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가 아닌 스포츠의 즐거움 알려준 <예체능>

 

“지는 건 당연한데 어떻게 지느냐가 문제였다.” <우리동네 예체능>이 88 서울올림픽 특집으로 마련한 김기택과 유남규의 재대결에서 손에 땀을 쥐는 경기를 펼친 뒤 패배한 김기택은 이렇게 말했다. 88 서울올림픽 당시의 데자뷰를 느끼게 할 정도로 25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명승부를 펼친 그들이었다.

 

'우리동네 예체능(사진출처:KBS)'

현 탁구 국가대표 감독인 유남규와 현역에서 멀어진 김기택의 경기는 어쩌면 결과가 뻔한 경기일 수 있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는 그저 그런 경기에 머무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가자 두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해졌다. 유남규는 허벅지에 통증을 느낄 정도로 열심히 경기에 임했고 김기택은 명불허전의 과감한 드라이브를 선보이기도 했다.

 

88 서울올림픽 당시 김기택과 유남규가 금메달을 놓고 벌인 대결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공개되었다. 김기택이 탁구채의 손상된 러버에 집착하느라 경기에서 지게 됐다는 이야기와, 경기가 끝나고 유남규가 김기택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자 김기택이 “잘했다. 수고했다”고 격려해줬다는 이야기는 명승부만큼 훈훈한 두 사람의 관계를 말해주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고 벌이는 대결과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벌이는 한 판 승부는 같을 수 없다. 하지만 거의 똑같은 명승부를 펼쳐 보이면서도 올림픽과는 다른 스포츠의 묘미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대결은 <우리동네 예체능>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스포츠를 소재로 하지만 스포츠 프로그램과는 다른 <우리동네 예체능>만의 차별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배드민턴 경기는 몇 개월 연습한 걸로 몇 년씩 연습한 동호회와 경기를 펼쳐 이긴다는 것이 실로 어렵다는 걸 보여주었다. 어찌 보면 뻔히 질 경기라는 것. 하지만 김기택이 말하고 실제로 보인 것처럼 ‘지더라도 어떻게 지느냐’가 <우리동네 예체능>이 역시 나가야할 방향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또한 엘리트체육과는 다른 생활체육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이기기 위해서 스포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한다는 것.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이기려고 노력해야겠지만 못 이긴다고 해도 생활체육의 목표는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를 늘 누가 이기고 지느냐에만 몰두해서 바라봤던 우리의 시각은 <우리동네 예체능>이 보여준 일련의 경기들을 통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 본 경기만큼 준비하고 연습하는 과정 역시 스포츠로서는 충분하다는 것.

 

따라서 김기택과 유남규 같은 한때 최고의 스포츠 스타들이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보여준 모습은 자못 상징적이다. 어찌 보면 엘리트 체육의 제일 꼭대기에 있던 그들도 이처럼 생활체육의 장으로 나오면 유쾌해지고 훈훈해질 수 있다는 것. 져도 어떻게 지느냐에 따라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는 것을 <우리동네 예체능>은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동네 예체능>과 우리네 스포츠가 이 앞으로 나가야할 길이기도 할 것이다.

<슈스케5>, 박시환의 부활을 기대하는 이유

 

‘탈락’이 적힌 편지를 받은 박시환은 진짜 탈락할 것인가. 박시환은 이번 <슈퍼스타K5>에서 상당히 주목받는 후보자다. ‘제2의 허각’이라는 닉네임이 나올 정도의 사연을 가진 인물. 매년 <슈퍼스타K>에 도전했던 이력. 정비공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일하며 노래를 놓지 않았던 그다. 첫 출연에 볼트를 쥐고 노래하는 모습은 그래서 대단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슈퍼스타K5(사진출처:mnet)'

하지만 그는 노래에 있어서 기초가 없다는 지적을 많이 들었다. 기본기가 부족해 고음에서는 약간 불안한 느낌을 주었고 디테일들이 잘 살아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몇 차례 탈락의 위기에 몰렸다가 다시 구제되는 걸 반복했다. 특이한 것은 그런 탈락과 구제의 과정 들을 박시환은 꽤 담담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이번 탑10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아일랜드 미션에서도 김광진의 ‘편지’를 부르고 결국 탈락이 적힌 편지를 받게 되었던 그였지만 그는 약간의 아쉬움을 표현했을 뿐 담담한 얼굴이었다. 그런 담담함 혹은 체념(?)은 박시환이 그간 살아온 힘겨웠던 삶을 잘 말해준다. “그동안의 인생은 그냥 사는 거였어요. 지금은 제 의욕을 갖고 살아 보려는 거 같아요. 사는 거 같아요.” 그는 이렇게 지금 현재를 즐거워하면서도 “자격도 없는데...”라며 자신을 낮추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것은 변방에서 잉여처럼 치부되며 살아온 이들의 자기 보호본능에서 비롯된 습관 같은 것일 게다. 무수한 상처에 익숙해지면서도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찾아내는 것. 하지만 이 약간은 쓸쓸하고 슬픈 정조가 박시환에게 특별한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부족한 디테일들이 묻힐 만큼 그의 떨림 속에는 사람의 마음을 처연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김광진의 ‘편지’는 그래서 온전히 박시환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기나긴 그대 침묵은 이별로 받아두겠오. 행여 이 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 사랑하는 사람이여 더 이상 못 보아도 사실 그대 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오. 이맘만 가져가오.’ 여기서 ‘그대’는 심사위원 혹은 <슈퍼스타K5>를 지칭하고 있는 게 아닐까.

 

너무나 함께 하고 싶지만 늘 떠나는 것(탈락)을 준비하고 있는 박시환은 결국 탈락이 적힌 편지를 받았다. 역시 그는 담담했다. 하지만 곧 이것이 완전한 끝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게 되었다. 이번 <슈퍼스타K5>는 그 어느 때보다 시청자와의 줄다리기가 치열했던 오디션이었다. 그만큼 이 프로그램에 적응된 시청자들에게 반전을 선사하기 위해서, “패자부활전은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고, ‘블랙위크’ 같은 새로운 제도를 신설했으며, 아일랜드 미션에서는 미리 합격과 탈락을 적어놓은 편지를 통해 막판에 운명을 뒤집는 오디션을 수행하기도 했다.

 

너무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나왔고, 그 흐름을 이제는 완전히 꿰뚫어보고 있는 시청자들. 그래서 <슈퍼스타K5>가 선택한 것은 마지막 한 자리를 온전히 시청자의 투표로 남겨놓는 것이었다. 과연 박시환은 이 마지막 관문까지 통과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제2의 허각’이라는 닉네임처럼 그는 이 시대에 잉여로 치부되는 많은 젊은이들의 희망이 될 지도 모르겠다. 어딘지 체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그 얼굴이 다시 꿈을 노래할 수 있다면.

안타까운 <송포유> 논란, 좀 더 섬세한 배려가 있었다면

 

추석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영된 <송포유>는 애초의 기획의도와는 정반대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제목에서부터 풍겨나듯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처럼 ‘일진 미화’ 같은 것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이런 목적을 갖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은 없을 테니까.

 

'송포유(사진출처:SBS)'

오히려 <송포유>는 이런 사회적인 마찰이나 불편한 시선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뤄지는 기적의 ‘하모니’를 보여주고 싶었을 게다. 합창을 소재로 한 여러 프로그램들이 보여줬던 것처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목소리들이 모여 하나의 하모니를 이룰 때 그것은 그 자체로 소통의 의미를 던져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게다.

 

이런 프로그램이 주는 감동을 우리는 <남자의 자격> 하모니 편이나, 영화 <하모니> 그리고 지난 2011년 12월에 <SBS 스페셜>에서 방영되었던 ‘기적의 하모니’를 통해서도 본 적이 있다. 특히 ‘기적의 하모니’에서 김천 소년교도소 소년수형자 합창단의 멘토로 출연했던 이승철은 당시에 그가 느꼈던 소통의 경험이 이번 프로그램 출연의 가장 큰 이유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좋은 의도와는 별개로 <송포유>는 불편한 방송이 되어버렸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그 첫 번째는 <송포유>가 영화 같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미셸 파이퍼가 교사로 출연했던 <위험한 아이들> 같은 영화는 그것이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영화라는 허구적 장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불편함보다는 감동을 안겨준다.

 

하지만 <송포유>는 다르다. 거기 출연하는 아이들이 지금은 달라졌다고 해도 과거 그들에게 피해를 입은 학생들에게는 여전히 고통으로 각인된 실제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주목된다는 것 자체가 피해를 입은 학생들에게는 모순처럼 여겨질 수 있다. 가해를 한 아이들은 방송에 나와 주목받고 심지어 폴란드 합창대회에 나갈 기회가 주어지지만 정작 피해를 입은 학생들은 그걸 바라봐야 하는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송포유>가 서 있는 예능과 다큐 사이의 어정쩡한 지점에서 발생한다. 어찌 보면 심각한 이야기일 수 있는 문제 학생들을 다루면서 <송포유>는 다큐적인 깊이로 들어가기보다는 예능적인 가벼움으로 건드린 면이 있다. 즉 이렇게 문제 학생들이 되어 끝단에 몰려 있는 아이들이 왜 그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부모와 사회의 책임은 없는지, 피해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은 없는지 그래서 그 아이들은 과거를 후회하는지 등등 다차원적인 접근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이 프로그램을 예능으로서 보여주려는 의도가 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예능적인 차원으로만 접근해 아이들의 겉으로 드러난 행동들만을 보여준다면 거기에는 왜 이들이 방송에까지 나와 기회를 얻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거가 잘 드러나지 않게 된다. 결과적으로 <송포유>는 2편까지 마치 조폭처럼 험악한 아이들과 그들이 반항을 하면서도 합창 연습을 하는 장면들만 들어갔을 뿐, 그들의 내면은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

 

이것은 아마도 <송포유>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구성되면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이 그랬듯이 꽤 긴 호흡으로 접근해 아이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필요하다면 피해 학생들의 이야기까지 같이 다뤄졌다면 <송포유>는 진정한 기적의 소통이 가능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 3회 분량으로 다뤄지면서 이런 세세한 이야기들은 그저 훑고 지나가버린 상황이 되었다.

 

다큐와 예능을 퓨전하는 것이 최근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지만 이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때로는 지나친 미화나 경직성으로 비판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퓨전이 가진 위험성이기도 하다. <송포유> 논란은 바로 이 예능과 다큐가 접목되는 최근 트렌드가 어떻게 접근되느냐에 따라 얼마나 민감해질 수 있는가를 드러낸 안타까운 사례가 되었다.

 

물론 방송이 교조적일 필요는 없다. 또 잘못을 저지른 문제 학생들이라고 해서 그저 방치하고 배제하며 때로는 격리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즉 이 문제를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으로 보는 시각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좋은 의도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모든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송이라는 결과다. 문제 학생들뿐만 아니라 피해 학생들까지 고려한 좀 더 섬세한 배려와 사회적인 접근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무도> 추격전을 살린 -300의 위험한 정체

 

지난 주 <무한도전> ‘100 빡빡이의 습격’ 특집의 전반부는 지금껏 무수히 봐왔던 추격전의 또 다른 버전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번 주 후반부에 들어오면서 추격전의 양상은 갑자기 방향을 틀었고 지금껏 보던 추격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연출했던 것이 사실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렇게 된 것은 전반부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300만원 가방’이 후반부에 갑자기 등장하면서 출연진들을 혼동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그저 미션을 성공하면 300만원을 번다는 사실만 알았을 때와 -300만원 가방을 들게 되면 그 미션 우승자에게 돌아가는 300만원을 자신이 내야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제로섬 게임이다. 우승자와 패자가 있어 그 합이 제로가 되는 게임. 즉 누군가 가져가면 누군가는 잃는 게임이라는 점이다. 즉 그저 우승상금을 받는 게임은 노력한 대가의 의미를 주지만 제로섬 게임은 치고받는 생존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종의 도박판 게임이 되는 식이다.

 

제로섬 게임은 <무한도전>의 후반부를 그래서 더 팽팽하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제로섬 게임은 방송 게임으로서는 무리수가 될 수도 있다. 프로그램이 무슨 권리가 있어서 멤버들에게 돈을 낼 것을 강요하는가. 그저 300만원을 벌 수 있는 게임이라면 추석 보너스의 개념이 될 수도 있고 또 늘 <무한도전>이 그래왔듯이 우승자가 기부의 형식으로 훈훈함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300만 원은 다르다. 이것은 프로그램이 멤버들을 게임에 끌어들여 그 누군가는 300만원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게임이 절실해지고 흥미로워질 수는 있겠지만 방송이라면 신중했어야 하는 선택이다. 이번 미션의 결과 노홍철이 300만원을 버는 우승자가 되고 박명수가 -300만 원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그 결과의 장면을 실제적으로 보여주지 않은 것은 <무한도전> 스스로도 그것이 방송용으로는 적합한 장면이 아니었기 때문일 게다.

 

박명수가 개인 돈 300만원을 빼앗기고 노홍철이 그 300만원을 가져가는 장면이 연출되었다고 생각해보라. 그건 방송의 출연자에게는 너무 가혹한 짓이 된다. 물론 과거 멤버들이 사비를 냈던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박명수의 ‘기습공격’이나 ‘정총무가 쏜다’ 같은 콘셉트가 그랬지만 그것은 일종의 기부의 또 다른 형태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100 빡빡이의 습격 특집에는 그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그저 돈 놓고 돈 먹는 도박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제로섬 게임이 주는 의미는 있다. <무한도전>이 늘 그래왔듯이 게임 속에 지금 현실을 투영한 거라면 이 제로섬 게임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네 현실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컸을 게다. 그저 더 많이 돈을 벌겠다고 아둥바둥하지만 사실 그럴수록 이 사회의 시스템은 다른 누군가의 돈을 빼앗고 있는 제로섬 사회라는 것. 제로섬 게임은 이 살벌한 현실을 에둘러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돈을 소재로 한 게임은 방송에서는 신중해야 한다. 자칫 돈 놓고 돈 먹는 게임이 되어버리면 그것은 의도와 달리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 후반부를 살려낸 ‘-300만원’의 정체는 실로 위험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다. 누군가 더 가져가면 누군가는 빼앗겨야 하는 시스템. 그런 살벌한 현실을 그 누가 조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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