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전도연의 눈물, 류준열의 허함에 공감했다면

인간실격

“안녕하세요. 선생님.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만나고온 그 날부터 인간의 자격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가족, 친구 동료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자격. 자기 이름 당당히 걸고 세상의 룰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런 온전한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세상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분노하고 절망할 자격.”

 

JTBC 토일드라마 <인간실격>은 대필작가였지만 무슨 일인지 지금은 가사 도우미가 되어 일하고 있는 부정(전도연)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첫 화의 부제는 ‘인간의 자격’이다. 어쩌다 대필작가가 됐는지 그러다 왜 지금은 가사 도우미 일을 하는지 이유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부정이 처한 상황은 그 내레이션과 더해져 이 인물이 왜 절망감을 느끼는가를 잘 말해준다. 

 

그런데 이 내레이션과 더불어 보여지는 영상은 한 여성과 모텔에 들어온 강재(류준열)의 모습이다. 본인은 역할 대행 서비스를 한다고 하고 있지만, 그 첫 장면이 말해주듯 그가 하는 일은 호스트와 그리 다르지 않다. 정해진 시간 동안 역할을 대행해주고 그 시급을 받는 일을 한다. 부정의 내레이션이 깔리며 강재의 일상이 겹쳐지지만, 이 서로 다른 두 삶의 겹침은 그다지 이물감이 없다. 

 

대필작가였다 그것마저 박탈된 부정의 삶이나, 진짜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는 강재의 삶이나 비슷하다. 저 부정의 내레이션처럼 그들은 ‘자기 이름 당당히 걸고 세상의 룰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런 온전한 인간은 아니다. 그래서 ‘세상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분노하고 절망할 자격’도 없다 치부된다. 

 

부정은 지나(이세나)의 집을 청소하고 정리해주는 가사도우미 일을 하러 그 아파트에 갔다가 주민들이 쓰는 사우나에 들어간 일로 다른 주민으로부터 봉변을 당한다. 직접적으로 갑질을 당한 건 아니지만, 관리인에게 ‘아무나’ 사우나 출입하는 이들을 막아달라며 은근히 ‘저질’이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그런데 부정이 말하는 ‘인간의 자격’, 즉 사우나도 주민들은 들어가지만 가사도우미는 들어갈 수 없고, 글을 써도 대필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밝힐 수 없게 만드는 그 자격은 무엇에 의해 주어지는 걸까. 그건 다름 아닌 자본화된 세계에서 돈의 논리로 만들어지는 것들이다. 대필작가를 고용한 작가는 돈을 지불했기에 그 자격을 갖고, 역할대행을 요구한 이들도 시간 당 돈을 지불해서 그 자격을 갖는다. 나아가 사우나를 쓰는 일도 그 집을 소유해서 가능한 자격이다. 

 

자본화된 세상에서 인간의 자격은 심지어 죽은 후에도 이어진다. 강재가 빌려준 돈을 갖고 두 달 전 사라졌다 자살한 사체로 돌아온 정우(나현우)의 죽음은, 돈이 없고 또 돈을 내줄 가족이나 친구조차 없어 떠나는 마지막 길을 쓸쓸하지 않게 갈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같이 동반자살한 여자는 최소한 엄마가 있어 울어주고 장례를 치러주지만, 정우는 그런 가족도 없다. 다만 그 쓸쓸한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딱이(유수빈)와 강재가 있을 뿐이다. 

 

모든 게 자본화된 세상에서 가진 자들만이 자격이 주어지는 세상. 하지만 부정도 강재도 이것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다. 모든 역할 대행을 다해도 장례 역할 대행은 못할 짓이라며 갖가지 장례비용을 얘기하는 강재도 차마 죽은 정우의 사체를 그냥 방관하지 못한다. 정우의 죽음이 너무 ‘허하다’고 말하는 딱이 이야기를 듣다 강재는 “비용이 얼만데?” 하고 묻는다. 돈이 없어도 최소한 저렇게 쓸쓸하게 보내는 건 아니라 생각하는 것. 강재는 결국 제 돈을 털어 장례식을 해주기로 한다. 

 

대필작가로서 아마도 선생님이라 불리는 그가 대리해준 이에게 악플을 달았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출석요구서를 받은 부정은 절망감에 빠진다. 대필작가여서 ‘세상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분노하고 절망할 자격’을 갖지 못했기에 누군가에 대한 항변이 ‘악플’로 치부되는 현실을 마주하게 돼서다. 하지만 절망감에 아버지 창숙(박인환)을 찾아간 부정은, 박스를 주우러 다니며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자식 앞에서는 “괜찮다”고 말하는 전혀 괜찮지 않은 삶을 확인한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돈’의 논리로 겨우 주어지는 ‘인간의 자격’을 실감하며 부정은 절망감을 느낀다. 부정은 애써 절망감을 숨겨왔지만, 자식은 부모보다 잘 살아야 맞는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에 무너져 내린다. “아부지. 나는 실패한 거 같아. 나 실패한 거 같아요... 그냥 그냥 내가 너무 못났어.” 그래도 “너는 내 자랑”이라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부정은 애써 부인한다. “나 자랑 아냐 아버지. 자랑이라고 하지 마. 나 그냥 너무 나빠진 거 같아...” 

 

그는 열심히 노력해 왔지만 자신이 아무 것도 되지 못했다는 것에 절망한다. “아버지 나는 아무 것도 못됐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 것도 못됐어. 결국 아무 것도 못될 거 같아요. 그래서 너무 외로워 아버지. 아버지도 있고 정수도 있는데 그냥 너무 외로워. 그냥 사는 게 너무 창피해.” 

 

부정의 눈물이 가슴을 후벼 파는 건 그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로 다가오고 있어서다. 적어도 우리 모두는 부모 앞에서 ‘자랑’이었지 않던가. 무언가가 될 거라 믿었던 자랑. 하지만 자본화된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때론 많은 걸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간의 자격’조차 없는 그런 삶을 마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지만, 세상은 그렇게 우리에게 무례하게 군다. 

 

그런 부정이 버스 안에서 우연히 손수건을 내준 강재의 옷소매를 잡는 장면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가진 어떤 위로의 예감을 갖게 만든다. 저마다의 돈의 가치로 ‘자격’을 부여하고, 심지어 ‘인간실격’ 판정을 내리는 현실이지만, 그 안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인간적인 그 진짜 자격을 확인해주는 이들의 모습이 보고 싶어져서다. 그것은 또한 스스로 ‘실격’이라 대우받는, 사실은 결코 실격이 아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자격 있는 진짜 삶의 가치를 드러내주는 것일 수 있을 테니.(사진:JTBC)

‘D.P.’라는 역작의 탄생, 한국드라마가 놓쳤던 영역도 돌아봐야

D.P.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 조석봉 일병(조현철)은 피칠갑을 한 채 그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고 방아쇠를 당겼다. 군대 내에서 지속적으로 가해진 가혹행위와 폭력의 끝은 파국이었다. 그렇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는 끝을 맺었다. 그 엔딩이 마치 내 머릿속으로 총알이 관통한 듯 얼얼하게 느껴진 건, 이미 우리가 그런 일들을 뉴스를 통해 접했던 사실이 뒤늦게 떠올라서다. 그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했던가. ‘또 탈영인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지 않았던가.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라고 말하며 파국으로 향했지만, 이러한 방관들은 그 후로도 같은 군대의 부조리와 폭력을 발생시켜왔다. 드라마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 붙여져 있는 쿠키영상에서 다시금 조석봉 일병이 했던 그 말을 남긴 채 울려 퍼지는 총성이 그 현실을 그대로 끄집어낸다. 그래서 우리의 방관은 그저 지나친 게 아니고, 그 폭력과 부조리에 대한 암묵적인 동조가 됐던 셈이다. 뉴스에 살짝 보도된 후, 늘상 있었던 소동 정도로 치부하며 사라지곤 했던 그 사건의 실상과 그 중대함을 들여다보지 않았던, ‘뭐라도 하지 않은’ 우리들의 뒤통수가 더 얼얼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드라마조차도 군대 이야기는 피했다. 애초 <D.P 개의 날>이라는 김보통 작가의 웹툰이 화제가 되면서, 이를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하면 어떨까 하는 목소리들이 있었지만 누가 군대 이야기를 보냐는 말에 묵살되곤 했던 게 우리네 콘텐츠업계가 갖고 있던 선입견과 편견의 장벽이었다. 드러내놓고 말하진 않아도 여성 시청자 타깃을 메인으로 삼는 드라마 제작 관행은 군대 소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외면 받게 만들었다. 

 

하지만 <D.P.>가 제작되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사실은 뒤늦게 드라마업계의 뒤통수를 근질거리게 만들고 있다. 군대의 부조리를 마치 사회에서 뚝 떨어진 어떤 공간에서 벌어지는 특정한 사실이라며 외면하고 방관했던 현실과, 그 현실을 역시 문제의식이 아니라 상업적인 판단으로 외면했던 드라마업계의 현실이 다르지 않아서다. 넷플릭스가 <D.P.>를 드라마로 제작해 내놓았다는 사실은 그래서 한국드라마가 그간 지상파 개념(케이블이나 종편도 마찬가지지만)으로 갖고 있던 선입견과 편견의 뒤통수를 때리는 면이 있다. 

 

사실 이런 일은 작년 4월 넷플릭스가 공개해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던 <인간수업>과도 맞닿아 있다. 고등학생들이지만 범죄의 길에 들어선 이들이 적지 않은 현실 속에서 그간 한국드라마들이 그려왔던 학생들의 세계가 너무 단편적이고 나아가 왜곡과 방관까지 더해져 있다는 걸 이 드라마가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청소년 성매매는 실제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 문제지만, 한국 드라마들이 그리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그걸 본격적으로 직시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 

 

물론 넷플릭스가 <인간수업>이나 <D.P.> 같은 작품을 내놓은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겠다는 그런 의도는 결코 아닐 게다. 다만 이런 진지한 고민을 에둘러 가지 않고 직설적으로 담아내려한 작품들에 관심을 보였고, 그것이 또한 로컬로서의 한국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게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그건 지금껏 한국드라마가 관성적으로 갖고 있던 콘텐츠에 대한 소재적, 표현적 제한이나 금기 같은 것이 글로벌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는 새로운 환경 안에서는 그 자체로 한계나 장벽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넷플릭스가 그런 것처럼 지금껏 제한이나 금기로 여겨져 다뤄지지 않았던 영역들이 한국드라마의 글로벌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 

 

<D.P.>는 그래서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한국드라마에 적잖은 시사점을 제시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른바 IP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여전히 과거적 기준으로 가능성 있는 IP들이 사장되거나 외면 받는 현실을 넘어서야 한국드라마의 미래가 그려질 거라는 걸 이 작품이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다.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라는 조석봉 일병의 일갈은 그래서 마치 한국드라마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드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지금은 변환기다. 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려면 외면하고 방관했던 걸 이제 다시금 들여다봐야 한다. 구시대적 관행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 (사진:넷플릭스)

‘갯마을 차차차’, 캐스팅과 로케이션만으로도 힐링되는 휴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홍반장’이 돌아왔다. 우리에게는 안타깝게도 너무 이른 나이에 떠나버린 고 김주혁으로 기억되는 영화 <홍반장>이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로 돌아왔다. 그런데 김주혁이 했던 홍두식 반장 역할을 이 드라마에서는 김선호가 맡게 됐다. 과거 KBS <1박2일>의 맏형으로 ‘구탱이형’이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매주 따뜻한 모습을 보여줬던 김주혁의 역할을, 현재 <1박2일> 멤버로서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김선호가 맡아서인지 이것이 그저 우연으로만 여겨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1박2일> 어딘가에서 봤을 법한 바닷마을 공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갯마을 차차차>는 이처럼 캐스팅과 로케이션만으로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면이 있다. 제목에 담긴 것처럼 저 멀리 펼쳐지는 파란 바다와 파란 하늘 그리고 둥둥 떠 있는 구름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코로나19 때문에 어딘가로 떠났던 기억이 가물가물한 분들이라면 그 풍경이 선사하는 편안함에 먼저 마음을 빼앗긴다. 그 공간을 배경으로 역시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신민아와 김선호가 캐스팅되어 서 있다. 또 첫 회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이상이도 곧 모습을 보일 예정이다. 이러니 로케이션과 캐스팅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설렐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갯마을 차차차>가 시청자들을 힐링시키게 만드는 캐스팅, 로케이션은 끝이 아니라 이 이야기의 시작점일 뿐이다. 진짜 힐링은 드라마 속 인물 캐릭터와 이들이 그려나갈 휴먼드라마의 따뜻한 서사로부터 나올 예정이다. 고깃배를 타고 보무도 당당하게 돌아오는 첫 등장에 어부인가 싶었는데, ‘홍반장’으로 불리며 마을에서 안하는 일이 없는 인물. 갑자기 통신선이 끊겨버리자 동네 어르신들을 일일이 찾아가 걱정하지 않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찜질방 아르바이트, 경매사에 부동산중개까지 어디든 나타나는 인물이 바로 홍두식(김선호)이다. 

 

도시에서라면 이런 인물을 ‘오지라퍼’라 불렀겠지만, 이 작은 갯마을에서 그는 홍반장이라 불린다. 그만큼 마을 일에 적극적이고, 누군가 곤경에 처하거나 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의 사람됨은 공진의 정신적 지주인 김감리(김영옥) 할머니를 대하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다리를 다쳤다는 소리에 한 달음에 달려와 걱정해주는 그는, 혼자 TV보기 싫다며 마을회관에 가고 싶다는 할머니를 업고 데려다준다. 

 

홍반장은 한 마디로 이 공진이라는 갯마을을 그대로 닮아있는 인물이다. 마을의 많은 이들에 늘 그가 등장하지만 딱 봐도 무언가 하나의 직업을 갖고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때론 바다 위 서핑보드에 누워 있고, 그 때 그 때 일이 생기면 일을 하는 전형적인 알바생이다. 그런데 그 삶이 별 걱정도 없어 보이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해결사처럼 바라본다. 흘러가는 대로 벌어지는 대로 살아가는 인물. 그 갯마을의 자연을 닮은 이가 바로 홍반장이다. 

 

도시에서 사고를 치고(?) 어쩌다 이 공진으로 들어와 치과를 개원하게 되는 치과의사 윤혜진(신민아)은 홍반장과는 정반대다. 그는 할 말은 똑부러지게 하는 사람이고 또 길거리에서 이빨이 부러진 아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심성을 갖고 하지만, 도시인들이 가진 성공, 경쟁 같은 삶에 익숙해져 있다. 누가 어떻게 볼까 신경 쓰고, 무시하거나 오해한다 싶으면 애써 치과 전문의 명함을 꺼내 내민다. 

 

그렇지만 그 명함을 받아 든 홍두식은 그 직함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는 그런 명함으로 내세워지는 직함보다는 진짜 사람들과 일하며 갖게 되는 신뢰가 더 중요한 사람처럼 보인다. 도시에서는 그저 오지라퍼이고 사실상 백수 아르바이트생으로 불릴 수 있는 그가 이 곳 갯마을에서는 ‘홍반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는 도시에서 성공과 경쟁의 지표처럼 꺼내지는 명함과는 상반되는 ‘진짜 일(수입만이 아닌 진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표징한다. 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로서의 일이랄까. 

 

그래서 드라마는 윤혜진이라는 도시인에 시청자들을 빙의시켜 놓은 후, 그를 저 공진이라는 갯마을에 보내 홍반장에게 ‘홍며들게’ 만드는 과정을 담을 예정이다. 그것은 또한 홍반장이 그대로 닮아버린 갯마을의 보기만 해도 힐링되는 삶에 빠져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윤혜진은 어떻게 홍두식에게 점점 빠져들게 될까. 또 그는 이 도시의 삶과는 다른 갯마을의 삶에 동화되어갈까. <갯마을 차차차>의 기대감은 인물과 공간을 은유적으로 세워놓은 것만으로도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다. (사진:tvN)

국가대표 출연, '유퀴즈'가 유독 달리 보였던 건

유 퀴즈 온 더 블럭

올림픽 같은 국가적인 스포츠 이벤트가 끝나고 나면 여지없이 예능가는 바빠진다.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스타들을 어떻게든 게스트로 섭외하기 위해서다. 이번 도쿄올림픽 이후의 예능가도 마찬가지다. 금메달을 네 개나 획득한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은 모두가 섭외 1순위가 됐고, 드라마틱한 경기로 화제가 됐던 펜싱 남자 국가대표 선수들이나, 여자배구 선수들, 그리고 기계체조 도마의 신재환, 여서정 같은 선수들도 섭외 경쟁이 뜨거웠다. 

 

그래서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선수들을 볼 수 있었고 그래서 반가웠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시청자들의 반응이 남다르다. 물론 이미 타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했던 이야기가 반복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도마의 여서정 선수가 어려서 운동이 힘들어 그만두고 싶었지만 아버지 여홍철에게만은 그 말을 하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렸던 에피소드는 타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됐던 내용이었고, 남자 양궁의 김제덕이 ‘파이팅’을 그토록 크게 외쳤던 것이 일종의 전략이었다는 이야기도 이미 타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같은 인물이 나와도 담지 못한 새로운 면들을 찾아낸다. 여서정 선수에 대한 관심은 아버지 여홍철과의 사연 때문에 여러 프로그램에서 주목됐지만, 신재환 선수의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발견됐다. 유재석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설레는 모습을 참지 못하는 신재환 선수는 순박한 소년미를 드러냄으로써 유재석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단지 그런 웃음만이 아닌 운동선수로서 겪었던 힘겨웠던 상황들에 대한 조명도 잊지 않았다. 여서정 선수는 “잘 해도 아버지 여홍철 덕”이라며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주변의 시선으로 힘겨웠고, 특히 이런 시선 때문에 선수촌 코치로 있던 엄마가 그 일을 그만두었다는 아픈 이야기도 꺼내 놨다. 신재환 선수는 코로나 19 때문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메달을 딴 후 “빚부터 갚자”는 메시지를 가족들에게 보낸 사연을 들려줬다. 

 

메달을 따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들이지만, 그 과정까지의 어려움도 조명했다. 체조 선수들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을 거론하며 “기술을 너무 구사하다 보면” 몸의 위치를 까먹는 상태가 생기기도 해도 부상 위험이 따른다며 그 심적 부담감이 슬럼프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또 신재환에게 어쩌면 경쟁자일 수 있는 선배 양학선이 선선히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줬다는 대목에서는 스포츠 선수들의 경쟁을 넘어선 그 종목에 대한 애착마저 느껴졌다. 

 

남자 양궁 3인방의 출연에서도 “파이팅” 궁사로 떠오른 김제덕 선수가 할머니에게 금메달을 걸어주겠다고 했던 그 약속을 이행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담겨졌고, 특히 맏형으로서 오진혁 선수가 한 때 어깨 부상으로 은퇴를 권고 받았지만 끝내 화를 쏘는 스타일까지 바꿔 현재의 결과까지 이끌어낸 사연이 전해졌다. 

 

이 프로그램의 메달과 상관없이 열심히 뛴 선수들에 대한 상찬과 조명은, 지난주 재일교포로 귀화 권위까지 받았지만 끝내 태극마크를 달고 도쿄에서 동메달을 따낸 안창림 선수의 사연이나, 전패를 했지만 98년 만에 첫 올림픽 출전으로 그 누구보다 사력을 다해 경기를 했던 럭비 대표팀 안드레 진, 정연식 선수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순위가 아닌 최선을 보여준 이들에 대한 상찬이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 있는 건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그간 해온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유명한 스타들이 등장하지만, 동시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명 받아 마땅한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는 곳. 그것이 <유 퀴즈 온 더 블럭>이기 때문이다. 

 

결국 올림픽을 빛낸 국가대표 선수들이 많은 프로그램에 등장하지만, 그 가치를 더하게 해주는 건 그 프로그램이 그간 해왔던 정체성과 이 섭외가 일관되는 지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이 그간 걸어온 낮지만 깊은 시선이야말로 묵묵히 최선의 노력을 다해 저마다의 성과를 낸 국가대표 선수들의 출연을 더욱 진정성 있게 볼 수 있는 이유라는 것이다. 뜬금없이 밥상에 숟가락을 얻는 것이 아니고.

 

국가대표 특집에 배우 황정민이 ‘국가대표 배우’라는 기치로 출연한 부분 또한 그다지 이물감없게 느껴지는 건, 이 프로그램이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일관되어 다른 업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도 통하는 면들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연기는 원래 괴로운 것이라며 “남의 인생을 사는 데 그렇게 쉽게 살 수 있겠어요?”라고 말하고, 한때 유명한 ‘밥상 수상소감’으로 선배 연기자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지만 자신을 ‘나부랭이’라고 부르며 자신이 배우라 주목받지만 현장에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이들의 노력이 있다는 걸 드러내는 배우. 

 

이런 모습은 여기 출연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자신의 성과 뒤에 존재하는 누군가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여서정 선수가 언급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그렇고, 신재환 선수의 양학선 선수에 대한 감사함이 그렇다. 자신의 성취를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으로 돌리고 형들 덕분에 잘 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김제덕 선수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유퀴즈 온 더 블럭>이 이제 유명한 스타들조차 자발적으로 나오고픈 ‘국가대표 예능’으로 성장했지만 자신들의 성취를 그 많은 위대한 삶이 차려 놓은 밥상 덕분이라 치부하는 프로그램의 겸손한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올림픽이 끝난 후 그 많은 국가대표를 초대한 프로그램들 중에서도 특히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눈에 띄고 특별하게 다가온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숟가락이 아니라 기꺼이 밥상이 되어 온 그 과정이 있기에.(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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