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 순정만화 같은 응원 혹은 사랑

 

스물다섯 스물하나

“백이진. 나야. 희도. 네가 사라져서 슬프지만 원망하진 않아. 네가 이유 없이 나를 응원했듯이 내가 너를 응원할 차례가 된 거야. 네가 어디에 있든 네가 있는 곳에 내 응원이 닿게 할게. 내가 가서 닿을게. 그 때 보자.”

 

공중전화 부스에서 삐삐에 나희도(김태리)가 녹음해 남긴 메시지를 백이진(남주혁)은 계속 반복해서 듣는다. 그 장면은 마치 순정만화의 한 대목이 영상으로 그려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빨간 공중전화 부스에 초록빛 전화통, 그리고 거기에 쌓아 둔 동전을 계속 넣는 손. 특히 그 음성을 계속 듣는 백이진의 쓸쓸함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표정이 그렇다. 마치 순정만화의 한 대목처럼 느껴지는 장면. tvN 토일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그리는 세계다.

 

IMF로 이제 겨우 스물둘의 나이에 대학생활을 포기한 채 도망치듯 외삼촌이 있는 바닷가 마을로 내려와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쉽지 않은 삶. 백이진은 나희도의 그 응원 메시지로 힘을 내며 살아간다. 동생을 위해 시골로 내려왔다고 변명했지만, 그 스스로도 알고 있다. 도망친 건 자신이었다는 걸. 하지만 그 쓸쓸함과 힘겨움 앞에서도 수도꼭지를 뒤로 틀어 마치 분수처럼 물이 솟아오르는 걸 보는 백이진은 나희도를 떠올린다. 힘겨울 때 그 분수(?)로 자신을 위로해줬던 나희도를 생각하자 미소가 피어오른다. 

 

마침 눈이 내리고 그걸 올려다보는 백이진을 부감으로 찍어낸 장면은, 아마도 태릉선수촌에 있는 수도 앞에 서 있는 나희도로 이어지고,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공간에 서 있는 분할화면으로 연출된다. 백이진이 나희도에게 국가대표가 되어 TV에 나온 걸 축하한다고 말하고 나희도는 마치 그 말을 듣기나 한 것처럼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서로 다른 공간에 나뉘어 있지만 양쪽에서 똑같이 내리는 눈발은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백이진이 갑자기 분할화면을 넘어 나희도의 손을 잡고는 자신이 있는 공간으로 끌고 들어가 함께 달려 나간다. 

 

판타지로 연출한 장면이지만 그 속에서 손을 꼭 잡은 장면은 보는 이들을 심쿵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이제 나희도가 백이진이 답장처럼 남긴 음성메시지를 공중전화 부스에서 듣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보고 싶었어. 근데 봤어. 네가 보여줘서. 그래서 오늘은 웃었어. 풀하우스 14권은 나왔어? 15권 나오기 전에 나타날게. 기다려. 희도야.” 눈물을 뚝 떨어뜨리는 나희도는 백이진이 그랬던 것처럼 동전을 넣어가며 반복해서 그 메시지를 듣는다. 

 

마치 그대로 그리면 순정만화가 될 것 같은 장면들의 연속.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다보면 느끼게 되는 설렘과 아픔은 그래서 독특한 질감을 갖는다. 어쩌면 너무나 무거울 수 있는 현실의 아픔들이 존재하고 그래서 슬픔의 감정이 생겨나지만, 그렇다고 그 무게에 질식되지 않는 청춘 특유의 발랄함이 느껴진다. 그 아픔은 ‘시대’가 만든 것이지만, 이 청춘들은 그 시대에 무너지기보다는 버텨내고 넘어서려 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백이진과 나희도의 사랑은, 그저 두 사람 간의 매력에 이끌리는 질척함보다는 풋풋함이 느껴지는 적당한 거리를 보여준다. 사랑이 맞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마치 응원 같다. 서로의 청춘에게 보내는 응원. 한 사람이 그 응원을 받고 일어서면, 이번에는 일어선 그가 다른 사람을 응원한다. 응원과 지지가 그 어떤 애정보다 더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사랑으로 표현된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 수습기자가 된 백이진과 국가대표가 된 나희도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그 순간에도 결코 풋풋함을 잃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도 순정만화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순정만화들이 흔히 그려내는 판타지는 대부분 이 남녀 관계의 적당한 거리에서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그리는 사랑의 풍경이 이토록 초록빛일 수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면 이 순정만화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풋풋함과 순수함 그리고 설렘 같은 걸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기해내고 있는 김태리와 남주혁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흔히들 ‘만찢남’, ‘만찢녀’라고 표현하지만, 이들이야말로 막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장면들을 연기해내고 있어서다. 김태리와 남주혁이 환하게 웃는 장면이나 그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은 그 자체로 순정만화의 판타지를 떠오르게 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실로 이들이어서 가능한 장면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사진:tvN)

‘소년심판’, 분노하다 아파하다 먹먹해지는 웰메이드의 탄생

소년심판

“소년 사건은 해도 해도 적응이 안돼. 늘 찝찝하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심판>에서 심은석 판사(김혜수)는 차태주 판사(김무열)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건 아마도 <소년심판>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이 드라마가 다룰 ‘소년 범죄’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시청자들이 가진 양가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이제 겨우 13세의 나이에 8세의 초등생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 유기했다고 경찰서 앞에 나타나 흉기로 썼다는 피 묻은 도끼를 꺼내 보이며 자수를 하는 <소년심판>의 첫 번째 사건의 도입 부분에서부터 이런 불편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이걸 소년 사건이라고 치부해 소년법에 따라 솜방망이 처벌을 해도 될 일일까. 그렇다고 어린 소년을 교화가 아닌 처벌의 대상으로 삼아 어른들과 똑같은 살인죄에 해당하는 처벌을 내리는 건 괜찮은 일일까. 

 

사실 <소년심판>은 이러한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년 사건들을 우리 앞에 꺼내놓는다는 점에서 어딘가 불편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만 가득한 건 아닌가 하는 선입견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건 선입견일 뿐이다. <소년심판>은 불편한 사건들을 다뤄 어떤 분노의 감정들을 느끼게 하지만, 그걸 단지 심판하고 단죄하는 단순한 방식의 사이다를 추구하는 드라마도, 또 그렇다고 답답한 고구마 현실만을 꺼내놓는 드라마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조금 멀리 놔두고 있어서 막연히 불편하게만 느꼈던 이 문제를 좀 더 가깝게 보게 해주고 거기서 이 심은석이라는 판사의 행보를 통해 어떤 대안들까지 생각하게 해주는 드라마다. 게다가 이 심은석 판사는 “저는 소년들을 혐오합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냉정한 인물이다. 판결의 대상이 소년이라고 해서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판결을 내리거나 하지 않는다. 물론 그 이면에는 어딘가 상처가 존재하고, 그래서 그것을 가리기 위해 결코 웃지 않는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따뜻한 판사. 그가 바로 심은석이다. 

 

최근 법정을 다루는 드라마들이나 혹은 범죄 스릴러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촉법소년’이다. 하지만 그런 드라마들이 ‘촉법소년’이라는 법을 오히려 이용하는 잔인한 소년범죄를 자극적으로 끄집어내는 정도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았다면, <소년심판>은 그보다 더 깊숙이 문제의 본질을 파고 들어간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해당 판사들의 고민이 숙고되어 있고, 이를 촘촘히 취재해 드라마적 재미와 함께 잘 녹여내려는 작가의 고민도 느껴진다. 

 

소재가 주는 불편한 선입견을 잠시 접어두고 일단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이 있는 드라마다. 그 몰입감은 작가가 이 진지한 문제를 가져오면서도, 매력적 캐릭터들을 창조하고 드라마틱한 구성을 더해 가능해진 일이다. 심은석 판사라는 캐릭터와 이를 연기하는 김혜수는 그래서 이 작품의 기둥이라고 해도 될 법한 존재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 캐릭터에 몰입해 분노하고 속 시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슬퍼하다가 때론 먹먹해지는 그 감정들을 가이드해주는 장본인이다. 

 

엄청난 카리스마로 부장 앞에서도 결코 굽히는 일이 없는 이 심은석 판사의 냉정하고 대쪽같은 모습은, 그와 함께 사건에 뛰어드는 너무나 따뜻하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려 애쓰는 차태주 판사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이 논쟁적인 이야기에 균형감각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에피소드도 시작에는 강력한 살인사건으로 먼저 시선을 잡아 끌지만, 그 이후에는 그런 소년 범죄가 벌어지게 되는 이유로서의 가정폭력 에피소드가 전개되고, 그 다음에는 이런 소년들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사회의 안전망으로서의 보호센터가 가진 현실적 문제를 다룬 에피소드로 나아간다. 

 

즉 단순한 에피소드 나열이 아니라, 소년범죄에 대해 보다 입체적이며 심층적인 사안들로 에피소드들이 전개됨으로써 이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4회와 5회에 걸쳐 청소년 회복센터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와 거기서 센터장이 하는 대사는 이 드라마의 이런 깊이 있는 접근을 잘 보여준 사례다. “집에서 상처받으면 아이들은 자신을 학대해요. 평소에는 안했을 범죄를 저지른다거나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는 식으로. 본인들도 알아요. 하면 안 된다는 거. 알면서 하는 거죠. 나를 학대하는 게 내 고통이 가정에도 상처가 되길 바라면서. 나 좀 봐 달라고, 나 힘들다고, 왜 몰라보냐고. 사실 대부분 비행의 시작점은 가정이거든요.”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소년들이 하는 행동들이나 말은 분노할 수밖에 없는 폭력에 가까운 것들이지만, 그 이면을 파고 들여다보면 거기 드리워져 있는 부모들의 무관심과 심지어 폭력의 그림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건 부모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보듬어야할 문제들도 존재한다. 심은석 판사는 사실상 국가의 지원에 의해 된다고는 해도 결국 어떤 개인의 희생이 담보된 청소년 회복 센터 같은 시설들에 소년들이 맡겨지는 것의 실체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걸 바꿔 말하면 국가가 해야 될 일을 오직 개인의 희생에 기대고 있다는 뜻이 되는 거고. 그런 의미에서는 법원도 유죄야.”

 

한 번 보면 밤 새워 몰아볼 수밖에 없는 몰입감을 주는 독보적인 캐릭터와 깊은 취재에서 나오는 에피소드 그리고 작가의 만만찮은 필력이 더해진 극적 구성. <소년심판>은 보면서 참 다양한 감정들이 파도처럼 몰아닥치는 경험을 통해 ‘소년범죄’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보게 해주는 웰메이드 드라마다. 작품도 좋지만 김혜수의 연기는 역시 넘사벽이다. 그의 대사 하나 행동 하나에 긴장하며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느껴지니 말이다. (사진:넷플릭스)

소멸되어가는 지역의 위기 속, ‘어쩌다 사장2’의 가치

어쩌다 사장2

전라남도 나주시 공산면. 조용했던 마을에 활기가 넘친다. 그 곳에 유일한 할인마트가 그 진원지다. 그 마트에 따뜻한 캔 커피를 사러 온 근처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여성은 갑자기 얼어붙어 버린다. 저 앞에 조인성이 서 있어서다. 물론 계산대에는 차태현이 있다. 조인성에 눈을 떼지 못하는 여성은 “진짜 잘생기셨다”며 “퇴근하고 또 오고 싶다”고 말한다. 왜 아닐까. 세상 따뜻하게 손님을 맞아주는 차태현에 그저 옆에서 미소만 지어줘도 설레는 조인성이 있으니. 

 

tvN <어쩌다 사장2>가 다시 시작됐다. 지난 시즌1에서 화천의 작은 마을, 아담한 슈퍼를 배경으로 너무나 따뜻한 시골마을의 정을 전해줬던 프로그램.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의 온기가 가득 채워진 슈퍼의 풍경을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한 주 간의 피로를 풀어줬던 그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시즌2는 그 배경을 나주시 공산면으로 옮겼고, 슈퍼에서 살짝 규모를 키운(?) 할인마트로 업그레이드했다.  

 

<어쩌다 사장2>는 일단 예능프로그램이니만큼 웃음을 주는 본분에 충실하다. 시즌1처럼 자그마한 시골 슈퍼인 줄 알았는데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규모의 할인마트 앞에서 황당해하고 아연실색하는 차태현과 조인성의 넋 나간 모습이 그것이다. 식료품은 물론이고 문구, 공산품 나아가 정육점까지 직접 운영해야 하는데다, 하나의 독립적인 식당이라 해도 될 법한 분식집에서 찾는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 

 

시즌1에서 슈퍼를 겪으며 어느 정도 익숙해졌던 경험치는 이 커진 규모 앞에서 거의 다시 시작하는 단계로 차태현과 조인성을 기죽인다. 포스 이용하는 법도 다시 익혀야 하고 바코드가 찍히지 않은 상품을 구매하려는 고객 앞에서 진땀 흘리며 따로 적어둔 가격표를 찾고 또 찾아야 한다. 걸려오는 전화 주문에 맞춰 물건들을 준비해 배달도 가야되고, 고기 부위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 일일이 고기를 찾아 썰어 내줘야 하는 정육점 장사 앞에 멘붕을 겪어야 한다. 

 

규모가 커진 만큼 아르바이트생들의 수도 늘었다. 이 정도 규모라면 많이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예능을 아는 차태현과 조인성은 동료 배우들을 부르며 아주 작은 슈퍼라는 거짓말로 안심시킨다. 자신들이 아마 당했을 거짓말이 그것이었을 게다. 그래서 자신들처럼 그들도 마트 앞에 오자마자 “사기 당했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 아르바이트생은 임주환, 이광수, 김우빈이다. 마스크까지 쓴 터라 시골마을에서는 잘 알아보지도 못해 아이돌이라며 BBS라고 소개해도 그러려니 하는 상황. 심지어 김우빈은 오랜만에 ‘테레비’에 나온다고 잔뜩 꾸미고 왔는데 오자마자 앞치마하고 일해야 하는 상황을 투덜대면서도 받아들인다. 

 

<어쩌다 사장2>의 초반 웃음 포인트는 시즌1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규모가 커진데서 오는 멘붕 상황은 마트에서의 스토리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 인근 음식점에 음료수를 배달하러 가는 이야기만으로도 색다른데, 이 마트는 사장님 부부가 얘기한 것처럼 직접 트럭을 몰고 가 팔 물품을 싸게 구매해 와야 하는 미션도 주어졌다. 물론 시즌1에서 중요한 재미 포인트로 잡혔던 음식 장사도 빠지지 않는다. 시즌1에서 도움을 줬던 고성의 어부 후배가 찾아와 이번에는 우동에 욕심을 내는 조인성에게 갖가지 신선한 재료들을 공수해준다. 

 

하지만 역시 <어쩌다 사장>만의 진짜 묘미는 누가 봐도 도드라지게 반짝이는 이 배우들이 나주의 이 작은 마을에 들어와 그 곳 사람들과 교감하며 전하는 그 따뜻한 온기들이다. 마트 운영이 익숙하지 않아 물건 하나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그 물건이 어디 있다는 걸 알려줄 정도로 마트에 친숙한 손님들을 그 마을이 가진 도시와는 다른 끈끈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연예인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존재들이라 볼 순 없겠지만 어쨌든 이 작은 마을에 이들이 찾아와 열흘 간 마트를 운영하는 일은 이 곳의 작지 않은 이벤트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마트를 중심으로 마을이 활기를 띤다.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과의 이야기들이 전파를 타고 화제가 된다. 물론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차태현이나 조인성 같은 먼저 다가와 친숙한 손을 내미는 출연자들의 면면이고, 이를 따뜻한 이야기로 포착해내는 유호진 PD 같은 연출자의 섬세한 시선이다. 

 

열흘간의 이야기지만, <어쩌다 사장2>가 전하는 이 곳의 풍경들은 요즘처럼 도시화로 인해 심지어 ‘소멸 위기’까지 느끼고 있는 지역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들여다보면 그 자체로 남다른 가치를 전한다. 차태현과 조인성이 한 작은 마을에서 벌이는 마트 경험처럼 보이지만, 이를 통해 유호진 PD가 진짜 담으려는 건 그 작은 마을 사람들이 차태현과 조인성과의 만남들을 통해 전하는 따뜻한 마음들이기 때문이다.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그 카메라의 시선들이 예사롭지 않다. 어쩌면 그 시선 속에서 우리가 도시로만 모여 들면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사진:tvN)

김태리, 남주혁의 청춘멜로, 1998년을 소환한 까닭(‘스물다섯 스물하나’)

스물 다섯 스물 하나

‘응답하라 1998’이 아닐까. tvN 토일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오프닝에 90년대 풍경과 더불어 당대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복고적 영상을 선보였다. 마치 옛날 드라마를 보는 것만 같은 톤 앤 매너를 연출적 포인트로 삼은 것. 신원호 감독의 <응답하라 1997>이 떠오르는 건 당연하다. 당시 <응답하라 1997>도 PC통신의 접속 장면과 신호음을 오프닝에 담아 당대의 추억 속으로 시청자들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1998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가져왔다. 이 시대적 배경이 중요한 건 IMF라는 사건(?)에 의해 여기 등장하는 청춘들, 나희도(김태리)와 백이진(남주혁)의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네 꿈을 뺏은 건 내가 아냐. 시대지.” 이렇게 말하는 코치의 말 속에 이 시대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나희도는 다니던 학교 펜싱부가 사라지게 되면서 어려서부터 꿈이었던 펜싱을 더 이상 못하게 될 위기에 처하고, 백이진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래서 1998년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들이 드라마 속에 담겨진다. IMF도 그렇지만, 만화 풀하우스, 미국 직배 영화에 맞서 스크린쿼터를 요구하는 영화인들의 시위, PC통신, 비디오 플레이어, 금 모으기 운동, 더블데크, 만화 대여점... 풍경만으로도 당대로 기억을 소환시키는 소품들과 광경들이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채워진다. 현재 너무 치열해진 경쟁사회에 코로나19까지 더해져 갑갑한 청춘들의 현실을 떠올려 보면 IMF가 막 터진 그 때가 오히려 좋았던 시절이라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여러모로 90년대, 그 중에서도 IMF를 전후한 시기는 복고를 담는 콘텐츠들에는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걸 이 드라마도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런데 이 시대가 주는 무게감과는 사뭇 상반되게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청춘멜로가 갖는 풋풋함과 설렘, 밝고 명랑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그 이유는 나희도가 당대의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 대해 던지는 대사 속에 담겨 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잃어가나 보다. 그치만 나랑은 상관없는 어른들의 일이다. 난 뭔가를 잃기엔 너무 열여덟이니까. 내가 가진 것들은 잃을 수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꿈, 동경.” 즉 이 나희도나 백이진 같은 청춘들은 시대의 무거움과 마치 정면승부를 펼치겠다고 선언하는 것 같은 발랄함을 보여준다. 

 

나희도의 이런 발랄함과 생기 넘치는 에너지는 빵빵 터지는 코믹한 상황들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유쾌하게 전해진다. 백이진과 처음 만나게 되는 순간부터가 그렇다. 생계를 위해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백이진이 던진 신문에 오줌 누는 소년상의 성기 부문이 잘려나가자 따지는 나희도의 대사는 빵빵 터지는 웃음과 더불어 이 엉뚱발랄한 캐릭터를 잘 드러낸다. “신문사절 안보여? 신문을 사절한다는데 왜 사절을 안 해서 가만있는 애를 고자로 만드냐고?”

 

펜싱부가 사라지자 자신이 동경하는 고유림(보나) 선수가 있는 태양고로 전학을 가고픈 나희도가 사고를 쳐서 강제전학을 하려던 계획이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는 에피소드들도 큰 웃음을 선사한다. 패싸움에 뛰어들어 펜싱 실력으로 남자들까지 제압하지만, 정작 자신이 붙잡히게 되길 원해 부른 경찰들이 자신은 놔두고 도망치는 친구들만 뒤쫓자 툭 던지는 한 마디가 그렇다. “잡히려면 도망가야 되는구나.”

 

또 펜싱을 고집하는 나희도와 말다툼을 하다 대여점에서 빌려온 풀하우스를 엄마가 찢어 버리자 찢겨진 부분을 손으로 그려 붙여 대여점에 몰래 되돌려주려다 백이진에게 딱 걸리는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백이진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 지도 알 수 없게 우는 나희도의 모습도 우습지만, 그가 그려놓은 엉성한 그림과 ‘외않되...?’라고 잘못 쓴 대사에 키득키득 웃는 백이진의 모습도 빵빵 터진다. 

 

하지만 백이진에게 드리워진 ‘시대의 그늘’은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크고 무겁다. 아버지 사업의 부도로 피해를 입은 업체 아저씨들이 찾아와 그에게 아버지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토로할 때 백이진은 이렇게 말한다. “저도 절대 행복하지 않을 게요. 아저씨들 고통들 생각하면서 살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어떤 순간에도 정말, 어떤 순간에도 정말 행복하지 않을 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마침 그 순간 우연히 그 광경을 보게 된 나희도는 슈퍼 앞 평상에 앉아 ‘함부로’ 백이진의 그 무거운 현실을 툭툭 꺼내놓으며 과거 학창시절 방송반에서 잘 나가던 그 백이진과 너무 다르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무례할 수 있는 그 ‘함부로’ 던지는 발언을 그러나 백이진은 좋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렇게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는 나희도를 통해 자신에게도 있었던 그 시절이 떠올라서다. “너 보면 내 생각이 나. 열여덟의 나 같애.” 그는 그 때로 절실히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는 심지어 그 때의 ‘걱정들’이 그립다고 한다. “뭐 숙제가 너무 많고, 방송부 선배들이 너무 무섭고 축제 때 무대에서 실수할까봐 뭐 좋아하는 여자애가 나 안 좋아할까봐 뭐 그런 걱정.”

 

당대에는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힘들게 느껴졌지만 지나고 나면 그 때의 ‘걱정들’조차 그리워지는 어떤 시기가 온다는 것.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스물둘이 열여덟을 만나 위로를 받는 이야기다. 그건 장차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그 때를 이야기하며 그 걱정들조차 그리워하는 어떤 순간들을 불러올 거라는 예감을 만든다. 

 

“우리 가끔 이렇게 놀자. 싫어도 해. 선택지 없어 해야 돼. 네가 그 아저씨들한테 그랬잖아. 앞으로 어떤 순간도 행복하지 않겠다고. 난 그 말에 반대야. 시대가 다 포기하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행복까지 포기해? 근데 넌 이미 그 아저씨들하고 약속했으니까. 이렇게 하자. 앞으로 나랑 놀 때만 그 아저씨들 몰래 행복해지는 거야.”

 

즉 1998년의 IMF 상황이라는 무거운 시대의 분위기를 가져왔지만 드라마는 청춘의 풋풋함으로 그 ‘시대와 대결하는’ 듯한 건강함을 보여준다. 이 청춘멜로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건 코로나19로 인해 가뜩이나 힘겨운 현실에 잠시 동안이나마 시간을 되돌려 숨 쉴 틈을 제공하고 있어서다. 그런데 왜 하필 1998년이라는 시대적 상황이었을까. 

 

그것은 IMF로 인해 암울하기 그지없었던 그 시대 역시 결국 잘 지나왔다는 사실을 통해 현재에 던지는 위로가 크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그것만큼 의미 있어 보이는 건, 마치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던 청춘의 시대를 거쳐 이제 중년으로 가고 있는 우리 사회가 이제 그 시기를 되돌아보고픈 청춘의 시대로 인식하고 있어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그래서 지금의 청춘들에게 어려운 시기는 어느 때나 지나간다는 위로를 건네고, 지금의 중년들에게는 잊고 있던 그 때의 에너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고 있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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