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부대’가 끄집어낸 두 가지 키워드, ‘함께’, ‘끝까지’

 

<가짜사나이> 가학성 논란 이후 군대를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은 일종의 선입견이 생겼다.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피, 땀, 눈물의 진정성이 보기 불편해진 것. 하지만 최근 방영되고 있는 채널A, SKY <강철부대>는 다르다. 무엇이 선입견을 깨고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한 걸까.

'강철부대'

<강철부대>, 가학성 논란 없었던 까닭

채널A, SKY <강철부대>는 그다지 좋은 기대감을 갖고 시작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지난해 유튜브 콘텐츠 <가짜사나이>가 만들었던 엄청난 화제성과 동시에 쏟아진 가학성 논란들이 선입견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훨씬 커진 스케일과 연예인까지 참여하는 출연진으로 돌아온 <가짜사나이> 시즌2는 혹독한 훈련 과정과 더불어 조교들의 조롱 섞인 말들까지 갖가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조교들의 사생활 논란까지 끄집어내져 대중들의 뭇매를 맞기 시작하면서 방송은 중단되었다. 이러니 <강철부대>에 선입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군대 리얼리티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은 첫 방송이 나가면서 일거에 사라져버렸다. 콘셉트 자체가 달랐다. <가짜사나이>는 일반인들의 훈련이 콘셉트지만, <강철부대>는 특수부대를 전역한 이들이 자신이 몸담았던 부대의 명예를 걸고 한바탕 대결을 벌이는 콘셉트였다. 이러니 ‘훈련 과정’ 따위는 존재할 수 없었고 당연히 가학적인 장면들은 희석되었다. 물론 군 부대원들끼리의 대결 자체가 혹독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첫 날부터 살얼음이 언 흙탕물 속에서 맨 몸으로 부딪치는 참호격투를 하고, 곧이어 달리기, 포복, 40킬로 타이어 들고 뛰기 그리고 10미터 외줄타기를 연달아 하는 각개전투로 대결을 벌였다. 그런데 그 날의 미션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조난상황이 연출된 어두컴컴해진 밤바다를 수영해 더미를 구출해오는 미션까지 치러졌다. ‘강철체력’이 아니면 불가능해 보이는 하루의 미션이었지만 출연자들 역시 보통은 아니었다. 황충원 같은 괴력을 보여주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박준우 같은 오랜 군 경력에서 나오는 놀라운 전략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어 보이는 미션을 승리로 이끄는 인물도 있었다. 즉 미션은 <가짜사나이>처럼 혹독한 것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를 수행하는 이들이 모두 베테랑들이었기 때문에 가학적인 느낌은 전혀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소속됐던 특수부대를 대표한다는 명예는 이들의 미션 대결을 훨씬 더 자발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박갈량, 황장군... 여성들도 환호하는 사기 캐릭터들의 향연

흥미로운 건 이 군대 서바이벌에 환호하는 이들 중에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두 가지 요인에서 기인된다. 하나는 여기 출연하는 인물들이 박갈량, 황장군으로 불릴 정도로 분명한 저마다의 캐릭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박갈량으로 불리게 된 박준우(박군)는 거구에 괴력을 가진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왜소한 체격의 소유자였지만, 매 미션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전략이 주효함으로써 승리로 이끌어내는 인물이었다. 박준우라는 캐릭터는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물론 트로트 가수 박군으로 활동하며 남다른 삶의 질곡이 잘 알려져 이미 여성 팬덤들이 적지 않았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지만, 전략을 쓰는 그의 존재는 군 경험이 없는 여성들 또한 몰입하게 만든 이유가 됐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조사 결과 <강철부대>는 비드라마 부문 TV화제성 1위를 차지했고, 박준우는 출연자 화제성 1위를 기록했다. 

 

남다른 피지컬로 두 사람이 여러 차례 해머로 내려쳐야 겨우 열리는 문을, 혼자 한 방에 열어버리는 진풍경을 만든 황충원은 ‘황장군’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고, 미션마다 엄청난 근성을 보여주지만 마치 아이돌 같은 준수한 외모로 등장부터 화제가 됐던 육준서도 이미 팬덤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젊은 팀원들로 구성된 SDT 팀의 날쌘돌이 강준이나, 참호에서 벌어진 타이어 격투에서 박준우와의 명대결을 펼친 UDT 팀의 이종격투기 선수 김상욱 등등 <강철부대>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매 미션마다 쏟아냈다.

 

흥미로운 건 이 캐릭터들이 벌이는 ‘대테러 침투작전’이나 ‘야간연합작전’은 마치 게임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레인보우식스나 배틀그라운드 같은 일인칭 슈팅 게임(FPS)을 해본 게임 유저라면 마치 그 ‘실사판’을 보는 것 같은 것. 이런 게임적 요소들은 <강철부대>의 팬층이 훨씬 폭넓어지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다. 

 

‘함께 끝까지 간다’는 메시지에 담긴 울림

<강철부대>가 특히 큰 울림을 남긴 미션들은 ‘탈락팀’이 결정되는 데스매치에서였다. 250킬로 타이어를 네 사람이 계속 뒤집어가며 300미터를 이동하는 첫 번째 데스매치는 그 어느 팀도 해내지 못할 거라 여겨졌지만, 놀랍게도 모든 팀이 완주를 했다. 물론 이미 탈락팀으로 결정되어버린 상황 속에서도 해병대 수색대팀은 중도 포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끝까지 하는 모습에 다른 경쟁 팀들마저 박수를 보냈다. 

 

두 번째 데스매치로 치러진 40킬로 산악행군 미션은 한편의 영화 같은 울림을 줘 스튜디오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연거푸 데스매치를 두 번씩이나 치르게 된 SDT 팀이 그 영화 같은 미션의 주인공이었다. 시작 전부터 정상적인 몸 상태와 체력이 아니었던 한 대원을 다른 팀원들이 끝까지 함께 도와주고 밀어주면서 완주하는 광경은 커다란 감동을 선사했다. 

 

이들 데스매치들이 큰 감동을 선사한 건 거기 담긴 메시지 때문이었다. ‘함께’ 그리고 ‘끝까지’ 한다는 그 메시지는 무한 경쟁의 현실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게도 주는 울림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승리만이 목적이 아니라, 더뎌도 다함께 함으로써 끝까지 가는 것. 그래서 패배해도 모두의 박수를 받는 광경은 마치 한 편의 우화처럼 시청자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군대 소재 프로그램은 어딘지 불편하다? <강철부대>는 같은 소재라고 해도 어떻게 접근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좋은 예가 되었다. 다소 자극적일 수 있는 미션과 대결을 벌여도 결국 중요한 건 납득될만한 이유가 담겨져야 한다는 걸 이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글:시사저널, 사진:채널A)

'모래시계'에서 '오월의 청춘까지',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 확장

 

1995년 1월부터 2월까지 밤거리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밤 9시50분부터 한 시간 동안은 거리가 텅텅 빌 정도였다. 당시 대중들의 시선은 한 TV드라마에 쏠려 있었다. <모래시계> 신드롬이었다. ‘귀가시계’라고 불릴 만큼 큰 인기를 끌었던 <모래시계>는 최고시청률 65.7%를 기록했을 정도로 세간의 화제가 되었고, 그 해의 백상예술대상은 TV부문 대상을 비롯해 작품상, 연출상, 남자 최우수연기상, 극본상, 남자 신인연기상을 모두 <모래시계>에 안겼다. 

 

드라마 '모래시계'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그간 TV에서는 거의 금기시 되다시피 했던 광주 민주화운동의 실제 영상들이 드라마 속 장면으로 시청자들에게 전해졌다는 점이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당시의 끔찍했던 장면들이 알려지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많은 대중들은 <모래시계> 속에 담긴 광주의 처참한 장면들이 드라마가 아닌 실제 영상이라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건 1980년 당시 TV뉴스가 했던 보도들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는 1980년 5월27일 자 KBS 9시 뉴스는 앵커의 이런 멘트로 시작한다. “광주사태는 발생 10일 만에 진압돼서 평정되어가고 있습니다. 광주시민을 돕기 위한 생활필수품 공급을 비롯한 각종 구호작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북한 괴뢰는 여전히 광주사태에 대한 선동에 광분하고 있습니다...” 그 뉴스는 민주화 운동에 나선 시민들을 폭도로 부르고 이들이 북한의 사주를 받은 것인 양 날조하면서 계엄군이 마치 이들로부터 위협에 시달리는 평범한 시민들을 구원한 이들로 둔갑시키고 있다. 당시의 국내 언론이 얼마나 독재정권의 통제 하에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일부 언론인들이 정부에 반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지만 이들은 대부분 해고되거나 좌천되는 일을 겪었다. 이러니 광주 민주화운동은 그 진실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80년 광주 당시의 생생한 영상들이 남을 수 있었던 건 한 외신기자 덕분이었다. 북부독일방송 도쿄지국 소속 기자였던 위르겐 힌츠페터와 헤닝 루모어가 서울에서 한 택시운전사와 함께 광주로 잠입해 들어가 현장을 취재한 영상이다. 힌츠페터는 5월19일 광주에 잠입해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생생히 카메라에 담았고 그 필름을 과자 통에 숨겨 독일 본사로 보냈다. 이 영상이 북부독일방송 뉴스 프로그램에 방송되면서 전 세계에 광주의 실상이 알려지게 되었다. 힌츠페터는 이후에도 또 다시 광주에 잠입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이 영상은 향후 광주의 참상을 고발하는데 중대한 힘을 발휘했다. 

 

1995년 <모래시계>가 당시 광주 민주화운동의 장면들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건 1993년 첫 번째 문민정부로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달라진 정국과 무관하지 않다. 김영삼 정권은 1995년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전두환과 노태우 전직 두 대통령을 반란죄, 횡령, 살인죄로 체포하고 사형을 구형했다. 1997년 4월17일 사법부는 전두환에게 내란과 내란 목적 살인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국가가 당시까지만 해도 ‘광주 사태’라는 잘못된 표현으로 지칭되던 5.18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이었다. 당시 대법원 판결문에는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방위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제 광주 민주화운동은 영화의 공공연한 소재로 다뤄질 수 있게 됐다. 1996년 장선우 감독이 <꽃잎>으로 5월 광주의 아픔을 담았고, 이후에도 <화려한 휴가(2007)>, <26년(2012)>, <택시운전사(2017)> 같은 작품들이 대중들의 지지와 환호를 받았다. 특히 전 세계에 광주의 실상을 알렸던 힌츠페터의 이야기를 담은 <택시운전사>는 천만 관객을 훌쩍 넘기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이제 5.18 광주는 더 이상 문화콘텐츠 속에서도 금기시될 소재가 아니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이 일어나면서 최근에는 드라마들도 80년대 민주화운동이나 5.18광주를 소재로 담을 정도로 당대의 진실은 익숙한 일이 되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KBS <오월의 청춘> 같은 드라마는 80년 5월 광주를 배경으로 청춘들이 마주하게 된 설렘과 아픔을 담아내고 있다. 

 

드라마 '오월의 청춘'

이처럼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해진 5.18민주화운동이 최근 미얀마에서 군부 구데타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비극을 통해 다시금 그 의미가 재조명되고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미얀마 시민들이 ‘군부 쿠데타 후 인상이 좋아진 나라’로 89%가 한국을 꼽았고, 그 이유로 5.18민주화운동을 들었다고 한 것. 즉 우리가 겪은 5.18민주화운동이 군인들의 군홧발에 짓밟히고 있는 미얀마 시민들에게는 하나의 희망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신군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구속하고 저항하는 광주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던 광경에서, 미얀마 시민들은 미얀마 군부가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을 구속하고 시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미얀마 시민들은 그래서 <택시운전사>를 보라고 권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미얀마 시민들이 5.18민주화운동을 하나의 희망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저 뿌듯한 일로만 다가오진 않는다. 그것은 <택시운전사>의 주인공이었던 힌츠페터 같은 외신기자의 노력으로 전 세계에 광주의 실상이 알려진 것처럼, 우리는 과연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운동’을 얼마나 제대로 조명하고 알리고 있는가 하는 반성이 앞서기 때문이다. 물론 적지 않은 양의 미얀마 관련 보도가 나오곤 있지만, 그 실상을 알 수 있는 분석보도보다 본질을 흐리는 자극적인 장면이나 기사들이 많았다는 게 미디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1980년 광주는 지금 2021년 미얀마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미얀마 시민들은 80년 광주의 참상이 그 후 민주화 운동을 거치며 그 진실이 알려지게 된 그 과정들에서 희망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힌츠페터 같은 외신기자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만들어진 국제적인 연대가 존재했다. 이제 우리도 미얀마 시민들의 힌츠페터가 되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건 또한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이어가는 일이기도 하다.(글:이데일리, 사진:SBS,KBS)

‘미나리’에 담긴 시대정신, 윤여정이 해석해낸 ‘미나리’

 

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에 출연한 윤여정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국내 최초이자, 자국어로 연기한 아시아권 배우 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윤여정은 어떻게 <미나리>를 통해 이런 성과들을 만들 수 있었을까.

영화 '미나리'

아카데미에서도 빛났던 윤여정

결국 윤여정이라는 이름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서 불렸다. 공교롭게도 시상자는 <미나리>의 제작자이기도 한 브래드 피트였다. 전 연도에 그 상을 수상한 다른 성의 배우가 시상하는 아카데미의 전통에 따라, 작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던 브래드 피트가 시상자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윤여정은 시상 소감을 하기에 앞서 “드디어 우리가 만났다”며 “그런데 우리 영화 찍을 땐 어디 있었냐?”는 브래드 피트에게 던지는 유쾌한 농담으로 좌중을 빵 터트렸다. 그리고 윤여정은 자신의 이름을 갖고 또 한 번 재치 있는 농담을 던졌다. “저는 윤여정인데 유럽 분들이 제 이름을 ‘여여’라고 하거나 ‘정’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모두 용서하겠다.” 지난 번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특히 고상한 척하는(Snobbish) 영국인들이 나를 알아봐주고 인정해줘서 감사하다”는 솔직함과 위트가 섞인 농담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윤여정다운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이 상을 받은 것이 운이 좋아서였다며 다른 후보자들에 대한 예우도 빼놓지 않았다. “나는 사실 경쟁을 믿지 않는다. 글렌 클로즈 같은 대배우와 어떻게 경쟁을 하겠나.” 대신 다섯 후보들이 다 각자의 영화에서 최고였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또 자신의 두 아들이 “일하러 나가라”고 해서 그 덕에 열심히 일했더니 이 상을 받게 됐다는 사적이면서도 공감 가는 이야기와, 자신의 첫 감독이었던 고 김기영 감독에 대한 존경의 마음도 전했다.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 소식은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타전됐다. 로이터 통신은 윤여정이 한국배우 최초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데 이어 수상까지 이뤄냈다며 그가 수십 년 간 한국 영화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주로 재치 있으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큰 캐릭터를 연기했다고 밝혔다. AP통신은 작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배우 수상에는 불발됐지만 올해에는 윤여정이 상을 받았다고 전했고, AFP통신은 윤여정이 수상소감에서 글렌 클로즈에 경의를 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윤여정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화제가 된 건, 특유의 유머감각과 더불어 할 말은 하는 ‘직설적인 화법’에 상대방에 대한 예우까지 갖추는 모습 때문이었다. 윤여정은 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범죄가 늘고 있어 미국에 오는 걸 아들이 걱정한다는 이야기로 이 심각성을 전하기도 했고, 시상식 후 치러진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도 ‘무지개’를 언급하며 소신을 밝혔다. “심지어 무지개도 7가지 색깔이 있다. (무지개처럼) 여러 색깔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고 백인과 흑인, 황인종으로 나누거나 게이와 아닌 사람을 구분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따뜻하고 같은 마음을 가진 평등한 사람이다.”

 

윤여정을 통해 다시 보이는 <미나리>의 가치

<미나리>는 리 아이작 정 감독의 작품이다. 정이삭이라고도 불리지만 한인 2세인 그는 미국인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제작자가 브래드 피트다. 미국영화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미국영화가 힘을 발휘한 부분은 ‘미국적인 문화’가 담겨서가 아니라 오히려 ‘한국적인 문화’가 전해져서다. 그건 다름 아닌 순자(윤여정)라는 한국에서 딸 가족을 위해 고춧가루며 멸치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이역만리를 찾아온 할머니를 통해서다. 

 

<미나리>는 제이콥(스티븐 연)이 아칸소로 이주해 농장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특별히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있지는 않다. 다만 황무지나 다름없는 그 곳을 일궈 농장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이 가족이 맞닥뜨리는 위기의 순간을 잔잔한 카메라로 포착한 영화다. 농장에 들어가는 돈을 벌기 위해 제이콥과 모니카(한예리)는 병아리감별사로 공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고, 아이들을 돌봐주기 위해 한국에서 온 순자는 몸이 좋지 않은 데이빗(앨런 킴)과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그런데 어린 데이빗이 보기에 이 할머니는 여느 할머니 같지 않다. 쿠키를 굽기보다는 화투를 치고, 욕도 잘 하고, 남자팬티를 입고 잔다. 그런데 진짜 다른 점은 힘겨운 상황들 속에서도 낙천적인 모습이다. 가난해 트레일러에서 살고 있는 꼴을 보여주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딸에게 “바퀴달린 집에서 사니 재밌다”고 말해주는 그런 사람. 

 

어떻게든 땅을 일구고 물을 대 농장을 만들어내 큰돈을 벌려는 제이콥과도 순자는 사뭇 다르다. 그는 데이빗을 데리고 산책을 하다 어느 물가에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씨를 뿌린다. 그러면서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고, 부자든 가난한 자든 다 같이 먹을 수 있으며 건강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물을 대서라도 농장을 일궈 큰돈을 벌려는 제이콥의 다분히 미국식 자본주의적 사고방식과, 그저 물가에 씨를 뿌려두고 누구나 뜯어 먹을 수 있게 미나리가 자라게 해주는 순자의 자연주의적이고 생태주의적인 사고방식은 그렇게 극명하게 대비된다. 

 

즉 <미나리>는 순자가 조연이지만, 사실상 순자의 메시지가 가장 중요한 영화다. 제이콥으로 대변되는 한국식의 가부장적인 모습과 미국식의 자본주의적인 모습이 결합된 삶의 방식에, 순자라는 지혜롭고 슬기로운 한 인물이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순자를 자기만의 색깔로 해석하고 표현해낸 윤여정이야말로 지금의 <미나리>의 성과를 만든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전형성을 거부한 배우, 윤여정의 미나리 같은 삶

윤여정은 어떻게 순자를 그토록 생명력 강하고, 유머러스하며, 한국적인 정이 가득하면서도, 트렌디하고 쿨한 할머니(K할머니라고도 불리는)로 그려낼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그가 작품들을 통해 그려온 배우로서의 여정에 담겨 있다. 그는 이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소감에도 거론했듯, 김기영 감독의 <화녀>를 통해 데뷔했다. 흔히들 여배우라고 하면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스타로서 시작하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그는 ‘악녀’로 데뷔한 셈이다. 결혼 후 미국 생활을 하다 돌아와 처음으로 한 작품도 박철수 감독의 <어미>로, 이 작품에서 윤여정은 딸을 자살하게 만든 인신매매범들을 처단하는 엄마 역할을 연기했다.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에서는 욕망에 충실한 어르신 역할을 연기했고,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에서는 성매매를 하는 이른바 ‘박카스 할머니’라는 파격적인 연기에 도전한 바 있다. 물론 윤여정은 더 넓은 스펙트럼의 다양한 연기를 해왔던 게 사실이지만, 늘 틀에 박힌 전형성을 거부하는 역할을 연기했던 배우였다. ‘K할머니’라 불리는 <미나리>의 순자가 전형성을 벗어난 우리 시대의 어르신상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 역시 윤여정의 이런 특별한 연기여정의 자연스러운 귀결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제작 현장에서 윤여정은 ‘배우 같지 않은 배우’로 통한다. 최고 선배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성실하게 임하며, 특유의 유머로 그 힘겨운 작업을 즐겁게 만들고, 틀에 박힌 전형성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 배우. 그의 배우로서의 삶은 그래서 미나리를 닮았다. 자신도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지만 주변도 함께 살리는 그런 존재. 그 삶에 대한 자세들이 <미나리>라는 작품 속 순자를 통해 그려진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건 우리 시대가 처한 많은 위기들을 넘어서기 위한 슬기로운 지혜로 다가오는 면이 있다. (글:매일신문, 사진:영화'미나리')

드라마, 교양 속으로 들어온 범죄

 

최근 범죄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 교양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실제 사건들을 가져와 허구로 그려낸 드라마는 물론이고, 범죄를 소재로 하는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의 교양 프로그램이 그렇다. 무엇이 이런 대중문화의 트렌드를 만들고 있을까.

 

지금 드라마는 범죄 스릴러의 시대

바야흐로 범죄 스릴러의 시대라고 할만하다. 최근 드라마 중 범죄스릴러 장르는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리하게 됐다. tvN <마우스>, JTBC <괴물>, SBS <모범택시> 같은 작품들은 모두 19금 수위의 범죄스릴러지만,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거머쥐었다. <마우스>가 최고 시청률 6.6%(닐슨 코리아)를 기록했고, <괴물> 역시 5.9%의 높은 시청률로 종영했다. <모범택시>는 무려 16%의 최고시청률을 냈다. 

 

SBS 드라마 '모범택시'

과거 범죄 스릴러가 다소 마니아적인 장르라 여겨졌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최근 드라마의 이런 변화는 놀라울 정도다. 2007년 사극을 쓰던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내놨던 MBC <히트>는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를 가져왔지만 생각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시청률이 월등히 높은 18.5%로 종영했지만 당시에는 히트작가들이 쓴 작품 치고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작품으로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초반 범죄 스릴러를 본격적으로 그려나가다 반응이 좋지 않자 중반 이후부터 인물들 간의 멜로가 부각된 건 이 드라마가 가진 한계였다. 2011년 김은희 작가가 쓴 SBS <싸인>이 살벌한 연쇄살인범들을 등장시켜 지상파에서도 범죄스릴러가 가능하다는 걸 확인시켰고, 이후 이 작품으로 주목받는 김은희 작가는 <유령>, <쓰리데이즈> 같은 작품을 거쳐 tvN <시그널> 같은 범죄 스릴러의 명작을 내놨다. tvN과 OCN 같은 케이블 채널은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를 본격화시켜준 토양을 제공했다. 지상파에서는 다루기 힘들었던 잔혹한 수위의 범죄들이 다뤄졌고 점점 시청자들에게 익숙하게 되면서 이 흐름은 지상파로까지 이어졌다. <시그널>에 이어 <갑동이>, <보이스>, <터널>, <나쁜녀석들> 같은 케이블 채널의 범죄스릴러가 수위를 높이면서, MBC <검법남녀>, <나쁜 형사>, SBS <리턴> 같은 지상파 범죄스릴러도 등장하게 된 것. 

 

이러한 흐름 위에서 최근 넷플릭스, 왓챠 같은 플랫폼을 통해 더 강력한 해외의 범죄스릴러들이 소개되면서 이제는 19금을 표방하는 우리네 작품들도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보다 과감한 표현들이 가능해지면서 작품들은 단지 자극만이 아니라 깊이나 메시지까지 담게 됐다. <마우스>는 뇌 이식이라는 장치를 활용해 죄의식이 없는 사이코패스 가해자들을 어떻게 처벌하고 단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았고, <괴물>은 한 마을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실종 살인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진짜 괴물이 어떤 욕망에서 탄생하는가를 들여다봤다. <모범택시>는 다분히 오락적인 작품이지만,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끌고 와 ‘사적 복수 판타지’를 더해 넣는 방식으로 법이 정의를 제대로 구현해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최근 범죄스릴러의 폭증은 우리네 장르물의 진화와 더불어, 최근 우리 사회가 마주한 정의에 대한 갈증이 만나면서 생겨난 결과다. 

 

교양 속으로 들어온 범죄

범죄는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주요 소재로 등장했다. tvN <알쓸범잡(알아두면 쓸데없는 범죄 잡학사전)>은 대표적이다. tvN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스핀오프로 만들어진 이 프로그램은 잡학 중에서도 ‘범죄’를 주 소재로 가져왔다. 이 아이디어는 다분히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그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특집으로 구성해 박지선 교수부터 이수정 교수, 권일용 프로파일러 등이 출연해 다양한 실제 범죄 이야기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기 때문이다. <알쓸범잡>은 여기 출연했던 박지선 교수는 물론이고 정재민 법무심의관과 물리학 박사 김상욱 교수 그리고 윤종신과 장항준 감독으로 출연진이 꾸려졌다. 이 프로그램이 말해주는 건 범죄가 남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이나 유영철처럼 세상을 충격에 몰아넣었던 희대의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들은 물론이고, 가습기 살균제나 대구 지하철 참사 같은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또한 유관순 열사의 만세운동이나 제주 4.3사건 같은 역사적 사건들 역시 법정기록이나 판결문으로 다시 보는 흥미로운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알쓸범잡>이 이처럼 범죄라는 특정 소재를 가져와 여행과 토크쇼가 더해진 형식으로 풀어내는 프로그램이라면, SBS <당신이 혹하는 사이>는 벌어진 사건에 대한 ‘음모론’을 소재로 가져와 다양한 추론들을 더하는 방식으로 범죄를 다루고 있다. 정규 편성되어 첫 방송된 10년 전 벌어진 강남경찰서 강력반 막내 형사의 사망사건의 경우, 단순 음모론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당시 제대로 수사되지 않고 종결처리된 사건에 대한 의혹 제기와 재수사 촉구까지 나간 내용을 담았다. 너무 많은 의혹에도 서둘러 자살 처리한 데 앞장섰던 인물이 2018년 버닝썬 사건에 다시 등장하는 놀라운 사실을 전하면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또 다른 유사사건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 바로 이러한 정당한 의혹을 제기한다는 지점은 <당신이 혹하는 사이>가 단지 음모론을 재생산하는 프로그램과는 다르다는 걸 보여준다. 

 

드라마는 물론이고 교양프로그램에서도 범죄가 주요 소재로 자리하게 된 건, 최근 갈수록 잔혹해지는 범죄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그만큼 높아져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정인이 사건’은 물론이고 ‘N번방 사건’, ‘노원구 일가족 살인사건’ 등등 충격적인 범죄들이 매일 같이 사회면을 채우고 있는 현실이 그것이다. 드라마가 이들 사건들로 인해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들에 반해, 후회나 죄책감조차 없이 상응하는 처벌을 받지 않는 가해자들을 허구를 통해서나마 단죄하는 카타르시스를 전한다면, 교양 프로그램들은 그 충격적인 사건의 진실에 접근함으로써 이를 예방하거나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를 들여다보려 한다. 안타깝고 씁쓸한 일이지만 그게 어느 쪽이든 우리가 처한 불안한 사회를 TV는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글:시사저널,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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