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이 갈 길을 제시한 나영석 PD의 혜안

 

<신서유기>에서 강호동은 인터넷 방송이라는 환경에 전혀 적응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처음 차에 오른 이승기가 인터넷 방송은 이렇게 하는 거라며 과감한 직설들을 날리자 강호동은 괜스레 눈치를 보며 그렇게 막 해도 되나하고 머뭇거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심지어는 이승기를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과거 <12> 시절의 어눌했던 이승기와 펄펄 날랐던 강호동의 그림을 떠올려본다면 완전히 역전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신서유기(사진출처:tvN)'

그렇게 강호동이 눈치를 보게 만든 이승기의 직설이란 사실 이 프로그램에 함께 하고 있는 출연자들이 피하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이를테면 이수근이 피하고 싶은 건 도박이라는 단어고, 은지원이 피하고 싶은 건 이혼이라는 단어다. 강호동은? 아마도 세금이거나 지금 트렌드에 적응 못한 옛날 사람이 아닐까. 그러니 그런 이야기를 버젓이 툭툭 던지는 이승기가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을 게다.

 

나영석 PD<신서유기>의 출연자들에 대한 대중들의 불편한 정서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걸 숨기기보다는 일단 다 드러내놓는 것으로부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것은 <신서유기>라는 프로그램의 스토리텔링과도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즉 잘 나가던 인물들이 어쩌다 밑바닥으로 떨어졌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대중들을 위한 구제에 나서야하는 <서유기>의 이야기구조가 여기 출연한 강호동, 이수근, 은지원, 이승기의 상황을 그대로 얘기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렇게 웃음을 통한 구제를 바라며 서유기의 노정에 뛰어들었다.

 

강호동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되곤 했던 것이 바로 진행병이다. 늘 중심에 서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려는 그 진행은 요즘처럼 중심 없이 여러 출연자들의 이야기가 다뤄지는 예능 트렌드에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자동차에 오른 은지원은 아예 처음부터 대놓고 이 강호동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12> 시절부터 강호동 잡는 유일한 인물이었던 은지원이 왜 여기서 진행을 하려고 그래?”하고 쏘아붙이자 강호동은 내가 언제 진행을 하려고 했다고 그래?”하고 되받아친다.

 

결국 강호동은 <신서유기> 첫 화의 단 10분 정도의 분량에서 그가 갖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 이를 테면 인터넷에 대한 부적응이나 달라진 트렌드에도 변화하지 못한 그의 스타일 같은 것들을 다 드러낸 셈이다. 그리고 2화에서 중국으로 떠나기 전 음식점에서 가진 사전 미팅에 이거 인터넷으로 하면 욕 안 먹는 거야?”하고 묻는 강호동의 멘트를 집어넣고 그 이야기에 황당하다는 듯 웃는 제작진과 출연자들의 모습을 잡아넣는다. 결국 욕을 먹는 것과 자신들이 해야 할 웃음을 주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일은 다른 문제라는 걸 명확히 한 것이다. 열심히 해도 욕은 먹는다. 그래도 열심히 하는 게 우리들의 본분이라는 걸 말해준 것.

 

희한하게도 그동안 여러 프로그램에서 음의 데시벨만 높여 놓은 것만 같던 강호동이 <신서유기>에 들어오니 달라 보인다. 도대체 나영석 PD의 무엇이 이런 다른 느낌을 만든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인정이다. 강호동이 그간 그토록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부정하거나 피하려고 했던 것들에 대한 인정. 그는 지금의 달라진 예능 트렌드 속에서 보면 옛날 사람이 맞다.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언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이걸 인정하는 순간부터 그의 변화는 비로소 가능해진다.

 

나영석 PD는 있는 그대로의 강호동을 꺼내놓고 심지어는 그의 이 옛날 사람이라는 면면들까지 캐릭터화 해버린다. 그러자 그의 옛날 사람 스타일은 짜증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상황으로 그려지며 웃음을 유발하는 캐릭터로 바뀐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강호동이 요즘 사람으로 진화할 수 있는 숨통이 되어줄 것이다.

 

사실 웃음을 만드는 건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단점을 부정하기보다는 타인의 생각을 선선히 인정하는 그 지점에서부터 오히려 그 타인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 나영석 PD모든 걸 내려놓고 대중의 시선에서 인정하는그 자세는 강호동이 앞으로 나가야할 길을 제대로 제시해주고 있다. 지금껏 그 누구도 제시해주지 못했던 그 길을.



진화 성공한 <백년손님>, <해피투게더>가 배워야할 것

 

SBS <자기야 백년손님(이하 백년손님)>은 본래 <자기야>라는 스튜디오형 토크쇼에서 진화한 버전이다. 스튜디오에 연예인 부부들을 초대해 이런 저런 사담을 나누는 수다형 예능에서 <백년손님>이 사위의 강제 처가살이라는 현장형 예능으로 진화를 꾀한 건 대단히 적절한 선택이었다. 물론 스튜디오에서의 후토크와 현장에서의 이야기가 버무려져 있지만 <백년손님>은 확실히 요즘 트렌드에 걸맞는 예능 형식으로 자리한 것만은 분명하다.

 


'백년손님(사진출처:SBS)'

8.8%의 괜찮은 시청률을 낸 11일 방송에서는 늘 스튜디오에 앉아 토크를 이끌던 <백년손님>의 안방마님 김원희가 남서방의 후포리를 찾아가 밭일을 하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이 방송에서 김원희는 현장에서도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괜찮은(?) 쟁기실력을 보여줘 심지어 암소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스튜디오에만 앉아 있기 보다는 현장으로 뛰어나가는 김원희의 모습은 마치 <백년손님>이 이뤄낸 진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처럼 보인다.

 

연예인들의 사담을 위주로 하는 스튜디오 토크쇼와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트렌드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만일 <백년손님>이 요즘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관찰카메라 형식을 과감히 시도하지 않고 과거의 스튜디오 토크쇼에 주저앉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이 프로그램은 지금껏 생존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백년손님>은 연예인만이 아닌 장모들이라는 일반인들을 프로그램의 중심으로 세웠고 장모와 사위라는 관계 속에서 연예인의 일반인적인 면모들을 더욱 부각시켰다. <백년손님>의 후포리 남재현이나 이만기 그리고 마라도의 박형일 같은 인물들에게서는 전혀 연예인의 느낌이 묻어나지 않는다. 이게 가능한 건 장모들과 티격태격하며 만들어진 일상적인 관계의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백년손님>이 마치 최근 예능 트렌드의 정답처럼 여겨지는 건 그 공간이 너무나 시골스러운 서민적인 공간이라는 점이다. 후포리에 내려간 남재현이 장모에게 엉뚱한 요리를 해주거나, 후포리의 어르신들인 후타삼이 그 요리를 먹고는 요상하다며 인상을 찌푸리는 장면에서는 푸근한 시골의 정서가 느껴진다. 마라도 외진 곳에서 결코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장모를 찾아가 이런 저런 일을 도와주는 박형일이 장모에게 얼굴 팩을 해주고 같이 누워 웃음을 짓는 장면은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든다.

 

이건 단지 착해서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착하면서도 지금의 서민들의 정서를 제대로 건드릴 수 있는 잘 짜여진 예능의 만듦새에서 나오는 공감대다. <백년손님>이 그 털털한 인물들의 소박한 이야기를 갖고 꾸준히 괜찮은 반응과 시청률을 가져가고 있는 건 그래서다.

 

반면 경쟁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해피투게더>는 적절한 진화의 타이밍과 방향성을 못 맞춤으로써 서서히 추락했다. 유재석이라는 발군의 MC를 두고도 시청률이 뚝뚝 떨어지고 화제성조차 예전만 하지 못하게 된 데는 여전히 이 프로그램이 전형적인 스튜디오 연예인 사담 토크쇼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들어 쿡방 트렌드를 가져와 요리를 토크와 버무리고 있지만 이건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해피투게더> 역시 리뉴얼을 준비하고 있다. 박미선과 김신영을 하차시키고 전현무를 투입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누가 나가고 새로 들어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연예인 사담 토크쇼의 틀을 깨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천하의 유재석이 자리하고 그 옆 자리에 최근 들어 대세 MC로 급상승한 전현무가 들어온다고 해도 반전을 이루기는 어려울 듯싶다. 리뉴얼을 준비하는 <해피투게더><백년손님>이 이룬 진화를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용팔이>, 한여진과 김태희의 반전은 가능할까

 

무릎 꿇어!” 한여진(김태희)의 이 한 마디는 <용팔이> 핏빛 복수극의 서막이 될까. VIP 병동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 한여진의 개인병동은 병실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한 최첨단 시설들이 들어차 있다. 마치 SF 장르에 나오는 미래의 공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최첨단의 공간은 그간 한여진을 묶어 놓는 감옥이었다. 그녀는 그 곳에 눕혀진 채,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용팔이(사진출처:SBS)'

그런데 이제 깨어나 다시 그 병실로 돌아온 한여진에게 그의 아버지는 그 곳이 바로 너의 왕좌라고 말했다. 눕혀져 있던 병상은 세워져 왕좌가 되어 있었고, 그 곳에 앉은 한여진은 아버지가 남겨놓은 한신그룹의 비자금 내역을 손에 쥐고 회사의 모든 중역들과 정재계 인물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병상을 용상으로. <용팔이>에서 이 한여진의 병실은 중요한 이중적인 의미를 띄고 있다. 한편으로는 일반 서민들의 병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최첨단 시설이 들어간 화려한 외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외관에도 불구하고 한여진은 그 시설에 갇히고 묶여진 존재로 그려졌다. 만일 이 화려한 병실이 부유한 삶이 가진 자본의 풍경을 표징하는 것이라면 한여진이라는 인물의 기구함은 재벌의 화려함이 아니라 자본에 포획된 기구한 운명을 말해주는 것일 게다.

 

한신그룹이라는 재벌가는 그래서 마치 자본 쟁탈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자본기계들의 정글이다. 고사장(장광)이 자본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범죄자의 얼굴을 갖고 있고, 그와 모의하는 한도준(조현재) 회장과 나누는 이야기들이 마치 조폭의 세계를 보는 듯한 인상을 주는 건 자본의 세계가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에둘러 말해준다.

 

결국 <용팔이>에서 이 비정한 자본의 세계와 맞설 수 있는 인물은 한여진이다. 그녀는 오랜 동안 병상에 묶여진 사슬을 끊고 나와 이제 그 곳을 용상으로 바꾸려 한다. 물론 그녀의 옆에서 그녀가 싸울 수 있게 지지해주는 김태현(주원)이란 존재가 있지만, 그녀의 핏빛 복수극이 향후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 지가 <용팔이>의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되는 셈이다.

 

<용팔이>가 초반의 그 몰아치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김태현이라는 캐릭터에서 비롯됐다. 스스로 속물의사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돈 없으면 살 사람도 죽을 수밖에 없는 병동에서 어떻게든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 이 숨은 휴머니스트의 안간힘에 시청자들은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김태현이라는 휴머니스트의 동분서주에만 머물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이 한신병원으로 표징되는 자본의 부조리한 세계와 그 폭력을 해결하는 방법은 이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그 열쇠를 쥔 인물은 결국 한여진이다. <용팔이>의 후반부 이야기가 한여진에 의해 주도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늘 누워 있고, 깨어나서도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며, 심지어 실어증을 가장한 채 한신병원에 숨어들어 있는 한여진이란 존재는 마치 연기자 김태희의 처지를 그대로 닮았다. 물론 그 누워 있는 연기가, 얼굴을 가린 채 실어증을 가장하는 연기가 쉬운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연기자로서 드라마에서 확실한 자기 존재를 드러낼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병상을 용상으로 바꾸려는 한여진이라는 인물의 변신과 누워만 있다가 이제 깨어나 핏빛 복수극을 시작하려는 김태희라는 연기자의 반전은 서로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과연 한여진은 병상을 용상으로 바꿀 수 있을까. 또한 김태희는 이 연기를 통해 자신의 연기자로서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을까. 한여진과 김태희의 반전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집밥 백선생>, 흔한 식재료의 가치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이 얘기한대로 사실 이맘때면 처치 곤란한 것이 작년쯤 부모가 담가 보내줘 이제는 시어빠진 묵은지다.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그냥 먹기도 곤란하지만, 아마도 엄마가 해줬던 음식을 기억하는 이들은 묵은지를 이용한 김치찜이나 찌개가 그 어떤 음식보다 맛이 좋다는 걸 안다. 문제는 그 맛을 알아도 어떻게 요리해야 되는지 잘 모르고 또 엄두도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이들에게 묵은지는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이 묵은지를 재료로 들고 나온 건 그래서다. 사실 요리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 묵은지 요리가 새로운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냉장고에서 풀풀 냄새를 풍겨가며 익어가는 묵은지가 주는 고충을 마치 너무나 잘 이해한다는 듯 들고 나온 그 마음이 어떤 면에서는 시청자들을 잡아끄는 진짜 요인일 수 있다. 그래서 일단 재료 하나만으로도 나를 생각해주는 백종원의 그 마음을 읽고 나면 거기 만들어지는 요리들에 대한 호감은 더 커진다. 따라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건 그래서다.

 

이건 백종원이라는 인물의 진가일 것이다. 그의 요리는 새롭거나 특별한 것이 없다. 오히려 냉장고를 열면 어느 한 구석에 늘 있기 마련인 재료들이 그가 하는 요리의 주인공들이다. 계란을 가지고 만드는 계란 프라이가 과연 요리인가 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백종원은 그것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리라는 걸 진지하게 보여준다. 그 흔하디흔한 무 한 덩어리를 갖고 무생채는 물론이고 생선 조림에 가까운 무 조림, 소고기 뭇국에 무밥까지 뚝딱 해낼 수 있다는 걸 그는 프로그램을 통해 굳이 설파하고 있다.

 

사실 재료가 없어서 요리를 못하는 건 아닐 것이다. 냉장고를 열면 누구나 계란 몇 개쯤은 있고 무 한 덩이 정도는 찾을 수 있다. 혼자 산다고 해도 엄마가 김장철이면 바리바리 싸서 보내준 김치 한 덩이쯤은 냉장고 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재료를 보는 우리의 눈이다. 늘 화려한 음식과 비싼 재료에만 눈이 가다보니 정작 흔하고 값싼 재료들이 저평가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먹을 게 없다는 불평은 알고 보면 흔한 재료들에 대한 무시에서 비롯될 때가 더 많다.

 

물론 백종원이 <집밥 백선생>을 통해 알려주는 일상적인 음식에 담겨진 꿀팁이 주는 효용성은 실제 매일 같이 저녁밥을 차려내는 주부들에게는 대단히 유용한 정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백종원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은 단순히 그런 정보적인 유용성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요리를 통해 전해지는 타인에 대한 배려나 소통이 더 큰 것일 게다.

 

음식은 단지 육체적인 허기를 달래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음식의 힘은 정신적인 허기를 달래주는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이른바 엔도르핀 디시(endorphin dish)’라는 신조어가 나오고, 요리에 셀프 힐링이라는 트렌드가 발견되는 건 그래서다. 고향을 떠나와 혼자 사는 세대들이 점점 늘면서 어쨌든 해먹어야 하는 한 끼의 밥은 그래서 육체적 허기보다는 정신적 허기를 채워주는 의미가 더 커졌다.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은 이 엄마가 해주는 밥상의 부재를 상당 부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해내는 모습을 보인다. 어디 엄마들이 무슨 대단한 식재료로 맛을 냈던가. 그저 손에 잡히는 흔한 재료만을 갖고 어떻게 하면 맛있게 음식을 낼 수 있을까를 고심했던 것이 엄마의 밥상이 아니었던가. 흔한 식재료들에 굳이 가치를 부여하는 백종원의 음식에서는 그래서 그 서민적인 느낌과 더불어 소외된 삶들이 가진 허기를 채워주는 훈훈함이 묻어난다.

 

시어서 이제는 그냥 먹기 불편한 묵은지에는 그러나 그걸 바리바리 싸주던 엄마의 정성이 고스란히 곰삭아 있다. 그래서 물에 슬슬 닦아서 어떤 요리에나 척척 넣어줘도 맛이 날 수밖에 없다. 백종원이 <집밥 백선생>을 통해 계속 재발견시키고 가치를 새롭게 부여하는 흔한 재료들도 그걸 키워낸 누군가의 정성이 들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자라났다. 비록 지금은 냉장고 속 구석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부려진 채로 놓여져 있을 지라도 언젠가 안목 있는 이들의 손에 멋진 음식으로 만들어질 재료들처럼. 마치 묵은지가 그러하듯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