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명 작가의 고소와 더 이상 참기 어려운 일들

 

임성한 작가의 원고료 50억설(물론 실제는 50억이 아니라고 한다)에 이어 서영명 작가의 JTBCJS픽처스를 상대로 낸 52억 소송이 알려졌다. 소송 사유는 JTBC <더 이상은 못 참아>를 집필하던 중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는 것. 서영명 작가가 JS픽처스를 통해 전해들은 JTBC측의 해지통보의 표면적인 이유는 대본이 늦게 나와서라고 한다.

 

'더 이상은 못참아(사진출처:JTBC)'

물론 이 늦은 대본문제는 JTBC 관계자에 의하면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밥줘> 같은 드라마를 통해 서영명 작가가 보여 왔던 일련의 작가 권력의 파행을 잘 알고 있다. 당시 막장 전개에 대한 무수한 비판들이 쏟아졌고 그로 인해 방송사까지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었지만 결국 통제가 되지 않았던 상황.

 

늦은 대본문제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사유라고 한다면 <더 이상은 못 참아>라는 드라마의 내적인 이유가 더 클 거라는 점이다. 이 드라마는 제목이 보여주듯이 가부장적인 남편 밑에서 평생 구박당하며 억눌려 살아오던 아내가 더 이상은 못 참고남편에게 이혼청구를 하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됐다.

 

즉 황혼이혼을 소재로 다루는 이 드라마는 그러나 자극적인 설정과 대사로 과연 일일드라마로서 괜찮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새 여자를 아내로 들인 전남편의 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는 설정이라든가, 제 아무리 억압받으며 살아왔다고 해도 거의 막말에 가까운 말들을 남편에게 쏟아내는 아내의 대사 같은 것들은 저녁 시간대에 가족이 함께 보기에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서영명 작가의 교체 시점에서는 갑자기 이 드라마의 주인공격에 해당하는 길복자(선우용녀) 여사가 교통사고로 죽어 관에 실려 무덤 앞까지 갔다가 관 뚜껑을 열고 부활하는 황당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즉 이 드라마의 무리한 설정과 자극적인 전개가 계약 해지 사유의 이면에는 분명 존재할 거라는 점이다.

 

물론 자기 작품을 쓰다가 중도에 교체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큰 충격이자 상처일 수 있다. 하지만 통제되지 않는 폭주기관차처럼 무작정 시청률을 향해 달려가는 드라마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제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시청률만 나오면 다 괜찮다는 식으로 넘어가야 하는 걸까.

 

우리는 이 경우를 <오로라공주>의 임성한 작가를 통해 겪고 있다. 심지어 시청자들이 스스로 일어나 연장 반대와 임성한 작가 퇴출 운동까지 벌이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방송사는 요지부동이다. 계약이 되어 있다고 해서, 아니 시청률이 조금 나온다고 해서 방송사가 작가의 파행을 묵인해주는 건 과연 옳은 일일까.

 

서영명 작가가 얘기하는 작가의 권익은 물론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서영명 작가처럼 이미 권력화된 중견 작가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들의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 빛조차 보지 못하고 있는 젊은 신진작가들에게 필요한 일이다. 마치 이들을 대변하는 듯 얘기하고 있지만 서영명 작가가 과연 이들에게 존경받을 만큼 작가로서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지 자문하고 싶다.

 

방송사의 횡포일까. 아니면 이른바 시청률 보증수표라고 불리는 중견작가의 또 다른 권력 행사일까. 만일 방송사가 아무런 사유 없이 작가를 교체했다면 그것은 물론 힘 있는 자의 횡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서영명 작가의 경우에 왜 굳이 작가를 교체까지 했는가 하는 점을 새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작가의 파행을 막기 위한 선택이라면 그것은 어쩌면 방송사가 시청자들을 보호하려 했던 것이 되지 않을까. 현재 임성한 작가에 대해 대중들이 요구하고 있지만 방송사가 취하지 않은 조치 같은 것들.

 

서영명 작가의 고소에는 분명 작가의 권리라는 측면과 방송사의 입장 그리고 시청자의 권리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면이 있다. 하지만 최근 대중들이 바라보는 중견작가들에 대한 시선이 그리 곱지 않다는 점 또한 거기에는 정서로 깔려 있다. 요즘은 이른바 시청률 보증수표로 불리는 중견작가들이 드라마를 다 말아먹는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이 아닌가.

 

이들이 주로 그리는 가족드라마의 양태를 보면, 말 그대로 파탄 난 가족들뿐이다. 이것은 해체되고 있는 우리네 가족의 현실을 보여주는 일일까, 아니면 가족드라마의 파행을 보여주는 일일까. 무엇보다 서민들의 귀에 들려오는 몇 십 억씩 하는 그네들의 원고료가 과연 그 드라마들의 가치에 합당한가 하는 의구심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잘못하다간 이들 중견들의 시청률 지상주의 드라마들에 우리네 드라마판이 무너질 판이다. 이것이 더 이상은 못 참고 퇴출운동까지 하는 대중들의 마음이다.

<K팝스타3> 일진설이 담고 있는 복잡한 딜레마

 

<K팝스타3> 첫 방은 나쁘지 않았다. 기대감을 충분히 만들어주는 참가자들이 꽤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K팝스타3>의 시청자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이 기대감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대신 그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건 첫 방에 출연해 심사위원의 극찬을 받았던 한 참가자에 대한 비난 글들이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됐을까.

 

'K팝스타3(사진출처:SBS)'

이 모든 상황의 시작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K팝스타 ○○○ 정말 화가 납니다라는 글에서 비롯되었다. 이 글에 의하면 이 참가자는 과거 수업을 방해하고, 행실이 불량했으며,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자신의 친구를 모아 마음에 안 드는 친구를 때리거나, 심지어 손목에 자해를 한 뒤 그 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진이었다는 것.

 

물론 이것은 아직까지 그 진상이 명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인터넷에 끊임없이 그녀의 일진설을 입증하는 내용이라며 무수히 많은 증거들과 그녀가 일진으로 했던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행적들이 열거되어 있지만 그것은 역시 아직까지는 에 불과하다. 당사자 혹은 <K팝스타3> 제작진의 공식 입장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것을 그대로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 결과의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터넷의 속성 상 사실이든 아니든 이미 논란은 거의 기정사실화되어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방송에서 극찬을 받았던 출연자이기 때문에 논란이 제기된 내용은 더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것은 누구나 민감하게 생각하는 일진’, ‘왕따’, ‘집단 괴롭힘같은 사안들이 아닌가. 따라서 누리꾼들의 분노는 클 수밖에 없고 해당 출연자의 하차요구 또한 거세질 수밖에 없다.

 

항간에는 이번 사태를 과거 일진 미화 논란을 일으켰던 <송포유>와 비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비교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K팝스타3><송포유>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송포유>의 경우는 거기 출연하는 아이들의 과거 행적을 이미 알고 있는 제작진이 대처하고 배려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K팝스타3>는 전혀 그럴 수 없었다는 점이다. 노래를 중심으로 예비가수를 뽑는 오디션에서 출연자들을 100% 검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즉 제작진의 의도가 아니며 오히려 출연자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된 건 제작진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K팝스타3> 제작진은 이렇다 할 해명이나 조치를 취하지 않는 걸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K팝스타3>는 적어도 공정한 룰에 의해 합격과 탈락이 결정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과거의 행적이 어떻든, 그래서 대중정서가 심지어 험악하다고 해도 그것을 이유로 강제하차를 시키는 것은 스스로 룰을 깨는 일이 된다.

 

즉 과거의 행적이 문제가 되어 하차를 시킨다고 하더라도 프로그램을 통해서 하차시키는 것이 맞다는 얘기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탈락의 사유는 단지 가창실력과 가능성에만 있지 않다. 요즘처럼 연예계 사건사고가 비일비재하게 터지는 상황 속에서 어쩌면 실력이나 가능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기 관리 능력이나 윤리의식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심사위원들이 이것을 고려해서 이번 논란의 참가자를 판단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좋지 않은 과거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하차를 결정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두운 과거를 가진 많은 참가자들을 우리는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출연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후회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었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과거가 어떻든 현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냐고 받아들이는 입장으로 그들 참가자들의 오디션 과정을 허용하기도 했다. 즉 이것은 과거의 행적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그 행적에 대해서 지금 현재 어떤 입장과 태도를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어두운 과거는 단번에 지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과거를 가진 이들은 특히 대중들과 함께 하는 직업으로 살아가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어쩌면 평생 동안 그 과거를 짐으로 떠안고 살아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런 자세가 아니라면 결코 대중들이 지지해주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용서하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나이 어린 학생이 과거가 주홍글씨가 되어 미래마저 모조리 저당 잡혀야 한다는 것은 가혹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의 과거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 않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겠다는 건 어리석음을 넘어서 무모한 일이다.

 

일진설이 터지고 제작진은 이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진위를 파악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벌써 일주일이 흘렀지만 제작진측에서는 아직도 이렇다 할 입장을 말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저 대충 지나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만일 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 진상을 좀 더 명쾌하게 알려주고 거기에 대한 사후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며, 만일 사실이 아니라면 해당 출연자가 오히려 집중 공격받아 또 다른 피해자가 되는 상황을 막아줘야 한다. 어느 쪽이든 제작진의 해명은 반드시 필요하고 거기에 따른 조치도 빠를수록 좋다.

 

이번 사안은 어쩌면 일반인 방송출연의 시대가 떠안고 있는 딜레마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 마다의 다양한 스토리를 갖고 있는 일반인 출연자들의 장점은 때로는 검증 안 된 과거가 부메랑이 되어 오히려 프로그램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는 것. 또 방송에서 출연자의 과거 행적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 또 이런 문제들을 방송으로는 어떻게 풀어내야 할 것인가 하는 것 등등. 모쪼록 이번 <K팝스타3>가 이런 복잡한 딜레마들을 명쾌하게 풀어낸 한 사례로 남길.

<12>, 기대감 뺄수록 기대되는 까닭

 

우리의 장점은 다 고갈됐다.” <12>을 새롭게 이끌 유호진 PD는 시즌3 첫 방송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장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장점을 묻는 질문에 장점이 없다는 답변. 어찌 보면 황당하게도 느껴질 수 셀프디스다. <12>이라는 프로그램을 예능의 자존심으로까지 여기는 KBS와는 사뭇 다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1박2일(사진출처:KBS)'

이러한 <12>의 셀프디스 분위기는 시즌3의 첫 촬영 예고편에서도 묻어난다. 차태현은 죄송한데 이게 다인가요?”하고 물었고, 김준호는 누구 한 명 데리고 와하고 말했다. 자막으로 표기된 것만 봐도 떠들썩한 섭외의 최종결과’, ‘저조한 인지도’, ‘저조한 자신감같은 문구들이 전하는 고개 숙인 <12>’의 분위기를 미루어 알 수 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당에 왜 유호진 PD는 자신감이나 기대감을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자신 없음기대감 없음을 내세운 걸까.

 

여기에서 유호진 PD가 가진 의외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유호진 PD는 독불장군식으로 <12> 혼자 달려 나가기보다는 지금 현재 대중들이 체감하는 <12>에서부터 시작하겠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사실 현재의 <12>은 전성기가 거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추락한 것이 사실이다. 패턴의 반복으로 기대감은 거의 사라졌고, 새로운 예능 형식들에 비해 어딘지 구닥다리 느낌마저 주는 것도 사실이다. 유호진 PD는 이것을 부정하기보다는 인정하는 지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결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제되어야 할 것이 제작진의 생각과 대중들의 생각이 공유되는 지점이라고 볼 때 유호진 PD의 마인드는 일단 합격점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누가 새로운 멤버가 될 것인가를 두고 인터넷이 뜨겁게 달궈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새 멤버에 대한 기대감이 아니라 기대 없음의 표현이 더 많았다. 아마도 이 실상을 잘 파악하고 있기에 유호진 PD떠들썩한 섭외의 최종결과같은 다소 부끄러운 마음을 드러내는 자막을 붙였을 게다. 셀프디스는 그런 점에서 일단 괜찮은 접근방식으로 여겨진다.

 

<12>이 시즌2를 하면서 망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프로그램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자꾸만 겉핥기만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12>의 본질은 늘 대중들과 함께 하는여행이었다. 그래서 대중의 이름을 빌어 와 복불복을 하고 까나리 액젓을 마시기도 했고, 때로는 제작진 전원이 비를 맞으며 야외취침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또 대중들과 함께 정서를 공유했기 때문에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여행을 했던 것이다.

 

요는 복불복이나 여행 그 자체보다 먼저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 정서적인 유대감이라는 점이다. 저 복불복이 저 여행이 우리들의 여행이라고 느껴지는 것과 저들만의 여행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천지 차이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유호진 PD<12>의 현재 초라한 모습을 꺼내놓고 대중들과 다시 소통을 이어가려는 노력은 그 어떤 새로운 게임의 개발이나 새로운 여행지의 발굴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된다.

 

뭔가 잘 안 되는 이들의 여행은 뭔가 잘 안 풀리는 현실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게도 어쩌면 정서적인 공감대를 줄 수 있다. 이 대중들의 정서적 지점과 제작진이 처한 현실 그리고 출연자가 느끼는 무력감 같은 것이 하나의 공감대로 엮어진다면 <12> 시즌3의 여행은 분명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여행이라는 아이템이 낡아서, 형식 그 자체가 식상해서, 아니면 새로 들어온 출연자들이 재미가 없어서 <12>이 추락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대중들의 정서를 어루만지지 못하고 함께 하지 않으면서 저 혼자 앞으로 달려가기만 하는 소통하지 않는 프로그램에 대중들이 공감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추락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시작하는 마당에 유호진 PD의 셀프디스는 그런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남은 것은 이 정서적 공감대를 어떻게 유지하고 또 어떻게 흥미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일 테지만.

웃다가 짠해지는 김병욱표 희비극의 묘미

 

<감자별>에서 홍혜성이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여진구는 좀체 웃지 않는다. 늘 진지한 표정에 때로는 곧 눈물이 터질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돌아가시고 보육원에서 자란 그는 어쩌다 보니 노씨네 집안의 잃어버린 막내아들 행세를 하고 있다. 빈 집을 전전하며 떠돌던 그에게 생긴 인생 대역전이지만 착한 심성의 그는 늘 불편한 마음이다. 노씨 가족들이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면 줄수록 그곳이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 생각하며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

 

'감자별(사진출처:tvN)'

바로 이 홍혜성이라는 인물의 입장과 그래서 연기로 보여지는 여진구의 무표정은 <감자별>이라는 시트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김병욱 감독표 시트콤이 지금껏 줄기차게 보여줬던 희비극이 이 인물의 상황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웃을 때 웃지 못하는 상황이 있고, 모두가 심각해질 때 비로소 웃음이 터지는 상황도 있다.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희극과 비극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나타난다.

 

21년 만에 처음으로 해주는 생일이라며 온 가족이 준비한 특별한 생일파티에서 홍혜성은 좀체 웃지 못한다. 가족들은 모두 박수치고 좋아하지만 그는 그것이 과연 자신이 누려도 되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것. 이 상황에서 할아버지 노송(이순재)이 준비한 슬픈 곡(?)잃어버린 30이 흘러나온다. 21년만의 생일파티라는 상황과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다소 과장된 상황이 부딪치면서 희극과 비극이 동시에 연출된다. 그들은 웃으면서도 어딘지 슬픈 정조를 동시에 보여준다.

 

아버지의 묘소에서 잃어버린 아들 홍혜성을 찾았다며 그를 안고 과거를 회상하다 눈물까지 흘리던 왕유정(금보라). 이 다소 진지한 상황에서 민망하게 터져 나온 방귀소리는 마치 우리네 삶의 무게를 비웃는 듯하다. 뭐 그리 심각할 필요 있느냐는 것. 하지만 이 민망한 상황 때문에 그녀가 껄끄러워하는 걸 알게 된 홍혜성이 그녀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일부러 연달아 방귀를 뀌는 모습을 연출하고 그 진심을 알게 된 그녀가 감동하는 장면은 웃음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는 걸 잘 보여준다.

 

집도 없어 노씨네 가족 주차장에서 살아가는 나진아(하연수)는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알바 인생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늘 밝은 얼굴이다. 섹시댄스 경연대회 상금을 타기 위해 안되는 섹시댄스를 연습하는 나진아의 이야기는 우스우면서도 슬프다. 또 꽃등심을 먹는 것이 소원이라는 그녀에게 노수동(노주현)이 준 카드로 고기를 사주면서도 더 시킬 때마다 전화를 걸어 허락을 받는 홍혜성의 모습 역시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지는 웃음을 선사한다. 고기 한 점에 이토록 쩔쩔 매는 청춘이라니.

 

결혼기념일에 이벤트를 준비하는 김도상(김정민)이 눈치 빠른 아내를 속이기 위해 교통사고를 위장하자, 응급실로 달려온 노보영(최송현)은 그것이 결국 이벤트였다는 걸 알고 나서도 결코 웃지 못한다. 응급실까지 달려오며 그녀가 느꼈을 끔찍함은 이벤트를 이벤트로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든다. 결국 화가 난 노보영에게 쫓기던 김도상은 계단에서 굴러 진짜로 부상을 당하게 된다. 비극이었다가 희극이 되더니 이내 다시 비극으로 끝나는 이러한 희비극의 반복은 바로 김병욱 감독 시트콤에서만이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지점이다.

 

이번 <감자별>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는 장율(장기하)과 노수영(서예지) 커플의 에피소드에서도 이런 희비극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모두가 고개를 젓지만 장율이 작곡한 CM송이 좋다며 이곳저곳 기획사를 전전하던 노수영이 카스테레오에서 그 음악이 나오자 저도 모르게 꺼버리는 장면이 그렇다. 장율의 예술가적인 삶과 잉여로서의 삶은 그렇게 순식간에 희극과 비극을 반복한다. 모두가 거품키스니 사탕키스니 하는 것을 비인간적이라고 말하며 쓰레기 국물 키스를 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래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쓸쓸함이 묻어난다.

 

물론 김병욱 감독의 희비극은 이미 <지붕 뚫고 하이킥>의 다소 충격적인 엔딩 논란에서부터 그 전조를 보인 바 있다. 시트콤을 정극의 하위 장르로 바라보는 고정관념을 아마도 김병욱 감독은 깨고 싶었을 것이다. 즉 그가 보여주는 희비극적 상황은 희극과 비극이 늘 동전의 양면이라는 뜻이며, 그렇기 때문에 희극이라고 해서 정극과 비교해 낮은 가치로 폄하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걸 잘 보여준다.

 

아마도 <감자별>이라는 제목은 바로 이 희비극적인 상황이 만들어지는 이상한 분위기를 표현한 것이리라. 마치 보름달이 뜨면 그 기운 때문에 사람들이 로맨틱해지거나 멜랑콜리해진다고 하는 것처럼, 감자별이 뜬 상황 속에서 이 시트콤 속 인물들은 웃다가 슬퍼지고 슬프다가 웃게 되는 기묘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경험은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웃음과 눈물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시트콤 <감자별>의 희비극은 이토록 정극이 절대 주지 못하는 지점에 닿아있다. 무표정한 여진구의 얼굴에서 우리는 이 희비극의 웃음과 눈물을 함께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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