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게임’, 운명 앞에 무력한 인간에 대한 연민

 

어째서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구도경(임주환)에게 연민의 감정이 드는 걸까. MBC 수목드라마 <더 게임 : 0시를 향하여(이하 더 게임)>는 독특한 시점을 제공한다. 보통 살인자라고 하면 공포감을 먼저 떠올리게 하지만 여기 등장하는 구도경은 그것보다는 연민과 동정의 감정이 생겨난다는 것. 무엇이 이런 시점을 만든 걸까.

 

그것은 구도경이 살인자지만 그 역시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 조필두(김용준)가 잔혹한 ‘0시의 살인마’라는 누명을 쓰고 붙잡힌 후 살인마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다. 게다가 진짜 살인마가 아버지가 아니라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그 슬픔이 분노로 바뀐 건 당연한 결과였을 터다.

 

결국 구도경을 살인자로 만든 건, 진짜 살인마는 물론이고 조필두가 아니라는 증거를 알면서도 동료의 죽음에 눈이 멀어 그에게 살인마 누명을 씌운 남우현 계장(박지일) 그리고 이를 ‘알권리’라는 명목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어 기정사실화한 이준희(박원상) 하나일보 기자라고 볼 수 있다. 구도경에 대한 연민은 그런 지경에 처하게 되면 물론 옳은 선택이라 할 수 없겠지만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는 걸 이 드라마가 납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구도경이 결국 살해한 백선생(정동환)은 어린 구도경에게 이런 편지를 남긴 바 있다. “착한 사람도 나쁜 상황에 처하면 어리석은 선택을 한단다. 지혜롭던 사람도 불행한 환경에 놓이면 좌절하듯이 누구나 그렇게 실수를 해. 참회의 길을 걷고 있는 네 아버지를 너무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새겨두렴. 실수 후의 모습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란다.” 구도경은 백선생을 살해하고 돌아와 그 편지를 다시 읽으며 그게 진심이었다는 걸 알고는 눈물을 흘린다. 눈물 흘리는 그 모습이 구도경의 ‘진짜 모습’으로 담겨진다.

 

구도경이 죽음 직전을 보는 능력을 가진 김태평(옥택연)에 대해 분노하는 건 그가 어린 시절 희망보육원에서 자신의 죽는 순간에 대해 예언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김태평은 구도경이 경찰들에 둘러싸인 가운데 자살할 것이라 예언한 바 있다. 하지만 구도경이 김태평에게 경멸과 조소의 시선을 던지는 건 그런 타인이 죽음을 보는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가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심지어 살인자 누명을 쓴 아버지를 구제하지도 못했다는 것.

 

그는 그래서 마치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걸 김태평이 죽음을 보는 능력으로 알아챈다 해도 그걸 입증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관점은 운명 앞에 무력한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다가온다. 사건의 진원지는 희대의 연쇄살인마로부터 시작한 것이지만, 정작 그는 뒤편으로 물러나 있고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어리석은 선택들로 인한 비극에 이른다. 하지만 그 비극을 미리 볼 수 있다고 해도 막거나 바꿀 수는 없다. 그것이 우리네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는 걸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누구나 다 죽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걸 막을 수는 없는 것처럼.

 

이제 백선생을 잃은 김태평은 구도경이 겪은 그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구도경이 자살로 위장했지만 그 증거를 찾아낸 김태평이 몰래카메라로 보고 있을 구도경 앞에서 그걸 버리는 장면은 일종의 선전포고다. 서준영(이연희)의 내레이션으로 들어가 있듯이 김태평은 구도경처럼 ‘슬픔이 분노로’ 바뀌는 순간을 맞은 것이다. 그는 과연 백선생이 구도경에게 쓴 편지에 들어 있던 것처럼 ‘나쁜 상황’에서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될까.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정해진 운명 앞에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는 허무를 말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걸 김태평과 서준영(이연희)의 관계가 보여준다. 유일하게 죽음이 보이지 않는 서준영이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사랑’이야말로 죽음을 뛰어넘는(의식하지 않는) 인간의 위대함이라는 걸 말하고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미진이(최다인)를 구해냈던 것처럼, 때론 그 사랑은 예정된 것을 바꾸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는 걸.(사진:MBC)

‘방법’, 우리 앞의 ‘저주의 숲’

 

무속 신앙을 소재로 하는 오컬트 장르에서 자주 보이던 ‘살 날리기’가 이 드라마에서는 마치 총을 쏘면 응사하는 것 같은 액션 스릴러처럼 그려진다. 한쪽에서 살을 날리면 다른 쪽에서는 그것을 막아 ‘역살’을 날린다. 각각 떨어진 공간에서 날리는 살은 무형이지만 확실한 ‘저주’로 지목된 이들을 공격한다.

 

tvN 월화드마라 <방법>은 그 상상력이 발칙하다. 중국 무협장르에서 보던 장풍을 날리고 사람이 날아오르는 액션도 아니고, 그렇다고 할리우드식의 지구를 넘어서 우주를 넘나드는 슈퍼히어로도 아니다. 대신 지극히 토속적인 무속 신앙의 하나로서 ‘방법(일종의 저주다)’을 쓴다. 그런데 첫 회에 임진희(엄지원)의 요구로 방법사인 백소진(정지소)가 살을 날려 죽게 한 김주환(최병모)이 온몸이 구겨진 채 죽은 장면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살은 무형이지만 드러난 결과가 살벌하다는 걸 <방법>은 그렇게 전제로 깔아놓고 시작한다.

 

그런데 백소진이 복수하려는 진종현(성동일)이라는 악귀가 쓰인 인물의 면면이 만만찮다. 무속인이었던 백소진의 어머니가 해준 굿으로 괴물 같은 악귀가 쓰인 진종현은 자신이 본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힘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그저 그랬던 SNS 사업에 ‘저주의 숲’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 포레스트를 굴지의 IT회사로 성장시킨다. 그런데 왜 하필 IT기업이고 ‘저주의 숲’일까.

 

여기에는 이 드라마가 하필이면 ‘방법’이라는 저주를 스릴러의 소재로 삼았는가에 대한 이유가 들어있다. ‘저주의 숲’은 SNS에 누군가의 사진에 저주의 글을 올리면 이에 동조하는 댓글과 ‘좋아요’가 덧붙여지는 방식으로 고안된 시스템이다. 그건 마치 ‘방법’의 IT 버전이랄까. 우리가 사는 디지털 세상의 어두운 면을 끄집어낸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연예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항상 지목됐던 ‘악플’ 역시 이 드라마 식으로 이야기하면 SNS를 통해 벌어지는 집단적인 ‘방법’에 가깝다. 한 사람에게 던져진 악플들은 집단적으로 쌓임으로써 심지어는 그 타깃이 된 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 드라마가 정의하고 있는 방법은 ‘사람을 저주해서 손발이 오그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네 디지털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폭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상호 작가는 무속 신앙에 등장하는 누군가를 저주하는 ‘방법’과 현재 우리 앞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혐오사회의 두 지점을 연결해 그 유사성을 은유하고 있다. 백소진이 ‘방법’을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세 가지, 즉 한자 이름과 인물사진 그리고 그 사람의 물건 또한 인터넷에서 악플 달린 페이지에 자주 등장하는 것들이 아닌가.

 

다소 피상적일 수 있는 이런 메시지를 실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액션 스릴러로 풀어내고 있다는 건 <방법>의 놀라운 접근방식이다. 진종현 회장이 혐오를 부추겨 돈을 벌은 악귀 쓰인 빌런이라면 그와 맞서는 백소진 역시 살을 날리는 방식으로 대항한다는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과연 살을 막기 위해 살을 쓰는 방식은 온당한 결과를 만들어낼까. <방법>이라는 드라마가 혐오사회에 던지는 살은 과연 먹힐까.(사진:tvN)

‘김사부2’, 이성경과 안효섭의 성장이 특별히 흐뭇한 건

 

무엇이 이들을 성장시켰을까. 돌담병원에 오기 전 서우진(안효섭)과 차은재(이성경)는 저마다의 트라우마와 문제들을 안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서우진은 어린 시절 동반자살 시도를 했던 부모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고 빚에 쫓기는 신세였다. 그래서 갑자기 응급실에 들어온 동반자살 시도 가족에 대한 치료를 하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서우진은 환자를 외면하지 못했다. 그의 트라우마는 환자 앞에 선 의사라는 그 위치가 극복하게 해줬던 것.

 

차은재는 수술실 울렁증이 있었다. 수술실만 들어가면 압박감에 토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도망쳐 나오기도 했던 것. 하지만 김사부(한석규)가 처방해준 약을 먹고 차은재는 울렁증을 극복했다. 문제의 근원은 뭐든 엄마가 뜻하는 대로 하고 싶지 않아도 의사가 되려 했고 억지로 수술방에도 들어가려 했던 데서 비롯됐다. 결국 차은재를 변화시킨 건 수술방에서 환자를 마주하고 선 자신이었다. 김사부는 “이건 네 수술”이라고 했고 차은재는 엄마 앞에서 “이건 내 인생”이라 외쳤다.

 

김사부가 처방해줬던 약이 플라시보였다는 걸 알게 된 후 차은재는 갈등했지만 결국 서우진이 요청한 수술을 약에 의지하지 않고도 해냈다. 그는 이미 김사부와 함께 여러 차례 수술방에 들어갔고 그런 경험들이 더해져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이 생겼다. 그는 결국 수술방 울렁증이라는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에서 다뤄지고 있는 서우진과 차은재의 성장기는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 패턴을 보여준다. 먼저 두 사람에게 어떤 위기 상황이나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갈등하며 힘겨워하지만 여기에 대해 김사부가 취한 조치가 그 문제를 해결하게 해준다는 패턴. 그런데 김사부의 조치는 무엇일까. 그는 직접 조언을 해주기보다는 어떤 경험을 통해 스스로 그 문제를 이겨낼 수 있게 해준다. 그건 다름 아닌 환자를 마주하게 하고 그 수술 경험을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수술방 바깥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나 문제들은 수술방 안에서 해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낭만닥터 김사부2>는 크게 보면 자본으로 운영되는 병원과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병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다. 그래서 큰 틀에서 서우진과 차은재의 문제들은 자본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빚에 쫓기는 청춘이 그렇고 부모가 정해놓은 부유하지만 가치를 찾기는 어려운 삶에 갇혀버린 청춘이 그렇다.

 

그 외부적 조건으로서의 자본 시스템이 야기한 문제들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환자의 생명을 구해내는 병원의 본질적인 일들이 수행되는 수술방에서 해결된다. 이것이 가능해지는 건 그 수술방에서 소중한 생명을 살려내는 그 손길들이, 자본화된 병원에서 생명 앞에 서게 되는 의사들의 본분을 되살려내기 때문이다.

 

차은재와 서우진이 수술방에서 환자들을 수술하며 느끼는 보람과 가치를 먼발치서 부러운 듯 바라보며, 박민국(김주헌)이 시키는 VIP를 위한 일들에 허덕이는 양호준(고상호)의 모습이 대비되는 건 그래서다. 돈이 아닌 의사로서의 보람과 가치는 스스로 하는 행위에 따라 비로소 찾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은재와 서우진의 성장을 보며 시청자들이 흐뭇해지는 건 그래서 단지 그들이 처한 어떤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의사로서의 본분을 지키는 그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병원의 존재가치가 그래야 한다 공감하기 때문이다. 김사부라는 시대의 사부와 그가 가치를 부여한 돌담병원 같은 진짜 병원 그리고 그 병원에서 성장하고 있는 제2, 제3의 김사부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청춘들의 성장기를 병원 밖으로 확장해 보면 자본화되어 움직이고 이미 태생부터 미래가 결정되는 사회 속에서 청춘들이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은유될 수 있다. 자신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일을 찾아 행하는 것. 거기서 진정한 보람과 삶의 의미 또한 찾아질 수 있을 테니.(사진:SBS)

‘본 대로 말하라’의 반전, 어쩐지 장혁을 밀실에만 둘 리가

 

우리는 지금껏 무엇을 봤던 것일까. OCN 토일드라마 <본 대로 말하라>에서 오현재(장혁)는 5년 전 폭발 사고로 인해 밀실에서 선글라스를 낀 채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는 인물로 등장한 바 있다. 그는 그 어둠 속에서 황하영(진서연) 광역수사대 팀장이나 차수영(최수영) 순경이 전해주는 현장과 교신하며 사건을 프로파일링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연쇄살인마 ‘그 놈’을 잡기 위한 오현재의 ‘계획’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어딘가로 꼭꼭 숨어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연쇄살인마를 끌어내기 위해 그는 ‘그 놈’의 살해방식 시그니처인 박하사탕을 현장에 두는 모방범 강승환(김흥래)의 정체를 알면서도 그를 거짓 자수하게 종용했다. 영웅이 되라며 부추김으로써 자수를 하게 해 ‘그 놈’을 자극해 세상 밖으로 끌어내려 했던 것.

 

이런 계획은 실제로 먹혀들었다. 박하사탕 살인마는 결국 경찰서를 찾아가 강승환을 살해했고, 나아가 그를 폄하했던 프로파일러 나준석(송영규)마저 생방송 중 공개 살해했다. 차수영을 자신과 교신하는 메신저로 끌어들인 것 역시 박하사탕 살인마를 자신의 본거지인 밀실까지 오게 만들기 위한 그의 계획이었다.

 

결국 밀실을 찾아온 박하사탕 살인마는 보지 못하고 걷지 못할 거라 여긴 오현재가 연기를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 오현재는 살인마를 제압하고 5년 전 약혼녀를 죽이라고 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물었다. 박하사탕 살인마의 이면에 또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 하지만 진실을 듣기도 전에 살인마는 급습한 황하영 팀장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런데 <본 대로 말하라>는 왜 굳이 오현재의 이런 속임수를 초반 에피소드로 풀어냈던 걸까. 그것은 이 드라마의 제목에도 담겨 있듯이 우리가 보는 것들이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어떤 오해나 편견 혹은 선입견에 좌우된다는 걸 드러내기 위함일 게다. 사실 차수영이 “왜 속였냐”고 물었을 때 자신은 속인 적이 없다는 오현재의 말은 되새겨보면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이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없고 또 걷지 못한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다만 어두운 밀실에서 선글라스를 낀 채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는 그 모습만으로, 또 그가 과거 폭발사고를 겪었다는 사실만으로 차수영도 또 우리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을 뿐이다.

 

즉 우리는 본 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보고 있어도 진짜를 보지 못하고 엉뚱한 추측에 휘말린다. <본 대로 말하라>는 물론 스릴러 장르를 통해 살인자를 추적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그들을 쫓는 과정에서 제대로 진실을 보려는 그 노력을 차수영이나 오현재라는 캐릭터를 통해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담고 있는 더 큰 메시지는 어떤 사안에서 진실을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감은 눈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장혁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하면서 저렇게 밀실에 휠체어에만 앉혀 놓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래도 초반에 그가 보여준 반전 스토리는 충분히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충격적으로 전한 면이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그의 행보에 대한 기대감 또한 이로써 더더욱 커지게 됐다.(사진:O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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