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는 왜 유재석처럼 방송에 임하지 않았을까

 

이경규는 자타공인 예능의 달인이다. 콩트 코미디에서부터 버라이어티쇼로 넘어오는 시기에도 이경규는 늘 전면에 서 있었고, 버라이어티쇼에서도 몰래카메라나 이경규가 간다같은 캠페인형 공익 예능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줄곧 주도해왔다.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생겼을 때 잠시 주춤하는 듯 보였지만 이경규는 <남자의 자격>이라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기도 했다.

 

'힐링캠프(사진출처: SBS)'

그런데 그런 이경규가 요즘 잠잠해 보인다. 방송을 안해서가 아니다. 지금도 SBS <힐링캠프>, <붕어빵>KBS <풀하우스>를 하고 있다. 중요한 건 존재감과 임팩트다. 과거 <남자의 자격>을 했을 때만큼의 이경규 존재감은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잘 나오고 있지 않다. <붕어빵>이야 이미 육아 예능이 나오는 시대에 그 트렌드가 그리 뜨거운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없고, <힐링캠프> 역시 토크쇼의 황혼 시대를 맞아 점점 고개를 숙이고 있다. <풀하우스>는 종편에서 열풍처럼 만들어지고 있는 집단 토크쇼의 KBS버전처럼 보이는 프로그램이다. 그 어느 것도 지금 트렌드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경규가 출연하는 프로그램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tvN<화성인 바이러스>가 종영했고 JTBC에서 새로 시작한 <한국인의 뜨거운 네모> 역시 단 10부로 마감했다. 과거의 이경규를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종영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최근 방송 현실은 과거처럼 기다려주지 않는다.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가차 없이 잘라내는 것이 요즘 방송의 흐름이다.

 

사실 이경규에게 가장 아쉬운 건 종영된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좀 더 유지되고 진정성을 살려냈다면 이경규는 충분히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무한도전>의 유재석을 떠올려보라. 유재석은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성실하게 방송에 임하기만 한다면 아마도 <무한도전>과 함께 행복하게 늙어갈 것이다. <무한도전>의 아저씨판처럼 보였던 <남자의 자격>도 충분히 이경규를 그렇게 만들어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이경규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보인다. 이경규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날방의 이미지. 방송을 하다가 재미없으면 빨리 끊으라고 보내는 사인은 이경규의 캐릭터 중 하나다. 물론 이것은 캐릭터화 되면서 웃고 넘어가는 느낌을 만들지만 사실 제작진들에게는 심각한 사안이다. PD가 멀쩡히 있는데 출연자가 커트를 날리는 것만큼 당황스런 일이 있을까. <남자의 자격>을 처음 연출했던 신원호 PD는 그래서 초반에 이를 두고 상당한 신경전을 벌였다고 토로한 바 있다.

 

다행스럽게도 <남자의 자격> 초반에는 이경규 스스로도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 부분 PD의 입장을 따르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신원호 PD가 나가고 <남자의 자격>이 자리를 잡는 순간부터 방송은 어딘지 방만하게 촬영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것을 모두 이경규의 책임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가장 어른으로서 조금은 솔선수범하는 자세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유재석이 <무한도전> 위기론이 나올 때마다 보여주는 것처럼.

 

사실 50이 넘은 나이에 현역으로 여전히 예능의 중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경규의 대단함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을 말하는 것은 이렇게 뛰어난 MC가 향후 60에도 70에도 계속 현역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증언하는 걸 들어보면 이경규 만큼 프로그램 장악 능력이 뛰어난 MC도 드물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예능 MC의 힘이 점점 약화되는 요즘 더더욱 필요해진 덕목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남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진정성의 문제. 요즘 같은 리얼리티 시대에 진정성은 하는 것처럼 보이는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다. 예민한 시청자들은 이제 그것이 진짜인지 아니면 진짜처럼 보이는 것인지를 단박에 눈치 챈다. 그런 점에서 이경규에게 시급한 것은 이미지라도 날방의 느낌을 진정으로 날려버리는 적극적인 자세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계속 해서 변화해온 예능의 흐름을 들여다보면 거기 분명한 이경규의 자리가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과거의 전설로 남기보다는 현재 진행형으로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에 만들어진 관성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뛰어넘으려는 고통이 반드시 따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기만 한다면 이경규는 진정한 우리 예능의 기둥으로 추앙받을 자격이 충분할 것이다.

 

미남들의 수다 <비정상회담>, 연예인 토크보다 낫네

 

JTBC에서 새로 시작한 토크쇼 <비정상회담>의 상승세가 심상찮다. 2회 만에 2%에 육박하는 시청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참신한 형식이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시간에 방영된 SBS <힐링캠프>는 지상파라는 플랫폼 우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4%대까지 추락했다. 항간에는 이제 연예인 신변잡기 토크쇼는 식상하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비정상회담(사진출처:JTBC)'

토크쇼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들 말한다. 주중 11시대를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던 토크쇼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유재석이 이끌던 <놀러와>가 폐지되었고 강호동의 <무릎팍도사> 역시 폐지되었다. 이 양대 스타 MC가 현재 출연하고 있는 <해피투게더><별바라기> 역시 시청률은 물론이고 화제성에 있어서도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토크쇼가 고개를 숙인 이유는 물론 토크쇼라는 형식 자체가 가진 한계 때문이다. 아무래도 스튜디오에서 말을 중심으로 하는 소통은, 요즘의 리얼리티 카메라 시대에 진정성의 면에서나 영상적인 측면에서나 약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태생적인 한계만이 이유일까. 그렇지 않다. 토크쇼는 최근 생긴 트렌드가 아니고 오랜 세월을 버텨냈던 방송의 고전적인 형식이다. 중요한 건 형식 자체가 아니라 시대에 맞는 진화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JTBC가 작년부터 올해까지 내놓은 일련의 토크쇼들은 토크쇼의 추락이 태생적인 형식의 한계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썰전>, <마녀사냥> 그리고 최근 시작한 <비정상회담>이 그 새로운 토크쇼들이다. <썰전>은 토크쇼의 지평을 정치와 비평 분야로까지 넓혔고, <마녀사냥>19금 연애 토크쇼의 새장을 열었으며 <비정상회담>은 해외 각국의 청년들을 출연시킨 글로벌 토크쇼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최근 시작한 <비정상회담>은 그 형식과 기획면에서 토크쇼의 새로운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외국인들이 출연하는 토크쇼가 <비정상회담>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미녀들의 수다>가 그런 시도를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미녀가 아닌 미남들을 출연시킨 부분은 이 토크쇼의 괜찮은 차별화라고 여겨진다. <미녀들의 수다>가 문화 다양성을 알려주는 좋은 취지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불편하게 여겨졌던 건 미녀라는 출연자들 구성으로부터 비롯되는 선입견과 편견 때문이었다. 때로는 마치 성 상품화하는 듯한 느낌에 논란이 생긴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미남들(?)이 출연하면서 이런 불필요한 논란의 소지는 사라져버렸다. 또한 이들이 함께 모여 나누는 대화의 주제 역시 훨씬 과감해졌다. 혼전동거를 소재로 심지어 자신들의 동거 경험을 커밍아웃하는 이야기는 <미녀들의 수다>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좀체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물론 이것은 비지상파로서 JTBC가 갖는 플랫폼의 특성 때문에 가능한 소재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마녀사냥>이나 <썰전> 역시 그 형식의 참신함과 도발성은 지상파가 다룰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썰전>의 정치 토크는 그렇다 치고 예능심판자같은 코너는 지상파 3사를 모두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바깥에 있는 종편이나 케이블 같은 방송사들에서나 가능할 수 있는 형식이다. <마녀사냥>19금 토크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지상파에서 시도하려 했다가 불편함만 잔뜩 양산했던 <화신>이나 <매직아이> 파일럿은 그 단적인 사례다. <비정상회담>에서도 새로운 형식 위에 파격적인 토크 주제를 얹을 수 있는 건 그것이 종편이라는 틈새 플랫폼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비정상회담>은 연예인이 아닌 여러 나라의 외국인청년들이 출연한다는 점에서 기존 연예인 토크쇼의 신변잡기에 지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것은 또한 토크쇼의 경제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비정상회담> 같은 토크쇼는 초호화 게스트 섭외에 열을 올릴 필요가 거의 없다. 그만큼 비용 대비 효과도 좋다는 얘기다.

 

지상파 토크쇼의 추락. 이것은 어쩌면 지상파가 가진 역설적인 한계인지도 모른다. 한때는 적은 비용으로 그만한 효과를 거둔 효자상품이었던 토크쇼는 이제 종편이나 케이블로 그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뒷북치듯 따라 하기 바쁜 지상파 토크쇼들의 태만 역시 그 이유로 지목된다. 위기의식을 좀 더 느낀다면 지금처럼 여전히 연예인 신변잡기만 늘어놓는 토크쇼를 반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웃픈 현실 담은 <개콘>의 부활이 말해주는 것

 

여러분 힘내요. 여러분 웃어요. 힘들고 지쳐도 웃어요-” <개그콘서트> ‘렛잇비의 마지막 후렴구는 이 우스운 개그에 깊은 페이소스를 만든다. 비틀즈의 렛잇비를 개사해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아내는 노래로 반전의 웃음을 제공하는 이 코너는 웃지 못할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 하루를 위해 기다리고 기다리던 월급날, 입금과 함께 빠져나가는 돈으로 빈털터리가 되는 이야기는 집세에 생활비에 결국 빚쟁이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을 제대로 꼬집는다. 입사해 남들 쉴 때 쉬지 않고 앉아 일해서 얻은 건 하체비만이라는 노랫가사에도 힘겨운 회사생활에 몸을 망치는 직장인들의 비애가 묻어난다.

 

이것은 말단 직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뒷담화는 기본이고 회식도 안 끼워주며 심지어 커피에 침 뱉고 카푸치노라고 갖다 주는 부하직원들 때문에 직장상사들도 힘겹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회사에서 먹고 자며 일만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말하다가도 연봉이 2억이라는 말에 롤 모델삼는 것일 게다. 또 일도 못하면서 외모만 신경쓰는 여직원을 욕하면서도 회장님 며느리가 된 그녀를 롤 모델이라 외치는 것일 게다.

 

렛잇비가 샐러리맨들의 현실적인 삶을 개그소재로 한다면 새로 시작한 만수르는 비현실적인 재벌의 판타지가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1400조의 재산으로 세계 재벌 만수르의 돈 이야기는 너무 어마어마해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허탈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위화감이 아니라 웃음이 되는 이유는 모나리자 원본 그림을 1500억에 낙찰해 가져와서는 중고라 싸게 샀나봐?”라고 말하고, 그 얼굴에 낙서를 해대는 장면이 비현실적인 판타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집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현관에서 직진해 안방사거리를 지나 부엌 톨게이트를 통과하라는 이야기는 그래서 판타지와 현실 사이의 커다란 괴리를 만들어냄으로써 웃음을 준다. 생일파티 사회자로 짐 캐리 대신 김준현을 해달라는 아들에게 니가 그지야? 어디 집안에 각설이를 들여?”하고 화를 내고, 벌을 준답시고 가서 금 들고 서 있어라고 하거나 집 나간다는 아들에게 집 나가는 게 쉬운 줄 알아? 2년 걸려 임마!”하고 말하는 장면도 그 비현실감 때문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한편 또 다른 새 코너인 참 좋은 시절은 보증 잘못 서서 가난에 허덕이는 집안의 잠자리 풍경이 소재다. ‘만수르하고는 정반대 상황. 가장인 양선일은 아내와 자식들의 은근한(?) 질책에 흐느낀다. 그 우는 것마저 시끄럽다며 조용히 하라는 딸의 대사는 웃기지만 슬프다. 이 코너에서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아들의 말은 꿈 속 잠꼬대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참 좋은 시절은 역설적인 표현인 셈이다. 참 어려운 세상이다.

 

최근 그간 살짝 주춤했던 <개그콘서트>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역시 현실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웃픈개그들에서 나오고 있다. <개그콘서트>는 이들 웃픈 개그들을 통해 힘겨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여러분 힘내요. 여러분 웃어요. 힘들고 지쳐도 웃어요-” 힘들어도 렛 잇 비.

 

나나, 박봄, 박민우까지 <룸메이트> 논란, 그 책임은?

 

이번엔 박민우의 졸음운전이 논란이 됐다. SBS <룸메이트>에서 떠난 강원도 여행에서 운전대를 잡은 박민우가 살짝 졸다가 차량이 가드레일쪽으로 나가는 것을 서강준이 급하게 깨워 사고를 면하는 아찔한 장면이 고스란히 방영되면서 생긴 논란이다.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장면이었다.

 

'룸메이트(사진출처:SBS)'

박민우는 모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고 같이 차를 탄 출연자들도 괜찮다고 사과를 받아들였지만 방송이 나간 후 박민우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사실 이건 충분히 예측 가능한 논란이었다. 실제 벌어진 일이라고 하더라도 제작진이 배려했다면 굳이 방송이 나오지 않았을 거란 얘기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의도된 편집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이 날 방송은 시작부터 아예 논란을 준비한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늘 함께 사는 동생들을 살뜰히 챙겨주던 신엄마 신성우가 설거지가 가득한 부엌을 보며 짜증을 내는 장면이 그대로 나갔고, 결국 설거지를 하게 된 박민우는 스케줄이 적어 집에 있는 사람들만 계속 일을 한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송가연은 화가 난 듯한 박민우의 눈치를 보며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껏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여줬던 <룸메이트>하고는 사뭇 다른 장면이었다.

 

무언가 사건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에서 출발한 강원도 여행에서도 에어컨이 고장 나 찜질방이 된 차량에서 한껏 날카로워진 출연자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방송에 나갔고, 그 와중에 박봄과 박민우의 날선 대립이 보여지기도 했다. 사실 차량 문제 같은 것도 제작진이 조금만 신경 썼다면 충분히 배려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차량을 수리해주거나 교체해주는 모습은 보여지지 않았다.

 

좋은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소제목이 보여주듯 이번 방송 분량은 아예 대놓고 논란을 예고한 느낌이 짙다. 관찰카메라는 그 리얼한 느낌 때문에 잘 포장되어 나가게 되면 출연자에 대한 호감도가 훨씬 높아지지만, 거꾸로 논란의 소지가 있는 장면이 나가게 되는 순간 일종의 폭로카메라로 돌변하기 마련이다. 출연자들은 그 편집에 의해서 비호감에 빠지거나 심지어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악마의 편집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룸메이트>의 관찰카메라가 얼마나 아슬아슬한가를 잘 보여주는 건 나나의 사례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나나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이 그대로 방송을 타면서 악플에 시달리게 되자 그 심경을 방송을 통해 토로한 바 있다. 그 후의 나나는 초반의 발랄했던 모습에 비해 침체된 느낌으로 유독 조세호와 친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논란에 대해 그만큼 의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봄의 문제는 프로그램 바깥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전적으로 제작진의 책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미 문제의 소지가 발생해 시청자들이 박봄을 과거처럼 바라보기 힘들어진 상황에서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고 있다는 것은 그저 어쩔 수 없다는 토로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것은 박봄 마약밀반입 논란의 진위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오로지 시청자들의 입장을 배려한다면 내보내지 않는 게 맞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로 버젓이 나오는 박봄의 모습은 당사자에게도 점점 비호감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논란이 터지기 전에 찍은 방송 분량이라도 논란이 터진 후에 방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뻔뻔한인상을 드리우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봄을 위한 제작진의 배려가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룸메이트>좋은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소제목으로 보여주려는 건 분명하다. 그것은 같이 사는 이들이 늘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크고 작은 갈등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것들은 또한 관계를 발전시키고 성장시키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박민우의 사례처럼 심지어 안전마저 담보로 하는 문제적 장면들이 편집 없이 방영되는 것은 이런 제작 의도를 넘어서는 일일 것이다.

 

한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여주던 <룸메이트>의 관찰카메라는 이제 대단히 위험한 모습으로 돌변해 있다. 호감이던 연예인이 비호감이 되고 심지어는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프로그램이 제작의도인 공동 주거 문화의 뜻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또한 시청률이라는 열매를 가져가고 있지도 못하고 있다. 어쩌다 괜찮은 출연자들을 이렇게 모아놓고도 이런 결과밖에 만들지 못했을까. 그것은 관찰카메라라는 형식이 가진 양날의 칼일까, 아니면 공동주거라는 문화가 본래부터 갖고 있는 갈등의 소지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시청률도 취지도 못 살리고 있는 제작진의 무능일까.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