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왕’, 김지원은 ‘행복한 왕자’ 같은 변화를 보여줄까

눈물의 여왕

“내가 어렸을 때 <행복한 왕자> 보고 느낀 건 딱 하나였어. ‘하여튼,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아니, 왕자 입장에서도 이런 데 살 때가 좋았겠지. 괜히 밖에 나갔다가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어? 보석이며 눈알이며 다 남 퍼주고 에휴, 쯧쯧쯧.”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해인(김지원)은 오스카 와일드가 쓴 동화 <행복한 왕자>에 대해 현우(김수현)에게 그렇게 말한다. 

 

3년 전 너무나 사이가 좋았던 두 사람이 독일 포츠담 상수시 궁전을 찾았을 때의 모습이다. 그 궁전이 바로 그 행복한 왕자가 살던 곳이었다는 현우의 이야기에 해인이 보인 반응이었다. 알다시피 <행복한 왕자>라는 동화는 생전 부유하게 살 때는 몰랐지만 마을 광장 높은 탑 위에 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채 서있는 동상이 되어서야 비로소 세상의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이 많다는 걸 알고는 눈물을 흘리던 왕자의 이야기다. 그 가난한 이들을 위해 제비에게 사파이어로 된 제 눈까지 떼서 나누어주는 이야기. 

 

<눈물의 여왕>이 갑자기 에필로그를 빌어 꺼내놓은 동화 <행복한 왕자> 이야기는, 해인이 현재 마주한 상황과 그로 인해 그가 겪을 변화를 예감하게 만든다. 퀸즈백화점 사장으로 도도하게 세상 위에 군림하며 살아왔던 해인은 갑작스런 희귀병으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 변화를 겪는다. 먼저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걸맞게 남편 현우에 대한 감정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부정맥도 아닌데 남편 보고 심장이 떨리고, 어떤 날엔 남편 눈망울을 보면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가도 어떤 날엔 남편의 넓은 가슴에 안기고 싶어진단다. 

 

물론 이 도도한 여왕이 그런 자신의 감정을 애써 부인하려하고 비서에게 마치 남이야기처럼 하는 장면은 어딘가 설레면서도 빵빵 터지는 코미디로 그려진다. 너무 섹시해보여서 세상에 내놔도 괜찮을까 싶어진다며 마치 남 이야기하듯 하는 해인의 이야기가 설레면서도, “진짜 꼭 병원 가 보라 그러세요. 아픈 거야 그건.”이라는 나비서(윤보미)의 자못 진지한 리액션은 여지없이 그 설렘을 깨고 들어와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하지만 이 코미디는 어딘가 진짜 해인에게서 벌어지는 심경의 변화에 대한 예고다. 주치의를 찾은 해인은 자신이 이상하다며 그 증상을 이렇게 말한다. “불쌍한 걸 보면 동정심이 생겨요.” 스스로 “피가 차가운 여자”였다며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는 해인은 자꾸만 “공감이 된다”는 ‘증상(?)’을 이야기한다. 사무실에 든 잡상인 남자에 화를 내다가 그의 아기가 인큐베이터에 있다는 이야기에 짐짓 나비서에게 화를 내는 척 그 아기가 인큐베이터에 있을 때까지만 봐줄 거라며 그 남자를 도와준다. 

 

아픈 엄마가 수술을 해야 하는데 시집 갈 때 쓸 돈이라며 수술을 하지 않으려 한다며 우는 직원의 이야기를 화장실에서 몰래 듣고는 “아픈 거야 고치면 되지 왜 울고 난리”라고 툴툴 대면서도 그 이야기에 공감되어 눈물을 보인다. “제가 원래 안 그랬거든요. 누가 아프거나 말거나 울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도 없었는데 왜 자꾸 공감이 돼죠? 남편 보고 설레질 않나? 아무래도 제 뇌가 정상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거든요?” 주치의에게 해인이 털어놓는 이 말은 그에게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를 잘 보여준다. 

 

게다가 해인은 이제 “안하던 짓”을 해보겠다고 공언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겠다고 남들 다 하는 거 안하고 살았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 억울하단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거 이제 하면서 살겠단다. 그건 과연 ‘행복한 왕자’의 삶을 살겠다는 것일까. 경제성이니 효율이니 하면서 1조클럽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싶은 것들도 안하고 감정 또한 드러내지 않으며 ‘피가 차가운 여자’로 살아왔던 것 대신,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단다. 

 

<눈물의 여왕>은 이제 이 드라마의 제목이 어떤 의미인지 꺼내놓고 있다. 그 눈물은 아마도 저 ‘행복한 왕자’가 비로소 동상이 되어 마을을 들여다보고는 알게 됐던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을 향해 흘리는 것일 테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고, 눈물 따위는 결코 흘릴 것 같지 않았던 해인의 눈물은 그래서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해인의 이런 변화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윤은성(박성훈)이 돈이면 누군가의 은인이자 가족이나 다름 없는 반려견을 죽여도 상관없다 생각하는 감정 없고 공감도 못하는 사이코 패스라는 점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분명하게 해준다. 약자들을 향해 눈물을 흘리고 가진 것들을 다 내어주면서 드디어 진짜 행복을 찾아가는 해인과, 더 많은 걸 갖기 위해 감정 없는 사이코 패스처럼 살아가는 윤은성으로 대변되는 자본화된 비정한 세상에 대한 대결구도가 그것이다. 

 

해인은 사랑에 대해 윤은성에게 이렇게 말한다. “행복한 걸 함께하면서 달콤한 말을 해주는 게 아니라 싫어서 죽을 것 같은 걸 함께 견뎌주는 거야. 어디에 도망가지 않고 옆에 있는 거.” 달콤함이 아니라 쓴 걸 함께 견뎌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그걸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일 수 있다고 해인은 말하고 있다. 그는 불치병에 걸렸고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았지만 그래서 어떤 의미로 보면 그건 병이 아니라 어쩌면 고쳐지는 중인 거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눈물의 여왕>은 그래서 이 해인이라는 인물의 감정 변화를 기분좋게 꺼내놓는 과정이 작품의 메시지나 다름 없는 관건인 드라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역할을 맡은 김지원이라는 배우의 연기는 대체불가라는 생각이 든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만 같은 도도한 모습에서 마치 그 얼음이 녹아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그 변화를 이토록 설득력 있게 연기해내고 있으니. 그가 앞으로 할 ‘안하던 짓’을 계속 기대하게 만들 정도로. (사진:tvN)

‘눈물의 여왕’, 김수현의 시월드와 신데렐라 뒤집기는 왜 빵빵 터질까

눈물의 여왕

“나 그 때 왜 그랬지? 왜 귀여웠지? 왜 막 귀엽고 필살기 쓰고 홍애인 설레게 만들고 그래 가지고 내 팔자를 내가... 꼬았지? 안 귀여웠으면 이런 결혼도 안 했을텐데, 내가.” 술에 취한 백현우(김수현)는 울면서 절친 김양기(문태유)에게 신세한탄을 한다. 그런데 그건 자기 자랑인지 신세한탄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이다. 이 웃픈 상황이 웃음을 만든다. 백현우 본인은 진심으로 펑펑 울며 속내를 토로하고 있지만 보는 이들에게 그 장면은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든다.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은 박지은 작가 특유의 코미디로 문을 열었다. 그 코미디는 고정관념을 뒤집는 아이러니로 펼쳐진다. 그많은 신데렐라 스토리들이 그려내곤 했듯이, 흔히들 재벌가와 결혼했다고 하면 인생 역전의 판타지를 떠올릴 테지만, 퀸즈그룹 재벌가의 딸이자 퀸즈백화점 사장인 홍해인(김지원)과 결혼한 백현우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 때 왜 자신이 귀여워 홍애인을 설레게 만들어 스스로 팔자를 꼬았는지 한탄을 하고 있으니.

 

<눈물의 여왕>은 재벌가 신데렐라 스토리를 남녀를 뒤집어 놓은 이른바 ‘남데렐라’ 버전으로 꺼내놓은 후, 그렇게 막상 신데렐라가 되어 재벌가의 사위가 됐지만, 판타지와는 전혀 다른 마치 현실 버전의 처월드(시월드의 처가버전)가 열리게 됐다는 기막힌 블랙코미디로 또 한 번 뒤집는다. 이 재벌가 처월드에 빠져버린 남데렐라가 눈물을 흘리며 결혼을 후회하고 이혼까지 결심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그래서 그간 우리가 봐왔던 시월드와 신데렐라 이야기를 모두 뒤틀어놓은 지점에서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든다. 

 

“나만 보면 돼.” 재벌가 입성이 결코 만만치 않을 거라 여긴 백현우에게 홍해인이 하는 이 말은 그 숱한 왕자님들이 신데렐라들을 재벌가에 들일 때 했던 현실성 없는 이야기들이고, 저녁 9시마다 모여 ‘종례’하듯 대화를 나누고 크리스마스니 생일이니 제사니 하는 걸 함께 가족이 하다보니 ‘내 시간’이 사라진 백현우의 처지 역시 숱은 시월드에 입성했던 며느리들이 겪던 일들이다. 

 

백현우가 일년에 15번이나 차린다는 제사는 어떤가. 옛날 진짜 양반가에서는 남자들이 다 제사준비를 했다며 저마다 빵빵한 전문 이력을 가진 사위들이 제사상을 모두 준비하는 풍경이라니! 그러면서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홍애인의 동생 홍수철(곽동연) 같은 인물은 시월드에 시어머니도 보다 더 얄미운 ‘시누이’의 처가 버전처럼 그려진다. 이건 마치 시집살이에 손과 눈에 물 마를 날 없는 며느리의 재벌가 처가 버전 미러링 같다. 그래서 백현우의 신세한탄과 눈물이 주는 빵빵 터지는 웃음 속에서는 블랙코미디적인 통쾌함이 묻어난다. 

 

이 블랙코미디에는 박지은 작가 특유의 디테일들이 채워져 있다. 제사상 차림에 하버드에서 케미컬 전공한 사위가 그 전공으로 전이 제대로 익혀졌나를 파악한 후 “뒤집어!”를 외치는 장면이나,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나온 또 다른 사위가 플레이팅을 하는 제삿날 장관(?)을 보며 “재능 낭비”라는 백현우의 툴툴대는 모습이 그렇고, 우울증으로 정신과를 찾은 백현우의 처가살이 신세한탄을 다 듣고 난 후 의사가 도리어 상담이라도 받은 듯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해”라고 고백하는 장명도 그렇다. 평범한 삶이 오히려 재벌가 사위의 삶보다 낫다는 반전과 더불어, 환자가 오히려 의사의 마음을 다독이게 만드는 아이러니까지 그 코미디에는 담겨 있다.

 

재벌가 딸과 결혼한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 그 자체로는 그리 새로울 것 없는 구도지만 성역할을 뒤집고 신데렐라 판타지를 혹독한 처월드 현실로 뒤집어 놓는 것으로 <눈물의 여왕>은 새로운 웃음과 색다른 기대감을 만들었다. 과연 이 처월드로부터 탈피하려는 백현우는 그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되찾고 사랑 또한 다시 확인할 수 있을까. 펑펑 울면서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한 김수현의 열연과 더불어, 이 인물이 그려나갈 색다른 관계의 판타지와 웃음에 시청자들의 마음도 빠져들기 시작했다.(사진:tvN)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김남주는 끝내 구원받을 수 있을까

원더풀 월드

“저는 제 목숨보다 더 소중한 한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그 아이를 잃었어요. 별을 유난히 좋아했던 그 아이는 이제 저에게 별이 됐습니다. 매일 같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애쓰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아픕니다.” MBC 금토드라마 <원더풀 월드>에서 은수현(김남주)은 남편 강수호(김강우)와 함께 방송에 나와 아픈 심경을 어렵게 꺼내놓는다. 

 

집밖으로 나간 아이가 뺑소니 교통사고로 사망했지만, 구할 수 있었던 아이를 방치한 채 도주했던 가해자가 법의 처벌을 받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자 결국 사적 복수를 하고 감옥에까지 갔다 오게된 은수현이다. 하지만 차로 치어 가해자인 권지웅(오만석)을 살해했지만 그것으로 은수현의 가슴 깊숙이 남은 상처는 치유되었을까. 아니다. 아이는 이미 사망했고 돌아올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늘 은수현의 눈에 어른거린다. 그의 말대로 그의 시간은 여전히 자식을 잃은 그 시간에 머물러 있다. 

 

루이 암스토롱이 불렀던 ‘What a wonderful world’에서 따온 제목 <원더풀 월드>는 반어적인 의미다. 은수현이 마주한 세상은 결코 원더풀 하지 않다. 아이가 뺑소니를 당했지만 권지웅과 관계된 김준(박혁권) 같은 정치인의 사주로 법정은 가해자 편을 들어준다. 오히려 아이가 사망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 은수현의 책임이 있다는 걸 부각시킨다. 현관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가해자측 변호사의 주장은 비수처럼 은수현의 가슴에 박힌다. 자신 때문에 아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까지 심어버린 것이다. 

 

6년이 지나 출소한 은수현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 일상은 과거 아이와 행복했던 기억들이 오히려 아픈 상처로 남은 공간이 됐다. 그는 자신의 고통이 남편마저 힘겹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그를 밀어내려 한다. 하지만 강수호는 끝내 은수현의 손을 놓지 않는다. 함께 부부로서 어려운 시간들을 버텨내기로 한 것.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어둠의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누군가 이들 부부에 대한 복수를 꿈꾸고 있는데 그건 아마도 은수현에 의해 보복 살해된 권지웅의 아들 권민혁(임지섭)일 것으로 보인다. 

 

은수현의 사적 복수는 피해자였던 그를 가해자로 만들었다. 그러니 그에 의해 가족이 파탄나버린 권민혁은 또다른 피해자가 된다. 이같은 가해와 피해의 반복은 이 정의의 문제가 결코 사적 복수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말해준다. 이 문제는 어쩌면 김준에 대한 복수심을 갖고 있는 강수호에게도 딜레마를 불러일으킬 지도 모른다. 은수현이 권지웅에게 복수를 했던 것처럼, 강수호 역시 김준에 대한 복수를 생각하고 있다면 말이다. 

 

여기에는 또한 은수현이 감옥에서 만나 마음을 나눴던 장형자(강애심)가 겪었던 딜레마와도 연결되어 있다.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고 분노한 나머지 불을 질렀지만 그 불이 엉뚱하게도 다른 일가족을 죽게 만들었다. 거기서 유일하게 생존해 살아남은 권선율(차은우)에게 사죄하고 싶었지만 장형자는 병으로 교도소에서 사망하고 자신이 쓴 참회를 담은 일기장을 그에게 전해달라고 은수현에게 부탁한다. 장형자의 복수 역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었을 뿐, 그를 구원해주지는 못했다. 

 

<원더풀 월드>가 그리고 있는 건 그래서 이런 사건, 사고들이 벌어지고 그래서 피해자들이 생겨났을 때 그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이미 은수현이 권선율을 찾아가 했던 말을 통해 전해진 바 있다. “저도 비슷한 아픔이 있어요. 자식을 잃었어요. 내 아이를 그렇게 만든 사람한테 나는 사과받고 싶었어요. 그랬다면 적어도 용서까지는 아니어도 잊어는 보려고 했는데 난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고통 속에서 매일매일 부서져 가요. 그래서 그쪽을 찾았어요. 나처럼 고통 속에 갇혀 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그쪽은 꼭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은수현의 목소리를 통해 <원더풀 월드>가 대신 전하는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진심어린 사과’가 아닐까. 그걸로 고통이 치유될 수는 없지만 그래서 매일매일 부서져 가는 아픔을 견뎌내야 하지만 그래도 그걸로 잊어는 보려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 그토록 많이 벌어졌던 사건, 사고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된 처벌은 물론이고 진심어린 사과조차 하지 않는 결코 ‘원더풀’하지 않은 세상 앞에 피해자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원더풀 월드>는 이러한 정의의 문제와 더불어, 가족을 잃은 고통스런 상처에 대한 치유에 대한 희망으로서 은수현과 권선율이 나누는 공감과 연대를 이야기한다. 마음을 닫고 살아가는 권선율에게 은수현이 다가설 수 있었던 건 비슷한 아픔을 겪은 피해자로서의 공감대였다. 은수현과 권선율이 엮어가는 이야기로 극화되어 있지만 드라마는 바로 그 아픔을 공감하고 나누는 것이야말로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MBC)

‘로얄로더’, 밑바닥 청춘들이 진창을 벗어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것들

로얄로더

“굳이 따지자면 친구보단 파트너가 맞겠다. 나 평생 마이너리그에서 살다 늙어 죽을 생각 없어. 그래서 널 좀 이용하려고. 메이저리그로 오르는 동아줄로.”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로얄로더>의 한태오(이재욱)는 강인하(이준영)에게 대놓고 속을 드러낸다. 친구 하자고 했지만 사실은 그를 이용하겠다고. 

 

그는 살인자의 아들이다. 그 살인자는 다름 아닌 아버지고. 물론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살인죄로 감옥에 간 아버지는 그 안에서도 여전히 한태오와 그의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위협이자 꼬리표다. 다른 깡패들을 시켜 복수하겠다 으름장을 놓는 그런 인물.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주홍글씨는 한태오가 이 진창으로부터 어떤 방법을 써서든 벗어나고픈 욕망에 간절한 이유다. 

 

그런데 강인하 역시 진창에 빠져 있다. 그건 재벌가 혼외자라는 위치 때문이다. 혼외자라는 이유로 그 집안 가족들은 물론이고 아버지인 강오그룹 강중모 회장(최진호)까지 그를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강중모 회장의 첫째 아들이자 한량인 강인주(한상진)가 매일밤 파티를 벌일 때, 강인하는 홀로 방에서 터지는 폭죽을 텅빈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가족이든 재벌가든 그건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니.

 

그걸 알고 있는 한태오가 강인하에게 손을 내민다. 파트너가 되자고 한다. 자신의 동아줄이 되어주면 강인하가 원하는 건 뭐든 해주겠다고 한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한태오의 그런 말을 강인하는 비웃지만, 한태오는 말한다. 그 누구도 갖지 못한 걸 자신이 갖고 있다고. 그건 바로 ‘간절함’이다. 

 

<로얄로더>는 흙수저, 아니 그보다 더 못한 밑바닥에 떨어진 청춘이 재벌가 금수저를 동아줄 삼아 신분상승하려는 욕망을 그린 드라마다. 이런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절실한 청춘들의 서사는 <이태원 클라쓰> 같은 작품에서도 등장한 바 있지만, <로얄로더>는 좀더 게임적인 느낌이 더해진 드라마라는 특징이 있다. 자기 인생을 건 이 신분상승 게임에 한태오는 모든 걸 걸고 강인하를 그 재벌가 일원이 되게 만들려 하고 결국 그 왕좌에 앉히려고 한다. 그래서 이를 위한 치밀한 전략을 짜고 또 행동하는데도 주저함이 없다. 

 

‘강오에게 전하는 미래 전략’이라는 리포트를 일부러 채동욱 교수(고창석)의 눈에 띠게 만든 것도 다 한태오의 계획이다. 그가 강오그룹 막내이자 실세로 떠오르는 강성주(이지훈)와 관계가 있다는 걸 알고는 그 리포트가 강성주의 손에 들어가게 하려한 것. 그 리포트는 향후 강오의 미래가 될 ‘상생협력센터’의 밑그림으로 강성주가 그걸 만들어놓으면 훗날 강오그룹에 입성한 강인하가 그걸 집어삼키게 하겠다는 게 한태오의 큰 그림이다.

 

이처럼 한태오와 강인하가 뛰어든 이 진창을 벗어나 신분을 바꿔보려는 그 일련의 과정들은 인생 전체를 두고 그려나가는 그림이자 계획이라는 점에서 마치 ‘인생리셋’의 욕망을 건드리는 면이 있다. 끊어진 성장의 사다리 밑에서 ‘이생망’을 외치는 청춘들이라면 이들의 계획에 판타지로라도 동승하고픈 욕망이 느껴지지 않을까. 

 

그런데 친구가 아니라 파트너(인생 비즈니스쯤이 될 게다)로 시작한 관계라도 그것이 중첩되면서 마음이 오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파트너처럼 계획한대로 하나하나 실천해나가는 두 사람이지만 둘 사이에는 어느새 친구 사이의 우정 같은 감정들이 더해진다. 하지만 여기에 또 다른 변수로서 나혜원(홍수주)이 이들 사이에 들어온다. 

 

나혜원은 빚쟁이의 딸로, 도박장 돈을 갖고 도망간 엄마 때문에 조폭들에게 시달린다. 그녀 역시 이 지긋지긋한 진창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건너편 옥탑방에 살고 있는 한태오를 알게 되고 그를 통해 강인하가 자신에게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녀는 갈등하게 된다. 한태오에게 마음이 있지만 그 진창을 벗어나기 위해 강인하라는 동아줄을 잡고 싶은 욕망 또한 간절하다. 

 

결국 진창을 벗어나 신분상승을 하고픈 한태오나 나혜원은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속여야 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물론 이건 강인하에게도 대가를 요구한다. 그 역시 한태오와 나혜원이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동아줄이라는 사실을 이용해서라도 한태오나 나예원을 모두 우정과 사랑으로 갖고 싶지만, 그건 이루기 어려운 일이다. 

 

<로얄로더>가 흥미로운 건 그래서 두 가지다. 하나는 이 진창에 빠진 청춘들의 신분상승을 향한 질주를 마치 ‘인생리셋’ 같은 느낌으로 하나하나 그려가는 걸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욕망들이 이들에게 가져다 주는 것만큼 이들에게 요구하는 대가가 만만찮다는 걸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부조리를 드러내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막 시작했지만 이 청춘들의 무한질주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흔히 꿈꾸는 ‘인생리셋’의 판타지의 짜릿함과 더불어 또한 그만큼 소중한 걸 잃어버리는 아이러니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사진: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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