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의 여왕’, 최강희 아줌마의 추리를 가로막는 것들

KBS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이 독특한 건 주인공인 설옥(최강희)이 셜록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탐정 셜록에서 따온 듯한 그 이름 앞에 붙어 있는 건 탐정이 아니라 아줌마. 설옥이 남다른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데 그 앞길을 가로막는 것도 바로 이 아줌마라는 꼬리표가 가장 크다. 

'추리의 여왕(사진출처:KBS)'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살해한 폭력남편을 추리해내는데 있어서 이 아줌마 설옥은 통화기록과 카드전표 등의 수치들과 CCTV 화면을 분석해 조작된 알리바이를 파헤친다. 그 남편의 알리바이였던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친구가 술에 취해 있을 때 아내를 살해하고 돌아와 시계를 되돌려놓음으로써 알리바이를 만들었던 것. 시계에 찍혀진 지문과 미지근해진 맥주 그리고 편의점 CCTV 속에서 그 남편이 친구의 가게로 돌아가지 않고 집쪽으로 향했던 장면 등을 종합해 설옥은 그가 아내를 살해했다는 걸 입증해냈다. 

물론 그 아내의 직접적인 사인은 남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부모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죽은 줄 알고 강물에 유기했던 며느리가 사실은 살아있었던 것. 결국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며느리를 강물에 유기한 시부모가 직접적인 살인자가 되었다. 

사실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죽인 비정한 남편의 이야기는 액면으로만 보면 그리 새로운 건 아니다. 하지만 <추리의 여왕>은 그 사건을 추리해내는 설옥이라는 아줌마 캐릭터를 세움으로써 이 과정을 더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그 누구도 믿지 않던 아줌마의 추리가 하나하나 맞아들어갈 때 무시 받던 이 존재의 반짝임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 끄는 것.

설옥을 무시하는 존재는 완승(권상우)이라는 형사와 시어머니 박경숙 여사(박준금)다. 완승은 아줌마가 사건 현장을 어슬렁거리는 것 자체를 탐탁찮게 여긴다. 그래서 한 번만 더 현장에 나오면 공무집행방해로 넣어버린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설옥의 추리가 하나하나 맞아들어가는 걸 보면서 이 아줌마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조금씩 마음을 연다. 오히려 그녀의 추리에 은근히 기대는 모습까지. 

박경숙은 설옥을 그저 집안일에나 묶어두려는 전형적인 시어머니다. 밥 때 되면 시어머니를 챙겨야 한다며 집으로 달려가는 설옥이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어디냐고 묻는 시어머니의 전화. 마침 한창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 듯한 시점에 시어머니의 전화가 갑자기 울리는 장면은 설옥은 물론이고 그녀의 추리를 기다리는 완승 그리고 그걸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답답하게 만든다. 

완승이 설옥의 사회 생활에서의 어떤 편견을 상징하는 존재라면 시어머니는 가정 생활 속에서의 편견을 담아내는 존재다. 그리고 그 종합은 역시 아줌마라는 존재의 삶에 대한 편견으로 뭉쳐진다. 아줌마라고 어찌 꿈이 없고, 또 숨겨진 능력이 없겠는가. 하지만 세상은 아줌마라는 이유로 집에서 밥이나 하고 가족 뒷바라지나 하라고 밀어낸다. 

바로 이 지점은 설옥이라는 아줌마 셜록에 시청자들이 푹 빠져드는 지점이다. 딱히 아줌마가 아니라도 아저씨나 사회에서 소외된 청춘들 같은 본래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이런 캐릭터에 몰입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설옥이 놀라운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해가고 그런 그녀의 진가를 슬쩍슬쩍 인정하게 되는 완승 같은 시선을 보게 될 때 우리는 똑같은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윤식당’ 이진주 PD와 ‘신혼일기’ 이우형 PD가 말하는 나영석

물론 성공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한 번 정도 성공하는 일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매번 할 때마다 성공을 거둔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고, 그것도 끊임없이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내놓아 거둔 성공이라면 더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어려운 걸 해낸 인물이 바로 ‘나영석 사단’이다. 여기서 나영석 PD가 아니라 나영석 사단이라고 지칭한 건, 이제는 그의 성공이 그만의 것이 아니며 또 그렇게 여럿이 함께 머리를 모아서 그런 연속적인 성공 또한 가능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윤식당> 이진주PD와 <신혼일기>의 이우형PD

나영석 사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PD는 세 명이다. 지금 현재 <윤식당>을 하고 있는 이진주 PD, <신혼일기>를 했던 이우형 PD 그리고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편>부터 <신서유기2>, <삼시세끼 어촌편3>에 참여하고 현재 곧 방영될 새로운 예능을 준비하고 있는 양정우 PD가 그들이다. 이진주 PD와 이우형 PD, 그리고 따로 나영석 PD를 각각 만나 이들이 현재 일궈가고 있는 연전연승의 신화가 어떤 동력에 의한 것인가를 들여다봤다. 

-“올해는 목표가 후배 PD 세 명과 세 편의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었어요.”

나영석 PD의 이 이야기는 그의 현재 위치가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져 있다는 걸 말해준다. 과거에는 홀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런칭하는 연출가로서의 위치였다면 지금은 그걸 하면서도 tvN이라는 텃밭에 자신의 뒤를 이을 새로운 PD들을 발굴하고 관리하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과거와 달라진 점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간 조금은 뒤로 밀어두었던 관리자라는 역할을 스스로도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 “최종 결정을 하는 일. 그 역할이 정말 중요해요.”

후배인 이진주 PD는 나영석 PD가 하는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일이라고 했다. 발리 여행을 하다 문득 이런 곳에서 가게를 열고 며칠 간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기획안으로 내밀었을 때, 나영석 PD는 바로 “이건 된다”고 확신을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는 것. 후배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갖게 되는 어떤 감정과 느낌 같은 것들은 그렇게 이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의 아이템들을 다채롭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나영석 PD 개인보다 나영석 사단이 훨씬 유리해지는 대목이다.

- “명한이 형에게 배운 것이 많아요.” 

지금의 그를 이끌어준 tvN 이명한 본부장의 행보는 나영석 PD에게는 일종의 지표처럼 보였다. 주로 제작 쪽에서만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던 나영석 PD는 스스로도 자신은 사람 관리가 어렵다고 말한 바 있지만, 지금은 그 영역에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건 등대처럼 저 앞에 서 있는 이명한 본부장 덕분이다. 

- “이명한 본부장님이 하는 일에 대한 무한신뢰가 있어요.”

나영석 PD는 물론이고 tvN 사람들 대부분이 이명한 본부장에 대해 갖고 있는 무한신뢰에 대해 이진주 PD는 이런 사례를 들어 얘기해주었다. 맡고 있던 업무가 바뀌어서 “왜 내가?”하고 묻던 사람도 “명한 선배가 지시한거야”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걸 대부분은 신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감은 나영석 사단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 되고 있었다. 나영석 PD에 대해 이진주 PD도 또 이우형 PD도 갖고 있는 신뢰 또한 이명한 본부장에 대한 그것과 다를 바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 “힘들어도 믿고 하다 보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이우형 PD가 <신혼일기>를 하게 된 건 사실 본인이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위에서 해보라는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사실 구혜선, 안재현 실제 신혼부부가 리얼리티쇼 형식으로 방송에 참여한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어떤 새로운 영역 하나가 열린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고 했다. 필자가 신혼만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관계들, 이를 테면 친구나 고부, 부자 등등의 관계들을 일기 형식으로 풀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이우형 PD는 그런 다양한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 “이제 공력의 30%만 써요. 나머진 후배들이 채우죠.”

나영석 PD는 현재 3명의 후배들과 세 개의 프로그램을 연달아 동시에 돌려왔다고 했다. 그것이 가능한 건 한 프로그램에 자신의 공력을 100% 투입하지 않고 30% 정도 쓰고 나머지는 후배들의 영역을 남겨 놓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30%의 역할이 무언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결코 중요성이 낮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배분은 결과적으로 보면 1년 후 tvN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해준다. 

-“영석 선배는 권력욕이 여전하죠(웃음)”

사실 이렇게 후배들에게 일정 부분의 자기 영역을 내어주는 건 어찌 보면 자신에게 집중된 권력을 나눠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영석 PD는 농담으로 “잘되면 내 탓, 안되면 후배 탓” 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라고 말하며 허허 웃었고, 이진주 PD와 이우형 PD 역시 농담 반으로 “영석 선배가 권력욕이 강하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이들의 농담이 그만큼 스스럼없는 편안한 관계에서 나오는 좋은 긴장감으로 보였다. 선배와 후배 사이의 이런 긴장감은 시스템을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될 것이었다. 

- “저나 후배들이나 하는 일은 그리 다르지 않아요.”

나영석 PD는 자신이 하는 일이 과거와 그리 달라지지 않았고 또 후배들이 하는 일도 자신과 마찬가지 일이라고 했다. PD, 작가, 스텝 할 것 없이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내고 행동에 옮기는 나영석 사단이 일을 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위계가 아니라 누구나 똑같이 참여해서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나영석 사단이 연전연승하는 비결이 아닐까.

- “미술감독님 없었으면 큰 일 날 뻔했죠.”

마지막으로 특별한 에피소드 하나. 이번 <윤식당>의 경우 가게를 오픈하고 하루 만에 철거당하는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 위기를 기회로 바꿔놓을 수 있었던 건 현장에서 함께 했던 미술감독과의 일의 차원을 넘어선 돈독한 관계 때문이었다. 나영석 PD도 또 이진주 PD도 이구동성으로 미술감독이 마침 없었다면 프로그램은 좌초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뒷얘기를 들어보니 그것 역시 이들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실 가게를 오픈하고 미술감독은 귀국해도 됐지만 제작진들이 너무 고생하셨다며 며칠 더 머무르게 했다는 것.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남게 된 미술감독이 있어 1호점이 철거된 후 2호점을 바로 열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일화는 나영석 사단이 어째서 그리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귓속말’, 이들의 폭주가 보여주는 통쾌함과 씁쓸함

“법대로 살 수 없어 사는 법을 배웠죠.” 이동준(이상윤)이 태백의 대표 최일환(김갑수)에게 던진 이 말은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이 드라마는 한 회 한 회 긴장을 늦추고 볼 수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끝없는 대결구도로 이뤄진 이 드라마는 또한 끝없이 새로운 판이 그 때마다 짜지기 때문이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는 다시 내일의 적이 된다. 

'귓속말(사진출처:SBS)'

이들이 대립하는 가장 큰 골격은 로펌 태백의 경영권을 두고 벌어지는 최일환과 보국산업 강유택(김홍파)의 패권다툼이다. 하지만 이 대결구도 속에 틀어 앉은 또 하나의 사건이 방산비리다. 보국산업과 태백이 얽혀 있는 이 비리를 캐던 기자가 최일환의 딸 최수연의 사주로 인해 살해당하고 그녀의 연인인 강정일(권율) 역시 그 살해에 동조한다. 그리고 살인범으로 대신 신영주(이보영)의 아버지 신창호(강신일)가 누명을 쓰고 수감된다. 여기에 판사였던 이동준은 최일환의 위협에 못 이겨 신창호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잘못된 판결을 내게 된다. 

비리 기업이 있고 그 비리에 동조하고 있는 로펌이 있으며 그걸 취재하다 죽음을 맞이한 기자가 있다. 그 기자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아버지의 무고를 밝히기 위해 딸 신영주가 나선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 관계들은 사건과 비리와 권력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그 이해관계들은 부모자식 관계나 부부, 연인 관계보다도 더 앞서있다. 

최일환은 태백을 집어 삼키려는 보국산업 강유택 회장과 맞서기 위해 딸 최수연(박세영)이 사랑하는 강회장의 아들 강정일(권율)을 밀어내고 대신 이동준과 정략결혼을 시킨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최일환의 발목을 잡는 건 바로 이 딸이다. 강정일이 구속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딸은 모든 죄를 자신이 내린 것이라고 증언하라며 오히려 아버지 최일환을 겁박한다. 

이런 상황은 강정일과 강유택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강유택은 아들 강정일을 태백에 심어놓고 결국 그 태백을 집어삼킬 야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강정일을 밀어내려는 최일환의 공격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려 한다. 하지만 그 아들이 최일환의 딸 최수연과 연인 관계라는 사실은 탐탁찮은 일이다. 그래서 위기에 몰린 강정일을 직접 도와주지 않고 대신 그에게 최수연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라고 제안한다. 

가족도 믿지 못하는 얄팍한 인간적 관계인데다, 법이란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타협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이 <귓속말>의 세계는 그래서 팽팽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법 역시 정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욕망이 부딪치는 이전투구의 장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건 그래서다. 

<귓속말>이 한번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반전의 반전을 보여줄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냉혹한 세계가 거기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경수 작가가 <황금의 제국>이나 <펀치>를 통해 지금껏 그려온 권력자들의 세상이 시청자들에게 주는 흥미진진함이고 속 시원함이며 동시에 씁쓸함이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세계의 대결구도는 흥미진진하고, 한껏 몰렸던 누군가가 하나의 키를 새롭게 쥐고 상황을 반전시키는 이야기는 통쾌하지만, 동시에 한 걸음 물러나 이 싸움판을 보게 되면 우리네 현실이 얼마나 법 정의와는 멀어져 있는가를 확인하는 씁쓸함이 느껴진다. <귓속말>은 법 정의가 무너진 세상에서 사는 법에만 능숙한 이들의 대결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리고 그 시선에는 풍자적 관점 또한 들어 있다. 도대체 저게 뭐하는 짓들인가.

‘지니어스’, 우리에게도 맥스 같은 편집자가 있는가

사실 안타깝게도 문학의 시대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다. 그러니 영화 <지니어스>에 등장하는 천재적인 소설가 토마스 울프의 소설 구절구절들이 우리네 관객에게 어떤 울림을 주기는 쉽지 않다. 물론 <동주>의 윤동주처럼 우리 관객이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이라면 또 모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름은 알아도 그 소설은 낯설기 이를 데 없는 토마스 울프가 아닌가. 삶에 대한 상징들로 가득 채워져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져버리는 그 순간을 무려 몇 십 장에 걸쳐 묘사해내는 토마스 울프의 넘쳐흐르는 문학성은 지금의 대중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사진출처:영화<지니어스>

하지만 바로 그런 낯선 정경과 정서가 주는 기묘한 느낌 같은 것이 <지니어스>에는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가 이제 점점 구술시대로 접어들면서 조금씩 그 묘미를 버리고 있는 문자의 마술 같은 것이다. 의미는 모호하지만 단어와 단어의 이질적인 조합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감흥 같은 것이 <지니어스>에는 전편에 흐른다. 그것은 1929년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시간적 공간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그 정도의 시간을 되돌려야 문학이라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나.

영화 <지니어스>는 토마스 울프(주드 로)라는 천재와 그는 물론이고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같은 전설들을 대중들 앞에 발굴해낸 맥스 퍼킨스(콜린 퍼스)라는 또 다른 천재 사이에 벌어진 실제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천재를 알아보는 천재의 이야기. 그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 교감해가며 그것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우리가 최종적으로 접하는 명작이 그저 한 천재에 의해 우발적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제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그 가치와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전하기 위해 아낌없는 헌신을 다하는 맥스 같은 또 다른 천재가 없다면 그 천재가 꽃을 피우지 못할 거라는 것. 

마치 속 안에 써내지 않으면 폭발해버릴 것처럼 끝없이 쉬지 않고 글을 써내는 토마스 울프. 맥스는 무려 5천쪽에 달하는 그 글들을 울프와 함께 정제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갈등이 생긴다. 맥스는 결국 편집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울프 입장에서는 자신의 작품이 난도질을 당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울프는 맥스의 진심을 들여다보고 기꺼이 그 편집을 허용한다. 한편 맥스 역시 늘 작품은 작가의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때때로 자신이 하는 일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 

두 사람은 마치 불과 물 같은 서로 다른 성향을 보인다. 울프가 불처럼 천재성을 마구 뽑아내는 인물이라면 맥스는 물처럼 차분하게 아무 곳으로나 뻗어나가는 불길에 물길로 균형을 맞춘다. 완전히 다를 것 같지만 어떤 소통을 통해 합일점이 가능하다는 걸 영화는 두 사람이 재즈바에 음악을 듣는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재즈에는 관심이 없는 맥스가 재즈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곡을 선곡하지만 그 곡이 변주를 통해 재즈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맥스와 울프는 한 마음으로 음악을 즐기게 된다. 

<지니어스>가 특히 주목하는 건 맥스라는 편집자다. 영화의 첫 장면이 비 내리는 뉴욕 거리 한 귀퉁이에 비를 쫄딱 맞고 자신의 원고가 출판될지 안 될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토마스 울프의 발에서 시작하는 건 이런 영화의 주목점에 대한 암시다. 낮은 카메라의 시선으로 보이는 수없이 많은 발들 속에 토마스 울프의 발을 잡아내는 일. 영화는 자주 많은 뉴요커들이 쏟아져 나온 거리 속에서 맥스와 토마스 울프가 서로를 발견하는 장면을 반복해 집어넣는다. 천재를 찾아내고 그 천재성을 제대로 끌어내게 하기 위해 헌신하는 편집자 맥스라는 존재의 위대함. 

많은 이들이 작품은 온전히 예술가의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혹은 1920년대의 뉴욕이나 2017년의 한국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 예술가 뒤편에서 책이 대중들 앞에 도달할 때까지 헌신하는 편집자라는 존재의 역할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이국적인 영화가 우리에게도 주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 

우리에게는 과연 맥스 같은 편집자가 있는가.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작가가 쓴 것인지 아니면 편집자가 쓴 것인지 알 수 없는 책들이 나오는 건 우리네 출판가에 그리 낯선 일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그것 역시 편집자의 헌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테지만 자칫 상업적인 선택들에 의해 책이 난자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맥스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경계했던 것. 작품은 결국 작가의 것이어야 한다는 그 질문에 담긴 고민은 그래서 지금의 편집자들에게 적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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