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문제 지적만큼 중요한 솔루션 제시

밤 7시 딸의 취침준비시간. 남편 고창환은 딸 고하나의 방학생활 숙제를 도와준다. 그런데 갑자기 걸려온 시누이로부터의 전화. 고창환은 활짝 웃으며 통화하다 딸 고하나를 바꿔준다. 반갑게 고모를 부르는 하나의 목소리. “집에 오면 저랑 같이 자요.”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시누이가 집에 온다는 그 말에 아내 시즈카는 화들짝 놀란다. 

시즈카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자 남편이 일종의 해명을 한다. “친구 만나러 왔다가 늦을 거 같아서, 운전하기 좀 위험해서, 자고 가도 되냐고 해서. 상관없지 않나?” 딸 하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척 넘어가려는 그 말에 하나가 “괜찮아. 그래서 내가 괜찮다고 말했어”라고 답을 해준다. 하지만 시즈카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몇 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묻는 시즈카에게 “늦으면 자고 있다가” 일어나면 되지 않냐고 고창환은 속편한 말을 한다.

시즈카가 불편해 하자 고창환은 마치 그게 정답이나 되는 듯, “가족이잖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즈카는 “가족이라도 달라”라며 단호한 자신의 입장을 말한다. “여기 누구 집인데? 오빠만 살아?” 시즈카의 그 말에 남편 고창환은 “다음에는 내가 물어볼게”라며 아내의 불편한 마음을 다독이려 한다. 분위기가 싸해지자 딸 하나가 그걸 풀기 위해 하는 말이 흥미롭다. “아빠는 고모가 와도 되니까 그런거지? 그런데 엄마한테 왜 안 물어봤어?” 그러자 아빠가 답한다. “그래서 이제부터 아빠가 물어본다고 했어. 그럼 됐지?” 그런 하나가 예쁘게 느껴졌던 지 시즈카는 하나를 꼭 안아주며 웃는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보여준 이 장면은 굉장히 짧지만, 거기에 어쩌면 지금 이 프로그램이 처한 문제의 해법이 담겨 있다고 보인다. 방송이 나올 때마다 시청자들이 공분을 일으킬 만큼 ‘이상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안들은 짜증을 유발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살았던 일상인지도 모르지만, 관찰카메라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문제투성이였다는 걸 드러내면서 나타난 반응들이다.

그 파장이 워낙 커서인지 여기 출연했던 김재욱-박세미 부부는 프로그램을 하차하며 그 불편한 심경을 SNS에 올렸다. 일정한 ‘콘셉트’가 있었고, 그래서 설정과 ‘연기’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런 ‘폭로’가 있었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것이 제작진의 잘못도 존재하지만 또한 온전히 편집 때문인가를 지적했다. 이런 문제들은 왜 발생한 것일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그 이상한 시댁의 풍경을 보여준다는 점에 의미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그것이 자극적인 반응들을 만들어 내다보니 문제의 장면들만 집중해서 보여주는 편집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새롭게 등장한 최현준-신소이 부부 이야기에서도 며느리에게 “야”라고 부르고 자기 아들인 현준을 우선적으로 챙기라는 ‘돌직구’ 시어머니가 등장했다. 그 시어머니가 “해달라고 하기 이전에 남편을 위주로 하고!”라고 말할 때는 자막에 붉은 색으로 ‘남편을 위주’를 강조하고 불꽃까지 더해 붙였다. 일종의 강조점을 찍은 것이다. 

물론 프로그램 기획의도가 그런 이상한 나라를 조명해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니 그런 문제들을 끄집어내는 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문제만이 아니라 해법 또한 필요하다는 점이다. 과연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지적과 분노 이상의 어떤 대안이 될 수 있는 해법을 시도해 보여준 적이 있을까. 

이러한 가족 내의 갈등을 풀어내기 위해 만들어지는 관찰카메라를 활용한 솔루션 프로그램에는 적어도 그 상황을 직접 당사자들이 보게 하고, 거기 비춰진 자신들의 모습과 상대방의 입장을 확인함으로써 어떤 해결방식을 제안하곤 한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는 그런 해결 방식이나 과정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시즈카의 가족이 보여준 짤막한 장면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시즈카는 남편이 ‘가족’이라면 뭐든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그 대목에 단호하게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곳이 자신들만의 공간이고 그래서 남편 혼자 사는 공간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했다. 시댁 식구들까지 포함해 그 누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공간으로서 그 곳은 경계가 있다는 걸 시즈카는 확인시켜준 것이다. 

최근 들어 성 평등 문화에서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이른바 ‘경계 존중 교육’이 절실하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내 몸이 있고, 내 공간이 있고, 나만의 삶의 경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넘어올 때는 그래서 사전에 양해를 통한 허락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 경계는 누구에게나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우리네 문화에서 경계는 ‘가족주의’라는 틀 속에서 상당 부분 희석되어 버렸다. 심지어 “우리가 남이냐”라는 말은 가족의 틀을 벗어나 사회에서조차 친분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고, 그것은 경계를 훌쩍 넘어 마구 침범하는 문화를 당연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댁이 이상한 나라가 되는 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결혼을 했으니 ‘우리 가족’이라는 명분하에 마구 선을 넘는 행동과 말이 그렇다. 

시즈카의 단호한 대처가 의미 있게 다가온 건 딸 하나가 보이는 반응에서도 드러난다. 이런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계를 훅 들어오는 행위들은 그걸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성장해서도 같은 행동을 하게 만든다. 시즈카의 단호한 대처는 그래서 딸 하나에 대한 살아있는 훈육처럼 보인다. 딸이 아빠에게 “엄마에게 왜 안 물어봤어?”하고 묻는 대목은 그 역시 가족의 경계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니 말이다.

시즈카가 스스로 보여준 것처럼,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잘못된 풍경을 끄집어내고 지적하는 차원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나아가 거기서 어떤 해법들을 찾을 것인가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불편하고 자극적인 상황의 나열로 인해 ‘분노’만을 일으키고, 결국은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현실만을 그려낼 위험성이 있다.(사진:MBC)

‘라이프’, 선악 아닌 영향과 변화로 보는 인간탐구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에서 구승효(조승우) 사장에게 이노을(원진아)은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던져 놓는다. 스위스의 어느 마을에 핵폐기장 건설 투표를 했는데 처음에는 60%가 찬성했다는 것. 그런데 그 마을에 핵폐기장을 건설하면 돈을 주겠다는 정부 방침에 재투표를 했다는 것이다. 구승효 사장은 그 재투표의 결과가 궁금하다. 

결과는 찬성 25%. 어째서 돈을 준다는데도 찬성률이 뚝 떨어졌을까를 궁금해하는 구승효에게 이노을은 문득 ‘중독 같은 성과급제’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성과급제는 마약 같아요. 중독성이 있어요. 인센티브가 동기부여가 되는 직종들도 물론 있죠. 근데 어떤 일에선 그 업종 사람들을 파괴시켜요. 자발적으로 나서야 하는 일들, 책임의식, 보람이 중요한 일들, 우리 일요. 스위스 마을 사람들은 그걸 따졌던 거예요. 맞아. 어딘가 짓긴 지어야 돼. 우리가 책임지자. 그게 옳은 일이야. 근데 거기 돈이 들어와 버리니까 생각하는 회로 자체가 바뀌어버렸어요. 뭐가 옳은 거지에서 뭐가 나한테 이득이지? 이걸로. 일단 그렇게 돼버리면 왜 그 위험한 걸 내 앞마당에? 이게 결론이죠. 구 사장님. 저 많이 봤어요. 그 이전으로 못 돌아가는 사람들. 움직일 때마다 돈이 생기는 성과급제에 중독돼서, 책임지자 이게 옳아 그게 아예 없어져 버린 사람들. 전 구승효 사장님이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들과 행복하게 일하셨으면 좋겠어요.”

이노을의 이 이야기는 구승효의 마음을 살짝 움직인다. 병원도 일반 기업과 다를 바 없다며 경영이라는 잣대로 판단하고 이익을 내는데 집중해온 구승효. 그는 문득 이노을이 자신을 데리고 갔던 소아병동의 아기들을 떠올린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손을 꼼지락대던 그 작은 생명들. 그 생명들을 ‘서비스 산업’이라 치부하며 수익을 내자고 외치는 화정그룹 조남형(정문성) 회장의 목소리가 오버랩 된다. 구승효는 변화하고 있다. 

구승효의 변화를 보여주는 건 그가 데려온 유기견 저녁이의 이야기에서도 발견된다. 동물병원이 비보험이라 수익성이 높다는 판단 하에 유기견을 위한 봉사활동에 의도적으로 나갔던 구승효지만, 거기서 만난 유기견을 외면하지 못하고 집으로 데려와 ‘저녁이’라고 이름 붙였던 그였다. 노을과 저녁은 그렇게 냉철하기만 할 것 같던 구승효 사장의 마음을 움직인다. 

흥미로운 건 구승효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예진우(이동욱)의 변화다. 예진우는 눈앞의 생명을 외면하지 못하는 차원을 넘어서 집착까지 보이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환자의 편에 선 진정한 의사처럼 보이지만, 그 병적인 집착은 평범한 선을 넘어서고 있다. 그의 눈앞에 자꾸만 나타나는 동생 예선우(이규형)와 죽은 이보훈(천호진) 원장의 환영은 그의 비정상적인 집착을 잘 말해준다. 

그래서 오로지 환자만을 쳐다보며 살아가던 그가, 구승효의 등장과 이보훈 원장의 죽음을 계기로 병원의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한다. 그가 주경문(유재명)에게 원장 선거에 나가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에게도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원장 선거에서 주경문 대신 오세화(문소리)가 당선되지만, 그런 변화는 예진우나 주경문 모두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구승효와 예진우의 변화가 주목되는 건 <라이프>라는 드라마가 보고 있는 인간관이 특별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라이프>는 인간을 선악의 개념으로 바라보지 않고 서로 다른 입장들이 부딪치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변화하는 그런 인간관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것은 <라이프>가 애초에 기획의도에서 예고했던 것처럼, 병원이라는 공간과 그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우리 몸에서 벌어지는 항원-항체 반응처럼 담겠다는 그 이야기 구조에 합당한 인간관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이 서로가 서로에게 주고받는 변화들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하나의 기업화되어가고 있는 병원이기에 경영이 필요해진 게 현실이지만, 책임과 보람 같은 것들이 중요한 이 특수한 공간이기에 그 변화에도 어떤 합의점이 있어야 한다는 게 <라이프>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사진:JTBC)

‘식샤3’가 윤두준과 백진희를 다루는 방식 왜 다를까

tvN 월화드라마 <식샤를 합시다3>에서 구대영(윤두준)은 보험설계사다. 그가 가진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은 먹방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설정이다. 영업을 하는 분들만큼 음식점을 잘 아는 분들도 없어서다. 결국 “식사 한 번” 하는 일이 중요한 영업의 한 부분이 되어 있어, 그 직업을 가진 구대영이라는 캐릭터의 먹방이 그저 먹는 장면을 나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구대영은 세컨드 잡도 갖고 있다. 한때 먹는 일에 그다지 소질(?)이 없었지만 이지우(백진희)를 만나면서 배우게 됐던 그 식사의 노하우들이 쌓였고, 결국 한 업체로부터 푸드 크리에이터 제안을 받았다. 그는 혼밥을 하는 1인 가구들이 집에서 간편하게 음식을 해먹을 수 있게 맛집을 연계하는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회사가 이 사업을 접게 되고, 그가 다니는 보험사에서 그에게 지점장 제안이 오면서 그는 갈등하게 된다. 결국 보험사를 나오는 선택을 하는 구대영은 향후 ‘식샤님’으로의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식샤를 합시다3>에서 구대영만큼 중요한 인물인 이지우(백진희)는 초반에만 잠깐 그가 간호사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왔을 뿐, 거의 직업적인 이야기가 빠져 있어서다. 심지어 그 초반을 보지 못했던 시청자들은 이지우의 직업이 무엇인지조차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가 이 드라마에서 맡은 역할은 청춘시절을 오가며 먹방을 보여주는 것과 구대영과의 멜로 그리고 동생 이서연(이주우)과 계속 얽히는 악연, 인지장애를 겪는 엄마 강미숙(이지현)과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전부다. 그에게서 직업적 부분들은 놀라울 정도로 삭제되어 있다. 

그것이 드라마가 다루려는 부분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게다. 하지만 구대영의 직업이 그토록 중요하게 다뤄지는 데 비해, 한 회에 거의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이지우의 직업은 어딘가 균형이 깨져버린 느낌이다. 이 드라마는 과거 그토록 음식 먹는 일에 노하우를 쌓고, 또 그걸 즐겼던 이지우가 직장생활 10년 간 1인 가구로 살아가며 입맛을 잃어버렸고, 다시 만난 구대영을 통해 그 입맛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이지우의 현실적인 삶이 중요하지 않을까. 물론 인지장애를 겪는 엄마의 이야기와 그에 빌붙어 살아가는 이서연과의 아픈 관계가 등장하지만 일터에서 겪는 현실적인 삶의 이야기는 왜 빠져 있는 걸까.

이 점은 이 드라마가 부지불식간에 갖고 있는 남녀를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번 시즌에서 특히 먹방은 물론 멜로 구도에서도 그만한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이지우와 이서연은 모두 직업적인 부분이 삭제되어 있다. 반면 구대영이나 선우선(안우연)은 일과 사랑 그 양면을 드러내며 드라마를 전면에서 이끌어간다. 

이지우와 이서연의 직업적 부분이 삭제되면서 생겨나는 건, 이 인물들이 드러내는 상처나 아픔 같은 것들이 그저 연인, 가족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로만 그려진다는 점이다. 이건 인물을 단순하게 만들어버린다. 이지우가 먹방과 사랑에만 목매는 존재로 느껴지며 어떤 면에서는 너무 수동적이라 매력이 잘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째서 구대영과 이지우를 다루는 방식이 이토록 다른 걸까. 이건 자칫 남녀 간의 성차를 당연시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사진:tvN)

‘라이프’에서 멜로 코드는 어딘지 뜬금없다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도 어쩔 수 없이 멜로의 달달한 조미료가 필요했었나. 지난 회 이노을(원진아)에게 자신의 연정을 고백하는 예선우(이규형)의 이야기가 슬쩍 등장하더니, 이제는 예진우(이동욱)와 최서현(최유화)의 관계가 심상찮다. 최서현은 새글21 기자로서 영리를 추구하기 시작한 상국대학병원을 취재하다 예진우를 만나게 됐지만, 그를 바라보는 예진우의 시선은 설렘이 가득하다. 

일 때문에 약속을 깜박한 예진우에게 “그러니 여자친구에게 잘 하라”고 최서현이 말하자, 대뜸 “여자친구 없다”며 반색하는 모습이 그렇다. 이 정도의 멜로 코드는 사실 여타의 드라마라면 그다지 주목되지도 않았을 내용들이다. 하지만 워낙 밀도 있게 병원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욕망을 들여다보던 드라마여서인지 이 작은 멜로 코드도 어딘가 긴장감을 흩트리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도 관계의 구도 안에 멜로의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예진우와 이노을 그리고 구승효(조승우) 사장 사이의 관계가 그렇다. 예진우와 이노을은 친구사이로 스스럼없이 지내는 관계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역시 구승효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가 그 단단한 경영적인 마인드를 부드럽게 건드리는 이노을의 속내도 언제 어떻게 변화될지 알 수 없다. 구도로만 보면 이노을을 좋아하는 예선우와 최서현에 호감을 느끼는 예진우, 그리고 예선우와 구승효 그리고 예진우 사이에 서 있는 이노을의 관계는 멜로적 변화가 언제든 가능하다. 

그런데 아마도 이런 멜로는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원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숨 쉴 틈 없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던 이야기가 멜로의 틀로 슬쩍 들어오면서 긴장이 풀리고 너무 평이해지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멜로 코드가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애초에 <라이프>가 그려나가려던 병원 내의 욕망과 욕망이 부딪치며 일으키는 항원-항체 반응의 예측 불가능한 전개에는 다소 뜬금없는 면이 있다. 

살짝 흩어지려는 긴장감을 다시 만들어낸 건 상국대학병원의 원장 투표를 두고 벌어지는 여러 인물들 간의 대결구도 덕분이다. 자신이 원장이 될 거라 자신했던 김태상(문성근) 부원장은 심평원 심사에 의해 과잉진료는 물론이고 비자격자에게 환자의 수술을 시킨 일이 드러나면서 추락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를 따르는 듯 했던 이상엽(엄효섭) 암센터장과 오세화(문소리) 신경외과 센터장이 원장 자리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며 출마한다. 이들은 병원 복도에서 서로의 허물을 들춰내며 한바탕 말싸움을 벌인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여긴 예진우가 주경문(유재명) 흉부외과 센터장을 찾아가 원장 출마에 나서달라고 요구하고 그렇게 시작된 투표에서 오세화와 주경문이 동표를 얻어 재투표에 들어가게 된다. 그 순간 구승효는 투표장을 찾아 주경문에게 악수를 건네며 은근슬쩍 그가 상국대병원을 그만 두려 했다는 사실을 흘린다. 말 한 마디를 던진 것이지만, 그 한 마디는 주경문에게 제대로 물을 먹인 결과가 된다. 

<라이프>가 가진 드라마적 묘미는 바로 이런 병원 내에서 벌어지는 권력 구도와 팽팽한 대결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 대결이 사실상 우리네 사회의 축소판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그것은 재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함의까지도 담겨진다. 그러니 괜스레 멜로 코드 같은 곁길에 눈길을 주기 보다는 꿋꿋이 이 가려던 길을 가는 드라마가 되어야 더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라이프>의 멜로 코드는 어딘지 뜬금없게 느껴진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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