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 기부금보다 귀했던 유재석의 마음

 

죄송하다. 내가 사고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 내 잘못이다. 내가 차를 고장 내서 그렇다.” 유재석의 이 말이 왜 그렇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을까. <무한도전> 스피드레이서 특집에서 유재석은 결전을 이틀 남기고 난 사고 때문에 갑자기 다른 차량으로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엔진에 문제가 생겨 가속이 되지 않는 바람에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려 5개월 간의 준비기간이다. 그 긴 시간을 부단히도 노력하고 달려온 유재석이 아닌가. 그를 가르쳐주던 프로들도 이제 가르칠 입장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일취월장한 그였다. 그런데 결전의 문턱에서 만난 의외의 사고로 달릴 수 없는 차량을 모는 그는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런 그가 남 탓이 아닌 자기 탓을 하며 죄송하다”, “괜찮다를 반복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사고로 인해 달리지 못하는 자신이 가장 고통스럽고 안타깝겠지만 그것이 자기 혼자만의 준비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 때문이다. 차와 함께 동고동락한 정비사들이나 그에게 레이싱을 가르쳐준 프로 선수들, 그리고 이 대회를 위해 방송을 준비해온 <무한도전> 제작진들, 또 스폰서가 되어주겠다고 그가 약속했던 나눔의 집의 할머니들까지 그는 떠올렸다. 그러니 어찌 자신의 안타까움이 우선이겠는가.

 

이미 대회의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다. 멤버 전원 완주 실패. 그래서 예고편에 잠깐 등장한 멤버들의 눈물바다는 아직 보지 못했어도 미루어 짐작 가는 바가 있다. 지금까지 장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들이 쏟았던 눈물을 떠올려 보라. 그것은 한계 이상으로 자신을 내던진 이들이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느낄 수밖에 없는 회한과 아쉬움과 자기 위안 같은 것들이 뒤범벅된 감정일 것이다. 스피드 레이서 특집은 오랜만에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무한도전> 특유의 진심을 드러낼 참이다.

 

예능이 그저 저들끼리 웃고 까불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치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라는 걸 <무한도전>은 그간의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주곤 했다.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도전하는 것. 그 진심을 확인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결과와 상관없이 그들의 도전에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었던 것. 사실 <무한도전>의 도전은 그래서 성공보다는 실패에서 그 가치가 더 빛나기 마련이다. 불가능해 보여도 일단 부딪쳐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 정신.

 

우승도 아닌 완주도 못한 유재석이 경기가 끝나고 나눔의 집을 찾아가는 그 마음은 어땠을까. 아마도 할머니들과의 약속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그를 나눔의 집으로 인도하지 않았을까. 그가 기부한 2천만 원이라는 돈의 액수보다 더 귀한 건 그가 이번 대회를 통해 보여준 마음이다.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 잘 안된 일에 남 탓을 하기 보다는 자기 잘못이라고 스스로 책임지는 마음. 지금의 리더라고 하는 이들에게서 좀체 발견할 수 없었던 그 마음.

 

<7인의 식객>에 필요한 것, 지식과 음식의 조화

 

MBC <7인의 식객>은 중국에 이어 에티오피아로 가면서 약간의 변화를 꾀했다. 배낭팀과 테마팀으로 나눠 마치 비교체험 극과 극을 보여주던 중국편과 달리, 에티오피아편은 커피팀과 와인팀, 소금팀과 닭팀처럼 좀 더 구체적인 음식이나 재료로 팀을 나누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7인의 식객>이 좀 더 음식에 집중하겠다는 뜻처럼 보였다.

 

'7인의 식객(사진출처:MBC)'

하지만 첫 회에서 커피팀과 와인팀으로 나뉘어 여정을 보여준 후 다시 합류해 소금팀과 닭팀으로 나누어 각각 떠난 여행에서 음식은 좀체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음식보다는 에티오피아의 역사와 문명, 그리고 지리적인 지식 전달이 더 많았다.

 

물론 에티오피아에서 사용한다는 게즈력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나 고대문명 악숨에서 보여준 칼렙왕의 무덤, 9세기경 지진으로 무너졌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오벨리스크, 단 한번의 전투로 이탈리아의 침략을 막아낸 아두와 전투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운 지식이다. 아마도 여행자들이라면 누구나 그 현지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나면 비로소 그 체험의 묘미가 다르다는 걸 느껴봤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러한 지식이 과연 <7인의 식객>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치와 잘 맞아떨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지식 자체가 있고 없고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다만 중요한 건 그 지식이 이 여행의 목적이기도 한 음식과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가 하는 점이다. <7인의 식객>을 보는 시청자라면 당연히 다른 방식이 아니라 음식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아는 경험을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지식 따로 음식 따로의 병렬적 이야기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상당 부분 헷갈리게 만들 수 있다.

 

소금사막 다나킬에서의 여정 역시 소금이 그 특정한 지리적 환경 때문에 어떻게 생겨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것이 음식문화와 어떤 연관성을 갖는가는 잘 보여지지 않았다. 60도에 가까운 폭염 속에 탈진해 쓰러진 PD의 이야기가 다나킬에서의 주요한 이야기가 되는 건 어딘지 아쉬운 대목이다. 그나마 김경식이 소금을 먹고 오한이 사라졌다는 체험을 들려주며 다나킬은 죽음의 사막이자 생명의 사막이구나.”라고 하는 대목이 여행의 기획의도를 살짝 보여줬을 뿐이다.

 

<7인의 식객>이 예능보다는 다큐적인 성격을 보이는 건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칭 스타강사고종훈씨가 뜬금없이 중간 중간 등장해 지식을 전해주는 장면 역시 이물감이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다만 중요한 것은 예능이든 다큐든 또 지식여행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핵심인 음식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음식은 물론 지식으로 채워질 수 있는 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직접 먹고 맛보는 그 감각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무리 지식여행을 강조한다고 해도 음식이 주는 이 체감을 시청자들에게 생생히 전달해주는 건 <7인의 식객>의 책무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까지 가서 다룬 첫 회의 와인과 커피 이야기는 너무 단선적이고 표피적이다.

 

에티오피아의 커피나 와인 맛이 타국과 어떻게 다르고, 그것은 왜 그런가에 대한 지리적이고 역사적인 과정들을 프로그램이 추적해나갔다면 어땠을까. 사실 커피 하나만을 온전히 체험하기 위해 에티오피아까지 날아가는 관광객들도 많지 않은가. 지식을 다루더라도 음식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해야 프로그램에 일관성이 생기고 또 보는 맛도 생기기 마련이다.

 

음식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조화다.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을 만드는데도 가장 필요한 것이 중심과 부수적인 것을 잘 엮어내는 그 균형감각이다. 지식을 염두에 두더라도 음식을 다루기 때문에 감각과 감성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이성적인 지식과 감각적인 음식이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이 둘은 실로 잘 어울린다.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은 결국 지식을 통한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를 통해 넘어설 수 있는 일이다. 낯선 이국의 음식에 대한 편견을 바꿔주는 지식. <7인의 식객>이 그런 걸 보여줄 순 없는 걸까.

박봄 논란, 이제는 유전무죄 정서까지

 

처음에는 박봄의 마약 밀수입 의혹으로부터 시작됐다. 한 매체가 4년 전 입건유예로 끝나버린 박봄의 암페타민 80정 밀수입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면서다. 이에 대해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는 발 빠르게 나서 본인이 직접 조목조목 해명을 했다. 그 내용의 핵심은 과거 박봄이 미국에서 축구선수로 활동할 때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정신과 치료와 약물을 복용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약 복용이 아니라 치료 목적이었다는 것. 밀수 의혹에 대해서는 바쁜 스케줄 때문에 미국에 갈 수 없게 되자 박봄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같은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우편으로 전달받다가 금지된 약품이 세관에 문제가 된 것이라고 밝혔다.

 

'룸메이트(사진출처:SBS)'

양현석의 해명 글은 감성에 호소하면서도 앞뒤 정황이 잘 맞아 떨어지는 논거를 제시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이 봐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을 만큼 효과적인 글이라는 것. 그래서일까. 여론은 순간 동정론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새로운 증거들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즉 암페타민을 들여올 때 젤리 형태의 과자와 함께 배송됐다는 것(숨기려 했다는 것), 박봄의 외할머니는 수사관에게 이를 다이어트용 과자라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또 박봄이 트라우마를 갖게 된 사망사건의 당사자가 상대팀 선수로 친구라는 주장이 과장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여기에 박봄의 마약류 약물이 미국에서도 함부로 처방될 수 있는 약물이 아니라는 점이 보도되었고 또 암페타민의 국내 반입이 불법이라는 것을 사전에 박봄 측이 인지했다는 점 같은 끊임없는 새로운 사실들이 보도되면서 논란은 점점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양현석의 오빠 같은 감성으로 적은 해명 글이 만들어낸 동정론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온 보도들로 인해 의구심과 비판여론으로 변해갔다. 이 많은 보도들에 대해 그토록 발 빠른 대처를 보이던 양현석이 그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모양새는 마치 이 보도들을 사실로 긍정하는 듯한 인상마저 남기고 있다.

 

박봄 논란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박봄 구하기에 나선 양현석마저 그 논란에 점점 휩싸이고 있는 양상으로 변했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소속사 가수들이 성대모사를 할 만큼 양현석의 이미지는 YG엔터테인먼트라는 기획사의 이미지를 만들어왔다는 점에서 이 확산된 논란은 더 큰 불씨를 만들어낸다. 즉 양현석의 이미지와 함께 YG엔터테인먼트가 가진 긍정적인 이미지까지 함께 흐트러뜨리고 있는 것. 작년 싸이의 대활약과 <K팝스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구축한 기획사 이미지가 한 순간에 무너지고 있다.

 

게다가 사건은 여기서 머무는 게 아니라 이제는 ‘YG 봐주기논란으로 이어지면서 검찰과 고위간부의 개입 논란으로까지 커져가고 있다. 당시 입건유예가 되어버린 이면을 두고 검찰과 고위간부가 개입된 것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 여기에 대해 검찰 측도 아무런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있는 건 대중들에게 더 큰 의혹을 사고 있다. 검찰과 YG가 똑같이 쉬쉬하고 있는 모습처럼 비춰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은 이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정서가 그만큼 흉흉하다는 걸 말해준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을까. 박봄에서 시작된 논란은 양현석과 YG를 거쳐 검찰로까지 퍼져나갔다. 이렇게 된 것은 그 본질인 박봄의 마약밀수입 논란이 그 자체로 투명하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만일 명명백백히 투명하게 처리된 사안이었다면 이런 끝없는 의혹 제기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대응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양현석의 발 빠른 해명으로 동정론마저 생기고 있던 시점이 아니던가. 그 동정론이 싸늘한 시선으로 바뀌는 와중에도 아무런 대처가 없다는 건 이 논란에 떳떳할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만일 기획사가 검찰까지 움직일 정도의 힘을 발휘한다거나, 아니면 검찰이 일개 기획사에게까지 휘둘릴 정도로 투명하지 못하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지게 된다면 엄청난 후폭풍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까지 논란이 커져나간다면 YG로서는 그 충격과 부담이 너무나 클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이 사안에 대한 명백한 입장과 사실을 제대로 밝히고 대중들에게 설득을 구해야 한다. 지금 같은 묵묵부답으로는 결코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이미 대중들은 정서적인 불쾌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SBS 토크쇼와 교양예능의 추락, 해법은 없나

 

 

'심장이 뛴다(사진출처:SBS)'

교양과 예능을 결합하는 획기적인 조직 운용을 통해 SBS 예능 프로그램은 한 때 확고한 자기 색깔을 만들어냈다.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대표상품이었던 <정글의 법칙><>이 승승장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SBS 예능 프로그램의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전반적인 시청률 추락은 물론이고 화제성면에서도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다. 게다가 신규 예능 프로그램들이 별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향후 전만도 불투명한 상태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 됐고 그 해법은 없는 걸까.

 

폐지된 <>, <심장이 뛴다>, 힘 빠진 <도시의 법칙>

교양과 예능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SBS 예능의 대표상품으로 <>은 출연자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맞이하면서 폐지되게 되었다. <정글의 법칙>은 그나마 현재 유일하게 남은 SBS 예능의 자존심이다. 많이 추락한 시청률이지만 그래도 11%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시간대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정글의 법칙>은 뉴질랜드편 이후 생겨난 리얼리티 논란의 여파는 여전히 커서 예전만큼의 화제가 되지는 않고 있다. 최근 게임적인 스토리텔링을 넣어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그것이 프로그램의 어떤 전기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정글의 법칙>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면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인 김병만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교체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김병만이 지금껏 보여주었던 캐릭터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창출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다. 김병만은 이미 정글 생존의 전문가처럼 변신의 변신을 거듭한 상태다. 여기서 인위적인 변화를 갖게 된다면 자칫 진정성이 훼손될 가능성마저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한 때 참신한 시도로 여겨졌던 교양과 예능의 결합이 이제는 조금 식상해진 트렌드처럼 여겨진다는 점이다. <정글의 법칙>의 연장선으로 <도시의 법칙>이 만들어졌지만 무언가 탐구하는 듯한 그 다큐적인 접근방식은 특별함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예능도 다큐도 아닌 어정쩡한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심장이 뛴다>의 폐지는 교양과 예능의 결합이 어디서부터 문제를 발생시키는가를 잘 보여준다. 즉 취지와 의미가 좋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예능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교양과 예능을 결합했다고 해도 시청자들에게는 여전히 예능으로서 다가오는 면이 있게 마련이다. 좋은 취지만큼 재미를 담보하지 못한다면 결국은 현실적인 문제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교양의 무언가를 가르치는 듯한 캠페인적인 느낌이 강조될 때 예능은 상당부분 재미를 잃을 위험성이 있다.

 

<룸메이트><런닝맨>, 고개 숙인 주말 예능

<일요일의 좋다>의 시청률은 6.5%로 지상파 방송 3사의 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는 분위기다. 20132월만 해도 16%를 넘긴 적이 있었고, 2014년 지난 4월까지만 해도 10% 시청률을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5월 들어 7%로 떨어진 시청률은 이제 6%까지 급락하고 있다. 이 시점은 <K팝스타3>가 끝나고 <룸메이트>가 시작하는 지점이다. <런닝맨>의 화제성이 예전만 못한 데다 <룸메이트>가 그다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서 생겨난 결과다.

 

홈 쉐어라는 새로운 주거문화를 기치로 내걸고 나온 <룸메이트>는 어느 순간부터 연예인들의 연애 프로그램 같은 분위기로 변질되기도 했고, 지나친 제작진의 개입으로 자연스러움이 사라지게 되면서 관찰카메라인지 아니면 한 집에서 벌어지는 토크쇼와 버라이어티쇼인지 분간이 가지 않게 되었다. 애초에 홈 쉐어라는 신개념 주거문화에 대한 기획의도에 집중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재미를 만들려는 과욕이 부른 결과다.

 

<런닝맨>의 추락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한 때 이 예능은 지금껏 시도하지 않았던 독특한 게임들을 보여줌으로써 시청률과 별개로 호평을 받아왔다. 하지만 서서히 시청률을 의식하게 된 <런닝맨>이 새로운 게임의 스토리텔링을 도전하지 않고 게스트를 바꿔가며 하는 단순한 게임으로 변질되면서 화제성이 떨어지게 되었다.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고 아예 끝까지 밀어붙이는 저력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요일이 좋다>의 시청률 하락은 지상파 3사의 예능 경쟁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 때문에 SBS로서는 더욱 아프다. 사실 주말 예능에서만이라도 어떤 승기를 잡고 있으면 전체 예능에 대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경쟁적인 분위기도 아니고 아예 주말 경쟁에서 배제된 느낌은 SBS 예능의 고민을 깊게 만든다. <룸메이트><런닝맨>이든 본래 갖고 있던 기획의도를 되찾을 필요가 있다. 시청률에 목매다보면 시청률도 잃고 자칫 SBS 주말예능의 이미지 자체가 훼손될 위험성이 있다. 앞으로 돌아올 <K팝스타4>가 기대주로 자리하고 있지만 그간 주말 예능의 명분을 지키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힐링캠프><매직아이>, 토크쇼의 추락

<힐링캠프>는 간신히 6% 시청률을 회복했지만 브라질 월드컵 특집 때는 무려 3.7%까지 떨어지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경규가 MC로 있다고 해도 <이경규가 간다>를 자꾸만 고집해서 굳이 브라질까지 갈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힐링이라는 트렌드가 이미 지나간 지 오래다. 특히 <힐링캠프>힐링이 시청자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출연자(특히 논란 연예인)를 위한 것인가 하는 문제제기로 그 기획의도에 이미 흠결이 생긴 바 있다. 게다가 이경규라는 MC의 주목도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 프로그램을 존속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지 알 수 없는 상태다.

 

새로 시작한 <매직아이> 역시 이효리가 출연하는 신개념 토크쇼로 기치를 내걸었지만 그저 기 센 여자들의 수다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시청률은 고작 3.9%. 신규 예능이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있다고 해도 너무 낮은 시청률이다. 이런 문제는 사실 기 센 여자들의 수다라는 기획에서부터 예상된 부분이기도 하다. 재미있을 것 같지만 사실상 그다지 챙겨 보고픈 내용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토크쇼에 대한 대중들의 기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이제 진짜 예능이다. 이것은 단지 스튜디오를 나와 카페 같은 공간에서 토크쇼를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저들의 수다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야기가 몸으로 체득될 수 있을 때 비로소 공감대가 생긴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토크쇼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밖에도 SBS 예능 프로그램 중에는 노후되어 거의 화제가 되지 않는 프로그램들도 있다. 이를테면 <붕어빵>이나 <스타킹> 같은 프로그램이 그렇다. 이런 프로그램은 설혹 시청률이 어느 정도 나온다고 해도 광고에 있어서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금 현재 SBS 예능은 전체적인 새로운 판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 예능과 교양을 과감히 섞는 조직개편까지 단행하며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처럼, 그만한 변화의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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