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의 여왕’, 자극적 범죄물과는 또 다른 묘미

살벌한 범죄물만 있나? 발랄한 수사물도 있다. KBS 새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이 보여주는 세계는 저 OCN이 고집해온 공포에 가까운 범죄 스릴러와는 다르다. OCN의 세계가 피가 튀고 살점이 날아가는 미드식의 접근방식이라면, <추리의 여왕>은 일상 속으로 들어와 범죄를 추리하는 일드식의 접근방식에 가깝다. 

'추리의 여왕(사진출처:KBS)'

물론 그렇다고 <추리의 여왕>이 일드 수사물의 재연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추리의 여왕>은 여기에 우리 식의 정서를 깔아 놓았다. 남다른 추리의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찌감치 결혼해 남편을 검사로 만들어낸 내조의 여왕(?)이지만 자신은 그저 고졸에 시어머니 모시고 사는 평범한 주부 설옥(최강희). 그래서 경찰이 되고픈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하지만 기회가 닿지 않아 간간히 파출소장을 도와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아쉬운 삶을 버텨내는 인물이다.

CCTV에 찍힌 영상만으로 편의점에서 사라지는 물건이 사실은 그 가겟집 아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건넨 것이란 사실을 찾아내고, 시장 한 귀퉁이에 있는 보관함이 털린 그 모양새만 보고도 그것이 단순한 사건이 아닌 마약사건이라는 걸 찾아내는 그녀는 이미 준비된 경찰이다. 하지만 실상은 평범한 주부일 수밖에 없는 그녀는 이 동네 파출소장으로 갓 부임한 신출내기 홍준오(이원근)를 돕는 것으로 그 꿈에 대한 갈망을 풀며 살아간다. 

<추리의 여왕>은 그래서 설옥의 추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해가는 묘미를 주면서도 그녀의 진가가 조금씩 인정받는 그 성장담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사건 해결이 주는 지적인 재미와 함께 어딘지 소외된 인물에 대한 심정적 지지가 더해지는 <추리의 여왕>은 그래서 일드의 접근방식과는 다른 우리 식의 정서가 깔린 발랄한 수사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또 한 축을 만드는 인물은 바로 설옥과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게 될 열혈형사 완승(권상우)이다. 설옥이 평범한 주부로서 사건 수사에 머리만을 쓰는 인물이라면, 완승은 정반대다. 그는 첫 등장부터 그 캐릭터를 보여준 대로 일단 몸이 앞서고, 늘 현장에서 범인과 부딪치는 인물이다. 설옥과 정반대의 캐릭터로서 완승은 그래서 이 수사의 콤비를 완성시킨다. 

게다가 빠질 수 없는 건 역시 멜로의 가능성이다. 설옥은 이미 검사 남편을 둔 주부지만 그 남편은 자신을 그렇게 뒷바라지한 아내에게는 그다지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다. 그가 첫 회에 아예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그와 설옥의 관계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인물 설명을 보면 설옥은 말 그대로 순수하게 범인 잡는 일에 더 관심을 보이지만, 검사 남편은 현실적인 성공을 더 꿈꾸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니 설옥이 추리를 하는데 있어서 더 동료의식을 가지는 인물은 남편이 아니라 완승일 수밖에 없다. 또한 그녀의 진가를 알아봐줄 이 역시. 조심스럽지만 어떤 설렘을 갖게 만드는 설옥과 완승의 멜로 구도가 아닐 수 없다. 

사실 <김과장>이 예상 외로 큰 성공을 거두고 난 후 그 후속작인 <추리의 여왕>이 가진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김과장>이 그랬던 것처럼, <추리의 여왕> 역시 어깨에 힘을 쭉 빼는 것으로서 의외의 선전을 예고하고 있다. 모든 범죄물이나 수사물이 OCN식으로 살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추리의 여왕>은 그 장르를 좀 더 일상으로 가져와 발랄하면서도 쫄깃한 수사물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양면을 소화해낼 연기자로서 최강희만한 인물도 없을 게다. 이것이 발랄한 수사물 <추리의 여왕> 최강희에게서 느껴지는 기대감이다.

‘귓속말’ 권력게임, 이것이 바로 박경수표 드라마의 맛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이 드디어 본 매력을 드러냈다. 사실 3회까지 <귓속말>의 전개는 빠르긴 했지만 너무 많은 인물들과 상황들이 동시에 보여지면서 혼돈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됐던 건 시청자들이 캐릭터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이렇게 된 건 드라마를 사실상 이끌어가는 이동준(이상윤)이 너무 상황에 질질 끌려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귓속말(사진출처:SBS)'

하지만 4회는 <귓속말>에 드리워졌던 이런 불안감과 답답함을 단번에 지워내기에 충분한 긴박한 이야기 전개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이렇게 된 건 역시 이동준이 반격을 시작하게 되면서 생겨난 확실한 대결구도 때문이다. 3회 마지막에 강정일(권율)이 친 덫에 걸려 마약 상습복용자로 입건될 위기에 처했던 이동준은 신영주(이보영)의 도움으로 위기상황을 모면한 후 강정일과 그와 내연관계인 그의 아내 최수연(박세영)에게 통쾌한 일격을 가했다. 

<귓속말>의 이야기가 쫄깃하게 된 건 이처럼 이동준을 둘러싸고 신영주, 강정일, 최수연 그리고 장인인 태백의 대표인 최일환(김갑수)과 권력 게임 속에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치고 박는 반전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역시 박경수 작가는 <펀치>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권력 시스템 안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려 치고 박는 전개를 그려나갈 때 그 헤어 나올 수 없는 맛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러한 쫄깃함은 사실 태백의 대표인 최일환과, 부모 대부터 주인과 하인으로 이어졌던 악연을 가진 강유택(김홍파) 사이의 로펌 태백을 둘러싼 경영권 싸움에서 비롯된다. 강유택은 자신의 아들 강정일이 태백을 먹어치우기를 원하지만 최일환 역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자신의 딸 최수연이 능력이 부족해 태백을 이어받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최일환은 촉망받던 판사 이동준을 사위로 들여 그걸 막아내려 한다. 

최일환과 강유택 그리고 이동준과 강정일의 선명한 대결구도가 드러나면서 <귓속말>의 권력 게임은 훨씬 더 이해하기가 쉬워졌다. 권력을 쥐지 않으면 권력에 의해 생존이 불가능해지는 살벌한 게임은 시청자들에게는 한 번씩 치고 맞을 때마다 쫄깃한 반전의 재미를 선사한다. 일종의 싸움 구경이지만 그것이 단순한 싸움이 아니고 권력과 관계되어 있으며 그 권력의 연원이 과거 주인과 종 사이의 계급관계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워진다.

그러고 보면 지난 3회는 이러한 본격적인 전개를 위한 밑그림이었다는 게 명확해진다. 이동준의 싸움은 그들 사이에서는 권력 투쟁이지만 신영주의 입장에서 보면 덮여진 진실을 파헤치고 정의를 되돌리는 일이 된다. 그래서 신영주가 이동준에게 말하듯 이 싸움의 끝에 진실이 밝혀지면 자신과 가족들은 다시 그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지만, 이동준은 태백의 주인이 될 것이라며 갈수록 혼탁해질 세상에 혀를 차는 대목은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메시지와 재미 부분을 명확히 보여준다. 

즉 드라마적 재미는 권력 투쟁의 밀고 당기는 게임에서 나올 것이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의미는 신영주가 말하는 ‘쓸쓸하지만 그래도 추구되어야 할 진실과 정의’의 문제에서 찾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박경수표 드라마가 늘 쫄깃한 재미와 함께 동시에 우리 사회의 권력구조를 파헤쳐 들어가는 그 지적인 의미들을 보여줬던 그 연장선 안에 이 작품 역시 서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기 위해서 전제 되어야 할 절대적인 캐릭터가 바로 이동준이다. 이동준은 권력 게임의 냉철한 대응을 통해 재미를 주면서도 동시에 신영주와의 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정의나 진실에 대한 고민들을 찾는 의미를 담아내야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욕망의 화신인 아버지 이호범(김창완)과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 정미경(김서라) 사이에 서 있는 인물이라는 점은 그래서 흥미롭다. 드디어 그 이동준이 깨어났고 따라서 <귓속말>은 이제 본격적인 드라마의 맛을 내기 시작했다.

고소영과 조여정, 과연 세상에 '완벽한 아내'가 있을까

이 드라마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KBS 월화드라마 <완벽한 아내>는 미스터리하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워킹맘 심재복(고소영)이 남편 구정희(윤상현)가 저지른 불륜 때문에 힘겨워하는 초반부에서는 그저 그런 불륜소재의 치정극 같은 느낌이더니, 그녀에게 살갑게 다가와 서서히 그 가족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이은희(조여정)의 비뚤어진 욕망이 드러나면서는 거의 스릴러에 가까운 긴장감을 만들었다. 

'완벽한 아내(사진출처:KBS)'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완벽한 아내>는 이은희라는 정신적 문제를 가진 인물이 엄청난 재력으로 심재복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하는 이야기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심재복이 께름칙하게 여기면서도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간 이은희의 저택은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거대한 욕망이라는 괴물의 아가리였다고 여겨진다. 

이은희가 그렇게 비뚤어지게 된 이유가 그녀의 어머니 최덕분(남기애)에게서 어린 시절 당해온 학대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녀의 집착이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가가 비로소 납득이 되고 있다. 자존감이 사라져버린 그녀는 결국 심재복 대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살아가고픈 욕망을 갖게 된 것. 

그렇게 보면 대저택에서 풍요를 누리며 살고, 대기업의 이사인 이은희는 외적으로 볼 때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녀는 갖고 있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집착하는 구정희 같은 남편도, 귀여운 아이들도, 또 자신을 제대로 보살펴준 엄마도, 또 그녀를 진정으로 이해해줄 친구들도 그녀에게는 없다. 

그래서 이 대저택에서 뭐든 척척 원하면 살 수 있는 재력으로 아이들의 선심을 얻고 구정희를 그녀 옆에 잡아두려 하지만 그런 일들은 모두 허망할 뿐이다. 제 아무리 호사스런 요리를 내놓아도 결국 그녀는 혼자다. 심재복과 그 가족, 친구들이 함께 모여 소박한 음식을 먹을 때 그녀는 쓸쓸하게 홀로 식탁에 앉는다. 

<완벽한 아내>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이것이 한 가족과 그 가족을 파괴하고 들어오는 정신질환을 가진 여자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자본의 욕망으로 가득한 우리네 현대인들의 삶을 표상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길 때다. 즉 누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있어야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 욕망에 뛰어들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다. 이은희가 섬뜩하게 다가오는 건 돈으로 사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는 그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싼 임대료로 심재복 가족을 끌어들이고 재력을 이용해 구정희를 본부장으로 앉힘으로써 그와 약혼까지 하려고 한다. 이은희라는 괴물은 그래서 그대로 자본의 속성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이은희가 사실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실체를 드러내는 반면, 정반대로 별로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심재복이 사실은 많은 걸 가지고 있다는 걸 드라마는 말해준다. 그녀 주변에는 그녀를 지지하는 가족도 친구도 회사 동료도 있다. 그건 결코 이은희가 돈으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이다. 

<완벽한 아내>는 그래서 이은희와 심재복의 대비와 대결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신분열적 욕망이 만들어내는 파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려는 소시민들의 평범하지만 바람직한 삶을 얘기하고 있다. ‘완벽한 아내’는 그래서 ‘완벽한 삶’의 또 다른 표현처럼 다가온다. 세상에 ‘완벽한 아내’가 있을까. 있다면 그 기준은 도대체 뭘까. 무엇을 가져야 진정 ‘완벽한 아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들 속에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의 진짜가 들어있다.

‘아버지가 이상해’, 김영철 캐릭터로 본 우리 시대의 아버지

우리네 가족드라마에서 아버지의 쓸쓸함이 느껴지게 된 건 이미 오래다. 김수현 작가의 <엄마가 뿔났다(2008)>나 <인생은 아름다워(2010)> 같은 작품에서 아버지들은 어느새 집안의 중심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앉아 있었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엄마들. 하지만 그래도 이들 드라마에서는 그나마 가족이라는 틀이 공고했고 밖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힘겨운 현실들의 문제들은 대부분 가족애라는 이름으로 버텨낼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여겨졌다. 

'아버지가 이상해(사진출처:KBS)'

하지만 KBS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아버지 변한수(김영철)의 모습은 어딘지 가족에서 살짝 바깥으로 밀려나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이 아버지가 숨기고 있는 어떤 과거사 때문이기도 하지만(아마도 친구와 연관이 있는), 그것보다는 집안의 거의 모든 대소사에 이 아버지가 헌신하고 있지만 어쩐지 본인의 삶은 전혀 챙겨지지 않는 그 모습을 당연한 듯 여기는 가족들 때문이다. 

수원의 외곽 동네에서 아빠분식을 하는 그는 어쩌면 자식들을 그토록 성장시키기 위해 한 평생을 해왔을 그 분식집에서 여전히 하루 종일 일을 한다. 그 정도 나이면 좀 여유도 부릴 법 하지만 새벽부터 장을 보랴 음식 준비하랴 손님 맞으랴 쉴 틈이 없다. 마침 새로 온 건물주는 월세를 올리려 하지만 그 앞에서도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은 이 아버지가 얼마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낮추며 살아왔는가를 잘 보여준다. 결국 건물 관리까지 해주는 조건으로 이전 월세 그대로 분식집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 역시 이 아버지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드러내주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이 아버지가 이토록 지금도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는 그 자식들의 면면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장남인 변준영(민진웅)은 5년째 9급 공무원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가 합격할 것 같지는 않다. 대신 변준영은 사귀는 여자친구 김유주(이미도)와 덜컥 아이까지 갖게 되어 이제 직업도 없이 결혼부터 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둘째인 변혜영(이유리)은 그래도 개천에서 용된 사례로 로펌 변호사로 일하고 있지만 결혼할 생각은 아직까지도 요원하다. 게다가 그녀는 집을 나와 예전에 좋아했던 선배 차정환(류수영)과 동거를 시작했다. 

셋째 딸인 변미영(정소민)은 그나마 이 집안에서 가장 열심히 살아가는 청춘이다. 한때 유도를 했지만 부상으로 포기했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간신히 인턴으로 엔터 회사에 입사했다. 회사에서는 구박덩이 막내지만 그녀는 특유의 긍정 마인드와 맷집으로 버텨내는 근성을 보여준다. 앞으로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줄 든든한 존재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까지는 아버지가 짊어진 짐의 하나였을 것이 분명하다. 

막내 딸 변라영(류화영)은 아르바이트 요가 강사로 일하고 있지만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명품을 사는 등 그다지 개념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 인물이다. 아버지로서는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막내일 테지만 현실적으로 가족에는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인물. 

자식들이 주는 이런 부담감에 이 아버지는 또 한 명의 부담을 얹게 됐다. 그건 새로이 나타나 자신이 아들이라 대뜸 말하고는 아버지 취급을 해주지 않는 안중희(이준)의 등장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친자식이 아니라 친구의 아들이다. 하지만 이 아버지는 안중희마저 아들로 품으려 한다.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그에게 매일 같이 정성스레 만든 도시락을 갖다 준다.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고, 또 아내를 살뜰히도 위하며 그 가족인 장모와 처남까지 가족처럼 챙기며 살아가는 아버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아버지는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정작 자신이 하고픈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듯이 가족들이 잘 되는 것만을 바라며 묵묵히 뒤에서 쉬지 않고 일을 하며 그들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본다. 

삶이 힘겹고, 현실은 각박해져 가족 내에서도 각자도생하는 것이 우리네 가족의 삶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각자 생존하기 위해 저마다 살다보니 우리는 어쩌면 그 이면에서 누군가 든든히 우리를 위해 버티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걸 까마득히 잊고 살아가는 지모 모르겠다. <아버지가 이상해>의 아버지 변한수가 유독 짠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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