재 벌어진 버닝썬 게이트의 현실을 비틀어 풍자하면서도, 동시에 이 드라마가 그려나가려 했던 길을 잃지 않는다. 클럽은 갖가지 불법을 통해 검은 돈을 벌어들이는 곳이다. 그리고 이렇게 모여진 검은 돈들을 세탁하기 위해 이들은 재단을 운영하려 한다. 이들이 성당이 운영해왔던 복지원을 자기들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던 이유다. 김해일(김남길) 신부가 이 모든 사건에 뛰어들게 된 촉발점이었던 이영준(정동환) 신부의 살인사건도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현실을 가져오지만 <열혈사제>는 굳이 그 현실의 리얼리티나 개연성에 집착하지 않는다. 현실이었다면 실제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갖가지 권력형 비리들이지만, 이 드라마는 김해일 같은 돈키호테 신부와 점점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구대영(김성균) 형사, 박경선(이하늬) 검사, 서승아 형사가 공조해 유쾌하고 통쾌한 사적이고 공적인 정의구현 과정을 그려낸다. 

 

워낙 현실이 갑갑하기 때문인지 <열혈사제>의 코미디로 구현된 과장된 이야기와 캐릭터들은 시청자들을 반색하게 만든다. 공조하기로 마음을 먹은 김해일과 박경선이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코트를 날리며 걸어오는 장면이 우스우면서도 든든하고, 갑자기 영화 <옹박>의 주인공처럼 무에타이로 조폭들을 날려버리는 외국인 근로자 쏭삭(안창환)의 등장에 속이 다 시원해진다. 

 

<열혈사제>는 그래서 강력한 사회풍자코미디이자 현실 반영 활극의 묘미를 선사한다. 매일 매일 터져 나오는 뉴스 속 갑갑한 현실 속에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이 드라마를 보는 유쾌하고 통쾌한 맛에 산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이든 끌어와 웃음으로 활극으로 풀어주겠다는 드라마의 진심이 이토록 절절하게 느껴지기는 참 오랜만이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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