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기 일주일 전’, 김민하의 절망은 희망으로 바뀔 수 있을까

내가 죽기 일주일 전

“봄이 제일 힘들다.” 티빙 드라마 <내가 죽기 일주일 전>에서 정희완(김민하)이 하는 이 말은 역설적이다. 만물이 피어나는 봄을 정희완이 제일 힘들게 여기는 건, 죽은 김람우(공명) 때문이다. 좋아했지만 람우는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 후 희완은 대학을 갔지만 4년 간 세상과 문을 닫고 살았다. 람우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고 탓하며. 모든 게 피어나야할 청춘의 시기에 맞이한 람우의 죽음으로 희완은 그 청춘을 제일 힘든 나날들로 보내고 있다. 

 

“그 중의 4월은 최악이다.” 희완은 그 중의 4월. 그것도 4월1일 만우절을 최악으로 생각한다. 교생선생님을 속이기 위해 람우와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친구들도 선생님도 그들을 바꾼 이름을 부르게 됐고, 나중에는 그들 자신들도 바꾼 이름에 고개가 돌려게 됐던 그 일 때문이다. 물론 그 이름 바꾸기는 희완과 람우 모두 학창시절 가장 재밌던 일이었지만, 람우의 죽음은 그 재밌던 일을 악몽으로 바꿔 놓았다. 희완은 자신이 당첨된 별똥별 보기 천문대 행사에 람우를 대신 보냈다. 평소 별똥별을 보고 싶어하던 람우에게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는 선물이라며. 하지만 그 천문대에 난 화재로 람우가 죽었다. 

 

아름답고 빛나던 삶의 순간들은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는 가장 힘든 기억이 되기도 한다.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은 바로 그 빛나던 청춘의 순간들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삶의 의지조차 잃어버린 희완 앞에 어느 날 문을 두드리고 찾아온 람우의 이야기다. 람우는 자신이 저승사자라며 대뜸 희완에게 일주일 후에 너는 죽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람우는 그 남은 일주일 동안 그간 못해본 것들,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하자고 한다. 2인용 자전거 타기, 클래식 공연 보기, 패러 글라이딩 하기 같은 것들을 하게 되지만 그건 희완이 아닌 람우의 버킷리스트다. 

 

희완 앞에 나타난 저승사자 람우라는 존재는,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이라는 드라마를 하나의 판타지로 보이게 하지만 그건 절망의 끝에 서 있는 희완이 이제 더 이상 못버티겠는 마음이 만들어낸 환영처럼 읽히기도 한다. 즉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은 이제 삶이 너무 버거워 삶을 끝장내려는 희완이 마지막 일주일 동안 람우와의 기억들을 되새기고 남은 이들을 찾아가 하나하나 정리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희완 역할의 김민하는 연기의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매력을 발휘하는가를 제대로 보여준다. 김민하의 화장기 하나 없어 주근깨조차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꾸밈 없는 모습은 희완 그 자체로 보인다. 그 빈 도화지 같은 희완의 모습 위에 김민하는 삶의 생기와 죽음의 허무를 한 인물 안에서 끌어안아 그려낸다. 그래서 이 작품 속 김민하를 보다보면, 청춘의 발랄함과 그 이면을 가로지르는 삶의 유한함이 겹쳐지며 웃다가고 울게된다. 

 

김민하가 연기로 보여주듯 삶과 죽음은 이란성 쌍둥이처럼 연결되어 있다. 학창시절 설레던 사랑과 따뜻했던 우정으로 빛나던 삶은 죽음 앞에서는 더더욱 아련해진다. 정반대로 사라져 버린 죽음 앞에서 삶의 기억들을 더더욱 찬란하다.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은 이 삶과 죽음의 변주를 담아낸다. 그래서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이 드라마는 삶의 활기와 발랄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학창시절 이들이 얼마나 빛났고 행복했던가를 희완은 저승사자로 나타난 람우와 함께 기억해내고, 그 행복한만큼 사라진 시간들의 회한을 느낀다. 

 

드라마는 희완과 그녀의 앞에 저승사자로 나타난 람우가 일주일 간 티격태격하면서 보내는 시간들을 담고 있지만, 그것이 희완의 환영이라고 생각하면 이 밝은 시간들이 얼마나 절절한 아픔과 슬픔으로 채워져 있는가를 절감하게 된다. 이름을 서로 바꿔 지내며, 서로의 이름으로 살아왔던 그들이다. 이렇게 저승사자로까지 나타나 희완에게서 떼어지지 않는 람우의 모습은 너무나 이해되면서도 아픈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날밤 이후로 나를 용서할 수가 없어. 그런데 네가 내눈앞에 이렇게 나타나 있으니까 순간순간 니가 진짜로 살아 있다고 기대하는 내가 너무 한심해. 왜 옛날처럼 나한테 잘해주 고 웃어주고 나 때문에 니가 죽은 일이 없는 것처럼 구는 건데? 도대체 너 나랑 뭐하고 싶은 거야, 진짜?” 

 

희완은 죽고 싶을 정도로 절망적이지만 그런 그녀에게 람우는 말한다. “정희완. 좋아해 희완아. 나 너 많이 좋아했어. 지금도 좋아해. 미안해 너무 늦게 말해줘서. 내가 널 어떻게 미워해? 니가 보고 싶어서 온 거야. 많이 보고 싶어서.” 그건 람우가 못다한 말이면서, 희완이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 게다. 일주일 후에 희완이 죽는다는 람우의 말은, 희완 스스로 일주일만 살겠다는 의미였을 게다. 

 

하지만 그 일주일 동안 저승사자로 나타나 람우와 보낸 시간 속에서 희완은 생각대로 끝을 맞이할까. 어쩌면 람우와의 빛나던 기억들이 희완이 놓으려하는 삶의 끈을 다시 쥐게 하지는 않을까. 죽음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고통이지만, 망자에 대한 기억은 우리를 그래도 살게 해주는 희망일 수 있지 않을까. 웃으면서도 눈물이 나고, 그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을 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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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 악당들끼리의 진흙탕 싸움을 관전하는 재미

악연

“그냥 악연이라고 생각해.” 드라마 엔딩에 이르러 접하게 될 이 대사는 넷플릭스 드라마 <악연>을 한 줄로 설명해준다. 악당들이 누가 더 악한가를 드러내듯 줄줄이 등장해 서로 얽히고 설키며 벌어진는 사건을 그린 <악연>은 피카레스크가 그러하듯이 선한 인물을 찾는 게 어려울 지경이다. 거의 유일하게 등장하는 피해자이자 선역인 의사 이주연(신민아)조차 마약을 이용해 악당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사람을 살려야할 메스로 죽이려 할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유일한 선역인 이주연의 이 분노와 복수심이 너무나 이해될 정도로 여기 등장하는 악당들은 지독하게 악한 자들이다. 사채빚에 몰려 사망보험금 5억을 타내려고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죽이려는 계획을 꾸미는 아들, 아픈 아들의 병원비를 보내기 위해 이 살인의뢰를 맡아 실행에 옮기는 조선족, 음주 상태에서 노인을 치는 사고를 낸 후 이를 은폐하려 야산에 암매장하는 불륜남, 그걸 보고 어쩔 수 없이 매장을 도운 후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는 목격자, 불륜남의 돈을 뜯어내려 의도적으로 접근한 꽃뱀... 

 

‘더럽게 얽힌 악한 인연’이라는 포스터의 문구처럼 이들은 현재 벌어진 사건과 과거사까지 겹쳐지며 더럽게 얽혀 있다. 그래서 저마다의 끔찍한 욕망들이 부딪치면서 사건이 어디로 흘러갈지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니 선이 악을 이기는 흔한 권선징악 스릴러는 애초부터 기대할 수가 없다. 선의나 그런 의지를 가진 인물 자체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악당들끼리 펼쳐지는 진흙탕 싸움이 펼쳐지는데 기묘하게도 이것이 <악연>이라는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힘이다. 그것은 이들의 욕망이 늘 계획한대로 흘러가지 않고 엉뚱한 변수를 맞이해 엇나가는 과정들이 펼쳐지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사망보험금을 쉽게 탈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자는 아버지가 사고현장이 아닌 야산에 매장된 채 발견되면서 살인사건을 의심받고, 음주 사고로 죽은 노인을 목격자까지 협박해 함께 야산에 암매장한 불륜남은 사실 꽃뱀사기범인 그 목격자의 끝없는 협박에 시달린다. 

 

그러니 이들의 악독한 욕망이 번번히 좌절되는 그 과정은 이 어두운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악연>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흥미로운 건 이 좌절이 저들의 욕망들이 부딪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욕망이 가진 칼날들은 그렇게 저들끼리 부딪치고 애초 계획된 방향을 벗어나 엉뚱하게도 빙 돌아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악연’이라는 제목이 그저 우연적인 ‘인연’이었다면 개연성을 찾기 어려웠겠지만, 여기에는 악당들의 강력한 욕망이 야기한 결과라는 점 때문에 시청자들은 아귀가 맞아돌아가는 악연의 쾌감(?)에 몰입하게 된다. 

 

물론 하나하나 사건들의 연관고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딱 아귀가 맞을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이 생기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청자들은 저들의 엇나간 욕망이 좌절되고 무너지기를 기대하는 마음 속에서 그 아귀를 기대하게 만든다. 시청자들의 욕망과 기대가 만들어내는 판타지가 개연성에 개입한다고나 할까. 

 

이 드라마에서 현실감은 주는 부분은 유일한 피해자인 이주연이 끝내 복수를 결행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장면일 게다. 학창시절 여럿에게 성폭행 피해를 입은 이 인물은 어쩌다 자신의 눈앞에 그 가해자 중 한 명을 마주하게 되는데, 사건 이후 단 하루도 편히 잠잘 수 없었던 그녀는 끝내 복수를 결행하지 못한다. 이것은 사법 현실이 제대로 처벌하지 않아 고통의 나날을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들의 분노와 좌절을 작품을 통해 잘 그려낸다. 

 

하지만 이들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저들 스스로의 악독한 욕망과 질깃한 악연들 속에서 스스로 무너질 것이고 그것이 ‘사필귀정’이라고 말하는 듯한 이 작품의 색다른 판타지는 우리네 사법 현실의 무력감을 오히려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 작품 속에서 형사나 검사 같은 사법 집행자들의 정의 구현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더럽고 질기게 얽힌 악연들이 그들 스스로를 파괴하는 과정이 주는 판타지가 그려지고 있을 뿐. 이것은 섣불리 선이 악을 이긴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우리네 사법 현실의 안타까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죽하면 ‘악연’이라는 판타지를 내세워 현실이 채워주지 못하는 처벌을 대신할까.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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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영웅

사춘기 청소년들이 마주한 폭력적 현실은 글로벌 화두가 되고 있는 걸까.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국드라마 ‘소년의 시간’과, 최근 웨이브에서 넷플릭스로 옮겨 시즌1이 선공개되고 곧 시즌2 공개를 앞두고 있는 ‘약한영웅’ 이야기다. ‘소년의 시간’이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이 마주한 혐오의 폭력을 편집점 없는 원테이크로 그 막막한 현실 그대로를 담아냈다면, ‘약한영웅’은 범죄와도 맞닿은 학교폭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치하는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무력감을 전형적인 ‘너드 히어로물’의 틀로 그려냈다. 범죄와는 거리가 멀 것처럼 느껴지고 또 응당 그래야 할 아이들이 마주한 끔찍한 폭력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사건들은 자못 충격적이지만, 두 작품 모두 그 폭력의 밑그림을 제공하는 사회 현실의 문제들을 놓지 않고 있다. 두 작품 모두 글로벌 화제작으로 떠올라, 글로벌 OTT 순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는 ‘소년의 시간’이 부동의 1위에 올라있고, ‘약한영웅’ 역시 공개되자마자 글로벌 3위까지 오르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특히 ‘약한영웅’이 넷플릭스 공개만으로 글로벌 흥행의 신호탄을 쐈다는 건 주목할만한 일이다. 이미 2022년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로 공개됐던 ‘약한영웅’은 당시에도 웨이브 구독자 유입에 혁혁한 성과를 낸 바 있다. 시즌2에 대한 요구들이 봇물처럼 쏟아졌지만 누적적자로 인해 웨이브의 투자가 어려워졌던 ‘약한영웅’은 넷플릭스에서 시즌2를 제작 공개하는 이례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 그래서 복습 차원으로 넷플릭스에서 선공개된 ‘약한영웅’ 시즌1이 순식간에 글로벌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건 이 작품이 ‘국내용’ 그 이상의 콘텐츠였다는 걸 말해준다. 

 

사실 웨이브 오리지널로 ‘약한영웅’이 공개됐을 때, 이 작품은 토종 OTT의 영민한 선택으로 여겨진 면이 있었다. 즉 넷플릭스처럼 거대 제작비를 투여할 수 없는 토종 OTT로서 탄탄한 웹툰 원작을 대본화하고, 신인이라고 할 수 있는 박지훈, 최현욱, 홍경, 신승호, 이연 같은 배우들을 캐스팅해 최적의 효과를 내는 결과물을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로 옮겨진 후 복습의 차원으로 다시 ‘약한영웅’ 시즌1을 들여다본다면 이 작품이 갖고 있는 파괴력과 완성도를 다시금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글로벌 반응이 당연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다시 보면 신인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박지훈의 시종일관 공허한 듯한 반항적인 눈빛 연기가 인상적이고, 최현욱의 액션과 홍경의 기막힌 내면 연기를 새삼 발견하게 된다. 박지훈이 ‘약한영웅’이 가진 무관심한 어른들에 대해 속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를 응축해냄으로써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압도한다면, 최현욱의 발랄한 액션은 그 무게감에 질식되지 않게 하면서 작품을 즐기게 해주고 여기에 홍경이 보여주는 ‘자신도 왜 그러는지 모르는 엇나가는’ 모습을 정교한 내면연기는 작품에 밀도와 깊이감을 만들어낸다. 특히 국회의원의 이미지메이킹용으로 입양되어 마치 전리품처럼 이용만 당하는 오범석(홍경)이라는 인물이 마주하게 되는 막막함과 분노 그리고 탈선을 끝까지 막으려 하고 이해해주려 하는 이가 어른들이 아닌 친구인 연시은(박지훈)과 안수호(최현욱)라는 지점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도 찌르는 면이 있다. ‘약한영웅’이 흔한 학원액션물이나 너드 히어로물에 머물지 않고 진한 여운을 남겼던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소년의 시간’처럼 ‘약한영웅’ 역시 어른들을 충격에 빠뜨리는 아이들의 현실을 우리 눈앞에 던져 놓는다. 물론 ‘소년의 시간’이 보다 진지한 사회극의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작품이라면, ‘약한영웅’은 훨씬 학원액션물의 타격감을 갖춘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시원시원한 도파민 액션이 매회 폭발하지만 이 아이들에게 내재된 불안과 분노와 막막함이 주는 문제의식이 결코 약하다 말하긴 어렵다. 

이 달 25일 ‘약한영웅 Class 2’가 드디어 넷플릭스를 통해 돌아온다. 시즌1이 공개되자마자 글로벌 반응이 터진 것처럼, 이 시즌2가 불러일으킬 반향이 궁금해진다. 과연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글로벌 무대 위에 선 ‘약한영웅’은 어떤 글로벌 평가를 받게 될까. 박지훈이 새로 전학가게 된 은장고등학교에서 또 어떤 폭력과 마주해 싸우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글:일간스포츠,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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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 기술’,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에도 순애보가 담긴다는 건

협상의 기술

망한 게임 택배왕을 만든 회사 차차게임즈는 망하기 일보직전이다. 이 회사를 산인그룹 M&A 팀장 윤주노(이제훈)는 사려고 한다. 택배왕이라는 게임 때문이다. 워낙 게임의 차원을 넘어서는 디테일 때문에 그 시스템(지도나 물류 시스템 등)을 활용해 쉽게 이커머스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다. 전통적인 유통과 물류를 해온 산인그룹은 이커머스에 일찍이 뛰어들지 않아 한계에 봉착했다. 차차게임즈를 사는 일은 회사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됐다. 

 

JTBC 토일드라마 <협상의 기술>은 이처럼 M&A라는 치열하고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다. 지금껏 직장을 다룬 작품들이 적지 않았지만, <협상의 기술>은 본격 기업극화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 디테일이 다르다. 실제로 이승영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무수한 사례들과 취재를 거쳐 실제 비즈니스의 리얼리티를 만들려 노력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작품에 담긴 M&A 관련 에피소드들이나, 기업 내부에서의 권력 다툼, 건설로 성장했지만 이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 살아남게 된 회사 인물들의 고뇌 같은 것들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M&A라는 비즈니스의 세계가 냉정하다는 걸 잘 말해주는 건 이 팀을 이끄는 윤주노라는 인물의 캐릭터에도 담겨있다. 위기에 처한 산인그룹을 회생시키기 위해 M&A 전쟁에 뛰어든 윤주노는 도통 표정이 없고 그래서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백사’라 불리는데, 머리를 하얘서 그렇게 불리는 줄 알았더니 실은 행동하기 전 ‘백번 생각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만큼 신중하고, 협상에 있어서는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이 협상의 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선택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세계가 냉정하다는 건 그 치열한 경쟁을 말하는 것이지 그렇다고 기계적인 차가움만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래서 어디든 감정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협상의 기술>이 3,4회에 다룬 차차게임즈 인수 에피소드는 이를 잘 말해주는 소재다. 차차게임즈 차호진(장인섭) 대표가 오수연(박하랑)을 짝사랑해 자신이 만든 게임 택배왕과 하이스퀘어에 똑같은 이스터에그(개발자들이 자기 흔적을 숨겨두는 것)를 남기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차호진은 게임에 브금을 녹음했던 오수연을 짝사랑했지만, 공대생답게(?) 그 마음을 드러내고 표현하지 못했다. 대신 오수연의 집 앞 꺼진 가로등 대신 랜턴을 100일동안 걸어두고 가져오고 하는 일을 했던 차호진은 결국 오수연이 자신과 함께 게임 개발을 했던 선배 형 도한철(이시훈)과 사귀게 되자 그 회사를 나와버렸다. 도한철은 오수연도 빼앗고, 차호진이 개발했던 게임도 도둑질해 하이스퀘어라는 게임을 출시해 큰 성공까지 거둔다. 차호진은 억울해 도한철에게 절도로 소송을 걸었지만 회사는 망하기 직전까지 몰린다. 

 

게임 안에 심어 둔 이스터에그는 차호진이 오수연에게 계속 보내는 사랑의 고백이 됐다. 게임 안에서 꺼진 불을 밝히는 인물은 차호진의 분신이고, 그 불빛 저편에는 오수연의 분신인 캐릭터가 그림자로 어른거린다. 차호진 대표의 오수연에 대한 순애보는 이 차갑고 비정하기만 할 것 같은 비즈니스의 세계가 그것 역시 심장이 뜨거운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걸 드러낸다. 기업 극화이지만 멜로의 감성들이 피어나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협상의 기술>이 이스터에그 속 순애보를 통해 담은 건 그저 멜로 서사만이 아니다. 그 이스터에그는 도한철이 차호진의 개발물을 훔쳐갔다는 증거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택배왕의 이스터에그와 하이스퀘어의 이스터에그가 똑같이 어두운 밤길 불을 밝히는 것이라는 걸 알아낸 M&A팀은 이를 통해 도한철과 딜을 함으로써 그로부터 차차게임즈에 100억을 투자하게 만든다. DC의 지분 10%까지 얹어서. 그리고 이 에피소드의 마무리는 오수연이 우연히 택배왕의 이스터에그에 담긴 비밀을 알고 놀라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협상의 기술>은 이처럼 디테일한 비즈니스의 세계를 담으면서도 그 안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안판석 감독 특유의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쌓아나가는 연출력은 이 복잡해 보이는 서사들을 어렵지 않게 풀어내고, 그래서 빠져서 보다보면 M&A라는 비정한 세계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인간적 감정들과 분노와 희열이 교차하는가를 실감하게 해준다. 좋은 대본에 베테랑 연출이 더해지고 그 위에서 배우들의 단단한 연기가 펼쳐지면서 생겨난 간만에 보는 흥미진진한 본격 기업극화가 아닐 수 없다.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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