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 업고 튀어

나의 최애를 위해서라면 못할 게 뭐가 있을까. 특히 위기에 빠진 최애를 구하겠다는 마음이라면 그 어떤 어려운 일에도 기꺼이 뛰어들 게다. tvN 월화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임솔(김혜윤)은 바로 그 덕심을 가져봤던 이들의 모든 마음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의 최애, 선재(변우석)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지만,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15년 전 시간대로 타임리프하는 인물이니 말이다. 비현실적인 판타지지만 지극한 덕심은 이 판타지를 허용하게 만드는 힘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기꺼이 임솔이 선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간여행에 동승한다. 그가 어떻게든 과거를 바꿔 선재가 현재에 죽지 않고 살아있게 만들기를 바라게 된다. 

 

그런데 도대체 그 덕심이 얼마나 크길래 이런 판타지까지 꿈꾸게 할까. 임솔에게 선재는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다. 사고로 두 다리를 쓸 수 없게 되어 삶을 포기하고팠던 순간에 우연히 연결된 라디오 전화에서 선재는 임솔이 살아갈 힘이 되는 위로를 준다. “고마워요. 살아있어 줘서. 이렇게 살아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고맙다고 할 거예요. 곁에 있는 사람은. 그러니까 오늘은 살아봐요. 날이 너무 좋으니까. 내일은 비가 온대요. 그럼 그 비가 그치길 기다리면서 또 살아봐요. 그러다 보면 언젠간 사는 게 괜찮을 날이 올지도 모르잖아.” 

 

누군가의 한 마디가 그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는 말이 과장처럼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팬들 중에는 최애를 만난 후와 전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른바 덕질을 하는 것이 살아가는 새로운 힘이 되어주었다는 이야기는 젊은 세대부터 중장년 세대까지 똑같이 느끼는 덕심의 공통된 감정들이다. 선재의 그 한 마디에 삶의 희망을 갖게 된 임솔이 휠체어 위에서 살면서도 늘 밝은 모습을 보이는 건 그래서다.

 

타임 리프 같은 판타지는 그걸 꿈꾸게 된 강력한 동력을 요구하기 마련인데 ‘선재 업고 튀어’는 그 동력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하반신이 마비된 임솔이 가진 걷고 싶은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을 맞이한 선재를 되살리고픈 욕망이다. 그래서 15년 전으로 타임리프한 그는 선재를 그 위기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튼튼한 두 다리로 그를 업고 튀려 한다. 

 

최근 들어 ‘회귀물’들이 하나의 장르처럼 줄줄이 리메이크되면서 ‘선재 업고 튀어’도 처음에는 회귀물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15년 전으로 회귀했던 임솔이 어느 순간 다시 현재로 되돌아오고, 12시 정각에 경매로 산 선재의 손목시계 버튼을 누르면 과거로 갈 수 있다는 설정이 등장하면서 회귀물보다는 타임리프에 가깝다는 게 드러났다. 게다가 임솔이 현재로 돌아오면 과거의 임솔은 또 다른 자아처럼 행동한다는 점에서 이 설정은 ‘상견니’를 닮았다. 즉 현재의 임솔이 타임리프를 통해 과거의 임솔로 들어간다는 설정이다. 이 설정은 과거의 임솔이 아직 선재에 입덕하지 않고 김태성(송건희)을 좋아하고 있어, 과거로 돌아간 현재의 임솔이 과거의 자신과 싸워야 하는(?) 코믹한 상황들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코믹한 상황들이 지루할 틈 없는 쏠쏠한 재미를 만들지만 아무래도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저격하는 부분은 ‘덕질’을 해본 이들이라면 과몰입할 수밖에 없는 특정 상황들을 연달아 연출해낸다는 점이다. 최애를 직접 만나 ‘성덕’이 되는 판타지는 물론이고, 최애와 함께 사진을 찍어 간직하는 등의 디테일한 상황들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그 판타지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평소 꿈꿨던 덕질들을 임솔과 선재를 통해 대리충족하는 지점에서 시청자들은 과몰입하게 된다. 

 

최애에 덕질을 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더 쉽게 과몰입하기 마련이지만, 보통의 시청자들까지 그 덕질의 세계로 이끄는 건 이 판타지까지 더해진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연기자들의 연기다. 최애 역할의 변우석은 ‘청춘기록’에서부터 이미 가능성을 보였지만 이 작품을 통해 그에게 입덕하게 만드는 매력을 선보인다. 선재에게 착 달라붙어 그에게 닥칠 위기들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는 임솔 역할의 김혜윤은 ‘어쩌다 발견한 하루’부터 교복만 입으면 펄펄 난다는 연기 차력쇼를 보여준다. 순식간에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변화무쌍한 이 인물을 100프로 납득시키는 연기다. 그 연기에 푹 빠지다 보면 덕질을 해보지 않았던 분들마저 그 경험을 대리해 느낄 수 있을지도.(글:일간스포츠, 사진:tvN)

‘동조자’, 동서와 이념의 대결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비극인가!

동조자

역시 박찬욱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쿠팡플레이가 국내 독점 공개하는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The Sympathizer)’ 이야기다.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유머가 느껴지는 영상 미학은 물론이고 ‘동조자’라는 제목에 걸맞게 양측에 걸쳐 있어 희극과 비극을 넘나드는 장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져놓아 보는 이들을 쿡쿡 웃게 만드는 박찬욱표 농담의 맛까지 가득하다. 시리즈지만 단 한 편을 봐도 웃음에서부터 깊이까지 다양한 맛이 느껴지는 작품이랄까.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 비엣타인 응우옌이 써 2016년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을 원작으로 가져와, 우리에게도 영화 ‘미나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패스트 라이브즈‘나 시리즈 ’성난 사람들‘로 이민자 정서를 담은 일련의 작품들을 만든 제작사로 잘 알려진 미국의 A24가 제작했고, 한국의 박찬욱 감독이 극본을 쓰고 감독을 했다. 그 제작 자체에 ’동조자‘가 갖고 있는 ’반반‘ 정서가 풀풀 풍겨난다. 

 

주인공인 대위는 70년대 베트남이 치열한 남과 북의 전쟁을 치른 후, 남베트남이 패망하게 되자 미국으로 망명한 베트남 혼혈 청년. 그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남베트남에서 비밀경찰이자 장군의 부하로 활동하지만 CIA와 남베트남의 정보를 북베트남으로 빼돌리는 스파이다. 이처럼 국가나 언어, 심지어 이념의 중간에 걸쳐 스스로 ‘반반’이라고 말하는 그 지점에 선 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당대의 풍경은 웃음이 터질 정도로 기괴하고 그러면서도 스스로 ‘모든 일의 양면을 보는 저주를 받았다’고 할 정도로 비극적 정조를 담고 있다. 

 

그 희비극은 시리즈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부터 박찬욱 감독의 유머 가득한 연출로 빛을 발한다. 찰슨 브론슨 주연의 ‘데스 위시(죽음의 갈망)’ 간판이 걸린 극장에서 펼쳐지는 고문 장면이 그것이다. 영화 대신 무대에서는 한 여성이 의자에 앉혀져 고문당하고 심문을 받는다. 스포트라이트가 켜지고 그걸 CIA요원 클로드와 대위 그리고 장군이 마치 실존주의 연극 혹은 영화라도 보듯이 관람(?)한다. 

 

“그래 관객이 오셨다고. 네 공연을 보러. 똑바로 앉아! 네 대사를 궁금해하신다.” 심문을 주도하는 만두라 불리는 인물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마치 자신도 관객이나 된 듯이 콜라를 따서 마신다. 이 장면은 끔찍하면서도 비극적이다. 그 여성은 대위가 장군의 책상에서 확보한 비밀경찰 명부를 가져가려다 체포되었다. 그러니 대위가 스파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입을 다물고 말 그대로 죽음을 갈망하듯이 자신을 고문하는 자들 앞에 침과 독설을 뱉는다. 그 광경을 속내를 숨긴 채 바라보는 대위는 끝내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이 광경은 우스꽝스러운 농담과 풍자로 가득하다. 이념 대결로 동족끼리 죽고 죽이고 속고 속는 그 광경이 마치 한편의 실존주의 연극 같다는 은유다. 이들은 이념으로 편을 나누어 연기를 하는 중이고, 다만 누군가는 당하고 누군가는 그걸 영화를 보듯 콜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며 관람하는 중이다. 어느 ‘뒷구녕’에서 빼낸 정보냐고 묻는 대사는 실제로 이 여성이 정보를 숨기기 위해 그 필름을 꿀꺽 삼키자 용변을 보게 해 꺼낸 정보라는 점에서 웃음을 주고, 심문 중 만두가 두리안을 먹는 걸 두고 똥내가 극장 가득 찼다고 소리치는 장군의 모습에서는 이 광경이 풍기는 지독한 냄새에 대한 풍자로 다가온다. 

 

이건 ‘동조자’가 앞으로 그려나갈 빵빵 터지면서도 눈물나고 씁쓸한 희비극의 전조를 보여준다. 이념과 국가, 동서 같은 걸로 구분지어진 세계에서 그 중간에 걸쳐진 삶을 살아가는 대위의 시선은 모든 걸 낯설게 만든다. 북베트남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장군 옆에 붙어 끝까지 스파이 일을 하게 된 대위가 미국으로 와 겪게되는 일들 또한 마찬가지다. 2회에 등장하는 교수는 동양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진 인물로서 동서양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알고 보면 자기 식의 오리엔탈리즘에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교수는 동서양이 반반씩 겹쳐진 대위에게 자신이 가진 동양적인 면과 서양적인 면을 나누어 알려달라는 과제를 내주는데, 대위가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서양적인 면은 모순을 극복대상으로 삼지만 동양적인 면은 함께 갈 대상으로 보고 그렇기 때문에 동양적인 면은 모순을 받아들이는 걸 겁내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하자 교수는 말을 끊어 버린다. 자신이 보는 대로의 오리엔탈리즘적 식견에서 벗어나는 답변이라 그렇다. 교수의 그런 모습을 대위는 겉은 하얗고 속은 노란 삶은 계란 같다며 농담한다.  

 

이처럼 ‘동조자’는 베트남 혼혈 대위가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넘어가 겪게 되는 일들을 통해 중간에 걸쳐져 있는 경계인들이 그들의 시선으로 마주하게 되는 비극적이지만 우스꽝스런 현실들을 꺼내놓는다. 제목인 ‘동조자’란 ‘어떤 의견에 대하여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건 지극히 평범한 인물일 수 있지만, 이 시리즈에서 중간에 걸쳐진 동조자인 대위는 양측이 벌이는 치열한 이념이나 동서 갈등 속에서 스파이로 취급되어 고통받는 인물이 된다. 

 

70년대 베트남과 미국을 배경으로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것이 남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 건 우리도 비슷한 경험들을 했고 지금도 그 형태의 정쟁들이 우리네 현실 깊숙이 상흔처럼 남아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지역으로 나뉘고 이념으로 진영을 갈라 내편과 적이 되어 어떤 각각의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는 의견들조차 스파이처럼 매도되는 현실이 아닌가. ‘동조자’를 보며 때론 낄낄 웃다가 때론 씁쓸해지는 감정들을 의외로 깊게 ‘동조’하게 되는 건 그래서일게다. (사진:쿠팡플레이)

‘눈물의 여왕’, 울지 않는 마녀 이미숙과 우는 남자들 김수현, 홍수철

눈물의 여왕

홍만대(김갑수) 회장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휠체어를 몰아 계단 끝에서 자신을 죽음을 향해 내던지기 전, 그는 마지막으로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자신이 죽어야 모슬희(이미숙)라는 마녀의 손아귀에 들어간 퀸즈 그룹의 모든 것들을 다시 가족들에게 되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왜 미소를 지으며 끝을 맺었을까. 복수의 의미도 담겨 있을 테지만, 가족들에게 보내는 따스한 마음의 의미도 있지 않았을까. 극단적인 선택을 결행하기 전, 그가 홍해인이 두고 간 녹음기에 남겨뒀을 메시지가 궁금해진다. 거기에는 아마도 그 미소의 의미를 이해하게 해줄 그의 마음이 담겨 있을 테니.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은 제목에서도 느껴지지만 한 편의 ‘동화’ 같은 로맨틱 코미디다. 퀸즈가라는 왕궁에서 살아오던 공주 홍해인(김지원)은 온갖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고, 사랑했지만 그걸 표현하지는 못했던 남편 백현우(김수현)와 이혼한 데다, 모든 걸 모슬희라는 마녀에게 빼앗겼다. 하지만 그 위기는 홍해인에게 그간 잊고 있던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퀸즈가에서 쫓겨난 백현우는 그걸 알게 해주는 흑기사 같은 인물이다. 그는 이혼했지만 홍해인 옆에 끝까지 남아 그의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 저 마녀가 장악한 퀸즈가를 되돌려 놓으려 한다. 그런데 이 흑기사 캐릭터는 우리가 동화에서 봐왔던 그 모습과는 사뭇 다른 면이 있다. 툭하면 눈물을 흘리는 흑기사다.

 

처가살이를 토로하며 술에 취해 흘리던 눈물은 어딘가 찌질해 보였지만 그의 눈물은 깊은 공감의 발현이라는 게 갈수록 드러난다. 홍해인을 너무나 사랑하고 그래서 그 도도하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얼굴 이면에 담긴 아픔이나 상처를 공감한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린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이토록 우는 남자가 주인공인 경우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그 눈물은 약해서 흘리는 게 아니다. 오히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능력의 눈물이다. 그와 정반대 위치에 서 있는 모슬희나 그의 아들 윤은성(박성훈)이 눈물 한 방울을 보여주지 않는 모습과 대비해 보면 그 가치가 무엇인가가 드러난다. 자신이 원하는 걸 갖기 위해 아들마저 보육원에 보내버리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모슬희는 괴물처럼 그려진다. 비뚤어진 모성을 가진 이 괴물은 아들을 학대한 양부모를 죽인 건 자신이라며 그것이 아들을 위한 자신의 마음이라 말하는 자다. 어찌 보면 윤은성에 대한 연민의 감정마저 들게 만드는 괴물 모성의 모습이 아닌가. 

 

‘눈물의 여왕’에는 또 한 명의 우는 남자가 있다. 그는 홍수철(곽동연)이다. 모슬희와 함께 사기를 치고 도망쳐버렸지만 그는 아내 천다혜(이주빈)와 아들 건우를 그리워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바보처럼 윤은성의 사기에 넘어갔고 능력자인 누나 홍해인에 대한 열등감에 눈이 멀어 그런 사건을 만들었지만 이 남자가 사랑하는 방식은 순정 그 자체다. 돌아와 용서를비는 천다혜 잘못을 저질렀지만 홍수철에 의해 구원받는다. 가짜 얼굴로 연기하던 그의 눈에는 눈물이 피어난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같은 문구가 여전히 화장실에 붙어 있을 정도로 남자의 눈물은 여전히 흘리지 말아야 할 어떤 것으로 치부되는 세상이지만, ‘눈물의 여왕’은 정반대로 그 눈물이 가진 가치를 꺼내놓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눈물의 여왕’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눈물 흘리는 홍해인을 뜻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차츰 그 의미가 새로워진다. ‘눈물 흘리는 남자 백현우의 여왕 홍해인’이라는 뜻으로. 그러고 보면 모든 걸 되돌리기 위해 마지막 최후를 맞이하며 보였던 홍만대의 희미한 미소는 또 다른 눈물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고 이어령 선생님은 ‘눈물 한 방울’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우리는 피 흘린 혁명도 경험해봤고, 땀 흘려 경제도 부흥해봤다. 딱 하나,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눈물, 즉 박애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타인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 인간의 따스한 체온이 담긴 눈물. 인류는 이미 피의 논리, 땀의 논리를 가지고는 생존할 수 없는 시대를 맞이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눈물이란 없다. 그것만큼 가치 있는 것도 없다는 것을 이 드라마 속 새로운 남자들인 백현우나 홍수철 같은 인물들이 보여주고 있다.(사진:tvN)

‘지배종’, 세상을 바꾸는 일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맞이하는가

지배종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지배종’은 새로운 인공 배양육의 시대를 연 생명공학기업 BF의 대표 윤자유(한효주)가 사업을 설명하는 자리로 문을 연다. 화면 속에서 튀어나온 소들이 설명회장 속으로 뛰어들어오는 듯한 입체적인 영상이 펼쳐지자 사람들은 신기해 하지만, 곧바로 그 소를 도축하는 끔찍한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괴로워한다. 그건 어찌 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고기를 먹고 있지만, 굳이 알고 싶지는 않은 불편한 진실이다. 

 

그걸 먼저 체감할 수 있는 입체적인 영상으로 보여주는 건, 윤자유가 소개할 인공 배양육이 얼마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는가를 설득하기 위함이다. 인공으로 배양한 고기이니 피를 볼 필요가 없다. 도축할 소들을 키워내면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탄소 배출이 발생시키는 환경 오염도 막을 수 있다. 게다가 실제 고기와 다를 바 없는 맛과 식감을 자랑한다. 이 기업의 이름 BF는 ‘비프’ 즉 고기를 뜻하는 단어처럼 읽히지만 그 의미는 ‘Blood Free’다. 피(희생) 없이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의미일 게다. 이 기업은 인공 배양육으로 물고기까지 성공시켰다며 그 고기를 맛보게 하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인다. 

 

‘지배종’이 보여주는 이 첫 도입부는 이 근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질 드라마가 가진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건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위기로 다가오고 있는 환경 문제에 대한 것이다. 드라마는 이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인공 배양육이라는 대안으로 제시하고, 그것이 바꿀 세상을 먼저 펼쳐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솔루션이 있다고 해서 세상이 진짜 바뀔까. ‘지배종’은 질문한다. 바로 거기서부터 수많은 도전들이 생겨난다는 것을. 

 

새로운 세상을 여는 일은 이전의 세상을 바꾸거나 닫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공 배양육을 상용화해 그것이 고기를 대체하게 만들면, 지금껏 그걸 생계로 삼아온 축산업자들은 모두 도산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물고기까지 인공 배양육으로 바꾸면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 모두가 위기를 맞는다. 오래도록 이어져온 하나의 산업이(그것도 거의 원시사회부터 이어져온) 하루 아침이 사라지게 된다. 어찌 반발이 없을 수 있을까. 

 

그래서 BF와 이를 이끄는 윤자유는 저들의 ‘표적’이 된다. 인공 배양육이 세균덩어리라는 루머가 퍼지고 연구소의 컴퓨터를 랜섬웨어로 해킹한 후 800억을 요구하는 사건도 벌어진다. 즉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솔루션을 가진 자와 이를 막으려는 모종의 세력들과의 대결이 펼쳐진다. 하지만 위협하는 세력의 실체가 누구인지가 밝혀지지 않음으로써 드라마는 그 실체에 접근해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펼쳐 놓을 작정이다. 

 

이수연 작가는 특히 어떤 조직 내부에서 생겨난 변화에 직면해, 저마다의 욕망을 가진 이들이 그것 때문에 그려내는 ‘관계의 화학작용’을 잘 그려내는 작가다. ‘비밀의 숲’이 검찰 개혁을 소재로 그걸 그려냈다면, ‘라이프’는 병원에 다른 신념을 가진 사장이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렸다. 이번에는 인공 배양육으로 상징되는 미래에 대한 어떤 선택이 그 갈등의 소재가 된 셈이다. 

 

폭탄테러로 두 다리를 잃은 후 하야할 수밖에 없었던 전직 대통령 이문규(전국환), 그 테러가 있었던 부대에서 동료를 잃은 트라우마를 가진 채 이문규의 지시에 의해 의도적으로 윤자유의 전담 경호원이 된 우채운(주지훈)은 물론이고, 랜섬웨어 해킹 사건의 범인이 내부 직원일 수 있다는 증거가 나옴으로써 용의선상에 오른 연구소 직원들인 온산(이무생), 김신구(김상호), 서희(전석호), 전해든(박지연), 홍잎새(이서), 랜섬웨어로 BF 그룹이 처한 위기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이익을 얻어내려는 국무총리 선우재(이희준) 등등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저마다의 욕망을 드러내며 보여줄 관계의 화학작용을 기대하게 만든다. 

 

결국 ‘지배종’은 선택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다. 인간의 다른 표현일 수 있는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그래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선택이 마주하게 되는 도전 속에서 과연 모든 것이 통제되는(인간에 의해 지배되는) 완벽한 삶이 가능할 것인가를 되묻지 않을까. (사진: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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