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먼저 할까요?’ 감우성과 김선아의 멜로 웃긴데 슬프다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어요.” ‘오늘만 살자’며 다짐하듯 손목에 그 글씨를 문신하고 안 마시던 술을 진탕 마셔버린 손무한(감우성)과 안순진(김선아)은 누가 더 절망적인가를 내기하듯 자신의 불행을 하나씩 내놓는다. 안순진은 스튜어디스로 일하고 있지만, 늘 미소 짓는 그 웃음이 진짜가 아닌 가식이었다고 말한다. 

“전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어요.” 안순진이 내놓은 불행담에 손무한이 내놓은 불행은 울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 그것이 무슨 불행인가 싶지만 그건 그런 감정 자체가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아픔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깊은 상처를 안고 이제는 별 다른 희망 따위도 사라진 어른들은 그렇게 만나 당장 오늘만이라도 모든 걸 잊고 안하던 짓을 한다.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손무한과 안순진의 만남은 그래서 여타의 멜로드라마가 그리는 설렘과는 전혀 성격 자체가 다르다. 그들은 같은 불행 속에서 그 아픔을 공유하며 만났다. 6년 전 흔들리는 기체에서 승무원과 손님으로 처음 만나 서로 안전벨트도 하지 않은 채 “이대로 죽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토로했던 그들. 이혼한 아내와 아이의 사진을 손무한은 안순진에게 건네며 태워 버려달라고 했고, 안순진은 차마 사진을 버리지 못했다. 

안순진은 그 때 한 겨울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동물원을 찾아갔고, 손무한은 그가 준 사진 때문인지 아니면 안순진 때문인지 무작정 그를 따라갔다. 눈 내리는 동물원, 한 켠에서 오열하는 안순진에게 손무한은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건 그의 아픔과 상처를 똑같이 느끼는 자의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사진 때문에 공항에서부터 줄곧 따라왔다는 손무한에게 안순진은 사진을 버렸다며 거짓말을 한다. 자신은 영영 잊을 수 없는 기억이지만 손무한에게는 그렇게라도 해서 모든 걸 잊고 다시 시작하라고 말해주었던 것. 

그 후로 6년이 지난 후 윗층 아래층 이웃으로 다시 안순진을 만나게 된 손무한은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는 그 기억을 결코 잊지 못하고 있다. 절망감에 죽음까지 결심했던 안순진을 애써 구해냈던 그 때의 기억을. 하지만 안순진은 그 때의 기억을 스스로 지워버렸다. 너무 아픈 기억이라 아예 없는 것처럼 여겨버린 것. 하지만 손무한의 등장은 그에게 그 사라진 기억을 되살려놓는다.

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때로부터 안순진과 손무한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한 사람은 진짜로 웃어본 일이 없고 다른 한 사람은 울 정도의 감정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 먼 길을 돌아온 두 사람은 그래서 ‘오늘만 살자’며 그간 안 해본 일들을 해보려 한다. ‘키스 먼저’ 하는 일도, ‘함께 자는 일’도 그들에게는 그래서 남다른 일이 된다. 그건 각자 버텨내던 삶에서 이제 ‘함께 버텨내는 삶’으로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뭐든 함께 할까요?” 기억을 되살려낸 안순진의 이 제안은 그래서 도발적이면서도 가슴 먹먹한 느낌을 준다. 너무 아픈 기억 속에서 살아와 메말라버린 것 같던 웃음과 눈물이 그 ‘함께 하자는 말’ 한 마디에 다시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을 주기 때문이다. 나이 들다 보면 뭐 새로울 것 없는 나날들의 연속이 설렘도 기대감도 없는 ‘오늘’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어른들도 서로가 겪고 있는 그 무뎌짐을 공유하고 누구나 가진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것으로 새로운 사랑의 문이 열리기도 할 것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가 중년들에게 주는 공감은 그래서 클 수밖에 없다. 진짜 웃음과 눈물을 점점 찾기 힘들어지는 중년들에게는 더더욱.(사진:SBS)

‘황금빛 내 인생’ 천호진과 김병기, 두 가장의 너무 다른 행보

슬퍼도 너무 슬픈 가장의 희생이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서태수(천호진)는 우리 시대 희생하는 가장의 전형을 보여준다. 너무 가시밭길만이 이어져 심지어 시청자들로부터 원성을 듣기까지 하는 이 가장은 한때 상상암을 진짜인 줄 알고 오히려 ‘축복’이라 여긴 바 있다. 하지만 가족의 남다른 사랑으로 이제 조금씩 다시 살고픈 마음이 들기 시작하는 차에 그것이 진짜 암이었다는 사실을 통보받는다. 

삶이 너무 힘들어 암 통보조차 ‘축복’이라며 웃음을 짓던 이 아픈 가장은 그것이 진짜 암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하늘을 원망했다. 하지만 이 가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을 끝까지 챙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였다. 암 진단으로 받은 보험금을 딸 지안(신혜선)의 핀란드 유학비로 건네주고, 아픈 와중에도 서지안과 서지수를 걱정했다. 

서지수(서은수)의 친부모인 노명희(나영희)와 최재성(전노민)이 노진희(전수경) 부부에 의해 주주총회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하자 중소주주들의 집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들이 노진희의 차명계좌와 연루되었다는 증거를 찾아다닌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서지안의 물음에 서태수는 그것이 자신의 딸 서지수의 친부모 일이고 또 딸 서지안이 사랑하는 사람 최도경(박시후)의 일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주주총회에서 위기에 처한 노명희와 최재성 그리고 최도경은 서태수의 결정적인 증거로 상황을 반전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실 너무 가시밭길의 연속이기 때문에 서태수의 희생을 바라보는 것이 힘겹다는 시청자들의 원성이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가족을 위한 가장의 희생을 굳이 집어넣은 건, 어떤 면에서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는 해성그룹 노양호(김병기) 회장과의 대비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노양호 회장 역시 여러 차례 의식을 잃는 위기를 겪지만 깨어날 때마다 각성은커녕 자신이 쥐고 있는 기득권을 지켜내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인다.

노양호 회장은 해성그룹을 자신이 홀로 일궈왔다며 딸 노진희가 모든 걸 가로채려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못하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노진희의 그건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도 틀린 건 아니다. 창업자의 가족승계가 아닌 전문경영인의 시대가 지금의 변화된 기업문화의 바람직한 양태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설정을 갖고 있는 두 인물의 이토록 다른 양상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죽음은 금수저든 흙수저든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오는 인간의 운명이다. 그런데 그걸 접한 이들의 반응은 너무나 다르다. 없는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가족을 챙기려 한다. 하지만 가진 이들은 가족보다는 자신을 챙기려 한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달라서 달라지는 반응일 수밖에 없다. 

서태수와 노양호 회장의 서로 다른 가장의 모습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어느 것이 아름다운 삶의 모습인가를 생각해보면 서태수의 희생이 주는 느낌은 숭고함까지 갖게 만든다. 하지만 그 삶이 너무 아프고 슬퍼서일까. 시청자들은 이런 선택을 하는 서태수가 어떻게든 살아남아 가족들과의 행복을 함께 누리길 바란다. 비록 기적 같은 일이 필요할지라도.(사진:KBS)

‘효리네 민박’, 폭설에 고립도 판타지로 만든다는 건

어찌 보면 JTBC 예능 <효리네 민박>이 처한 최대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제주에 폭설이 내리고, 그로 인해 ‘효리네’는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한 채 고립되어버렸다. 첫 손님으로 찾아와 이제 서울로 돌아가야 할 유도소녀들은 공항으로부터 날아온 결항 소식에 난감해 했다. ‘효리네’도 아침을 챙겨 먹이며 고립된 상황에 비축해놓은 식량 걱정을 했다. 

든든히 아침을 챙겨먹는 와중에도 눈은 그칠 줄 몰랐다. 그래도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려 노천탕에 들어가려 했지만 꽁꽁 얼어버려 물조차 나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는 이상순과 임윤아는 그걸 녹여보려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그래도 공항으로 가보기 위해 나선 유도소녀들은 미끄러운 언덕길을 차가 오르지 못해 결국 이상순이 직접 와 차를 몰고 소녀들이 뒤에서 밀어 가까스로 그 곳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래도 눈발이 조금 잠잠해지자 ‘효리네’에 고립된 손님들은 슬슬 주변을 둘러보기로 나섰지만 역시 여의치 않아 가까운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었고, 집을 나선 이효리와 이상순, 임윤아도 그 음식점을 찾아 식사를 했다. 하지만 오도 가도 못하는 그 상황에 이효리의 한 마디 제안이 반전을 만들었다. 갑자기 눈썰매를 타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모두가 기대감에 찾은 언덕은 아이들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언덕 위까지 걸어 올라가는 일은 힘들었지만, 거기서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길은 모두를 까르르 웃게 만들었다. 이상순은 이효리와 임윤아의 동영상을 슬로우 모션으로 찍어줘 그 즐거운 눈썰매의 추억을 담아냈고, 이효리는 그 곳에서 만난 한 귀여운 아이와 함께 눈썰매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서핑을 하기 위해 ‘효리네’를 찾은 서퍼 청년들은 눈보라에 서핑을 갈 수는 없었지만 대신 눈썰매를 서프보드처럼 타고 내려오는 멋진 장면을 보여줬다. 

한바탕 눈썰매를 타며 신나게 놀고 난 후 카페에서 마시는 따끈한 코코아 한 잔의 맛은 보는 이들조차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모두가 다시 ‘효리네’로 돌아왔다. 귀경하려다 결국 비행기를 타지 못한 유도소녀들도 다시 ‘효리네’로 왔고 그래서 집은 북적북적했다. 저마다 하나씩 챙겨온 음식들로 저녁이 차려지고 모두 둘러앉아 함께 하는 식사자리. 어찌된 일인지 그 장면은 고립된 사람들이 아니라 외부와 단절된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사실 ‘고립’이라는 상황은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더 다가온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립’의 의미는 정반대 느낌으로 도시인들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어디를 가든 연결되어 버리는 ‘초연결사회’에서 살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모든 연결고리가 끊어진 곳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픈 욕망이 하나의 판타지가 되기 마련이다. 최근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이 직접 시도하지 못하는 고립과 야생의 시간들을 대리경험 해줌으로써 인기는 끌고 있는 건 그래서다. 

<효리네 민박> 겨울편은 뜻하지 않게 쏟아진 폭설로 인해 고립된 상황이지만, 의외로 그 고립조차 하나의 판타지로 전해진다. 외부와 단절된 그 곳에서 서로가 나누는 음식과 대화와 놀이가 더더욱 즐거운 일로 다가오는 것이다. 먼 곳까지 왔는데 폭설을 만난 손님들에게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이효리는 끊임없이 그 고립에서의 ‘즐거움 찾기’를 시도한다. 쏟아지는 눈발이 그냥 보면 ‘폭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그걸 슬로우모션으로 포착해내면 그림 같은 장면이 되는 것처럼, 고립의 상황에 그걸 즐기려는 노력의 필터를 끼워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 그렇게 이효리와 함께 하니 고립도 판타지가 된다.(사진:JTBC)

‘미스티’, 치정극보다 김남주의 폭주를 더 기대하는 까닭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가 극 초반부터 시청자들의 시선을 확 잡아끈 건 다름 아닌 고혜란(김남주) 앵커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 때문이었다. 갖은 노력을 다해 올라선 뉴스 프로그램 앵커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못할 게 없는 인물. 젊은 한지원 기자(진기주)가 치고 올라오자 그의 부적절한 관계를 몰래 찍어 앵커 자리에서 낙마시킬 줄도 아는 결코 선하지만은 않은 그런 인물이 바로 고혜란이다. 

여기서 고혜란이란 인물의 매력 중 가장 중요한 건 ‘결코 선하지만은 않은’이라는 바로 그 지점이다. 성공하기 위해 좋은 집안에 배경을 가진 강태욱(지진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고, 사랑보다는 ‘필요’에 의해 결혼한 그였다. 둘 사이에 갖게 된 아이도 앵커직을 더 붙들기 위해 상의도 없이 지워버렸다. 그래서 소원해진 부부지만, 대외적으로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꾸미는 ‘쇼윈도 부부’의 삶을 그들은 살아간다. 

고혜란이 결코 선한 인물이 아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인 건, 그의 이런 지나칠 정도의 절실함과 성공에 대한 폭주가 그만큼 커리어우먼으로서 어떤 성공을 거두고 그 자리를 지켜내는 일이 엄청나게 어려운 우리네 현실을 에둘러 보여주고 있어서다. 지금껏 <하얀거탑>의 장준혁(김명민)처럼 성공을 향해 무한질주하는(결국은 낙마하더라도) 남성 캐릭터들은 많았지만, 고혜란 같은 여성 캐릭터는 드물었다. 그러니 마지막에 파멸에 이르더라도 한번쯤 끝까지 욕망을 밀고 나가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갈증을 고혜란이라는 캐릭터는 확실히 채워주는 면이 있었다. 

그런데 케빈 리(고준)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의 성추행을 의도적으로 찍은 매니저에 의해 협박을 당하며, 케빈 리와 고혜란의 관계가 직업적 관계 그 이상을 알아버린 케빈 리의 아내 서은주(전혜진)의 복수 선언이 이어지면서 <미스티>의 고혜란이 갖고 있던 이런 매력들이 초반만큼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특히 복수를 위해 서은주가 의도적으로 고혜란의 남편인 강태욱에게 접근하는 치정극에 가까운 이야기와, 감옥에서 출소해 곤경에 빠진 고혜란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미스터리한 남자 하명우(임태경)의 ‘순애보(?)’ 같은 이야기는 조금은 맥이 빠지게 만드는 면이 있다. 

즉 서은주와 고혜란의 대결구도는 커리어우먼의 현실과의 대결을 그리는 듯 했던 <미스티>의 이야기에서 옆길로 샌 듯한 느낌을 주고, 하명우라는 일종의 숨은 ‘가디언’의 존재는 고혜란의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를 상당부분 수동적으로 만들어버린다.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나가던 고혜란이 갑자기 그를 돕기 시작한 강태욱과 하명우 같은 남자들에 의해 마치 드라마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듯한 느낌이다. 

사실 <미스티>의 시청자들은 치정극이나 보디가드식의 순애보를 보고 싶은 게 아닐 게다. 그것보다는 이 처절할 수밖에 없는 고혜란이라는 문제적 인물이 끝까지 욕망을 펼쳐 나가고 그 끝이 파국이라고 할지라도 뛰어드는 그런 강렬한 커리어우먼상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물론 단 한 회만의 머뭇댐이고 옆길로 빠져든 것이라 여기고 싶다. 욕망의 질주와 그로 인한 파멸하는 인물을 통해 ‘선하게 지킬 건 지키고 산다’는 그런 식의 틀에 박힌 교훈이 아니라, 왜 그렇게 파멸할 정도로 뜨거운 욕망을 추구했어야 했는가를 보여주는 공감 가는 여성상을 보고 싶은 것이니.(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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