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급상승 <욱씨남정기>, 그 중심에 선 이요원

 

JTBC 금토드라마 <욱씨남정기>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첫 회 1.0%(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급상승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욱씨남정기>3회 만에 2% 시청률을 넘겼고, 화제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그 중심에는 단연 얼음공주에서 멋진 마녀로 돌아온 사이다녀 이요원이 있다.

 


'욱씨남정기(사진출처:JTBC)'

사실 어찌 보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그리 예측하기 어렵지 않은 드라마다. 아예 대놓고 갑질 하는 세상의 을들을 위한 사이다 드라마라고 표방한 것처럼 이 드라마는 영원한 을의 입장에 서 있는 하청업체 러블리 코스메틱 사람들이 갑질 하는 황금화학과 맞서 나가는 얘기를 다룬다.

 

하지만 황금화학 팀장이었던 옥다정(이요원)이 러블리 코스메틱 본부장으로 들어와 을의 위치에 서게 되면서 지금까지 관행처럼 해온 황금화학의 갑질 행태들에 사이다를 날리는 대목이 시청자들의 정서를 저격한다. 늘 하청업체로만 살아왔던 러블리 코스메틱이 자체 브랜드를 출시하고 당당하게 서는 모습만큼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대목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를 막기 위해 황금화학 김환규 상무(손종학)가 벌이는 갖가지 갑질들이 있지만 그래서인지 이 러블리 코스메틱이란 회사의 일에 시청자들이 마치 자기 일인 양 지지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옥다정이라는 인물에 이요원을 캐스팅한 것에서 드러나듯 이 드라마는 캐스팅의 묘가 빛난다. 이요원이 어떤 이미지의 배우인가. ‘얼음공주라는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아닌가. 그런데 이 차가운 면이 을의 입장에서 러블리 코스메틱을 일으켜야 하는 본부장 역할로 제대로 힘을 발휘한다.

 

사실 갖가지 황금화학의 갑질 행태 앞에 일일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큼 맥 빠지는 리더의 모습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옥다정은 그럴수록 더 표정이 냉정해지고 심지어 사우나 하는 김상무를 찾아가 황금화학과 앞으로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사이다 발언을 할 때는 살벌할 정도로 차가운 면을 드러낸다. 그 냉정함이 을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 흡족하고 든든하게 해주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그 무표정한 얼굴과 달리 직원들을 챙기는 모습은 남녀의 위치가 바뀐 이른바 츤데레의 느낌마저 준다. 남정기(윤상현)의 아들 우주(최현준)가 핍박받는 아빠를 위해 복수하겠다며 옥다정의 집 문에 바보라고 적었다가 머찐 바보로 고쳐 적어 놓자 꼬마에게 옥다정이 한글 떼기 책을 선물하는 대목이나, 우주가 아프다고 하자 야근을 자청하는 남정기를 빨리 퇴근시켜주는 대목에서는 이 냉정한 옥다정이 사실은 이름처럼 정이 많은 인물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준다.

 

우리에게 이미 <미생>의 마부장으로 악명 놓았던 대표적인 개저씨손종학을 캐스팅해 갑질하는 황금화학의 대표적인 캐릭터로 세워놓은 것도 적절했고, 늘 당하는 입장에서 한없이 망가지는 연기도 불사하는 윤상현의 캐스팅도 그 어떤 배역보다 잘 어울린다고 여겨진다.

 

<욱씨남정기>는 물론 대작은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건드리고 있는 정서는 지금의 대중들이 갈증을 느끼는 대목이라는 점에서 생각보다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옥다정과 그녀가 이끄는 러블리 코스메틱 사람들이 갑질에 대항해 시원한 사이다 한 방을 보여주는 것. 참 단순해보여도 이 정면승부가 주는 정서저격의 힘은 의외로 크다

<욱씨>, 무엇이 이요원 같은 사이다 을을 탄생 시켰나

 

세상에 이렇게 속 시원한 을의 판타지가 있을까. 만일 을의 입장에 처한 분들이라면 JTBC 금토드라마 <욱씨남정기>의 옥다정(이요원)이라는 캐릭터가 말 그대로 사이다로 여겨질 만하다. 비록 결코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드라마의 한 순간 판타지라고 하더라도 이 사이다 캐릭터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간 을로 살아오며 쌓인 울분을 톡톡 터트려주고 있으니.

 


'욱씨남정기(사진출처:JTBC)'

황금화학 팀장으로 있다가 러블리 코스메틱 본부장으로 간 옥다정이 탐탁찮은 황금화학 김환규 상무(손종학)는 구매팀장을 시켜 하청업체인 러블리 코스메틱을 괴롭힌다. 주문을 했다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반품시키고 심지어 생산을 중단하겠다는 으름장을 놓는다. 그런 상황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옥다정에게 러블리 코스메틱의 한영미 과장(김선영)은 이렇게 말한다.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 하시는 건지. 전형적인 하청업체 길들이기잖아요. ‘옥다정 너 까불지 마라.’ 그런 뜻 아닐까요?”

 

이것은 아마도 전형적인 갑을관계에서 이른바 관행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갑질일 것이다. 한 과장에게 이런 상황은 너무나 익숙하다. 자존심을 꺾지 않고 맞서는 옥다정에게 그녀는 을의 생존법을 얘기한다. “러블리에 왔으면 러블리의 방식을 따르셔야죠. 갑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을은 늘 손해를 감수한다. 갑의 만족이 곧 을의 만족이다. 이게 바로 갑질에 대처하는 을의 생존법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옥다정은 이에 승복하지 않으려 한다. 직접 황금화학 구매팀장을 찾아간 그녀는 일방적인 반품처리와 단산 운운하는 것이 갑의 횡포라고 맞선다. 그런 그녀에게 구매팀장은 대놓고 을이면 알아서 을답게 굴라고 말한다. “이봐요 옥본! 사태파악이 그렇게 안돼서 어떡하나. 이젠 황금화학 팀장이 아니라 러블리 코스메틱 본부장이잖아요! ?! 하청은 처음이라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원칙 따지다 러블리는 이 바닥에서 일 못한다는 걸 알아야지.”

 

아마도 현실이었다면 그 정도에서 무릎을 꿇었을 일이다. 심지어 러블리 코스메틱의 남정기 과장(윤상현)은 그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싶은 걸 지키는 게 진짜 자존심이라고 말한다. “직원들은 자존심 보단 밥그릇 지켜주는 상사를 바란다는 남 과장의 이야기가 보통의 을들이 가진 정서이니 말이다.

 

하지만 옥다정은 여기서 물러나지 않는다. 사우나에서 다른 하청업체 사장들과 노닥거리고 있는 김상무를 찾아가 러블리와의 하청계약을 모두 끊어 달라고 도발한다. 무릎 꿇으러 온 거 아니었냐며 황당해 하는 김상무에게 옥다정은 꿇으러 온 게 아니라 끊으러 온 겁니다라고 대꾸하고, “너 지금 나랑 진짜 해보자는 거야?”라는 위협에도 이렇게 속 시원한 한 방을 날린다. “해보자는 게 아니라 안하겠다는 겁니다. 앞으로 황금에서 내는 주문은 그게 뭐가 됐든 단 한 건도 받지 않겠습니다.”

 

물론 이건 판타지다. 세상에 이런 을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다정이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을의 입장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필이면 남자들만 득시글대는 사우나라는 공간에 여자의 몸으로 들어가 모든 계약의 해지를 통보하는 옥다정의 모습을 이 드라마가 그려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우나란 공간이 어떤 곳인가. 맨몸으로 들어가지만 관계라는 미명하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갑질이 종종 벌어지는 곳이 아닌가.

 

세상이 오죽 갑질 하는 이들로 넘쳐나면 이처럼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속 시원한 을의 판타지를 원하게 된 걸까. 현실이 아니라고 해도 그저 잠깐 동안의 판타지라고 해도 이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건 그래서다. 밥그릇 때문에 자존심을 꺾기보다는 자존심을 지켜 밥그릇도 지켜내는 옥다정이 몹시도 보고 싶다

<기억>, 어느 한 남자의 추락을 바라본다는 건

 

태석(이성민)의 하루는 한 마디로 지옥 같았다. 하루아침에 멀쩡했던 그는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고 뇌가 쪼그라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가방 대신 쓰레기를 들고 나오질 않나 심지어 자기 차를 찾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알츠하이머에 대해 멍청이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재벌3세 의뢰인 영진(이기우)의 말은 이제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니다.

 


'기억(사진출처:tvN)'

영진이 가진 병원측을 대신해 태석이 내부고발을 하려는 의사의 사적인 약점을 들춰내고 그것으로 문제를 덮은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의사가 덜컥 자살을 해버리고, 백지유서에 그의 명함을 남겨 놓는 일이 발생한다. 의사의 자살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거기 남겨진 태석의 명함 때문에 형사가 찾아와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한 가지가 어그러지기 시작하자 모든 게 뒤틀어지고 나쁜 일은 함께 몰려온다고 태석에게 그간 아무렇지도 않게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던 일상들이 허물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그를 돕는 젊은 변호사인 정진(이준호)은 태석의 비도덕적인 행위들을 사사건건 문제 삼고, 같은 로펌의 한정원(송선미) 변호사는 어쩐지 태석과 직장 내에서의 정치 싸움에 돌입하는 모양새다. 겉으론 무표정하지만 어려운 일들을 대신 태석에게 밀어내고 거기서 생겨나는 문제를 끄집어내 로펌에서의 입지를 약화시키려 한다.

 

그 와중에 결혼식장에도 보지 못한 무언가 문제가 있는 듯한 태석의 아버지(장광)가 나타난다. 태석의 회사를 찾아온 아버지는 자기 친구가 처한 문제에 대해 태석에게 변호를 부탁하지만 그는 자신에겐 아버지가 없다며 그를 내쫓는다.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는 어쩐지 태석에게는 또 다른 걸림돌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거의 신경쇠약 직전에까지 이른 태석은 자기 스스로 머리에 물을 붓는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다. 1인 아들은 어찌 된 일인지 편의점에서 술을 훔치고 학교도 빠져버린다. 왕따 문제 같은 학교 문제에 연루된 것이 틀림없다. 아직 태석에게까지 이 문제가 알려지진 않았지만 조만감 이 문제는 그에게 치명타를 입힐 가능성이 높다. 밖에서의 문제야 그렇다 치지만 그나마 그것이 모두 가족을 위한 일이었다고 위안하며 살았을 그가 아닌가. 가족의 붕괴는 그를 절벽 끝으로 내모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의사가 자살한 병원의 간호사가 나타나 사실 그 백지유서를 놓은 건 자신이라며 진짜 유서는 자기가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언니가 키운 아이를 생모가 돌려달라고 한다며 이를 막아달라고 태석을 협박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살한 의사의 진짜 유서를 공개해버리겠다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라고 소리치는 태석이 먼발치서 엄마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가 보낸 이 지옥 같은 하루와 겹쳐지면서 시청자들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토록 힘겹게 버텨내고 심지어 세상과 타협하면서까지 얻게 된 지위와 부 그리고 그로 인한 가족의 평안함이 무너지는데 드는 시간이 고작 단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다는 건 실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억>이라는 드라마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이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에서의 고군분투가 진정한 삶의 가치에서는 얼마나 벗어나 있는 것인가를 확인하는 것. 그래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진짜 중요한 것들을 찾아 해나가는 것. 이것은 <기억>이라는 드라마가 태석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많은 드라마들이 성장과 성공 스토리를 그려낸다. 그 안에는 판타지가 뒤섞인다. 현실에서는 쉽게 이룰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쟁취하는 인물을 통해 갖는 대리 충족. 하지만 <기억>은 거꾸로 이미 최고의 위치에 오른 한 인물의 추락을 그려낸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그 성공을 위해 저당 잡혀 왔던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는 것. 모두가 성장과 성공으로만 달려가는 시대에 우리가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의미 있는 충격요법이 아닐 수 없다

작정하고 센 <태후>의 소재들, 이러니 안 될 수가 있나

 

전쟁과 재난에 이어서 이번엔 전염병이다. 아주 작정하고 센 소재들을 총동원 하겠다 마음먹은 기색이 역력하다. 이러니 시청률이 안 오를 수가 없다.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9회에 30%를 훌쩍 넘겨버리더니 거기에 멈추지 않겠다는 듯 이제 31,6%(닐슨 코리아)로 순항중이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멜로는 약하다? 극성이 약한 건 사실이다. 생각해보라. 멜로의 갈등들을 통해 인물들이 겪게되는 결과란 고작 사랑이 이루어지거나 헤어지거나가 아닌가. 물론 그 사랑이 죽음을 담보로하기도 하지만. 사극 같은 장르가 극성이 강한 건, 늘 죽음을 옆에 달고 다녀서다. 알다시피 전쟁, 재난, 전염병 같은 모든 소재가 활용되는 장르가 바로 사극이다.

 

그런데 <태양의 후예>는 현대극이면서도 이 모든 소재들을 다 사용하고 있다. 이게 가능해진 건 우르크라는 가상의 지역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르크가 아닌 어떤 현실 공간이었다면 이처럼 다양한 소재들이 한꺼번에 벌어지는 공간으로 활용하기가 어려웠을 게다. 하지만 우르크는 저 사극이 시간의 거리를 통해 뭐든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처럼, 막연한 공간의 거리를 만들어 전쟁이든 재난이든 전염병이든 발생시킨다.

 

물론 그 공간에는 유시진(송중기)이나 강모연(송혜교), 서대영(진구), 윤명주(김지원) 같은 현실감을 부여하는 인물들이 들어간다. 그들이 군인 혹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라는 건 <태양의 후예>가 하나의 가상극 같은 뉘앙스를 갖게 만든다. 마치 <헝거게임>처럼 이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갖가지 벌어지는 사건들을 마주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해나가야 한다. 물론 그 사건들은 모두 목숨을 담보로 한다는 저에서 게임이지만 살벌하다.

 

멜로드라마는 어디든 지뢰가 깔려 있고 누구든 총을 꺼내 들며 때론 지진이 일어나 건물을 통째로 삼켜버리고 게다가 치명적인 전염병에까지 노출되어 있는 이 살벌한 공간 위에서 피어난다. 강모연이 유시진이라는 위험한 남자에게 우리는 서로 맞지 않는다며 이별을 통보하지만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건 그녀가 우르크라는 뭐든 가능한 가상공간으로 들어오면서부터다. 그 공간은 위험하지만 그만큼 달콤한 유시진이라는 로맨스의 인물이 있는 곳이다.

 

위험과 로맨스. 상극인 것 같지만 이만큼 잘 어울리는 조합도 없다. <로맨싱 스톤>이나 <크로커다일 던디> 같은 전통적인 로맨스 영화들을 보라. 위험한 정글이나 늪지대에서 모험을 펼치는 위험한 남자 주인공과 도시에서만 살아와 그런 곳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여 주인공의 로맨스는 더 달콤하다. 그것은 어찌 보면 안전한 도시에서 살아온 여성들이 상상으로 꿈꾸는 거친 로맨스일 것이다.

 

<태양의 후예>의 우르크는 그래서 모든 위험한 상황들이 다 벌어지는 곳이지만 실제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여성들이 꿈꾸는 로맨스의 공간으로서 기능한다. 그 곳은 마치 현실에서는 유시진이라는 인물을 밀어냈던 강모연이 상상을 통해 만들어낸 가상공간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이런 장르적 설정들은 이미 많은 로맨스물에서 무수히 활용되어 왔던 장치들이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가 절묘하게 여겨지는 건 여기에 군인이라는 어찌 보면 우리식의 클리셰들이 가능한 인물들을 집어넣어 우리의 색깔로 채색했다는 점이다. 가상공간에 마치 강모연의 상상에 의해서 창조된 듯한 유시진 같은 이상화된 군인들. 이를 현실과 비교해 리얼리티 운운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로맨스물의 판타지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후예>가 대단하다 여겨지는 건 늘 현실 공간에만 붙잡혀 그 상상의 한계를 스스로 지우고 있던 드라마를 우르크라는 가상공간을 세우고 그 안을 뭐든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로 채워 넣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또 그 사랑을 누군가 반대하고 그래서 그걸 넘어서기 위해 안타까운 안간힘을 벌이는 식의 현실의 멜로가 식상하게 느껴진 건 로맨스물 특유의 판타지가 거기에서는 더 이상 발견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태양의 후예>는 적어도 그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우르크라는 공간은 그래서 김은숙 작가가 상상으로 구현해낸 멜로의 실험실 같은 느낌마저 준다. 뭐든 가능한 로맨스의 공간. 이러니 안 될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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