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그 짧은 시간이 오히려 가능성이 될 순 없나

 

SBS 파일럿 프로그램 <18>를 보며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굳이 떠올릴 필요는 없다. 방송 콘셉트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인터넷 개인방송 트렌드는 이미 우리뿐만 아니라 범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러니 그 소재를 가져왔다고 다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그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는 다른 <18>의 콘셉트가 효과적이었는가는 미지수다. 18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의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건 실제로 이 18초가 가장 집중하는 시간이라는 의미가 있을지는 몰라도 그다지 재미있고 기발한 영상이 나오기가 사실상 힘들기 때문이다.

 


'18초(사진출처:SBS)'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인터넷 개인방송을 스튜디오에 재현하는 형태로 끌어들여 효과를 봤다. 즉 하나의 집 구조로 되어 있는 스튜디오에 마치 개인방송을 하는 BJ들이 그러하듯이 각각의 방에 들어가 저마다의 콘셉트로 방송을 하는 걸 찍어 보여주는 것이다. 거기에 이 프로그램은 2중으로 필터링을 했다. 한 번은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방송을 하고 또 한 번은 그걸 편집해 TV로 방송하는 것. 2중의 필터링은 인터넷 방송의 묘미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지상파 시청자들에게 자칫 낯설 수 있는 개인방송의 재미를 친절하게 가이드 해주었다.

 

<18>는 대신 스포츠 중계 하듯이 개인방송 8개를 중계하는 형식을 취했다. 즉 스포츠 중계 방식을 통해 개인방송에 대한 코멘트와 해설을 넣어 그 낯설음을 극복하려 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현장으로 나가게 된 카메라는 지구 반대편인 영국 런던에서 영국인이 하는 방송을 여기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이 글로벌한 색깔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이 현장 중계 방식 덕분이다.

 

하지만 문제는 18초라는 짧은 시간에 있었다. 결국 스포츠 중계도 그 경기 내용이 재미있을 때 빛을 발하는 법이다. 봉만대의 지상파 에로드라마는 그 기획이나 촬영하는 과정이 더 재미있다. 모두가 출연하고 있는데 혼자만 스텝 역할을 도맡아하는 배우 이상화의 시무룩은 그가 만든 18초 드라마보다 더 흥미롭다. SNS스타 허지혜와 만나 정우성 엽기원숭이 사진을 재현하는 김나영의 영상 역시 그 18초를 찍는 과정이 훨씬 재미있다. 마찬가지로 엑소의 찬열이 당구 묘기를 보여주는 그 18초 영상보다 당구장에서 짜장면을 시켜놓고 18초에 먹기를 시도하다 너무 뜨거워 포기하는 장면이 더 시선을 잡아끈다.

 

중요한 건 이런 메이킹 장면은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18초 영상에는 올라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영상을 찍는 지상파의 카메라가 포착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되면 출연자들이 찍는 개인동영상과 지상파 카메라가 찍는 영상 사이에 틈이 생긴다. 지상파 카메라가 찍는 그들의 메이킹 영상은 재미있는데 막상 개인동영상은 별로 재미가 없다는 점이다.

 

메이킹 장면의 묘미는 인터넷 방송의 특징 중 하나다. TV 프로그램은 그 프로그램이 어떻게 찍히고 있는가를 대부분 숨기기 마련이지만(물론 예외도 있다. 나영석 PD의 예능은 대표적이다) 인터넷 방송은 그 프로그램이 어떻게 찍히는가 까지를 보여줄 때 더 흥미로워진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18초 동영상이라는 틀은 가능성이기도 하지만 한계가 더 많다는 점이다. 애초에 18초를 염두에 두고 찍는다면 그걸 결코 리얼하고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이것이 경쟁적으로 이뤄진다면 자칫 너무 자극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 대신 오래도록 찍은 것 중에 18초의 순간을 편집하거나 선별해낸다면 자연스러울 수는 있어도 너무 방향성이나 전략을 찾기가 힘든 우연에 기대는 일이 될 수 있다.

 

<18>는 개인방송 시대에 지상파가 그 새로운 방송 영역을 끌어안으려는 시도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 파일럿이 정규가 되기 위해서는 18초라는 틀을 한계가 아닌 가능성의 지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또 다른 장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메이킹 필름을 인터넷에서도 그대로 실시간으로 보여주면서, 거기서 나오는 18초 영상을 제작진 혹은 출연진이 편집해 하나의 작품으로 내놓는 두 가지 영상을 모두 취하는 방식 같은 것 말이다



싼 재료로 그럴싸하게... <집밥 백선생>이 바꿔놓은 것들

 

콩나물 100원 어치 주세요.” 30년 전만 해도 이렇게 어머니가 사온 100원 어치 콩나물로 반은 콩나물국 끓이고 반은 무쳐서 반찬을 내놓으면 그만한 밥상이 없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콩나물은 싸다. 천 원 어치만 사도 한 끼 음식으로 충분한 양이다. 5천 원이면 한 박스를 살 수 있다. 흔하고 싼 식재료라서 그런지 먹을 것 없는 가난한 밥상에 구색정도로 치부되기 일쑤인 게 콩나물이었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그런데 그 콩나물이 달리 보인다. <집밥 백선생>의 백종원 덕분이다. 백종원은 콩나물을 갖고 할 수 있는 남다른 음식들을 선보였다. 어린 시절 별식 중에 별식이었던 콩나물 밥, 술안주로도 좋고 해장으로도 좋은 얼큰 콩나물 찌개, 이게 콩나물로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그럴싸한 닭갈비 소스를 이용한 콩나물 불고기... 값싼 재료라 늘 밥상 위에 올라와도 주연급(?)이 되지는 못했던 콩나물이 주인공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값 비싼 재료로 고급 요리를 만든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건 그만한 여유가 있어야 하고, 그런 고급 요리를 만들 수 있을만한 환경 또한 필요하다. 그러니 그런 요리를 방송으로 본다고 해서 일반 서민들에게 그만한 감흥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콩나물 같은 흔하디흔한 재료를 그럴싸하게 보이는 고급진(?) 음식으로 내보일 수 있는 꿀팁이라면 다르다. 가뜩이나 장바구니 물가가 들썩이는 요즘, 몇 천 원 어치 콩나물로 일과 술에 지친 남편의 해장국을 끓여주고, 아이 입맛에 딱 맞는 콩나물 불고기를 해줄 수 있다면 주부들로서는 반색할 일이 아닌가.

 

백종원의 음식은 딱 콩나물을 닮았다. 그리 특별하다거나 각별하지 않다. 그래서 굳이 요리라는 표현을 쓰기에도 애매하다. 백종원 스스로도 요리가 아닌 음식이라고 말하고, 자신을 요리사가 아니라 사업가라 얘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는 <집밥 백선생>에서 자신이 내보이는 음식이 전문 셰프들에게는 너무나 소소한 것이라는 걸 자인하곤 했다.

 

심지어 그는 음식을 선보이다가 실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콩나물밥을 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게 물을 맞추는 일인데, 미리 콩나물을 끓여 그 물로 밥을 한 후 거기에 끓인 콩나물을 얹는다는 건 발상의 전환이다. 그런데 끓인 물을 식히지 않고 밥을 하다 보니 밥이 질어진 것. 백종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이 신도 아닌데 실수할 수 있지 않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걸 보며 아마도 백전노장의 주부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천 원어치 콩나물, 콩나물 밥 같은 흔한 음식, 그리고 때로는 예상외의 실수까지. 이것은 아마도 보통의 주부들이 늘 부엌에서 보이는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그러니 백종원을 특별한 요리사라고 바라볼 필요는 없다. 그는 그냥 주부들이 매일 같이 하는 그 한 끼 식사를 좀 더 간단하지만 그럴싸하게 만들어내는 법을 그저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백종원 덕분에 이제 콩나물도 달리 보이게 생겼다. 어딘지 밥상 한 구석에서 구색으로 치부되며 억울해했을 콩나물을 밥상 중간으로 떡 하니 세워놓는 일. 늘 주방에서 음식을 해 내놓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 흔적도 별로 안 남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폄하되던 주부들의 식사 준비가 사실 매일 벌어지는 가족사의 중심이라는 걸 되새겨주는 일. 무엇보다 먹을 게 없어 콩나물국만 주야장천 끓여내며 자조해온 가난한 주부들에게 그 콩나물국이 얼마나 좋은 음식이냐고 알려주는 일. 그것만으로도 <집밥 백선생>에게 충분히 고마울 일이 아닐까



자숙했던 이태임과 방송 강행했던 예원이 만든 차이

 

사실 이태임과 예원 모두 잘한 건 없다. 방송 프로그램을 찍던 중에 발생한 태도와 욕설 논란은 정확히 보면 두 사람 모두 일정 부분 잘못이 있다. 물론 그것은 사적인 영역이라 공적인 잣대를 갖고 뭐라 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노출되기 마련인 연예인이라는 특성과 최근 리얼리티 예능이 들여다보는 것이 이제는 겉면만이 아닌 그 내면이라는 사실은 이 사안에 대한 논란에 불을 지폈다.

 


'띠동갑내기 과외하기(사진출처:MBC)'

사적인 영역이지만 어쨌든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은 모두 잘한 것이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은 모두 서로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이태임과 예원은 서로 다른 대중들의 시선을 받게 되었다. 처음 후배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는 사실만 대서특필되면서 그 인성까지 의심받았던 이태임에 대한 지금의 대중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일정기간 자숙의 시간을 가진 후 방송복귀를 결정한 그녀에게 대중들은 응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그것은 실제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나온 반전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욕설 부분만 강조해서 호도된 이태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은 실제 동영상 속의 예원이 눈을 치켜뜨고 던진 "제가 마음에 안 들죠?"라는 말 한 마디에 녹아버렸다. 대신 그간 마치 모든 잘못이 이태임에게만 있다는 듯 침묵하고 사과 받아주는 모습을 보여줬던 예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예원 역시 이 반응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방송이었다. 이태임이 잠시 방송에서 물러나 자숙했던 반면, 예원은 자신이 출연하고 있던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끝까지 하차하지 않고 방송을 마무리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이런 사안들을 문제 삼아 하차시킨다는 것이 과도한 선택이라 여겼을 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시청자들이 불편함을 호소했다는 점이다. 실제 동영상을 본 시청자들로서는 <우리 결혼했어요>가 가진 알콩달콩함이 거짓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또한 그 안에서 쏟아내는 눈물이 자칫 이미지를 바꾸려는 의도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사안이 터지고도 몇 주 동안 계속 강행한 방송은 고스란히 예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만 더 쌓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실상 논란이 벌어지면 그 사안의 진위와 상관없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대중들의 정서에 반하는 결정들이다. 만일 이런 선택을 하게 되면 그것은 자칫 사안을 떠나 대중들과 대결하는 듯한 인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만일 예원이 이 사안이 터졌을 때 그냥 지나치거나 덮으려 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사과하고 잠시 방송을 떠나는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난 후 다시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이태임과 예원. 둘 다 잘한 건 없는 사안이었지만 그 대처에 있어서 너무나 다른 선택이 너무나 다른 결과를 낳았다.

 

자숙이란 잘못된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있지만, 잘잘못을 떠나 불편한 이미지가 생겨난 연예인 당사자를 위한 회복의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숙했던 이태임과 달리 방송을 강행했던 예원은 그 회복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이태임과 예원 해프닝은 자숙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려보게 하는 사례가 되고 있다.



폭염과 혹한이 되레 즐거운 ‘12의 저력

 

본래부터 혹한기와 혹서기에 강했던 <12>이다. 혹한기에는 더 추운 칼바람 앞에서 물 한 바가지만 갖고도 예능이 되었고, 혹서기에는 에어컨 없는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웃음을 주기도 했었다. 유례없는 폭염. 연일 폭염주의보가 발령되고 있는 지금, <12>의 선택은 그래서 오히려 열대야를 즐기는 것이었다.

 

'1박2일(사진출처:KBS)'

새벽같이 모이던 <12>이 대낮에 그것도 KBS 옥상에서 모인 건 폭염의 뜨거움을 그대로 전하기 위함이다. 잠깐의 오프닝만으로 땀을 뻘뻘 흘리는 차태현의 얼굴에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한 무더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옥상에 쳐진 텐트에 들어가게 된다면 말 그대로 지옥일 것이다. 그러니 때 아닌 낮잠자리 복불복으로 시작하는 <12> 출연자들이 목숨 걸고(?) 복불복에 임하는 자세가 만들어진 것.

 

대신 복불복에서 이기면 시원한 냉방이 되어있는 스튜디오에서 꿀 같은 낮잠을 잘 수 있다. 스케줄에 바빠 늘 잠이 부족한 연예인들에게 이만한 호사가 있을 수 있을까. 일하는 와중에서 낮잠이라니. 그건 아마도 직장인들의 로망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폭염에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게 시에스타다.

 

낮잠을 걸고 벌어진 복불복은 아이돌과의 대결. 팥빙수와 수박 그리고 비빔국수 빨리 먹기 대결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웃음을 만들어냈다. 이기면 20초 간 뮤직비디오를 틀어주겠다는 공약은 아이돌들이 망가지도록 열심히 복불복 게임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인피니트와 비스트 그리고 에이핑크와의 유쾌하고 시원한 대결은 보는 이들에게 잠시 동안 더위를 잊게 만드는 웃음 폭탄을 선사했다.

 

물론 <12>이 작정하고 출연자들을 낮잠 재우려 한 것은 잠 못 드는 밤, 열대야 속으로 뛰어들기 위함이다. 끈적끈적하고 숨이 턱턱 막히는 열대야. 그래서 잠을 억지로 청하다 보면 뒤척이다 피곤한 아침을 맞이하기 일쑤인 요즘, 차라리 그 밤을 즐기러 나선다는 것. 혹한기에 얼음 계곡 속으로 뛰어들어 오히려 그 추위를 이겨보려는 것처럼, 열대야 속 열정 넘치는 도시의 활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다는 것이다.

 

흔히들 뜨거운 여름, ‘피서를 가기 마련이지만, 그렇게 떠난 피서가 너무 많은 인파와 뜨거운 햇살 속에서 오히려 더 뜨거운 짜증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또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는 이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런 이들에게 <12>이 보여준 폭염에 대처하는 역발상은 잠시나마 웃음과 위안을 준다.

 

멀리 가야만 피서인가. 많은 도시인들이 피서를 떠나 오히려 텅 빈 서울의 야경이 더 호젓한 여름밤을 보내게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밤에 잠 못 든다면 낮에 자도 된다. 그 잠 못 드는 밤 차라리 서울의 야경을 즐길 수도 있다. 여행을 소재로 해온 <12>이 마치 늘 어디로 떠나기만 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을 과감히 내려놓는 순간 의외의 재미들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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