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옛글들/명랑TV (2452)
주간 정덕현
블록버스터의 덫에 걸린 MBC 450억 규모의 블록버스터 퓨전 사극, 한류스타의 별 중의 별, 배용준 출연, 한일 동시 방영 가능성 등등 ‘태왕사신기’라는 불가사리는 태생부터가 달랐다. 그리고 여기에 각종 소문이란 쇠를 먹고 점점 몸을 불려왔다. 몸이 커질수록 관심과 기대도 커졌다. 그런데 거대한 몸체를 견디기 힘들었던 것일까. ‘태왕사신기’가 또 방송일을 연기했다. 이번으로 무려 4번째. 이에 대한 각종 의혹과 추측은 점점 더 이 불가사리의 몸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제작사와 방송사의 기존 관계 구조에서 볼 때 이것은 너무나 예외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외주제작사의 몸피가 커졌다고 하지만 방송사가 질질 끌려 다닐 정도였을까. 시청자들의 기대를 잔뜩 갖게 만들고서 계속 연기를..
흔히 시쳇말로 ‘돈에 웃고 돈에 운다’는 표현은 뒤집어 말하면 같은 돈이라도 그 얼굴(?)은 제각각이란 말이 된다. 돈에는 얼굴이 있다. 착한 얼굴, 나쁜 얼굴, 더러운 얼굴, 땀에 젖은 얼굴,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이 갖는 애증의 얼굴까지. SBS 수목드라마, ‘쩐의 전쟁’은 바로 그 돈의 다중적인 얼굴 보는 재미가 쏠쏠한 드라마다. 돈에 대한 이중적인 모습의 금나라 사채업자란 직업의 설정은 돈이 가진 더러움과 숭배 사이의 간극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금나라(박신양)는 돈, 특히 사채를 철천지원수로 여기는 사람이다. 사채 빚 때문에 부모도 잃고 사랑하는 사람도 버렸지만 여전히 사채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그에게 돈은 똥보다도 더 더러운 존재다. 하지만 그는 “돈 많이 ..
화영이 가장 원하지만 얻기 힘든 것 어찌 보면 화영(김희애)은 ‘내 남자의 여자’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캐릭터가 아닐까. 사랑해. 보고싶어. 나 사랑해? 화영은 친구 지수(배종옥)의 남편, 준표(김상중)에게 늘 그렇게 말한다. 준표의 표현대로라면 “늘 도도도도도도...” 이렇게 같은 톤의 표현만 하는 지수하고는 전혀 다르다. 어리석게도 준표는 그 화려하고 다채로운 표현법에다, 식물 같이 보이는 지수와 전혀 다른 동물적 육탄공세의 화영에게 정신이 홱 돌아버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화영과 딴 살림을 차린 준표는 완전히 갈라서기까지 자꾸 고개가 지수에게 돌아간다. 함께 있을 땐 실감하지 못했던 지수의 모습을 떠올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가 그렇게 지겨워했던 일상의 반란이다. 일상과 관계..
‘쩐의 전쟁’, ‘내 남자의 여자’가 뜨는 이유 역시 돈(쩐)과 여자는 되는 소재인가. 불륜이란 자극적인 상황에서 여자들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내 남자의 여자’에 이어 돈에 죽고 돈에 사는 사채업자들의 지독한 이야기 ‘쩐의 전쟁’도 30%대의 시청률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주몽’의 장기집권(?)과 ‘하얀거탑’같은 새로운 시도에 힘입어 드라마왕국이라 불리던 MBC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히트’와 ‘에어시티’의 부진으로 주춤하는 사이, SBS는 오랜만에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다. 도대체 어떤 점들이 시청자들의 채널을 고정시키게 만든 걸까. 독성이 강한 드라마들 시작부터 논란이 야기됐을 정도로 ‘내 남자의 여자’와 ‘쩐의 전쟁’은 독한 드라마다. 불륜이 그렇고 사채업이란 소재가 그렇다. 잘못 건드리면 ..
한국형 본격 수사물을 표방했던 MBC 드라마 ‘히트’는 ‘수사반장’이후 보기 힘들었던 형사를 안방극장으로 다시 끌어들인 장본인이다. 게다가 여성 강력반 반장이라는 설정, 유사가족 형태로 묶여진 팀이 엮어 가는 수사물이란 점, 게다가 우리 식의 수사물(주로 영화 속에서)의 맨발로 뛰어다니는 모습이 일상화된 형사의 캐릭터에 동시에 과학수사의 이미지를 덧붙인 점 등등 새로운 시도가 많았던 드라마다. 하지만 종영에 즈음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은 이제 이야기를 좀 해볼만한 상황에 끝나버린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히트’는 초ㆍ중반부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 사실이다. 미드(미국드라마) 식의 전문성을 가진 드라마가 이제 막 태동하는 시기인데다, 그것이 우리 식으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이니, ‘히트’는 그 첫 ..
누가 알기나 했을까. 감동이 자극보다 더 강하다는 걸. 그 반가운 사실을 알려준 첫 번째 주인공은 이미 종영한 ‘고맙습니다’란 드라마다. 에이즈에 감염된 딸과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미혼모가 세상의 편견을 진심으로서 넘어서고, 그 진심이 에이즈보다 더 강력하게 주변으로 전염된다는 훈훈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어서 감동을 전해준 두 번째 주인공, 바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5회에 걸쳐 연속으로 꾸며진 ‘휴먼다큐 사랑’이다. 그 중에서도 2회로 방영된 ‘안녕 아빠’편은 전 국민을 감동으로 몰아넣었다. 그것은 값싼 눈물이 아닌, 값진 감동이었다. 가족과 사별하는 이야기 앞에 어찌 눈물이 없겠냐마는 이준호씨의 이야기를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된 데는 무언가 다른 이유도 있을 법하다. ‘고맙습..
‘쩐의 전쟁’의 풍자가 말해주는 것 장태유 PD는 왜 ‘돈의 전쟁’이 아니고 ‘쩐의 전쟁’이냐는 질문에 “쩐이 더 끈끈한 맛이 있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렇다. 지금은 돈을 돈이라 표현해서는 어딘지 밋밋할 정도로 돈에 대한 욕망과 박탈감이 많은 시대다. 그래서일까. ‘쩐의 전쟁’이란 드라마가 만화적인 연출로 인해 무겁게 가라앉을 수 있는 심각한 이야기를 최대한 부담을 줄여 가볍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짠한 느낌이 남는 것은. 웃으면서도 짠한 것, 풍자의 힘 박인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쩐의 전쟁’은 만화 원작을 갖고 있는 작품들이 가질 수 있는 ‘과장의 약점’을 오히려 이용하고 있는 중이다. 박인권 화백의 만화는 리얼리티를 다루면서도 만화만이 갖는 과장을 또한 극적 장치..
‘내 남자의 여자’의 여자들 김수현의 여자들, 지수(배종옥)와 화영(김희애) 중 당신은 어느 편인가. 이것은 이 시대 남성들에게 그네들의 여성 취향을 묻는 질문이 아니다. 이 시대의 여성들은 지수와 화영 중 어느 쪽에 더 빠져드느냐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내 남자의 여자’라는 드라마가 또한 가정을 지키려는 지수라는 여성상과, 금기된 욕망의 질주를 하면서 가정을 깨려는 화영이란 여성상이 서로 부딪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중요한 질문이다. 아무리 얘기해도 불륜드라마라는 딱지를 떼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시청률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드라마의 속내를 한번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거기에는 그 드라마를 보는 대다수 현대 여성들의 욕망이 또한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지수와 화영이란 여자들이 그려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