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워>, 무엇이 마블의 압승을 만들었나

 

새로 개봉한 마블사의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이하 시빌워)>는 여러모로 지난 3월 개봉했던 DC 코믹스의 <배트맨 대 슈퍼맨>을 떠올리게 한다. 어벤져스와 저스티스 리그로 뭉쳐 심지어 외계인들과 싸우던 슈퍼히어로들은 이제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끼리의 대결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출처:캡틴 아메리카-시빌워

이렇게 대결의 상대가 외부가 아니라 내부로 바뀌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미 너무 많은 슈퍼히어로물들이 쏟아져 나와 이제는 비슷한 패턴들이 생긴데다가 이제는 악당 대 슈퍼히어로라는 대결의 스토리텔링이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현재의 달라진 세계의 정세가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 냉전시대에서 한참 벗어나 자유롭게 교류되는 지구촌에서 이제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게 되었다. 테러리즘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 희미해진 경계 사이로 넘나들며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강력해진 한 국가의 힘은 세계 정의를 부르짖지만 때로는 그것이 약소국을 파괴하는 또 다른 폭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시빌워><배트맨 대 슈퍼맨> 모두 그 이야기의 전제로 슈퍼히어로들이 전 지구적인 적들과 맞서 싸우는 그 과정에서 무고하게 죽어나가는 인명이라는 딜레마를 깔아놓는 건 그래서다. 슈퍼맨이 우주에서 날아와 지구를 구한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그가 불러들인 우주인들의 전쟁에 지구가 황폐화되어간다는 걸 인식한 배트맨이 복수를 꿈꾸는 <배트맨 대 슈퍼맨>의 이야기나, 슈퍼히어로가 가진 힘의 통제에 대해 찬반으로 나뉘어 대결하는 <시빌워>는 그래서 동일한 전제 위의 다른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배트맨 대 슈퍼맨>이 전반의 흥미진진한 대결구도에도 불구하고 후반부로 가면서 요령부득의 결말을 보여주어 전 세계 관객들을 실망시킨 것과 달리, <시빌워>는 캡틴 아메리카로 대표되는 자유파와 아이언맨으로 대표되는 통제파가 끝까지 대결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훨씬 더 흥미로웠다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선과 악의 대결 같은 평이한 결말로 흘러가지 않고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의 차이가 팽팽히 대결함으로써 어떤 논점들을 관객들이 선택하게 한 것은 <시빌워>의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렇게 갈라진 슈퍼히어로들 때문에 관객은 혼란을 느끼게 되지만, 바로 그 혼란이야말로 어느 한쪽을 선택해 다른 한쪽을 적으로 상정하는 흑백논리를 넘어서게 해주는 이 영화의 미덕이다.

 

그래서인지 팽팽한 대결 속에서도 슈퍼히어로들이 어떤 유머를 보여주는 장면이나, 이 대결을 야기한 인물에 대해 처절한 응징이 아닌 법적 절차와 선택을 요구하는 장면들은 대결양상을 충분히 사변적으로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공동의 적을 세워 대결을 멈추는 <배트맨 대 슈퍼맨>의 이야기보다는 공감대가 커지는 이유다.

 

이런 메시지를 제대로 담으면서도 영화는 관객들의 주 관심사라고 할 수 있는 슈퍼히어로들끼리의 대결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대결하고, 스파이더맨과 앤트맨이 한 판 붙는 그 스펙터클은 충분히 즐거우면서도 유머가 넘쳐난다. 결국 DC와 마블의 슈퍼히어로 대결 이야기의 성패를 가른 건 그 균형 감각이다. 볼거리와 대결 양상이 선명하게 보이면서도 시대를 통과하는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것. 확실히 마블사 <시빌워>의 압승이다.

<1><무도>와 달리 멤버교체가 자유로울까

 

예능왕 윤동구(?)’의 기대감이 생겨나는 <12>의 새로운 출발이다. 구탱이형 김주혁이 하차한 후 비어있던 공석을 신입멤버 윤시윤은 등장만으로 틈 없이 채워주었다. 물론 구탱이형이 등장해 새 멤버에게 인수인계를 하는 장면은 새로웠지만 그 등장방식 자체가 새로울 것은 없었다. 이미 <12>의 공식 첫 출연 전통이 되어버린 물 뿌리고 소금물 먹이고 멤버들끼리 짜서 심부름 시키는 일들이 반복됐다. 하지만 등장방식이 같아도 무슨 상관이랴. 새로운 얼굴 윤시윤이 있는데.

 


'1박2일(사진출처:KBS)'

이미 유호진 PD가 언론을 통해 윤시윤의 섭외 이유로서 착하다고 말했듯이 그는 짓궂은 선배들의 장난에도 웃은 얼굴을 보여줬다. 김준호가 예의가 발라서 시키기 좋다. 착하다.”고 얘기한 건 그냥 의례적인 말이 아니었다. 그는 <12> 첫 출연에 설렘을 숨기지 않았고 계속 당하는 모습에서도 기꺼이 즐거운 얼굴을 함으로써 보는 이들도 즐겁게 만들었다. 물론 가끔은 게임을 짜자고 하고서는 그걸 깨버리는 의외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윤시윤의 합류로 <12>은 좀 더 완전해진 느낌이었다. 6명이라는 숫자는 이제 33 팀 대결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고 2명씩 짝을 지어 떠나는 여행도 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합의 묘미보다 더 중요한 건 새 멤버의 합류로 인해 생기는 프로그램의 활력이다. 젊은 피로서 윤시윤은 그 특유의 밝은 이미지가 더해져 10년을 여행해온 <12>의 피로감(?)을 날려주는 비타민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제빵왕 김탁구에서 예능왕 윤동구(예능명으로 지어진 이름)’의 탄생을 기대하는 이유다.

 

그런데 여기서 새삼 궁금해지는 부분이 있다. <12> 역시 멤버 교체에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지만 그나마 그것이 쉽게 이뤄지는 까닭은 뭘까. <무한도전>을 떠올려 보라. 광희 한 명을 새로 뽑는데 식스맨 프로젝트같은 전 예능계가 들썩이는 대공사가 필요했었다. 그리고 다시 정형돈이 건강상의 이유로 잠정적인 하차를 하게 됐지만 그 빈자리는 좀체 채워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물의를 빚고 하차했던 전 멤버들, 길과 노홍철이 방송에 복귀했어도 <무한도전>에는 언감생심 합류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이렇게 된 건 <무한도전>이 갖고 있는 팬덤과 그 사회적 영향력이 <12>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멤버 교체나 충원이 쉽지 않은 점은 큰 고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12>은 다르다. 물론 이명한 PD가 처음 일으켰지만 그 바톤이 나영석 PD로 옮겨지면서 최전성기를 구가했고, 그가 빠져나가자 그 뒤를 최재형 PD, 이세희 PD를 거쳐 지금의 유호진 PD로 계속해서 제작진이 바뀌었다.

 

출연자들도 마찬가지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출연자는 김종민이 유일하다. C가 하차하고 엄태웅이 들어오기도 했고, 김승우, 차태현, 성시경, 주원이 합류하기도 했으며 김승우가 나가자 그 자리에 유해진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리고 시즌3를 맞이해 김주혁, 김준호, 데프콘, 정준영이 들어왔고 김주혁이 빠진 자리에 윤시윤이 들어오게 됐다. <12>은 마치 평생 고정 멤버처럼 되어 있는 출연자들의 이탈과 충원이 자유롭지 못한 <무한도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물론 고정 멤버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무한도전>의 팬덤과 의리가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12>의 이렇게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출연진들의 교체와 충원이 유리한 지점 역시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젊은 피를 계속 수혈할 수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 프로그램에도 새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새 멤버로 투입된 윤시윤은 그걸 잘 보여주고 있다.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 그 기적 같은 일

 

MBC <무한도전> ‘토토가2’는 역시 변함없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해체 후 16년 만에 완전체로 무대에 선 젝스키스에게 노란 우비를 입고 객석을 가득 메운 팬들은 눈물로 화답해주었다. 그들은 모두 함께 나이 들었고 그래서 더 성숙해진 모습들이었지만 그런 건 그들이 만나는 순간 모두 지워져버렸다. 함께 공유한 시간들은 그들을 고스란히 16년 전으로 되돌려 주었으니.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사실 이번 특집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 중 가장 컸던 건 <무한도전>처럼 이미 하나의 공공의 장이 되어버린 프로그램에서 젝스키스 팬 미팅의 성격이 강한 토토가2’를 한다는 것이 너무 마니아적이 아니냐는 시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 젝스키스의 16년만의 무대는 의외로 보편적인 감동을 주었다. 팬이라면 당연하겠지만 팬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물론 젝스키스의 팬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당대를 지냈던 이들이라면 “Oh love -”의 후렴구로 유명한 커플이란 곡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을 때 저마다의 추억이 방울방울 소환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노래를 전혀 모르고, 심지어 당대를 살지 않은 젊은 세대라고 해도 토토가2’는 충분히 감동적일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에 대한 남다른 감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20년 전 가수와 팬으로 만나 같은 공간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열광하고 박수쳤을 그들이 그렇게 다시 20년 후 한 자리에 모여 그 때와 똑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 그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는 것이다.

 

게릴라 콘서트형식으로 팬들과 만나기 전, 이런 시간의 공유가 주는 감동을 먼저 보여준 건 마지막 날 무대에 함께 오르기로 결심한 고지용이었다. 잠깐 커플의 안무동작을 바라보던 지용이 저도 모르게 춤동작을 기억해내고 따라하는 장면. 그것은 젝스키스 멤버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함께 해왔는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주었다. 머리는 기억을 못하지만 몸이 기억해내는 지용의 춤동작은 그래서 그것이 어설프다고 해도 멤버들을 반색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감흥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해졌다. 설혹 젝스키스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사람과 사람이 시간을 뛰어넘어 함께 했던 시간을 공유한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인간만의 능력인가. 그것을 그저 쉽게 공감이라고 표현하지만 바로 이 능력이 있어 우리는 생판 모르는 타인과도 연결될 수 있는 것일 게다.

 

<무한도전> ‘토토가2’가 보여준 건 젝스키스의 팬 미팅도 아니고 그저 그런 추억 팔이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전혀 그들을 모르는 타인이라도 똑같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이어지는 공감의 힘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도전이었다

예능 부적응자된 강호동, 거기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신서유기2>에서 강호동은 예능 부적응자. 시즌1에서 처음 버스에 올라 오랜만에 모인 옛 <12> 멤버들이 그에게 옛날 사람이라고 놀릴 때만 해도 그게 그저 캐릭터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캐릭터가 아니고 어쩌면 진짜 그의 부적응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게 시즌2에서는 여실히 느껴진다.

 


'신서유기2(사진출처:tvN)'

중국의 한 공항에 내려놓고 제작진이 도주해 버리는 그 상황에 강호동은 마침 전화를 받고 있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강호동은 또 당했다는 실감했다. 시즌2 2편에서 강호동은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인터뷰를 통해 내가 영석이한테 말리나? 삶 자체가 말리는 것 같애. 영석이한테.”라고 말하며 한숨을 토해냈다.

 

청두에 도착한 날부터 낙오를 경험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있었던 기상미션(말 조각상 앞에서 사진 찍기)에서 1등을 할 수도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다 찾아놓고도 4등을 하는 그는 확실히 <12> 시절의 야생 시베리안 수컷 호랑이가 더 이상 아니었다. 복불복 퀴즈에서 연거푸 계속 답변을 하지 못해 쩔쩔 매고 그래서 방송 분량 또한 나오지 않게 만드는 강호동은 낯설다. <12> 첫 회에 충북 영동에 가서 나무 아래 평상 하나에서도 충분히 분량을 만들어내던 그가 아닌가.

 

복불복이 가혹하다는 듯이 제작진이 꼬치를 걸고 복복복 게임을 제안하지만 그건 일종의 함정 같은 것이었다. 강호동이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져야지 계속 먹을 수 있는 게임에서 오히려 이기고는 환호하는 그의 모습이 연출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것 역시 나영석 PD 앞에서 예전보다 더 말리는그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지만.

 

그런 강호동을 막내이자 예능 초보자인 안재현이 옆자리에 앉아 다독이고 챙기는 모습은 예쁘지만 한편으로는 짠하게까지 느껴진다. 침체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이수근이 이동 간에 뜬금없는 콩트 개그를 선보이는 것 역시 강호동에게는 안쓰러운 대목이다. 늘 중심에 서던 그가 아닌가.

 

하지만 강호동은 미션 수행을 위해 달리면서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 힘겨워하고 버스에 오르면 좌석의 허리를 꺾어놓을 정도로 퍼질러지는 체력의 한계를 드러낸다. 웃기려고 노력하지만 과거처럼 빵빵 터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어떨 때는 잔뜩 주눅든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며 자는 그의 모습은 한 때 야생의 강인함을 보여줬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힘이 많이 빠져버린 슬픈 짐승 같은 처연함마저 느껴진다.

 

아마도 이것은 지금의 강호동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일 게다. 그는 방송 복귀 후 꽤 오랫동안 여러 프로그램을 전전하면서 안간힘을 써왔다. 하지만 시청률도 반응에서도 그는 예전만큼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유재석처럼 강철 체력도 세월에는 어쩔 수 없다. 또한 예능의 나이는 트렌디하기 이를 데 없어서 그 흘러가는 속도가 엄청 빠르다. 적응을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거기서부터 비로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가장 자기 자신인 그 진짜 모습에서부터 시작해야 새로운 것도 그의 방식으로 적응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신서유기2>의 강호동은 그래서 짠하지만 많은 걸 내려놓은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 일찌감치 이랬어야 한다. 이제 비로소 그는 밑바닥에 발이 닿은 것이니. 그리고 그 밑바닥은 예능인들에게는 가장 좋은 포지션을 만들어주는 위치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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