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카메라가 투덜이들을 좋아하는 까닭

 

SBS <아빠를 부탁해>에서 조재현은 투덜이 아빠다. 귀차니즘의 대가(?)답게 집에서는 거의 런닝셔츠같은 차림에 소파, 침대와 껌딱지다. 딸 혜정이 뭘 하자고 하면 일단 그걸 왜 하냐?”고 투덜대고는 결국은 그걸 하게 된다. 늘 투덜대고 퉁명스럽게까지 보이지만 그건 그의 겉모습일 뿐이다. 그는 다만 겸연쩍은 행동을 하기가 쑥스러운 것뿐. 대부분의 아빠들이 이렇지 않을까.

 

'아빠를 부탁해, 삼시세끼(사진출처:SBS, tvN)'

<아빠를 부탁해>에 조재현이 있다면 tvN <삼시세끼>에는 원조 투덜이 이서진이 있다. 그 역시 이 시골 살이에서 뭐든 귀찮아하는 귀차니즘의 대가다. <삼시세끼>에서 혜정의 역할은 나영석 PD. PD가 이틀 후 아침 메뉴로 갈릭 바게트를 얘기하자 이서진은 난 못 알아 들었어라며 황당해했다. 하지만 이틀 후 그는 스스로 만든 화덕에서 잘 구워진 갈릭 바게트를 꺼내놓고는 득의만만해했다.

 

투덜이들이 사는 세상. 도대체 관찰카메라가 투덜이들을 더욱 좋아하는 까닭은 뭘까. 그것은 고분고분 수긍하고 순종하는 인물보다 훨씬 극적인 상황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관찰카메라가 한 편의 드라마라면 그럴 듯한 갈등 구조가 있어야 한다. 상황 속에서 대립각이 서지 않으면 그 장면은 밋밋하게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조재현이나 이서진이 이 관찰카메라 세상에서 주목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이들은 결코 사소한 일 하나라도 그냥 쉽게 넘어가는 일이 없다. 놀이공원에 가서 바이킹 하나 타는 일도 하다못해 딸과 함께 스티커 사진을 찍는 일도 또 딸의 자전거를 가르치는 일도 조재현에게는 엄청난 도전이다. 그것 자체가 귀찮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덜투덜대지만 어쨌든 그는 그러면서도 그걸 다 해낸다. 그래서 그가 나오는 분량은 매회가 작은 도전처럼 여겨진다.

 

이서진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밥 한 번 스스로 해먹지 않았을 것 같은 분위기의 이 차도남은 정선의 삼시세끼 집에 내리면서부터 툴툴대기 시작한다. “그런 것 좀 하지 마.” “노예근성을 버려.” “○○은 얼어 죽을...” 이런 말들을 수시로 쏟아내지만 나영석 PD 말대로 그는 또 그러면서도 결국은 더 열심히 그 일을 해내는 인물이다. <꽃보다 할배>에서 이서진은 그래서 나영석 PD 앞에서는 불만을 잔뜩 쏟아놓지만 할배들 앞에서는 모든 걸 살뜰히도 챙기는 아들 같은 존재다.

 

그런데 이들이 관찰카메라에서 주목받는 건 단지 이 대립을 통한 극적인 효과만은 아니다. 그것은 관찰카메라가 추구하는 가장 보통의 캐릭터들로서 그들이 보여지기 때문이다. 조재현은 가장 보통의 아빠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서진 역시 가장 보통의 도시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낯선 경험들 앞에서 투덜대지만 또한 그 경험이 주는 즐거움에 조금씩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행동은 가장 보통의 자연스러움으로 다가온다.

 

관찰카메라는 특별한 것들의 선망을 추구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일상적이고 보통인 것들의 공감을 추구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방송이라고 해도 늘 해왔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조재현이나 이서진 같은 투덜이들이 더 자연스럽게 다가오게 된다. 그 투덜이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 똑같은 모습을 확인하면서 우리는 더 자연스럽게 그들의 변화에 동조하게 된다. 조재현이나 이서진 같은 투덜이에 대한 주목은 관찰카메라 시대가 어떤 인물을 요구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무한도전> 포상휴가보다 극한 알바 선택한 까닭

 

휴가인 줄 알고 떠났는데 일을 하라고 하면 그 마음이 어떨까. 그것도 보통의 일이 아니라 극한의 노동을 요구하는 일이라면. 아마도 멘탈붕괴라는 단어의 뜻을 실감하게 되지 않을까. <무한도전>10주년을 맞아 선택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무한도전>10주년 기념으로 휴가를 보내주겠다고 했고 그래도 반신반의하는 출연자들을 방콕까지 데리고 갔지만 결국 그곳에서 중국 정저우, 아프리카 케냐, 인도 뭄바이로 극한알바를 하기 위해 떠나게 되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물론 <무한도전>이 지금껏 보여준 미션의 노동 강도는 늘 상상 이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해외로 가는 극한알바가 특히 강도 높게 다가온 것은 그 상황이 출연자들을 더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휴식과 힐링을 꿈꾸던 여행길이 극한의 일터로 가는 노동길이 되어버렸으니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게다.

 

출연자들이 간 곳은 세계적으로도 조악한 환경을 가진 그런 일터였다. 인도 뭄바이에 있는 세계 최대의 빨래터에 도착한 유재석과 광희는 맨손으로 300벌의 빨래감을 빨고 말려야 하는 일을 해야 했고, 중국 정저우에 있는 산 속 벼랑 끝에서 잔도공을 해야 하는 미션을 부여받은 하하와 정형돈은 그 아찔한 노동환경 속에서 결국은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방콕공항에서 꼬박 하룻밤을 지낸 박명수와 정준하는 케냐까지 날아가 버려진 아기 코끼리들을 돌보는 일을 맡게 되었다.

 

마치 세계가 바로 옆 나라처럼 느껴지는 이 글로벌한 일터의 현장을 통해서 <무한도전>은 무엇을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10년을 그토록 뛰어왔으면 이제 휴가 정도 보내줘도 될 법 하지만 왜 김태호 PD는 이처럼 독한 선택을 했던 것일까.

 

물론 멘붕을 보이는 출연자들의 리액션은 그 자체로 웃음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하하와 정형돈이 그 아찔한 벼랑 끝에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떠오른 <무한도전>팀이 챙겨준 가방을 열고는 그 안에서 나온 스파이더맨 가면을 보고 허탈해하는 모습은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인도 뭄바이의 빨래터에서 쉴 새 없이 신세한탄을 하는 광희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번 <무한도전>의 극한 선택이 단지 이런 웃음만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극한알바라는 아이템이 늘 보여줬었던 노동에 대한 웃픈 현실이 거기에서도 고스란히 비춰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누군가는 휴양지에 누워 수영과 선탠을 하고 시원한 음료를 즐길 때, 지구촌 어느 구석의 누군가는 살벌한 노동의 현장에서 쉴 새 없이 땀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무한도전>이 포상휴가라는 여유를 버리고 극한 일자리의 세계로 뛰어든 것은 그래서 어떤 면으로 보면 이 상대적인 시간들을 보여주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것은 또한 <무한도전>이 지금껏 걸어온 길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을 때, 그들은 어쩌면 그렇게 늘 극한 상황 속으로 자신들을 내몰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10년이 흘렀다. 이제 <무한도전>은 웬만한 강도의 노동은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어버릴 정도로 그 노동의 강도를 높여왔다. 사실 우리네 예능 전체의 노동 강도를 전면에서 높여온 건 바로 다름 아닌 <무한도전>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예능은 군대로도 가고 심지어 정글로도 뛰어든다. 그러니 <무한도전>은 더 힘든 선택들을 해야 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세상에 어떤 일이 쉬운 게 있을까. 아주 예전 김태호 PD를 인터뷰했을 때 그는 필자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사실 가장 듣기 싫은 이야기가 재들은 놀면서 돈 번다는 그런 얘기라고. 그래서 시작한 게 노동 강도가 높은 장기미션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10년의 땀을 흘렸고 그래서 지금은 그 누구도 이런 얘기를 <무한도전>에 건네기는 어렵게 되었다. <무한도전>의 독하고 극한 노동의 선택은 마치 그들이 걸어온 노동의 길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듯하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삼시세끼> 만재도에 차승원 정선의 박신혜

 

<삼시세끼> 어촌편에 차승원이 있었다면 정선편에는 박신혜가 있었다. 곱창집 딸답게 맛난 곱창, 대창 구이를 맛보게 해주더니, 들깨 미역국, 송사리 튀김, 파전에 이어 박신혜표 초간단 샤브샤브까지 선보였다. 이서진은 연실 넌 왜 못하는 게 없냐고 보조개를 만들었고, 김광규는 못 먹는다는 날계란에 샤브샤브를 맛나게도 먹었다. 옥택연은 시키지도 않은 소주로 만든 모이토를 선보였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게스트인지 호스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끝없이 일을 하는 박신혜는 주변 사람들도 일을 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선보였다. 다들 멍하게 앉아 있는 그들에게 한숨 한 번 쉬어주고 눈빛 한 번 날리기만 해도 남자들은 알아서 재게 몸을 놀렸다. 괜히 그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만들었던 것. 박신혜의 한 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세 남자들을 보며 나영석 PD그녀의 노예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 넓은 밭에 옥수수를 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박신혜의 에너지는 옥택연을 펄펄 날게 만들었다. 이서진의 말대로 박신혜는 옥택연이 지금껏 해온 노동량의 세 배 이상을 일하게 했다. 힘겨워 보이는 이서진과 김광규 팀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달달한 귀농 신혼부부 포스를 내는 그들은 그것이 일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그들의 달달한 모습을 보며 이서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나서도 집에서 깍두기를 담그는 박신혜와 옥택연의 모습은 훈훈한 정경을 만들었다. 그 달달함 때문에 괜스레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김광규는 밖에서 설거지를 하며 이것이 가장 속편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박신혜가 특별했던 것은 손쉽게 맛난 음식들을 척척 만들어주면서도 주변 인물들이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남자 호스트들은 그녀의 눈에 들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진심으로 무언가를 해주려는 마음이 가득했다. 밤새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하기 위해 15분 만에 꺼져가는 아궁이의 불을 지피는 세 남자의 모습이라니.

 

이서진이 바게트를 구워내는데 있어서도 그렇게 긴장한 데는 박신혜라는 게스트가 있다는 점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초조하게 마치 산모가 아기를 낳는 걸 기다리듯 화덕 앞에서 빵이 구워지길 기다리는 이서진의 모습은 지금껏 <삼시세끼> 이래 처음 보는 진지함이 느껴졌다.

 

생각 외로 잘 구워진 바게트를 더욱 맛나게 만든 장본인도 결국은 박신혜였다. 그녀는 없는 재료를 탈탈 털어 마늘을 다지고 올리브유와 설탕, 소금을 넣어 바게트 위에 얹을 토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토핑을 얹어 다시 구워진 마늘 바게트는 비주얼도 맛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요리가 되었다.

 

사실 요리도 요리지만 박신혜가 독보적인 역대급 게스트가 된 것은 그녀가 만들어내는 <삼시세끼>의 완전히 다른 느낌들 때문이다. 힘겨운 노동 속에서도 달달한 웃음이 끊이지 않고, 없는 재료를 갖고도 충분히 넉넉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 이것은 어쩌면 <삼시세끼>라는 어른들의 소꿉장난이 도시인들의 로망으로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박신혜에게 너 고정해라는 이서진의 말이 그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건 또한 시청자들의 마음일 테니까.

 

나영석 PD, 최고의 자리에서 프로그램 홍보라니

 

박신혜 2탄이 남았다. 이번 주 <프로듀사> 보다가 루즈한 부분 나올 때 바로 채널 돌리면 박신혜 씨가 나올 거다. 많은 시청 부탁드린다.” 백상예술대상에서 나영석 PD는 이런 말로 TV부문 대상 수상소감의 마무리를 했다. 예능PD로서는 처음으로 대상을 거머쥔 PD치고는 참으로 싸 보이는수상 소감이 아닐 수 없다. 최고의 자리에서 프로그램 홍보라니.

 

'백상예술대상(사진출처:JTBC)'

그런데 바로 이런 점이 나영석 PD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다. 사실 최고의 위치라는 것은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내려올 일만 남았다는 걸 말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나영석 PD가 그 최고의 위치에서 한 것은 깨알 같은 프로그램 홍보였다. 이 얘기는 그런 시상식에서도 그는 여전히 프로그램을 열심히 만드는 PD라는 사실을 되새겨주었다. 최고의 위치에 대상 수상자로 서게 됐지만 다시 저 치열한 촬영현장의 PD로 단번에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 것.

 

그는 예능은 자 붙은 상 받으면 잘 안 된다는 징크스를 얘기하기도 했다. 이건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다. 예능은 가장 낮은 위치에 서 있을 때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서민들의 눈높이를 가장 잘 대변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상이라는 높이는 더 많은 책임감이나 무게감을 갖게 만든다. 그는 이 불리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 말에는 또한 그간 예능이 대상을 받지 못해왔던 것에 대한 아쉬움 역시 묻어난다. 왜 예능이 대상을 받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될까.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예능은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되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백상예술대상에서 나영석 PD가 대상을 받은 것에는 이런 편견을 깨는 일이기도 했다.

 

나영석 PD가 백상예술대상의 최고상에 선정된 데는 지금 현재의 대중문화 트렌드가 반영되어 있다. 즉 지금은 바야흐로 예능의 시대다. 잘 만들어진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웬만한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나영석 PD<꽃보다> 시리즈가 만든 해외 배낭여행 트렌드나 실버트렌드, 그리고 <삼시세끼>가 만든 쿡방 트렌드나 유기농 라이프 트렌드가 그 증거들이다.

 

게다가 이제 예능의 주인공은 출연자들이라기보다는 예능을 만드는 PD라는 것이 최근 달라지고 있는 시선이다. 즉 똑같은 아이템을 줘도 어떤 PD가 만드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과거처럼 몇몇 스타 예능 MC들이 프로그램을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굳이 프로그램도 또 출연자도 아닌 나영석 PD를 백상이 선택한 데는 그런 의미도 깔려 있다.

 

그러니 나영석 PD는 본인 스스로 표현했듯이 뜬금없는대상에 겸연쩍어할 필요가 없다. 받을 만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영석 PD의 그 싸 보이는수상 소감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높은 위치에 오른다고 해도 굳이 자신을 저 밑으로 끌어내리려는 그 모습에서는 늘 대중들과 똑같은 보통의 눈높이를 추구하는 그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이러니 그의 깨알 홍보에 기꺼이 넘어갈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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