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맨스 터지는 ‘터널’의 형사들 어딘가 다르다

30년 시간의 터널을 훌쩍 통과해온 형사 박광호(최진혁). 30년 전 그를 따르던 막내 전성식(조희봉)이 어느덧 강력 1팀장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팀에서 박광호는 이제 막내 처지다. 그러니 박광호는 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팀의 위계질서 속에서 투덜댈 수밖에. 그런데 워낙 그를 따르던 막내였던 탓일까. 전성식은 박광호가 바로 그 30년 전 실종된 선배라는 걸 알아보고는 길거리에서 누가 보는 지도 모르고 껴안고 반가워한다. 

'터널(사진출처:OCN)'

OCN 주말드라마 <터널>의 이 풍경은 사실 조금 낯설다. 흔히 형사물 스릴러 장르에서 남자들의 세계는 거친 면들만 부각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심지어 차갑게 느껴지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터널>은 이런 스릴러 장르의 폼을 잡는 대신, 형사들의 인간적인 면을 더 부각시켰다. 박광호와 헤어지며 전성식이 “이번엔 그냥 훅 사라지면 안돼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마치 애인에게 하는 말처럼 살갑다. 브로맨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대목이다. 

그렇게 박광호가 사실은 30년 세월을 뛰어넘어 나타난 선배라는 걸 알면서도 강력1팀으로 돌아오면 두 사람의 선후배 관계는 뒤집어진다. 박광호는 그럭저럭 존댓말을 하는 게 익숙해지고 있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성식은 좀체 그게 어려워졌다. 그래서 부지불식간에 막내 박광호에게 존댓말이 튀어나온다. 그걸 이상하게 여긴 팀원들은 마침 교육을 갔다 온 전성식이 후배들에게 존대를 하라는 교육을 심하게 받은 것 아니냐고 묻는다. 

사실 이런 깨알 설정들은 형사물 스릴러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질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이전 OCN 드라마였던 <보이스>의 경우, 이런 코믹한 깨알 상황들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살인사건의 연속과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형사들의 손에 땀을 쥐는 스릴러가 이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터널>은 다르다. 똑같이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범인을 추격하는 이야기가 계속되지만 중간중간에 형사들의 애환이 코믹한 상황으로까지 연출되어 있다. 

강력1팀의 곽태희(김병철)와 송민하(강기영)는 그래서 마치 만담 콤비처럼 나누는 대화를 통해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어떤 숨 쉴 여지를 제공한다. 특히 <수사반장>을 좋아하는 마니아로 설정된 송민하는 주목할 만한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서 나타난 박광호의 구식 스타일을 오히려 멋있게 느끼며 <수사반장>을 흉내낸다며 촌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나타난 송민하라는 형사는 <터널>이 형사들을 어떤 방식으로 그려내려 하고 있는가를 명확히 보여준다. 

물론 <터널>에는 미드 [CSI]를 연상케 하는 인물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박광호와 한 팀을 이루고 있는 김선재(윤현민)가 그렇고, 범죄심리학자로 범죄자들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신재이(이유영)가 그렇다. 하지만 <터널>이 추구하는 방향은 스릴러이고 형사물이면서도 어떤 따뜻한 인간미라는 건 명백해 보인다. 부검의로 등장하는 목진우(김민상) 같은 캐릭터를 보면 냉철한 분석을 해내면서도 박광호에게 농담을 툭툭 던질 정도로 인간미를 보여준다. 

<터널>의 형사들이 여타의 스릴러 장르물들과 달리 따뜻한 느낌을 주는 건 의도된 장치다. 결국 이 드라마는 범인을 잡는 형사물이 분명하지만 그 범인을 어떻게 잡는가 하는 그 방식에 더 집중시킨다. 즉 3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타임리프 설정은 과거의 아날로그적인 형사 박광호를 현재로 소환시켜 이른바 과학수사라고 불리지만 과학적 수치에 가려진 인간애나 생명에 대한 간절함 같은 걸 드러내기 위함이 아닌가. 

그래서 <터널>이 추구하는 건 [CSI]가 아니라 오히려 <수사반장>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안타까움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간절함. 마치 가족 같고 형제 같은 느낌을 주는 형사들의 관계. 때론 웃기고 때론 짠해지는 동료애 같은 것들이 <터널>의 형사들에게서는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은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보여주려는 주제의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터널’, 이유영의 정체에 시선이 집중된 까닭

OCN 주말드라마 <터널>은 이 채널이 일관되게 그려왔던 스릴러 장르물이다. 연쇄살인범이 등장하고 그를 잡으려는 형사들이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공식적인 틀과는 다른 <터널>만의 차별화된 지점이 있다. 그것이 이 스릴러 장르물이 가져온 타임리프라는 장치에 숨겨져 있다. 3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1986년에서 현재로 시간이동한 주인공 박광호(최진혁)의 주변에 포진한 인물들에 대한 궁금증이 그것이다. 

'터널(사진출처:OCN)'

박광호의 30년을 뛰어넘는 타임리프가 그저 우연히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점은 과거 그가 추적했던 연쇄살인이 현재까지 어떤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는 걸 새로운 사건들로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야산에서 발견된 토막살인의 신체일부에 찍힌 다섯 개의 점이 그 단서다. 30년 전 그가 추적하던 살인범이 피해자들의 발에 남긴 점이 일종의 살인의 순서라는 걸 밝혀냈지만 찾지 못했던 다섯 번째 희생자가 30년 후 사체로 발견됐다는 점이 그렇다. 죽은 걸로 알았던 희생자가 30여 년을 숨어 살아왔다는 걸 말해주는 이 대목은 하필이면 그 사건이 박광호 앞에 놓여 있다는 점으로 인해 그의 타임리프와 30년을 넘어 이어지는 연쇄살인이 연관되어 있다는 걸 확인시켜준다. 

그런데 박광호가 궁금해 하는 이 타임리프와 연관된 연쇄살인범의 소재와 함께 이 드라마를 더욱 궁금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그것은 그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1988년생 박광호가 도대체 누구이고 또 어디로 사라졌는가 하는 점이다. 그가 태어난 시점으로 보면 1986년 당시 임신을 했었던 박광호의 아내로 미루어 짐작해 그가 박광호의 아들이 아닐까 싶지만 아직 드라마는 그 구체적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 

여기에 미스터리한 인물들은 또 있다. 즉 박광호와 한 팀이 되어 수사를 하고 있는 김선재(윤현민)와 수사 고문으로 임명된 냉철하지만 어찌 보면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 같은 섬뜩함을 안겨주는 신재이(이유영)가 그들이다. 시청자들 중에는 그래서 박광호 2세가 김선재이거나 신재이일 수 있다는 추측을 내놓기도 한다. 

이들에 대한 궁금증은 실로 박광호의 타임리프 사건이나 그가 쫓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추격전만큼 흥미진진한 면이 있다. 그것은 그 독특한 캐릭터에서 나오는 관심과 기대감이 상당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어찌 보면 박광호는 저 <시그널>이 보여줬던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아날로그 형사의 전형처럼 보여지만, 그와 대비되어 이른바 과학수사라는 이름으로 미디어와 CCTV, 유전자 감식 같은 정보들을 당연하게 활용하는 김선재는 우리 사는 모습의 자화상처럼 그려진다. 그가 활용하는 과학들은 이제 우리에게 당연한 것들이지만, 그 옆에 박광호라는 인물을 세워놓으니 그게 새삼스러워진다. 편리하긴 하지만 어딘지 차갑고 쓸쓸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김선재보다 더 독특하고 신선한 캐릭터는 신재이라는 인물이다. 범죄심리학 교수지만 어딘지 연구를 하다 범죄자의 마음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는 듯한 섬뜩함이 그녀에게서는 느껴진다. 물론 그래서 범죄자들의 심리를 마치 자기 마음처럼 알고 그래서 현장과 사진 몇 장을 갖고도 범행의 동기나 용의자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해내지만 그런 정확함이 그녀까지도 검게 물들여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범죄 심리 분석가와 범죄자 사이의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다는 점은 이 캐릭터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한다.

도대체 김선재와 신재이는 어떤 인물들일까. 시청자들의 추측대로 그들 중 과연 박광호의 2세가 있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그들은 박광호와 어떤 인연으로 얽혀있는 것일까. 이 궁금증은 고스란히 박광호가 왜 30년의 세월의 터널을 통과했는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어쩌면 범죄 그 자체보다도 더 흥미로운.

‘자체발광 오피스’, 당신은 어떤 회사를 원합니까

“회사란 게 꼭 자식 같습디다. 작은 것을 키울 땐 내 것 같지만 크고 나면 내게 아니에요. 직원들 거고 우리 제품 찾는 소비자 거고.” MBC 수목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허구동 과장(김병춘)이 주선해 서우진(하석진)이 만난 하우라인의 회장은 자신이 생각하는 회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건 이 드라마가 진짜로 하려던 이야기일 것이다. 

'자체발광 오피스(사진출처:MBC)'

사실 <자체발광 오피스>가 지금껏 포커스를 맞춰 온 건 은호원(고아성)을 중심으로 한 인턴들의 이야기였다. 당연히 청년 실업에 대한 갈증들이 첨예하게 담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어쨌든 하우라인이라는 회사에 들어와 한 솥밥을 먹기 시작한 이들이 처한 새로운 문제는 회사 자체의 시스템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결국 그것이 청년 실업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저는 뭐 누구 라인 이런 거 되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저한테 하우라인은 사주의 전횡 없는 좋은 회사란 이미지가 있고 제가 일한 만큼 인정받고 제 동료직원들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상식적인 직장이길 바랄 뿐입니다.” 회장이 회사를 “자식 같다”고 표현하자 서우진은 “상식적인 직장”을 이야기한다. 그렇다. 언제 직원들이 회사에 대단한 것을 바랐던가. 적어도 상식이 지켜지는 회사를 바랐던 것이 아니었던가. 

회장을 만나고 온 서우진에게 허구동 과장은 자신이 그를 회장과 만나게 한 이유에 대해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허구동 과장은 옛날 직장생활의 이야기를 꺼낸다. “부장님은 모르시죠? 월급날 누런 봉투에 월급 받아 이번 달에는 얼만지 침 묻혀가며 세고 속 주머니에 월급봉투 들어앉은 그 뿌듯하고 든든한 기분.” 계좌로 직접 입금되는 요즘과는 달리 어딘지 정이나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그 때의 회사.

“월급날 그 봉투 생각이 많이 납니다. 저한텐 그 때가 회사는 내 집 같았고 동료들은 내 식구 같았고 그런 회사로 다시 되돌리고 싶습니다.” 허구동 과장이 말하는 회사는 지금은 너무 멀리 와 기억에서도 가물해진 그런 과거의 회사다. IMF 이후 칼바람에 사라져버린 ‘사람 냄새 나는 회사’. <자체발광 오피스>가 은근슬쩍 꺼내놓는 새로운 판타지. 

“부장님 지금까지 비겁하게 도망만 치지 않았습니까. 맘에 안 들면 사표내고 더러운 꼴 피하시고 그래서 우리 회사로 오신 것 아닙니까. 이젠 바꿔보시죠. 맘에 안 들면 고치고 더러운 건 잘라내고 좋은 직장 자랑스러운 회사 만들어서 열심히 일해요. 여기서 왜 사장까지 못합니까. 집이 더러우면 자기가 치우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우라인 우리가 그렇게 한번 만들어 보십시다.” 

허구동 과장의 이 말과 그 말을 음미하며 어떤 각성을 하는 서우진. <자체발광 오피스>는 이제 은호원을 중심으로 하던 청년 실업 문제에서 나아가 서우진을 중심으로 펼쳐나가는 좋은 회사 만들기라는 새로운 직장인들의 판타지를 건드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젊은 세대의 공감은 분명했지만 중년층의 공감대가 애매했던 이 드라마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자체발광 오피스>라는 제목은 애초에 그 이중적인 의미로 좋은 회사에 대한 비전을 담고 있었다고 보인다. 즉 발광할 정도의 미쳐 돌아가는 비상식적인 회사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회사로의 변신. 서우진의 각성은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가 하려는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혁명가 홍길동, ‘역적’의 재해석이 흥미로운 까닭

“상전나리 나리께선 아내를 죽인 남편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이 나라의 법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 같은 일자무식 무지랭이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겠는데 똑똑하신 웃전들께선 진정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걸 모르신단 말입니까?”

'역적(사진출처:MBC)'

MBC 월화드라마 <역적>에서 홍길동(윤균상)은 상전 김자원(박수영)에게 그렇게 묻는다. 간통했다며 아내를 살해한 정중부에게 죄를 묻기는커녕, 그에게 복수를 한 장인 김덕형을 한성부 서윤 조정학(박은석)이 오히려 신문을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부당함을 되묻는 질문이다. 

헬조선. 남편이 아내를 때려죽여도 죄를 묻지 않는 세상이다. 양반은 양인을 때려죽여도 죄를 묻지 못하는 세상. 그것이 바로 대명률에도 들어있는 헬조선의 법도란다. “해서 간통한 아내는 임금을 저버린 신하를 벌주듯 남편이 벌주게 해야 하는 것이지요. 여자라는 것은 본시 집안에서는 아비를 따르고 시집을 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르는 것이지요.” 충원군 이정(김정태)은 이것이 나라가 바로 서는 길이라고 강변한다. 

충원군의 그런 생각의 뒤에는 사실상 유자를 내세워 국정을 농단하는 송도환(안내상)이라는 비선실세가 존재한다. “어찌 인간에게 높고 낮음 크고 작음이 없겠습니까. 임금과 신하, 아비와 자식,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의 구분이 있는 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죠. 이런 구분이 없는 세상이란 무질서이고 무질서란 곧 뭐다? 혼란을 불러오게 되는 것입니다. 해서 귀한 사람은 천한 사람을 부리고 천한 사람은 귀한 사람을 따라야 하는 것이오. 이러한 이치가 이루어지면 나라는 저절로 다스려질 것이고 이러한 이치가 이루어지면 집안은 저절로 다스려질 것이며 임금은 임금다워지고 신하는 신하다워지고 남편은 남편다워지고 아내는 아내다워지는 것입니다.”

송도환의 요설은 신분사회, 차별사회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런 반상의 계급 안에서 질서가 유지되어야 나라가 저절로 다스려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건 결국 ‘다스린다’는 표현 안에 이미 숨겨져 있듯이 권력자들이 말하는 ‘통치의 기술’을 교묘한 유자의 논리를 통해 풀어낸 요설일 뿐이다. 

홍길동은 한성부에 억울하게 끌려간 김덕형을 구해내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고전소설 속에 등장하는 홍길동이야 복면 쓰고 당장 한성부 감옥을 공격했겠지만 그러는 대신 그는 김자원에게 부탁해 연산(김지석)을 활빈정에 오게 하고는 그의 어머니 폐비 윤씨가 억울하게 죽어간 이야기를 듣게 만든다. 폐비 윤씨의 억울함을 통해 김덕형의 딸의 죽음에 동정심을 갖게 만들기 위함이다. 

결국 홍길동의 이런 마음을 흔드는 지략으로 연산은 신하들에게 묻는다. “정중부가 아내를 죽인 것이 마땅하다 이 말인가. 진정 그대들 모두 그리 생각하는 것인가.” 그리고 마침 자신과 함께 수학해온 조정학이 자신의 집안을 풍비박산 낸 조참봉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길현(심희섭)은 분연히 나서 사건의 부당함을 피력한다. 

“허나 아내 김동이 이미 죽어 참으로 남편을 배신했는지 알 수 없지 않사옵니까. 헌데 아내를 죽인 후에 그 아내가 투기하였다 간음하였다 빠져나간다면 죽은 아내의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하겠나이까. 그럼에도 한성부 서윤 조정학이 정중부의 죄상은 밝힐 생각도 하지 않고 외려 딸을 잃은 김덕형만을 신문하고 있나이다.” 길현의 이 말에 동조한 연산은 김덕형을 풀어주고 정중부의 죄를 낱낱이 밝히며 한성부 서윤 조정학을 다른 직으로 좌천시키라는 명을 내린다. 

억울하게 남편에게 맞아죽은 한 처자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 것이지만, 이 안에는 <역적>이 재해석하고 있는 홍길동의 흥미로운 면면이 드러난다. 물론 괴력을 사용하는 홍길동의 모습이 간간히 등장하고는 있지만 <역적>은 그렇다고 홍길동은 그런 의적으로만 해석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의적이라기보다는 사업가의 외피를 쓴 혁명가에 가깝다. 

그가 혁명가로 보이는 까닭은 이른바 ‘삼종지도’ 운운하며 임금과 신하가 아비와 자식이 또 남편과 아내가 차별받는 세상에 반기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큰 어르신으로도 불리고 길동이로도 불리며 또 발판이라도 불렸던 홍길동은 이러한 수직적인 계급구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남녀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령(채수빈)에게 “여자라 하여 밥을 지을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길동이 아닌가. 

<역적>이 단순히 홍길동을 탐관오리 혼내주는 의적으로 그리지 않고 헬조선의 잘못된 시스템과 대적하는 혁명가로 그리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더 이상 탐관오리 혼내주는 의적이 보여주는 판타지가 지금의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속 시원한 해결책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그깟 탐관오리 몇을 혼내 준다한 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지금의 대중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적>이 그리고 있는 의식 있는 혁명가로서의 홍길동이라는 캐릭터가 흥미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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