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 정체 궁금하지만 노래 좋으면 됐다

 

클레오파트라는 김연우인가. 타 프로그램에서 김연우가 오페라의 유령을 부르는 장면과 <복면가왕>에서 부른 장면을 비교한 동영상은 클레오파트라의 정체가 김연우라는 심증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목소리나 발성이 너무나 똑같기 때문. 그래서 이미 인터넷은 클레오파트라의 정체가 김연우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고 있다.

 

'복면가왕(사진출처:MBC)'

그런데 클레오파트라가 3연승을 기록하면서 이런 확증에 가까운 심증이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가 만일 진짜 김연우라면 그의 장기집권(?)을 막는다는 건 쉽지 않을 일이다. 그의 가창력은 이미 대중들에게 정평이 난 지 오래다.

 

그렇다고 계속 해서 그가 우승을 한다면 자칫 <복면가왕>이 갖고 있는 두 가지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다. 그 하나는 다양성이다. 결국 복면까지 하고 무대에 오른 건 좀 더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기 위함이 아닌가. 다른 하나는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라는 <복면가왕>만이 가진 핵심적인 재미 포인트가 희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정체를 다 알고 노래를 듣는다면 그건 콘서트지 <복면가왕>이 아니다.

 

그래서 항간에는 몇 주 연속 우승을 하게 되면 스스로 가면을 벗는 룰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장기집권은 이번 클레오파트라에게서 발생하는 위의 두 가지 문제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니 아예 이참에 다양성과 프로그램 정체성을 위해 합당한 룰을 세우는 게 향후에도 좋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룰을 바꾸거나 세우는 건 또한 민감한 문제다. 과거 <나는 가수다> 초창기에 김영희 PD가 겪었던 해프닝을 떠올려보라. 룰은 게임이 진행되기 전에 이미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복면가왕>처럼 이미 쉬지 않고 굴러가는 게임에서 룰을 변경한다는 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사실 클레오파트라가 김연우면 또 어떤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복면가왕>은 물론 가왕을 뽑는 과정을 다루기는 하지만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가에 대해서 그리 민감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즉 성패와 무관하게 자신의 기량을 다 보일 수 있는 무대 그 자체를 복면이라는 장치를 통해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이 <복면가왕>의 핵심적인 재미라는 것이다. 만일 클레오파트라가 매번 노래를 통해 대중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계속 볼 수 있는 것도 대중들의 권리라는 점이다.

 

물론 <복면가왕>에서 복면 뒤의 정체는 궁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복면은 장치일 뿐이지 그것이 이 프로그램이 진정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진짜는 노래에 있다. 어떻게 하면 편견 없이 부르고 듣는 노래를 즐길 것인가가 <복면가왕>이 진짜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러니 클레오파트라가 김연우라고 하더라도 좋은 노래라면 그것으로 족할 일이다. 물론 그보다 더 좋은 복면의 등장이 기대되기는 하지만.

 

소통과 참여의 용광로, <마리텔>의 인기 비결

 

기미작가에 이어 이젠 초딩작가다? ‘초딩작가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야유회 버전 방송 대결에서 새롭게 참여한 일루셔니스트 이은결이 미녀 도우미로 쓴 막내작가의 캐릭터다. 이은결이 키가 초딩이라고 소개한 이 막내작가는 억지로 끌려나와 목을 몸과 분리된 것처럼 빙빙 돌리는 모습을 보여줘 보는 이들을 폭소케 만들었다. 단 몇 초의 등장일 뿐이었지만 그 존재감은 여느 출연자 못지않은 반응으로 이어졌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진출처:MBC)'

이런 반응은 이미 백종원 셰프의 음식을 맛보는 인물로 등장했던 기미작가에게서도 발견됐던 일이다. 음식을 맛보고 그 놀라운 맛에 동공이 커지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그 특유의 동작은 프로그램의 과장된 편집을 통해 캐릭터화 되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날 야유회 버전 방송에서 백종원은 기미작가가 광고제의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했다.

 

기미작가와 초딩작가. 이밖에도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는 극한직업 PD’로 불리는 PD의 존재감도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 예정화 코치와 기묘한 커플 요가 자세를 선보이고, 안 되는 굳은 몸을 억지로 펴는 고통을 감수하는 이 PD극한직접 PD’라는 캐릭터로 자리했다. 다시 돌아온 예정화 코치가 이 PD와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그래서 그 날 방송에서는 또 어떤 고통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만들기도 했다.

 

이들은 분명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주인공들은 아니다. 단 몇 초 등장해 잠깐 맛을 보거나 보조를 해주는 역할을 할뿐이다. 그런데 왜 이토록 이들의 존재감은 웬만한 게스트들보다 더 주목받을까. 바로 여기에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이 프로그램이 소통과 참여라는 보이지 않는 두 축의 힘이 열광의 진원지로 자리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네티즌들의 반응과 그 리액션이 가장 중요한 방송이다. 백종원이나 이은결, 예정화 같은 메인 출연자들이 보여주는 방송 콘텐츠가 반이라면 그 콘텐츠를 보는 네티즌들의 리액션이 나머지 반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짧은 한 줄로 올라오는 네티즌들의 댓글은 기발하기 이를 데 없고 때로는 출연자들의 콘텐츠보다 더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예정화 코치가 아이유의 좋은 날을 키를 낮춰 부르자 흐린 날’, ‘경상도 민요’, ‘고막아 미안해같은 댓글들이 따라붙는다. 워낙 노래를 못하자 카메라맨이 투입되고 현란한 카메라 워크가 보여지자 붙는 카메라맨 재능낭비, ‘고막에 근육생김’, ‘첫 운동 고막 강화운동같은 댓글들은 방송 장면 위에 덧붙여지며 입체적인 웃음을 만들어낸다.

 

야유회에 어울리는 음식을 물어보는 백종원에게 캠핑엔 역시 남의 살이라는 댓글이 붙고, 설탕을 많이 넣는다는 지적에 대해 백종원이 자가 붙은 건 다 설탕으로 만든 것이라는 걸 설명하며, “매실에 넣으면 매실청. 포도에 녹이면 포도청(?)”이라고 하자 붙는 마음에 녹이면 심청...’이라는 댓글은 이 프로그램에서 댓글이 가진 웃음의 지분이 얼마나 큰 가를 잘 보여준다.

 

결국 댓글이 이렇게 방송 출연자들과 어우러지는 그 소통과 참여의 현장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가진 진짜 힘이다. 방송은 출연자들만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이제는 방송인들과 그걸 보는 시청자들이 함께 만들어간다는 걸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방송 화면을 통해 보여준다.

 

이 관점으로 보면 왜 기미작가나 초딩작가 그리고 극한직업 PD가 그렇게 짧은 순간 등장하고도 강렬한 존재감을 만드는 지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사실상 저 일반인들의 댓글 참여와 비슷한 차원으로 방송에 들어가는 것이다. 기미작가는 댓글의 리액션 같은 것을 실제로 보여주는 인물이고, 초딩작가는 댓글이 주는 보조적인 역할을 그대로 해주는 인물이다. 또 극한직업 PD는 네티즌들이 가진 로망(?)과 따라잡기 힘든 고통을 동시에 대변해 보여준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작게 시작한 듯 보여도 그 파괴력이 커진 것은 이처럼 출연자와 제작진의 소소한 접근처럼 보이는 작은 창들이 저 무한하게 열려진 소통과 참여의 장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프로그램을 키우는 건 규모 그 자체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성공은 그걸 보여주고 있다.

 

경쟁이 시너지가 된 <프로듀사><삼시세끼>

 

박신혜 2탄이 남았다. 이번 주 <프로듀사> 보다가 루즈한 부분 나올 때 바로 채널 돌리면 박신혜씨가 나올 거다. 많은 시청 바란다.” 백상 대상을 거머쥔 나영석 PD는 수상소감에서도 <프로듀사>를 언급했다. 그만큼 신경이 쓰인다는 얘기일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프로듀사>에 대한 관심을 얘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나영석 PD의 이 한 마디는 금요일 저녁의 대결을 <프로듀사> vs <삼시세끼>로 굳혀 놓았다.

 

'삼시세끼, 프로듀사(사진출처:tvN,KBS)'

나영석 다시 데려오면 안돼?” “<삼시세끼>? 하루 세끼 먹는 프로그램이 되겠어요?” <프로듀사> 역시 나영석 PD<삼시세끼>를 염두에 둔 대사들이 등장했었다. <프로듀사> 역시 <삼시세끼>가 그만큼 신경 쓰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대사들은 어떤 면에서는 나영석 PD<삼시세끼>가 가진 압도적인 존재감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 금요일 밤의 빅 매치가 이젠 끝나게 됐다. KBS <프로듀사>tvN <삼시세끼>의 팽팽한 대결. 그 결과는 어땠을까. 애초에 누가 이길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결과를 보면 두 프로그램은 경쟁했다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시너지가 된 부분이 더 많았다. <프로듀사>는 그간 단 한 번도 동 시간대 기록하지 못했던 두 자릿수 시청률을 훌쩍 넘어섰고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에 이미 엄청난 화제를 만들어냈다.

 

<삼시세끼>도 마찬가지다. <삼시세끼><프로듀사>와 대결하면서도 시청률 8% 대를 줄곧 유지했다. 화제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박신혜의 등장이 가져온 화제성은 지성으로 또 보아로도 이어졌다. 강원도 정선의 한적한 곳에 마련된 <삼시세끼>집에서는 흔한 풀 한 포기, 떠도는 구름 한 점도 출연자로서의 존재감을 발휘했다.

 

결국은 윈윈 게임이다. <삼시세끼><프로듀사>도 시청률에서나 화제성면에서나 모두 성공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마치 한쪽에 시청자가 몰리면 다른 시청자가 빠져나갈 것 같은 제로섬 게임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예상외로 파이가 커지는 쪽으로 흘러갔다. 한 때 시청률의 무덤처럼 여겨지며 많은 프로그램들이 기피되었던 금요일 밤은 이제 점점 프라임 타임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항간에는 불금의 문화가 이제 목요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즉 직장인들이 금요일 밤을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목요일 밤에 일주일을 마무리하듯 모임을 갖고 금요일은 가족과 함께 조용한 주말을 보내는 문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문화가 이미 자리하고 있다면 금요일 밤이 왜 이토록 방송의 격전지가 되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프로듀사>의 서수민 PD<삼시세끼>의 나영석 PD는 한때 한솥밥을 먹던 식구다. 두 사람은 한때 머리를 모아 <인간의 조건> 기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니 이러한 윈윈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잘된 일이다. 사실 예능이라는 큰 틀에서 본다면 <프로듀사><삼시세끼>는 경쟁을 했다기보다는 예능이라는 영역의 힘을 함께 드러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빼앗아오는 경쟁이 아니라 파이를 키우는 경쟁. <프로듀사><삼시세끼>는 그걸 보여줬다.

 

<삼시세끼>의 건강한 공기, 그 반은 옥빙구 덕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 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유해진이 나온 한 광고 카피는 <삼시세끼>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정선의 세끼 집은 그래서 어린 나이에 데뷔해 쉴 새 없이 뛰어온 아이돌 조상인 보아 같은 인물에게는 그 자체로 휴식이 된다. 그 흔한 콩나물국 하나를 끓여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고, 몇 주간 벌들이 모아온 꿀을 채취하면 마음마저 달달하게 녹아내린다. 밥 한 끼 지어 먹는 일이 이토록 즐거운 일이었던가.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곳. 세끼 집이 도시인들에게 로망이 되는 이유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런데 아무 것도 안하고 생활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누구든 조금씩 일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뿐. 때로는 커다란 얼음을 간이 냉장고에 담아 옮겨 놓는 힘든 일도 해야 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벌꿀 채취에 손을 걷어 부치고 나서기도 해야 하며, 넓디넓은 옥수수밭에 가득 자란 잡초도 제거해야 한다. 또 매 끼니 그럭저럭 밥을 챙겨 먹는 일도 빠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시세끼>가 그 한가함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옥택연이라는 기분 좋고 활력 넘치는 청년이 있기 때문이다. “빙구 빙구 빙구-”하고 노래를 하며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빙구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이 청년은 사실 꽤 고된 일들을 거의 도맡아 하고 있다. 매 끼니마다 불을 피우고 무거운 솥단지를 옮겨놓는 일도 그의 몫이고, 매 끼니 미션처럼 주어지는 메뉴를 어머니에게 물어물어 하나씩 해보는 아마추어 셰프 일도 그의 몫이다.

 

가끔은 비주얼이 이상한 괴식을 내놓기도 하고 정작 요리는 잘 해놓고도 마지막 플레이팅에서는 전혀 미적 감각을 보여주지 못해 이서진에게 지청구를 듣는 그는 그래도 늘 해맑은 웃음을 보여주는 옥빙구다. 기분 좋을 땐 저도 모르게 춤을 춰 그걸 본 김광규와 보아에게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다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괴력을 발휘하다가다도 누가 자기를 부르면 갑자기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자 목소리를 내는 다중인격의 능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혼자 밥을 짓거나 일을 할 때 그는 마치 식재료가 하는 말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이 혼잣말을 중얼중얼거린다. 그 때 보이는 건 일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세끼 집도 누군가 계속 힘쓰는 일을 해야 하지만 그런 힘겨운 느낌을 별로 나지 않게 해주는 인물이 알고 보면 옥빙구다. 그는 바보처럼 즐거워하며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어 그게 일처럼 보이지 않게 만드는 묘한 마력을 발휘한다.

 

옥빙구가 세끼 집에 긍정 바이러스를 퍼트릴 수 있는 건 그의 진짜 밝은 마음이 늘 솔직하게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90년대 동년생 여자들이 왔을 때 그의 반응이 폭발했던 건 그 기쁘고 설레는 마음이 고스란히 밖으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고아라와 박신혜가 왔을 때 그래서 그는 풀 파워로 즐겁게 일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참 선배인 보아 앞에서 속내 그대로 약간의 긴장감을 갖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금세 누나 같은 친근함을 보이는 모습 역시 그의 솔직하고 순수한 면을 잘 드러내줬다.

 

<삼시세끼> 옥순봉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활력이 있다. 그건 바로 옥빙구 바이러스. 그 활력 넘치고 기분 좋은 바이러스는 아무 것도 안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든든한 편안함을 준다. 가끔 너무 좋아 바보처럼 헤벌쭉 웃기도 하지만 그렇게 모든 도시의 긴장이 풀어지는 순간들을 옥빙구는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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