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젠틀맨’ 반응, 왜 극과 극으로 나눠질까

 

싸이의 신곡 ‘젠틀맨’에 대한 반응은 그 자체로 놀랍다. 신곡이 나오자마자 전 세계에서 관심을 갖는다는 건 분명 지금껏 우리네 가요사에서 없던 일이다. 그것도 남북한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조차 싸이의 신곡이 해외에서 대서특필되고 있다는 것은 놀랍기까지 하다. 물론 그 반응은 극과 극이다. “역시 싸이다”라는 반응이 있는 반면, “<강남스타일>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사진출처 :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

곡보다 더 관심을 갖게 만든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자 그 반응은 더 뜨겁다. “여전히 싸이 다운 모습을 여실 없이 보여줬다”는 반응이 있는 반면, “너무 선정적이고 더러워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극단적인 반응까지 보인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상반된 반응을 만들어내고 있는 걸까. 그것은 본래 싸이의 본류였던 B급 풍자가 훨씬 더 강해짐으로써 선정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더 파더 젠틀맨-” 이렇게 반복되는 후렴구는 분명 욕을 패러디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양복 차림에 어딘지 근엄한 척 하는 ‘젠틀맨’을 뒤트는 싸이의 이 신곡은 입에 담기 아슬아슬한 거북함을 주면서도 동시에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뮤직비디오에 대한 반응이 노래보다 더 양극단으로 갈라지는 것은 뮤직비디오가 좀 더 직접적으로 ‘젠틀맨’에 대한 조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젠틀맨’ 뮤직비디오는 시작부터 파격이다. 양복을 잘 차려입은 노인들이 쇼핑한 물건들을 들고 마치 비서처럼 싸이의 뒤를 따르는 장면이 그렇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네 풍습에서 노인들을 하인 부리듯 데리고 다니며 그 폼 잡는 모습을 비웃듯 주차금지 판을 발로 차고, 마네킹의 가슴을 만지고 노인들 옆에서 아랫도리를 흔들며 춤을 추는 장면은 대단한 도발이 아닐 수 없다.

 

노래가 갖고 있는 ‘젠틀맨’에 대한 공격과 혐오는 왜 싸이가 이 곡에 시건방춤을 붙였는가를 이해하게 만든다. 시건방춤의 핵심은 상체와 하체의 표현을 달리하는 것이 아닌가. 상체는 어딘지 폼을 잔뜩 잡고 있지만, 하체는 골반을 노골적으로 좌우로 흔들어대는 것. 상체가 젠틀맨의 겉면이라면 하체는 그 속내의 음흉함을 표현하는 것일 게다.

 

노인 앞에서 하체를 흔드는 성적인 춤을 추는 건 일종의 모욕감을 안겨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인에 이어서 싸이는 여자들에게 신사의 탈을 벗어버린 속내를 보여준다. 런닝머신을 타고 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속도를 높여 넘어뜨리고, 커피를 마시는 여자에게 컵을 쳐 커피를 얼굴에 쏟게 만들며, 도서관에서 방귀를 뀌어 그걸 여자 얼굴에 냄새를 뿌리고, 앉는 여자의 의자를 빼서 넘어뜨리고 일으켜주는 척 하면서 잡아당기는 행위나, 오일을 발라주다가 수영복 끈을 잡아당기는 행위들은 신사의 틀을 벗어난 장난기 가득한 본능을 드러내는 것들이다.

 

‘젠틀맨’이라면 응당 배려해야할 노인과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모욕은 노는 아이들의 공을 빼앗아 뻥 차리고 좋아하는 장면이나, 화장실이 급해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을 놀리며 층마다 버튼을 눌러놓는 장면마저 그저 소소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싸이가 이런 파격적인 장면들과 노래가사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괜히 신사인 척 폼 잡지 말라는 얘기다. 포장마차에서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며 가래떡을 칭칭 감고 먹는 싸이나 그 앞에서 소스를 바른 어묵을 야릇하게 빠는 가인, 그리고 맥주를 흔들어 온통 주변을 젖게(?) 만드는 장면들 속에는 그래서 신사 이면에 자리한 성적 환상들을 거침없이 끄집어낸다.

 

‘젠틀맨’에 대한 반응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 것은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도발적인 풍자는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서 속이 시원해질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속이 불편해질 수도 있다. 물론 이 반응은 또한 싸이의 신곡에 대해 엄청나게 커진 기대감(‘강남스타일’ 때는 전혀 없었던!)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다. 무언가 음악적으로 새로운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감을 느꼈을 수 있다. 그것은 ‘젠틀맨’이라는 곡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젠틀맨’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싸이가 늘 해왔던 그런 곡 중 하나일 뿐이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또 스스로도 얘기했듯이 ‘강남스타일’을 뛰어넘을 수는 없는 곡이지만, 뮤직비디오가 보여주듯이 그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 파격적이고 도발적이다. ‘젠틀맨’은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시는 보기 싫은 그런 곡일 수 있지만 그것은 또한 지극히 싸이 다운 것이기도 하다. 싸이는 늘 그래왔듯이 격식을 벗어던지고 한바탕 놀아보자는 그 얘기를 하며 하체를 돌리는 시건방춤을 추고 있다. B급 풍자와 선정성이라는 아슬아슬한 줄 위에 서서.

<나 혼자 산다>, 잘 나가는 이유? 남자들에 있다

 

설 특집으로 방영된 <남자가 혼자 살 때>가 정규편성 되면서 굳이 몇 번의 제목을 고치더니 <나 혼자 산다>가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남자가 혼자 살 때>의 뉘앙스가 어딘지 소극적이고 궁상맞은 느낌을 주었던 반면, <나 혼자 산다>는 좀 더 당당하고 즐기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 모인 무지개 회원들은 구호를 굳이 이렇게 외친다. “나 혼자 산다! 자알-”

 

'나 혼자 산다'(사진출처:MBC)

사실 혼자 사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뭐 그리 재미있을까 한번쯤 의구심을 갖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금껏 그런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서(특히 예능에서)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방송이 조명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란 여행을 가거나(1박2일) 특별한 도전을 하거나(무한도전, 남자의 자격) 게임이나 스포츠를 하는(우리동네 예체능) 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방송은 이 남자들이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면들을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빠 어디가>는 대표적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아빠들은 지금껏 바쁘다는 핑계로 좀체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던 아이들과 1박2일의 추억 여행을 떠난다. 처음에는 아내 없는 아이와의 여행이 어색하기도 하고 영 적응이 안 될 정도로 낯설기도 했지만, 몇 주가 지난 지금 아빠들은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잠이 들고 스스로 척척 아이들의 아침밥을 차려낸다. 조금 투박하긴 해도 아빠와 함께 놀고 아빠가 차려주는 밥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새롭다. <아빠 어디가>의 성공은 아이들이라는 순수의 지대가 일등공신임에 분명하지만 거기 새로운 남자들의 이야기가 주는 호기심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인 셈이다. <일밤>이 남자들의 군대이야기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같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새로운 남자들의 이야기가 핵심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은 <나 혼자 산다>가 아닐까 싶다. 이 프로그램의 남자 이야기가 새로운 것은 지금껏 우리가 잘 보지 못했던 남자들의 수다와 놀이(그것도 남자들끼리 놀거나 혼자 노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노홍철과 김태원, 이성재, 서인국, 김광규, 데프콘 같은 너무나 다른 색깔을 가진 남자들이 카페 같은 공간에 둘러앉아서 신나게 수다를 떠는 모습은 그 자체로 우습다.

 

<우리 결혼했어요>에 나간다면 누구랑 나가고 싶냐는 노홍철의 질문에 김태원이 강수연을 얘기하고, 서인국이 김혜수를 떠올리며, 김광규가 김완선을 지목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건 이렇게 남자들끼리 둘러앉아서도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이야기꽃이 주는 새로움이다. 그 누가 수다를 여성들의 전유물이라고 했던가. 누군가와의 정이 그리울 수밖에 없는 이 혼자 사는 남자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였을 때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심지어 이성재처럼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자리를 뜨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재미는 이들의 놀이다. 서인국의 집을 방문한 노홍철이 그 구질구질한 방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그 방에 동화되는 즐거움을 느끼거나, 노홍철의 제안으로 한강변에서 야경을 즐기는 장면은 그것이 너무나 일상에 닿아있어 지금껏 여타의 예능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흥을 만들어낸다. 여행이나 도전 같은 특별한 계기가 아닌 다음에야,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남자와 남자가 함께 노는 장면은 그리 흔하지 않다. 기껏해야 남자들의 만남이란 술자리에서 시작해 술자리로 끝나기 일쑤가 아닌가. 그만큼 우리네 남자들은 일할 줄은 알아도 놀 줄은 잘 모른 채 살아왔던 게 사실이다.

 

김광규의 집을 방문한 김태원이 즉석에서 기타를 조율해 주고 레드 제플린의 곡을 연주하며 노는 모습이나, 데프콘의 집을 방문한 이성재가 힙합 리듬에 맞춰 어색하지만 즉석에서 랩을 하는 장면은 그래서 흥미롭다. 수다 떠는 남자들이나 저들끼리 노는 남자들의 모습은 어쩌면 과거와는 갑자기 달라진 시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자들에게는 하나의 판타지가 되기도 한다. 왜 남자들이라고 그렇게 한가롭게 수다를 떨거나 놀고 싶지 않겠는가. 다만 그렇게 사는 남자가 무능력하고 무책임하다 교육받아온 탓이 클 뿐이다.

 

<나 혼자 산다>는 그래서 독신자들(혹은 독거자들. 제목에서 남자를 뺏으니 여자도 출연이 가능해졌다)의 라이프스타일을 하나의 트렌드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지만, 그것은 또한 달라지고 있는 가족 관계 속에서 남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남편, 가장, 아빠, 회사원 같은 누군가의 관계 속에서만 늘 서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남자들이라면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보며 그 삶이 또한 유쾌하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노홍철이 말한 것처럼 자신이 스스로를 아끼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때로는 그 어떤 즐거움보다 크다는 것을 판타지처럼 발견할 수도 있을 게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승승장구, 이유 있었네

 

‘사과가 썩은 것은 사과 잘못이 아니다.’ 대부업체의 깡패로 살아가던 한태상(송승헌)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혹시 이 문구 때문이었을까. 7년 전 서미도(신세경)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헌책방 서씨글방에 빚 독촉을 하러 간 한태상이 본 그 입구에 적혀져 있던 문구. 혹시 집나간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죽어버린 아버지로 인해 빚더미에 올라앉아 결국은 그 깡패들의 일을 하며 썩은 사과의 삶을 살게 된 그에게 그 문구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던 것은 아닐까.

 

'남자가 사랑할 때'(사진출처:MBC)

한태상은 바로 그 문구로 인해 자신이 이 썩은 사과의 길로 들어서게 됐던 때의 일을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공양미 삼백 석에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마음으로 한태상을 찾아온 서미도의 “그렇게 살면 좋아?”라는 질문에 마음이 흔들렸을 지도. 공부 잘 하는 학생에서 어느 날 가족들로 인해 길바닥으로 내던져진 한태상에게, 빚만큼 자신을 사라는 서미도의 당돌한 제안이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을 게다.

 

“가끔 인생은 이런 날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이제 끝장이다 싶을 때 작은 쥐구멍 하나가 나올 수도 있어. 아직 어려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마라. 함부로 널 놓지 마.” 더 이상 동네의 구경거리가 되기 싫어 인생의 끝장을 선택한 서미도에게 던지는 한태상의 이 말은 그래서 과거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한태상과 서미도의 사랑은 이렇듯 시작부터가 다르다. 거기에는 운명적인 만남 따위는 없다. 다만 치열한 현실이 있고, 그 현실에 대한 동병상련이 있을 뿐이다. 가난했던 그들은 바로 사랑의 지고지순함을 얘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돈이 줄 수 있는 행복을 부정하지 않는다. 만일 한태상의 금전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서미도의 인생은 그것으로 끝장나지 않겠는가. 이 속물적인 사랑에 그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서미도에게 운명적인 만남이 다가온다. 그 운명적인 연인 이재희(연우진)를 만나는 곳이 해외의 휴양지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완전히 다른 공간에서의 완전히 다른 나를 경험하게 해주기 위해 한태상이 보내준 해외출장에서 서미도는 이재희를 만난다. 현실에서 한 뼘쯤 들어 올려진 공간에서야 비로소 현실을 벗어나 온전히 가슴 설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 서미도가 한태상과 이재희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어장관리가 아니라 이 두 개의 사랑이 그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남자가 사랑할 때>가 보여주는 사랑은 겉으로 보면 너무나 전형적이다. 전형적인 삼각관계에서 갈등하는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결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신세경이 연기하는 서미도라는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이 캐릭터는 <패션왕>에서 신세경이 연기했던 이가영을 닮았다. 끊임없이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고 지극히 속물적이지만 그렇다고 비난할 수도 없는 그런 캐릭터.

 

아마도 태생적으로 부자인 삶을 살게 된 인물들의 사랑이라면 이러한 사랑을 하면서도 돈과 현실에 솔직한 모습에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가 사랑할 때>에 등장하는 멜로의 장본인들은 태생적 부유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설 수 있는 풍족한 삶의 맨 밑바탕은 한태상이 떠받들고 있고 그 위에 서미도와 이재희가 서 있다. 이 현실적인 부분은 서미도 같은 캐릭터가 스스로도 말하는 ‘속물’ 근성을 오히려 공감가게 만드는 요인이다. 사랑 사랑 하지만 길바닥에 내던져져 당장 살 수가 없는 마당에 무슨 놈의 사랑인가.

 

그래서 이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현실 속에서 서미도의 속물적 사랑은 거꾸로 그녀를 그렇게 만든 사회시스템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사과가 썩은 것이 어찌 사과 잘못이겠는가. 다만 그렇다고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약간은 빗나가고 약간은 속물적일 지라도 그렇게 솔직한 사랑의 모습은 그래서 <남자가 사랑할 때>의 멜로를 남다르게 보게 만든다. 때로는 현실을 벗어난 운명 운운하는 것보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사랑이 더 마음에 닿을 때도 있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이병훈 PD에 대한 오해와 진실

 

<마의>를 끝내면서 이병훈 PD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자기 복제에 빠졌다는 얘기부터 이제 은퇴한다는 소문까지. 또 너무 착한 캐릭터에 집중하는 선악구도가 명확해서 이야기가 단순하다는 비판에서부터 역사를 너무 벗어난 상황연출로 고증이 미흡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여러 모로 <마의>는 이병훈 PD에게는 아픈 기억으로 남는 작품이 될 듯하다. 그런데 이런 논란과 소문들은 과연 진실일까. 이병훈 PD를 만나 거두절미하고 그 궁금증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마의'(사진출처:MBC)

 

◊ 이병훈 PD, 은퇴한다?

이병훈 PD의 은퇴설은 이미 <동이>가 끝났을 때에도 흘러나왔었다. 하지만 <마의>가 끝날 즈음 또 터져 나온 은퇴설은 어딘지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작품에 대한 한계를 지목했고 또 무엇보다 적지 않은 나이로 사극을 찍는 부담감을 얘기했다.

 

“체력적인 한계 때문에 더 이상 사극을 찍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들을 많이 하시는데 사실 연출은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보다 더 큰 어려움은 대본 작업이다. 기본적으로 50부 정도의 분량을 다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작업에 들어가는데, 어떤 인물을 다룰 것인지 또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늘 고민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하는 정신적인 부담감이 체력적인 부담보다 훨씬 크다는 얘기다. 사실 앞으로 새 작품을 또 할 것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다. 혁신적으로 바꾸기 전에는. 역사 속의 인물을 찾아내고 거기에 상상력을 덧붙이는 작업으로는 또 비슷한 사극이 나왔다는 비판을 받을 것 같다. 다만 예전에 황석영 원작 <장길산>을 사극으로 작업하려다 무산된 적이 있는데 그런 경우처럼 원작이 있는 작품을 사극화 하는 것은 좀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예전 방식의 반복은 하지 않으려 한다.”

 

◊ 이병훈 PD, 자기복제에 빠졌다?

이번에 가장 많이 나왔고 또 아픈 이야기가 이병훈 PD가 자기복제에 빠졌다는 것이다. RPG 게임식의 미션 구조와 성장스토리의 반복이라는 것. 실제로 <마의>에서는 백광현이라는 캐릭터의 고난 극복 성장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기도 했다.

 

“성장스토리를 담기 위해 MBC <성공시대>의 인물들을 분석하면서 성공의 과정에는 거의 비슷한 단계를 모두 거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힘겨운 환경과 과제가 있고 고난이 있으면 그 위기를 극복하며 또 조력자나 스승이 있다는 등의 대체적으로 8가지 과정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사극에서 그 성공 스토리를 담다 보니 역시 과정이나 패턴이 비슷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사실 <마의>에서도 예상은 어느 정도 했지만 동물을 찍는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말이 고개를 돌리는 장면 하나를 찍느라 3일이 걸린 적도 있다. 초반부에 말이 어린 백광현의 얼굴을 핥아주어 백광현이 살아나는 시퀀스가 있었는데 이걸 찍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전문가들도 말이 사람의 얼굴을 핥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결국 얼굴에 설탕과 이것저것을 섞은 걸 발라 말을 유도해서 겨우 찍을 수 있었다. 이 동물과 교감하는 장면이 나왔던 초반부는 확실히 차별성이 있었고 그래서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 같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계속 이걸 찍어낼 수도 없었고 또 이야기 자체가 마의에서 시작해 인의가 되는 과정으로 가기 때문에 중반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허준>이나 <대장금>을 하면서 의원 에피소드를 안 한 것이 거의 없다. 새로운 걸 내놓는다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의>에서는 본래 백광현이란 캐릭터를 의술에는 뛰어나지만 여자를 밝히는 난봉꾼으로 만들려고 했었다.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백광현 주변에 여자들(강지녕, 숙휘공주, 서은서, 소가영)을 많이 포진시킨 이유다. 하지만 서은서라는 과부와의 로맨스를 다루는 지점에서 고민이 생겼다. 이미 생명을 소중하게 다루는 백광현의 캐릭터가 생긴 연후에 윤리적인 허점을 만드는 것이 캐릭터를 손상시키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결국 이 부분을 포기하면서 백광현의 캐릭터는 착한 캐릭터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 이병훈 PD, 너무 착하다?

권선징악과 선명한 선악구도. 그리고 항상 고난에 빠져도 선한 자가 승리하는 이야기. 나아가 선정적인 장면이나 폭력적인 장면이 거의 없는 이병훈표 사극을 우리는 ‘착한 사극’이라 부른다. 하지만 자극적인 드라마들이 판을 치고 있는 요즘 착하다는 가치는 많이 평가절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극에서 어떤 인물을 다룰 것인가 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하는 건 그 인물이 조명될 만큼의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별로 의미가 없는 인물을 50부작에 가깝게 조명할 필요가 있을까. 자칫 잘못하면 미화의 덫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되도록 귀감이 될 만한 인물, 그 중에서도 역사가 잘 알려주지 않은 인물을 다루려 한다. 이를테면 허준 같은 인물은 ‘동의보감’같은 명저를 남겼지만 역사에는 별로 남아있는 게 없다. 이런 인물을 조명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다 보니 착한 사극이라는 뜻하지 않은 평가를 받은 점이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하려던 건 아니었다. 연출자가 어떻게 시청률에 민감하지 않을 수 있겠나. <허준>을 찍을 때는 허준이 본래 주먹질하는 장면이 나오고 또 예진아씨의 노출도 준비시켰었다. 그래서 예고편으로 나간 것에는 예진아씨가 속옷 차림에 비를 맞으면서 무릎 꿇고 허준에게 비는 장면이 있었다. 10회 정도에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이 장면은 결국 방영을 포기했다. <허준>이 단 7회만에 자리를 잡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니까 10회에서 자극적인 장면을 도저히 넣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건 <대장금> 때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도 이영애씨 목욕신이 예고까지 나갔었는데 결국 빠르게 자리를 잡으면서 본 방송에서는 포기하게 됐다. 이게 몇 번 반복되다 보니까 괜한 착한 이미지가 생겨서 아예 그런 장면들은 이제 못 넣게 되어버렸다. 착하다는 건 오해다. 다만 자극적인 것으로 당장의 시선을 끌려는 요즘 막장드라마들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 이병훈 PD, 자기 색깔만 고집한다?

이병훈표 사극에는 확실한 색깔이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대중들은 이병훈 PD가 자기 색깔을 고집한다고 여기는 면이 있다. 이것은 12년 간 무려 7개의 대하사극을 만들어오면서 작가가 세 명이나 바뀌었지만 그 색깔이 비슷하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진짜 그는 자기 색깔만을 고집할까.

 

“확실히 1999년 <허준>으로 다시 사극을 시작할 때 기존의 것과는 달리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사실이다. 예전 <조선왕조 오백년>을 할 때는 정통사극이라 역사적인 내용의 재현에 머물렀기 때문에 누가 하든 비슷한 연출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바꾼 것이 사극에 전혀 경험이 없는 작가를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허준>의 최완규 작가, <대장금>의 김영현 작가, <이산>, <동의>, <마의>의 김이영 작가와 작업을 하게 됐다. 작가가 바뀌면서도 색깔이 비슷하게 나온 이유는 이들 작가들이 사극 경험이 없기 때문에 거의 전적으로 내게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아예 사극은 생각하지 말고 현대극처럼 이야기와 대사를 써오라고 한 적도 있다. 그걸 사극 톤으로 바꾸는 건 일도 아니니까. 중요한 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의 사극을 만드는 것이었다. 사극의 의상도 과거에는 거의 무채색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다양한 색상의 의상으로 바꾼 것이나 또 과거에는 국악과 클래식에 머물러 있던 OST에 뉴에이지를 쓴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새로운 색깔을 만들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고집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 이병훈 PD, 역사를 버렸다?

과거 <조선왕조 오백년> 같은 정통사극을 연출했던 이병훈 PD가 최근 들어서는 역사 고증에 무관심해졌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퓨전사극 속에서도 어떤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왜곡을 극구 피하려 노력해왔던 이병훈 PD가 달라졌다는 얘기. 과연 사실일까.

 

“사실 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동이>를 할 때 그런 점 때문에 작가와 많이 부딪치기도 했다. 작가 입장에서는 극적인 장면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그 정도의 허구는 끼워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는 그래도 역사와는 완전 다른 이야기기 때문에 빼야한다고 하고... 결국 내가 졌지만 그렇게 허구로 극화된 장면에서 최고 시청률이 나왔다. 사극은 이제 확실히 역사보다는 상상력쪽으로 많이 기울어졌다. 이 흐름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부끄럽기도 하다. 어디 가서 이제 역사 고증 이야기를 꺼내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으니.

 

물론 이렇게 해서 이야기가 다채로워진 건 있다. 하지만 그래도 본래 사극이 갖고 있던 독특한 색깔이 사라지는 건 안타깝다. 대사에 있어서도 고어체가 갖고 있는 문화적이고 문학적인 예법이 있다. 사극의 대사는 그 시대의 고유한 맛과 아름다움이 있는데 그것을 마음대로 깨는 것은 문제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 절충안으로 생각하는 것은 궁중 같은 곳에서는 고어체를 주로 사용하고 민초들이 사는 사가에서는 필요하다면 현대어를 쓰는 식이다. 역사를 벗어난 상상력을 대중들이 더 요구하는 면을 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 자체에 대한 고민을 버린 것은 아니다.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후기>

무려 12년 간 7개의 사극이다. 그것도 최소 50부작에서 길게는 77부작까지. 거의 숨 쉴 틈 없이 사극을 만들어온 이병훈 PD에 생기는 피로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네 사극의 한 분기점으로서 이병훈 PD가 확실한 획을 그어놓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가 없었다면 현재의 사극이 어떠했을까를 떠올려보라. 아마도 여전히 역사의 틀에 붙박혀 무채색의 정통사극을 무한반복하고 있었을 지도.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이병훈 PD의 새로운 작품, 그가 말하는 ‘획기적인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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