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에 밀리는 <판듀>, <1> 못 따라가<런닝맨>

 

제 아무리 주말예능이 예전 같지 않아도 해도 지상파3사의 예능에 있어 주말예능이란 자존심 싸움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주말예능이 엎치락뒤치락 할 때마다 지상파3사의 예능 이미지도 달리 보인다. 주중에 다소 부진해도 주말예능이 살아있다면 해당 방송사의 예능 이미지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판타스틱듀오(사진출처:SBS)'

그런 점에서 보면 최근 SBS 주말예능은 SBS 예능의 이미지 전체를 깎아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현재의 주말예능경쟁은 이미 전반전을 MBC <복면가왕>이 후반전을 KBS <12>이 양분하는 구도로 굳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복면가왕>13.3%의 시청률을 냈고 <12>은 무려 16.5%의 시청률로 주말 예능의 최고 위치에 올라섰다. 반면 동시간대에 방영된 SBS<판타스틱듀오>5.3%, <런닝맨> 역시 5.3%에 머물렀다.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의 반절도 되지 않는 성적을 낸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나온 건 전적으로 SBS 주말예능의 안이한 전략과 프로그램 만듦새에서 비롯된 일이다. <복면가왕>은 복면 콘셉트를 새롭게 도입해 주말 음악 예능의 신기원을 열었지만 뒤늦게 주말에 편성된 <판타스틱 듀오>는 어딘지 다른 프로그램에서 많이 봤던 아이템들을 섞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출연가수들도 그다지 새롭지 않고 무엇보다 여전히 가창력 대결에 목매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으로 지목되었다.

 

<복면가왕> 역시 가창력을 선보이는 음악 프로그램은 맞지만 거기에 집착하기보다는 복면 뒤의 가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고, 가수들의 풀도 굉장히 다양하다는 장점을 가졌다. 그러니 뒤늦게 시작한 <판타스틱 듀오>는 무언가 이 프로그램만의 매력을 극대화해 어필했어야 하지만 음악 예능 대결에서 <복면가왕>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에 머무르고 말았다.

 

사실 이미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복면가왕>과 유사한 콘셉트의 음악 예능을 경쟁적으로 붙여놓는다는 건 무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독보적인 새로움을 갖고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잘해도 2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판타스틱 듀오>의 실패는 새로움에 도전하지 않은 SBS 예능의 전략적 실패라고 볼 수 있다.

 

<런닝맨>의 경우는 유재석이 작년 시상식에서 반드시 동시간대 1위를 달성하겠다고 말하면서 절치부심했던 걸 떠올려보면 지금의 흐름은 너무 소소해진 느낌이다. 물론 올 상반기 초반에는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하려 노력한 면들이 있었지만(그래서 시청률도 괜찮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게임 버라이어티라는 형식적 틀이 보편적 시청자들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런닝맨>은 중국판이 대박을 내면서 SBS 예능의 효자로 지목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중국의 이야기다. 게다가 <런닝맨>은 초반의 참신하고 새롭던 게임들의 시도들이 많이 사라진 게 사실이다. 지금은 또 다시 게스트를 초대해 단순한 게임만 조금 달리하는 형식적인 틀에 점점 매몰되어 가고 있다. 한 번을 해도 임팩트 있고 누구나 관심을 가질만한 아이템들이 제시되지 못하는 한, <런닝맨>은 갈수록 주말예능 경쟁에서 힘겨워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SBS 주말예능은 한 때 <K팝스타><런닝맨>, <정글의 법칙> 등이 주도하면서 힘을 발휘한 적이 있다. 그 때 이들 프로그램들이 어떻게 수위에 올라설 수 있었는지를 다시금 되새겨봐야 한다. 그건 다름 아닌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걸 했다는 점이다. 그저 당장의 리스크를 줄이려 누군가 했던 성공 공식들을 가져와 조합하는 방식으로는, 또 매번 치열한 아이템을 내놓기보다는 그저 매주가 흘러가는 듯한 아이템으로 승부하는 것으로는 부활을 꿈꾸기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부산행>, 재난공화국에 날리는 마동석들의 일침

 

대규모 폭력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만 군대병력을 충원하여 국민여러분들을 안전하게 지켜드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정부는 절대로 여러분들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이런 종류의 대사는 재난영화의 공식적인 클리셰에 가깝다. 재난영화 속에서 늘 정부는 아무 일도 아니라며 국민을 안심시키고는 저들 살 궁리를 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사진출처:영화<부산행>

하지만 똑같은 클리셰에 해당하는 대사인데도 <부산행>의 이 대사는 영 달리 들린다. ‘폭력사태라는 표현이나 군대병력같은 단어들이 우리네 불행한 현대사에서 특정한 사건들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정부측의 브리핑과 상반되게 군대병력이 좀비로 돌변해 국민을 공격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우리는 상상이 아닌 실제 이런 현실을 맞닥뜨린 적이 있지 않은가.

 

그저 지나칠 수 있는 클리셰가 우리에게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대사가 된다는 것. 이건 <부산행>이라는 좀비 장르의 영화가 1천만 관객을 넘어서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닐 수 없다. 본래 B급 장르로서 결코 대중적이라고 할 수 없는 좀비 장르가 신드롬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1천만 관객 돌파라니! 그 트라우마가 얼마나 크게 자리하고 있는가를 이 영화는 잘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건 우연이 아니다. <부산행>은 그 영화 곳곳에 우리네 재난 공화국의 트라우마를 툭툭 건드리게 의도된 장면과 설정들이 들어가 있다. 필자가 이 영화에서 가장 끔찍하게 느낀 장면은 KTX 열차 안에서 창밖으로 바글바글 얼굴을 가득 달라 붙인 채 고통스러워하는 좀비들의 모습이 여러 차례 스치듯 보이는 장면들이다. 마치 바닷물이라도 그 안으로 들어온 듯 물밀 듯 차오르는 좀비들의 이미지는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세월호가 그러했듯이 이 영화에 등장하는 KTX 역시 우리네 재난공화국을 표징한다는 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시속 3백 킬로로 달려가는 그 속도 위에서 좀비들과 사람이, 또 사람과 사람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설정은 그래서 더더욱 끔찍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이 영화의 제목에 담겨진 부산행이 과연 살아남은 자들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지만 우리는 그 끝을 낙관할 수 없다. 다만 좀비들이 사람들을 공격하는 세기말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괜찮다’, ‘안심해도 된다고 미디어를 통해 들려오는 당국자들의 거짓말이 있을 뿐이다.

 

좀비 장르이면서도 지독하게 현실성을 우리 앞에 내미는 <부산행>에서 마동석은 서민들의 영웅이면서도 가장 슬픈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애초부터 주인공도 아니고 불쑥 이 KTX 행에 올라탄 후 아이를 임신한 아내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이 목숨을 건 사투에 뛰어든다. 재난의 한 가운데서 그나마 온 몸을 던져 사람들을 구하고 심지어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다시 그 재난 속으로 들어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우리 시대의 마동석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 마동석이 이렇게 말한다. “아빠들은 원래 욕먹고 인정 못 받고 무시당하고 그래도 희생하면서 사는 거야.” 좀비 장르를 보며 심지어 관객들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건 <부산행>이 애초에 추구하는 것이 좀비물이 아니라 사회물이었다는 걸 잘 말해준다. 천만 관객은 우리네 재난공화국의 참상을 거기서 다시 봤고, 그 안에서 혼자 살기 위해 타인을 죽음으로 내던지는 이기심을 봤으며, 이런 재난 상황에 무능한 당국을 봤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숭고하게 희생하며 사라져간 이름 모를 서민들을 보며 눈물 흘릴 수밖에 없었다.

 

<부산행>이 천만 관객을 넘긴 건 바로 그 재난공화국의 현실과 숭고한 서민들을 표징하고 기꺼이 재난에 몸을 던진 마동석 같은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춘 보고서 <청춘시대>, 그저 달달한 멜로를 선택하지 않은 까닭

 

JTBC <청춘시대>에는 무려 다섯 명의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윤진명(한예리), 정예은(한승연), 송지원(박은빈), 강이나(류화영), 윤은재(박혜수)가 그들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보는 이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캐릭터들이다. 연애가 사치일 정도로 여유 없는 짠한 청춘의 전형을 보여주는 윤진명,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나쁜 놈이란 걸 알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정예은, 늘 인기 만점이지만 정작 남자친구는 없는 모태솔로 송지원, 제 몸 하나 맘대로 굴려 스폰서를 전전하며 막 살아가는 구질구질한 건 못 견디는 강이나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귀여운 새내기 윤은재.

 

'청춘시대(사진출처:JTBC)'

하지만 무려 다섯 명의 이런 반짝이는 여주인공을 세우고 있는 드라마에 눈에 띄는 남자주인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남자를 초대해 벌인 이른바 수컷의 밤파티를 보면 이런 면들이 단박에 드러난다. 윤진명은 아예 파티에 참가하지 않았고, 정예은은 결국 그 나쁜 놈을 데려왔다. 강이나는 바에서 알게 된 어딘지 미스테리한 아저씨를 초대했고 윤은재는 벌칙이 싫어 자신을 따라다니는 선배 윤종열(신현수)을 데려왔다. 파티를 주도한 송지원은 역시 캐릭터에 걸맞게 한 사람도 초대시키지 못했다.

 

누가 봐도 청춘 멜로드라마라고 여길만한 <청춘시대>에 정작 남자주인공이 이렇게 없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나마 자신의 현실 때문에 남자를 자꾸 밀어내는 윤진명에게 순애보적인 사랑을 보이는 박재완(윤박)이 눈에 띄는 남자지만, 그 역시 이 드라마에서 중심적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윤종열 역시 조금씩 윤은재와 가까워지지만 남자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존재감은 아니다.

 

그렇다고 멜로의 애틋함이나 달달함이 없는 건 아니다. 윤진명과 박재완의 관계는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든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시청자들은 알지만, 그 관계를 거부하는 윤진명의 현실이 너무나 공감가고 그렇게 밀려나면서도 늘 곁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서성이는 박재완이 못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다른 남자의 외적인 요소에 아무 생각 없이 끌렸던 윤은재가 차츰 그녀의 옆자리에 있는 선배 윤종열에게 마음을 주는 모습은 한 마디로 풋풋한 첫사랑의 설렘이 묻어난다.

 

그런데 <청춘시대>는 이들의 멜로를 살짝 살짝 양념처럼 치고는 있지만 결국 에포크 하우스에 함께 살고 있는 여자 다섯 명의 이야기가 본맛이라는 듯 그들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젊음을 공유한 그들이지만, 그들은 저마다 아픈 비밀스런 자신들만의 이야기들을 숨기고 있다. 신발장 귀신을 이야기하며 그 귀신이 보인다는 송지원이나, 누군가 죽기를 바랐다는 윤진명(그녀는 식물인간인 자신의 동생이 죽기를 바란다) 그리고 속으로 누군가를 죽였다고 말하는 윤은재는 물론이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팔찌에 무언가 비밀을 갖고 있는 강이나도 모두 미스테리한 과거의 아픔들을 숨기고 있다.

 

멜로는 이들 청춘의 겉면이지만 <청춘시대>는 그 이면에 놓여진 청춘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조금씩 풀어놓는다. 이것은 <청춘시대>라는 드라마가 그저 달달한 사랑 타령을 하는 단순한 청춘 멜로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거기에는 일종의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보고서 같은 아픈 현실의 이면들이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숨겨져 있다.

 

어찌 보면 남자주인공이 이처럼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건 드라마로서는 큰 약점이 될 수 있다. 결국 멜로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여성들에게 남자주인공이 누구냐 하는 건 가장 중요한 선택의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춘시대>는 여자주인공들이 훨씬 입체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반면 남자주인공들은 살짝 뒤로 밀려나 있다.

 

이것은 혹시 그저 청춘을 첫사랑같은 이야기로 다룰 수만은 없는 지금의 현실이 투영된 건 아닐까. 물론 그들도 사랑하고 싶어 하고 그것이 청춘의 중요한 순간들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현실이 그걸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만일 쉽게 그럴 듯한 남자주인공을 내세워 달달한 사랑을 그려냈다면 훨씬 쉽게 대중성을 확보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청춘시대>는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 그건 달달할 뿐 현실을 마비시키는 거짓 판타지이니까. <청춘시대>가 대중성을 떠나 괜찮은 드라마라는 이유다.

공식 <무도> 하차 선언한 정형돈, 그렇다고 해도

 

MBC <무한도전>에서는 무한뉴스를 긴급 제작해 정형돈의 공식적인 하차를 알렸다. 물론 잠정이라는 수식어를 떼지는 않았다. 언제든 건강해지면 돌아올 자리를 늘 마련해두겠다는 뜻일 게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공식적으로 하차 선언을 하게 되면서 정형돈이 그간 <무한도전>에 해 놓은 많은 이들이 새삼 주목된다. 사실 초창기만 해도 적응을 못해 힘겨워 하던 그가 아니었던가. 뭐든 다 잘 하는데 웃기는 것만 못하는 개그맨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물론 그건 뒤돌아 생각해보면 향후 정형돈이 보여줄 미친 존재감이라는 반전을 위한 밑밥 같은 것처럼 보인다.

 

어색함과 부적응이 하나의 캐릭터가 되고 그래서 무언가에 도전하는 일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일 수밖에 없는 <무한도전>에서는 그의 적응기와 성장기 또한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흥미롭게도 그 어색함을 인정하고 캐릭터화하자 오히려 정형돈이라는 존재감이 살아났다는 점이다. 그건 김태호 PD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어려운 인정을 스스로 선택한 정형돈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되지 않았을 일이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캐릭터들이 최고의 스타로 등극하는 과정에서 정형돈은 여전했다. 그는 여전히 패션은 꽝이고 노래는 감정 과잉이었으며 몸 쓰는 일은 둔했다. 하지만 대신 그는 자신의 패션이 최고이고 자신과 함께 노래 부르면 스타가 되며 누구보다 몸 쓰는 일을 잘 한다고 우겼다. 그 우기는 과정에서 미친 존재감이 생겼다. 그리고 그건 실제 현실이 되기도 했다.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그와 함께 불렀던 가수들, 지드래곤, 데프콘, 정재형, 혁오 등은 모두 가장 주목받는 가수가 되었다.

 

지못미특집 등을 통해 여장 분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프로 레슬링 특집에서는 온 몸을 던져 족발당수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무엇보다 함께 하는 팀원들을 진정으로 공감하고 챙기는 눈물 많은 예능인이었다. ‘봅슬레이특집에서 마지막 라인을 통과해 들어오는 동료들을 보며 아낌없이 눈물을 흘려주었고, ‘조정특집에서도 콕스를 맡아 최선을 다한 동료들에게 눈물어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형돈의 위치가 <무한도전>에서 빛날 수 있었던 건 그가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이 프로그램의 애초 취지에 끝까지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보통의 위치에 있었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최고라고 주장했다. 그런 정형돈이 실제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걸 보는 팬들의 마음은 똑같이 보통의 위치에서 누구나 그 자신은 최고라는 걸 확인시켜주지 않았을까.

 

정형돈은 하차하지만 팬들은 여전히 그를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존재감은 그가 떠나도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 하나의 흔적처럼 새겨져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길. 팬들은 앞으로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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