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불륜만큼 장나라를 힘겹게 하는 서열 사회의 갑질

 

SBS 월화드라마 <VIP>에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생일에 알파카가 보고 싶다고 말하면 그런 곳이 척척 섭외되어 하루를 온전히 원하는 대로 지낼 수 있는 VIP와 그 아이의 세계. 다른 하나는 그 말 한 마디에 알파카 농장을 찾아내고 그 곳에 VIP와 아이가 하루를 보낼 수 있게 갖가지 세심한 준비를 하는 세계. 그 전담팀의 에이스인 이현아(이청아)의 말대로 VIP의 아이는 시키는 것도 창의적이다.

 

나정선(장나라)은 아이를 사산하고 그 충격으로 오랜 나날을 지냈지만, 그 와중에도 성운백화점 VIP 전담팀에 출근해 일을 했다. 그 일에는 VIP 자녀의 생일을 위해 알파카 농장을 찾아내고 온전히 그 아이를 위해 하루를 챙기는 일도 있었으리라. 아이를 잃은 고통을 갖고도 그는 VIP의 아이를 위해 하루를 보내야 한다. 그것이 이 두 세계가 갖고 있는 룰이다.

 

VIP의 자녀들은 이렇게 전담팀이 나서서 생일까지 챙겨주지만 전담팀의 송미나(곽선영)는 두 명의 아이를 돌보는 육아 때문에 번번이 휴직을 하는 바람에 승진하지 못하고 여전히 사원이다. 그러다 덜컥 셋째 아이까지 갖게 되자 송미나는 아이를 지울 결심까지 한다. 물론 실행에 옮기진 못하지만 그의 절실함은 심지어 배도일(장혁진) 이사의 검은 제안까지 받아들이게 만든다.

 

하재웅 부사장(박성근)을 끌어내리려는 배도일은 송미나의 이런 절실함을 이용한다. 그래서 일부러 행사 중 하재웅 부사장의 숨겨진 딸인 온유리(표예진)가 하재웅의 아내 이명은(전혜진)에게 모욕을 당하는 장면을 찍어 배도일에게 넘긴다. 하지만 오히려 하재웅이 온유리를 숨겨진 딸이라 밝힘으로써 상황이 역전되고 위기에 처한 배도일은 송미나에게 전담팀의 스파이 역할을 계속 시키려 한다.

 

배도일은 공모자로 송미나를 끌어들이고 심지어 성추행까지 하려 하지만, 그걸 목격한 송미나의 남편 이병훈(이재원)은 배도일을 어쩌지 못한다. 전담팀에게는 고객으로서의 VIP도 있지만, 회사 조직에서 결코 대항할 수 없는 VIP들도 있다. 송미나는 배도일이 자신을 회사에서 쫓겨나게 할 수 있다는 으름장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다. 심지어 그 성추행 현장을 목격한 남편조차 말리는 아내 때문에 분풀이조차 하지 못한다. 이것이 두 세계가 맞물려 돌아가는 방식이다.

 

나정선은 남편 박성준(이상윤)이 온유리와 불륜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 사실을 온유리의 아버지인 하재웅 부사장에게 폭로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건 없다. 하재웅은 박성준과 딸이 더 이상 관계를 이어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 일을 덮으려 한다. 그러니 나정선만 힘겨운 상황이 만들어진다. 심지어 하재웅은 전담팀에 갓 들어온 온유리에게 나정선을 포함한 팀원들을 ‘밑엣 사람’이라 칭하기도 한다. 온유리는 갓 들어온 팀원이 아니라 VIP의 자녀가 된다. 나정선은 아마도 불륜만큼 이 서열구조가 더 괴롭지 않았을까.

 

<VIP>가 담고 있는 두 개의 세계는 어떤 인간적인 관계에 의해 굴러가지 않는다. 그건 단지 돈과 지위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또 그런 부모를 뒀다는 이유로 서열이 나눠지고 그 역할이 구분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 모양이다. VIP 전담팀이라는 비정상적인 조직 자체가 그걸 말해준다. 그러니 저들이 가진 여유만큼 우리들은 숨이 턱턱 막힌다.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사진:SBS)

‘초콜릿’, 고통스런 현실 우릴 살게 하는 초콜릿 하나

 

고통 속에서 우리를 살게 해주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JTBC 금토드라마 <초콜릿>에 등장하는 문차영(하지원)의 아버지는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사치벽이 있던 엄마는 동생 태현(민진웅)만 데리고 야반도주해버렸다. 만나기로 했던 백화점에서 엄마를 기다리다 갑자기 무너져 내린 건물에 갇혀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그 때 그 건물더미 속에서 한 아줌마를 만났다. 그 아줌마가 아들을 위해 샀다는 초콜릿 하나가 문차영을 살렸다. 그 고통을 버티게 해준 달콤한 초콜릿 하나.

 

그 건물더미에서 죽은 아줌마가 바로 이강(윤계상)의 엄마다. 거성재단의 둘째 아들과 사랑에 빠져 이강을 낳았지만 헤어져 시골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살았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이 사망하자 거성재단 이사장 한용설(강부자)은 손자인 이강과 그 엄마를 데려간다. 엄마가 백화점 붕괴로 사망한 후 이강은 거성재단에서 살아남기 위해 요리사의 꿈을 접고 의사가 된다. 그렇게 실력 있는 뇌신경외과의사가 되지만 이준(장승조)을 거성재단의 후계자로 만들려는 부모들은 이강을 사지로 내몬다.

 

하지만 폭탄이 터지는 전쟁터로 내몰리기도 하고, 위험한 수술을 떠맡기도 하며 힘겹게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이강에게도 초콜릿 한 조각 같은 인물이 있었다. 그의 절친인 권민성(유태오) 변호사다. 이강은 문차영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그와 연인이 된 권민성의 행복을 기원했다.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친구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어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게 됐다는 것. 이강은 친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문차영이 끓여주는 만두전골을 먹고 싶다는 말 때문에 그리스로 떠난 문차영을 찾아 나선다.

 

그 만두전골 한 그릇이 권민성의 마지막 남은 삶을 붙들어주었던 것일까. 소식을 듣고 그 먼 길을 찾아와 권민성을 위해 만들어준 만두전골 한 그릇을 마지막으로 먹고 그는 세상을 떠난다. 자신을 버티게 해줬던 힘겨운 삶의 한 조각 초콜릿 같던 친구를 잃어버린 이강은 문차영을 다시는 보지 말자고 말한다. 그건 트라우마 속에서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는 문차영에게 단 한 조각남은 초콜릿이 영영 떠나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일이었다.

 

<초콜릿>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힘겹고 고통스런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그 원인은 사적인 것이면서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나 거성재단의 승계를 두고 벌어지는 아귀다툼처럼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문차영이나 이강이 원하는 건 엄청난 욕망이나 성공 욕구 같은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고통을 잠시 잊고 버텨내게 해줄 수 있는 어떤 작은 위로 혹은 위안일 뿐이다.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서 어린 문차영은 이강의 엄마가 건네 준 초콜릿 하나를 아껴 먹고 버틴 끝에 끝내 살아남는다. 초콜릿 하나는 아주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때론 그 선의가 누군가의 생명을 살려낸다. 바로 이 초콜릿 하나가 가진 기적 같은 힘이 바로 <초콜릿>이 차려놓은 음식들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이다. 세상은 무너져 내렸고 그 누구 하나 쉬운 삶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를 살아가게 해주는 힘. 그건 바로 작은 초콜릿 하나 같은 누군가의 마음 한 자락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그리려 하고 있다.(사진:JTBC)

‘놀면’ 유재석 라면 끓이기 관찰하며 작곡을? 김태호의 놀라운 퓨전

 

이 정도면 퓨전의 끝판왕이 아닐까 싶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유산슬(유재석)은 그 예명 때문에 중식업계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유재석 때문에 유산슬이라는 음식이 널리 알려졌고 매출도 올랐다는 것. 유재석은 갑자기 호텔 중식당에서 자신을 초대해 감사패를 수여하고 자신들이 만든 유산슬을 그들이 보는 앞에서 맛봐야 되는 그 상황을 난감해했다.

 

하지만 그건 유재석이 또 다시 그려나갈 새로운 미션의 첫 걸음에 불과했다. 유재석은 유산슬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나선 여경래 셰프에 이끌려 억지로 웍을 잡았고 그렇게 스스로 유산슬을 만들었지만 맛은 실패였다. 그 과정은 유산슬이 유산슬을 먹고, 유산슬이 유산슬을 만드는 ‘말장난 개그’ 같은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유산슬을 실패하고 유재석이 그냥 내뱉은 “라면은 잘 끓인다”는 말이 사단(?)이 되었다.

 

갑자기 팔순의 할머니가 홀로 운영하는 어느 작은 라면집에 불려간 유재석은 영문을 몰라하며 할머니가 끓여주는 라면을 맛있게 먹었고, 일이 있다며 할머니가 나간 사이 손님이 찾아왔다. 그 때 울린 김태호 PD의 전화. 라면을 끓여주라는 미션이었다. 그 말을 듣고 유재석은 황당해 하며 “미친...”이라고 말해 그 당황한 심경을 고스란히 드러냈지만, 곧 늘 그래왔듯이 열심히 손님들을 맞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유재석이 유산슬이란 예명을 갖고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고 중식업계 감사패를 받은 후 유산슬 만들기를 하다 갑자기 라면집에서 라면을 끓이는 상황. 영문도 모르고 계속 이리 저리 이끌리는 유재석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상황은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김태호 PD가 그린 큰 그림의 일부에 불과했다.

 

놀라웠던 건 김태호 PD가 유산슬의 새로운 노래를 ‘유벤져스’(박토벤 박현우, 정차르트 정경천, 작사의 신 이건우)에게 의뢰했고, 애초 유산슬이 부르는 ‘유산슬’이라는 곡을 위해 중식당에 유재석을 투입시켰던 것. 하지만 유산슬을 잘 만들지 못하게 되자 기획은 ‘라면’으로 바뀌었고 유재석이 라면집에서 일하는 장면을 보면서 유벤져스가 즉석에서 노래를 만드는 기상천외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아마도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그림은 처음 등장했을 것이었다. 라면 끓이는 모습을 관찰카메라로 보며 유벤져스는 ‘인생라면’이라는 곡을 즉석에서 쓰고 곡을 붙이기 시작했다. 15분이면 한곡을 만들어낸다는 박토벤과 자기는 5분이면 된다는 정차르트는 팽팽한 기싸움이 이어졌고 그 사이에서 중재하며 작사를 해내는 이건우의 진땀이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들었다. 특히 박토벤과 정차르트의 톰과 제리 같은 툭탁대는 ‘케미’는 그 어떤 콤비의 개그보다 시청자들을 웃게 만들었다.

 

애초 작은 일에서 시작한 어떤 미션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확장되는 것이 <놀면 뭐하니?>가 가진 특별한 예능적 틀이라면, 이제 김태호 PD는 이 흐름에 갖가지 퓨전까지 뒤섞기 시작했다. 세상에 라면을 끓이게 하고 그걸 관찰하며 그 짧은 시간에 노래를 작곡하게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라니. 김태호 PD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획 능력과, 이런 황당한 상황도 척척 받아 수행해내는 유재석의 실행력이 더해져 <놀면 뭐하니?>의 향후 행보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앞으로 유재석은 또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까.(사진:MBC)

‘라끼남’, 라면 한 그릇이지만 놀라운 다채로운 접근방식

 

tvN 예능 <라끼남>은 사실 그 콘셉트가 단순하다. ‘라면 끼리는 남자’라는 제목이 모든 걸 말해준다. 강호동이 라면을 끓여먹는다. 이런 단순함으로 방송이 될까 싶지만 여기에 한 가지 방송을 특별하게 만드는 마법의 가루가 들어간다. 그 라면을 그냥 먹는 게 아니라 가장 맛있게 먹기 위해 특정한 장소를 가거나 심지어 라면 맛에 최적화된 몸을(?) 만든다는 것.

 

그래서 첫 번째 라면 끓이는 장소는 지리산 천왕봉이다. 강호동이 스스로 말했듯, “라면 한 그릇 끓여먹으려고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딱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산행은 그 자체로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방송 분량이 많이 나올 수가 없다. 산을 계속 오르는 것이 반복되는 영상일 수밖에 없고, 힘들기 때문에 토크도 계속 이어가기가 어렵다. 찍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니 예능 프로그램이 산행을 찍는다는 건 비효율적인 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라끼남>은 이런 예능 프로그램의 흔한 상황을 거꾸로 뒤집어놓는다. 그저 천왕봉 산장에 오른 강호동이 라면을 끓여먹는 게 아니다. 거꾸로 라면 한 그릇을 끓여먹기 위해 천왕봉에 오르는 것이다. 마치 개가 사람을 물면 그러려니 해도 사람이 개를 물면 특별한 사건이 되는 것처럼, 상황을 뒤집어 놓으니 <라끼남>의 산행은 흥미로워진다.

 

일단 산에 오르기 전부터 보여주는 강호동의 비장함이 웃음을 준다. 이게 뭐라고 엄홍길 대장의 이야기를 더하고, 어떤 라면을 먹을 것인가를 정하기 위해 차량 트렁크 뒤편 가득 채워진 라면들 속에서 산장으로 가져갈 라면을 고르느라 주차장에서만 1시간이 훌쩍 넘는 분량을 뽑아낸다.

 

그렇게 라면을 정해 배낭에 담고 본격적으로 오르는 산행. 내려오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그 여정이 흥미로운 건 강호동의 상태다. 그는 과연 라면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몸 상태가 되어가고 있는가. 너무 힘들어 멈춰 서고, 배가 고파 투덜대다가 너무 배가 고프면 ‘입맛을 잃을 수 있다’며 잠시 멈춰 귤 한 조각 입에 넣는다. 귤이 “설탕덩어리” 같다며 그걸 먹고 몸이 재충전됐다고 호들갑을 떨다 곧바로 퍼져 눕는 강호동의 모습이 웃음을 준다.

 

이런 단순한 콘셉트 속에서도 끊임없이 상황에 대한 몰입을 끌고 가는 데는 강호동의 ‘밀당’도 한 몫을 차지한다. 그는 귤 하나를 먹을 때도 또 찹쌀떡을 먹을 때도 그냥 먹지 않는다. 먹을까 말까 먹을까 말까 밀당을 해대며 끝없이 토크를 이어 붙이고 나서야 입안에 음식을 밀어 넣고 그 맛을 음미한다. <라끼남>이라는 프로그램에 그가 얼마나 최적화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tvN에서 6분짜리로 압축해 보여준 영상이지만 아마도 유튜브를 통해 이 프로그램을 접한 시청자들은 그 세세한 과정들이 주는 더 큰 재미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방송 전부터 유튜브를 통해 나영석 PD가 강호동과 만나 <라끼남>이라는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소개되었고, 본방 직전에는 나영석과 양정우 PD 그리고 강호동이 출연해 본방을 독려하는 유튜브 방송을 보여줬다.

 

이처럼 본방 주변의 다양한 영상들은 <라끼남>의 재미를 다채롭게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본방 직전 내놓은 라이브 방송에서 강호동이 자신의 레시피로 라면을 끓여먹는 장면을 내보내면서 너무 토크가 많은 탓에 유튜브 방송이 본방을 잡아먹을 것 같은 아슬아슬함은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라면 한 그릇을 끓여먹는 것이지만 그 주변 이야기나 상황들로 그 재미를 돋우는 것처럼, 본방 하나를 내면서도 다양한 양념 같은 이야기들을 유튜브 방송으로 더해냄으로써 프로그램은 풍미가 한층 깊어진다.

 

<라끼남>은 그래서 그 짧은 방송에도 불구하고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와 기성 방송이 어떻게 공조해 그 재미를 풍부하게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짧은 첫 방송이지만 본방 시청률이 4.3%(닐슨 코리아)를 냈고,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 올라온 영상들도 꽤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새로운 미디어와 공조해 만들어내는 시너지로서 <라끼남>은 그 교본 같은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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