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들’, 진실과 설정 사이를 걸어가는 아찔한 즐거움

이재용 감독의 새 영화 ‘여배우들’에서 고현정은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무릎팍 도사’를 녹화하는데 비몽사몽 간에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털어놨다는 이야기. 그녀의 일상이 인서트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도 막 깨어 피곤한 얼굴로 ‘무릎팍 도사’를 보며 깔깔 웃는 모습이 나온다. 그녀의 그 대사는 바로 그녀가 진짜로 출연했던 ‘무릎팍 도사’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실제로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이른바 코현정(연실 코를 푸는 고현정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닉네임)이라는 닉네임을 얻을 정도로 거침없이 솔직하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

영화 ‘여배우들’이 상기시키는 ‘무릎팍 도사’의 이미지는 고현정에서 윤여정으로 이어진다. 최근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무릎팍 도사를 무릎 꿇리는 입담을 보여준 그녀는 자신의 젊었던 시절을 얘기하면서 ‘장희빈’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당대에는 최고의 여배우로서 알려진 그녀였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자신을 잘 모른다며 “장희빈에 출연했었다고 하니까, 그런 장희빈에서 역할이 뭐였냐고 묻는 후배 연예인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이것이 영화 ‘여배우들’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김옥빈은 ‘장희빈’ 얘기를 꺼낸 윤여정에게 “장희빈에서 역할이 뭐였냐”고 묻는다.

즉 이 윤여정의 ‘무릎팍 도사’에서의 진술과 ‘여배우들’ 속에서의 대사는 기묘한 리얼리티를 구성한다. 즉 리얼 토크쇼를 주창하는 ‘무릎팍 도사’에서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을 드러낼 때, ‘여배우들’이라는 영화 속 상황 역시 짜여진 대본의 이야기가 아니라 리얼 상황이라는 것을 말해주게 된다. 실제로 ‘여배우들’은 물론 영화적 구성이 되어 있지만, 상황만 던져주고 대본은 따로 없는 말 그대로의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 속에서의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는 설정이겠지만 분명 진실된 영역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윤여정이 해준 일련의 ‘담배 에피소드’가 이 영화와 만나는 지점이다. 윤여정은 ‘무릎팍 도사’에서 두 가지의 ‘담배 에피소드’를 얘기했는데, 그하나는 “‘가루지기’에 출연하게 된 이유가 감독이 자신의 담배 피는 손이 그토록 섹시할 수 없었다는 말에 넘어가서”라는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한 선배 앞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함께 피워주면 고맙다고 한 말에 자신이 감복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는 ‘여배우들’ 속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 윤여정은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워 무는데, 카메라는 의식적으로 그녀의 담배를 쥔 손가락을 분위기 있게(?) 잡아낸다. 또 김옥빈과 함께 담배를 태우는 장면을 통해 ‘무릎팍 도사’에서의 세대를 넘는 훈훈한 이야기를 실제로 보여준다.

한편 이미숙이 영화 속에서 한 “100살이 되어도 여자로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는 지난 2월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했던 그녀의 진술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이혼한 그녀에게 “현재 교제 중인 남자친구는 없냐”는 질문에 그녀는 “아직도 자신 뒤에 뭔가 숨겨둔 남자친구가 있을 것 같아 보이는 건 아직도 나를 여자로 본다는 얘기”라며 기뻐했던 적이 있다. ‘무릎팍 도사’에서 보여준 진솔한 모습과 영화 ‘여배우들’의 솔직한 모습이 겹쳐지는 부분이다. 이러한 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최지우에게 가장 라이벌 의식이 느껴지는 배우가 누구냐는 질문에 중국시장을 가진 이영애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또 그런 이야기를 하는 최지우에게 윤여정이 “지우는 중국시장을 지키고 나는 재래시장을 지키마”하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아찔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거기에는 진실과 설정 사이를 걸어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짜릿함이 느껴진다.

‘무릎팍 도사’가 그 한정된 세트 안에서 그토록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그 속으로 들어오는 인물들이 갖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화 ‘여배우들’은 화보 촬영장이라는 좁은 공간에서의 몇 시간 동안이라는 시공간의 한정에도 불구하고, 실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그 형식 자체가 ‘무릎팍 도사’를 닮아있다. 여배우들 간에 벌어지는 팽팽한 대결구도, 듣는 이를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촌철살인의 이야기들, 여배우 자체가 갖고 있는 독특한 아우라, 그 아우라를 깨고 나오는 소박한 모습들, 그리고 여배우라는 삶이 주는 공감의 눈물까지, 이 영화는 한 편의 잘 만든 ‘무릎팍 도사’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여배우라는 특수한 위치의 존재들과 우리 같은 서민들 사이의 경계를 지워버리고 한 인간으로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지점에서 ‘무릎팍 도사’를 닮은 ‘여배우들’만의 독특한 매력이 생겨난다. 이들과 함께 하는 백여 분이 이질적인 존재들을 엿보는 판타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에 대한 공감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가수와 예능의 밀월관계, 그 시너지 효과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 무대 위에서 부채로 목 언저리를 톡톡 두드리며 'Sign'을 부를 때, 우리는 두 예능 프로그램을 떠올린다. 그 하나는 가인이 조권과 부부로 출연하는 ‘우리 결혼했어요’이고 또 하나는 나르샤가 유치리라는 시골에서 다른 아이돌들과 정착해가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청춘불패’다. 만일 걸 그룹이나 아이돌 혹은 아예 가요에 대해 관심이 없었지만 예능에 관심이 있던 분들이라면 이즈음에서 다시 한 번 무대를 올려다봤을 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단순히 노래 부르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 있는 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이 전해주는 많은 스토리들을 통해서 충분히 그 캐릭터가 그려진 존재들이 서 있기 때문이다. 가요 위에 덧붙여지는 이러한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은 작금의 가요계에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해가고 있다.

‘소녀시대’의 유리를 우리는 MBC ‘쇼 음악중심’의 MC로 만나기도 하고, ‘청춘불패’의 국민며느리로 만나기도 한다. 물론 메인 MC는 아니지만 ‘스타킹’ 같은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로서 그녀를 접하기도 한다. 유리는 ‘소녀시대’라는 걸 그룹 속에서는 그저 깜찍한 얼굴로 노래하는 인형 같은 가수이지만 예능 프로그램 속으로 들어오면 때론 풋풋하고 때론 엉뚱하며 때론 털털한 면까지 있는 소녀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 이것은 ‘1박2일’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가수로서도 드라마로서도 또 MC로서도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승기도 마찬가지다. 그는 무대 위의 황제라는 자리에서는 결코 갖지 못할 허당이라는 인간적인 캐릭터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비로소 갖게 되었다. 이 한 사람이 품을 수 있는 양극단의 이미지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가 뛰어들 수 있는 영역은 그만큼 넓어지게 된다. 이승기의 승승장구는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통해 얻어진 이런 폭넓은 이미지에서 비롯된다.

어딘지 까칠하고 반항적으로만 보였던 이른바 힙합 전사들이 올해 부드러운 이미지로 대중들 앞에 성큼 다가설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예능 프로그램의 공이다. 우리네 힙합의 대부라고 일컬어지는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JK는 ‘무한도전’에서 유재석과 함께 출연하면서 예능에 발을 디뎠다. 그 후로 그는 몇몇 토크쇼들 속에서 그간 잘 드러나지 않았던 특유의 유머감각을 보여주면서 부드러운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그의 새 앨범이 대성공을 거둔 것은 물론 음악적인 완성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간 갖지 못했던 이런 대중 친화적인 이미지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갖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리쌍의 길 역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새롭게 보여주면서 대중들 앞에 서게 되었다. ‘무한도전’의 고정 멤버로 투입되어 강하면서도 털털한 면모를 보여주었고, ‘놀러와’의 골방 브라더스로 이하늘과 함께 아낌없이 망가져 주었다. 올해 리쌍이 낸 앨범의 성공 역시 이러한 길의 이미지 변신이 주는 효과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이하늘은 골방 브라더스로 ‘놀러와’에 자리 잡았고, 김창렬과 함께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늙은 사자로 활약하면서 그 입지를 넓혔다. DJ DOC는 지금 이 여세를 몰아 신보 공개를 앞두고 있어 많은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물론 이러한 가수들의 예능 출연과 그 효과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그것은 예능 프로그램이 가진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해왔다. 하지만 그 양상은 사뭇 다르다. 과거 가수들의 예능 출연은 신보 홍보를 목적으로 한 일회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예능 출연 자체가 목적이 될 만큼 가수들이 해야 할 하나의 분야로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의 캐릭터를 구축해주는 예능의 이야기가 노래만큼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무대는 하나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공간이 되고, 예능은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이 되어 서로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무대 위에서 건방진 포즈로 멋지게 춤을 추는 유키스의 동호가 ‘천하무적 야구단’에서는 이하늘에게 형 형 하면서 막내처럼 따르는 모습은 카리스마와 인간적인 면모 둘 다를 갖게 해주면서 서로의 분야에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예능 속에서는 그 신비함이 무너지는 재미를 통해 인간적인 면모가 더욱 부각되고, 무대 위에서는 예능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카리스마를 통해 오히려 신비해진다. 이것은 신비주의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연예인들이 구사하는 새로운 다중 이미지 전략이다. 이제 한 사람이 한 가지 이미지만을 보여주는 것은 전혀 리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마치 드라마 속 평면적 인물들이 점점 재미없어지고, 이제는 변화무쌍한 입체적 인물들이 그 리얼함 때문에 각광받는 것처럼, 여러 상황에 따른 다양한 이미지는 연예인들이 갖춰야할 새로운 덕목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는 한 가지 얼굴을 고수하는 일관성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다양한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여유와 솔직함을 요구하고 있다.

청춘과 아날로그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어쩜 저리도 풋풋할까. 나이 들어가면서 정반대로 생겨나는 청춘에 대한 갈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기 마련인 욕망일까. 올 한 해 걸 그룹 열풍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 존재하는 이 욕망을 발견하게 된다. 젊은 세대의 열광은 물론이고, 중장년층의 시선까지 잡아 끈, 걸 그룹들의 약진에는 불황에 지치고 속도에 지친 현대인들의 복고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청춘에 대한 향수가 깃들어 있다. '청춘불패'는 바로 그 아날로그적 감성이 주는 매력을 걸 그룹의 시골 마을 정착기라는 이야기를 통해 전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걸 그룹 아이돌들이 유치리라는 시골 마을에 정착해가는 과정을 담은 '청춘불패'의 엔딩은 인상적이다. 맥 플라이의 'All about you'를 배경음악을 깔고 하루 동안 아이돌들이 해왔던 일들을 포착한 스틸 컷이 정지화면으로 하나하나 보여지며 그 위로 인상적인 자막이 깔린다. 이 짧은 엔딩이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것은 시간에 대한 아련한 향수다. 순간적으로 지나간 시간을 멈춰 세워둔 그 스틸 컷들은 마치 추억처럼 우리의 기억 언저리에 들어와 그 날 있었던 아이돌들과 유치리 주민들과의 따뜻했던 시간들을 하나하나 다시 끄집어낸다.

이 엔딩이 하루의 추억을 반추하듯이, 이 프로그램은 한 세대를 살아온 우리들의 젊은 날들을 되짚어가는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아이돌들은 도시의 화려함을 상징하는 현대인들을 대변하면서도 아련한 젊음의 청춘을 간직한 존재로서 이 아날로그적 감성을 욕망하는 도시인들을 매료시킨다. 그들과 함께 떠나는 유치리 마을에서의 하루란, 따끈따끈한 온돌 위에 앉아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던 어린 시절이고, 마당 한 가운데서 연중행사처럼 벌어졌던 김장 담그기에 대한 기억이며, 메주를 정성스레 만들어 장을 준비하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다.

걸 그룹 아이돌들은 그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 여행의 안내자들이다. 그들이 유치리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재롱을 피우고, 혼자 살아가는 할머니의 집을 방문해 따뜻한 정을 나누고, 함께 따뜻한 한 끼를 준비하는 그 장면들은, 엄청난 속도감으로 앞으로만 달려온 자들을 뒤돌아보게 만들고 마치 부채처럼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정이 묻어난다. 청춘이라는 아날로그적 시간을 가진 아이돌과, 유치리라는 아날로그의 시간에 멈춰있는 공간의 만남은 이토록 절묘하다.

특별히 웃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보는 이들이 기꺼이 이 풋풋한 아이돌들의 좌충우돌 시골 정착기에 웃어주게 되는 것은 이 깊은 아날로그적 감성에 대한 공감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존재였던 아이돌들이 유치리 주민들과 마치 친척처럼 점점 가까워지는 과정은 이 독특한 예능 프로그램만이 갖는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아이돌들의 시골 적응이라는 키워드 속에는 웃음이 묻어나지만, 그것보다 앞서는 것은 당위처럼 마음을 흡족하게 만드는 아이돌과 시골주민들 간의 정이다.

여행자와 정착자의 시선이 다른 것처럼, '청춘불패'는 '1박2일'과도 다르고 '패밀리가 떴다'와도 다르다. 노마드적 감성이 여행 버라이어티가 가진 떠도는 이들의 왁자한 해프닝들을 담아낸다면, 한 곳에 정착해 그간 잊고 지내왔던 인간과 인간 사이의 끈을 하나씩 연결해가는 '청춘불패'의 감성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다. 그리고 그 아날로그의 매력은 그 감성을 연결해주는 청춘들(아이돌들)을 통해 고정된 순간의 스틸 컷처럼 기억 속에 각인된다. 청춘은 그렇게 누구에게나 패하지 않는 승리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청춘불패'가 우리를 매료시키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드라마가 그리는 자매들, 그 관계가 불편한 이유

한때 '연애시대'에서 남녀의 사랑보다 진한 자매애를 보여주면서 많은 이들을 흐뭇하게 해주었던 은호(손예진)와 지호(이하나)의 이야기는 이제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나. 드라마 세상은 온통 자매들의 수난시대로 그려지고 있다. 한 남자를 두고 연적이 되어 서로 싸우는 볼썽사나운 자매들의 모습을 우리는 이제 드라마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자매들을 이처럼 불편한 관계 속으로 밀어 넣었을까.

'천사의 유혹'의 주아란(이소연)과 윤재희(홍수현)는 자매지간이지만 그 사실을 모른 채 서로가 서로에게 복수를 하는 관계가 되어있다. 그 중심에는 신현우(한상진)에서 얼굴을 바꾼 안재성(배수빈)이 자리하고 있다. 주아란에 의해 죽음에 몰린 신현우를 살려낸 윤재희는 안재성으로 모습을 바꾼 그의 복수를 돕지만, 안재성은 복수를 위해 다시 주아란과 가까운 관계를 연출한다. 이 자매들은 모두 애타게 어린 시절 헤어진 언니와 동생을 찾고 있지만, 이제 모든 것을 잃게 된 주아란은 동생인줄 모르는 윤재희에게 어떤 짓을 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천만번 사랑해'의 고은님(이수경)과 오난정(박수진)은 부모들의 재혼으로 맺어진 자매지간이다. 외국생활에서 알게 된 백강호(정겨운)를 오난정이 혼자 짝사랑하지만, 백강호는 고은님을 사랑하게 되고, 결국 결혼에까지 골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연출된 오난정이 고은님에게 "감히 내 남자를 뺐어?"하고 드잡이하는 장면은 많은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대 웃어요'는 요즘 보기 드문 착한 드라마지만, 여기에도 불편한 자매들의 한 남자를 둔 사랑이야기는 등장한다. 강현수(정경호)는 서정경(최정윤)을 대학시절부터 쭉 짝사랑해왔지만 결국 퇴짜를 맞게 되는데, 하필이면 그녀의 동생인 서정인(이민정)과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문제는 강현수와 서정인이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정경의 마음 또한 흔들린다는 것. 그녀는 현수에게 "다시 날 사랑해주면 안되니?"하고 묻는다. 아무리 한 남자에게 사랑의 감정이 생겼다고 해도, 이미 자기 동생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마당에 이런 행동을 하는 언니라는 존재는 그다지 쉽게 공감가지 않는다.

'다함께 차차차'에서는 친자매는 아니지만 같은 집에서 사는 사촌 간에 동생이 언니의 남자친구를 빼앗는 자극적인 내용이 방영되었다. 수현(이청하)이 사귀던 남자 이한(이중문)을 사촌동생인 진경(박한별)이 빼앗아 결혼하는 것. 애초에 착한 가족드라마의 뉘앙스를 풍겼던 이 드라마는 그러나 이 이해할 수 없는 관계설정을 통해 어떤 논란의 징조를 이미 보였던 것이 틀림없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질질 끌던 이 드라마는 결국 기억이 돌아온 강신욱(홍요섭)을 통해 그 결혼의 여부를 다시 물고 늘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드라마 속 자매들은 이처럼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으르렁대게 된 것일까. 그것은 대본 작업에 있어서 지나치게 편의적이면서도 자극적인 관계 설정을 한 탓에 나타나는 결과이다. 사실 현실에서 한 남자를 자매가 동시에 사랑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물론 확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이것이 드라마 속의 공식처럼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딘지 잘못된 것 같다. 이러한 불편한 관계들은 그것이 주는 어떠한 인간 조건의 문제를 이들 드라마들이 건드릴 만큼 심도가 깊지 않고 진지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고전이 다루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저 현실성 없는 클리쉐의 반복일 뿐이다.

자매들 간의 남자 쟁탈전이 벌어지게 된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이 관계를 마치 공식처럼 갈등 요소로 끼워 넣은 탓에 생긴 것이다. 그다지 공감가지도 않고, 보기 좋은 장면도 아니며, 이해할 수도 없는 이 한 남자를 사랑하는 자매들의 이야기는 그저 극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자극적인 장치로 활용된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드라마들 역시 어떤 수위조절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런 근친 사이에 벌어지는 지나친 사랑 관계의 압축은 가족드라마가 지켜야할 윤리적인 선을 넘어선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혹 자매들이 서로를 위해주고 아껴주는 정상적인 이야기로는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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