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억의 여자’, 조여정과 ‘동백꽃’ 후광만 남은 드라마 되어간다는 건

 

점점 드라마가 산으로 간다. 99억이라는 돈을 두고 벌어지는 쟁탈전이 가히 점입가경이다. 돈 가방이 정서연(조여정)의 손에서 이재훈(이지훈)에게로 또 윤희주(오나라)에게 가더니 다시 김도학(양현민)으로 갔다가 레온(임태경)이 깔아놓은 판 위에서 결국에는 홍인표(정웅인)에게 가게 됐다. 사실 이야기가 너무 들쑥날쑥 이고 돈 가방을 두고 벌이는 쟁탈전이 마치 예능 프로그램 게임하듯 돌아가다 보니 이젠 어디로 가도 그다지 감흥이 없다. 어쩌다 KBS 수목드라마 <99억의 여자>는 이 지경이 된 걸까.

 

돈 가방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사람들은 죽어가고 처음에는 주먹질을 하던 액션이 이제는 버젓이 총질을 하기 시작했다. 국내 장르물들도 이제 심심찮게 총을 쓰는 경우들이 적지 않지만, <99억의 여자>에서 갑자기 총이 등장해 서로 쏘고 맞고 피하는 장면들은 어딘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불법 도박사이트가 연관된 조폭들이 등장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총질을 아무렇게나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차량 사고에 불까지 붙어 전소되는 상황에서도 그 흔한 경찰차 하나 등장하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얼마나 개연성이 떨어지고 자의적으로 굴러가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억지로 이야기를 끼워 맞추다 보니 연기 잘하는 연기자들도 때론 난감하게 보일 때가 많다. 돈 가방을 찾아 차를 타고 추격하던 정서연이 엉뚱하게 총에 맞아 피 흘리고 있는 레온을 발견하고 그를 외면하지 못한 채 병원에 데려가는 상황은 그렇다 쳐도, 총에 맞은 레온이 뺑소니를 당했다는 말을 믿는 정서연이나 그렇게 피 흘리면서도 난감하게 “이름이 뭐냐”고 묻는 레온도 생뚱맞기 이를 데 없다. 그건 향후 레온이 자신을 구해준 이가 다름 아닌 자신이 죽인 백승재(정성일)의 이복동생이라는 걸 알게 하기 위한 작가의 무리한 설정이다.

 

아마도 작가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전이 어떤 놀라움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주려면 그만한 촘촘한 개연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개연성 없이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틀기 시작하면 반전이 아니라 그저 급한 전개가 되어버린다. 시청자들은 전혀 몰입하고 있지 않은데 작가만 저 앞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막장드라마에서 많이 봐왔다. <99억의 여자>는 어째서 그 길을 따라가게 됐을까.

 

애초 <99억의 여자>는 꽤 기대감을 만들어준 게 사실이다. 처음 2회 정도까지는 그랬다. 적어도 정서연이라는 여자가 처한 상황에 공감 가는 바가 있었고 그 연기를 다름 아닌 최근 ‘기생충’으로 뜨거워진 조여정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시간대 전작이었던 <동백꽃 필 무렵> 만들어낸 후광효과도 적지 않았다. KBS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조여정이라고 해도 또 <동백꽃 필 무렵>의 후광을 입고 있다고 해도 작품이 따라주지 않으면 졸작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99억의 여자>는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주인공인 정서연의 캐릭터가 흔들리는 건 치명적이다. 남편 홍인표의 상습적인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게 정서연이 집을 나선 이유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돈 쟁탈전이 본격화되면서 이야기가 복잡하게 꼬였고 어쩌다 보니 정서연과 홍인표가 나란히 앉아 함께 돈 가방을 뺏기 위해 공조하는 상황까지 만들어졌다. 물론 돈에 대한 욕망이 인물을 그렇게까지 변화시킨 것이라 말하고 싶겠지만 주인공이 그렇게 휘둘리거나 흔들리면 그에 대한 연민이나 공감대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99억의 여자>는 조여정과 <동백꽃 필 무렵>의 후광만 남은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연기자들은 그나마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만, 대본과 연출은 대략난감이다. 작품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어떤 명 연기자도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안타깝게도 이 드라마는 증명해주고 있다.(사진:KBS)

‘골목식당’ 백종원과 돈가스집의 꿈, 골목 넘어 제주도 살릴까

 

포방터 시장에서 제주로 옮겨 첫 오픈한 돈가스집은 첫날부터 문전성시였다. 전날 밤 11시부터 줄을 섰다는 첫 번째 손님은 새벽 2시경부터 자기 뒤로 줄이 세워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돈가스집을 찾은 백종원은 길게 주차장까지 빙빙 돌아 이어진 줄을 보고 경악했다. 첫날부터 그 정도로 손님들이 몰려올지는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공교롭게도 100회를 맞아 보여준 건 제주에 오픈한 돈가스집이었다. 가게도 넓어졌고 주방도 훨씬 커졌지만 사장님 부부 내외는 그만큼 적지 않은 부담과 책임을 느끼는 것 같았다. 사장님은 몸살을 앓아 힘겨워 했고, 아내분은 척척 컴퓨터처럼 돌아가던 머리가 멍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첫 장사에서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돈가스는 대성공이었다. 홀에서 돈가스를 한 입 먹어본 손님들은 저마다 “맛있다”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돈가스를 좀 먹어본 사람들은 “어나더레벨의 돈가스”라고 했고, 돈가스를 싫어해 별로 먹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맛있다”고 했다. 심지어 처음 돈가스를 먹어보는 아이도 엄지를 척 내밀을 정도였다.

 

이처럼 돈가스가 모든 손님들에게 호평을 받은 건 당연한 결과였다. 백종원의 도움을 받아 좀 더 나은 버전의 돈가스를 연구한 사장님은 고기, 기름, 빵가루 세 가지를 모두 업그레이드시켰다. 고기는 제주의 특산물인 흑돼지를 사용해 부드러움을 배가시켰고, 기름은 배합을 통해 더 고소한 맛을 내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돈가스를 업그레이드시킨 건 빵가루였다. 튀겼을 때 바삭하면서도 기름이 덜 먹는 빵가루를 찾기 위해 그런 빵을 연구해온 가게에서 빵가루를 받아쓰게 됐던 것. 이러니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장사 직전 백종원이 직접 가게로 가서 첫 시식을 하면서 “대박”이라고 말한 건 그런 이유였다. 백종원은 돈가스가 어떻게 업그레이드 된 것인가를 그 세 가지 재료의 변화를 예로 들어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설명했고 그 설명은 아마도 돈가스를 좀 더 맛있게 먹게 했을 게다. 재료 변화만으로도 맛이 업그레이드 됐을 것이라 예측했지만 실제 맛보고도 자신의 설명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백종원은 이 돈가스집을 통해 제주도 하면 ‘돈가스’가 떠오를 수 있는 지역의 명물로 만들어보고 싶어하는 꿈을 피력한 바 있다. 그래서 두 배 크기의 주방을 만든 건 수제자들을 모아 제주도 전역에 균등한 맛을 담보하는 돈가스집들을 내게 하려는 의도였다. 사장님은 백종원의 꿈에 기꺼이 동참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첫발은 이미 성공적이었다. 전날 밤부터 기다려 돈가스를 먹어본 손님은 “또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그 맛에 반해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백종원이 가게가 오픈한 지 20일 정도가 지나서 다시 돈가스집을 방문한 건 갖가지 오해와 루머들 때문이었다. 프랜차이즈를 하려는 것이 아니냐가 첫 번째 루머였고 백종원 회사의 체인점이냐는 것이 두 번째 루머였다. 그리고 마지막 루머는 어째서 인터넷 예약제를 안 하고 굳이 줄을 세우느냐는 것이었다.

 

그 해명에서도 백종원과 돈가스집 사장님의 꿈과 소신이 묻어났다. 수제자를 모으려는 이유는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재능기부에 가까운 것으로 제주도를 돈가스 성지로 만들려는 꿈 때문이라는 것이고, 백종원 회사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루머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독립된 가게라는 걸 분명히 했다. 또 인터넷 예약제를 하지 않는 이유는 이를 악용하는 사례들(사재기, 대리 대기자 같은)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100회를 맞아 제주도 돈가스집을 보여준 건 향후 이 프로그램이 가진 꿈처럼 읽히는 면이 있었다. 그간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제주도 돈가스집은 골목에서 나아가 제주 지역의 상권을 살리는데 일조하려는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었다. 과연 백종원과 돈가스집의 이런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초심과 소신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를 지지해주는 손님들이 있으니.(사진:SBS)

‘낭만닥터 김사부2’, 시즌2 드라마의 새 기록 세우나

 

김사부(한석규)의 낭만이 그리웠던 걸까.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가 2회 만에 18%(닐슨 코리아)라는 대박 시청률을 기록했다. 첫 회 14.9% 시청률이 시즌1이 남겼던 기대감의 수치라면 2회의 이 수치는 시즌2 역시 충분히 시청자들을 만족시켰다는 증거다. 도대체 <낭만닥터 김사부2>의 무엇이 이런 놀라운 결과를 만든 걸까.

 

첫 회가 시즌1의 리마인드와 함께 새 진용으로 등장한 서우진(안효섭)과 차은재(이성경)를 소개하고 이들이 김사부가 운영하는 돌담병원으로 오게 되는 과정을 다뤘다면, 2회는 본격적인 에피소드를 담았다. 국방부 장관이 차로 이동 중 운전기사가 갑자기 의식을 잃는 바람에 차량이 가드레일을 치고 나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고, 그렇게 가장 가까운 병원인 돌담병원을 찾게 된 긴급환자들을 수술하는 김사부와 서우진 그리고 차은재의 이야기가 펼쳐진 것.

 

환자가 국방부 장관이라는 위치가 주는 중압감과 복합적인 내상에 아스피린을 상시 복용해 출혈을 잡기 힘든 상황으로 과연 수술 자체가 가능할까 싶었지만 김사부는 CT 촬영 같은 장치를 활용하지 않고도 재빠르게 출혈을 잡아내는 면모를 보여줬다. 이를 도운 서우진은 김사부의 놀라운 수술과정을 보면서 반신반의하며 “감과 운이 좋았을 뿐”이라 했지만 점점 그게 김사부의 진짜 실력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낭만닥터 김사부2>가 첫 번째 에피소드로 보여준 국방부 장관 수술 이야기는 사실 시즌1에서도 등장하곤 했던 유사한 에피소드다. 즉 유명인사의 수술이라는 중압감을 이겨내고 수술에 성공하는 김사부와 이를 돕는 후배 의사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한편에는 그 공을 가로채려는 도윤완 이사장(최진호)이 등장해 김사부와 각을 세우는 에피소드다.

 

결국 시즌1의 이야기 구조를 몇몇 설정들을 바꿔 가져온 것이지만 의외로 그 힘은 여전히 세다는 걸 <낭만닥터 김사부2>는 보여준다. 그건 워낙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1이 구축해낸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다는 뜻이고,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구조 자체가 시청자들의 감성을 정서적으로 잡아내는 힘이 있다는 뜻이다.

 

거대병원(이름 자체에 거대하다는 뜻이 들어있다)과 정반대의 대척점에 있는 지방의 소박한 돌담병원의 대결구도가 그 강력한 이야기 틀의 밑그림이라면, 그 위에서 팽팽한 대결을 보여주는 김사부와 도윤완의 만만찮은 캐릭터가 주는 힘이 드라마의 메인 극성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역시 소외된 젊은 의사들이 김사부와 처음에는 갈등하지만 차츰 한 팀을 이뤄가는 이야기가 주는 판타지가 더해진다.

 

김사부는 젊은 의사들에게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지적하는 ‘사부의 역할’을 해서 오명심(진경) 같은 수간호사가 지적하듯 ‘꼰대’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게 그들을 챙겨주는 모습을 통해 그 지적에 담긴 진심을 드러낸다. 서우진을 몰아붙이지만 그가 다친 걸 알고 다른 의사들을 시켜 약도 챙겨주고 검사도 하게하며, 울렁증으로 수술대에서 도망쳐버린 차은재에게 그러려면 의사 그만두라고 말했지만 알고 보면 그를 스카우트한 장본인이 김사부라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꼰대가 아닌 사부의 면면을 보여주는 김사부와 그를 통해 성장해가는 서우진. 차은재의 이야기는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낭만적 판타지’를 제공한다. 물론 그건 돌담병원이 거대병원도 하지 못하는 갖가지 어려운 수술들을 김사부와 그 팀이 힘을 합쳐 해나가고, 심지어 거대병원에 의해 처하게된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나가는 것 또한 ‘낭만적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낭만닥터 김사부>가 보여주는 건 단지 의학드라마의 장르적 재미만이 아니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잘 되고, 욕망에 흔들리지 않고 정직하게 할 일을 한 사람이 상찬 받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해야 할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된 우리네 사회를 뒤집어 보여주는 재미다. 물론 그런 당연한 일들이 ‘낭만적 판타지’가 된 현실은 씁쓸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지만, 그래서 우리는 <낭만닥터 김사부2>의 여전한 그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다. 그건 우리네 사회가 시즌1이 방영됐던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사진:SBS)

‘블랙독’, 바나나 하나로 이렇게 치열하다는 건

 

‘바나나’ 하나가 불러온 파장이 이렇게 클 줄이야. tvN 월화드라마 <블랙독>이 다룬 시험문제 출제와 정답에 대한 이의제기 상황이 야기한 파장을 다뤘다. 국어 시험 문제에 등장한 ‘성순이가 바나나와 수박 두 개를 샀다’는 지문이 문제가 됐던 것. 이 지문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했다. 성순이가 바나나 한 개와 수박 한 개를 샀을 수도 있고, 바나나 한 개와 수박 두 개를 혹은 바나나 두 개와 수박 두 개를 샀을 수도 있다 해석되었던 것.

 

하지만 학생들은 거기에 또 다른 이의제기를 했다. ‘어휘적 중의성’으로 보면 바나나가 성순이와 마찬가지로 한 인물로 볼 수도 있다는 것. 학생들은 그래서 자신들이 쓴 답도 맞는 것으로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어과 선생님들이 모여 한 회의에서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이런 이의제기를 받아줄 수 없다며, 심지어 이건 “교권침해”라고까지 했다. 고하늘(서현진)은 이럴 때는 수업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회의결과 수업시간에 가르친 것을 중심으로 판단해 복수정답은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학생들에게 회의결과를 통보했지만 학생들의 반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진유라(이은샘)는 그 ‘어휘적 중의성’이 수업시간엔 배우지 않았지만 수능 기출에 나온다며 반박했고, 상위권 학생들의 특별반인 이카루스 수업에서는 아이들이 ‘어휘적 중의성’을 배운 적이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결국 이 문제를 들고 교육방송 문제집 집필 교사까지 찾아가 조언을 얻은 결과 “시험 문제가 정확하지 않았다”며 조건을 달아주지 않았다면 억울해도 정답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블랙독>이 다룬 이른바 ‘바나나 사건’은 결국 복수정답을 인정하고 고하늘이 학생들에게 사과하는 장면으로 끝났지만, 이 사건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시험문제 하나를 내는데 있어서도 결코 쉽지 않은 선생님들 사이의 갈등이 생겨나기도 하고, 그렇게 낸 문제가 정교하지 못해 이의제기를 받는 상황이나 그로 인해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에 깨져버리는 신뢰는 지금의 우리네 학교 교육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면이 있어서다.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권위만을 지켜내려는 일부 선생님들도 문제지만, 이런 문제 하나에 목숨 걸고 들고 일어나 이의제기를 하는 학생들이 처한 상황도 문제다. 이미 이 학교에서 벌어졌던 과학시험문제 오답 정정 사건은 학부모가 나서서 인맥을 활용해 문제의 허점을 발견해내고 결국 오답 처리된 사건으로, 문제 하나에도 치열해진 선생님들과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들의 갈등을 보여준다.

 

고하늘은 바나나 하나로 이런 엄청난 파장이 일어난 사실에 당황하지만 결국 그 문제 하나가 한 학생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실수를 인정하기로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문제 하나로 아이의 미래가 바뀌는 이 현실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 그로 인해 학생과 선생님 사이에 신뢰가 깨져버리고 서로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이 상황은 어째서 생겨나고 있는 걸까.

 

<블랙독>은 대치고등학교라는 학교에 입성해 고군분투하는 기간제 교사 고하늘이 겪는 일련의 사건들에 집중하지만, 이런 사건들이 진짜로 지목하는 건 이 문제를 야기하는 우리네 교육 전반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은 문제 하나로 미래가 바뀔 수 있는 현실 속에서 모두가 경쟁자가 되는 상황이고, 선생님들은 문제 하나에도 신뢰가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 처해 버린다. 게다가 정교사와 기간제 교사의 차별로 인해 교사들 간의 경쟁 또한 학생들만큼 치열한 상황이니 말이다.

 

<블랙독>을 보다보면 그래서 우리네 사회가 가진 문제의 근원들이 바로 이 학교와 입시교육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저렇게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 생존할 수 있다는 걸 학교에서부터 체득한 아이들에게 공존이나 상생 같은 가치들이 눈에 들어올 수 있을까. 선생님들조차 기간제라는 비정규직의 틀에 묶여 무한 경쟁하는 상황이니 우리네 학교는 마치 경쟁 시스템을 체화하는 곳처럼 인식된다. 바나나라는 단어 하나에도 이토록 치열한 현실이니.(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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