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가 체질' 디테일 재주꾼 이병헌 감독

 

새로울 건 없다. 절친인 세 여성이 중심이 되는 드라마는 수없이 많은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적 캐릭터 구성이고, 그들이 어찌 어찌 하다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JTBC 금토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아예 제목부터 노골적으로 멜로로 가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그 액면으로만 보면 우리가 그토록 많이 봐왔던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새롭다. 그건 캐릭터 구성이나 설정 같은 로맨틱 코미디의 클리셰들을 갖고 왔지만, 이들 캐릭터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매력 덩어리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특정한 상황 속에서 보이는 의외의 말과 행동들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멜로가 체질>은 이른바 ‘말맛’이 좋다. 평이한 대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이병헌 감독은 미묘하고 디테일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예를 들어 드라마제작사에서 PPL을 담당하고 있는 황한주(한지은)와 신입사원 추재훈(공명)이 나누는 대화에서 대표를 “까칠하지만 착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그렇다. 보통 직원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대표라고 하면 뻔한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이 같은 표현은 그 캐릭터에 새로운 디테일을 만들어낸다. 휴식시간에 커피를 마시고 있던 황한주와 추재훈이 대표를 보고 일어서자, “휴식시간도 지켜주지 않는 회사처럼 보이게 왜 이래?”라고 말하는 대표의 캐릭터를 콕 집어내는 대사.

 

또 로맨틱 코미디에서 주고받는 대사가 마치 말로 치고받는 한 바탕 대결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그런 연출도 돋보인다. 임진주(천우희)의 대본이 마음에 들어 함께 작품을 하고 싶은 손범수(안재홍)가 돌려 말하지 않고 대본을 비판하자 이를 두고 임진주와 손범수가 치고받는 대사는 마치 핑퐁게임처럼 경쾌하다. 대본 비판이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 싸움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이 상황 속에서 “얼마나 줄거냐”는 속물적인 마음과 그럼에도 작가로서의 자존심이 부딪치는 임진주의 속내가 대사 속에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임진주가 그렇게 소심한 척 할 얘기는 하는 말 방식을 갖고 있다면(그래서 작업실에서 쫓겨나지만), 다큐 한 편이 의외로 대성공을 거둬 벼락부자가 된 이은정(전여빈)은 거의 표정 없이 직설적으로 할 이야기를 또박또박 내놓는 시원시원한 말 방식을 갖고 있다. 두 사람과 비교하면 황한주(한지은)는 다정다감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인물이다. 그래서 PPL 하나를 하기 위해서 아이돌 출신 배우를 쫓아다니며 ‘기분 좋은 귀찮음’으로 설득하는 인물.

 

임진주와 드라마 작업을 하려다 술을 마시고 함께 하룻밤까지 보내게 되는 손범수의 에피소드는 ‘드라마 작업’이 마치 ‘연애 작업’과 묘하게 병치되는 느낌을 주며 로맨틱 코미디의 핑크빛 웃음을 만들어낸다. 손범수가 임진주에게 드라마 작업을 제안하며 “같이 해요 우리”라는 대사는 그래서 그 순간부터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또 치킨 PPL을 하기 위해 애쓰는 황한주와 추재훈의 이야기가 곧바로 손범수와 임진주가 함께 치킨집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으로 넘어갈 때 그 장면에 실제 PPL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역시 이병헌 감독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PPL 갖고도 슬쩍 미소짓게 만들다니.

 

<멜로가 체질>은 익숙한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갖고 오지만 남다른 말맛으로 시종일관 빵빵 터지게 만드는 드라마다. <극한직업>에서 이미 경험한 바지만, 이병헌 감독의 코미디는 밀도가 높다. 매번 대사 하나도 살짝 뒤틀어 웃음을 주려 작정한 듯한 느낌마저 준다. 물론 그런 희극의 바탕은 비극이 있다고 했던가. 여기 등장하는 세 명의 여자들은 저마다의 비극적 현실을 희극으로 전복시켜 놓은 캐릭터들이다.

 

‘노오력’은 있어도 ‘노동’은 없다는 좋게 말해 프리랜서 현실적으로 말해 비정규직인 작가의 길을 걸어가는 임진주가 그렇고, 벼락부자가 되기는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가슴 한 구석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은정도 그러하며, 어쩌다 여덟 살 아들을 혼자 키우는 이혼녀이자 워킹맘인 황한주가 그렇다. 이들의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그래서 그들이 일과 사랑에 있어서 어떤 저마다의 행복을 찾기를 기대하게 된다. 90%의 코미디가 채우고 나면 10%의 페이소스를 담아내는 <멜로가 체질>. 많이 봤던 멜로 구도지만 새롭게 보이는, 이렇게 말맛 좋은 로맨틱 코미디라니. 참 오랜만이다.(사진:JTBC)

‘삼시세끼’, 정우성이 산골에서 발견한 불편한 과정의 즐거움

 

커피 한 잔을 내려 먹기 위해 정우성은 아마도 이런 불편한 과정을 감수하지는 않았을 게다. 어쩌면 버튼 하나 누르면 뚝딱 만들어지는 에스프레소를 편안히 아침마다 즐겼을 지도. 하지만 tvN 예능 <삼시세끼> 산촌편에서 정우성은 커피를 만들기 위해 먼저 장작으로 불을 피워야 했다. 그렇게 피워놓은 불 위에 솥뚜껑을 뒤집어놓고 그 위에 생두를 부어 검게 익혀질 정도로 손수 로스팅을 하고, 만들어진 원두를 식힌 후 맷돌에 갈아 가루를 냈다. 그리고 면포를 놓고 그 위에 갈아놓은 원두를 넣은 후 끓인 물을 주전자로 조금씩 흘려 커피를 내렸다.

 

버튼 하나면 뚝딱 마실 수도 있는 도시에서의 커피와 일일이 생두를 원두로 만들고 이걸 갈아서 물로 내려 마시는 산골에서의 커피. 그 맛의 차이를 경험해보지 않아도 시청자들은 알 것 같다.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맛이 없을 리가. 얼음을 가득 채운 컵에 담아 아이스커피로 마시는 그 맛은 입보다 몸이 반응할 것 같다. 설사 전문 커피숍에서 사 먹는 커피보다 맛이 떨어질 진다해도 체감하는 맛은 더 좋을 게다. 왜? 그 하나하나의 과정을 직접 경험한 맛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이건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이 애초 시작될 때부터 갖고 있던 기획의도다. 뭐든 사서 쉽게 먹을 수 있는 것들도, 하나하나 직접 따거나 키우거나 만들어서 해먹는다는 것. 사실 산골에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에 정우성 같은 배우들을 데려다 놓고 ‘삼시세끼’만 챙겨 먹으라는 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인다. <1박2일> 시절 무수한 복불복을 통해 끼니를 거르거나 야외취침을 해오던 미션 홍수와 비교해보면 이건 차라리 휴양에 가까워 보이니까.

 

하지만 그 삼시세끼를 산골에서 장작으로 불을 직접 피워가며 솥에 밥을 하고 찌개를 만들어먹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은 미션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너무나 편리하게 완비되어 있는 주방 시스템에 적응해 있고, 필요하면 뭐든 사다 먹거나 배달해 먹는 데 익숙해져 있어서다. 그래서 염정아도 윤세아도 말한다. 여기서는 아침 먹으면 점심 뭐 먹을까 고민하고, 잠자기 전에 아침에 뭐 먹을까를 고민한다고. 그것만 내내 고민하다 보니 다른 고민은 없어지더라고.

 

생각해보면 <삼시세끼>는 도시에서의 우리의 삶이 편리하고 빨리 모든 걸 처리함으로써 여유 시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착각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만 같다. 사실 우리는 그 편리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여유를 생각보다 즐겨본 적이 있었을까. 빈 시간들은 무언가 또 다른 일과 고민으로 채우기 바빴고, 편리함의 이유로 과정이 사라진 결과만 경험하는 삶은 어딘가 우리를 소모되게 만들진 않았는지.

 

밭에서 감자를 잔뜩 캐서 한 박스 당 1만5천 원씩을 받아 번 6만 원으로 장터에 나가 장을 보는 마음도 그래서 다르게 다가온다. 카드로 척척 그어 먹고 싶은 걸 마음껏 사서 먹던 도시에서의 생활과 달리, 노동으로 땀 흘려 번 6만 원은 천 원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물론 도시에 적응되어 있는 우리의 입맛이 나영석 PD가 <삼시세끼>의 기획의도로 생각한 것과는 다른 도회적인 음식들에 출연자들을 빠뜨리곤 하지만, 소시지 하나를 먹어도 직접 숯불에 구워먹는 맛이 같을 수는 없다.

 

이 <삼시세끼>의 본래 본질에 충실한 이번 산촌편을 보다보면 염정아나 윤세아, 박소담, 정우성 같은 누가 봐도 도시남녀의 이미지를 가진 배우들이 어째서 이 산골과 의외로 잘 어우러지고 남다른 재미를 만들어내는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너무나 도시적인 이미지의 그들이 산골에서 밥 한 끼를 해먹는 일은 그 과정들을 하나하나 경험하는 새로움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들은 재미요소로만 머무는 게 아니다. 몸소 키우고 재배해 만들어 먹는 과정들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잃고 있던 것이 바로 그 과정이었다는 걸 깨닫게 만드는 면이 있어서다. 비가 촉촉하게 내린 산골에서 가마솥에 밥만 해놓고 깍두기 하나만 놔도 얼마나 기분 좋은 한 끼가 될 수 있을까. 노동의 과정을 경험하는 일은 그 결과를 만끽하게 만든다. <삼시세끼> 산촌편은 그걸 보여주고 있다. 염정아와 정우성 같은 배우들이 산골에서 밥을 챙겨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사진:tvN)

‘뽕따러가세’ 한과 흥 넘나들며 어디든 노래방으로 만드는 송가인

 

“송가인이어라-”라는 말 한 마디에 길거리에선 환호가 터져 나온다. 어디든 송가인이 가는 곳은 순식간에 노래방이 되어버린다. 그 곳이 한여름 태양이 작열하는 광안리 해수욕장이든, 아니면 부산의 산토리니처럼 보이는 호천마을의 노래교실이든, 심지어 떠나기 전 서울역 광장이든 아니면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이든 상관없다.

 

이른바 송가인 신드롬을 확인하는 건 TV조선 <뽕따러가세>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미스트롯>으로 이름을 알린 송가인이지만, 트로트의 주 소비층만이 그의 팬층의 전부는 아니다. 아이들도 부산 광안리에 나타난 송가인을 확인하고는 반색하고,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기 바쁘다. 아버님 혹은 어머님이 좋아하는 송가인이지만, 그 아이들도 자연스레 송가인을 호감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된 건 송가인이 트로트하면 떠올리는 어떤 경계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한이 잔뜩 묻어나는 ‘한 많은 대동강’과 흥이 한껏 오르는 ‘어머나’나 ‘황진이’를 부르다가 갑작스런 신청곡으로 들어오는 ‘걱정말아요 그대’ 같은 곡들도 그는 특유의 국악 발성으로 구성지게도 풀어낸다.

 

사실 우리네 가요에서 국악 발성을 기반으로 노래하는 가수나, 혹은 이른바 ‘뽕끼’라고 부르는 특유의 정서를 담는 곡들은 트로트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인기를 끈 바 있다. 송가인은 트로트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동시에 다양한 장르의 가요들을 부른다. 그것이 모두 송가인이라는 한 가수의 목소리로 합쳐지는 걸 보면서 우리는 트로트가 기성세대들만 소비하는 음악 장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뽕따러가세>를 보면 송가인이 노래만이 아니라 요즘 같은 리얼리티 기반의 예능 프로그램에도 타고난 인물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그는 언제 어디서건 어떤 연령대의 인물이건 상관없이 순식간에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때론 귀여운 모습을 보이다가도 때론 진지하게 가슴을 후벼 파는 먹먹한 상황을 넘나든다. 그게 어떻게 그리도 빠르고 자연스럽게 전환될까 싶지만, 한과 흥을 순식간에 넘나드는 국악의 면면을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물론 <뽕따러가세>에는 조금은 과한 설정들이 종종 보인다. 예를 들어 광안리 해수욕장에 가서 우연히(?) 만나게 된 보디빌더 남성들 사이에 둘러싸여 ‘어머나’를 부르는 송가인의 모습이 그렇고, 마침 그 자리에 온 수상모터를 즐기는 동호회와 한 자리 흥겨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그렇다. 물론 송가인의 인기가 워낙 높아 그런 상황들이 딱딱 맞아떨어지게 벌어진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게 그렇게 자연스럽게만 여겨지지는 않는다.

 

다만 송가인이기 때문에 이런 과한 설정들도 술술 넘어가는 면은 분명히 있다. 특유의 털털함과 흥 많은 모습이 더해지면서 뭘 해도 좋게 보이는 마법을 송가인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외든 실내든 어디를 가도 노래방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장면이 송가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뽕따러가세>는 로고에서부터 노래가 나올 때 자막까지 의도적으로 노래방의 화면을 그대로 구성해 넣음으로써 송가인과 함께 노래방에서 노래를 즐기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 노래는 노래방에서 듣기에는 너무나 고급스러운 가창력이다. 분위기는 노래방처럼 털털하고 넉넉한데 귀호강을 하게 되는 노래의 풍경들.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가 길거리에서 마구 아무하고나 어우러지는 장면은 보는 이들을 기분 좋게 만든다. 송가인 신드롬은 바로 이 위계 없이 노래 하나로 우리 모두를 흡족하게 만드는 송가인 특유의 모습에서 나온다. 함께 어깨춤을 추게 만들고 함께 눈물짓게 만드는.(사진:TV조선)

‘신입사관 구해령’, 이 좋은 소재를 가져와서도 멜로만?

 

지금 지상파 수목드라마는 전반적인 부진에 빠져있다. 그나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MBC <신입사관 구해령>을 보면 어째서 이런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가를 가늠하게 된다. 조선의 첫 번째 문제적 여사(女史) 구해령(신세경)이라는 꽤 흥미진진한 가상의 인물을 세워두고도 이 드라마는 어째 여자 사관과 왕자 이림(차은우)의 사랑타령에만 거의 머물러 있어서다.

 

왕자와 궁에 들어오게 된 여인의 로맨스는 이미 KBS <구르미 그린 달빛> 같은 작품에서도 시도된 바 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여자 주인공이 남장여자 내시로 궁에 들어왔다면, MBC <신입사관 구해령>의 여자 주인공 구해령은 여사로 궁에 들어온 게 다를 뿐이다.

 

소재가 아깝다 여겨지는 건, 초반 연애소설을 쓰는 ‘매화선생’으로 도성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인물인 도원대군 이림과 소설을 읽어주는 구연자인 구해령이라는 인물이 만나는 대목에서 무언가 자유로운 글쓰기와 표현에 대한 메시지들이 멜로의 표피를 가진 이 드라마에 단단한 골격이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서가 되어 책으로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봉쇄되는 호담선생전에 대한 궁금증은 향후 이 금서를 두고 벌어질 어떤 사건들이 멜로 그 이상의 이야기를 향해 나갈 것으로 예상됐다. 게다가 정해진 혼례를 거부하고 당당히 사관으로서의 길을 선택하는 구해령이라는 인물의 능동적인 모습은 조선사회를 배경으로 사회진출을 꾀하는 진취적인 여성상의 등장이라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드라마는 점점 화제성을 동반한 문제작이 될 거라는 기대감과는 전혀 달리, 구해령과 이림 사이의 알콩달콩한 멜로의 틀로만 한 회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갑자기 번진 역병을 해결하기 위해 구해령과 함께 이림이 우두를 시행해 백성들을 구하는 대목은 흥미롭지만, 이것이 여자 사관의 이야기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게다가 이 드라마의 악역으로 등장하는 왕(김민상)은 왕세자인 이진(박기웅)과 대립하며 이림은 아예 사지로 내모는 인물이다. 그런데 왕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왕은 그저 이 달달한 멜로가 너무 잔잔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가끔 등장해 긴장감을 만들기 위해 난폭한 언사와 폭력을 보여주는 그런 인물 정도로 그려진다.

 

만일 자유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표현의 자유 혹은 사생활의 자유와 기록 사이의 대립을 그려내려 했다면 드라마는 좀 더 위기감이 강조되어야 한다. 구해령과 이림이 가까워지는 건 그 자체로 부적절한 일이 될 수 있다. 또 여사로서 무엇이든 기록을 해야 하는 일로서의 의무와 또 지켜주고픈 사생활이 누군가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상황 사이에서 구해령은 더 곤혹스런 입장에 처해야 드라마는 팽팽해진다.

 

하지만 이런 많은 가능성들을 이 드라마는 거의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저 그런 멜로로만 빠지다 보니 신세경과 차은우라는 선남선녀가 눈을 마주치고 스킨십을 하는 그 장면들로 시청자들의 눈을 붙잡아 두려는 것처럼 보인다. 한 회가 다 끝나도 별다른 이야기가 진전되지 않았다 여겨지는 건 그래서다.

 

시청률도 그래서 4%에서 6% 사이를 오가는 고만고만한 수치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그나마 지상파 드라마들 중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건 어딘지 쓸쓸한 느낌마저 준다. 어째서 <신입사관 구해령>은 메시지가 잘 보이지 않는 그저 그런 뻔한 멜로의 틀에만 갇히게 된 걸까. 이래서는 지상파 드라마에 현재 감지되는 위기를 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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