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 캐릭터에서 개성파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이광수

 

요즘 이광수가 달리 보인다. <런닝맨>을 통해 대중들과 익숙해진 캐릭터다. 베트남 등지에서 갑자기 확인한 인기에 아시아 프린스라는 닉네임이 붙기도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광수는 거기에 대해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예능으로 먼저 친근하게 다가왔지만 그의 발길은 늘 배우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괜찮아 사랑이야(사진출처:SBS)'

<착한 남자>에 출연했을 때도 이광수를 만나면 <런닝맨> 이야기를 하거나 아니면 송중기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 것이 다반사였다. 늘 어눌한 목소리로 얘기하고 기린 캐릭터로 웃음을 주지만 그 누구보다 적지 않은 배우에 대한 열정을 속내 깊숙이 숨기고 있던 그였다. 그런 그이니만큼 최근 영화 <좋은 친구들>에 이어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그런 연기가 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좋은 친구들>에서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이광수에 대한 기대감은 거의 없는 편이다. 지성과 주지훈이라는 배우가 전면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적 영화를 보고 나면 지성과 주지훈만큼 이광수의 존재감이 확실히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좋은 친구들>에서 지성이 건실한 이미지라면 주지훈은 욕망의 화신이다. 어찌 보면 이 세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이들을 친구라는 고리로 묶어내는 역할은 이광수가 오롯이 한 면이 있다.

 

<좋은 친구들>의 이광수 연기를 보고 눈물을 흘리게 된 이들의 반응은 놀랍다는 것이지만, 사실 코믹 캐릭터가 진지한 정극으로 들어왔을 때 제대로 된 몰입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더 큰 감동을 안겨주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즉 웃음의 바탕이 비극에서 나온다면, 그 웃음을 살짝 지워낸 자의 맨 얼굴은 더 슬플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좋은 친구들>은 이광수의 우는 얼굴을 끄집어내준 작품이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이광수는 틱 장애를 가진 투렛증후군 환자 역할을 선보였다. 갑자기 이유 없이 몸을 떨고 킁킁 거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대는 모습으로 첫 얼굴을 드러낸 이광수는 성동일 같은 묵직한 배우와 함께 서도 이제 편안한 모습이다. 새롭게 홈메이트로 들어온 장재열(조인성)과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그는 이 드라마가 보여줄 다채로운 사랑의 면들 중 하나를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예능과 연기를 함께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광수는 예전 필자와 한 인터뷰를 통해 예능에서의 몰입과 연기에서의 몰입이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본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 <런닝맨>은 대본이 없어 사실 뭘 해야 할 지 이런 게 없다. 신뢰가 없이는 하기 힘든 몰입이다. 하지만 드라마 영화는 대본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준비를 해간다.” 이광수가 하는 연기의 밑바탕에는 철저한 캐릭터 분석이 들어있다는 얘기다.

 

코믹 캐릭터는 유쾌하지만 그것만으로 배우의 갈증을 채울 수는 없다. 따라서 코믹 캐릭터가 개성파 배우로 넘어가는 과정은 실로 중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함께 출연하는 성동일처럼 때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 있는 진중함과 진지함을 놓치지 않는 그런 연기를 보여줄 수 있다면 이광수는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작품을 통해 개성 넘치는 배우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광수의 눈빛은 확실히 달라 보인다.

 

<군도>, 민란을 웨스턴처럼 보는 즐거움 혹은 불편함

 

역대 최고 오프닝 기록을 갈아치우며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군도 : 민란의 시대>는 제목이 주는 선입견이 있다. ‘군도민란이라는 단어는 분명 우리가 처한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 그것이 조선을 배경으로 한 사극이라고 해도 그것이 상영되는 건 지금 현재 우리가 사는 이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나 지금의 막막한 현실이 투영된 것으로 군도민란이라는 단어를 읽게 된다.

 

사진출처: 영화 <군도:민란의시대>

실제로 영화가 갖고 있는 이야기 설정 또한 지금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탐관오리가 등장하고 정경유착이 나온다. 그리고 지리산 추설이라는 의적들이 내뿜는 세상을 바꾸자는 목소리에도 현실의 울림이 들어가 있다. ‘뭉치면 백성 흩어지면 도적이라는 반복되는 대사만을 생각해보면 영화는 심지어 민중봉기의 의미를 담은 영화처럼 오인된다.

 

하지만 제목과 이런 이야기 설정들이 주는 선입견을 갖고 <군도>를 보게 되면 100% 실망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군도>의 소재일 뿐, 이 영화가 하려는 스토리텔링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군도>는 철저히 오락영화를 지향했다. 그래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말을 타고 떼 지어 달리며 한 사람 한 사람 스틸 컷으로 캐릭터가 설명되는 장면에서는 이 영화가 전형적인 마카로니 웨스턴 장르를 그리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바로 이 부분에서 호불호는 갈라진다. 만일 <군도>를 여러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웨스턴 오락영화로 받아들인다면 그 안에 펼쳐지는 활극의 묘미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민란이 상기시키는 핍박받는 백성들의 무게감을 떨쳐낼 수 없다면 이런 소재를 이렇게 오락으로 그려도 되나 하는 불편함까지 가질 수 있다.

 

마카로니 웨스턴 장르는 인물이 가진 아픔이나 고통에 집중시키지 않는다. 대신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로 어떤 재미를 보여줄 것인가에 집착한다. <황야의 무법자>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가 왜 그렇게 떠돌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심지어 그는 영화 속에서 이름 없는 자로 불린다). 다만 서로가 서로에게 어떻게 총을 쏘고 머리를 써 상대방을 속이는가 하는 트릭의 재미를 보여줄 뿐이다.

 

이런 사정은 <군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찌 어찌 해 지리산 추설이라는 의적 집단에 들어오게 된 인물들은 그들이 왜 그렇게 됐는가를 정서적으로 공감하게 해주기보다는 짧게 캐릭터를 설명하듯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정서적 공감보다 중요한 건 그들이 각자 가진 능력으로 대변되는 캐릭터다. 천보(마동석)는 힘을 대변하고, 금산(김재영)은 빠른 속공을 대변하며, 땡추(이경영)는 전략가를 대변하는 식이다.

 

이처럼 가볍게 캐릭터화된 인물들이 조윤(강동원)이라는 절대 악인이자 고수와 대결하는 과정은 그래서 절절함이 느껴진다기보다는 액션 활극이 보여주는 재미에 더 치중되어 있다. 심지어 인물의 죽음조차 그다지 슬프게 다가오지 않는다. 마카로니 웨스턴을 보면서 인물의 죽음에 감정이입이 과도하게 되지 않듯이 <군도> 역시 액션 활극으로 그려지면서 인물의 감정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게 만든다.

 

사실 핍박받는 민중의 봉기를 소재로 한다고 해서 모두 절절한 드라마를 깔아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핍박받는 민중들의 죽음이 절절하게 다가오지 못하고 액션 활극의 소재처럼 활용되는 부분은 지금의 대중들의 정서에는 상당부분 부딪치는 면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군도>는 그래서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영화일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액션 활극이거나 혹은 불편한 민중 봉기 소재의 영화거나.

 

일요예능, 편성보다 내용에 신경 쓸 순 없나

 

MBC <일밤>이 편성시간을 10분 또 앞당겼다. 그 이유는 KBS가 지난 20410분에 방송을 시작한다고 고지해놓고 43분에 시작하는 변칙편성을 했기 때문이란다. 사실 시청자들은 이제 누가 잘했고 잘못 했으며 그 원인 제공을 누가 했고 그래서 이런 변칙편성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졌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그도 그럴 것이 이 편성 전쟁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는 건 다름 아닌 시청자들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시청자도 거의 4시간에 달하는 주말 예능을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영화 런닝 타임보다도 더 긴 시간이다. 과거 예능이 두 시간 남짓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사실 3시간도 적지 않다. 그런데 4시간이다. 이건 결코 시청자를 배려하는 일이 아니다.

 

오로지 시청률 경쟁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양상이다. MBC <일밤>이 시청률에서 우위였을 때 KBS <해피선데이>가 편성시간을 앞당기고 <아빠 어디가>와 유사한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같은 시간대에 배치해 재미를 본 건 사실이다. 지금은 시청률에서 <해피선데이><일밤>을 앞서고 있기 때문.

 

물론 거기에는 늘 비슷한 패턴을 보여주던 <아빠 어디가>에 비해 다양한 스토리를 엮어낸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대한 호응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편성전쟁에서도 드러나듯 변칙편성은 여전하다. 이미 현장에서 PD들은 늘어난 방송 분량 때문에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말 그대로 승자 없는 출혈경쟁인 셈이다. 고작 1,2% 차이에 희비가 엇갈리는 시청률 전쟁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방영시간이 이렇게 늘어나면서 생기는 부작용도 만만찮다. 양이 늘다보니 질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 방송3사의 일요예능이 전반적으로 밀도가 떨어진다는 얘기가 많다. 실제로 <아빠 어디가>는 최근 들어 아빠들의 분량이 많이 늘어났다. 물론 물오른 예능감을 보여주는 아빠들의 모습이 그 이유이기도 하지만 <아빠 어디가>의 본령은 아이들에 대한 집중에서 나왔던 과거를 생각해보면 사뭇 달라진 편집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새로운 인물이 들어오고 또 있던 인물이 나가는 게 <아빠 어디가>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서인지 늘어난 방송분량에 그다지 큰 신경을 쓰는 것 같지가 않다. 게다가 일상이 여행보다는 더 이야깃거리도 많은 법이다. 늘어난 시간만큼 <슈퍼맨이 돌아왔다><아빠 어디가>보다 유리한 데는 그런 콘텐츠적인 이유도 들어있다.

 

<룸메이트>에서 최근 벌어진 논란들은 어찌 보면 이 늘어난 방송분량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즉 어쩔 수 없는 방송분량을 만들려다 보니 인위적인 설정이 자꾸 들어가게 되고 그러다 보니 무리한 방송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편성전쟁이 광고와 밀접한 방송사들의 이익에 달린 문제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먼저 반칙을 했으니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MBC의 입장이나, 개의치 않는다는 KBS의 입장이 전혀 공감을 주지 못하고 시청자들에게 짜증만 유발시키는 건 바로 이런 시청자를 배제한 배려 없는 방송사들의 행태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방송3사가 만나 어떤 식의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그걸 지키는 모습이 절실하다.

 

<유혹>, 그것은 인간관계일까 거래관계일까

 

그것은 인간관계일까, 거래관계일까. <유혹>에서 3일에 10억을 제안한 세영(최지우)과 그것을 돈 때문에 수락한 석훈(권상우)의 관계는 그저 거래관계였을 뿐일까. 거래관계라면 일한만큼 대가로 돈을 받으면 그걸로 끝일 게다.

 

'유혹(사진출처:SBS)'

하지만 이 파격적인 제안 속에는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이 뒤섞여 있다. 어린 시절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을 보면 곧 무너질 걸 왜 쌓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세영. 그녀는 모래성 같은 사람 사이의 관계가 돈 앞에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가 하는 걸 석훈에게 보여주려 한다.

 

그런 세영에게 석훈은 되묻는다. 그렇게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고 있을 때 세영은 무얼 하고 있었냐고. 무너질 모래성이 두려워 그저 옆에서 쳐다보고 있지 않았냐고. 무너지더라도 다시 세울 수 있다는 석훈에게 세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모래성의 비유는 석훈과 세영의 관계가 단지 거래관계가 아니라는 걸 감지하게 만든다. 거래관계라면 이런 식의 대화는 왜 하는 걸까. 홍콩에서의 거래가 끝나고 국내로 돌아온 세영은 그래서 석훈이 3달러를 주고 산 시간동안 함께 지냈던 잠깐 동안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 모래성 같은 시간은 지나버렸지만 그 추억은 잔상은 강렬하게 남았다.

 

<유혹>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드라마다. 만일 이 드라마를 전형적인 4각 구도의 불륜 드라마로 본다면 그저 그런 치정 멜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 등장하는 이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관계들을 세심하게 바라본다면 자본이 지배한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인간관계가 얼마나 물질과 얽혀 있는가를 발견하게 된다.

 

아이를 키워달라고 하며 보모 일에 대해 돈을 지불하겠다고 하는 민우(이정진)와 돈이면 다 되느냐는 식의 불편함을 토로하면서도 로이에 대한 동정심에 보모 일을 맡는 홍주(박하선)의 관계는 단순한 보모와 아이 아빠의 관계일까. 사실 보모라는 직업 자체가 그렇다. 그것은 냉철하게 뜯어보면 모성애와 돈관계가 뒤얽혀있는 직업일 수밖에 없다.

 

홍주와 로이 그리고 민우의 관계는 그래서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한 가족처럼 보이고, 또 민우를 쫓아다니며 그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는 흥신소 업자들의 시선으로는 딴 살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가족관계가 아니라 돈 관계가 바탕이 된 보모와 아이, 아이 아빠의 모래성 같은 관계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석훈을 빚더미에 앉게 만들고 자살해 버린 도식은 그에게 선배인가 아니면 사업적인 동업자에 불과한가. 사업을 꿈꿀 때만 해도 그들은 친한 선후배 관계였을 게다. 하지만 사업이 망가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을 주는 사업관계가 되어버린다.

 

쇼윈도 부부인 민우와 그의 아내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부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남편에 대한 신뢰가 거의 없는 아내는 그러나 민우가 건네는 목걸이에 금세 마음이 풀어진다. 그녀는 솔직하게 말한다. “그쪽(불륜을 저지르고 다니는)으로는 최악이지만 이쪽으로는(목걸이 같은 걸 사주는) 최고의 남편이라고. 그래서 그를 사랑한다고. 그러자 민우가 말한다. “널 놓치지 않으려면 회사부터 더 키워야겠다.

 

사람과 만날 때는 속내를 보이지 말라며 포커페이스를 얘기하는 세영에게 석훈은 아픈 이야기를 꺼낸다. 세영이 포커페이스를 얘기하는 건 지금껏 행복한 적도 불행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아프면 아프다 드러내놔야 인간적인 관계도 가능해지는 법이다. 조기폐경이지만 늘 콧대높고 당당해 보이는 세영의 포커페이스는 그래서 안쓰럽게 여겨진다.

 

이 네 사람의 얽히고설킨 관계의 실타리를 풀다 보면 거기에 살짝 겹쳐져 있는 인간관계와 돈 관계의 혼재가 드러난다. 그것은 인간관계일까 아니면 거래관계일까. 이것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다. 불륜이라는 극적 설정을 갖고 있지만 그래서 <유혹>의 질문은 꽤 진지하다. 모래성 같이 얄팍해진 우리들의 관계. 그것은 과연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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