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KBS다. KBS의 새 노조는 공정방송을 위한 위원회 설치와 임금협상 등을 놓고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이로써 이 노조에 참여하고 있는 PD들의 해당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방송에 빨간불이 켜졌다. 주말 대표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과 '남자의 자격'은 물론이고 '천하무적 야구단'은 이번 주에 하이라이트를 대신 내보낼 예정이다. 또한 드라마 PD들 역시 파업에 참여한 만큼 파업이 장기화되면 드라마 방영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당장 오는 5일 첫 방영되는 '구미호, 여우누이뎐'이나, 주말극 '결혼해주세요'는 파업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올 상반기 방송가는 유난히 편성에 차질이 많았던 시기였다. 천안함 사태로 한동안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개점 폐업 상황을 맞이했다. 국민적 추도 분위기 속에서 방송은 웃음을 잃어버렸다. 특히 '개그콘서트' 같은 경우 거의 한 달 간 방영되지 않음으로써 심지어 개그맨들이 생활고를 토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진 MBC 노조의 총파업은 방문진(방송문화진흥회)에 의해 임명된 신임 사장 김재철씨에 대한 불신임으로 일어났다. 이로써 '무한도전' 같은 MBC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들을 우리는 한동안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월드컵. SBS의 단독중계로 인해 월드컵 채널화 되어버린 SBS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들은 거의 한 달 여간 결방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KBS가 파업에 들어갔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장기 결방은 해당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에게도 그대로 불이익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결방에 대해 시청자들이 불만을 토로했던 것은 아니다. 사안에 따라서 결방의 이유에 공감하는 시청자들은 오히려 그것을 지지하기도 했다. 천안함 사태로 인한 예능 결방은 초기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지만 결방이 장기화되면서 왜 유독 예능만 직격탄을 맞아야 하는가 하는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예능 프로그램은 결방시키면서 코미디 영화는 대체 편성됐던 점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비판받았다.

MBC의 파업에도 많은 시청자들은 비판보다는 지지의 뜻을 밝혔다. 외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프로그램은 진정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공감대 위에서 시청자들은 MBC의 파업에 그다지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한편 SBS의 월드컵 단독중계로 인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결방에 대해서 시청자와 제작진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김수현 작가는 이것을 '테러'라고 지칭하면서 SBS의 '엿가락 편성'을 강하게 비판했고, 많은 이들은 이에 공감을 표했다.

MBC의 파업에 많은 시청자들이 지지의 뜻을 밝힌 것처럼 이번 KBS 노조 파업에도 이런 분위기는 이어질 전망이다. 이미 이번 대선을 통해서도 민심이 드러난 것처럼, 정권의 방송 장악으로 추정되는 일련의 행보들에 대해 대중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어쨌든 올 상반기 방송사의 편성표는 사상유례가 없는 파행으로 점철된 인상이다.

'제빵왕 김탁구'의 시청률이 30%를 넘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수목드라마들에 대한 애초 기대감으로 보면 의외의 결과다. '나쁜 남자'는 '선덕여왕'에서 비담으로 특유의 까칠한 아우라를 선보였던 김남길의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고, '로드 넘버 원'은 전쟁이라는 다이내믹한 소재에 100% 사전제작드라마, 게다가 소지섭, 김하늘의 출연작으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지금 현재 '나쁜 남자'와 '로드 넘버 원'은 한 자리 수 시청률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까.

먼저 이들 드라마들이 가진 주요 타깃 시청층을 그 첫 번째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제빵왕 김탁구'는 7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드라마로서 4,5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에게 익숙하다. 통속극으로서의 익숙한 소재들과 코드들이 전면에 배치되면서 시선을 끌었고, 막장에 가까운 자극적인 내용들은 그러나 빠른 전개를 통해 식상함을 넘어섰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통속극의 익숙함이 아니라 이 익숙함 위에 얹어놓은 김탁구의 성장드라마다. 전반부의 강한 통속적인 이야기로 기성세대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면 이제 성인이 된 '제빵왕 김탁구'는 성장드라마의 대결구도로 비교적 젊은 세대들의 시선까지 붙잡고 있다.

반면 세련된 영상미와 절제된 스토리로 한 파괴된 남자의 외로운 복수를 담아내고 있는 '나쁜 남자'는 안타깝게도 월드컵 방송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거의 한 달여 간의 결방은 드라마의 몰입도를 떨어뜨렸고, 그것은 복수극과 멜로가 적절히 섞여진 '나쁜 남자'로서는 가장 큰 악재라고 할 수 있다. 나쁜 남자라는 트렌디한 캐릭터를 내세운 점이나, 일드를 보는 것 같은 잘 짜여진 대본, 게다가 현대사회가 가진 속물근성을 끄집어내고 조롱하는 그 속 시원한 메시지까지 이 드라마는 완성도가 높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작품도 월드컵 편성의 벽은 너무 높았다.

한편 '로드 넘버 원'은 기대감과 우려가 교차했던 작품. 이것은 한국전쟁이라는 소재가 가진 태생적인 한계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남아있는 반공세대들의 한국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는 이 작품을 시작 전부터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간 드라마로서는 한동안 다루어지지 않았던 소재라는 점에서 기대감도 만들었다. 하지만 제작진들 역시 이런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듯하다. 초반 2회분을 전쟁 자체보다는 멜로에 집중했고, 그러자 전쟁드라마의 기대감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감정선이 얹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과도하게 빠르게 진행된 멜로의 속도도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3회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전투신과 중간 중간 삽입되는 인물들의 아픈 이야기들은 '로드 넘버 원'이 가진 진면목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강제징집을 하는 국군과 징집당하지 않기 위해 도망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전투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 짧게 인서트로 삽입되는 그 인물의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이 작품이 가진 휴머니즘을 그대로 드러낸다.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는 인간의 모습과, 그 속에서도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잘 표현된 것. 하지만 전쟁이라는 소재 자체가 가진 한계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수목 드라마 세 작품이 가진 성향을 들여다보면 작금의 대중들은 절망적인 과거보다는 희망적인 미래를 보기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거의 절망적인 경험 때문에 현재까지 파괴된 삶을 살아가는 '나쁜 남자'도, 또 한국전쟁이라는 잊지 말아야할 우리네 트라우마보다도, 아무리 막장인 삶 속에서도 그걸 이겨내고 성장하려는 탁구(윤시윤)에 더 몰입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제빵왕 김탁구'의 독주는 물론 작품 내적인 힘, 즉 통속극에 성장극을 엮은 그 힘이 가장 큰 이유이고, 월드컵이라는 변수와 전쟁 소재가 가진 민감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희망적인 메시지도 분명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개그맨 이수근과 김병만이 '승승장구'에 출연해 눈물을 흘렸다. '개그콘서트'에 출연하고 있으면서도 공채시험에서 번번이 떨어지자, 개그를 포기하고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돌아간 이수근. 그와 콤비를 이뤄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김병만. 하지만 개그맨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이 웃기는 일밖에 없었던 그들이지만, 세상은 웃음을 주는 그들의 현실을 바라봐주지 않았다. 웃음을 주기 위해 사실은 남모르게 울고 있는 그들을.

"아마 전세가 다섯 명 정도 밖에 안될 걸요." 이수근이 프로그램에서 밝힌 듯이 개그맨들은 대부분 사글세를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그런 그들에게 '개그콘서트' 같은 개그 프로그램은 생계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 생계는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천안함 사태가 벌어졌을 때, 거의 한 달 여 동안 '금지된 웃음'은 이 사글세를 전전하는 개그맨들에게는 치명타가 아닐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지만 개그맨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개그야'에 이어 '하땅사'도 폐지되었고, '웃찾사'는 시청률에 고전하며 결국 토요일 심야시간대로 편성되었다. 예능의 대세가 되어버린 버라이어티쇼는 더 이상 개그맨의 설 자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몇몇 유명한 MC들이 독식하고 있는 상황이고, 신예들은 가수들이나 연기자들인 경우가 다반사다. 이렇게 된 것은 버라이어티쇼가 그 웃음을 주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무대개그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개그맨들이 무대에서 해왔던 방식은 버라이어티쇼에서는 오히려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1년 여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수근이 그 대표적인 예다.

상황이 이렇지만 개그 프로그램에 대한 이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승승장구'에 함께 출연한 박성호는 "'개그콘서트' 같은 무대가 있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수근은 "연기자들은 쉬면 충전이지만 개그맨들은 방전"이라며 쉬는 것조차 위기상황이 되는 개그맨의 현실을 토로했다. 김병만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마음이 몹시 힘들 때조차 무대에 올라 웃겨야 하는 상황이 개그맨이라는 숙명임을 에둘러 말해주었다.

대부분의 개그맨들이 그렇겠지만 이수근과 김병만은 웃음을 주기 위해서는 뭐든 하는 개그맨으로 정평이 나있다. '1박2일'에서 웃기기 위해 옷을 벗는 이수근은 "그것이 사람들을 웃기게 한다"는 것 때문에 창피하지 않다고 말했고, 김병만은 '달인'을 하기 위해 진짜 달인 수준의 연습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품도 거의 직접 제작한다고 한다.

깜짝 출연한 김석현 '개그콘서트' PD의 말대로 개그맨들은 위대하지만 지나치게 평가절하 되어 있다. 웃음 없는 세상, 우리의 입가에 피어하는 한 순간의 웃음을 위해 뒤에서 눈물을 흘리는 그들은 진정 위대하다. 예능의 대세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지만, 그 기초는 실험적인 개그맨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이 제대로 설 수 있는 무대나 공간이 좀 더 만들어지고, 합당한 가치로 평가되는 날이 어서 왔으면 한다.

사극과 시대극 천하, 드라마는 과거를 추억 중

흔히 사극은 장르적인 관점에서 조선시대 이전을 역사적인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을 일컫는다. 그 후의 역사, 즉 구한말 이후의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시대를 다루는 드라마를 우리는 시대극이라 지칭한다. 물론 장르적으로는 약간씩 다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과거에 있던 역사를 가져와 현재를 말한다는 점에서 사극이나 시대극은 궤를 같이 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자세히 분석해보면 시대극들은 거의 사극의 틀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이언트’는 공간을 강남땅으로, 시간을 7,80년대로 잡고 있지만 그 땅 위에서 벌어지는 소규모 전투(?)와 치열한 복마전은 사극과 거의 유사하다. ‘제빵왕 김탁구’는 70년대의 향수를 근간으로 하지만, 버려졌다가 다시 거성식품이라는 왕국으로 귀환해 왕좌를 노리는 김탁구(윤시윤)의 성장담을 다룬다는 점에서 작금의 퓨전사극을 그대로 닮아있다. 한국전쟁을 겪은 지 60년이 지난 것을 기화로 제작된 ‘로드 넘버원’이나 ‘전우’도 마찬가지다. 이 치열한 전쟁의 풍경은 사극 속에서 익히 보아왔던 처절한 산악 전투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보면 현재 월요일부터 주말까지 일주일 내내 우리는 드라마 속에서 이 사극의 구조를 만나고 있는 셈이다. 월화에는 실제로 ‘동이’가 그 시청률 수위를 차지하고 있고, ‘자이언트’가 그 뒤를 좇고 있으며, 수목에는 ‘제빵왕 김탁구’가 앞서가고 ‘로드 넘버원’이 그 뒤를 좇는다. 주말 밤에는 새로 편성된 ‘전우’가 17% 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기존 동일 시간대의 드라마들보다 훨씬 선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대체 어떤 요소가 이 과거를 추억하는 드라마들을 강력하게 만드는 걸까.

그 해답은 다시 사극의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옛이야기가 갖는 힘이다. 옛이야기는 대중들에게 그 극적 상상력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과장을 허용한다. 따라서 좀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가능해진다. ‘자이언트’의 강모(이범수) 가족이 겪는 이야기는 지나치게 구성되어 있어 우연의 요소들이 많지만, 그것은 시대극이라는 옛이야기의 틀로 들어가면서 시대의 대표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허용된다. 강모는 개발시대의 입지전적인 인물을, 성모(박상민)는 중정으로 표상되는 당대의 권력을, 미주(황정음)는 그 시대를 버텨내고 은막에 오른 스타를 대표한다.

‘제빵왕 김탁구’가 가진 자극적이고 막장적인 요소들은 그 시대가 가졌던 가부장제 하의 몰상식한 일들을 표상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인정된다. ‘로드 넘버원’이나 ‘전우’가 다루는 한국전쟁이라는 소재는 전쟁이 으레 그러하듯이 비윤리적인고 폭력적인 이야기들로 점철되며 때로는 생존 앞에 놓인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전쟁이라는 시대적 아픔 속에서 이해된다.

또한 과거를 추억하는 드라마들이 선전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이 옛이야기가 가지는 극성이 현대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점이다. 현대극에서 갈등이라고 하면 주로 마음의 상처를 주는 정도가 되지만, 이 옛이야기 속에서 갈등은 종종 그 대상의 죽음으로까지 연결된다는 점에서 그 힘이 강하다. ‘동이’ 같은 사극은 물론이고 ‘자이언트’나 ‘제빵왕 김탁구’ 같은 시대극에서도 인물의 죽음은 현대극에 비해 현저하게 빈번하다. 물론 전쟁을 다루는 ‘로드 넘버원’이나 ‘전우’는 말할 것도 없다.

세 번째는 이들 과거를 다루는 드라마들 속에 내재한 성장드라마의 요소다. 이 성장 드라마는 사극의 기본 패턴으로 이제 자리하고 있는 것인데, 시대극이라고 해서 다른 것은 아니다. ‘자이언트’는 개발시대의 비극 속에서 강모의 가족이 생존해가는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것은 또한 강모 가족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제빵왕 김탁구’는 불륜과 치정이 난무하는 막장의 시대를 살아내고 성장하는 김탁구의 성장드라마다. 물론 전쟁 드라마들을 성장드라마로 보기는 어렵지만, 분명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의 성장은 거기에도 존재한다.

사극이 가지는 옛이야기의 힘, 강력한 극성, 성장 드라마적 요소는 작금의 시대극들이 왜 선전하고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어찌 보면 이것은 사극의 확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때 시대극은 특정한 시대나 인물을 찬양한다는 논란으로 시들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시대극이라면 늘 떠올리는 개발시대의 성공에 대한 집착 같은 것들이 현대인들의 마음에 쉬 닿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작금의 시대극은 현재의 사극들이 계속 추구해왔던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과거를 소재로 한 현재의 이야기’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시청자들을 새롭게 만나고 있다. 과거라는 시간대가 하나의 강력한 장애요소가 되고, 그걸 바라보는 현재의 시선이 그 장애를 넘어서는 인물들에 천착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들 시대극은 그 과거의 시간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그 시간적인 간극 사이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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