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한국형 리얼리티TV, 자리잡고 있나

 

<진짜사나이>의 영향일까. SBS는 <심장이 뛴다>를 정규 편성했고 KBS는 <이상무>를 파일럿으로 방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진짜사나이>가 군인을 소재로 했다면 <심장이 뛴다>는 소방관을, <이상무>는 경찰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항간에는 비슷한 콘셉트 베끼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맞는 얘기다. 분명 관찰카메라를 내세운 <진짜사나이>가 포문을 연 것은 사실이니까.

 

'심장이 뛴다(사진출처:SBS)'

하지만 이 군인이나 소방관(119 대원), 경찰 소재의 프로그램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군인을 소재로 한 예능은 89년 시작해 96년까지 방영되었던 <우정의 무대>가 있었고, 소방관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도 <긴급구조 119> 같은 프로그램이 있었으며, 경찰 역시 <경찰청 사람들> 같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즉 형식은 다르지만 소재는 이미 다뤄졌던 것.

 

최근 들어 소방관이나 경찰 소재의 예능 프로그램이 연예인이 출연하는 관찰카메라 형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데는 그만한 우리 예능만의 역사적 흐름이 있다. 즉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서구에서 생겨난 리얼리티TV의 영향이 그것이다. 즉 90년대 <경찰청 사람들>의 탄생 이면에는 <캅스(미국)> 같은 경찰 소재의 리얼리티TV가 있었고, <긴급구조 119> 역시 <Rescue 911(미국)> 같은 소방관 소재의 리얼리티TV가 있었던 것.

 

하지만 이 리얼리티TV의 경향을 이어받아 <빅브라더>나 <서바이버> 같은 서구의 리얼리티쇼가 21세기에 등장하지만 이 경향이 우리나라에까지 그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일반인 출연자에 대한 사생활 노출에 정서적인 반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반인 대신 연예인을 출연시키고 이를 캐릭터쇼로 만든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하게 되었다. <무한도전>은 그 시작점이고 그 후로 <1박2일>이나 <런닝맨> 같은 흐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즉 <진짜사나이>를 비롯해, <심장이 뛴다>, <이상무> 같은 관찰 카메라를 이용한 예능 프로그램은 이미 90년대에 등장했던 리얼리티TV에 우리 식의 연예인 출연 리얼리티쇼가 접목된 형태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프로그램에 연예인만이 아니라 일반인 출연자들도 함께 등장한다는 점이다. 즉 어찌 보면 정서적인 반감 때문에 일반인 출연 리얼리티쇼가 나오지 못했던 21세기 초의 예능 경향이 지금에 와서야 조금씩 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연예인과 일반인이 함께하는 관찰 카메라형 리얼리티쇼는 일반인 리얼리티쇼로 가는 과도기적인 예능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서 이른바 ‘베끼기 논란’이 자주 벌어지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MBC 예능에서 포문을 연 이른바 ‘관찰 카메라’ 예능이 한때 트렌드를 이끌었던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형식을 조금씩 대체해가는 변화의 지점에 지금의 예능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즉 이 형식을 주도한 MBC 예능이 이 변화의 선봉에 서 있는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변화에 동승하는 관찰 카메라 형식의 예능들을 모두 베끼기라 말하기는 이제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무한도전>이 있어서 <1박2일>도 <남자의 자격>도 또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도 가능했던 것처럼, <진짜사나이> 같은 프로그램이 있어 좀 더 다양한 소재의 관찰카메라 예능이 나오는 것이 그다지 예능 전체의 발전을 위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다만 형식을 가져왔다고 해서 그 소재 자체가 가진 특성들에 맞는 저마다의 스토리텔링을 개성화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저 소재만 달리할 뿐 스토리텔링 방식을 똑같이 한다면 그것은 창의적인 재해석이 아니라 진짜 베끼기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인 소재의 관찰 카메라 예능이 뜨자, 소방관, 경찰 소재의 예능이 나오는 것은 그 자체로는 잘못된 일이 아니다. 거기에는 그만한 우리네 방송의 특유한 흐름과 역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다음부터다. 소재만 살짝 바꿔 너도나도 비슷한 스토리를 반복하게 된다면 자칫 이 새로운 트렌드로 각광받는 관찰 카메라 예능은 너무 빠른 소비를 맞을 수도 있다. 지금의 이 변화들은 소재적으로 풍성해지는 결과가 될 것인가. 아니면 짝퉁 예능들이 쏟아져 나와 오히려 소비만 빠르게 하는 결과가 될 것인가. 주목해야할 시점이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임성한 월드의 농단

 

사실 <오로라공주>를 보지 않는다. 드라마를 비평하는 게 직업이지만 처음 몇 회를 보고는 또 다른 임성한 월드의 반복일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임성한 월드에서는 끝없는 잡음들이 쏟아져 나왔다. 임성한 월드에서 비상식적인 인물들이 등장해 비상식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건 이제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게 되었다. 으레 임성한 월드는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눈치다. 눈에서 레이저가 안 나오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오로라공주(사진출처:MBC)'

자기 드라마에 자기 친조카를 연거푸 출연시켰다는 것은 임성한 월드의 뻔뻔한 권력적 구조를 잘 말해준다. 백옥담이라는 예명을 가진 임성한의 조카는 <아현동 마님>, <신기생뎐>에 이어 <오로라공주>까지 출연했다. 흔히들 작가와 배우의 사단을 얘기하면서 ‘패밀리’ 운운하지만 진짜 패밀리가 이렇게 계속 캐스팅 됐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오로라공주>에서는 중요한 배역도 아니면서 주연급 못지않은 분량을 할애 받았다고 한다. 특혜도 이런 특혜가 없다.

 

반대로 이 드라마의 출연자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속 하차를 거듭했다고 한다. 오로라(전소민)의 오빠 역할을 연기한 박영규, 손창민, 오대규를 비롯해 김정도, 송원근 등 무려 8명의 배우가 하차했다는 것. 무슨 전쟁드라마나 호러물도 아닌데 이렇게 주요배역들이 갑작스럽게 외국으로 떠나는 식으로 드라마에서 하차하게 되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항간에는 ‘서바이벌 드라마’ 아니냐는 비아냥 섞인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

 

드라마는 물론 작가가 구상해 내놓는 세계지만 일단 캐릭터와 관계가 주어져 대중들에게 보여지고 나면 작가도 맘대로 해서는 안되는 세계다. 이것은 작가가 이미 캐릭터를 선보였을 때 대중들과 어떤 식으로든 함께 가겠다는 약속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즉 갑자기 캐릭터를 하차시키거나 심지어 죽이거나 하는 건 드라마를 통한 대중들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일이다. 무려 9명이나 하차시킨 임성한 작가는 그 행위만으로도 대중들에게 횡포를 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로라공주>에서 하차하게 된 손창민은 YTN라디오에서 “황당하다”고 하차의 소감을 전했다. 물론 임성한 작가를 콕 집어 비판한 건 아니지만 그의 진술은 하차 과정조차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어저께 밤까지 녹화를 하고 새벽에 끝났는데 그 다음날 12시쯤에 방송사의 간부가 전화를 해 '이번 회부터 안 나오게 됐다'고 하더라. '이유가 뭐냐, 명분이 뭐냐'고 물었지만 '없다, 모른다'고 하더라.”

 

출연료 문제가 아니었냐고 묻는 앵커의 질문에 손창민은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다. 그리고 아마 모든 이번 일의 키포인트는 오로지 한 사람이다”라고 답한 후 “내가 지적을 안 해도 다 아실 거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드라마 대본 전개를 통한 하차이기 때문에 손창민 말대로 굳이 이름을 거론하지 않아도 이 모든 문제가 임성한 작가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최근에는 한 보도매체에 의해 <오로라공주>의 미리보기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것이 임성한 작가의 요청 때문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도대체 왜 드라마의 홍보에도 도움이 되는 미리보기 서비스를 굳이 제공하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관계자 측의 말로는 “미리보기를 통해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는 이유는 아니다. 사실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작가 기분에 따라 제멋대로인 드라마이기 때문에 미리보기는 오히려 논란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게 진짜 이유가 아닐까.

 

사실 임성한 작가에게 중견이라는 말이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수로 보면 분명 드라마계의 선배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위치에 있는 작가가 이렇게 드라마를 제 맘대로 농단해도 과연 괜찮은 걸까. 임성한 작가의 비상식적인 일련의 행동들도 문제지만 이것을 아무런 제재나 조치 없이 방치하고 있는 방송사의 문제는 더 크다고 보인다.

 

결국 방송사는 시청자들과의 약속으로 그 신뢰를 유지하는 곳이 아닌가. 그런데 이토록 자신만의 세계에서 제 맘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작가를 시청률이 나온다는 이유로 방치하는 건 방송사의 직무유기가 아닐까 싶다. 혹 이것은 임성한 월드의 권력이 방송사를 압도하고 있다는 얘기일까. 시청률도 결국은 시청자들이 부여하는 것이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논란들만 쏟아져 나오는 임성한 월드에 그 누가 권력을 부여한단 말인가.

<비밀>, 왜 이토록 폭발력 있나 봤더니...

 

무고한 자의 고통을 바라본다는 건 얼마나 아픈 일인가. KBS2 수목드라마 <비밀>의 여주인공 강유정(황정음)이 그렇다. 사랑하는 남자가 성공할 때까지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하고, 심지어 검사가 된 그를 위해 뺑소니 사고를 온전히 뒤집어쓰고 감옥에 대신 가는 강유정이라는 캐릭터는 물론 트렌디한 인물은 아니다. 요즘 세상에 이런 희생적인 인물이 얼마나 되겠는가.

 

'비밀(사진출처:KBS)'

즉 <비밀>은 겉모습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트렌디한 멜로나 치정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신 강유정이라는 무고한 인물이 처하게 되는 고통을 통해 그 불행의 원인을 사회 시스템적인 차원에서 보여주는 드라마다. <비밀>의 전반부는 그래서 강유정이 하게 되는 일련의 선택들이 그녀를 얼마나 불행 속으로 밀어 넣는가를 바닥 끝까지 보여준다.

 

그녀는 뺑소니 사고의 진짜 범인인 남자친구 안도훈(배수빈)에게 법정에서 심문을 받고 5년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들어간다. 힘겨운 감옥 생활 속에서 안도훈의 아이까지 낳아 기르지만 결국 아이를 학대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아이까지 빼앗기며 그 과정에서 그녀는 화상을 입고 몸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게 된다.

 

세월이 지나 출소하지만 비극은 계속된다. 아이가 사망했다는 비보를 듣게 되고 빚 때문에 건물에서 쫓겨나게 된 데다 치매를 앓는 아버지는 결국 길거리에서 비명횡사하게 된다. 그녀의 삶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된다. 그녀의 손에 달랑 남은 것이라고는 이제 죽은 아이를 뿌린 강변의 모래 한 줌이 전부다. 도대체 그녀가 그렇게 절망의 진창으로 굴러 떨어진 것은 왜일까.

 

여기에는 두 인물이 관여되어 있다. 그녀의 애인인 안도훈과 그의 뺑소니 사고에 연인을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재벌2세 조민혁(지성)이 그들이다. 흥미로운 건 가해자와 피해자인 이 두 인물이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점점 같은 길을 걸어간다는 점이다. 조민혁은 그녀를 철저히 망가뜨리기 위해 안도훈과 강유정의 사랑마저 시험에 들게 만든다. 안도훈은 생존 혹은 야망 때문에 조민혁의 ‘유혹’에 흔들리게 된다.

 

<비밀>의 스토리가 괜찮다는 것은, 안도훈 같은 과거 신파극에 전형적으로 등장할만한 악역 캐릭터가 나름 설득력 있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신파극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남자의 변심을 이 드라마는 (남자는 다 그래 하는 식으로) 단순하고 막연하게 처리하지 않는다. 세상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검사가 되려던 그 초심을 지키려 해도(이것은 강유정과의 순정도 마찬가지다),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쥐고 있는 시스템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검사가 되어도 제대로 수사를 해보지도 못하고, 수사를 하다가도 윗선의 지시로 중도에 멈출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며, 그 일을 빌미로 검찰 내부에서 감찰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쥐고 흔든 후에 권력은 협박에 가까운 손을 내민다. 같이 일해보자고. 안도훈이 제 아무리 강유정과의 순정(초심)을 지켜나가려 해도 생존해야 하는 현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변심은 안도훈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권력 시스템의 총체적인 문제로 보인다.

 

안도훈처럼 야망을 가진 인물이 그저 악역으로 그려지지 않는 것처럼, 재벌2세인 조민혁 역시 단순한 악역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애인을 잃게 된 조민혁은 마치 피해자처럼 그려지는데 그는 자신이 가진 재력을 통해 강유정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복수를 한다. 복수를 위해 부자인 그가 못할 일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복수를 해도 분이 풀리지 않고 연인이 자신의 아이를 가진 채 죽었다는 죄책감에서도 벗어날 수가 없다. 오히려 그는 강유정이 끝없이 처한 불행을 바라보면서, 그녀에게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된다. 조민혁이라는 캐릭터는 모든 걸 가진 자의 사랑 역시 얼마나 불행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결혼을 M&A 정도로 치부하는 재벌가에서 사랑이란 동정이거나 자기 연민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줄도 모르고 대신 죄책감을 갖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불행한 인물이다.

 

안도훈처럼 신분상승을 꿈꾸는 인물이나, 조민혁처럼 이미 경제적인 부를 세습 받을 수 있는 인물이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대는 모습을 보고나면, 강유정처럼 시스템 바깥에 내던져진 인물이 처하게 되는 불행의 근원을 비로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강유정의 비극은 안도훈과 조민혁이 의도치 않게 공조함으로써 빚어낸 사건들이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들 역시 시스템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민혁은 부자로 살아가기 위해 아버지의 명령을 받아들여야 하고, 안도훈은 부자들의 잘못된 시스템과 싸우다가 그 거대한 벽을 느끼고는 그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라는 유혹에 조금씩 무너지게 된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시스템의 피해자를 대변하는 강유정이라는 인물의 변화다. 그녀는 부지불식간에 시스템이 교육시킨 대로 타인의 잘못조차 자신의 잘못으로 내면화하며 살아온 인물. 이것은 어찌 보면 선량하고 착한 서민들의 모습 그대로다.

 

강유정은 입만 열면 “미안하다”고 말한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안도훈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빠가 왜 미안해. 내가 잘못한 건데.” 그리고 이런 말도 한다. “빚이 있는 건 사실이잖아.” 그녀는 왜 잘못한 일이 하나도 없는데 스스로 미안하다며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는 걸까.

 

<비밀>의 폭발력은 강유정의 불행을 작금의 서민들이 처한 불행으로 바라보게 되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강유정이 그랬듯이 우리가 언제 가난해지고 싶었던가. 또 불행한 삶을 살고 싶었던가. 대학을 가지 않으면 굶어죽을 것 같은 공포에 대학을 가지만 막상 나오고 나면 취직은커녕 등록금 빚더미에 않게 되는 그런 삶. 회사에 들어갔다고 해도 언제 잘릴 지 알 수 없는 삶. 뼈 빠지게 일해 낸 세금이 말도 안 되는 사업에 흥청망청 쓰여지고 부자들의 배만 불리게 해주는 그런 삶. 누가 이런 삶을 원했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자꾸만 스스로 잘못한 것처럼 문제를 개인화하려는 우리들의 모습. 강유정이라는 캐릭터에서는 바로 그 서민들의 선량하지만 안타까운 얼굴이 엿보인다. 그래서 이 강유정의 끝단에 놓인 비극을 바라본 연후에는 그녀가 진짜 비극의 이유를 바라보고 거기에 대항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니 이 드라마를 어찌 그저 단순한 멜로나 치정복수극으로 읽을 수 있겠는가. 무고한 자의 고통을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그 진짜 고통을 준 자들은 따로 있다는 ‘비밀’과 대면하게 하는 드라마. 이것이 <비밀>의 실로 비밀스런 폭발력의 원천이 아닐 수 없다.

연예인 가족 프로그램, 문제는 없나

 

연예인 가족에게 방송은 특권인가.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는 가수지망생들에게 방송 출연의 기회는 실로 대단한 기회가 되기 마련이다. 실제로 오래도록 버스킹으로 생활해온 이들이 어떻게든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방송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다. 연기지망생들은 어떻게든 방송에 나가기 위해 무수한 오디션에 지원하는 고단한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고, 개그맨들도 연극무대를 전전하면서 공채 오디션의 엄청난 경쟁력을 뚫고 나서야 비로소 방송을 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하지만 이런 힘겨운 과정과는 전혀 상관없이 손쉽게 방송을 통해 이미지를 만들고 인기를 얻고 심지어 광고까지 찍으며 연예인의 길에 들어서는 이들도 있다. 바로 연예인 가족이다. 물론 부모에 이어 연예인의 길을 걷는 이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부모의 영향력으로 연예계에 들어왔다기보다는, 자력으로 각자 위치에서 영역을 만든 이후에 그의 부모가 연예인이었다는 것이 후에 알려지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고 최무룡씨의 아들 최민수, 고 허장강씨의 아들 허준호 같은 연기자들은 오히려 자신의 부모를 숨기려 노력했다. 김용건의 아들 하정우의 경우는 아예 이름을 바꿔 아버지의 아우라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다. 그것이 자신만의 영역을 오히려 확고히 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과거에도 가끔씩 연예인들이 가족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나오긴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고정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특집 프로그램식의 일회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른바 연예인 가족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면서 연예인과 그 자녀들이 자연스럽게 방송에 함께 나오게 되었고 자녀들은 부모의 아우라 안에서 방송 이미지를 손쉽게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 <붕어빵>에서 주목받은 김구라의 아들 김동현은 이후 독자적인 탤런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예능에서부터 드라마까지 전방위로 활동하는 연예인의 위치에 설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얻은 박찬민 아나운서의 딸 박민하 역시 드라마 <야왕>에서 확실한 연기력을 선보였고, 영화 <감기>에서는 사실상 가장 중요한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냄으로써 ‘천재 아역배우’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아빠 어디가>는 아빠와 자녀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으로서 연예인인 아빠와 그들의 자녀 모두의 이미지를 제고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를 들면 윤민수의 아들로 나온 윤후가 이제는 거꾸로 윤후의 아빠 윤민수의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을 연예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준 연예인으로 이미지화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미 몇 차례의 광고 촬영이 그것을 말해준다.

 

<아빠 어디가>의 사례처럼 연예인이 가족과 함께 출연하는 경우 시너지 효과가 만들어진다. 즉 해당 연예인의 가족적인 이미지가 생겨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연예인의 가족도 연예인화될 정도의 이미지가 생겨난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연예계에서는 연예인 누구의 동생, 오빠, 언니 사진 등이 심심찮게 공개되며 “우월한 유전자”니 “미모가 오히려 낫다”는 식의 수식어가 붙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물론 이것은 호사가들의 수다일 수 있겠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연예인들이 부지불식간에 갖게 된 방송 권력의 가족적인 확장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

 

하긴 방송에 나와 대중적인 인지도를 갖는 것이 좋기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부터 알게 모르게 소비되는 아이의 사생활은 그 자체로 현실 생활을 곤란하게 만들 정도의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 때로는 비뚤어진 팬심이 아이들에게도 악플이나 심지어 안티카페 같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 방송에 소비되게 될 때 아이들이 자칫 원치 않는 연예인의 삶을 강요받을 수 있다는 위험성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방송이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연예인 가족에게 방송이 하나의 특권처럼 부여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여겨진다. 국민대 사회학과 최항섭 교수는 최근 <방송작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런 흐름을 ‘이미지권력의 세습’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다른 영역에서는 사회적으로 규제를 하고 있는 권력의 세습이 연예인들에 한해서는 시청률 확보라는 가치로 정당화하면서 아무런 제한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연예인 가족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 한 번쯤 곱씹어볼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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