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때녀’, 그녀들의 피, 땀, 눈물에 담긴 스포츠의 진가

골 때리는 그녀들

스포츠는 어쩔 수 없이 경쟁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승패만이 중요할까. 지금껏 그 많은 스포츠중계들이 보여준 건 경기와 결과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스포츠는 그 이외에도 중요한 가치들이 적지 않다. 함께 공통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동료의식이나, 이기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초인적인 성실함, 결과를 이뤘을 때의 희열과 더불어 좌절했을 때 서로를 토닥이며 또 나갈 수 있게 해주는 끈끈한 연대의 힘 등등 그 진가는 적지 않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 리그전을 통해 4강을 확정짓고 본격 대결을 하기 전 팀들의 훈련과정을 담았다. 최종 4강에 올라간 팀은 FC불나방, FC월드클라쓰, FC국대패밀리, FC구척장신이다. FC개벤져스는 FC월드클라쓰와 승, 패, 골득실, 다득점이 다 동일했지만 승자승 원칙에 의해 개벤져스를 이긴 월드클라쓰가 4강에 올랐다. 새로 팀이 꾸려져 리그전을 벌였던 FC액셔니스타는 선전했지만 아쉽게도 2패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숨 가쁘게 경기 중심으로 달려왔던 <골 때리는 그녀들>이 잠시 멈춰서 4강전을 저마다 준비하는 훈련과정을 담은 건 여러 가지 목적이 들어 있다. 그간 지치고 다친 선수들을 회복시키는 시간이 필요한데다, 훈련을 통해 좀 더 4강전을 준비할 수 있게 하려는 뜻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것만큼 중요한 건, 4강전에 앞서 이제 경기에 나설 선수들의 각오나 그 간의 소회 등을 담아냄으로써 그들의 면면을 좀 더 주목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훈련과정에서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우리네 여자축구의 상징이자 말 그대로 월드클래스인 지소연 선수가 원 포인트 레슨을 해주기 위해 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낸 점이다. 지소연은 2010년 U-20 월드컵에서 사상 첫 3위, U-17 청소년 여자축구 월드컵 사상 첫 우승을 기록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선수이자, 2014년 한국 여자 축구 선수 최초로 잉글랜드 첼시FC 위민에서 뛰었고 2015년 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상을 받는 등 7년 간 10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말 그대로 월드클래스 여자축구선수가 아닌가. 

 

지소연은 영국에서도 남자축구와 달리 조악한 지원을 받던 여자축구에 똑같은 지원을 해달라 요청하면서 변화를 만들고 다시금 여자축구의 부흥을 이끌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니 <골 때리는 그녀들>이 보여주는 여자축구라는 종목에 지금껏 2002 월드컵의 주역이었던 남자축구 레전드들만 감독들만 부각된 면들이 남긴 아쉬움을 지소연의 출연이 어느 정도 상쇄해주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점점 축구의 묘미를 알고 여자축구의 꿈을 꾸게 된 이들에게도 지소연의 출연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1대1 대결을 통해 지소연도 당황하게 만들었던 FC불나방의 박선영의 놀라운 기량은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볼거리를 만들었지만, 누구나 열정을 갖고 뛰어들면 성역처럼 여겨져 온 편견을 넘어 멋지게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건 잠시 멈춰 4강전을 준비하는 훈련 과정을 통해 이들이 여자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얻게 된 저마다의 성취를 들려줬다는 점이다. 

 

FC액셔니스타로 뛰며 아쉽게 탈락하게 된 최여진은 애초 축구를 자신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처음 연습하고 나서는 “이걸 안했으면 내가 못 버텼겠다” 했다고 말했다. 몸은 힘든데 정신이 너무 맑아져서 일도 더 잘됐다는 것. 부상투혼을 보였던 장진희 역시 축구를 한 이후 정신적인 것도 몸도 너무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특히 월드클라쓰에서 최진철이 팀원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스포츠를 승패를 떠나 얼마나 다양한 것들을 해줄 수 있는가를 들려준 것이기도 했다. 구잘은 하루 종일 축구 연습을 하는 자신을 보며 “살면서 이런 열정이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마리아는 3년 전 한국에 와서 너무 외로웠는데 축구를 하면서 패배도 같이 경험한 동료들과 더 끈끈하고 정이 깊어졌다고 했다.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게 경기 중에서도 보이는 사오리는 남다른 사연을 들려줘 모두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선택한 한국행으로 한글과 한국어 수어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사오리는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갖고 끝까지 해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더 열심히 축구를 하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하다 보니 “축구중독”이 됐다는 사오리는 매일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재미와 성취감을 느꼈고 “삶이 밝아진 느낌”이라고 했다. 학교 다닐 때 왕따를 당한 경험을 털어놓은 사오리는 그 때도 소프트볼팀에 들어가 함께 스포츠를 하면서 그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했다. 

 

아비가일은 미군인 남편과 결혼 후 평택에서 살면서 외로움과 우울증이 있는데다 아기가 생기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축구를 하면서 이런 게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아비가일의 이야기를 들은 에바는 육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테니스를 했는데 운동으로 몸도 마음도 좋아지면서 둘째도 생겼다며, 아비가일 역시 축구를 통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덕담을 해줬다. 

 

우리는 과연 스포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대부분 스포츠중계 중심으로 보고, 특히 국제대회 같은 국가 스포츠 관점으로 보다보니 실제 스포츠의 진가를 제대로 보지 않고 있었던 건 아닐까. 물론 승패는 스포츠에서 어쩔 수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건강함이 진짜 가치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스포츠에 남녀 차이 같은 걸 편견과 선입견으로 세워 아예 시도 자체를 못하게 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스포츠에 드리워진 성차의 편견만이 아니라, 승패로만 바라보는 스포츠의 진가에 대한 편견 또한 걷어내 주고 있다.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축구가 좋다는 이 여성들을 통해서.(사진:SBS)

진짜 스포츠의 맛, 예능과 만나니

 

도쿄올림픽은 끝났지만 스포츠에 대한 열광은 끝나지 않았다. 한때는 성공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스포츠예능이 진짜 스포츠의 맛으로 시청자들을 끌어 들이고 있어서다. 

뭉쳐야 찬다2

‘슛 어게인’으로 돌아온 <뭉쳐야 찬다2>

JTBC <뭉쳐야 찬다>가 시즌2로 돌아왔다. 사실상 스포츠예능을 되살리고, 다양한 레전드 스포츠스타들을 방송인으로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다. 안정환이야 본래부터 예능의 블루칩으로 자리했던 바이니 차치하고라도 <뭉쳐야 찬다>를 통해 허재, 여홍철, 이형택, 김병현 같은 스포츠 레전드들이 방송가에서 주목받았다. 특히 허재는 이 프로그램을 기점으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러브콜을 받았고, 이제는 단독으로 MC를 맡을 만큼 떠오르는 예능인이 되었다. <뭉쳐야 찬다>의 성공은 종목을 농구로 바꾸고 선수였던 허재가 감독으로, 감독이었던 안정환이 선수로 크로스되는 <뭉쳐야 쏜다>로 이어졌다. <뭉쳐야 쏜다> 역시 좋은 반응을 얻으며 현주엽과 이동국, 윤동식 같은 새로운 스포츠 레전드 출신 예능인들을 발굴했다. 그리고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뭉쳐야 찬다2>가 시작된 것. 

 

흥미로운 건 <뭉쳐야 찬다2>가 시즌1과 달리 비인기 스포츠종목 선수들을 오디션 형식으로 선발하는 과정을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축구에 대한 열정과 어느 정도의 기초적인 실력을 검증하면서 동시에 비인기 스포츠종목을 알리는 기회를 제공한 것. 그 오디션 형식은 JTBC <싱어게인>에서 따왔다. 심사위원으로 안정환과 이동국 그리고 김용만과 정형돈이 합격 버튼을 눌러 적어도 3개 이상의 축구공에 불이 들어와야 합격하는 방식이다. <싱어게인>이 데뷔 가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아 ‘다시 노래 부르기’ 위해 나온 가수들의 오디션 형식인 것처럼, <뭉쳐야 찬다2>의 오디션(?)은 과거 축구에 꿈을 가졌지만 다른 종목 선수로 뛰었던 이들이 ‘다시 축구를 하기’ 위해 나왔다. 일종의 ‘슛 어게인’인 셈이다. 

 

첫 회에 오디션에 참여한 씨름선수 박정우는 씨름으로 다져진 남다른 근력으로 안정환을 무등태워 뛰는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우리에게는 비인기종목이지만 인도의 국기인 카바디로 인도 현지에서 맹활약하며 ‘코리안 킹’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레전드 선수 이장군이 허벅지 힘만으로 수박을 깨는 괴력을 보여줬다. 남다른 피지컬은 기본이고 공을 다루는 축구 실력도 예사롭지 않아 이들의 참여는 단박에 <뭉쳐야 찬다2>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 놨다. 그저 예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축구’의 맛을 진심을 다해 보여줬던 <뭉쳐야 찬다>가 아니었나. ‘슛 어게인’으로 돌아온 <뭉쳐야 찬다2>에 대한 높은 기대감은 첫 회 만에 무려 8%(닐슨 코리아) 시청률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출연자들의 진심, 스포츠예능을 바꾸다

<뭉쳐야 찬다>가 이런 성과를 거두게 된 건, 이 프로그램이 보여준 스포츠에 대한 남다른 자세 덕분이다. 사실 축구, 농구, 야구 같은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껏 꾸준히 등장한 바 있다.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다양한 스포츠들을 예능프로그램의 소재로 다뤘다. 유소년축구를 지원해 실제로 성과로까지 만들었던 <날아라 슛돌이(2005)>, 연예인 야구단을 방송으로 끌어안았던 <천하무적 야구단(2009)>, 생활스포츠를 진흥하겠다는 기획의도로 전국을 다녔던 <우리동네예체능(2013)>, 그리고 축구 미생들의 완생 도전을 담았던 <청춘FC(2015)> 등이 그 사례들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들 스포츠 예능들은 생각만큼 방송으로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 불리는 스포츠보다 예능적 요소가 가미된 스포츠예능이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9년 <뭉쳐야 찬다>를 기점으로 스포츠예능은 예능이 아닌 ‘스포츠’에 방점을 찍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KBS <씨름의 희열>은 대중적인 인기가 식은 씨름을 오디션 형식으로 끌어안아 이 스포츠의 맛을 제대로 선사하며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서장훈이 감독을 맡아 ‘진짜 농구’의 맛을 보여준 SBS <핸섬 타이거즈>, 박찬호와 이영표가 생활스포츠에 도전하는 <축구 야구 말구> 등에 이어 여자축구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SBS <골 때리는 그녀들>까지 이어지면서 스포츠예능의 붐이 만들어졌다. 특히 개그맨부터 모델, 배우 등등의 연예인들이 팀을 꾸려 여자축구에 도전한 <골 때리는 그녀들>은 발톱이 빠져도 온몸이 멍이 들어도 뛰고 또 뛰는 출연자들의 진심으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무엇이 시청자들의 반응을 바꿔놓았나

올림픽 같은 스포츠 제전을 통해 우리가 새삼 확인하는 건 스포츠가 그 자체로 충분한 재미요소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긴장감 넘치는 승부의 세계는 물론이고, 팽팽한 대결구도와 승패가 갈라졌을 때 터져 나오는 감정들, 그리고 승패와는 무관하게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이 주는 감동 등등. 스포츠는 이미 스포츠 자체로 충분하다. 그러니 굳이 예능 프로그램이 스포츠를 소재로 가져왔다고 해서 예능적 요소들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최근 스포츠예능들이 다시 주목을 받고 또 인기를 얻고 있는 건 바로 이 예능에 대한 강박을 지워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예능적 요소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뭉쳐야 찬다2>에서 이번 시즌에도 ‘살아남은 선수들’을 소개하고 또 오디션 형식으로 새 선수들을 기용하는 과정은 다분히 예능의 요소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목적이다. 예능적 요소가 들어간다 해도 그 목적은 온전히 ‘선수단 구성’이라는 스포츠 자체의 과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또 <씨름의 희열>에서 기존 씨름 대회와 달리 선수들을 오디션 출연자들처럼 특장점과 매력을 담은 짦은 영상스토리로 구성해 소개한 후 경기를 보여주는 방식은, 실제 경기의 묘미를 더욱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목적에 맞춰져 있다. 따라서 오히려 씨름 대회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씨름의 희열’을 느끼게 됐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영상 연출이나 자막도 마찬가지다. 실제 경기라면 어떤 한계가 분명한 연출과 자막은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자유도를 통해 더 경기를 재밌게 즐길 수 있게 도와준다. 결국 예능적 장치들이 온전히 스포츠를 더 즐길 수 있는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 관건이 됐다. 여기에 그 스포츠를 대하는 출연자들의 진정성 있는 자세까지 더해지면 스포츠예능은 스포츠중계가 미처 보여주지 못한 재미를 담보하며 펄펄 날게 된다. 

 

최근 스포츠예능은 SBS <편먹고 공치리>, JTBC <세리머니 클럽>, MBN <그랜파> 같은 골프예능의 트렌드로까지 넓혀지고 있다. 여기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주춤해진 스포츠중계에 대한 갈증도 영향이 적지 않다. 또한 예능이 새로운 소재나 문법을 찾아내지 못한 탓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스포츠예능의 급성장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스포츠 자체의 맛이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걸 온전히만 드러낼 수 있다면 당분간 스포츠예능 트렌드는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글:시사저널, 사진:JTBC)

‘모가디슈’, 두 시간이 쫄깃한 남북 공조 소말리아 탈출기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의 신작 영화 <모가디슈>는 먼저 그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유발한다.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1991년 그 곳에서 벌어진 내전을 소재로 했다. 한국영화가 한국도 아닌 해외 배경으로, 그것도 아프리카라는 공간을 소재로 가져온 것만으로도 색다른 그림과 스토리가 기대될 수밖에 없다. 영화 시작부터 부감으로 보여지는 모가디슈의 이국적인 풍광은 그 곳에서 벌어질 대혼전을 예고하며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이 배경 위에 남북한의 외교 총력전이라는 대결구도를 세워두니, 영화는 더욱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이역만리의 땅에서 벌어지는 대한민국 대사관과 북한 대사관 사이의 치열한 외교전이 그것이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으로 국제사회에 발을 디딘 한국이 UN회원국으로 가입하기 위해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한 표를 얻으려 하고, 이미 이전부터 그 곳에서 입지를 마련하고 있던 북한 대사관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 하지만 이 남북 대결 구도는 내전이 벌어지면서 생존을 위한 ‘협력’의 구도로 바뀌게 된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게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남북 간의 분단을 넘은 우정 이야기 같은 것이다. 실제로 <모가디슈>에서 한국 대사관 한신성 대사(김윤석)와 북한의 림용수 대사(허준호)는 외교전 속에서 티격태격하지만 생존상황을 맞이하면서 ‘휴머니즘’을 드러내는 인물들이다. 물론 각자 자국을 대표하는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는 그들은 쉽사리 선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음식을 나눠 먹고, 탈출하기 위해 저마다의 루트를 통해 타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서로를 챙기려는 인간애를 발휘하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구도로 보면 <모가디슈>는 자칫 섣부른 신파적 감정을 끄집어낼 수 있는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이 작품에서 감정 과잉을 유도하는 신파적 장면들을 되도록 배제하고 절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함께 협력하며 탈출해야 하는 남북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과잉된 정을 담는 식의 설정 또한 피한다. 

 

대신 <모가디슈>는 마지막까지 어쩔 수 없이 협력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남북 간의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게 가능해진 건 한신성 대사를 돕는 안기부 출신 정보요원 강대진 참사관(조인성)과 북한의 림용수 대사를 돕는 태준기 참사관(구교환)의 팽팽한 대결구도 때문이다. 북한 대사관이 약탈당하고 갈 곳이 없어 한국대사관에 의탁하게 되는 그 상황 속에서 이 두 사람은 각자 서로 다른 의중으로 대결한다. 즉 강대진은 이들을 ‘망명자’로 만들려고 하고, 태준기는 아예 한국대사관을 무력으로 장악하려 한다. 이 팽팽한 대결구도가 있어 한신성과 림용수 사이에 만들어지는 화해적 분위기와 균형을 이루면서 지나친 ‘신파 구도’의 위험성을 벗어나게 된다. 

 

류승완 감독은 소말리아에서 벌어진 이 내전 상황을 마치 실제처럼 영화로 재현해낸다. 모로코에서 100% 로케이션으로 찍은 영화 속 장면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실제로 내전의 한 가운데 있는 것 같은 실감을 준다. 긴장감 가득한 내전의 풍경 속에서 가장 섬뜩한 건 아이들마저 마치 장난감총이나 되는 듯 소총을 들고 위협하고 총을 허공에 쏘아대는 장면이다. 내전이라고 하지만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폐허가 된 도시 풍광이나 그 곳에 널브러진 시체들은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실제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던가를 잘 표현해낸다. 

 

또한 흥미로운 건 <모가디슈>를 통해 류승완 감독이 보여준 색다른 액션이다. <모가디슈>는 결국 탈출기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공격하는 액션이 아니라 방어하고 도망치는 액션에 집중되어 있다. 추격하는 반군과 정부군의 총격을 피해 도주하고, 위험천만한 상황들 속에서 빠져나가는 그 과정들이 마치 실제 관객이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실감으로 전해진다. 

 

김윤석, 허준호 그리고 조인성의 연기는 이러한 실감을 몇 배로 몰입하게 해주는 힘을 발휘한다. 게다가 이 작품의 발견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구교환의 존재감은 특별하다. 이 영화가 신파로 흐르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은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었던 데는 구교환의 날 선 연기가 한 몫을 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밖에도 정만식, 김소진, 김재화, 박경혜 같은 현실감을 채워주는 연기자들이 있어 <모가디슈>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졌다. 

 

한 마디로 <모가디슈>는 ‘선수들이 만든 작품’이다. 현지 로케를 통한 당시 상황의 완벽한 재현과 류승완 감독의 균형감 넘치는 연출 그리고 배우들이 제공하는 몰입감으로 두 시간이 순삭되는 액션과 휴머니즘을 보여준다. 코로나19로 극장 관객이 대폭 줄어든 상황이지만, 영화관에서 보길 권한다. 그래야 그 실감이 200% 느껴질 작품이니까.(사진:영화'모가디슈')

‘킹덤: 아신전’, 북녀 전지현을 세우자 생겨난 대서사의 서막

킹덤 아신전

92분짜리 한 편의 영화를 기대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시즌2를 잇는 시즌3의 서사도 아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아신전>은 참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에피소드다. 그래서 시즌1,2의 열광에 전 시즌을 보지 않고 이번 <킹덤: 아신전>만을 본 시청자라면 실망할 수 있다. 아신(전지현)의 탄생기를 다소 단순하지만 묵직하게 그려낸 에피소드가 이번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즌1,2를 챙겨 봤고, 시즌3를 기다리는 그 과정에 ‘스페셜 에피소드’로서 <킹덤: 아신전>을 보는 분들이라면 왜 곧바로 시즌3로 가지 않고 이러한 스페셜 에피소드를 먼저 채워 넣었는가 하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세움으로써 향후 <킹덤> 시리즈가 더 거대한 대서사의 서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계에 발을 딛지 않은 분들이라면 <킹덤: 아신전>을 보기 전 시즌1,2부터 챙겨보길 권한다. 그래야 이 작은 피스 하나가 만들어내는 세계의 확장을 실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킹덤> 시즌1,2는 한반도 남쪽의 서사다. 죽은 왕을 살려낸 의원과 함께 갔던 소년이 습격을 받아 죽음을 맞이하고, 그 의원이 동래 지휼현으로 그 시신을 데려오면서 창궐하기 시작하는 ‘좀비 역병’의 서사. 왕세자 이창(주지훈)은 이 역병을 막기 위해 백성들과 함께 사투를 벌이는 남쪽의 영웅으로 세워졌다. 그는 배고픔에 굶주린 민초들의 역병(좀비)을 막고 한편으로는 권력에 눈 멀고 굶주린 세도가들의 역병과 마주한다. 

 

그리고 시즌2의 엔딩에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아신이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좀비떼로 변한 이들을 가둬두고 마치 조종하는 듯한 인물로 잠깐 모습을 드러낸 아신은 시즌3의 서사가 이 인물에 의해 색다른 국면으로 들어갈 것임을 알린다. 하지만 시즌2까지 남쪽에서 궁을 거쳐 위로 달려오며 좀비떼들과 사투를 벌인 이야기에 이어서 곧바로 아신이 등장하게 되면 서사는 다소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창을 주인공으로 보며 달려온 시청자들에게 아신은 또 다른 적 정도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킹덤: 아신전>은 한반도 북쪽의 서사로서 아신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좀비들을 창궐시키고 피의 복수를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오롯이 아신을 주인공으로 그 탄생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 ‘다크 히어로’의 복수극에 공감하게 된다. 철저히 조선인들에게 이용당하고 몰살당한 가족과 이웃들을 위해 우뚝 선 안티 히어로. 그가 모두를 죽이고 자신도 그 끝을 따라가겠다고 선언한 후, 남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는 그래서 향후 이창과의 대결을 단순한 권선징악의 차원을 넘어서게 만든다. 

 

아신이라는 인물을 여성으로 세우고, 그가 북방의 성저야인이라 불리며 조선을 위해 야인들의 침입을 막아주던 변방인 타합(김뢰하)의 딸이라는 사실은 이 안티 히어로가 ‘약자’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그려졌다는 걸 알게 해준다. 여성, 이민족, 변방인 같은 코드들이 아신이라는 인물에 투영되어 있어서다. 결국 철저히 권력자들에 의해 이용당하다 살해된 약자들을 생사초를 통해 되살려내고 피의 복수를 하는 아신은 그래서 저들과 맞서는 민초들의 왕이나 다름없다. 

킹덤 아신전

<킹덤>이 처음 시작했을 때 이 좀비 장르가 여타의 작품들과 비교해 좀비들에 대한 정서가 다르다고 느꼈던 건, 이들에게서 ‘배고픔’ 같은 한의 정서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권력에 굶주린 궁궐의 좀비들이 존재했지만, 민초들이 변한 춥고 배고픈 좀비에게서 연민이 느껴진 건 그래서였다. <킹덤: 아신전>은 그 연민과 한의 정서가 어떻게 좀비들에게 투영되었는가를 아신이라는 인물의 탄생을 통해 담아낸다. 

 

남남 이창을 중심으로 창궐하는 역병과 맞서는 이들이 한 세력을 구성한다면, <킹덤: 아신전>은 북녀 아신이 이끄는 역병(좀비)들이 조선을 집어 삼키는 세력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팽팽해지고 단순한 선악구도로 볼 수 없는 대결구도는 <킹덤>의 세계관을 확장시킨다. 공간적으로도 남에서 북까지 확장시키고, 단순한 이창의 서사에서 아신의 서사가 다른 한 축으로 세워진다. 단 한 편의 스페셜 에피소드이고, 어찌 보면 단순한 구도로 그려진 아신의 탄생기지만 이 이야기가 전체 <킹덤>이라는 시리즈에 만들어내는 힘은 이처럼 결코 작지 않다. 

 

따라서 <킹덤: 아신전> 이후, <킹덤>의 시즌들은 보다 탄력을 받게 됐다. 이창과 아신의 대결이 볼만해졌고, 권력자들(민초의 편이라지만 이창 역시 왕세자라는 권력자다)의 통치나 지배 같은 다소 보수적인 세계관과, 온전한 약자이자 민초의 혁명 같은 진보적인 세계관이 맞붙게 됐다. 또 이 이야기는 흥미롭게도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남북 간 대결구도를 끄집어내고, 남남북녀로 대비되는 성 대결까지도 담아낸다. 

 

<킹덤: 아신전>이라는 스페셜 에피소드는 그래서 그 단 한 편으로만 보면 너무 단순하고 뭔가 하려다 끝나버린 듯한 아쉬움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 시즌들이 달려온 길을 따라온 시청자들에게는 잠시 멈춰 서서 이야기를 재정비하면서 향후 이야기를 한껏 더 기대하게 만들어주는 에피소드로 다가온다. <킹덤> 시즌1,2가 어딘가 ‘색다른 좀비 장르’ 정도의 이야기로 다가왔다면 <킹덤: 아신전>은 이미 글로벌한 관심을 갖게 된 이 작품에 대한 김은희 작가의 야심이 느껴진다. 작은 피스 한 조각처럼 보이지만, 그 조각이 들어감으로써 거대한 대서사로 확장될 전체 퍼즐을 기대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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