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뜯소’, 한태웅이 가르쳐주는 생산의 기쁨

도대체 그저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이 느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시골이라는 공간이 주는 푸근함 때문일까. 아니면 한태웅이라는 어리지만 당찬 중딩농부의 넉넉한 마음 때문일까. tvN <풀 뜯어먹는 소리>가 ‘가을편’으로 돌아왔다. 

‘봄편’에서도 그랬지만 ‘가을편’ 첫 방송도 아주 특별한 일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새 멤버로 박나래와 황찬성이 합류했고, 그렇게 도착한 그들은 오자마자 봄에 모내기를 했던 논을 가득 채운 벼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곧바로 고추밭으로가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고는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이 별것도 아닌 일들은 하지만 묘한 편안함을 주었다. 고추를 따는 농사 일은 단순해 보여도 도시에서 살던 이들에게는 고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고된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먹는 점심은 꿀맛이었다. 똑같은 한 끼도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는 건 거기 ‘건강한 노동’이 있어서다.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노동 후의 한 끼가 주는 행복감.

도시 살이가 소비의 삶이라면 한태웅이 소개하는 농촌의 삶은 생산하는 삶이다. 봄에 심었던 벼들이 올여름 폭염과 갑자기 들이닥친 태풍을 다행히도 피해내고 초가을 풍성하게 자라있는 모습은 생산하는 삶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아닐까.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다 빻아서 만든 고춧가루가 맛있는 음식으로 돌아올 거라는 걸 알기에 느껴지는 포만감. 이것은 <풀 뜯어먹는 소리>가 특별한 일을 벌이지 않아도 우리에게 주는 정신적인 포만감이다. 

이제 열여섯의 중딩 농부 한태웅이 주는 흐뭇함은 바로 이런 농촌에서의 생산하는 삶이 온 몸에 묻어나면서 생겨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잠들 때까지 무언가를 일궈내기 위해 쉴 새 없이 손을 놀린다. 그 모습은 도시에서 하루 종일 무언가를 끊임없이 소비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가를 드러낸다. 

이 어린 생산하는 자의 당찬 포부는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강원도까지 찾아가 보통 송아지 가격의 두 배나 되는 칡소를 사오며, 앞으로 그 소를 키워 안성에 있는 자신의 축사 가득 채우겠다는 포부는, 도시에서 살아가며 더 성공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경쟁하는 삶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마치 호랑이 문양이 들어간 듯한 특이한 외양을 가진 칡소는 우리나라에 꽤 많이 존재했지만 일제강점기에 약 150만 마리가 수탈되면서 점점 자취를 감추다 현재는 멸종 위기에까지 처했다고 한다. 현재는 전국에 3천 마리 정도 밖에 없다는 칡소. 그걸 복원해 안성에 칡소가 유명하게 만들고 싶다는 한태웅의 포부. 도시에서 온 출연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 건 그 남다른 포부가 주는 기특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풀 뜯어먹는 소리>는 그 ‘생산적인 일들’ 덕분에 굉장한 일을 벌이지 않아도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무언가를 키워내고 살려내는 일을 한다는 것. 그 속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도시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주는 기쁨이 적지 않다. 그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한태웅을 보며 흐뭇한 마음이 드는 건 그래서일 게다.(사진:tvN)

‘현지에서 먹힐까’, 장사라면 이연복처럼

tvN <현지에서 먹힐까>는 중국에서 우리식의 중화요리가 먹힐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되었지만, 보면 볼수록 이연복 셰프가 어떻게 자기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첫 날 중국 현지에서 내놓은 짜장면이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결국 재료가 동이 나 빠른 퇴근을 하게 됐다는 사실에 이연복 셰프는 물론이고 출연자들 모두가 들떠 있었다. 

그래서 다음 날 장사 메뉴로 짬뽕을 준비하면서 이연복 셰프는 훨씬 더 많은 재료들을 현지 시장에서 챙기도록 했다. 전날 그랬듯이 신선한 재료를 그 때 그 때 구입해 요리해 내놓는 기본이야말로 맛의 차이를 만드는 거라는 이연복 셰프의 습관화된 행보였다. 가장 쉬운 일이지만 성실하게 매일 같이 지켜내기는 결코 쉽지 않은 것, 그것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장사가 늘 잘될 수만은 없다. 다음 날 메뉴로 내놓은 짬뽕은 이연복 셰프의 예상과 달리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일요일이라 전날만큼 인파가 별로 없었고, 나들이를 나온 손님들도 대부분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이었다. 그런데 짬뽕은 아이들이 먹기에는 너무 매웠다. 혓바닥이 아프다며 우는 아이들 속에서 함께 온 부모들도 마음 편히 먹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전날 짜장면이라면 묻지도 않고 시키던 손님들도 짬뽕이라고 하니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찾았다가 그냥 가는 손님들이 점점 많아졌다. 잔뜩 준비해온 재료들을 보며 “오늘 장사는 망했다”고 재빠르게 현실을 인정한 이연복 셰프는 드디어 그 오랜 세월 해왔던 경험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음식이 매워 못 먹는다면 메뉴를 변경하는 게 당연한 선택일 수 있었다. 이연복 셰프는 고춧가루를 뺀 백짬뽕을 준비했다. 맵지 않고 대신 신선한 해산물의 시원한 맛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제 맵지 않아 아이들도 쉽게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어른들도 만족스러워 했지만 이연복 셰프는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준비한 재료들도 많이 남았고, 이제 먹을 수는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낯선 짬뽕을 쉬 선택하지 못하는 손님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연복 셰프는 이 지역은 짜장면이 통한다는 걸 받아들였다. 그래서 준비한 해물을 이용한 해물 짜장을 즉석에서 만들어냈다. 급히 숙소에서 공수해온 돼지고기를 넣고 해물들을 듬뿍 넣은 해물 짜장은 다시 손님들의 발길을 끌어들였다. 춘장이 지글지글 익으며 내는 냄새가 손님들을 유혹했던 것. 

단 이틀 간 보여진 장사의 과정이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건 이연복 셰프의 성공이 그냥 이뤄진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성실하게 매일매일 기본에 충실하고 사업장에서는 위계 없이 자신이 함께 일을 해나가며 무엇보다 현장의 손님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촉을 세워 맞춰나가려 노력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최근 들어 장사(특히 음식장사)를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많아졌다. 단지 음식을 만들고 먹는 먹방과 쿡방의 의미를 넘어서 어떻게 하면 장사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그 노하우와 솔루션을 담는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서 백종원이 계속 강조하는 건 결국 ‘기본’이다. 제 입맛에만 맞는다고 손님들이 외면하는 막걸리를 계속 고집하는 사장이나, 손님에게는 이름조차 낯선 음식을 내놓는 사장, 무엇보다 자신들이 하는 음식을 먹는 손님들의 반응조차 살피지 않는 사장들이 장사가 안 된다며 푸념을 하는 모습은 그래서 어딘가 앞뒤가 잘못된 느낌을 준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현지에서 먹힐까>의 이연복 셰프가 몸소 보여주는 장사의 기본들은 시사 하는 바가 크게 다가온다. 장사라면 이연복 셰프처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한다면 어떤 ‘현지’에서든 먹히지 않을 턱이 없을 테니.(사진:tvN)

‘댄싱하이’, 춤에서 더 잘 보이는 10대들의 표정들

가끔 길거리를 걷다가 마주치는 10대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은 무표정하고 어떤 경우에는 어둡게 느껴지는 얼굴들이 많다. 무언가 중압감에 짓눌려 있는 듯한 그 얼굴들, 그 이면에는 얼마나 많은 하고픈 말과 짓고 싶은 표정과 하고 싶은 몸동작들이 숨어 있을까. 아마도 KBS <댄싱하이>가 보여주려는 것이 그것이 아니었을까. ‘10대들의, 10대들에 의한, 10대들을 위한 댄스 배틀’을 내세우고 있지만 배틀을 떠나 춤에 담긴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댄싱하이>는 이미 그 기획의도를 만족시켰다고 볼 수 있다. 2회에 걸쳐 10대 출연자들이 보여준 건 단지 그 놀라운 춤 실력만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의 숨겨진 표정들이었으니 말이다. 강원도에서 왔다는 이른바 ‘감자 왁킹 댄서’ 오동교는 마치 동자승 같은 모습과 ‘전원일기’ 배경음악이 어울리는 시골 느낌 물씬 풍기는 면면으로 등장했지만, 막상 음악이 나오자 돌변했다. ‘난 괜찮아’라는 노래 가사에 딱 어울리는 재치 가득한 표현들과 표정들이 코치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일순간 ‘감자’, ‘동자승’의 이미지가 깨져버리고 대신 주체할 수 없는 흥을 가진 춤꾼의 얼굴을 거기서 발견할 수 있었다. 어딘지 끈적한 느낌마저 주는 능숙함에 소년 특유의 풋풋함이 동시에 얹어진 그런 표정.

웃을 때 드러나는 덧니가 너무나 매력적인 로킹댄서 송찬이는 보이시하면서도 귀여운 오렌지빛 의상과 절도 있는 춤 그리고 표정의 삼박자가 제대로 맞아 떨어지며 좌중을 유쾌한 몰입감에 빠뜨렸다. 송찬이가 <댄싱하이>라는 프로그램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 건, 놀라운 춤 실력만이 아니라 그 동작과 얼굴 표현 자체를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이고, 무엇을 얘기하려는 지 고스란히 드러내주고 있어서다. 10대들의 댄스 배틀이란 그런 점에서 농익은 춤은 아니지만, 보다 순수하게 그들 자신들을 표현하는 것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13살이라는 가장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10대들의 투표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박시현은 이미 잘 알려진 영재였다. 그저 평상시의 모습은 어린 소녀였지만 무대에서 춤을 출 때는 파워풀한 모습으로 돌변했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춤 실력이었지만, 더 놀라웠던 건 그것이 짜서 가져온 춤이 아니라 즉석에서 추는 ‘프리스타일’이었다는 점이다. 춤을 통한 표현에는 나이가 전혀 상관되지 않는다는 걸 이 놀라운 10대는 보여줬다.

같은 로킹댄서라는 점 때문에 송찬이가 약간의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는 송예림은 아주 평범한 소녀처럼 보였는데 무대에서는 마치 한 편의 ‘연극무대’를 보는 것 같은 놀라운 표현력을 보여줬다. 춤 실력과 함께 표정 연기 그리고 넘치는 에너지로 모두를 압도시킨 것. 코치 중 한 명인 리아 킴은 기립박수를 치며 “무대에 압도된 것만 기억난다”고 극찬했다.

일산에서 혼자 춤을 춘다고 자신을 소개한 김민혁은 앉아서 시작한 춤을 통해 손동작만으로 모두를 집중시키게 만들었고, 그렇게 절제된 춤에서 점점 고조되어 공중으로 몸을 새처럼 띄우는 소름 돋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마치 날개를 가진 새가 되고픈 그런 마음이 느껴지는 그 대목에서, 심지어 내성적으로까지 보이는 이 어린 친구가 가진 ‘더 높이 날고픈 마음’ 같은 걸 읽어낼 수 있었다. 

사실 춤 실력으로만 보면 기성 프로들까지 아울렀던 <댄싱9>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게다. 하지만 10대들이 이처럼 놀라운 실력을 갖고 있고, 또 그 실력을 통해 자신의 숨겨진 다양한 얼굴들과 표정들을 드러낼 수 있다는 걸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댄싱하이>의 가치는 충분하다 여겨진다. 그 끼 가득한 표정과 동작들이 주는 감동의 실체는 바로 우리가 흔히 길거리에서 마주는 그 무표정을 깨고 나온 10대들의 진면목에 있을 테니.(사진:KBS)

‘쇼미더머니777’, 돈과 성공 판타지로 만들어진 힙합씬

이번 Mnet <쇼미더머니777>에는 이전 시즌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들이 보인다. 그 첫 번째는 갈수록 점점 지원자가 늘고 있는 1차 예선전의 장관을 모두 삭제해버렸다는 점이다. 별거 아니라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사실 방송 제작자 입장에서는 엄청난 선택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껏 <쇼미더머니>에서 항상 처음 시선을 끌었던 건 바로 이 1차 예선전이 연출하는 장관과, 거기서 늘 존재하기 마련인 특이한 출연자들을 통한 이슈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슈들 중에는 힙합에서 늘 논쟁이 되던 이른바 ‘힙합 아이돌’과 언더그라운드 사이에서 가중되던 ‘진정성 논란’ 같은 뜨거운 것들도 있었다. 

게다가 1차 예선전에 몰리는 참가자들이 만들어내는 장관은 <쇼미더머니>가 명실공히 국내 힙합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오디션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보여준다는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것을 들어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이제 더 이상 그런 왁자지껄한 연출이 불필요하다는 자신감이다. 우선 화제가 필요했던 시기를 지나온 건 이미 오래고, 많은 진정성 논란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국내 힙합에서 <쇼미더머니>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니 1차 예선전의 세 과시는 이제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쇼미더머니>는 시즌7까지 오면서 국내에서 힙합을 하는 거의 모든 이들(물론 아직도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이 있지만)을 그 장으로 끌어들였다. 이를테면 LA에서 한인 힙합을 이끈 수장으로 이번 시즌 참가에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루피는 <쇼미더머니>에 출연하는 래퍼들을 정조준 해 비난했던 인물이었다. 스윙스가 그에게 “마음을 바꾼 계기”가 궁금하다며 루피가 했던 그 비난의 표현들을 반복적으로 끄집어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루피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들어가서 저만의 길을 가려고 노력을 해봤고 많은 시행착오와 고민 후에 이런 결심을 내리게 됐다. 사실 굉장히 긴장된다. 긴장감을 이겨내고 원하는 것을 가져가는 참가자들에게 리스펙이 생기는 것 같다.” 이 얘기는 무얼 말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루피가 쿨하게 드러낸 참가의 속내는 ‘돈’이었다. 그는 돈을 벌고 싶어서 출연하게 됐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힙합과 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쇼미더머니>는 그걸 촉발시킨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 짧은 오디션 기간을 거쳐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부를 과시했다.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장신구들과 화려한 스포츠카가 그들의 후광을 만들었다. 

힙합과 돈 혹은 성공의 관계는 본토에서 도저히 성장의 사다리를 탈 수 없는 시스템 속에 갇힌 흑인들이 실제로 그 가난한 삶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로서 힙합이 인식되었기 때문에 박수 받는 성공사례로 공감되는 면이 있었다. 그렇다면 국내의 힙합 아티스트들도 마찬가지일까. ‘국힙’이라고도 불리는 국내의 힙합은 그 태동 자체가 중산층 이상의 부유한 환경이 전제되어야 먼저 접할 수 있는 장르였다. 그러니 부의 과시는 가난을 뛰어넘기 위한 기회의 의미라기보다는 물질적 욕망의 의미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쇼미더머니777>은 본래 이 프로그램의 제목이 시즌1부터 말해주었던 것처럼, 힙합과 돈의 상관관계를 더더욱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이전 시즌과 달라진 더 중요한 특징은 이전까지는 그래도 힙합의 진정성이니, 스웨그니 하며 살짝 뒤로 밀쳐 두었던(그렇다고 그게 주가 아니라는 건 아니다) ‘돈과 성공’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참가자들이 첫 선을 보이는 래퍼 평가전에 들어간 ‘파이트머니’ 시스템이 그것이다. 

이제 참가자들은 무대에 나와 실력을 보이고 프로듀서들은 그 참가자에게 최대 500만원까지 배팅을 할 수 있다. 물론 프로듀서가 배팅을 해도 참가자가 후에 그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이건 도박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게 프로듀서들이 배팅한 금액의 합계가 그 참가자의 가치를 평가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물론 <쇼미더머니777>은 1차 예선전 따위는 편집해버리고, 그 많던 논란을 통한 이슈메이킹도 모두 지워버릴 만큼 실력자들이 넘쳐났다. 이미 힙합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스내키 챈이나 슈퍼비 같은 인물은 물론이고, 해외파로서의 루피와 나플라, 우승후보로 나플라와 나란히 거론되며 경쟁구도를 만들고 있는 키드 밀리, 독특한 색깔을 가진 PH-1이나 본원적인 힙합의 색깔을 거의 화석처럼 그대로 갖고 있는 듯한 차붐은 물론이고, 15살이라는 나이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 무서운 힙합 영재 디아크 등등, 그 출연한 무대만으로도 꽉 차는 실력자들이 가득했다. 2시간 가까이 방영되는 그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게 할 만큼 놀라운.

그래서일까. 그 즐거운 몰입감이 깊어질수록 남는 씁쓸함도 적지 않다. 논란을 통한 이슈들이 거의 사라졌고 실력자들은 넘쳐나는 <쇼미더머니777>이지만, 시즌 7을 ‘777’로 바꿔 넣어 도박의 잭팟의 의미를 강조해 넣은 건 자본의 힘이 압도하는 국내 힙합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하는 신정수 국장은 래퍼들이 말하는 돈의 의미에 대해 “돈 앞에 굴복하지 말고, 돈으로 재능을 살려는 사람들한테 굴복하지 않고 나는 돈을 벌었다고 자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배팅시스템은 “현재 가장 핫한 1등을 하고 있는 래퍼가 누구인지를 돈이라는 장치로 예능적 재미를 제공하는 것이지 도박적으로 한탕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이 그 시스템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전하고 있는 메시지가 돈의 가격으로 매겨지는 힙합 아티스트들의 수직 계열화라는 점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게 자극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재미 이면에 놓여진 자본의 미소가 꽤나 씁쓸하게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에 얼굴에 핑크빛 복면을 쓰고 참가했다 떨어지게 된 마미손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힙합의 본질을 드러내는 장면처럼 보였다. 이미 성공한 래퍼가 복면까지 쓰고 도전한 후 탈락하는 그 과정은 오히려 전혀 돈과는 상관없는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777>은 그런 점에서 보면 그다지 지역을 근거로 둔 힙합씬이 별로 없는 국내에서, 돈과 성공판타지로 만들어진 하나의 거대한 방송 힙합씬이 되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사진: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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