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K2', 허각의 사회학

'슈퍼스타K2'가 제작진이 만들고 시청자가 보는 일방향적 프로그램이었다면 이 프로그램을 갖고 사회를 읽어낸다는 것은 자칫 아전인수 격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이른바 문자 투표 방식을 오디션에 도입했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최종 선택에서 허각과 존박이 후보자로 나서고 각자 자신의 매력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유세(?)하며, 그걸 보고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투표함으로써 그 당선자(?)가 가려진다는 점에서 '슈퍼스타K2'는 하나의 투표시스템을 그대로 닮아있다. 그리고 투표란 누가 당선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당선자를 통해 민심을 엿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최종우승자 허각은 어떤 민심을 말해주는 것일까.

모두들 허각이 '슈퍼스타K2'의 최종우승자가 된 것을 하나의 드라마라고 말한다. 맞다. '슈퍼스타K2'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허각이라는 인물에 대중들이 저마다의 판타지를 투영하고 또 그 성공을 바랐기 때문에 그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다. 즉 이것은 현실에서 잘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바라는 판타지의 세계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허각이라는 가난해 학업도 많이 받지 못했고 또 막노동으로 전전했던 한 청년의 현실은, '슈퍼스타K2'라는 프레임 속으로 들어와 그래도 멈추지 않았던 노래에 대한 열정과 실력으로 우승자가 되는 판타지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드라마 속 판타지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그것이 현실에 부재한 결핍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허각이라는 인물은 많은 대중들에게는 현실적인 결핍을 끊임없이 환기시켜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승자가 된 연후에 허각을 다시 돌아보면 그처럼 이 사회의 철저히 소외된 면면들을 대변하는 인물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는 무엇보다 가난했고, 그래서 중졸이 그의 교육의 전부였다. 세 살 때 어머니와 헤어진 후 홀아버지와 쌍둥이형과 살아왔다. 노래 실력은 출중했지만 그를 세워주는 무대는 없었다. 그의 스펙, 즉 학력이나 집안, 심지어 외모까지를 이유로 각박한 현실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슈퍼스타K2'라는 판타지 공간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이 공간은 (물론 이것도 어찌 보면 하나의 이미지겠지만) 현실에는 없는 '실력 중심'으로 기회를 주는 곳이었다. 모든 스펙을 지워버리고 세워지는 공정한 무대라고 말해지지만 허각이 11명의 후보자들 속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그가 실력만으로 최종 우승을 할 거라 믿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것은 본인도 그랬다. 허각은 스스로 "자신은 다른 사람들을 빛내주기 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그래서 최종 11인과 함께 생활하면서 맏형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존박과 이른바 '슈퍼스타 게이'로 불릴 정도로, 그의 인간적인 면모는 경쟁이 아닌 다른 가치를 통해 대중들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었다.

'슈퍼스타K2'는 기본적으로 현실의 경쟁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바탕 그림으로 깔고 그 위에 실력으로 공정하게 뽑혀지는 판타지를 그려 넣는다. 이 기본적인 스토리와, 허각이 갖고 있는 스토리를 엮어보면 정확히 답이 나온다. 허각은 애초부터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었다. 경쟁 자체를 즐기는 듯 보인 강승윤이 떨어지던 날 허각은 경쟁 바깥에 있었고, 처음에는 바닥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하다가 점점 발랄하게 가요계에 적응해가는 장재인이 떨어지던 날 허각은 변함없이 억압된 감정을 분출해내듯 '하늘을 달렸다'. 그리고 어딘지 엄친아적인 세련됨을 뽐내며 여성들의 사랑을 독차지 받던 존 박이 떨어지고 최종우승자가 되던 날, 그는 폭발적인 목소리로 여성들은 물론이고 남성들의 마음까지 얻어갔다.

허각을 통해 비춰진 우리 사회의 모습은 가난하고 학력에 연연하며 그럼에도 경쟁적이어야 하고 또 그렇게 경쟁을 뚫고 진입해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득권층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어두운 우리 현실의 자화상들이 드리워져 있다. 허각은 그렇게 슈퍼스타K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가 슈퍼스타가 된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슈퍼스타K2'라는 판타지 속에서의 슈퍼스타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기존 가요계라는 현실 속에서도 슈퍼스타가 된다면 어쩌면 많은 지지자들에게 작은 희망을 줄 지도 모른다. 지금 그의 어깨에는 현 대중들이 희구하는 꿈이 함께 걸쳐져 있다.

 ‘슈퍼스타K2' 그 전과 그 후

‘슈퍼스타K2'가 보여준 건 희망이었다. 단지 중졸 학력에 환풍기 수리공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노래를 놓지 않았던 허 각이라는 한 청년의 성공담 때문만은 아니다. ‘슈퍼스타K2'는 현 획일화의 길로만 걷고 있는 가요계에도 큰 희망을 주었다.

물론 아이돌 가수들의 활약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치 그들만이 우리네 가요의 전부인 양 비춰지고 조명되는 것은 큰 문제. 5분 내외의 짧은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현 가요 프로그램들의 성격상, 파격적인 비주얼에 가수들이 집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선정성 논란도 바로 여기서 비롯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슈퍼스타K2'의 무대는 비주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진심이 담긴 노래를 통해 충분히 대중들을 열광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이것은 기존 가요 프로그램들에는 없는, '슈퍼스타K2'만의 그 무엇이 대중들의 갈증을 풀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그 갈증은 무엇이었을까.

그 첫 번째는 다양한 음악이다. 현 가요 프로그램들의 음악들은 거의 젊은 아이돌 그룹에 집중되어 있고 그 음악도 트렌드를 따라가기 마련이라 다양성을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슈퍼스타K2'는 비교적 다양한 음악들을 보여주었다. 댄스와 R&B는 물론이고 포크나 록에 이르기까지 이르는 음악의 다채로움이 있었다.

장재인이 보여주는 독특한 창법에 얹어진 포크적인 감성은 심사위원 윤종신이 “떨어진다 해도 비주류 음악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그녀의 공헌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 했다. 강승윤의 시원스런 록 보컬은 ‘본능적으로’라는 윤종신의 노래를 완전히 새롭게 재탄생시켰다. 존 박은 자기 스타일로 ‘취중진담’을 다르게 해석했고, 허 각은 특유의 강렬하고도 매력적인 고음으로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를 노래했다.

이처럼 가수들이 저마다의 창법과 스타일로 해석해서 부르는 노래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노래의 다채로움 그 자체다. 늘 비슷비슷한 스타일들이 유행처럼 반복될 때,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가수 자신의 개성으로 재해석해내는 ‘슈퍼스타K2'의 면면은 참신하다. 트렌드에 가수가 꿰맞춰지는 무대보다, 가수가 가진 개성에 대해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수에 집중하는 형식으로서 가져온 음악과 스토리텔링의 조화는 우리가 기존 가요 프로그램에서 느끼던 두 번째 갈증이다. 무대에서 잠깐 동안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기존 가요 프로그램과는 달리, ‘슈퍼스타K2'는 리얼 버라이어티쇼 형식을 무대와 연동함으로써 노래 밑바탕에 스토리를 깔았다. 똑같은 노래를 해도 강승윤이 어머니를 생각하며, 허각이 여자친구를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에는 확실한 차이가 생긴다. 노래의 기교와 퍼포먼스만이 아니라, 그 노래가 담는 마음까지 들려주기 때문이다.

허각이 최종 우승자가 된 것은 단지 그의 뛰어난 가창력 때문만이 아니다. 냉철하게 스토리적으로 바라보면 허각이 가진 스토리가 존박이 가진 스토리보다 훨씬 더 극적이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이미 20위권에 들었던 존박이 ‘슈퍼스타K2'에서 우승을 하는 장면보다, 생계를 위해 환풍기 수리공을 하면서 무대를 포기하지 않고 노래해왔던 허각이 우승하는 장면을 더 바란다.

현재 대중들은 노래와 가수만이 아니라 거기에 깔려있는 스토리도 원한다.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에서 마치 놀이처럼 만들어지고 불려진 노래가 음원 차트에 올라가는 것은 바로 이런 스토리에 대한 대중의 갈증을 잘 말해준다. 하지만 작금의 가요 프로그램의 무대는 이러한 변화된 대중들의 욕구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순위별로 가수들이 올라와 노래를 부르고 내려가는 오래된 형식의 반복이다.

주로 자정에 편성되는 라이브 무대 형식의 음악 프로그램들은 더 많은 스토리를 전해주지만 편성 자체가 밀려있는 데다가 그것 역시 옛 형식의 재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슈퍼스타K2'는 그런 점에서 대중들의 달라진 무대에 대한 요구를 어느 정도 보여준 사례로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전부 오디션 형식일 필요는 없다. 다양한 가수들의 스토리를 어떻게 하면 좀 더 드라마틱하게 보여줄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면 해답은 나오지 않을까.

‘슈퍼스타K2'는 끝났다. 이제 여기서 주목받은 허각이나 존박, 장재인, 강승윤, 김지수 같은 가수들은 본격적인 가요계 진입을 위해 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설 무대가 없거나(이미 지상파들은 이들의 출연을 허락하지 않는 눈치다), 선다 하더라도 그저 달라지지 않는 기존 무대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스타일과 색깔이 사라지게 된다면 그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언제까지 ‘슈퍼스타K3'만을 기다리며 지낼 것인가.

와이파이 시대, 우리는 진정 소통하고 있나

휴대폰, 인터넷, 와이파이...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누구든 얘기하고픈 사람에게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얘기를 건넬 수 있는 세상이다. 심지어 화상으로 뜬 얼굴을 마주보면서. 하지만 미디어가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촘촘하게 이어주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과연 잘 소통하고 있을까. ‘무한도전’ 텔레파시 특집은 무한연결되어 있는 와이파이 시대에 물음표를 하나 던진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무한도전’ 텔레파시 특집은 지금껏 단체로 미션을 수행해온 것과는 달리, 각각 사방 팔방으로 떼어놓고 미션을 시작한다. 김태호 PD는 1시간 내에 각자 지정된 방향으로 가장 멀리 간 사람을 포상할 것처럼 해 멤버들을 떼어놓은 후, 그들이 ‘무한도전’을 그동안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로 모일 것을 진짜 미션으로 내놓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실제 ‘무한도전’의 많은 미션에서 도구로도 활용되었던 휴대폰을 모두 반납시켰다는 점이다.

‘텔레파시’라는 아이템에는 ‘무한도전’이 교육실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붙여진 과장이 있다. 각자 공간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장소로 오라고 다른 멤버들에게 마치 진짜 텔레파시를 보내듯 과장하는 모습은 예능으로서의 웃음을 주기 위한 과장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간 ‘무한도전’이 해왔던 미션들에 대한 추억과 향수또한 담겨져 있다. 그 아련한 기억을 좇고 그 기억 속을 함께 했던 멤버들에 대한 소중함을 담아내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이었다면 ‘무한도전’ 텔레파시 특집은 프로그램 전체를 감싸는 아련한 느낌까지 연출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텔레파시’라는 과장 이면에 담겨진 ‘소통’이라는 메시지는, ‘소통’되지 않는 현대인의 외로움을 담아내면서 의미를 확장시킨다. 여기에 ‘무한도전’ 텔레파시 특집이 보여준 역설이 있다. 휴대폰 같은 보다 손쉬운 통신기기를 단절시켜놓자 더 절절해지는 진짜 소통의 욕구.

만일 각자 떼어놓고 휴대폰을 지참하게 한 채로 만나고 싶은 곳에서 만나라고 했다면 이들은 상대방에 대한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저 전화 통화하고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한 뒤 만나면 끝났을 테니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과 마음이 전하는 소통은 찾기가 어려워진다.

멤버들이 허공을 향해 과장된 몸짓으로 텔레파시를 보내는 그 모습이 처음에는 우습다가 차츰 어떤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똑같이 생각한 장소에서 간절히 원했던 멤버가 서로 만났을 때 어떤 작은 울림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프로그램 중간에 자막으로 등장한 왓비컴즈를 비판한 패러디 노진요(노홍철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는 그래서 그 의미가 더 깊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속도나 전달력은 엄청나게 빨라지고 손쉬워졌지만 그것이 거기에 맞는 소통에 이르게 하지는 못한다는 ‘무한도전’ 특유의 풍자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슈퍼스타K', 심사위원들의 프로그램 기여도는 몇 점?

"심사는 심사일 뿐, 심사하지 말자." '슈퍼스타K2'의 심사위원 윤종신은 이렇게 말했다. 심사에 대해 쏟아지는 많은 논란들을 유머 섞인 말로 일축한 것. 하지만 '슈퍼스타K2'는 기본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심사위원의 말 한 마디가 가진 힘은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그 말에 대한 논란 역시 나오기 마련이다.

심사위원인 이승철, 엄정화, 윤종신은 심사 스타일이 각각 다르다. 이승철은 가창력에 중점을 맞추고 엄정화는 무대 스타일을 주로 본다. 윤종신은 프로듀서적인 관점에서 경쟁자의 상품으로서의 가능성에 더 초점을 맞춘다. 이승철이 초반부 심사에서 지나친 독설이 아니냐며 논란에 오른 것은 그가 맡은 영역이 가수로서의 기초에 해당하는 가창력에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의 독설에는 확실한 이유가 존재한다. 그는 아주 구체적인 부분을 지목해가며 비판을 가한다.

하지만 이승철은 '슈퍼스타K2'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의 역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즉 심사는 수많은 경쟁자들에서 옥석을 골라내는 역할에 충실해야 하면서도 동시에 그렇게 경쟁을 뚫고 올라온 가수들에게 어떤 권위를 만들어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 따라서 초반부 독설에 가까운 심사를 하던 이승철은 차츰 올라온 가수들에게 찬사를 던짐으로써 확실하게 그들을 띄워준다. 독설가로서의 이승철의 이미지는 이 부분에서 상당히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비호감은 호감으로 반전된다. 이것이 이승철이 '슈퍼스타K2'의 가장 주목받는 심사위원인 이유다.

반면 엄정화의 심사가 논란에 선 것은 그녀가 맡은 분야가 어찌 보면 노래 외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무대 스타일이나 퍼포먼스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경쟁자들이 부른 노래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보기 좋았다"를 연발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는 함량 미달의 비전문가로 비춰졌을 것이다.

이런 비판을 넘어서기 위해 엄정화는 심사에 있어서 좀 더 디테일한 부분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미진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냥 "보기 좋았다"는 표현만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이고, 또 무엇보다 무대에서 긴장될 수 있는 경쟁자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던져주는 존재로 자신을 세웠다. 사실 이것은 심사위원으로서의 역할은 아니다. 하지만 '슈퍼스타K2'를 하나의 오디션 쇼로 생각한다면 무대에 오르는 이들을 절절히 호응해주고 공감해주는 역할로서 엄정화는 꼭 필요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예외적으로 윤종신은 심사에 대한 논란이 그다지 없다. 그렇다고 할 얘기를 안 하는 것은 아닌데도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자신의 심사에 있어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때론 유머를 섞고 떨어진 후보들에게는 격려의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심사위원으로서 해야 하는 말과 선배 가수로서 해야 하는 말을 늘 구분한다. 강승윤이 떨어졌을 때 "떨어졌으니까 하는 얘긴데, 너 오늘 최고였다"고 말하는 식이다.

물론 심사위원을 심사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슈퍼스타K2'라는 프로그램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중심으로 보면 이것은 꽤 의미 있는 일이다. '슈퍼스타K2'는 슈퍼스타K가 되려는 경쟁자들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심사위원들도 동시에 성장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들은 프로그램에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해내느냐에 따라 개인적인 주가도 올릴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승철은 100점 만 점에 95점 이상을 줄 수 있는 심사위원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이 주는 재미의 뼈대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프로그램 초반부의 걸러내는 재미와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커지는 북돋워주는 재미다. 엄정화는 심사위원으로서는 90점 이하대지만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흐르지 않게 균형을 잡아준다는 점에서는 90점 정도를 줄 수 있는 심사위원이다. 한편 윤종신은 이승철이 만든 뼈대 위에서 확실히 재미의 살을 붙여준다는 측면에서 90점 이상의 심사위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점수란 임의적인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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