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식당’ 포방터시장편이 특히 감동적이었던 건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며 굳이 솔루션을 줘봐야 어머니만 더 힘들게 된다고 얘기되던 포방터 시장의 홍탁집 아들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방송 전만 해도 부엌에 거의 들어가지 않아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그가 이제는 손만 뻗으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 척척 알 정도로 부엌이 익숙해졌다. 당구장 출입에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던 그는 이제 새벽같이 출근해 닭을 삶고 고기를 일일이 발라내 하루 장사를 준비하고, 밤늦게 퇴근했다. 몸이 피곤해 당구장에는 갈 여력도 없다고 했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가장 문제아로 지목됐던 홍탁집 아들의 극적인 변화는 물론 쉽게 이뤄진 건 아니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 백종원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걸 몸에 느끼게 만든 백종원의 수고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계기가 된 건 방송이 가진 힘이었다. 이러한 사적인 영역의 노출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떠나, 결국 홍탁집 아들이 스스로 선택한 이 방식은 자신을 온 시청자들에게 드러냄으로써 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제는 홍탁집에 붙은 ‘알바 구함’이라는 문구 하나도 시청자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는 상황이 됐다. 물론 몸이 불편하신 어머님과 부쩍 늘어난 손님들 때문에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알바를 구하려 했던 것이지만, 이런 작은 문구 하나에도 보이는 반응들은 홍탁집 아들이 과거로 되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가게 한쪽 벽을 빼곡하게 채운 찾은 손님들이 남긴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종원이 굳이 각서를 받아낸 것도 그 아들의 결심을 더욱 굳히기 위함이었다. 

흥미로운 건 포방터 시장에서 ‘돈가스 끝판왕’으로 등극한 돈가스집 사장님이 홍탁집에 하루에도 몇 번씩 들러 잘 하고 있는가를 살핀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 집은 물론이고 이번 편에 등장했던 다른 가게들도 두루두루 살피며 이른바 ‘포방터시장 반장님’이 되어 있었다. 홍탁집 아들은 손님이 부쩍 늘어난 것이 돈가스집 덕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방송이 나가며 전국적인 인파가 몰릴 정도로 성황이 된 돈가스집 덕분에 찾아왔다가 순번에 밀려 못 먹고 돌아가는 분들이 다른 가게를 찾아가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포방터 시장편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애초에 하려고 했던 골목상권 살리기라는 취지를 제대로 살려낸 방송이 되었다. 그 혜택은 방송에 나간 음식점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시장 골목을 지나가는 백종원에게 인사하는 시장 상인들은 방송 덕분에 동네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보리밥집도 도넛집도 매출이 훌쩍 늘었다는 것. 돈가스집이 만든 좋은 효과는 다른 집들로 이어지고 있었고, 그것은 포방터 시장 상권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번 포방터 시장편의 이야기가 이토록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래서 실제로 그 곳으로 발길을 옮기게 만든 건 뭐였을까. 그건 ‘포기’에서 ‘희망’으로 넘어가는 이번 편의 이야기에 담긴 메시지 덕분이었다. 홍탁집 아들처럼 모두가 포기했던 인물이 이제 희망을 갖게 되는 그 변화도 그렇고, 실력은 끝판왕이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아 포기하려 했던 그 순간에 백종원을 만나 희망에 불씨에 불을 지핀 돈가스집의 변화도 그랬다.

경기가 좋지 않아 생존경쟁을 하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돕기보다는 누군가를 이기려 했던 현실 속에서 포방터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모두가 홍탁집 아들을 걱정했고, 돈가스집 사장님의 진심에 공감했다. 그래서 함께 서로 도우려 했고 그래서 그 집이 잘 되게 되자 그 수혜는 고스란히 함께 도왔던 이웃들에게도 나눠졌다. 

중요한 건 이것이 해피엔딩이 아니라 해피스타팅이라는 점이다. 향후 지속적으로 함께 도움을 주는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짐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곳을 찾아가고픈 곳으로 만들기 위한 첫 걸음. 어쩌면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취지는 이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시작점을 찾아주는 것에 있는 지도 모른다. 그 곳 상권 모두로 그 수혜가 이어져 함께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는.(사진:SBS)

‘더 팬’, 오디션 그 후, 새 스토리텔링 찾는 음악프로그램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장 뜨겁게 우리네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건 2009년부터였다. Mnet <슈퍼스타K>가 그 포문을 열었고, 2010년 이 프로그램의 시즌2는 케이블 채널 역사상 첫 두자릿 수 시청률을 기록하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지상파들도 오디션 트렌드에 뛰어들었고 그 성공작으로 얘기되는 SBS <케이팝스타>가 2011년 방영되며 이 흐름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마추어들의 데뷔와 심사위원들의 심사로 이뤄지는 이 오디션 트렌드는 이내 꺼져버렸다. 2016년 <슈퍼스타K>는 결국 종영을 선언했고, <케이팝스타>도 2016년 말 ‘더 라스트 찬스’라는 제목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후 Mnet <프로듀스101> 같은 프로그램들이 아이돌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오디션을 시도했지만 이 형식은 이미 지나간 트렌드가 되어갔다. 그것은 경쟁과 성장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내세우는 키워드들이 더 이상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쟁사회 속에서 노력해 성장한다는 일이 점점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된 대중들은 ‘소확행’ 같은 경쟁 바깥에서 스스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찾기 시작했고, 수직 계열화된 시스템 바깥에서 순위가 아닌 저마다의 취향을 찾아갔다. 오디션의 사실상 가장 큰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심사는 이제 ‘지적질’로 받아들여지며 대중들을 불편하게 했다.

이런 시점에 <케이팝스타>를 만들었던 박성훈 PD가 새롭게 들고 온 <더 팬>이라는 프로그램은 이러한 달라진 대중들의 정서를 읽어낼 수 있게 해준다. 먼저 제목에 담긴 것처럼 이 프로그램은 심사가 없다. 유희열, 보아, 이상민, 김이나 등이 팬 마스터로 출연하긴 하지만, 이들은 심사를 하지 않는다. 대신 무대에 올라온 참가자들의 음악을 듣고 팬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밝히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200명의 팬이 버튼을 눌러야 2라운드에 통과하는 첫 무대에서 MC들도 관객들과 똑같이 표 한 개를 행사한다. 

중요한 건 이 무대에 올라올 자격을 누가 부여하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어떤 면으로 보면 이 무대에 선다는 건 좋은 기회이자 특혜일 수 있다. 그만한 실력이나 매력이 분명해야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과 관객들이 납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들을 추천하는 셀럽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다. 타이거JK와 윤미래 부부가 나와 소개한 비비는 그 매력적인 보이스와 독특한 재즈적 감성으로 그가 왜 이 무대에 설 자격을 갖추었는가를 설득시켰고, 도끼와 수퍼비가 소개한 트웰브는 팝가수 같은 느낌의 알앤비로 ‘귀르가즘’을 자극했다. 

악동뮤지션 수현이 추천한 오왠 같은 감성 보컬이나 장혜진이 반해 소개한 카더가든 같은 실력파 보컬은 이미 아는 분들은 다 아는 가수지만, 아직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은 가수라는 점에서 <더 팬>이라는 무대가 가진 색깔을 정확히 보여준다. 이 무대는 아마추어든 아니면 프로든 상관없이 팬을 확보하는 자리라는 것. 저마다 색깔이 분명한 음악을 하고는 있지만(아마도 그래서 더더욱 마니아적일 수 있을 게다) 대중적인 인기를 갖고 있지는 않은 아티스트들을 더 많은 이들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가 거기에는 깔려 있다. 

그래서 <더 팬>은 경연 형식을 갖고는 있지만 그건 하나의 스토리텔링 장치일 뿐, 숨겨진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음악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경연 형식은 이들에게 주목시키고 그 음악적 색깔을 좀 더 들여다보게 만드는 장치일 뿐, 더 중요한 건 다양한 색깔의 취향을 가진 아티스트들의 발굴이라는 것. 

결국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사라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대중들의 다양한 취향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일부 심사위원들의 기준에 맞는 가수들을 순위표 형태로 드러내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더 팬>이 ‘팬심’이라는 말로 드러내는 취향의 경연이 공감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일무이한 한 사람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다양한 가수들과 음악적 취향들이 존재한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사진:SBS)

‘알함브라’, 달달한 멜로인 줄 알았는데 놀라움의 연속

게임 속에서 죽은 인물이 실제 현실에서도 사망한 채 발견되고, 마치 디지털로 탄생한 좀비처럼 그 죽은 자는 비가 오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음악이 들려올 때 다시 나타나 자신을 죽인 자를 공격한다. tvN 주말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이야기 전개는 매 회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처음 제목과 그라나다라는 이국적 풍광 속에서 현빈과 박신혜가 만나는 장면을 보고 이 드라마가 달달한 멜로라고 생각한 분들이 적지 않을 게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첫 회, 그라나다에서 현실을 방불케 하는 증강현실 게임에 빠져버린 유진우(현빈)의 이야기로 보기 좋게 깨졌고, 이 상상을 초월하는 게임의 투자를 두고 라이벌인 차형석(박훈)과의 대결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말미에 1년 후 폐인이 되어버린 채 총을 쏘며 달려드는 이들과 싸우는 유진우의 모습으로 뒤통수를 쳤다. 

결국 드라마는 조금씩 멜로가 아니라 현실과 연결되어버린 게임의 세계가 만들어내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걸 드러낸다. 그러면서 100억을 주고 정희주(박신혜)의 호스텔을 구입함으로써 호스텔 명의로 된 이 게임의 특허권을 유진우가 갖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듯 보였으나, 그 게임의 또 다른 유저였던 차형석과 게임 속에서 대결을 벌여 이긴 유진우는 다음 날 그 차형석이 실제로 피가 다 빠져버려 죽은 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게임이 현실과 연결되고, 게임에서 죽은 유저는 실제로 죽게 된다는 것. 하지만 놀라운 반전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차형석이 죽은 공원 벤치를 찾아가 게임에 접속한 유진우는 거기 죽은 채로 앉아 있는 차형석의 디지털 이미지를 발견하고 갑자기 ‘적이 나타났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NPC(Non-player Character: 유저에게 퀘스트나 아이템을 제공하는 가상 캐릭터)가 되어 살아난 차형석의 공격을 받는다.

유진우는 이것이 본래 게임의 설정이거나 이 게임을 만들고 사라져버린 정세주(찬열)의 장난이라고 여기지만, 그 날 밤 사라진 정세주가 겪은 일을 유진우도 겪게 된다.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오고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어디선가 들려오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소리와 함께 차형석의 NPC가 찾아와 다짜고짜 유진우를 공격한다. 놀라운 건 그 디지털 좀비(?)의 공격에 유진우는 실제로 피를 흘리고 결국 호스텔 난간에서 밑으로 떨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이 사건을 통해 일 년 후 폐인이 된 채 그라나다로 들어오는 기차 안에서 일단의 의문의 사내들과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유진우가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유추해낼 수 있다. 그것은 죽여도 다시 나타나는 디지털 좀비가 된 게임 속 NPC들의 공격과 싸우며 버텨왔을 거라는 것이다. 

게임과 현실이 접목되는 SF판타지가 완전히 낯선 세계는 아니지만, 게임 캐릭터들이 좀비처럼 죽어도 다시 살아나 계속 공격해오는 이야기는 실로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이 세계 속에 빠져버린 유진우는 사라진 정세주를 추적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서들을 찾아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게임 속에서 만난 정세주를 그대로 캐릭터화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치는 엠마는 그에게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예상을 뒤집는 반전의 반전. 사실상 이것이 송재정 작가의 작품 세계에 일관되게 이어져온 흐름이다. 독특한 세계관이 가진 매력만으로도 시청자들을 잡아끄는 마법을 선사하는 작가. 하지만 벌써부터 그 놀라움만큼 과연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정리되어 나갈까 하는 점에 대한 우려 또한 적지 않다. 매회 반전을 선사하다 보니 너무 많은 떡밥들이 넘쳐나고 뒤로 가면 이를 정리해내는 게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 과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그 기발한 상상력과 놀라운 반전 전개만큼 완성도 높은 마무리를 보여줄까. 기대되는 대목이다.(사진:tvN)

현빈과 박신혜라 더 믿게 되는 '알함브라'의 가상현실

송재정 작가의 전작 드라마인 <W>를 본 시청자라면 tvN 주말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이와 비슷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이라는 걸 일찌감치 감지했을 게다. <W>가 만화와 현실 세계의 경계를 넘나든다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게임과 현실 세계의 경계를 넘나든다. 하지만 쉬워 보여도 게임이라는 가상과 현실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그것을 시청자들에게 믿게 만들고 나아가 빠져들게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도대체 송재정 작가는 어떤 마법을 부린 걸까.

게임과 현실 세계를 넘나들 것이란 암시는 이미 첫 회에 잠깐 등장해 누군가에게 쫓기다 사라져버린 AR게임을 개발한 정세주(찬열)의 이야기로 전해진 바 있다. 그래서 그의 게임에 투자하기 위해 스페인 그라나다에 왔다가 놀라울 정도로 실감나는 그 증강현실 게임 세계에 유진우(현빈)가 점점 빠져드는 과정은 시청자들에게는 이 새로운 세계에 익숙해지고 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유진우는 광장 한 가운데 거대 석상으로 서 있는 나사르 왕국의 전사가 갑자기 살아 움직이며 자신을 공격해 오고 그와 싸우기 위해서는 그 곳 카페 화장실에 있는 비밀고리를 잡아당겨 녹슨 철검이라도 구해 와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밤새도록 화장실을 오가며 전사와 싸운 유진우가 날이 밝아오는 아침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를 해치우고 레벨을 올리는 과정은 시청자들이 이 세계로 들어가는 튜토리얼인 셈이다.

그리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앞으로 그려나갈 세계를 드디어 드러내는 대목은 유진우의 오랜 라이벌인 차형석(박훈)이 증강현실 게임 속에서 대결하다 그에게 지고는 사체로 발견되는 장면이다. 그저 게임인 줄로만 알았던 세계가 갑자기 현실이 되어버리면서 가상과 현실은 그 경계를 침범해 버린다. 역시 2회 마지막에 살짝 등장한 1년 후 유진우가 그라나다로 들어가는 기차 안에서 일단의 세력들에게 쫓기며 총알 세례를 받는 장면은 그 1년 간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를 시청자들로부터 상상하게 만든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이 가상이 현실로 침범해오는 마법의 세계를 유진우가 겪게 되는 증강현실 게임의 세계를 통해 보여주면서 동시에 정희주(박신혜)에게 벌어진 마법(?) 같은 현실 이야기를 더해 넣는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유진우가 만성 적자에 빚만 늘어가던 호스텔을 100억을 주고 구입하는 것. 유진우는 그 게임의 특허를 등록한 가족법인 보니따호스텔을 소유하기 위해 그런 엄청난 비용을 치르는 것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정희주에게는 이 일이 마법 같은 사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조금씩 가상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는 과정은 우리가 게임에 점점 빠져들 때 느끼는 비현실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마도 처음부터 게임과 현실이 연결되었고 그래서 게임에서 진 누군가가 실제로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했다면 믿기 어려웠을 이야기는, 유진우가 그 게임에 빠져들고, 그 과정을 또한 시청자들이 같이 경험하면서 어느새 그럴 듯한 이야기로 믿게 만든다.

지금 돌아보면 스페인의 그라나다라는 이국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한 것도 그저 이국적인 배경만이 아니라 이런 몰입감을 높이기 위한 장치처럼 보인다. 아무래도 우리네 현실 공간 위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은 현실의 침범으로 몰입이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먼 곳을 사건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건 게임이라는 비현실과의 접합을 더 용이하게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현빈과 박신혜라는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운 데도 적용되는 대목이다. 이들은 현실의 인물이면서 동시에 게임 속으로 들어가도 이물감이 별로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외모를 갖고 있는 인물들이다. 어느 카페에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기타로 연주하는 게임으로 만들어진 정희주를 만나는 유진우의 한 장면은 그래서 가상과 현실이 마주하는 것이지만 진짜로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게임에 빠져들며 현실감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어느 새 이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열려버린 세계에 들어가게 된 시청자들은 이제 유진우와 정희주가 겪게 될 모험과 그 모험을 통해 만들어질 마법 같은 관계를 기대하게 된다. 단 몇 회 만에 매혹되게 만든 송재정 작가의 마법이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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