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드라마 보며 펑펑, 무엇이 눈물 버튼을 눌렀나

폭싹 속았수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땐 연애편지 쓰듯 했다. 한 자 한 자 배려하고 공들였다. 남은 한 번만 잘해 줘도 세상에 없는 은인이 된다. 그런데 백만 번 고마운 은인에겐 낙서장 대하듯 했다. 말도 마음도 고르지 않고 튀어 나왔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대학생이 된 금명(아이유)이 엄마 애순(문소리)에게 전화통화하며 유학 문제로 괜스레 화를 내는 대목에는 이 같은 내레이션이 흐른다. 

 

유학 장학생으로 뽑혔지만 형편이 되지 않아 못가게 되자 담당 교수가 사비를 털어서 보내주겠다 한다. 거절했지만 그 마음이 너무 고마운 금명은 교수에게 마음만도 너무 감사하다며 “일본 갔다 온 거 같다”고 예쁘게 말한다. 금명의 내레이션이 말하듯, 그 표현은 마치 ‘연애편지’처럼 배려하고 공들인 티가 난다. 그것도 진심으로. 

 

하지만 그 교수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 엄마한테 전화해 귤이라도 한 상자 보내달라 하던 금명은, 뭐가 그렇게 고마우냐는 엄마의 궁금증에 저도 모르게 “돈까지 빌려주려 한다”는 말을 꺼내놓는다. 그것이 엄마에게는 가시가 되는 건 줄도 모르고. 그래서 말다툼을 벌이고 “엄마랑 통화하면 짜증만 난다”는 말까지 꺼내놓는다. 낙서장에 아무렇게나 찌끄리듯이. 

 

이 짦은 장면에는 금명과 애순의 전화 말다툼을 회고하는 금명의 목소리가 들어있다. 그 내레이션은 아마도 시간이 흘러 어쩌면 금명 또한 애순처럼 딸을 낳고 엄마가 됐던 시점에 돌아본 소회처럼 들린다. 이것은 엄마나 아빠 혹은 가족 같은 너무나 가까워 늘 하는 일들이 고마운 일이 되지 않고 당연한 일이 되곤 하는 관계에서 늘상 벌어지는 일이다. 그건 드라마 속 이야기지만, 인물을 통해 작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렇게 들려온 말들은 시청자들 각자의 기억을 헤짚는다. ‘연애편지’와 ‘낙서장’이라는 비교가 가슴을 울컥하게 만든다. ‘남’과 ‘은인’이라는 말 역시. 

 

<폭싹 속았수다>는 간만에 눈물 버튼을 눌렀다. 시청자들의 후기를 보면 대부분 드라마보다 펑펑 울었다는 간증이 쏟아진다. 내 경험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첫 회에 물질하고 나온 애순의 엄마 광례(염혜란)의 얼굴을 보는 순간부터 그 버튼이 눌렸다. 쫄닥 젖은 채 지옥을 갔다 온 사람마냥 절절해보이지만 두 눈만은 생존의 의지로 활활 타오르는 눈빛이 그 버튼이었다. 그건 6,70년대 어떻게든 살아내려 애쓰던 우리 모두의 엄마들이 가졌던 그 눈빛이 아니던가. 

 

광례가 죽는 순간도 그랬지만, 그 어린 딸 애순(김태연)이 유일하게 엄마를 챙기려 애쓰는 모습도 그랬다. 그렇게 그 애순(아이유)은 또 자라나 광례 같은 엄마(문소리)가 되고, 자신 같은 딸 금명(아이유)을 낳는다. 아이유가 애순의 젊은 시절과 그 딸인 금명을 1인2역으로 소화하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들의 삶은 그렇게 마치 분신의 삶처럼 연결되어 있고 이어진다. 엄마가 살아남기 위해 포기했던 학업의 꿈을 딸이 이어받아 대신 이뤄내고, 그 딸의 꿈을 위해 엄마는 오래도록 추억과 상처가 가득한 집까지 팔고서도 기꺼워한다. 

 

애순의 옆을 무쇠처럼 지켜온 관식(박보검, 박해준) 또한 그 시대의 아빠들의 자화상이 어른거린다. 어떻게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밖에서는 모질게 일하면서도 집에서는 아프다 소리 한 번 안하고 살아온 아빠들. 딸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천안에서 서울까지 일부러 찾아오고는 지나다 들렀다고 둘러대고, 떠나는 버스 안에서 쑥스럽게 손을 흔들다 딸이 손을 흔들어주자 너무 기뻐 양손을 흔드는 바보 아빠들이 그들이다. 무쇠가 닳도록 일하고도 “아빠 아직 살아있어”라고 자식 앞에서는 허세부리는 그런 아빠들. 

 

<폭싹 속았수다>는 이 윗세대와 그 아래세대들의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그려나가면서도, 중간 중간 시간을 넘나들며 엄마의 이야기와 딸의 이야기가 겹쳐지고, 그 딸이 엄마가 되어 자신의 딸과 엮어내는 이야기가 또 겹쳐진다. 젊어서 무쇠 같던 관식이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어 절뚝거리며 아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교차된다. 바로 이 시간을 넘나들며 보여주는 교차점에서 우리는 저마다 깨닫게 된다. 왜 그 때는 몰랐었을까. 그 때의 엄마, 아빠의 나이가 되니 알겠는 그 마음들이, 시간을 넘나드는 이야기 속에서 펼쳐진다. 

 

그 장면들의 교차 속에서 백만 번 고마운 은인에게 낙서장 쓰듯 했던 우리 각자의 후회와 미안함이 피어오른다. 순간 순간을 살다보니 놓치고 있던 것들이 인생 전체를 통해 내려다보니 드디어 가슴 저미게 보이는 것들이 생겨난다. 드라마 속 엄마, 아빠의 이야기가 저절로 시청자들의 가슴으로 스며든다. 드라마를 보며 불쑥 불쑥 무심했던 마음들이 새삼 떠오른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진심으로 말하고픈 마음이 <폭싹 속았수다>의 눈물 버튼을 누르고 우리는 여지없이 울 수밖에 없다.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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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 고되지만 위대한 모든 삶에 전하는 위로

폭싹 속았수다

“무쇠도 닳네. 닳아.” 손 꼭잡고 경사진 골목길을 내려가며 애순(문소리)은 절뚝거리는 관식(박해준)에게 말한다. 애순의 말처럼 어려서는 무쇠 소리 듣던 관식이었다. 하지만 어디 사람 몸이 세월에 장사 있을까. 게다가 열 살부터 지게를 지며 살았던 관식의 삶이라면 무쇠라도 당할 수 없었을 게 분명하다. 특히 애순을 위해서라면 어려서부터 따라다니며 몸이 부서져라 일해왔던 관식이었다. 그럼에도 관식은 걱정말라며 애순보다 더 오래 살거라 말한다. 두고가는 것보다 잘 보내고 따라가는 게 마음이 편해서란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무쇠 같던 관식의 몸처럼 한 때는 힘이 넘치는 봄날이었던 청춘이 모진 세월을 겪으며 닳고 닳아 이제 삐거덕 거리며 걸어가는 지극히 평범한 부부의 이야기다. 물론 제주에서 나고 자라 그 고단함이 훨씬 더 컸던 애순과 관식이지만, 이런 삶은 누구나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마찬가지일 게다. 왜 나이 들면 몸이 아프겠나. 그저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재게도 움직였던 삶이 아픈 몸으로 돌아오는 것이니 말이다. 어쩌면 쓸쓸하고 힘들며, 때론 억울하게도 느껴지지만 그래도 옆에 손 꼭잡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풍진 삶도 살아진다고 이 드라마는 말하려 한다. 

 

우리네 삶 전체를 이야기하려 했기 때문일까. <폭삭 속았수다>는 봄여름가을겨울로 흘러가는 사계의 흐름에 빗대 삶을 풀어내려 한다. 넷플릭스답지 않게 4주에 걸쳐 4회씩 공개되는 방식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을 테다. 하지만 이렇게 나눠 놓은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한 번에 16회를 다 꺼내놓기 아까운 작품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한 주에 4회도 너무 많게 느껴진다. 기다리기 싫고 몰아서 다 보고픈 마음이 큰 시청자들이라면 이런 이야기가 엉뚱하다 싶겠지만, 적어도 <폭삭 속았수다>는 한 회 한 회 천천히 오래도록 음미하면서 보고싶은 작품이다. 그저 꿀떡 삼키기보다는 씹을수록 우러나는 맛이 느껴지고, 그래서 기다리는 시간조차 즐거워지는 작품이다. 

 

1회 하나만 놓고 봐도 그렇다. 염혜란과 아역배우 김태연이 말그대로 ‘미친 연기력’을 보여준 이 첫 회는 토속적인 제주 방언을 기막히게 살려낸 대사 속에 제주 해녀들의 고된 삶이, 애순(김태연)과 애순 엄마 광례(염혜란)의 절절한 관계를 통해 그려진다. 자식들만큼은 이 험한 물질 안시키기 위해 허구헌날 점복 잡으러 무리하는 광례의 삶은 소설 한 권을 써도 될 정도로 신산하다. 그녀는 자신이 지게꾼 팔자란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는 빚잔치에 무너졌고, 첫 서방은 병수발을 하다 먼저 보냈으며, 새 서방은 하는 일 없는 한량이다. 모두가 그 지게에 올라타려고만 한다. 

 

그런데 허구헌날 점복 잡으러 물질 하는 엄마에게 툴툴대며 “이럴라면 점복을 낳지 나를 왜 낳았대”라고 말하면서도 엄마 걱정이 한 가득인 딸 애순만은 다르다. “전부 다 내 지게 위에만 올라타는데 이 콩만한 게 자꾸 내 지게에서 내려와. 자꾸 지가 내 등짐을 같이 들겠대.” 광례의 말처럼 애순은 엄마가 좋고 엄마가 힘들게 물질하는게 눈에 밟혀 ‘점복 팔아 버는 백환’을 대신 자기가 주고 엄마의 하루를 사고 싶다는 시를 쓴다. 먹고 살기 힘들데 무슨 놈의 시냐던 엄마는 그 시를 읽고는 그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왜 아닐까. 자기 힘든 걸 알아주는 자식이니 말이다.

 

애순과 광례의 끈끈한 모녀관계가 보여주는 건 숨막히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서로 기대고 지지해주는 누군가가 있어 그 모진 삶도 살아진다는 것이다. 그건 애순과 어려서부터 그녀를 따라다녔던 관식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죽고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만 같던 애순이 아픔을 잊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건 엄마의 말처럼 “손톱이 자라듯이 매일” 살아야할 삶이 밀려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옆에 소처럼 묵묵히 애순을 지지해준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폭싹 속았수다>는 바로 이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말하는 드라마다. 복어처럼 독하게 숨이 턱턱 막혀올 때까지 물질을 하고 쇠도끼처럼 밭을 갈아 생계를 꾸려오다 겨우 스물아홉에 세상을 떠버린 광례지만 “넌 요런 딸내미 있어?”라고 자랑하던 봄날이 그녀에게도 있었다. 어려서 아빠를 여의고 엄마마저 잃은 채 작은아버지 집과 엄마 집을 오가며 ‘식모살이’를 하면서 문학의 꿈도 저버릴 수밖에 없던 애순(아이유)이었지만 그녀에게도 사랑하는 관식(박보검)과 결혼해 가진 아기 얼굴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여겼던 봄날이 있었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도 방언으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다. 그 의미처럼 이 드라마는 세상의 모든 닮아버린 고단한 삶에 대해 수고하셨다고 보내는 헌사다. 때론 누군가를 먼저 보내야 하는 힘든 시간들을 버텨내야 했지만, 그럼에도 혼자가 아닌 누군가가 있어 우리의 삶을 살아질 수 있었다. 그 저마다의 위대함 앞에 <폭싹 속았수다>는 수고했다며 어깨를 토닥여준다. 호로록 지나버리는 봄날을 거쳐 꽈랑꽈랑(햇볕이 쨍쨍)한 여름과 그 후의 가을, 겨울의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참으로 오랜만에, 기다리는 게 즐거울 정도로.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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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딩 인생’, 이건 교육인가 학대인가 혹은 육아인가 전쟁인가

라이딩 인생

“자 엄마표 롤러코스터 출발한다! 꽉 잡아 홍서윤.” 운동화로 갈아신은 정은(전혜진)은 딸 서윤이(김사랑)를 안고 달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라이딩을 해주던 시터가 일이 있어 아이를 학원까지 보내주지 못하게 됐다고 하자 점심도 못먹고 달려온 정은이다. 반 승급이 달린 스피치대회를 앞두고 있어 딸을 영어 수업 시간에 늦지 않게 하기 위해 그녀는 달린다. 평상시라면 혼자서도 못달렸을 거리를 그것도 경사진 계단까지 쉬지 않고 달려 겨우 학원에 도착한다. 그렇게 딸을 데려다주고 차로 돌아가는 정은은 그 경사진 계단 위에서 말한다. “아깐 여길 어떻게 뛴거야?”

 

ENA 월화드라마 <라이딩 인생>은 이른바 ‘대치맘’들의 치열한 자식교육 경쟁, 아니 전쟁을 다룬다. 물론 정은은 대치맘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치맘이 되고 싶은 워킹맘일 뿐.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이라면 안다. 일하면서 육아를 하는 것으로 대치맘, 아니 그같이 자식교육에 열성인 엄마들이 되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래서 워킹맘들은 사실 학부모 모임에 가서도 자식교육에만 전담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겉돌기 마련이다. 정은은 현실적으로 돈을 벌어야 서윤이 학원도 보내고 시터도 고용할 수 있어 일을 해야만 하는 워킹맘이지만 마음은 육아에서도 대치맘처럼 완벽하고 싶어한다. 

 

일도 육아도 다 해야하는 워킹맘이니, 남편이 육아에 동참안하는 건 아닌가 싶지만 정은의 남편 재만(전석호)은 그런 인물이 아니다. 돈을 잘 못벌어도 서윤을 위해 뛰고 또 뛰는 정은을 어떻게든 도와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다. 하다못해 제사 상차림도 자신이 먼저 나서서 다 챙기고 뒤늦게 온 아내를 두둔하는 그런 인물. 또 서윤도 이런 엄마의 교육열에 그다지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 착한 아이다. 학원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어하는데 그건 엄마가 기뻐할 것 같아서라고 말하는 아이. 하지만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 고민한다. 

 

진짜 대치맘은 송호경(박보경)과 그 주변에 모여드는 엄마들이다. 토미로 불리는 아들이 늘 학원성적 1등이라 예비초 맘들은 모두 그녀 주변에 모여든다. 하지만 이들 대치맘의 아이들은 이제 겨우 7세로 초등학교도 가지 않은 나이에 이런 생활이 너무 가혹하다. 그래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불안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정은의 엄마 지아(조민수)에게 그림 수업을 받는 수찬이는 그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과호흡으로 쓰러지기도 하고, 호경의 아들 토미도 불안증세로 손톱을 물어뜯는다. 

 

라이딩을 대신 해줄 시터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 전전긍긍하는 정은 같은 워킹맘도 불안과 스트레스에 쩔어 살아간다. 갑자기 시터가 사라지자 어쩔 수 없이 엄마 지아에게 부탁을 하는데, 학원이 늦을까 걱정되어(그러면 엄마가 실망할 걸 알기에) 혼자 택시를 타고 학원에 가다가 길을 잃은 지아는 다행히 경찰의 도움으로 정은의 품에 안긴다. 아이를 잃어버릴 수도 있었을 사건 속에서 정은의 절실함은 이 학원 경쟁이 경쟁의 차원을 넘은 전쟁이라는 걸 보여준다. 드라마가 순식간에 스릴러 같은 긴박감을 줄 정도니 말이다. 

 

이 정도면 이 요지경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건 상식적인 일이다. 그래서 이 모두가 앞뒤 보지 않고 아이들을 학원 경쟁에 몰아넣고 이 학원 저 학원 ‘라이딩’을 하는 인생이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라이딩 인생>의 지아는 이 상식적인 시선으로 대치맘들의 요지경에 일침을 가하는 인물이다. 수찬이가 과호흡으로 쓰러진 이후에도 “학원가자”고 아이의 등을 떠미는 엄마에게 그녀는 말한다. “자꾸 이러시면 아동학대로 신고할 수밖에 없어요.” 

 

이건 교육인가 학대인가. 아니 육아라고 이름 붙여져 있지만 이건 사실상 전쟁이 아닐까. <라이딩 인생>은 정은의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저 아이들의 교육에 전쟁하듯 뛰고 있는 엄마들의 삶을 통해 이런 교육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걸 꼬집는다. 이른바 대치맘이라 불리는 특정 엄마들의 치맛바람을 비판한다기보다는 왜 이들이 이렇게 극한까지 ‘라이딩’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우리 사회의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상식을 뛰어넘는 절벽 끝으로 몰아세우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학대에 가까운 일들을 교육이라며 당하고 있는 걸까. 

 

최근 대치맘이 화제다. 개그우먼 이수지의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에서 ‘휴먼페이크다큐 자식이 좋다’라는 코너에 이수지가 제이미맘으로 나와 보여주는 패러디는 예상 외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엉뚱하게 ‘한가인 저격’으로 불똥이 튀기도 했고, 대치맘들의 교복이라 불리는 패딩을 입고 나와 풍자의 대상이 되면서 중고거래 플랫폼에 매물이 쏟아지는 기현상이 생겨나기도 했다. 대치맘들이 이 화제로 인해 패딩 대신 밍크코트를 입게 됐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제이미맘은 바로 그 다음편에 밍크코트를 입고 나와 빵터지는 웃음을 주기도 했다. 

 

아이를 수학학원에 보내고 온다는 제이미맘에게 피디가 이제 겨우 네 살 아니냐고 묻자 그녀는 아이에게 까까를 줬더니 그 수를 세고 왜 이렇게 적게 주냐고 했다며 그건 “영재적인 모먼트”라고 말한다. 또 <오징어 게임>이 인기라 제기차기 선생님을 구하러 간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건 빵 터지는 패러디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실에서 엇나간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로 엄마들은 아이가 뭘 해도 ‘영재 아닐까’ 하는 착각 속에 스스로를 몰아넣고 모두가 인기있는 놀이에도 아이가 겉돌지 않기 위해 학원을 보내는 게 일상적인 현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치맘을 넘어 이제는 ‘대치파파’까지 등장할 정도로 이 이슈는 우리 안의 어떤 버튼을 누른다. 그건 비상식적인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더한 일도 하게 되는 대치맘에 대해 그저 비판적 관점만이 아닌 선망의 시선을 같이 갖는 양가감정 속에 우리가 빠져 있어서다. 우스우면서도 눈물나고 미친 것 아니냐고 말하면서도 그런 게 있냐고 관심이 쏠리는 이 감정은, 저 아이들이 손톱을 물어 뜯을 정도로 겪고 있는 혼란과 정서적 불안만큼 부모들도 똑같은 불안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 

 

요는 대치맘이 누굴 저격했는가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거야 말로 이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사태를 직시하기보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내세움으로써 간단히 외면하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웃음 뒤에 존재하는 기괴함을 애써 봐야하고, 저 엄마들을 전전긍긍하게 하는 이면의 너무나 폭력적이면서도 방치되어 있는 교육 정책들을 봐야한다. 그게 아니면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라이딩 인생’이라는 지옥 속에서 살아가게 될 테니 말이다. (사진: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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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무비

전라북도 무주는 반딧불이 축제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이 곳은 언젠가부터 영화제도 유명해졌다. 이름하여 무주산골영화제. 올해로 벌써 13회를 맞는 영화제다. 이 곳이 반딧불이와 더불어 영화제로 유명해진 건,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밤에 불빛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곳 ‘산골’에서는 영화제에 야외에서 영화를 본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같은 로맨틱한 광경이 펼쳐진다. 밤이 낮처럼 밝은 도시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어둡기 때문에 오히려 빛이 더 잘 보이고, 그래서 삼삼오오 모여 영화를 보는 이들의 마음은 더더욱 따뜻해진다. 어둡기 때문에 더 빛나는 별과 달을 볼 수 있다는 역설. 어찌 보면 우리네 삶이 그렇지 않은가. 

 

넷플릭스 드라마 ‘멜로무비’는 바로 이 무주산골영화제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단역배우인 고겸(최우식)은 세상 걱정 하나 없어 보이는 청춘이다. 영화 촬영현장에서 ‘똥강아지’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지친 사람들마저 웃게 만든다. 그런 그의 눈에 현장에서 일하는 스텝 김무비(박보영)가 들어온다. 이름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어딘가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듯한 그녀의 그늘이 자꾸만 고겸의 눈에 들어온다. 김무비의 그늘은 아빠에 대한 상처 때문이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늘 가족을 떠나 영화판을 전전했던 아빠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하지만 이렇다할 영화 한 편 내놓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빠에 대한 애증은 그 누구에게도 쉽게 정을 주지 못하는 그녀를 만들었다. 그런데 고겸은 그런 깊은 어둠 속에 있는 김무비에게 다가와 한없는 해맑음으로 그녀의 마음을 여는데 그건 마치 한 편의 영화 같다. 김무비 같은 깜깜한 어둠 속에 비춰진 고겸 같은 빛이라 더 따뜻하고 선명한 한 편의 멜로영화 같달까.

 

그런데 한꺼풀 더 인물 속으로 들어가 보면 고겸의 그 해맑음의 이면에는 어두운 과거의 그늘이 숨겨져 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고 형과 단둘이 세상을 살아내야 했던 어린 고겸이었다. 자신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러 나가는 형은 그를 비디오가게에 맡겼고, 어린 동생은 혼자 있는 시간들을 영화를 보며 보냈다. 영화는 고겸에겐 그래서 단순히 재미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 혼자 있는 외로움을 애써 잊게 해주는 것이었다. 고겸은 어두운 삶의 터널 속에서 그 어둠을 바라보기보다는 빛을 애써 찾으려 하는 사람이 됐다. 김무비가 유독 그에게 신경쓰였던 건 그 그늘에서 자신의 어둠을 봤기 때문이었다. 

 

‘멜로무비’는 단역배우였지만 평론가가 된 고겸과 스텝으로 일하다 영화감독이 된 김무비가 사랑하고 예기치 않은 일로 이별하게 되지만 다시 만나 사랑을 엮어가는 과정을 통해 과거의 아픔들을 조금씩 치유해가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여기에 고겸의 절친인 홍시준(이준영)과 손주아(전소니)의 또 다른 사랑과 성장 스토리가 더해진다. 음악을 꿈꾸던 홍시준과 그의 뮤즈였던 손주아가 각자의 꿈을 위해 헤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음악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로 다시 만나 과거의 상처를 회복해가는 이야기다. 그래서 ‘멜로무비’는 고겸과 김무비 그리고 홍시준과 손주아의 사랑이야기를 그리지만 동시에 한 편의 영화를 중심으로 평론가, 영화감독, 음악감독, 시나리오 작가가 어우러지는 작업 과정 또한 담고 있다. 

 

‘그 해 우리는’으로 잘 알려진 이나은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최우식을 자신의 페르소나로 세웠다. 워낙 최우식을 잘 알아 이를 고겸이라는 인물에 녹여낸 덕분에, 최우식의 매력은 도드라진다. 지금껏 밝은 모습으로만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왔던 박보영의 그늘을 느낄 수 있는 연기변신도 주목할만하고, 까칠하지만 그 뒤에 어린아이가 숨겨진 듯한 홍시준을 연기한 이준영과, 사랑하지만 과거에 머물러 있는 홍시준이 현재로 나올 수 있게 아픈 이별을 선택하는 손주아 역할의 전소니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사랑을 담은 청춘멜로지만 사람과 삶이 보이는 드라마다. 어찌 보면 삶이란 어둠 속을 홀로 걸어가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의 온기를 찾고 어둠 저 편의 달을 찾는다. 무겁디 무거운 삶의 무게 앞에서 시시콜콜한 멜로영화 한 편이 주는 위로는 그래서 더더욱 크고 따뜻하다. (글:일간스포츠,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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