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의 KBS 연예대상 수상, 그 남다른 의미

사실 이변은 없었다. 이경규의 수상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올해 KBS 예능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이 뽑은 것처럼 '해피선데이'였고, 그 중에서도 '남자의 자격'이 단연 돋보였다. 그 '남자의 자격'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경규의 수상은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막상 이경규가 2010년도에 연예대상을 수상한 사실을 새삼 생각해보면, 그 결과는 놀랍기까지 한 것이 사실이다. 오십 줄의 나이에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고, 그것도 주변이 아닌 중심에서 새로운 예능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경규라는 존재가 새롭게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경규가 처음 코미디를 시작할 때와 지금의 예능은 체질 자체가 바뀌었다. 당시에 코미디란 연기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지금은 리얼 예능이 대세다. '일밤'을 통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그로서도 이러한 변화는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경규 역시 리얼 예능에 적응하려 애썼지만 '라인업' 등의 실패를 맞보면서 그 어려움을 실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실패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탓이 컸다. '예능의 달인'에게 전통적인 코미디든, 토크쇼든, 리얼 예능이든 통하지 않을 게 뭐가 있을까. 당시 많은 이들이 '위기'를 운운했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위기'라는 말을 실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저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그는 담담히 받아들이곤 했다.

'남자의 자격'이라는 리얼 예능은 그런 이경규에게는 잘 맞는 옷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아예 내놓고 아저씨들을 내세워 매번 미션을 수행하게 했다. 이 중년이라는 안정적이고 실제적인 컨셉트 위에서 이경규는 비로소 진가를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무리하지 않고 자신으로 돌아가 마치 숨 쉬듯 편안하게 예능을 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그 진정성으로 전해졌다. 이경규는 결국 코미디라는 옛 껍질을 깨고 리얼 예능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경규는 수상소감에서 농담을 섞어 "상을 받는 데는 운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 운이라는 것은 노력하는 자에게만 오는 것이다. 올해는 문화 전반에 중년남성들이 전면에 나왔던 한 해였다. 물론 '남자의 자격'이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아저씨들에 대한 새로운 가치부여가 화두가 되었던 것. 이경규의 수상소감대로 운은 작용했다. 하지만 그 운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이경규의 나이를 뛰어넘는 끊임없는 도전정신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경규의 부활이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은 그의 개인적인 성과를 뛰어넘는 이러한 중년들에게 전해질 어떤 희망과 그들에게 다가올 문화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경규가 예능에서 겪어온 변화를 우리네 아저씨들도 지금 겪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아저씨들은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늘 뒷방 취급을 당하곤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저씨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겨나는 그 중심부에 이경규라는 아저씨의 부활이 마치 상징처럼 자리하게 되었다. '남자의 자격'은 어찌 보면 아저씨라도 당당히 즐길 자격을 찾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이경규의 부활이 이 땅의 아저씨들에게도 새로운 삶의 희망이 되기를.

'청춘불패', 그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작년 겨울, 조용하던 유치리에 청춘의 빛이 깃들었다. 무대 위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아이돌 걸 그룹 소녀들의 강림(?). 하지만 그녀들의 희디흰 손에는 거친 호미와 삽이 들려졌다. 그들은 기꺼이 몸빼바지로 갈아입고 모든 게 도전일 수밖에 없는 시골생활에 뛰어들었다. 그저 시골마을에서 벌이는 한바탕 예능 만들기가 아니라, 그 시골에 실제로 정착해가는 모습을 담았다는 것이 '청춘불패'의 진짜 가치였다.

조금 덜 웃겨도 그녀들의 진지한 자세와 열심히 놀리던 손과 발은 시청자들에게 진심의 예능으로 다가왔다. 유치리 어르신들에게 그녀들은 손녀딸처럼 진심을 다했고, 그 땅에서 진심어린 땀을 흘렸으며, 주민으로서 마을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추억의 사진들을 채워가며 추운 겨울을 보내고 나자 유치리에는 청춘의 봄이 찾아왔다. 그녀들의 진심은 프로그램 바깥으로 튀어나와 유치리라는 동네를 변화시켰다.

청춘의 풋풋함과 진심어린 마음이 있었기에, 그녀들은 또한 기꺼이 웃어주고픈 캐릭터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성인돌 나르샤는 농익은(?) 몸 개그를, 구하라는 빵빵 터지는 유치개그를 선보였고, 써니는 코맹맹이 주부애(주먹을 부르는 애교)로, 백지 선화는 백지 같은 순수함으로 우리를 미소 짓게 했다. 징징 현아는 막내 티 팍팍 내며 징징댔고, 효민은 '병풍 개그'의 달인이 되었으며, 유리는 섹시함과 청순함을 오가며 우리를 즐겁게 했다. 이 프로그램이 예능임을 일깨우는 김신영이 쉴 새 없이 재잘대면, 어딘지 믿음이 가는 곰태우(김태우)가 그 개그를 잘도 받아주었다. 나이를 잊은 듯 춤추고 애교까지 선보이는 노촌장(노주현)은 또 어떻고.

하지만 '청춘불패'의 진정한 웃음과 가치는 G7들만의 공이 아니었다. 그들이 관계한 유치리 주민들 역시 '청춘불패'의 당당한 주역이었다. 로드 리나 왕구 아저씨를 비롯한 수많은 유치리 주민들은 그 특유의 순박함과 인심으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바로 이 점은 '청춘불패'가 유치리와 맺어온 소통이 진짜였고, 시청자들은 바로 이 도시인을 대변하는 G7과 시골 사람들을 대변하는 유치리 주민들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차츰 동화되는 과정을 진정으로 바라고 흐뭇해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청춘불패'는 아이돌들이 점점 인기를 얻게 되면서 안타깝게도 1기 멤버들이 끝까지 함께 갈 수 없게 되었다. 걸 그룹들이 일제히 제2의 한류를 이끌며 해외진출에 나서게 된 상황은 물론 기쁜 일이지만, '청춘불패'로서는 위기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유리와 써니, 그리고 현아가 빠지고 대신 빅토리아와 주연 그리고 김소리가 그 빈 자리를 메웠다. 하지만 리얼 예능의 특성상 아무리 새로운 멤버들이 노력한다고 해도 그 빈 자리는 쉽게 메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 전문 예능인들이 아닌 아이돌로 구성되어 있어, 그 활동에 따라 프로그램이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된다는 점은 '청춘불패'의 한계점이었다. 김호상 PD는 이 점을 피력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이 1기 멤버가 끝까지 가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또한 김호상 PD는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으로 (어찌 보면 '청춘불패'를 힘들게 한) "출연진들의 성장"을 들었다. 즉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출연진들의 성장이 누구보다 기쁘다는 김호상 PD의 말은 '청춘불패'의 종영에 대한 그의 입장을 잘 말해준다. 좀 더 보완된 형태로 시즌2를 기대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청춘불패'는 지난 겨울에 유치리에 들어와 봄에 꽃이 피었고 여름에 활짝 만개했다가 가을에 수확하고 다시 맞은 겨울에 종영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계절의 흐름을 그대로 탔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종영한다고 해서 '청춘불패'에 대한 추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매 회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맥 플라이의 'All about you'가 흘러나오며 그 지나간 시간이 몇 장의 스틸 컷 속에 영원히 담겨지듯이, '청춘불패'의 추억은 늘 우리 기억 속으로 환기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 좋은 바람이 불고 햇살이 내리는 날 다시 피어날 것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기억이 남아있는 한, 청춘은 결코 지지 않는 것처럼.

리얼 예능이 재미를 추구할 때 조심해야 할 것들

아마도 낮은 시청률로 인한 조급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뜨거운 형제들-효자 되다'편은 리얼 예능이 하지 말아야 할 최악의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시골 집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찾아 일일 아들 노릇을 하고 헤어질 때 "또 와"라는 말을 듣는 것을 미션으로 한 이번 편에서 시골 어르신들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물론 순박하신 그분들은 애써 웃음을 짓고 애써 좋다고 말씀하셨지만, 기광과 쌈디가 반말을 툭툭 내뱉는 장면들이나, 정성껏 차려주신 밥상에 반찬이 김치뿐이라며 계속해서 투정하는 장면들은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럼 막내는 버려도 되는겨?" 김장을 더 담그라는 말에 기광이 이렇게 말을 놓은 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반말은 진짜 아들이라면 응당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무례가 아니라 오히려 친근함의 표현일 테니까. 하지만 이 짧은 프로그램 속에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연출된 장면 속에 진짜 아들인 양 반말을 해대는 것은 그저 무례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첫 만남에서 반말까지 가려면 그만한 시간과 과정이 필요한 셈이다. 하지만 편집된 것인지 아니면 아예 대놓고 친근한 척 뻔뻔하게 연기를 하려 한 것인지 그런 장면은 생략되었다.

게다가 뜬금없이 쌈디가 할아버지께 "어머니 밤에 심하게 괴롭히신다면서요?"하고 자꾸 묻는 장면은 그 자체로도 무례한데다가, 주말 저녁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대단히 부적절한 멘트가 아닐 수 없다. 만일 이런 말이 우연히 튀어나왔다고 해도 연출에서는 분명 편집했어야할 부분이다. 하지만 '뜨거운 형제들'은 편집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런 것들을 재미 포인트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박명수가 일일 엄마가 된 할머니에게 이런 저런 요리가 먹고 싶다고 요구하고, 할아버지에게는 그리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염색을 권하는 것도 예의라고 보기는 어렵다. 염색이 실패해 머리가 퍼렇게 된 결과에도 애써 웃으시고, 시간은 두 시간이나 있었는데 반찬이 왜 김치 밖에 없냐고 타박하는 박명수에게도 그저 웃어 주시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는 건 불쾌한 일이다. 물론 재미를 위해 박명수는 특유의 상황극을 한 것이지만, 그 상황극이 적절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렇게 된 것은 출연자들의 문제라기보다는 연출자의 문제가 더 크다. 연출자가 상황극과 리얼 예능을 혼동한 것이다. 지금껏 '뜨거운 형제들'은 아바타 소개팅 같은 상황극으로 큰 웃음을 주었다. 하지만 '되면 한다'라는 코너로 새롭게 재정비되면서 프로그램은 상황극이 아닌 리얼 예능이 되었다. 특정 현실 속에서 일일 교사, 일일 아들, 일일 엄마가 되는 것은 리얼 예능이지 상황극이 아니고 상황극이 되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투입되는 곳은 가상이 아니라 진짜 현실이기 때문이다.

상황극을 연출해 재미를 뽑아내려 한다면 자칫 현실에 사는 분들이 소외되거나 왜곡될 위험이 있다. 우리가 흔히 리얼 예능에서 '민폐'라고 부르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는 건 바로 이것 때문이다. 상황극은 재미만 만들면 되지만 리얼 예능은 그 현실 상황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다. 그렇지 않다면 재미도 만들어질 수 없다. 도대체 시골 어르신들을 세워두고 "또 와"라는 말을 듣기 위해(목적 자체가 순수한 것이 아니다) 마치 게임처럼 상황극을 연출하는 장면에 누가 진짜 즐거운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뜨거운 형제들'이 새롭게 가져온 컨셉트인 '되면 한다'는 그래서 위험한 뉘앙스를 갖고 있다. '하면 된다'처럼 무언가 능동적으로 노력하는 태도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부여된 상황 속에서 어떤 인물이 '되면' 그걸 '한다'는 수동적인 태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골학교의 일일 교사가 되면 그걸 하는 것이고, 시골마을 어르신들의 일일 아들이 되면 그걸 하는 것이다. 바로 그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를 통해서 웃음을 끌어내려는 목적이지만, 여기에는 리얼 예능이 갖추어야 하는 상황 자체에 대한 진정성이 빠져있다. 그들은 진정으로 되려하지 않는다. 그저 미션으로 부여되는 '어떤 말'을 듣는 것이 목적이 된다.

이 미션이 환기시키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오지에 사시는 시골 어르신들을 찾아가 하룻밤을 지냈던 '1박2일'이다. 같은 아이템이지만 왜 느낌은 이렇게 다를까. 화면으로 드러나는 작은 진정성의 차이는 이렇게 다른 느낌을 만들어낸다. '뜨거운 형제들'이 싫든 좋든 리얼 예능을 선택했다면, 그 리얼한 상황에 대해 진심으로 다가가야 한다. '되면 한다'라는 슬로건을 붙였지만 진짜로 되려고 해야 한다. 그러려면 웃음보다 재미보다 더 필요한 것이 배려다. 현실 속 인물들이 어떻게 느낄 것인가에 대한 공감의식이 없다면, 프로그램 멤버들과 실제 현실 속의 인물들은 겉돌게 되고 나아가 프로그램은 자의든 타의든 현실을 이용하게 된다. 이것은 물론 출연진들도 숙고해야 하는 문제지만, 그보다 더 제작진들이 깊이 생각해야 될 문제다.

'무한도전'이니까 가능했던 미션들

"역시 '무한도전'이야."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이 말 한 마디면 충분하다. 그만큼 '무한도전'은 하나의 대중문화 아이콘이 되어 있다. '나비효과 특집'이 그렇다. 사실 지구온난화가 어떤 방식으로 지구를 위협하는지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다르다. '나비효과 특집'은 어떻게 에어컨을 틀면 그것이 북극의 얼음을 녹이고 그 녹은 물이 몰디브를 잠기게 하는가를 예능의 눈으로 확인하게 해주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시시콜콜하고 상식적인 것들도(사실은 매우 중대한 사안들조차 말로만 전달되었을 때는 이렇게 치부되어버린다) '무한도전'이라는 실험실 속에 들어가면 특별해지는 이유다. 말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행동하는 이는 적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많아도 그걸 몸소 체험을 통해 느끼는 이는 드물다. "역시 '무한도전'이야"하는 말에는 '무한도전'이니까 가능한 이 경험들이 들어있다. 2010년 '무한도전' 역시 그랬다.

연초에 방영되었던 '복싱특집'은 WBC세계 챔피언 최현미 선수와 일본의 도전자 쓰바사 선수와의 패자 없는 아름다운 승부를 담아냈다. 흔히 한일전이라고 하면 그저 무조건 이기고 본다는 식의 시각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자가 최고'라는 '무한도전' 정신을 두 아름다운 소녀들의 드라마틱한 경기를 통해 보여주었다.

'죄와 길' 특집에서 벌칙으로 수행되었던 '알래스카에서 김상덕씨 찾기'는 '깨알 같은' 아이템들에 왜 '무한도전'이 과감히 뛰어드는 지를 말해준 미션이었다. 누군가 툭 던진 말 한 마디가 실제로 미션으로 제시되고 그 결과가 보여지는 곳, 그곳이 바로 '무한도전'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무한도전'이라는 세계는 우리가 상상만 하던 것이 실제로 눈앞에 도전으로 제시되는 그런 세계라는 걸 각인시켰다.

몇 년을 거쳐 오면서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겨졌을 미션들의 내용을 찬찬히 상기해보면 실제와 맞닿아있는 '무한도전'의 놀라운 결과물들을 만날 수 있다. 다이어트를 하면 실제로 몰라볼 정도로 살을 빼고, 달력 모델을 미션으로 부여받아 만들어낸 달력이 한 달만에 80만부 이상 팔려나가며, 대한민국을 알리는 비빔밥 광고가 만들어져 뉴욕 스퀘어 가든 전광판에 광고되는 세계. 그것이 '무한도전'이다.

장기 프로젝트로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던 '프로레슬링 특집'은 한 때 쇼라고 여겨지며 몰락의 길을 걸어간 프로레슬링의 세계를 '무한도전' 특유의 몸의 미학으로 재조명해주었다. 그저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몸을 던지고 부딪치는 기술들을 보여줌으로써 프로레슬링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맛보게 해주었다. 이것은 또한 쇼가 아닌 진짜 실제 상황으로 뛰어 들어가는 (프로레슬링을 그대로 빼닮은) '무한도전'이 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지를 알게 해준 미션이었다.

한편 '텔레파시' 특집은 어떤 공통의 기억을 통해 이루어지는 공감의 힘을 느끼게 해줌으로써 소통이 왜 중요한가를 느끼게 해주었다. 늘 손에 들려진 휴대폰으로 원하는 이와 즉각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시대에 소통이란 이미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잊기 마련이다. '무한도전'은 통신수단이 거세된 멤버들이 서로를 만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을 통해 그 소중함을 다시 일깨웠다. 역시 '무한도전'이기에 가능한 미션이었다.

'무한도전'의 이 많은 미션들은 공통적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고리의 공감을 통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에둘러 말해주고 있다. 1년이 지났고, '무한도전'은 또 한 살을 먹었지만 이런 공감과 공존의 태도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우리는 연결된 존재이기에 '무한도전'의 이런 시도들은 사회 전체로 퍼져나갈 것이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한 해 동안 고마웠고 또 한 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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