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 자칫 막장 같은 상황에 깊이감을 주는 배우들의 힘

보물섬

사랑과 욕망, 그리고 배신과 복수. 극강의 권력을 가진 비선실세와 그가 짜놓은 덫에 걸려 죽을 위기에 몰리는 주인공. 하지만 죽지 않고 돌아와 복수하는 몬테 크리스토 같은 익숙한 서사에, 2조원이라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액수의 돈이 불러 일으키는 욕망들... SBS 새 금토드라마 <보물섬>은 흔히 말하는 ‘막장드라마’가 가질 수 있는 소재들은 다 가졌다. 

 

제작발표회에서 밝힌 것처럼 이 드라마는 아예 ‘매운맛’을 전면에 내걸었다. 일단 서동주(박형식)라는 인물 자체가 순하지가 않다. 목적을 위해서는 대산그룹 차강천 회장(우현)이 시키는 불법적인 일들도 맡아서 하는 인물이고, 한때는 야망을 위해 대산가의 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려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최강 빌런인 염장선(허준호)은 비선실세로 모든 걸 뒤에서 조종하려 하는 인물이고, 그와 비즈니스적으로 얽혀 있는 차강천도 만만찮으며, 차강천의 사위인 허일도(이해영)는 회장이 아끼는 서동주를 경계하는 야심 가득한 인물이다. 

 

저마다 욕망이 드글드들한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으니, 그 판 위에 던져진 비자금 2조원이라는 돈은 이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염장선은 서동주를 이용해 비자금을 만든 후 그를 죽이려 하고, 차강천은 자신의 혼외자 아들 지선우(차우민)를 서동주의 도움을 받아 후계구도에 끼워 넣으려 한다. 대산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 하는 차강천의 맏사위 허일도는 이 사실을 알고는 서동주를 제거하라는 염장선의 사주를 받게 된다. 

 

돈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대결구도 속에 사랑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그런데 이 사랑 이야기도 그저 달달한 순한 맛이 아니라, 쟁취하느냐 마느냐 하는 매운 맛이다. 사랑을 위해 야망까지 접었던 서동주는 뒤늦게 자신이 사랑한 여은남(홍화연)이 차강천 회장의 외손녀라는 사실과 더불어 그녀가 자신을 배신하고 염장선의 조카인 염희철(권수현)과 정략결혼을 한다는 걸 뒤늦게 알게된다. 

 

이제 서동주는 돈과 권력 쟁탈의 투쟁 속에서도 밀려날 위기에 처했고, 또 사랑에 있어서도 배신당하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남은 일말의 자산이 있는데, 그건 한 번 보면 사진처럼 잊지 않는 기억력과 은근한 신임을 얻고 있는 차강천 회장 정도다. 2회까지 그려진 밑그림은 그래서 앞으로 뻗어나갈 치열한 욕망의 매운 대결을 기대하게 만든다. 

 

중요한 건 이러한 욕망들의 부딪침을 다루는 작품들이 허무맹랑한 수준까지 치고 나가는 막장 같은 느낌을 줘서는 오히려 매운 맛이 실소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김순옥 작가가 쓴 <펜트하우스>가 그 매운 맛으로 큰 성공을 거둔 후, <7인의 탈출>이라는 괴작을 만들어낸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매운 맛에만 집착해 현실감까지 날려버리는 전개가 드라마를 너무 가볍게 만들어 오히려 매운 맛을 싱겁게 만들어버리는 결과가 생겨났던 거였다. 

 

<보물섬>은 그런 점에서 보면 과잉된 전개조차 적절히 눌러주는 균형감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소재적으로만 보면 막장 전개의 갖가지 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개연성을 넘어섬으로써 가벼워질 수 있는 작품을 눌러주고 있는 건 배우들이다. 주인공 박형식은 그래서 이 작품이 막장처럼 보이지 않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고, 그와 대결구도를 이루는 허준호는 극악한 모습을 세움으로써 그와 맞서게 되는 박형식을 더 현실감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래서 <보물섬>의 대결구도는 박형식과 허준호의 연기 대결을 통해 더욱 극대화되고 있다고 느껴진다. 물론 박형식은 이 작품을 통해 보다 선굵은 이미지를 앞으로 가져갈 것이지만, 드라마 초반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과정은 이 배우가 이전부터 쌓아오고 있었던 밝은 이미지들이 있어 더 극적으로 보인다. 등장부터 흰색 런닝 차림에 마른 멸치를 먹는 모습만으로도 날카로운 인상을 드러내는 허준호는 말이 필요없는 극적 긴장감으로 박형식의 추락을 더욱 몰입하게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런 대결구도는 복수극이 가져올 반격의 기대감 또한 높여놓는다. <보물섬>이라는 작품의 보물은 그래서 이 두 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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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과 최우식의 ‘멜로무비’, 영화 같은 사랑에 담은 사람이야기

멜로무비

아홉 살에 세상의 모든 영화를 다 보겠다고 마음 먹는 아이는 영화가 그리도 좋았던 걸까. 아니면 홀로 어두운 밤을 보내야 하는 시간들이 그만큼 힘겨웠던 걸까. 넷플릭스 드라마 <멜로무비>는 부모를 일찍 잃고 형과 함께 비디오가게에서 살며 밤새 비디오를 보는 고겸(최우식)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두운 방안을 빛으로 채워주는 영화에 빠져드는 아이 고겸으로부터. 

 

영화를 좋아해서일까. 스물 여섯 살이 된 고겸은 배우로서의 꿈을 키우며 영화판에 들어왔다가 김무비(박보영)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연출 스태프에게 빠져든다. 무비라는 이름이 고겸을 잡아끌었지만, 정작 무비는 자신의 이름이 싫다. 영화 판에서 일하다 과로로 일찍 사망한 아버지에 대한 애증 때문이다. 가족까지 등지고 열심히 영화를 향한 꿈을 펼쳤지만 이렇다할 영화 한 편 제대로 내지 못했던 아버지. 그렇게 일찍 떠난 아버지에게 무비는 그가 얼마나 한심한 사람이었는가를 보여주겠다며 영화판에 뛰어든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영화 촬영현장에서 만난다. 한 사람은 영 연기에는 재능이 없어보이지만 사람이 좋아 누구나 좋아하는 너스레 가득한 청년이고, 다른 한 사람은 스텝으로 일하고 있지만 한 발 물러나 섬처럼 그들과는 섞이지 않는 조용한 청춘이다. 고겸은 마치 주인 따라 다니는 댕댕이처럼 김무비를 졸졸 따라다니고 그런 고겸에게 어느 눈오는 날 김무비는 첫 키스를 한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키스를.

 

하지만 삶이 어찌 영화 같은 순간들로 채워지랴. 그 키스를 한 날 이후 갑자기 고겸은 사라져버리고 김무비는 기다리다 지쳐 마음을 접는다. 아버지가 갑자기 떠났을 때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알았던 무비였다. 그래서 누구와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던 그녀였다. 하지만 겨우 고겸에게 마음을 열었을 때 다시금 찾아온 건 그 고통이었다. 

 

고겸 또한 힘겨운 시간들이었다. 갑작스런 자동차 사고로 형은 회복하기 어려워보였지만, 고겸의 정성스런 간병으로 다시 살 수 있게 됐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렀고, 고겸은 간병하며 할 수 있는 글을 쓰다 영화 평론가가 된다. 무비는 고겸을 마음 속에 지워내며 영화 감독의 길을 걸어간다. 

 

한편 고겸의 어린시절부터 절친이었던 시준(이준영)과 주아(전소니)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였지만 어느 날 주아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겠다며 떠나버린다. 음악의 꿈을 갖고 있고 재능도 있었지만 빛을 보지 못한 시준은 자신의 뮤즈인 주아를 잃은 그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나타난 주아가 시준에게 자신이 만들 영화의 음악감독이 되어달라 요구하면서 이들의 손에 닿지 않는 아픈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멜로무비>는 미래의 꿈 앞에서 불안해하고 때론 예기치 않은 일들 때문에 흔들리면서도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게 되는 청춘남녀들의 멜로를 그리는 작품이다. 평론가와 영화감독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와 음악감독이라는 네 인물의 직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들이 연인과 친구로 얽혀 그려내는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해 우리는>을 쓴 이나은 작가의 색깔 그대로 <멜로무비>는 풋풋하고 경쾌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밑바탕에는 생각보다 쓰디 쓴 삶의 서사가 담겨져 있다. 그 고통스런 삶의 모습이 밝게 그려지는 건 다름 아닌 어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그 밝음을 잃지 않는 고겸이라는 인물 덕분이다. 그는 아홉 살 어린 나이에 홀로 비디오가게에서 살아가며 일하러 간 형을 기다리며 살아야 했지만, 그 시간을 영화를 보는 즐거움으로 채웠던 아이였다. 

 

이 지점은 <멜로무비>가 가진 웃음과 행복감 가득한 사랑이야기에 삶의 무게감이 얹어지는 대목이다. 알고 보면 모두가 저마다 무거운 삶을 짊어지고 있었다는 걸 <멜로무비>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들을 담담히 보여주면서 조금씩 꺼내 놓는다. 갑자기 사망한 부모 대신 이제 겨우 이십대에 덜컥 동생을 부양해야 했던 형, 그 형이 사고를 당하자 모든 일을 접고 형을 간병해 살려낸 동생, 영화의 꿈을 꿨지만 현실의 무게에 무참히 꺾여버린 아버지, 그 아버지와의 시간이 간절했지만 먼저 떠나버린 아버지에 대한 상처 때문에 마음을 닫아버린 딸, 남자친구의 뮤즈가 되어 응원했지만 점점 자신이 사라지는 걸 알고는 떠날 수밖에 없었던 여자와 그 여자가 떠난 후 그 시간대에 머물러 살게 된 남자...

 

발랄하게 그려져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 보면 <멜로무비>에는 고통스런 삶들이 군데군데 숨겨져 있다. 하지만 그 고통스런 삶들을 버텨낼 수 있게 해주는 건 반짝반짝 빛나는 일상의 순간들이고 어쩌면 한 발 물러나 그 삶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시선이라고 이 작품은 말하는 듯 하다. 그건 마치 영화를 닮았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오히려 빛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그 속으로 우리를 인도해 잠시 아픈 현실을 잊게 해줌으로서 또 그 어둠 바깥으로 나오게 해주는, 영화를. 

 

고겸과 무비가 어느 어두운 밤 한적한 곳에서 오픈카에 앉아 달달한 사랑이야기를 나눌 때 저 편에 보이는 달은 그래서 <멜로무비>가 하려는 이야기를 그림 한 폭에 담아 놓는다. 이토록 고통스러운 어둠 가득한 삶 속에서 저 달처럼 빛나는 달달한 멜로영화 한 편이 주는 위로는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힘이라는 것. 그렇게 사랑이야기가 사람이야기가 되고 달달함이 묵직한 감동으로 이어지는 작품, 바로 <멜로무비>다.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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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거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이다. 일단 정보가 너무 많아졌고, 비슷한 정보들을 똑같이 복제해 쏟아내는 매체들도 많아졌다. 그러니 뭐가 실체적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슬쩍 가짜뉴스를 띄워 자신들의 배를 채우려는 이들이 많아질 수 있는 환경이다. 대중들은 혼란스럽다. 명백한 진실조차도 믿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거짓에 휘둘리는 현실. 뉴스의 공신력은 갈수록 떨어진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듣던 것만 듣다 보니 이를 이용하는 이들도 많아진다. 답답한 속을 뻥 뚫어주는 ‘진실 보도’에 대한 갈증은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디즈니+ 드라마 <트리거>는 바로 그 갈증을 정곡으로 찌르는 작품이다. 탐사보도팀 ‘트리거’를 이끄는 오소룡(김혜수) 팀장이 바로 그 시원한 사이다 역할이다. 진실 추적을 위해서는 패러글라이드를 타고 잠입할 정도로 열정적이고, 보도하면 죽인다며 총구를 들이 밀어도 물러서지 않는 패기를 가진 PD. 심지어 사장이라고 해도 진실보도를 가로막으려 하며 맞서 싸운다. 다소 과장되게 그려지긴 했지만, 실제로 이런 인물이나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현실에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과거 MBC <PD수첩>이 이런 역할을 했던 적이 있었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도 마찬가지였다. 탐사보도가 가진 뾰족함에 방송사가 곤혹스러워지기도 하고, 그래서 아예 대표를 갈아치워 보도국 사람들을 좌천시키는 드라마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기도 했다. 과잉 취재로 몰려 세상의 지탄을 받게 된 오소룡이, 팀에서 좌천되어 아이스링크 관리하게 되는 장면이 그저 웃고 넘길 농담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 건 그래서다. 한때 방송장악을 하기 위해 교양 PD들을 아이스링크 관리로 보냈던 MBC 사태가 떠올라서다. 트리거팀이 창고 같은 곳에서 일하는 광경 또한 그 시절에는 실제 현실이 아니었던가. 이런 장면들은 결코 우리네 언론에 있어서는 드라마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오소룡 같은 돈키호테에 대한 갈증은 바로 이런 현실에서 생겨난다. 하지만 진실을 가리려는 권력자들과 돈키호테 한 명만으로는 대적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트리거>는 여기에 조직과 스스로 선을 그어 왕따를 당하는 한도(정성일)와, 계약직이라 더 절실하게 취재에 임하며 그런 그를 챙겨주는 오소룡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강기호(주종혁)를 팀으로 꾸려 놓는다. 자발적 왕따거나 타의적 왕따이기 때문에 오히려 조직의 논리와는 다른 언론으로서의 소신을 다할 수 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방송사가 가진 경영적 선택과 공영적 선택 사이에서 언론이 가진 딜레마가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팀원으로서 베테랑 작가 홍나희(장혜진)는 프리랜서 작가라는 점에서 한도나 강기호와 비슷한 위치에 서있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조직에서 밀려난 위치에 서 있다는 점은 이들의 인간적 한계이자 약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바꿔주겠다는 윗선의 청탁 앞에 중요한 인터뷰 내용을 고의로 누락시키는 강기호의 모습은 PD로서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이해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또 탐사보도 베테랑 작가가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 대본을 쓰는 일은 실제로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닌가. 프리랜서인 작가들은 아마도 이런 선택을 통해 실제 탐사보도에서는 채워지지 않았던 갈망들을 드라마를 통해 풀어냈을게다. <트리거>는 이같은 개개인의 약점들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소신과 자존심이 진실 보도라는 대의를 향해 나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돈키호테처럼 혼자 돌진하는 오소룡을 붙잡아주는 것도 바로 이 팀이 가진 힘이다. 

 

<트리거>는 극 초반까지만 해도 ‘활극’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오소룡과 트리거팀의 활약을 극적으로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에게 시원한 사이다를 안겨주는 이 캐릭터들을 매력적으로 그려내기 위함이다. 그래서 사건들은 무거웠지만 이를 풀어가는 과정은 경쾌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드라마는 점점 무거워진다. 활극적인 판타지 보다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채워넣는다. 트리거팀의 맹활약은 이를 저지하려는 세력에 의해 ‘무리한 취재 방식’이라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활극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이러한 극 구성은 아무래도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진실 보도라는 언론의 문제가 그저 가벼운 판타지로만 다룰 수는 없다는 걸 말해주는 것일게다. 현실의 갈증이 빚어낸 드라마지만, 드라마는 이를 통해 현실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글:일간스포츠, 사진: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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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그룹’, 입시 경쟁이 낳은 괴물을 통한 통쾌한 블랙코미디

스터디 그룹

모두가 대놓고 잠든 교실, 이런 애들 앞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한심스럽다며 푸념하는 선생님 앞에 유일하게 필기를 하며 공부하고 있는 인물. 윤가민(황민현)이다. 선생님이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필기하는, 누가 봐도 공부벌레로 보이는 인물이지만 그가 하는 첫 마디는 “믿기 힘들겠지만 난 공부를 못한다”다. 무언가 열심히 푼 듯 빼곡이 등식이 적혀 있는 시험지지만 연실 빗금이 그어진다. 

 

첫 시퀀스가 보여주는 것처럼, 티빙 드라마 <스터디 그룹>은 예상을 빗겨가는 상황과 전개로 시청자들의 시선과 마음을 잡아끈다. 열심히 필기하고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했지만 늘 성적은 꼴찌에 가까운 윤가민의 어린 시절을 훑어내는 장면이 그렇다. 스스로 머리도 나쁘지 않고 모든 노력을 다하지만 늘 바닥인 그에게 과외선생님이 “너 설마 답안지 밀려 쓴 거 아니지?”하고 물을 때 피식피식 웃음이 피어난다.

 

이 정도면 아예 공부에는 길이 없고 대신 다른 길을 찾는 게 맞다 싶지만 윤가민은 진심으로 공부를 잘하고 싶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라는 것이 유성공고다. 이른바 특성화고 특별 전형을 노려 볼 수 있다는 누군가 지나치며 하는 농담을 끝까지 듣지 않고 덜컥 믿어버린 것. 그러니 “아 대학가고 싶다”라고 혼잣말 하는 이 인물의 백치미에 가까운 생각과 선택 그리고 행동들이 웃음을 짓게 만든다. 

 

<스터디그룹>의 주인공 윤가민은 이처럼 그간 무수히 봐왔던 학원액션물과는 너무나 다른 위치에 서 있다. 보통의 학원액션물은 공부 잘 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를 구분하고 공부를 못하면 인성도 안좋거나 혹은 학교폭력 같은 불량한 짓을 하는 인물로 그려지곤 한다. 그런데 입만 열면 공부 공부를 외치는 모범생이지만 실제 공부를 잘할 것 같지는 않은 너드가 주인공이라니!

 

그런데 반전은 또 있다. 맑는 눈으로 공부를 외치는 이 인물이 상상을 초월하는 싸움실력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마치 ‘먼치킨’류의 주인공 같은 싸움실력을 보여주는데, 그렇게 된 이유도 빵 터지는 반전으로 뒷통수를 친다. “강한 몸에 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에 공부를 잘 하고 싶어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운동을 쉰 적이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즉 공부 잘하려고 운동을 했는데 운동만 잘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윤가민이 유성공고에서 펼치는 시원시원한 학원액션의 전설들이 그려진다. 스터디그룹을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그룹을 만들어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방해자들(대부분 일진들이다)을 윤가민은 하나하나 무너뜨린다. 그 싸움의 이유는 온통 스터디그룹 때문이다. 그 그룹의 예비 회원을 보호하기 위해서거나, 선생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또 새로운 신규 회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 인물은 싸운다. 

 

도대체 이게 무슨 학원액션의 엉뚱한 전개인가 싶지만, 보다 보면 폭발하는 액션 신에 도파민이 폭발하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고, 윤가민이라는 ‘맑은 눈의 광인’이 보여주는 말과 행동으로 빵빵 터지는 웃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 짜릿함은 기존 학원액션물이 구축해 놓은 틀에 박힌 설정이나 이야기 전개를 뒤집는 반전에서 나온다. 공부를 하고 싶어 주먹을 든다는 윤가민이란 인물은 그래서 통념을 뒤집는 블랙코미디의 주인공처럼 보이게 만든다. 

 

모범생이지만 실제 성적 순은 일진들보다도 못한 꼴찌에 가깝고, 대신 싸움으로는 일진들은 물론이고 조직폭력배의 일원까지 흠씬 두들겨줄 정도로 우등생(?)인 인물. 그 정도면 재능 있는 운동 쪽을 하는 게 낫지 않냐는 극중 김세현(이종현)의 말처럼, 다른 선택을 하는 게 나을 듯 싶지만 어쩌다 ‘대학 가고 싶은’ 집념에 사로잡힌 이 인물은 그래서 오로지 대학만 가면 모든 게 될 것처럼 모두가 부추기는 입시경쟁의 현실을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하는 캐릭터로 읽힌다. 도대체 대학이 뭐라고 이 지옥 같은 학교 폭력 속에서도 “우리 같이 공부할래?”라고 외칠까 싶은 것이다. 

 

이건 그간 웹툰으로 저변을 만들어내고 OTT와 함께 개화했던 학원액션물의 색다른 진화를 보여준다. 학교폭력이 가진 사회적 무게감 때문에 지나치게 진지했던 <인간수업>, <돼지의 왕>, <3인칭 복수> 같은 작품에서 <약한 영웅>처럼 조금씩 가벼워지며 장르화의 경향을 보이던 학원액션물이 이제는 블랙코미디를 할 수 있을 만큼 경쾌해졌다는 걸 <스터디그룹>은 보여준다. 

 

물론 여기에는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들답게 그 만화적 색깔을 살려내는 다소 과장된 연출기법들이 더해져 학교폭력이라는 현실의 무게감을 가볍게 해주는 장치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 <스터디그룹>은 학교폭력의 참담함을 그려낸 작품이라기보다는 입시경쟁이 만들어낸 공부에 대한 강박을 액션과 코미디로 비틀어낸 성장드라마처럼 보인다. 윤가민과 그를 지지하는 선생님 이한경이 ‘스터디그룹’을 하게 되면서 도무지 학교라고 보긴 어려웠던 유성공고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그들도 성장할 수 있을까를 기대하게 만든다. 

 

공부에 미친 맑은 눈의 광인 윤가민 역할을 마치 만화에서 튀어나온 인물처럼 연기해낸 황민현의 성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환혼>에서 액션과 멜로 연기를 통해 그 가능성을 보였던 황민현은 이번 작품을 통해 확실히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될만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를 중심으로 스터디그룹에 합류하는 김세현 역할의 이종현, 이지우 역할의 신수현, 최희원 역할의 윤상정, 이준 역할의 공도유도 이 작품을 통해 주목될 새내기 배우들이다.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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