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식당’, 지역 가니 이런 토속적인 맛이

 

이 정도면 솔루션을 하러 가는 게 아니라 맛집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돼지찌개집을 찾은 백종원은 “여긴 할 게 없다. 나 여기 솔루션 하러 안 온다. 밥 먹으러 오는 거다”라고 말했다.

 

지난주 방영됐던 것처럼, 서산 해미읍성의 ‘장금이’라 불리는 손맛의 돼지찌개집은 역시 재차 방문한 백종원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는 전날 너무 극찬했던 건 자신이 특히 좋아하는 어리굴젓에 마음을 뺏겨서라고 했지만, 다음 날 찾아 맛본 비빔밥과 순두부찌개도 역시 대만족했다.

상반되게도 사장님은 내내 “자신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떨린다”고 얘기했지만, 요리에 있어서는 거침이 없었다. 매일 반찬이 달라진다고 말하는 데서부터 이 사장님이 가진 요리에 대한 욕심이 느껴졌다. 맛 좋은 음식을 내놓기 위해서는 재료 비싼 거 아끼지 않는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아재 입맛으로 백종원이 캐릭터가 자신과 겹친다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새 출연자인 정인선 역시 어리굴젓의 맛에 푹 빠져버렸다. 그리고 갑자기 그 곳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를 묻던 중 4월까지는 실치국을 끓인다는 이야기에 백종원이 만들어보라고 하자 즉석에서 실치를 주문해 국을 끓여냈다. 이 역시 백종원과 정인선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굳이 힘들게 소머리국밥 할 게 아니라 실치국을 끓여도 될 법 하다고 백종원은 말했다.

 

흥미로운 건 돼지찌개집 사장님이 보여주는 상당히 ‘충청도’가 느껴지는 모습이다. “잘 못해유”하면서 뭐든 척척 해내고, “자신 없어유”하면서 맛나게 음식을 내놓는 모습. 물론 사장님의 고향은 전라도라고 했고 그래서 음식 맛 손맛이 남다른 것이었지만,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충청도의 매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은근함이 있었다. 느린 듯 하지만 막상 무얼 하면 재빠르게 해내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은근함의 매력이라니.

 

물론 이번 서산 해미읍성 편에서 곱창집과 쪽갈비 김치찌개집은 생각보다 문제들이 많이 노출됐다. 곱창집은 곱창을 손질하는 과정에서 곱 손실이 많이 생겼고, 육지를 부드럽게 만드는 과정에서도 물기가 제대로 빠지지 않아 곱 자체가 녹아 구울 때 빠져나오는 결과를 만들었다. 백종원은 하나하나 그 과정들을 되짚으며 문제점들을 찾아내 보여주었다.

 

또 쪽갈비 김치찌개집은 허리와 무릎이 안 좋아 혼자 일하는 게 버거웠던 탓인지 ‘위생문제’가 심각했다. 물론 음식도 문제였다. 고기를 재울 때 육수를 사용해 상할 위험을 더 높은 일이나, 주방이 가진 위생상태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나 모두 경험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조목조목 지적을 당한 사장님은 “부끄럽다”며 눈물을 보였고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이처럼 문제점들을 많이 가진 식당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돼지찌개집 같은 ‘준비된 식당’이 있어 백종원도 시청자도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 편에서 돼지찌개집을 통해 프로그램이 얻은 건, ‘지역이 가진 토속적인 재미’를 그 사장님 캐릭터를 통해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게 아닐까. 이번 편에서는 어딘가 충청도의 은근한 맛이 느껴진다. 백종원처럼 밥 먹으러 굳이 찾아가고 싶을 만큼.(사진:SBS)

‘닥터 프리즈너’, 어느새 우린 장르의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잘 나가는 장르물들은 퓨전을 거듭 시도해왔다. 의학드라마 같은 경우는 특히 그렇다. <허준>이나 <대장금>은 이미 고전이 된 의학 사극이지만, 그 후에도 사극과 퓨전된 <제중원>이나 <마의> 같은 드라마가 있었고 타임리프가 더해진 <닥터진>이나 <명불허전> 같은 드라마도 있었다. 또 <카인과 아벨> 같은 드라마는 응급의학을 소재로 야전에서 수술을 시전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고, <골든타임>이나 <낭만닥터 김사부> 역시 응급의학과의 전쟁 같은 상황을 소재로 다뤘다. 도서 지방 같은 의료 소외지대를 다룬 <병원선>이나 생명을 다루는 곳이자 사업체로서의 병원이라는 공간을 두고 벌어지는 대립을 다룬 <라이프>도 있었다.

 

이 정도면 우리네 의학드라마는 일정한 계보와 장르적 틀마저 갖추고 있다고 봐도 될 만하다. 그 계보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라는 소재는 시대와 공간과 각 과가 갖는 특징들을 변주하고 퓨전하며 진화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닥터 프리즈너>는 여기에 감옥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우리가 미드 등을 통해 익숙히 알고 있는 감옥 장르물들의 특성과 의학이 만나는 지점이 특이하다. 교도소 재소자들 중 이른바 VIP들을 담당하며 그들에게 갖가지 질병 진단을 덧붙여 ‘형 집행 정지’를 내리는 비리 의사들이 바로 그 접점이다.

 

드라마 속에서 이들은 재소자들을 치료하는 모습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재소자들을 병들게 만든다. 시작과 함께 나이제(남궁민)가 여대생 살인교사 혐의로 수감된 재벌사모님 오정희(김정난)를 ‘형 집행 정지’로 만들기 위해 몸을 망가뜨리는 장면은 이 독특한 의학드라마의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흔히 의학드라마에서 의사의 칼은 ‘살인검(殺人劍)’이 될 수도 있고 ‘활인검(活人劍)’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곤 한다. 그 관점에서 보면 <닥터 프리즈너>의 나이제가 들고 있는 칼은 활인검이라기보다는 살인검에 가깝다.

 

그것은 태강병원에서 잘 나가던 응급의학센터 에이스 나이제가 하루아침에 그 병원의 주인인 태강그룹 회장의 망나니 아들 이재환(박은석)에 의해 추락하게 되면서 생겨난 반전이다. 자신이 치료하던 장애인 부부가 이재환 때문에 사망하게 됐지만 오히려 그 의료사고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게 된 나이제는 자신의 엄마 또한 수술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사망하게 되면서 복수를 계획하게 된다. 그것은 사적 복수지만 또한 가진 자들이 누군가를 살해해 검거돼도 버젓이 형 집행 정지로 교도소를 빠져나가는 그 공적인 현실에 대한 대중들의 공분을 담아낸다.

 

<닥터 프리즈너>는 그래서 가진 자들이 그 돈의 힘으로 주무르는 병원과 감옥 두 공간에서 이 카르텔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나이제의 안간힘을 다루고 있다. 여러모로 그 거대한 카르텔 앞에서 그는 여전히 미약한 존재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 인물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건 순진하게 선을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이고, 거악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손에도 피를 묻혀야 한다는 걸 알고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복수과정은 그래서 흥미로워진다. 선민식(김병철)이라는 서서울 교도소 의료과장과 각을 세우며 그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는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자신의 비리를 정의식 검사(장현성)가 추적하는 것조차 이용하려 한다. 마치 이 거악을 줄줄이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 또한 그 악의 한 줄기가 되어 그들과 함께 기꺼이 무너지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의학드라마는 그래서 감옥을 소재로 덧붙여 정의를 구현하려는 사회극적인 면모를 갖게 된다.

 

이제 장르물에 멜로나 가족드라마적 요소를 끼워 넣지 않으면 어딘지 성공하기 어렵다는 드라마업계의 편견을 사라진 듯하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 중 주목받고 있는 <닥터 프리즈너>나 <열혈사제> 그리고 <자백> 같은 일련의 장르물들에서는 이런 요소들 없이도 시청자들이 충분히 몰입한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멜로의 틈입 같은 것이 이제는 장르물에 있어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까지 치부되고 있다.

 

이미 넷플릭스 등을 통해 미드를 일상적으로 접하게 된 현실 속에서 이제 우리네 장르물들도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됐다. 지금껏 오랫동안 만들어져 왔던 의학드라마의 진화과정을 보면 지금의 변화가 뚜렷이 드러난다. 이제 장르 자체가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여러 장르들이 퓨전되는 걸 오히려 즐기고, 그 장르적 문법들이 새롭게 해석될 때 더 열광한다.

 

그런 관점에서 <닥터 프리즈너>는 대표적인 사례다. 장르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시청자들은 다소 복잡하고 시시각각 상황이 반전하면서 감옥과 병원을 넘나들고 때로는 사회극의 면모를 드러내는 이 작품에 열광한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면서 마치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심지어 KBS 드라마에서 이런 본격 장르물을 넘어서는 퓨전 장르물의 묘미를 느낄 줄이야. 우리네 드라마에 장르물 트렌드가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다는 징후가 아닐 수 없다.(사진:KBS)

청와대 비선실세까지, ‘자백’ 이준호의 진실 추적

 

뭐 이런 드라마가 다 있나. tvN 토일드라마 <자백>은 보면 볼수록 거미줄처럼 헤어 나오기 어려운 드라마다. 그저 각각 벌어진 사건처럼 여겨지던 것들이,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연결되고, 각각의 인물들 또한 조금씩 드러나는 사건 속에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게 밝혀진다. 드라마는 최도현(이준호)과 기춘호(유재명) 그리고 하유리(신현빈)라는 이 거미줄 위에 놓인 세 인물들이 저마다 이 거미줄 전체의 그림이 지목하는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자백>은 그래서 시청자들을 그저 편안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른바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으로 사형수가 된 아버지에게 벌어진 일의 전모를 찾아내 누명을 벗게 하려는 최도현. 시청자들은 그가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 벽에 붙여 놓은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 관련자들의 복잡한 요약도를 들여다보며 느꼈을 진실에 대한 갈증을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에서 최도현의 아버지를 현장에서 검거했지만 스스로 살인을 자백하고 검찰에 바로 이관됐던 당시 사건에 의문을 품던 기춘호 형사는 그 요약도를 보며 최도현과 똑같은 의문을 품는다.

 

이들은 10년 전 있었던 ‘창현동 살인사건’과 5년 전 벌어진 ‘양애란 살인사건’ 그리고 현재 벌어진 ‘김선희 살인사건’이 어쩌면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과도 연계된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된다. 동일한 수법 때문에 단지 한 연쇄살인범의 범행이라 여겨졌지만, 김선희 살인사건 용의자로 붙잡힌 한종구(류경수)가 5년 전 ‘양애란 살인사건’은 자신이 ‘창현동 살인사건’을 모방해 저질렀지만 ‘김선희 살인사건’은 자신의 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왜 그가 그런 모방 살인을 했는가가 의문점으로 제시됐다.

 

그런데 한종구가 과거 차승후 중령의 운전병이었다는 사실과, 최도현과 기춘호가 수사하며 알아낸 창현동 살인사건의 희생자 고은주를 죽인 범인이 당시 군대 영창에 수감 중이라는 알리바이로 용의선상에서 배제됐던 조기탁이라는 사실은 이들 일련의 살인사건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암시한다. 결국 창현동 살인사건의 유력용의자로 조기탁이 떠올랐고, 그의 집을 찾아간 최도현과 기춘호는 그 곳에서 간호사 조경선(송유현) 명의의 고지서를 발견함으로써 이 두 사람 역시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한편 하유리는 기자였던 아버지의 유품을 확인하다 수첩에 적힌 ‘청와대를 움직이는 그들의 실체는?’이라는 글을 통해 아버지가 생전에 무언가 거대한 사건을 추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부친 사망 직전에 만났던 사람들을 추적하면서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가 있던 윤철민 경위는 자살로 부패방지처 검사 노선후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실을 알아낸 하유리는 노선후 유족의 집을 찾아갔다가 집 앞에서 진여사(남기애)를 만나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최도현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와 사무보조일을 자청한 진여사의 행보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게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진여사 역시 어쩌면 이 거대한 사건의 피해자 유족일 수 있다는 것.

 

아직 모든 게 확연히 밝혀진 건 없지만, 어느 정도의 거대한 사건의 윤곽은 드러났다고 보인다. 무언가 ‘청와대 비선실세’들이 저지른 권력 비리(아마도 군수 산업과 관련된)가 존재하고 그 사실이 유출되거나 드러나자 관련자들이 모두 죽거나 희생되었다는 것. 최도현의 아버지가 사형수가 된 것도, 하유리의 아버지가 갑자기 의문의 죽음을 맞은 것도 모두 이 사건의 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미로 같은 거미줄 위에 놓인 듯한 느낌을 주지만, <자백>은 의외로 기꺼이 시청자들을 그 거미줄에 걸려들게 만든다. 그것은 무관해 보였던 사건과 인물들이 하나하나 맞춰지는 마치 퍼즐 맞추기의 쾌감 같은 걸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퍼즐이 맞춰져가면서 드러날 전모가, 나라 전체를 뒤흔들 거대한 사건이라는 점은 진실에 대한 갈증을 더욱 증폭시키는 대목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비선실세의 존재가 드러났던 지난 정권이 준 충격은 <자백>이라는 드라마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그런 드라마 같은 사건이 실제로 벌어졌었다는 사실은 유사한 구조의 사건을 소재로 다루는 <자백>을 훨씬 개연성 있는 작품으로 느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시 매일 매일 뉴스를 들여다보며 느꼈던 진실에 대한 갈증과 분노 또 그 진실이 파헤쳐질 때 느꼈던 어떤 통쾌함 같은 경험들이 다시금 새록새록 떠오른다. <자백>이 복잡하게 쳐 놓은 거미줄에 기꺼이 걸려드는 이유다.(사진:tvN)

‘아름다운 세상’이 절망을 통해 찾아내려는 희망은

 

과연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는 꿈꿀 수 있을까. JTBC 금토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은 중학생 박선호(남다름)가 학교 옥상에서부터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살일지 혹은 타살일지 알 수 없는 한 아이의 추락. 카메라는 아주 천천히 이 아이가 떨어져 내리는 장면을 비춰주며 이 드라마가 앞으로 전개해나갈 파국을 예고한다.

 

어쩌면 우리는 어떤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실체를 보지 못하는 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없었다면 친구들이나 아이 부모들 또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계는 그럭저럭 원만했을 테고, 우리는 그 ‘원만함’이 ‘아름답다’ 착각하며 받아들였을 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한 아이가 추락하는 사건은 이 원만하게 아름답다 치부되던 세상의 잔인한 실체를 끄집어낸다.

 

학교는 혹여나 이 사건이 학교의 이미지를 나쁘게 하지 않을까만을 걱정한다. 학교폭력 없는 학교라는 이미지에 누가 될까, 배상복 교감(정재성)은 선생님들에게 학생들이 엉뚱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단단히 일러두러 으름장을 놓는다. 선호의 담임인 이진우(윤나무)는 이런 학교의 행태에 불만을 갖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선호의 친구였던 준석(서동현)의 아버지이자 이 학교재단의 이사장인 오진표(오만석)는 일이 커지지 않게 하기 위해 서둘러 사건을 덮으려 한다. 사건을 조사하는 강력팀 형사 박승만(조재룡)도 진상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그다지 기울이지 않고 간단히 ‘자살 미수’로 사건을 종결하려 한다. 처리해야할 더 많은 강력 사건들이 존재한다는 핑계로 자신이 종결처리하려는 이 사건에 토를 달고 나오는 선호의 부모의 요구들을 묵살한다.

 

선호와 친했던 친구들의 부모들은 이 일이 자신의 자식들에게 불똥이 튀지 않기 위해서 전전긍긍한다. 준석의 엄마인 서은주(조여정)도 선호 엄마 강인하(추자현)와 친하게 지냈었지만, 아들과 그 친구들이 선호를 집단 구타하는 장면의 동영상을 보고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서은주는 준석의 주머니에서 선호의 교복 단추를 발견하고는 이를 서둘러 버리려고 한다. 아들의 안위만을 먼저 걱정하는 부모들의 이기심이 이 사건을 통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선호의 동생 수호(김환희)가 선호의 자살이 아빠의 외도 때문이라고 아무렇게나 떠들어대는 친구와 싸움이 벌어지고 그래서 학교를 찾아간 강인하는 그 무례한 세상 앞에 분노한다. 아이가 사고를 당했는데,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뒤에서 아무 생각 없이 외도 운운하며 떠들어댔고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가 그걸 소문내고 다니는 현실. 그리고는 아이들이 그것 때문에 싸운 일로 전후 사정은 상관하지 않고 수호에게 사과하라 요구하는 현실 앞에 강인하는 그 같은 어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가를 알려준다.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떠들어댔던 그 악의적인 말들이 우리 애 마음을 할퀴고 짓밟고 찢어놨다고요. 정미 얼굴에 상처는 곧 아물겠지만 우리 수호의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아요. 사람을 믿고 우정만큼 좋은 게 없다고 믿었었던, 그렇게 믿고 있던 우리 애한테 당신은 우정을 빼앗고 믿음을 빼앗은 겁니다. 학폭위에 회부하시겠다고요? 부끄러운 줄 아세요.”

 

제목은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드라마는 결코 ‘아름다운 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한 아이의 사고 앞에서도 제 아이만을 걱정하고, 제 학교의 이미지만을 걱정하며 나아가 악의적인 소문까지 퍼뜨리면서 그런 일이 가까이서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재수 없다’ 여긴다. 그 아이에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로지 그 아이의 부모만이 스스로를 자책하며 후회하면서 절박하게 진실을 찾아 헤맬 뿐이다.

 

수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몰상식한 정미 엄마 앞에서 일단 “죄송하다”고 먼저 고개를 숙이는 아빠 박무진(박희순)에게 수호는 “왜 사과부터 하냐”고 화를 낸다. 수호의 그 말에 박무진은 선호와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퀵보드를 타고 가던 사람과 부딪쳤는데 그가 먼저 사과하자 선호 역시 “잘못은 저 사람이 했는데 왜 아빠가 사과하냐”고 물었었다. 그 때 박무진은 “지는 게 이기는 거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과연 지는 게 이기는 걸까. 혹은 좋게 좋게 싸우지 않고 넘기는 것이 최선인 걸까. <아름다운 세상>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지는 건 그냥 지는 것”이라는 수호의 말이 박무진의 귓가에 울림으로 남는다. 아들의 사고를 통해 자신은 이제 그저 좋게 좋게 넘겨오기만 했던 삶이 아닌 진실을 위해 싸워야 하는 삶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것이 지독하게 비정한 이 세상의 절망을 그나마 아름다운 세상을 꿈꿀 수 있는 희망으로 바꿔줄 것이므로.(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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