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폭발력 커지는 <무도> 가요제의 비밀

 

어쩌면 이렇게 늘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을까. <무한도전> 가요제는 강변북로 가요제(2007)부터 시작해 올림픽대로 가요제(2009), 그리고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2011)를 거쳐 이번 자유로 가요제(2013)가 무려 네 번째다. 그런데 이처럼 회를 거듭하면서도 그 폭발력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자유로 가요제는 일단 그 규모가 훨씬 커졌다. 3만5천여 명이 운집한 공연장은 웬만한 록 페스티벌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단 하루 게릴라식으로 치러지는 가요제의 규모가 이 정도라면 <무한도전>이라는 이름을 걸고 음악과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지는 어엿한 페스티벌을 만들어도 충분할 듯하다. 의미와 가치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듯 싶다.

 

무엇보다 과거와 달라진 음악들이 주목된다. 유재석이 댄스곡을 고집한다거나 박명수가 일렉트로닉 하우스 장르를 반복했다면 식상해질 수도 있는 가요제였다. 하지만 유재석이 부르는 R&B는 괜찮은 느낌을 주었고, 프라이머리의 색깔이 묻어나는 레트로 힙합을 박명수가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첫 무대에 올랐던 김C와 정준하의 실험적인 무대는 실로 압권이었다. 정제되면서도 세련되고 또 다채로운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펼쳐 놓음으로써 좋은 시작을 알렸다. 퍼포먼스가 좋았던 정형돈과 지드래곤의 무대, 노홍철과 장미여관 그리고 하하와 장기하와 얼굴들이 선보인 파워 넘치는 록 스피릿, 그리고 보아와 길이 보여준 춤의 경연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무한도전> 멤버와 아티스트들의 조합, 그리고 그 관계에서 나오는 스토리텔링도 갈수록 세련되어지고 있다. 아마도 여러 차례의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생겨난 일일 것이다. <무한도전> 가요제에 함께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반색할 가수들의 풀이 넓어진 것은 음악적인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 메인 게스트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게스트에만도 이소라, 다이나믹 듀오, 김조한 같은 아티스트들이 참여할 정도가 아닌가.

 

자유로 가요제에는 지드래곤이나 보아처럼 국내 대형 기획사의 화려한 가수들이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미여관 같은 이제 막 대중들에게 인지되는 인디밴드가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니 장미여관의 육중완의 옥탑방에서 노홍철이 YG 사옥을 가리키며 게찜을 먹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게 된다. 하하와 장기하와 얼굴들이 정형돈과 지드래곤이 점심을 먹는 YG 식당을 급습하는 장면도 말이다.

 

여기에 유희열이나 김C 같은 이미 예능을 통해 믿고 보는 캐릭터들의 가세는 자유로 가요제의 예능을 남다르게 만들었다. 특히 감성변태 유희열과 유재석이 곡 선정을 하면서 서로 댄스와 R&B를 고집하다가 <100분토론>(?)까지 하는 이야기나, 제주도를 여행하며 김C의 독특한 음악 세계에 점점 빠져 들어가는 정준하의 이야기, 그리고 정형돈과 지드래곤이 퀴어코드를 활용해 마치 연인처럼 밀당을 하는 이야기는 큰 웃음은 물론이고 발표될 음악에 대한 기대감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보통 시즌제를 하는 가요제나 오디션 프로그램이 빠지는 늪이 바로 이 반복과 패턴화로 인해 생겨나는 피로감일 것이다. 제 아무리 파괴력을 보여준 소재라도 반복하면 힘이 빠지는 것이 당연지사. 과거 <남자의 자격>이 했던 하모니편은 단적인 사례이고, 최근에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시즌을 거듭하면서 예전 같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무한도전> 가요제는 회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더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한도전> 가요제 특유의 기대감을 빼는(?) 방식에서 기인한다. 보통 시즌제 프로그램이 작게는 몇 달마다 길게는 1년 정도를 두고 반복되지만 <무한도전> 가요제는 휴지기가 2년이다. 그만큼 이전의 열기가 충분히 가라앉은 상황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즌제에서 휴지기가 중요한 것은 준비기간이 필요해서이기도 하지만 한껏 올라가 있는 기대감을 상대적으로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래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도전> 가요제의 기대감을 빼는 방식에서 더 중요한 것은 독특한 스토리텔링 속에도 들어있다. 보통의 가요제라면 기대감을 높이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연출하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는 가수다>다. <나는 가수다>는 출연자들이 방송국을 찾아오는 순간부터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장면, 리허설 등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며 가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거꾸로다. 멤버들은 가수들을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한없이 기대감을 뺀다. “과연 저렇게 해서 노래는 나올 수 있을까”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 자유로 가요제에서 보듯이, 막상 무대에서 발표된 곡들은 기대 이상의 결과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토리텔링은 예능적으로 접근하고(기대감을 낮추고) 무대는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낸 최고의 결과물을 뽑아내는 방식. 여기에 <무한도전> 멤버들과의 이야기까지 가사로 녹여진다면 웃음과 즐거움을 넘어 감동까지 주는 무대가 완성되는 셈이다.

 

방송에 있어서 비슷한 소재를 갖고 회를 거듭하면서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무한도전> 가요제는 그 독특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통해 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무한도전> 가요제는 가요제 형식의 <무한도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게다. 이것은 또한 무수한 시즌제를 추구하는 방송 프로그램들에게도 분명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형식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슈스케5>, 어쩌다 이들은 무표정이 되었을까

 

<슈퍼스타K5>의 탑3는 송희진, 박재정, 박시환에게 돌아갔다. 김민지는 결국 탑4에서 하차하게 됐다. <슈퍼스타K5>의 출연자들 역량이 예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송희진과 김민지가 함께 부른 브르노 마스의 ‘원 모어 나잇(One more night)’은 실로 압권이었다. 음정이 불안하다는 평을 자주 듣고 또 발라드에만 장르적으로 머물러 있던 박시환의 록커 변신은 무난하게 여겨졌고, 복고적이면서도 늘 세련된 느낌을 주는 박재정의 무대도 나쁘지 않았다.

 

'슈퍼스타K5(사진출처:mnet)'

실로 심사위원들의 혹평이 유독 많았던 <슈퍼스타K5>였던 게 사실이다. 특히 이하늘의 심사는 대부분이 혹평에 가까웠고 점수도 90점 이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출연자들의 역량 부족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렇게 혹평을 받은 출연자들의 의기소침은 무대에서의 실수로 이어지기도 했다. 탑4 무대 정도가 된다면 출연자들의 얼굴에 자신감이 넘쳐야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렇질 못했다.

 

아마도 시즌5를 지나오면서 점점 높아진 기대감이 주는 착시현상도 있을 게다. 노래실력이 아직 아마추어에 머물고 있다고 평을 받지만 탑4까지 온 출연자들은 충분한 매력이 있다 여겨진다. 프로로서의 실력과 끼를 보여준다면 그것은 어쩌면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는 순수한 맛을 상쇄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송희진이 가진 시원시원한 고음과 박재정이 가진 안정적이고 세련된 느낌, 박시환의 듣는 이를 슬프게 만드는 음색이나 김민지의 어쿠스틱하고 아티스트적인 면모는 저마다 괜찮은 가능성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이들을 아마추어적인 느낌이 들게 만드는 점이 있다. 그것은 흔히들 끼 혹은 스타성이라고 말하는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SM엔터테인먼트를 찾아간 박시환과 박재정이 샤이니를 만나 선보인 춤을 보라. 생방송 무대에서도 ‘매너 부족’ 혹평을 들을 만큼 이들의 몸으로 표현하는 부분은 실로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것은 송희진도 마찬가지고 김민지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녀들은 각각 파워보컬과 포크라는 특색을 갖고 있어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무대에서의 액션이 약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것은 단지 액션만이 아니고 그들의 표정에서도 묻어난다. 노래 역시 감정을 실어 관객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면, 노래 그 자체만큼 중요한 게 얼굴의 감정연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약간의 허세 섞인 표정의 매력을 가진 박재정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세 사람의 표정은 사실상 데드 마스크에 가깝다. 박시환은 늘 똑같은 표정이고 심지어 웃을 때조차 어색한 느낌이다. 송희진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처럼 노래하고, 김민지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그래도 표정이 자연스럽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가창력이 가진 힘이 100%라면 여기에 얹어진 표정과 감정은 노래를 200%로 만들어줄 것이다. 결국 제 아무리 고음을 잘 지르고, 슬픈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그것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니 말이다. 과거 출연자였던 허각이나 존박, 울랄라세션의 임윤택이나 버스커버스커의 장범준, 그리고 로이킴, 정준영 같은 인물들을 떠올려 보라. 그들은 얼마나 자신의 끼와 스타성을 마음껏 보여주었던가.

 

어째서 이번 출연자들은 무표정한 느낌을 주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심사위원이나 제작진들이 이들 출연자들을 충분히 북돋워주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고, 그 감정과 표현을 제대로 포착해내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출연자들 스스로 자신의 무표정으로 일관해온 틀을 벗어던지지 못한 원인이 가장 크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무표정하게 만들었을까.

 

이번 출연자들은 특히 어려움을 많이 겪은 흔적이 역력하다. 가난한 집안형편으로 중장비 이동 정비사를 하며 노래방에서 노래의 꿈을 키워왔다는 박시환이나, 가정형편이 안 좋아 아빠랑 떨어져 그룹 홈에서 지낸다는 송희진은 대표적이다. 이들의 무표정은 어쩌면 상처받은 이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이 거의 습관화되면서 생겨난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이제 겨우 스물여섯의 나이에 일자리를 전전하고, 열아홉에 집이 없어 그룹 홈에 지내는 청춘이 취할 수 있는 자기 보호 본능 같은 것일 게다.

 

이들에게 오디션이라는 현실의 또 다른 재연은 누구보다 혹독하게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이번 오디션에서 무엇보다 바라게 되는 것은 누가 우승하고 누가 떨어지는가가 아니다. 이들이 오래도록 숨겨왔던 자신들의 속내를 털어내고 웃는 모습. 더 이상 부자연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그동안 유예되어왔던 그 나이의 밝은 표정을 갖게 되는 것. 어쩌면 이것은 우리 시대의 한 어두운 구석에서 잉여라 치부되며 힘겨운 현실을 무표정으로 버텨내고 있는 청춘들에 대해서도 어떤 희망이 될 수 있을 게다.

여자 연예인에게 섹시 콘셉트는 양 날의 칼

 

또 섹시 콘셉트인가. JYP측은 걸 그룹 미스에이의 정규 2집 ‘허쉬(Hush)’를 소개하면서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 콘셉트 중에 가장 파격적이다. '섹시 수지'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고 한다. 왜 미스에이라는 걸 그룹의 신보를 소개하면서 굳이 ‘섹시 수지’를 전면에 내세웠을까. 당연하게도 미스에이의 신보에서 수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가장 크기 때문일 게다.

 

사진출처:건축학개론

영화 한 편으로 순식간에 국민첫사랑의 이미지를 꿰찬 수지가 아닌가. 이 첫사랑의 이미지와 섹시 이미지는 사뭇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러니 JYP측은 오히려 이 부분을 강조해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의도에서 ‘섹시 수지’를 강조했을 게다. 사실 미스에이의 섹시 콘셉트는 이미 ‘터치’의 붕대 의상에서부터 선보여졌고 심지어 선정성 논란에 휘말리기까지 했었다. 그러니 미스에이의 섹시 콘셉트가 새로운 건 아닐 것이다. 다만 수지가 가진 국민첫사랑의 이미지를 오히려 섹시 코드로 반전시킴으로써 발생하는 효과를 기대했을 뿐이라는 점이다. 결국 섹시 코드를 내세워 국민첫사랑이라는 이미지를 소비시키는 셈이다.

 

하지만 여가수의 섹시 콘셉트는 확실한 음악적 성취가 따라주지 않을 때 득보다는 독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물론 확실히 ‘섹시 수지’라는 이미지는 대중들의 이목을 주목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수지의 청순 이미지는 상당 부분 희석되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첫사랑의 아이콘으로까지 불리던 청순 이미지가 수지가 가진 가장 큰 에너지라는 점이다.

 

알다시피 수지의 영향력은 가수로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드림하이>와 <건축학개론>이라는 두 작품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입지를 세웠다. 하지만 이것 역시 그녀의 연기력 때문은 아니다. 작품의 캐릭터와 그녀의 이미지가 맞아 떨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구가의 서>에서 수지가 보여준 연기를 생각해보라. 팬덤이 없었다면 연기력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게다.

 

결국 수지가 갖고 있는 힘은 이미지다. 청순한 외모와 순수한 느낌으로 <건축학개론>의 서연 같은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 그런데 그 이미지를 ‘섹시’로 바꾸겠다는 거다. 물론 가수나 연기자나 다양한 이미지에 도전하는 것이 나쁠 것은 없을게다. 하지만 수지의 경우는 자꾸만 새로운 이미지를 덧대기보다는 노래든 연기든 어느 쪽에 좀 더 자신의 공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이것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런 저런 이미지를 쓰는 것은 자칫 스스로를 알맹이 없는 껍질로 만들 수 있다.

 

알다시피 대중문화에서 섹시 이미지란 여성들에게는 거의 마지막에 쓰는 카드나 다름없다. 물론 적당한 섹스어필은 여자 연예인들에게 어느 정도 요구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어느 정도를 넘어서는 것은 오히려 해당 연예인의 이미지 소비만 빠르게 할 뿐이다. 과거 박진영에 의해 본인 스스로도 별로 원하지 않은 과감한 섹시 콘셉트를 선보였던 박지윤의 사례를 떠올려보라. 결국 그녀는 다시 가요계로 돌아오는데 상당한 세월이 걸리게 되었다.

 

최근 ‘24시간이 모자라’로 과감한 섹시 콘셉트을 선보인 JYP의 선미도 마찬가지다. 무릎을 꿇고 골반을 튕기는 춤은 잠시간 화제가 되었지만 노래가 받쳐주지 못하면서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했다. 결국 섹시 콘셉트로 화제가 되고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끄는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노래가 대중들의 귀를 자극하지 못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섹시 콘셉트를 내세운 가수의 부담만 늘어나게 된다.

 

여가수의 섹시콘셉트는 물론 수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대부분의 여가수들은 ‘섹시’가 무슨 필수품인 양 달고 노래를 발표한다. 심지어 국민여동생의 이미지를 갖고 있던 아이유도 새 앨범의 포장을 ‘섹시’로 했고, 김예림 같은 독특한 음색의 가수 역시 팬티를 노출하는 티저로 섹시 이미지를 포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과 수지는 다르다. 아이유나 김예림이나 음악적으로 이미 충분한 성취를 갖고 있는 가수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은 본격 활동에 들어가면서 처음 이목을 끌기 위해 내놓았던 ‘섹시’ 이미지를 슬그머니 지워버렸다. 영민한 전략이다.

 

최근 현아와 현승의 트러블메이커가 새롭게 발표한 ‘내일은 없어’의 뮤직비디오에 대해 무수한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비판도 있고 뮤직비디오의 구성이 해외 뮤지션의 것을 그대로 베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한편에는 공개 3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 5백만 뷰를 넘어섰다는 식으로 ‘19금 열풍’의 성공을 예고한다. 물론 이 정도의 수위를 보여주면서 이런 반응이 안 나타날 리는 없다. 하지만 현아의 노출과 섹시 이미지는 어쩌면 그녀에게는 갈수록 부담이 될 가능성도 높다.

 

클라라가 시구 한 방으로 드라마와 예능의 핫한 아이콘이 되는 과정은 지금의 섹시 과열 경쟁의 맨얼굴을 보여준다. 어떻게든 시선을 끄는 데 있어서 여자 연예인에게 섹시 이미지만큼 강력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라라의 경우에서 드러나듯이 거기에 걸맞는 연기력이나 예능감 혹은 음악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성공가능성은 오히려 더 희박해진다.

 

수지는 아직 어리다. 이제 겨우 19살이다. 연기든 노래든 부족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능성이 더 많은 연예인이다. 당장의 수익을 위해 소모되기보다는 좀 더 큰 가능성을 내다보고 부족한 면을 먼저 채워나갈 수는 없는 일일까. 섹시 수지를 기대하라고 하지만 사실 우려가 더 큰 이유다.

 

폭력과 금력 미화하는 <상속자들>, 뭐가 문제일까

 

때로는 드라마 작가에게 능력이 오히려 독으로 비춰질 때가 있다. <상속자들>이 그렇다. 드라마만을 놓고 보면 <상속자들>은 재벌2세와 가난한 여자 사이에 벌어지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다. 지금껏 김은숙 작가가 계속 해왔던 이야기의 반복이고 또 가장 잘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상속자들(사진출처:SBS)'

“나 너 좋아하냐?” 같은 김은숙 작가 특유의 대사 톤도 여전하고, 밀고 당기며 때론 아프고 때론 달달하게 이어지는 멜로 역시 꽤 강한 극성을 만들어낸다. 특히 이민호, 박신혜, 김우빈, 강민혁 같은 아이돌 스타들의 존재감은 어찌 보면 늘 봐왔던 김은숙 표 멜로의 역할 놀이에 강력한 힘을 부여한다. 어찌 보면 이들이 있어 드라마가 갖고 있는 비현실적인 구석들, 이를 테면 지나친 우연의 반복이나 제국고등학교 같은 과장된 설정들이 그나마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속자들>은 전형적인 이야기에 비현실적인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꽤 재미가 있다. 마치 아이돌 팬시 상품 같은 느낌이랄까. 김탄(이민호)이 캘리포니아에서 서핑을 하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풀빌라에서 사는 모습은 그가 아무리 유학이 아닌 ‘유배’라고 말해도 보통사람들에게는 판타지의 하나로 여겨지게 마련이다.

 

김탄의 집안에서 운영하는 제국고등학교는 ‘사탄들의 학교’라고 일컬어지지만, 가진 자들의 재수 없음의 이면에는 고등학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으리으리한 환경과 커리큘럼에 대한 막연한 동경 역시 깔아놓고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그 막연한 동경 속에 자꾸만 바라보게 함으로써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세계와 행동들마저 도취시키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최영도(김우빈)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다. 그가 단지 가난하고 클래스가 다르다는 이유로 준영(조윤우)이 같은 아이를 구타하고 왕따시키며 고소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장면은 사실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시선은 왕따 당하는 준영이의 입장보다는 왕따시키는 최영도의 입장에 가 있다. 물론 현재는 달라졌지만 김탄 역시 과거에는 최영도와 다름없는 캐릭터였다. 이 드라마는 이 부유한 친구들이 소위 고통이라고 부르며 그것 때문에 폭력과 금력을 쓰는 것들을 정당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이미 제목에서 드러나 있다. <상속자들>에 붙어있는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라는 제목에는 이들 태어날 때부터 왕관을 쓰게 되어 있는 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고통’이라는 것을 이 드라마가 다루겠다는 의도가 들어있다. 그렇다면 그 고통이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 <상속자들>의 김탄이나 최영도처럼 ‘왕관을 쓰려는 자’의 고통이란 대부분 아버지의 여성 편력과 그로 인해 콩가루 집안이 된 가족사에서 비롯된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 ‘왕관을 쓰려는 자’들의 고통을 다루는 일이 과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 왕관 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이 현실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보면 아마도 이들 ‘왕관을 쓰려는 자’들은 드라마가 슬쩍 보여주는 것처럼 거의 상류층 1%에 해당할 것이다. 상류층 1%의 고통을 얘기하는 드라마는 어쩌면 그 자체로 나머지 99%를 그저 배경으로 치부하면서 이 1%의 세계가 가진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은상(박신혜)은 바로 그 99%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으리으리한 저택의 메이드룸에서 살고 있다는 공간 설정 자체가 이 인물이 처한 현실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차은상이라는 인물이 이 부유한 저택에서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시키는 심부름을 해야 하고 명령에는 오로지 예스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드라마는 그녀에게 김탄과 최영도가 조금씩 빠져드는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들이 왜 그녀에게 이토록 목매게 되는지는 잘 설명이 되어있지 않다.

 

그 이유를 드라마는 클리쉐로 넘겨버린다. 우연적인 만남의 반복과 왠지 모를 끌림이라는 상투적인 방식이다. 김탄은 갑자기 차은상에게 “나 너 좋아하냐?”고 묻고는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최영도 역시 마찬가지다. 정략결혼으로 이복동생이 될 지도 모를 유라헬(김지원)을 열 받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인 차은상에게 갑자기 관심을 갖는 식이다. 즉 이 모든 멜로의 키는 가진 자들이 쥐고 있다. 그들은 사랑할 여유조차 없는 현실에 처한 차은상에게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혹자들은 결국은 신데렐라 판타지를 다루는 로맨틱 코미디에 대해 너무 심각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벌가의 신데렐라 판타지를 즐기기에는 이미 현실이 너무 많은 재벌가들의 문제를 드러내주었다. 사모님의 수상한 외출이나 특목고 에서 벌어진 사배자 전형의 편법 운용 같은 사례는 심지어 대중들의 공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최근 재벌가를 다루는 드라마들이 과거와 달라진 점은 아마도 이러한 대중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추적자>가 권력이 가진 힘과 싸우는 한 서민을 통해 정의의 문제를 제기했다면, <황금의 제국>은 그 재벌가가 가진 태생적인 비극을 다루었다. 하다못해 <결혼의 여신> 같은 드라마도 재벌가 판타지를 오히려 깨는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던가.

 

김은숙 작가처럼 멜로를 잘 쓰는 작가도 없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잘 쓰는 것이 작가의 품격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자칫 능력은 오히려 잘못 사용되어지면 파괴적인 힘이 될 위험성이 있기 마련이다. <상속자들>에서 폭력과 금력이 이른바 그들의 고통이라는 근거로 미화되는 것은 그래서 제 아무리 판타지 설정의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라고 말하지만 지금의 힘겨운 현실에서 왕관을 쓰려는 자의 고통이란 엄살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개념이 잘 보이지 않는 <상속자들>. 재미만 있다고 모든 게 다 용서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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