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권력의 시대, 문제는 없나

 

최근 JTBC에서 방영되고 있는 <적과의 동침>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풍경들이 등장한다. 드잡이에 날치기 통과 같은 볼썽사나운 장면들을 통해 늘 봐왔듯이,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댈 것 같은 여야 정치인들이 함께 모여앉아 게임을 하고 토크도 하는 이색적인(?) 풍경이다. <적과의 동침>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단박에 이해가 될 수밖에 없다. 늘 적과 아군으로만 나누어진 모습을 보였던 여야 정치인들이 함께 한 바탕 놀아보는 프로그램인 것.

 

'적과의 동침(사진출처:JTBC)'

이것은 과거 같으면 도저히 보기 힘든 장면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방송을 통해 서민적인 이미지를 가져가는 것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당시의 프로그램들은 뉴스나 교양, 다큐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들어와 있는 것. 도대체 무엇이 이런 파격적인 변화를 만든 것일까. 가장 큰 것은 지금 현재가 이미지가 갖는 힘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이른바 ‘이미지 권력의 시대’라는 점이다. 좋은 이미지를 가지면 뭐든 얻을 수 있는 시대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누구보다도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이미지가 하나의 권력이 된다는 것은 거꾸로 연예인이 정치인만큼의 힘을 발휘하는 이른바 폴리테이너나 소셜테이터가 급증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미루어 알 수 있다. 한 때 연예인들은 이른바 딴따라라고 비하되곤 했지만 지금은 청소년들이 되고 싶은 꿈 1순위가 될 정도로 그 위상이 커졌다. 그것은 이미지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들의 이미지의 힘은 이제 SNS 상에서 한 줄을 적는 것으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이미지가 권력이 되는 과정에는 많은 부작용이 생겨난다. 이미지는 실체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즉 이미지가 좋다고 해서 그 내용이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을 접하는 대중들로서는 내용까지 좋은 것으로 오인되고는 한다. 즉 정치인이 예능을 잘한다고 해서 정치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보여진 서민적인 이미지는 그 정치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지의 힘이 실체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2007년 대선 과정에 등장했던 광고를 통해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후보 광고를 떠올려 보라. 욕쟁이 할머니의 국밥집이 등장했지만 사실 그 욕쟁이 할머니는 연기자로 밝혀졌다. 즉 일련의 광고이미지는 하나의 연기의 소산이었던 셈이다. 물론 광고가 전하는 메시지는 진심이었다고 강변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이 그 광고가 보여준 것처럼 친서민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은 연예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방송을 통해 좋은 이미지로 많은 수익을 내면서도 실제로 좋은 일을 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연예인들 역시 적지 않다. 흔히 많이 접하게 되는 무수한 논란과 사건사고들을 생각해보라. 이것이 엄청나게 큰 파장과 논란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이미지로 봐왔던 모습과 전혀 다른 어떤 실체를 거기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굉장한 힘을 주지만 그것이 모두 실체는 아니라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그를 통해 어떤 힘을 갖게 되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유재석 같은 모범적인 연예인은 단적인 사례다. 그는 어떤 점에서는 좋은 이미지 때문에 더 사회에 책임감 있고 좋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는 상승효과를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연예인이다. 하지만 이것이 결국은 하나의 권력이라는 점에서 그것이 어떻게 얻어지고 또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우리 사회에서 이미지 권력은 실제로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더 유리하다. 이를테면 한때 ‘땡전뉴스’라고 불리던 뉴스보도들은 권력을 이미지화하면서 다시 그 권력을 공고히 하는 방식으로 사용된 이미지 권력이다.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뉴스가 뉴스 같지 않고 권력의 눈치를 보는 행태는 여전히 자행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얻어진 권력이 과연 서민들을 위한 정치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정치인들(이거나 혹은 정치인이었던 이들)의 예능 출연 러시는 그래서 그 취지인 ‘그들도 우리와 같다’는 식의 공감을 주기도 하지만, 이미지 권력의 시대라는 점을 두고 보면 씁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이제 공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사적인 이미지까지 하나의 힘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니까. 문제는 이 사적이고 공적인 이미지가 실체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때 대중들이 갖게 되는 허탈감과 실망감이다. 그러니 예능 좀 한다고, 또 예능감이 있다고 그것이 실체라 쉬 마음 주지 말자. 그것이 실제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더 큰 상처만 줄 테니.

김태원, 이젠 말보다 음악에 집중해야할 때

 

최근 부활의 김태원은 예능중단을 선언했다. 그간 <남자의 자격>에서 국민할매로, <위대한 탄생>에서는 국민멘토로까지 불렸던 그였다. 그는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예능에서도 발군의 예능감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가끔 참여한 토크쇼들에서도 그는 큰 웃음을 주는 한 마디 한 마디와 함께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촌철살인의 말들로 단연 돋보이는 게스트였다. 토크쇼, 리얼 버라이어티쇼, 오디션 프로그램, 관찰예능까지. 실로 김태원은 최근 몇 년 동안 예능이 발견해낸 대단한 가능성 중의 하나가 분명했다.

 

'위대한 탄생(사진출처:MBC)'

그런데 그가 돌연 예능중단을 선언했다. 이유는 당연하지만 음악에 전념하기 위해서란다. 새로운 앨범 작업에 오롯이 몰두하겠다는 것이다. <나 혼자 산다>에서 하차했을 때 딸 서현 양이 같이 생활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댔지만, 사실 그에게는 음악적인 이유가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예능은 그에게 현실적인 것들을 제공해주었지만 그는 결국 아티스트다. 음악이 아닌 예능으로 이름을 떨치고 돈을 버는 것이 성에 찰 리가 없다.

 

물론 아티스트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본분인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다. 최근까지의 그의 행보를 보면 그러나 부활의 김태원보다는 예능인 김태원으로서의 존재감이 거의 압도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가 예능인으로서 활동하면서 냈던 노래들은 특유의 록 발라드가 갖고 있는 감성적인 멜로디가 여전히 돋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너무 비슷비슷한 멜로디의 동어반복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도 준다.

 

항간에는 이제 몇 소절의 멜로디만 들으면 그 곡이 김태원의 곡이라는 걸 알아챌 정도라는 얘기도 나온다. 자신만의 풍이 있다는 것은 물론 나쁜 것은 아니지만, 김태원의 최신 곡들을 부활의 초창기 앨범들과 비교해보면 그 날카로운 면들이 많이 무뎌진 느낌을 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노래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여전히 괜찮지만 과거 우리가 부활에서 기타치며 노래까지 하던 김태원의 아우라와 기대감에는 못 미친다는 얘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태원이 아닌가.

 

여러모로 예능을 하며 음악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게다. 그나마 김태원을 버티게 해준 건 <남자의 자격>을 하며 앞에서 이끌어주었던 이경규라는 존재 덕분이었지만 프로그램이 종영하면서 이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이 되었다. 무엇보다 예능 이미지로 자꾸만 굳어지면서 흐려지는 록커로서의 이미지는 부담이었을 게다. 국민 할매라는 친근한 캐릭터는 물론 좋지만 기타를 들기조차 힘들 것 같은 그 이미지는 음악에는 결코 좋을 수 없다.

 

최근 김태원은 모 라디오 방송에 나와 과거 “부활에서 보컬을 마음대로 교체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또 이 방송에서는 뒷담화를 하던 이승철에게 변진섭이 일침을 가해 머쓱해했다는 이야기도 내놨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나름 쿨하게 과거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얘기한 것이다. 과거 김태원이 <놀러와>나 <라디오스타> 같은 프로그램에 나와 이러한 과거 회고담을 꺼냈을 때만 해도 대중들은 대부분 그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의 대중은 사뭇 달라졌다. 공감도 있지만 비난에 가까운 악플도 적지 않게 보인다.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그것은 김태원이 그간 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출연하면서 너무 많은 말들을 해왔기 때문이다. 예능에서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무에 잘못됐냐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김태원이라는 아티스트의 색깔을 없애는 쪽으로 작용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중들에게 김태원은 어느 순간 음악은 잘 들리지 않고 말만 무성해진 그런 존재로 이미지화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이라도 예능 중단을 선언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면 이제 말이 아니라 음악에 매진할 일이다. 지금은 대선배들이 여전히 건재함을 알리며 젊은 세대들까지 음악으로 소통하는 시대다. 조용필의 ‘바운스’가 그렇고, 여전히 매력적인 목소리로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고 있는 신승훈의 신보가 그렇다. 부활이 진정으로 부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예능이 아닌 음악으로.

<아빠>, 아이라 한계라던 우려 어떻게 씻었나

 

<아빠 어디가>는 처음 화제가 되던 그 시점부터 줄곧 제기된 우려가 있었다. 그것은 아이들이 함께 하기 때문에 어른들의 예능과는 달리 할 수 있는 미션에 한계가 있을 거라는 거였다. 사실이었다. 초반 <아빠 어디가>는 그 날 잠을 잘 집 선택과 저녁거리를 아이들이 구해오는 미션 그리고 저녁을 해먹고 잠을 자면서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또 아침을 해먹는 미션 등을 반복했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이러한 패턴의 반복은 금세 식상해질 위험성이 있었다. 이것을 모를 리 없는 제작진은 아이들의 속내를 알아보는 몰래 카메라 설정이나 한밤중에 폐가를 다녀오는 담력 테스트 등을 미션으로 넣기도 했다. 그 자체로는 훨씬 높은 수위의 재미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여기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았다. 미션 자체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몰래 카메라는 아이들의 사적인 내면을 끄집어내는데다 자칫 어른들의 몰취미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도 잠시, 몇 개월이 지난 현재 뒤돌아보면 <아빠 어디가>의 성장이 꽤 성공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토리텔링의 단조로움은 사라졌고 매 회 예상치 못한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이들의 첫 두발 자전거 타기 같은 소재나 어른들이 즉석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준 흥부놀부전 같은 소재는 <아빠 어디가>의 이런 성취가 어떻게 이뤄졌는가를 잘 말해준다.

 

이것은 아이이기 때문에 한계라는 시각을 극복하고 오히려 아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소재들을 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찾아낸 결과다. 즉 어른들에게 자전거 타기라는 소재는 그다지 매력적일 수 없지만, 아이들의 첫 자전거 타기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저 스스로 패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의 그 모습은 아이에게도 아빠에게도 커다란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아빠 어디가>는 그 아이들이 성장할 때 하나씩 보여주는 순간들을 소재화하는 기지를 발휘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낯선 농작물을 밤에 함께 찾아다니는 미션도 또 농촌 일손 돕기에 참여하는 미션도 마찬가지다. <6시 내고향>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른들이 농촌에 가서 하는 이런 방송들을 흔하디 흔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하는 새로운 경험이라는 차원에서 다가가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어찌 보면 기존에 어른들이 했던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의 소재들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다고 해도, <아빠 어디가>는 완전히 다른 결의 이야기를 만들 것이라는 점이다.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이나 무인도 체험, 또는 아빠가 아이들에게 하는 흥부놀부전 같은 즉석 상황극은 이미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흔해진 아이템들이지만 그래도 <아빠 어디가>에서는 특별해진다는 얘기다. 게다가 아이가 하나하나 체험해가면서 성장하는 모습은 아빠들에게도 일종의 성장을 만들어준다. 아이들이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며 아빠들은 아마도 훌쩍 커버린 모습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제 여기 나오는 아이들이 이제는 시청자들에게도 한 가족 같은 존재로 자리했다는 점이다. 든든한 맏형 민국이와, 겁은 많아도 솔직하고 순수한 윤후, 나이에 비해 의젓한 성선비 준이와 장난꾸러기 상남자 준수 그리고 효심 가득한 홍일점 지아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보게 되는 반가운 얼굴들이 된 것. 바로 이 정서적인 유대감은 <아빠 어디가>가 취하는 소재가 제 아무리 소박해도 그 스토리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밑바탕이다.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이지 않은가.

 

아이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어쩌면 이것은 어른들이 가진 잘못된 편견인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시선으로만 아이들을 바라본다면 아이들이 가진 잠재력을 우리는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거꾸로 아이이기 때문에 오히려 무한하다는 시선만이 아이들의 가능성을 더 확장시킬 수 있다. <아빠 어디가>가 프로그램의 성장을 통해 보여준 이 아이에 대한 다른 시선은 그래서 우리네 틀에 박힌 교육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하게 해준다. 어른들의 틀에 가두지 말고 틀 밖의 가능성을 보라고 이 프로그램은 말하고 있다.

특이한 한국형 리얼리티TV, 자리잡고 있나

 

<진짜사나이>의 영향일까. SBS는 <심장이 뛴다>를 정규 편성했고 KBS는 <이상무>를 파일럿으로 방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진짜사나이>가 군인을 소재로 했다면 <심장이 뛴다>는 소방관을, <이상무>는 경찰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항간에는 비슷한 콘셉트 베끼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맞는 얘기다. 분명 관찰카메라를 내세운 <진짜사나이>가 포문을 연 것은 사실이니까.

 

'심장이 뛴다(사진출처:SBS)'

하지만 이 군인이나 소방관(119 대원), 경찰 소재의 프로그램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군인을 소재로 한 예능은 89년 시작해 96년까지 방영되었던 <우정의 무대>가 있었고, 소방관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도 <긴급구조 119> 같은 프로그램이 있었으며, 경찰 역시 <경찰청 사람들> 같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즉 형식은 다르지만 소재는 이미 다뤄졌던 것.

 

최근 들어 소방관이나 경찰 소재의 예능 프로그램이 연예인이 출연하는 관찰카메라 형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데는 그만한 우리 예능만의 역사적 흐름이 있다. 즉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서구에서 생겨난 리얼리티TV의 영향이 그것이다. 즉 90년대 <경찰청 사람들>의 탄생 이면에는 <캅스(미국)> 같은 경찰 소재의 리얼리티TV가 있었고, <긴급구조 119> 역시 <Rescue 911(미국)> 같은 소방관 소재의 리얼리티TV가 있었던 것.

 

하지만 이 리얼리티TV의 경향을 이어받아 <빅브라더>나 <서바이버> 같은 서구의 리얼리티쇼가 21세기에 등장하지만 이 경향이 우리나라에까지 그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일반인 출연자에 대한 사생활 노출에 정서적인 반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반인 대신 연예인을 출연시키고 이를 캐릭터쇼로 만든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하게 되었다. <무한도전>은 그 시작점이고 그 후로 <1박2일>이나 <런닝맨> 같은 흐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즉 <진짜사나이>를 비롯해, <심장이 뛴다>, <이상무> 같은 관찰 카메라를 이용한 예능 프로그램은 이미 90년대에 등장했던 리얼리티TV에 우리 식의 연예인 출연 리얼리티쇼가 접목된 형태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프로그램에 연예인만이 아니라 일반인 출연자들도 함께 등장한다는 점이다. 즉 어찌 보면 정서적인 반감 때문에 일반인 출연 리얼리티쇼가 나오지 못했던 21세기 초의 예능 경향이 지금에 와서야 조금씩 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연예인과 일반인이 함께하는 관찰 카메라형 리얼리티쇼는 일반인 리얼리티쇼로 가는 과도기적인 예능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서 이른바 ‘베끼기 논란’이 자주 벌어지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MBC 예능에서 포문을 연 이른바 ‘관찰 카메라’ 예능이 한때 트렌드를 이끌었던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형식을 조금씩 대체해가는 변화의 지점에 지금의 예능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즉 이 형식을 주도한 MBC 예능이 이 변화의 선봉에 서 있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변화에 동승하는 관찰 카메라 형식의 예능들을 모두 베끼기라 말하기는 이제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무한도전>이 있어서 <1박2일>도 <남자의 자격>도 또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도 가능했던 것처럼, <진짜사나이> 같은 프로그램이 있어 좀 더 다양한 소재의 관찰카메라 예능이 나오는 것이 그다지 예능 전체의 발전을 위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다만 형식을 가져왔다고 해서 그 소재 자체가 가진 특성들에 맞는 저마다의 스토리텔링을 개성화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저 소재만 달리할 뿐 스토리텔링 방식을 똑같이 한다면 그것은 창의적인 재해석이 아니라 진짜 베끼기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인 소재의 관찰 카메라 예능이 뜨자, 소방관, 경찰 소재의 예능이 나오는 것은 그 자체로는 잘못된 일이 아니다. 거기에는 그만한 우리네 방송의 특유한 흐름과 역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다음부터다. 소재만 살짝 바꿔 너도나도 비슷한 스토리를 반복하게 된다면 자칫 이 새로운 트렌드로 각광받는 관찰 카메라 예능은 너무 빠른 소비를 맞을 수도 있다. 지금의 이 변화들은 소재적으로 풍성해지는 결과가 될 것인가. 아니면 짝퉁 예능들이 쏟아져 나와 오히려 소비만 빠르게 하는 결과가 될 것인가. 주목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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