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멜로의 식상함을 탐구하는 드라마, ‘달콤한 인생’

무엇이 달콤하다는 말일까. 펀드매니저 하동원(정보석)의 손아귀에는 거의 모든 것이 쥐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손아귀에는 누군가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을 수도 있는 천 억 원의 돈을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사회적 지위가 있고,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거의 모든 것을 바치며 살아가는 예쁜 아내가 있으며, 한편으로 젊음의 육체와 연애감정을 만끽하게 해주는 내연녀도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의 인생은 달콤한 향내가 풀풀 나는 그런 동경의 대상이다.

이것은 ‘달콤한 인생’의 인물들 거의 모두가 가지고 있는 화려한 겉모습이다. 능력 있는 남편에 바라만 봐도 행복한 자식들을 가진 하동원의 아내, 혜진(오연수)이 그렇고, 능력 있는 스폰서 덕에 거침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하동원의 내연녀, 다애(박시연)와 재벌집 아들을 친구로 둔 덕에 부족할 것 없이 살아가는 준수(이동욱)가 그렇다. 하지만 ‘달콤한 인생’은 이들의 달콤해 보이는 피상적인 삶을 찬양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대신 잔인하게도 역설적으로 이 달콤한 인생들의 쓰디쓴 진면목을 해부해가는 드라마다.

거꾸로 가며 자꾸만 반추하는 드라마
해부의 도구로서 활용되는 장치는 컷 백(회상신)이다. 일상을 훑어가던 카메라는 어느 지점에서 과거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지점에 대한 사연들과 무심코 지나쳤던 일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이것은 마치 달콤한 현재라는 몸에 메스를 대고 그 안에 들어있는 숨겨진 과거를 찾아내는 과정 같다. 혜진은 남편의 숨겨진 불륜사실을 어느 날 아침 목격하게 되면서,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온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남부럽지 않았던 삶이 사실은 자신의 삶이 아닌 남편에게 포획된 삶이었다는 것. 끈떨어진 풍선처럼 기댈 곳이 사라진 그녀는 북해도로 도망치듯 떠난다. 하지만 거기서 만난 준수(이동욱)가 반복해서 말하듯이 그녀는 “죽기 위해 그 곳에 온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온 것”이었다. 북해도까지 멀리 도망쳐서야 비로소 자신의 과거들과 제대로 마주하고, 죽음이라는 벼랑 끝에 서서야 삶에 대한 욕망을 갖게 된다. 죽으러간 북해도에서 그녀가 만난 건 자신의 삶, 즉 준수와의 만남이다.

달콤한 인생 이면의 자신의 삶과 마주한 혜진에게 이제 삶은 더 이상 달콤한 것이 아니다. 혜진에게 일상의 대화 하나 하나는 새로운 의미를 띄고 다가온다. 헬스클럽에 대해서 남편이 “건강에 좋으면 되는 거지”라고 말할 때 그녀는 이제 남편이 더 이상 자신을 성적 매력을 가진 여성으로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녀는 자신을 “탁자 위에 놓여진 찻잔이나 찬장 위에 얹혀진 접시 같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남편의 실체를 보게 된다.

북해도의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눈 풍경과, 그 풍경 속을 헤집고 미친 듯이 다니면서 죽은 성구의 시체를 찾는 준수의 모습은 이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상징한 그림이다. “이제 곧 봄이 되면 눈이 녹기 시작할 것이고 시체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준수의 진술은 북해도의 아름다운 풍광 같은 인생, 그 아이스크림 같은 달콤함이 녹기 시작하면서 잔인한 욕망의 실체가 드러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멜로의 식상함을 해부하는 드라마
이것은 이 드라마가 서 있는 위치를 말해주기도 한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멜로 드라마가 아니다. 만일 멜로 드라마로서 ‘달콤한 인생’을 본다면 거기에서 발견하는 것은 늘 똑같은 불륜과 배신, 삼각 사각 관계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달콤한 인생’이 그리려는 세계는 바로 그 틀에 박히게 그려진 멜로 드라마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부터 비롯된다. 왜 늘 멜로드라마가 그리는 삶이란 불륜을 저지르고 거기서 달콤함을 맛보다가 어느 순간 쓴맛을 보게 된다는 피상적인 것들뿐일까.

‘달콤한 인생’은 바로 그 식상함을 칼로 주욱 그어서 그 이면에 진짜 들어있는 얼굴을 탐구한다. 그러니 이 드라마가 결과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식상한 멜로의 틀 속에서처럼, 욕망의 달콤함에만 취해 살아가며 그 실체를 보지 못하는 현실의 삶들에 대한 경종이다. ‘모든 욕망 속에서 충족된 듯 살아가는 당신의 삶은 정말로 달콤한가’하고 묻는 것이다. 이 즈음에서 ‘달콤한 인생’의 첫 장면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고층 빌딩에서 내려다본 부감. 그 고층 빌딩은 삶을 흥분하게 만드는 욕망의 바벨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혜진이 북해도의 바다 끝자락에서 섰던 벼랑이기도 하다. ‘달콤한 인생’은 바로 그 도시 욕망의 탑을 벼랑으로 변모시키는 자살사건으로부터 시작하면서, 우리네 평범한 일상에 파문을 던지는 도발적인 드라마다. 따라서 퇴직한 형사 박병식(백일섭)이 좇고 있는 것은 어떤 사건이나 인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상 그 이면에 숨겨진 삶의 진실이다.


‘1박2일’ 이명한 PD의 리얼 버라이어티론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대한 열광은 기존 기획된 쇼에 대한 식상함에서부터 비롯된 바가 크다. 일정한 대본과 연출의 틀 안에서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예측하면서 만들어내던 기존의 기획 프로그램들은 요즘처럼 대중화된 영상매체 속에서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내기가 어렵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조악한 영상이라도 진짜이지, 잘 만들어진 가짜가 아니다.

최근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여행이라는 아이템으로 새로운 영역을 열어가고 있는 ‘1박2일’의 이명한 PD는 최근의 이런 경향에 대해 “리얼 버라이어티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 말한다. 현장에 나가기 전까지 무언가를 잔뜩 짜서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돌발적인 상황을 발견하고 그것을 영상 속에 잡아내는 것이라는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보따리는 늘 두둑하다”
이 이명한 PD의 발견하는 리얼 영상은 ‘1박2일’이 가진 여행이란 아이템과 잘 맞아떨어진다. 여행이란 사실상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나고, 또 그 여행 속에서 실로 괴로운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돌아와 보면 풍성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물론 완벽한 준비 없이 떠나는 마음에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명한 PD는 떠나기 전에 작았던 보따리는 돌아오는 길에는 이미 “늘 두둑해져 있다”고 한다.

“처음 현장에서 두둑한 보따리를 가져왔을 때는 우리가 운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두 번이 되고 또 세 번이 되면서 이제 어느새 일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단지 운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작은 계기로 시작된 어떤 일상적인 일이 때로는 엄청나게 커다란 결과를 안겨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됐죠.”

실로 충주대에서 벌어진 게릴라 콘서트나 경남 거창에서 갑자기 결정된 전국노래자랑 출전, 백령도에서 해병대와 함께 한 씨름대회 같은 것들은 여행이 가지는 의외성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누군가 툭 던진 한 마디에 본래 계획했던 코스는 지워지고, 전혀 다른 방향의 길이 열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힘을 빼면 진면목이 나온다”
따라서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오히려 “어깨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이명한 PD의 생각이다. 이것은 연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출연진들에게도 요구되는 사항이다. “처음에 팀에 합류하게 되면 대개 기존 기획된 쇼에 적응되었던 출연진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차츰 상황에 적응하면서 오히려 그간 기획된 쇼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기도 하죠.”

‘1박2일’의 캐릭터들이 자연스러운 것은 무리한 설정을 통해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본래 각자가 가졌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캐릭터를 ‘발견해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즉 프로그램 기획에서부터 캐릭터들까지 모두 ‘발견’이라는 한 단어로 꿰어지는 셈이다. 따라서 은지원처럼 ‘1박2일’이라는 한 배를 타고서 더욱 주목받게 된 출연진들은 타 프로그램에서 발견하기 어려웠던 진짜 자기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1년이 거의 되어 가는 ‘1박2일’은 이제 시즌2의 마음으로 좀더 생활에 밀착된 이야기들을 할 것이라고 한다. 한 겨울의 혹한기가 오히려 ‘1박2일’에게 기회를 제공해줬던 만큼, 여름은 오히려 도전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문에 이명한 PD는 “날씨보다 중요한 건 자연스럽게 만나는 돌발적인 상황에 대한 대처”라며, “일단 부딪쳐보면 새로운 것이 나올 것”이라는 신념을 보여주었다. 하긴 봄여름가을겨울 어느 계절이나 하나같이 우리에게 새롭지 않은 것은 없지 않은가.

‘1박2일’이라는 하룻밤의 여행은 우리에게 그 일상 속에서의 새로움을 상기시키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영상은 이제 생활이고 그 생활 속에서는 사실 조명되지 않은 수많은 이야깃거리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잡아내고 발견해내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연기하지 않는 것이 진짜 연기’라는 말이 있듯이, 이명한 PD는 ‘연출하지 않는 것이 진짜 연출’이란 말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드라마, 예능에 가득한 경합, 그것이 말해주는 것

‘식객’의 초반부 긴장감을 탄탄히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단연 운암정 후계자 자리를 놓고 벌이는 성찬(김래원)과 봉주(권오중)의 요리 경합이다.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이미 앵커 자리를 놓고 한 차례 경합을 벌였던 서우진(손예진)과 채명은(조윤희)이 이제 심층리포트의 진행자 자리를 놓고 또 경합을 벌이고 있다. ‘대왕 세종’에서도 드라마 초반에는 충녕대군과 양녕대군이 국본의 자리를 놓고 치열한 정치적 경합을 벌이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드라마 속의 경합, 공정하지 못한 사회
드라마들이 이렇듯 한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이야기를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드라마는 갈등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바로 이 대결구도를 가장 쉽게 가시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경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합의 양상들을 좀더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다. 거기에는 사회가 가진 서열 구조와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욕구들이 드라마 속에 환타지의 형태로 드러난다.

성찬과 봉주의 경합에서 봉주가 상처를 받는 것은 그가 적자의식을 갖고 있어서다. 그는 운암정 최고권위자인 오숙수(최불암)의 아들이니 당연히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우진과 채명은의 경합에 있어서도 이 적자와 서자의식은 똑같이 드러난다. 선배인 채명은은 서열상 자신이 적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대왕 세종’같은 사극 속에서의 장남이거나 적자인 이들은 당연히 자신에게 권력과 부가 승계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드라마들은 대부분 이 적자들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는다. 지금 사회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적자나 서자의식이 통용되는 사회가 아니라 능력 위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당히 실력을 갖춘 이가 적자의식에만 가득한 인물을 무너뜨리고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경합뿐이다. 이것은 점점 능력 중심으로 변해가는 사회를 반영하는 것일까. 거꾸로 여전히 실력보다는 서열이나 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의 불합리함을 드라마에서나마 위안을 얻으려는 환타지일까.

그것은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능력 위주의 사회는 바람일 뿐, 우리 사회는 심지어 그 탄생에서부터 미래가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이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갖춘 자들의 적자의식은 시대가 흘렀지만 여전하다. 드라마 속에 이렇듯 빈번하게 경합이 활용되는 것은 그만큼 치열해진 경쟁사회이면서도, 그 경쟁 자체는 그다지 공정하지 않은 우리네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예능 속의 경합, 경쟁 사회에 대한 희화화
한편 경합에 빠진 건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들은 거의 모든 것들이 바로 이 경합의 틀을 갖고 있다. ‘1박2일’의 잠자리나 식사 한 끼를 두고 벌이는 복불복 게임이 그렇고, ‘무한도전’의 끝없는 과제 속에서의 이기적인 출연진들의 대결이 그러하며, ‘해피투게더’의 사우나 안에서 벌어지는 도전 암기송이나, ‘패밀리가 떴다’의 유재석이 툭하면 제안하는 게임이 그렇다.

이 예능 프로그램들 속에서의 경합은 얼토당토않은 목표를 갖고 있다. 바로 이 얼토당토않다는 부분에서, 우리가 스포츠경기 같은 것을 통해 느끼게 되는 진지한 긴장감 같은 것은 사라진다. 만일 진지한 목표가 설정된다면 긴장감은 생기겠지만 웃음은 좀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복불복 게임은 말 그대로 게임일 뿐 현실 사회가 보여주는 진짜 경쟁과는 다르다. 경쟁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에 목숨을 걸고 경쟁을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들 예능 프로그램들은 웃음을 유발한다. 이것은 경쟁 사회에 대한 희화화다.

직장생활 같은 경쟁적 삶 속에서 살다가 빠져나온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때론 왜 그렇게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며 살았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의 경합은 따라서 사회 풍자적인 요소가 있다. 그 얼토당토않은 경합을 보면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이미 우스꽝스런 경쟁적 삶에 대한 긴장감이 풀어지게 된다.

드라마나 예능이 점점 이 경합이라는 코드를 보편적으로 활용하고, 거기서 충분한 효과를 얻어내는 것은 여러모로 지금 우리 사회가 가진 불공정한 구조와 그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의 피곤함과 관련이 있다. 드라마는 이 경쟁의 피곤함을 환타지의 형태로 해결하려는 것이며, 예능은 경쟁 자체를 비웃음으로써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그 무엇도 실제적인 해결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떠랴. 그 경합의 재미 속에서 현실의 경쟁적 삶을 잊어버리는 것은. 잠시만이라도 말이다.


일상이 된 리얼 버라이어티쇼, 생활을 담아야 성공한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무한도전’은 매회 다른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청자들을 찾는다. 이것은 프로그램 제목처럼 실제로 대단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매번 성공하는 아이템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창기에 ‘무한도전’이 한 이 수많은 시도들이 지금의 리얼 버라이어티쇼 전성시대의 밑거름이 된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1박2일’이나 ‘우리 결혼했어요’는 물론이고, 새롭게 속속 탄생하고 있는 ‘패밀리가 떴다’나 ‘이 맛에 산다’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은 ‘무한도전’의 이 ‘도전들’ 속에 포함되었던 아이디어들을 보다 집중시키고 극대화시킨 결과들이다. 적어도 그것은 ‘무한도전’이 가져온 형식 위에서 가능했던 아이디어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넓이의 도전에서 깊이의 도전으로
하지만 정작 이 모든 가능성들을 만든 ‘무한도전’이 현재 좀 힘겨운 상황에 처해있는 이유는 무얼까. 나들이가 많아지는 시기적인 요인이 분명 그 어려움을 일정부분 만든 것은 맞지만, 같은 상황에도 타 프로그램들이 약진하고 있는 것은 이유를 그 탓으로만 보기 어렵게 만든다.

그것은 오히려 무한히 새로운 아이템을 끄집어내야 하는 ‘무한도전’의 형식이 피곤해진 반면, 그 토대 위에서 한 가지 아이템을 파고든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시청자들에게 더 신선하게 다가갔다는데 있다. 그 사이 ‘무한도전’의 ‘넓이의 도전’은 보다 집중력을 만들어주는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의 ‘깊이의 도전’으로 변모하게 됐다.

이처럼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한 우물을 파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그 아이템이 여행이나 체험 혹은 결혼 같은 생활 밀착형 아이템들이기 때문이다. 생활 속의 아이템이란 일회적인 이벤트성의 소재가 아니라, 꾸준히 발굴되고 변주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비일상적 도전에서 일상적인 도전으로
게다가 이 생활의 아이템들은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더욱 리얼하게 만들어준다. 적어도 리얼리티 요소로서 창작동요제나 지구특공대 같은 아이템보다는 월드컵 응원전이나 댄스스포츠 같은 것들이 더 현실감이 있다. 그것은 실제 일반인들이 할 수도 있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무한도전’팀만이 가능한 생활에서 유리된 비일상적인 도전들은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리얼리티가 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무한도전’의 달라진 위상은 이 비일상적인 도전을 더욱 가속화시키는데 이것은 자칫 시청자들에게는 비호감이 될 우려가 있다. 과거 ‘무한도전’이 말 그대로 아무런 힘이 없는 평균 이하의 캐릭터로 존재할 수 있었을 때는 그들의 어떤 도전이든, 시행착오든 그것은 호감으로 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무한도전’은 그 자체가 권력이 되었다. ‘이산’같은 사극에 출연해 화제가 될 정도의 영향력을 과시하게 되었고, 비록 무산되었지만 ‘청와대 특집’을 생각할 정도의 힘이 생겼다. 특히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힘있는 자들의 비일상적인 도전’은 그 자체가 공감을 얻기가 어려워진다.

‘무한도전’, 초심보다는 변화해야 한다
최근 방영된 ‘돈을 갖고 튀어라’편은 지난 ‘경주 보물찾기’편에서 전조를 보였던 그 스릴러적인 긴박감을 부여해 그간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분위기를 쇄신한 점이 있다. 하지만 이 수작의 아이템에도 불구하고 ‘정준하 기차사건’ 같은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는 것은 이미 최고가 된 ‘무한도전’을 대하는 시청자들의 시선이 과거의 그것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무한도전’은 이제 좀더 보통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내려와야 한다. 이것은 현재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발맞추기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무한도전’의 높아진 위상을 다시 서민들의 눈높이로 낮추려는 시도가 어떤 식으로든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은 저 스스로 만들어낸 리얼 버라이어티쇼 전성시대가 가져온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지금 ‘무한도전’이 필요한 것은 단지 초심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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