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들/이주의 드라마
-
‘사랑은 외나무 다리에서’, 뻔해도 보게 만드는 로맨틱 코미디옛글들/이주의 드라마 2024. 12. 9. 07:32
“나랑 연애합시다. 라일락 꽃 피면.” 독목고등학교 이사장으로 오게 된 석지원(주지훈)은 술자리에서 윤지원(정유미)과 ‘미친 라일락’이 꽃을 피울까 안 피울까를 갖고 옥신각신하다 이를 두고 내기를 걸게 된다. 라일락 꽃이 피지 않으면 이사장직을 내놓으라는 윤지원의 제안에 그러겠다고 선선히 말한 석지원은 대신 라일락 꽃이 피면 자신과 연애하자고 제안한다. tvN 토일드라마 ‘사랑은 외나무 다리에서’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석지원과 윤지원 사이의 특별하고도 오래된 관계를 드러낸다. 두 사람 집안은 할아버지대부터 이어진 철천지 원수 지간이다. 석지원의 아버지 석경태(이병준)는 윤지원의 할아버지 윤재호(김갑수)가 이사장으로 있는 독목고 재단을 사들여 과거 자신의 사업을 어렵게 했던 복수를 하려 한다. 그러니 석..
-
기발한 상상력, 강풀의 ‘조명가게’ 오싹한데 뭉클한 이 세계옛글들/이주의 드라마 2024. 12. 9. 07:27
‘조명가게’, 어떻게 공포가 감동으로 바뀔 수 있었을까(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환자는 의식이 없는데 어떻게 의지가 생기죠?” 흔히들 의식불명에 빠진 중환자의 가족들에게 의사는 ‘환자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의식이 없던 중환자가 죽음의 문턱에서 사경을 헤매다 살아돌아온 건 어떤 의지 때문이었을까. 강풀 원작의 디즈니+ 드라마 ‘조명가게’가 그리고 있는 독특하고 기발한 세계관은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했을 게다. 그들의 의지는 어쩌면 환자만의 의지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모든 이들의 의지가 더해진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력으로부터. 퇴근 길 버스정류장에 매일 같이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여자, 그 여자가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걸어다니는 어두운 동네, 불빛이 하나도 없어 김..
-
우리는 ‘습관처럼, 분리불안처럼’ 살아가는 건 아닐까옛글들/이주의 드라마 2024. 12. 9. 07:24
‘트렁크’, 시스템의 관계들을 분해하자 드러난 것들우리는 어쩌면 습관처럼, 분리불안처럼 살아가는 건 아닐까. 결혼은 사랑의 결실로 이야기하지만, 결혼 후의 삶은 과연 사랑으로 계속 채워질까. 사랑은 과연 그렇게 영원한걸까. 사랑이 아니라면 결혼 후의 관계는 무엇일까. 저마다 각자가 가진 외로움과 불안과 습관 그리고 혹은 상처들이 뒤범벅되어 그저 서로를 붙들고 있는 그런 건 아닐까. 넷플릭스 시리즈 ‘트렁크’는 이처럼 많은 질문들을 던지게 만드는 작품이다. 사랑과 관계 그리고 결혼에 대해 그 실체를 질문하는 작품인지라 클리셰적인 멜로나 로맨스 혹은 치정을 기대했지만 실망감만 가득할 작품이다. 게다가 ‘기간제 결혼’이라는 과감한 가상 설정은 이 드라마의 문턱을 높인다. 일단 이 문턱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 안..
-
작두 탄 임지연, ‘옥씨부인전’ 심상찮다옛글들/이주의 드라마 2024. 12. 2. 19:42
‘옥씨부인전’, 시작부터 시청자들 뒤흔든 감정의 정체“제 이름은... 구덕입니다. 구더기처럼 살라고 제 주인이 지어 준 이름입니다.”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에서 구덕이(임지연)는 이름을 묻는 옥태영(손나은)에게 그렇게 말한다. 구덕이. 사람 이름을 어찌 구더기라 지을까. 그것도 구더기처럼 살라고. 하지만 이건 ‘옥씨부인전’이 그리는 조선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서사의 현실이다. 노비들의 이름을 그러했다. 구덕이의 아버지는 개죽이(이상희)였고, 송서인(추영우)의 몸종도 쇠똥이(이재원)였다. 구더기, 개죽, 쇠똥 같은 미천한 존재들. 심지어 ‘몸종’이라 불리던 그들의 이름이다. ‘옥씨부인전’은 바로 그 역사의 기록 따위는 남아 있지 않은 채 구더기처럼 때론 개죽처럼 길가에 널린 쇠똥처럼 살다간 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